윤석열 대통령이 추모한 대한민국 최초의 북파특수부대 "호림특수부대" 74주기 전몰장병위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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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비디오 조회수·2023. 10. 23.
호림부대 후원계좌 : 농협 301-0148-9281-01 (예금주 : 호림안보협의회)
광복후 귀국하여 호림 부대에 입대하고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대북 작전
수행 중 전사하신 이한기 지사님과
같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이름도
남김없이 쓰러져 갔던
영웅들을 우리 모두 끝까지 기억해야
합니다
1동
[음악]
묵령네 감사합니다이 회사가 있겠습니다
교회사는 국방부 사단법인 호인 안보
협의의 정규필 회장께서 해주시겠습니다
정규필 회장은 64 42기로 인관하여
hiid 팀장 정보사령부대 대북공작
부장 부대장 국방부 정보 계획과장
주중국 무관을 역임하였고 작년
5월부터 호림 안보 회비의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정규필 회장님의
개회사가
[박수]
있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좋은 계절입니다 하지만
살살해진 환절기 나시니라 더욱 옥체에
강녕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제 74 주기 호림
특수부대 전물 장병 위령제 행사에
참석해 주신 내비 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며 특히 불편하신 몸으로
참석한 유족분들과 애국 원로 님들의
들께 진심으로 존경을 평하는 바입니다
우리 호림 특수부대의 선배님들은 풍전
등화와 같았던 그 시기에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국가를 살리기
위해 젊은 청춘을 초개와 같이
버렸습니다 그랬는데도 지금 이날의
안보는 아직도 위태롭기 거지 없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당하고 철벽의 이스라엘이
기습적으로 침략을 당하는 것을 봐도
여러 요인 중에서 정보전의 실패가
가장 크다고
하겠습니다
당시 우리 홀림 부대는
1949년 남침을 준비하던 북군의
전쟁준비 상황을 파악하려 침투한
대였지만 적게 노출되 거의 전멸을
당하는 실패를
초래하였습니다 만약 부대가 성공 인를
했다면 62 전쟁의 초기 양상은
어떻게 변하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비록 공
못이다지라도 목숨의
순 은 위로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19 20살의
꽃다운 나이에 손톱발톱 잘라서 땅에다
먹고 적진을 향했다가 이름모를 산에
묻혀 계신 호림 선열들에 대한 재산
날입니다 그들은 이제 가면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갔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미명에 죽으
갔습니다 그러나 림
특수부대는 어느 정권이든 정부든 모두
외면한 혀진 소외된 서글픈 부대로
존재해
왔습니다 다행히 현 정부에서는
대통령이나 보부 장관께서 역대정부 중
처음으로 각별히 관심을 가지고 림
영령들의 호 정신을 려주고
계십니다 원래 보험부 장관님께서 친히
참석하여 주모를 하여 주시고자 했으나
금일 보부 국정감사 관계로 서울지방
청장님이 대신하여 를 대독 하여
주시겠습니다 심심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행사를
위하여 이례적으로 본 국립 현충원의
현청 과장님이 자리를 함께하여
주셨습니다 여기 동작 동에 묻혀 계신
모든 호흡 영영 님들을 대신하여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아직도 구천을 떠고 있는
떠돌고 있는 호림 용사들이여 영혼도
받들어 주고 전도하는 후대들이 없으면
승천하지 못한다
했습니다 올해도 오늘도
선들의
편안한을
기원합니다 정부가 바뀌고 새로운
지도자가 호림의 존재를 명도 그 부흥
하는 자들이 거리는 리라의 미래는
밝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동안
나라 받은을 부을 수 있도록 여기
있는 후배들이 선을 다해 선배님들의를
조금이 에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어린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내내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기를 결합니다
감사합니다 단기
4356 서기 2023년 10월
13일 사단법인 오리 만보 회비 회장
[박수]
정기회네 감사합니다 다음은 애국 시인
윤경숙 님에 의한 헌시 공증이
있겠습니다 윤경숙 시인님은 한국문인
협의의 회원으로서 시집 소설 집 등
여러 작품들이 있으며 시민 애국
활동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하고 계신
분입니다 또한 최근에는 눈물은 진주가
되었고 절규는 노래가 되었다는 시집을
발간하기도 하였으며 인생의 완성을
의미하는 열번째 시집 발간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럼 윤경수 시 님을
단상으로 모시겠습니다
[박수]
e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 윤경숙 있니다
작년에이어서 제가 두 번째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지금 제가이 자리에
섰다는이
자체가 제 개인 인간적인 제 인생에서
어 가장 보람된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그 개성에서 출생을 하고 일서 후태
때 내려오고 그 많은 그 고통을
겪었었는데 그러나
진정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이 혼란한이 사회 속에서 자 지금
여기 모이신
여러분들과 제가 같이 손을 잡고
뭉친다면 대한민국을
반드시
바르게 세울 수 있으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나라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뼈저리게
느꼈었습니다 자 저도 이제 손자
손녀가 다시나 있는
할머니로서 그 후손들에게 어떤 나라를
남겨 줘야 될지 저도 여러분들과
똑같이 손 잡고 사회에 함께
하겠습니다 습니다 여러분
[박수]
고맙습니다 그 배경 음악 준비가 안
됐다고 합니다 제가 그냥
하겠습니다
조국의 불꽃이
되신
님들이
윤
경성
오늘도 하늘은
저렇게 여전히
푸르른데 조국을 위해서
산화하신 님들이
시
오랜
세월이
흘렀나이다 고기한
영웅 하늘에서
천에서 떠들지
마시고
이제는 우리가 한 님들의
한을 풀어 드리겠나이다
어찌하면 님들이 을 풀어드릴 수
있을지
우리가 한 마음으로 님들을 위로하
있나이다
얼마나
외로우셨죠 우리 곁에 오시옵소서
저푸른 하늘에서 우리를 내려봐
주시옵소서 불꽃으로
승화하고 고을 지키는 대한민국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계시는 하늘에
계시는
위대한
님들이여 우리는
결코 님들의 한을 헛되이지 않도록
하겠나이다
님들의
영혼이 대한민국의 불꽃이 되게
하겠나이다 님들의
한을 풀어 드리겠나이다
고의 잠드소서
고의 잠도
서서
감사합니다
[박수]
감사합니다 윤교 국시 님의 가슴
절절한 허시가 오늘이 자리를 더욱
숙연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다음은 호림 특수부대의 약사
보고가 있겠습니다 약사는 보병제
23여단 주임 원사인 문흥주 원사님서
보고해 주시겠습니다 문흥주 원사님
단상을
모시겠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숙수
부대였던 호림 특수부대 부대 약사
보고드리겠습니다
당시 소련과 중공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던 북한과 대치하고 남한의
안전 남보 정세는 1948년 8월
정부가 수립된 후 매우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북한이 전쟁을 준비하고
남침 시기를 노리고 있는 최애의 안보
동세에 국방 수뇌부에서 나온 대책은
남침 기도를 저지하거나 지연시키기
위하여 열흘 청년 집단인 서북
청년단을 탈출하여 유격훈련을 실시후
북파 공장으로 침투 시키자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1949년 2월 25일
대통령령 제 37호 의어 뉴욕대
양성을 위한 육군 수색 학교가
설립되었으며 1949년 5월 2일
서북 청년 대원 350명 개인 부대원
240명이 입교하여 6월 막까지 교육
훈련을 실시 1949년 6월 6군 수
육군 수색 학교에서 육군 호림 유격
부대로 개명하고 제 5대 대와 6대를
하여 원산에서 영에 이르는 상
20여개의 터널과 교을 폭하 의무와
가원도 오지 산악지대에 활이 된
목표가
되었습니다 1949년 6월 29일
대와 6대는 선을 넘어 색 하여
공정에 진출하였으며 공정에서 대대는
구를
경고는
중산구 지 맹산 지에서 합류하고 각기
공정함을
출발하였습니다 제 5대 대는 대청봉
진부령 향로봉 치을 경외하여
1949년 7월 16일 내금강
국사봉에 이르게 되고 다음날 국사봉
삼각 고지에 일어났을 때 저로부터
3면의 포위 공격을 받아 시간 동안
치열한 공반장 끝에 대대장 백원을
비롯한 전 대원이 장렬하게
전사하였습니다
지한 아인은 단 구명
뿐이었습니다 1949년 7월 2일 제
6대는 공정함을 출발하여 외곽을 거쳐
소아리 진출을 목표로 진격 중 7월
7일 말벌에이었을 때 적 2개 연대
병력에 의해 완전 포기 공을 받게
되고 지조차 불리한 여건에서 탈출할
수도 없는 상황으로 최후의 순간까지
그 자리에서 싸우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방에서 돌격해 들어오는 적을 향해
대장은 무장하고 있던 TNT 불을
붙쳐 적진 깊숙히 공격하여 자폭하라
명령과 함께 적진 속에서
폭하 인민군 이계 연대를 완전히
무력화시키고 김현주 대대장이야 모두가
전사 생한 대는 단 7명에
불과하였습니다 5대대 6대는이
전투에서 14명이 북 포로가 되었고
16명이
하며 3명이
전사하였습니다 1949년 7월 제
2대대 3대대가 편성되어 제 3대대는
북파를 위하여 신흥을 출발하여 선임
지역을 진출 1949년 7월 10일
적 1개중대 조후 교전에서 적에게 큰
타격을 주었으며 이틀 후인 보용
방면은 우군 방어의 스 적 이계
대대를 대대 전을 하
시켰습니다 1949년 7월
제타 침투작전을 위해 현리로 이동하여
제 5대대 6대대 연작 하던 중
1949년 7월
19일로부터 철수명령을 받고 7월
22일 용산 삼각지 소재로 원대
복귀하였습니다 1949년 9월 15일
1 2 3중대 및 본부 중대는 지리산
공비 보를 위해 남으로 출발하여 소대
수색 정으로 산과 독산 에서 빛을
과를 거두었고 공비 터벌 중
1950년 6 전쟁이 발발하자 1
2중대와 중대는 동한 영덕강구 전투에
참가 구령 철수하여 대구를 점령하기
위해 교도부 확보를 위해 공산
공비토벌 작전에 참여하여 적 1개대대
선 인민군 대장외 85명 사살 소총
19 기관 세정 박포 문을 노후
동전에 투입된 와
합류하였습니다 1950년 8월 18일
부포로 철수된 병력은 3사단 수색대와
23대로 중대별로 편입되고 육군 두포
하부는
해체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1949년
2월부터 1950년 8월 18일까지
짧은 역사를 가진 부대로 대한민국
공국과 동시에 격동의 시절 대북
보수및 북의 남 지연작전 일 군 결명
작전을 시행한 대한민국 국군의 최초의
특수 부대였습니다 625 전쟁 이전에
창설되어 부파 공장 활동 부대는 홀리
무대가 유일하게 있습니다 풍전등화와
같았던 조국을 지키기 위해 일말의
망설임없이 적진으로 뛰어들었던
선배님들의 희생 정신과 애국 충정에
진승하 감사와 존경을 표하며 저희
후배 장병들은 오늘도 조국 수호를
위해 주어진 임무 완수와 전력을 다할
것을 엄숙히 다짐합니다 이상 호림
특대 정
마치겠습니다네 문원 사님 감사합니다
다음은 보험부 장관님을 대신하여
서울지방 보원 청장님께서 추모사를
하시겠습니다 치만 서울지방 공원
청장님을
모시겠습니다네 국가부 서울지방
청장입니다 아까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오늘 국가 본부에 대한 국정감사
진행 중에서 장차관 이미와 모든
간부가 지금 여의도 국회에 지금 나가
있는 상황입니다 강민식 장관님의
추사를 대속해
드리겠습니다 존경하는 내회 여러분
귀빈 여러분 오늘 우리는 적지에서
특수 인물을 수행하다 산화하신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희생과 빛나는
업적을 기리고자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선 계급도 근본도 없이 국가를 위해
헌신하시고 대한민국의 산하에 잠드신
호림 특수부대 전물 님들께 깊은
추모와 존경의 뜻을 바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조국의 재단에 바친
바치고 슬픔을 안고 살아오신 유가족
여러분께도 진심 유료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유령들을 발현해 주신
호리 만보 옆에 정규필 회장님을
비롯한 관계자분들과 추모의 뜻을
함께하기 위해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유교 전쟁이 발발하기 1년 전 남침
신후가 있다는 첩보가 있자 이에
대응하여
을지지 후림 특수부대가
설립되었습니다 이들은 적지에서 전
주시설 폭파작전 등 특수임을
수행하였고 극도의 위 속에서 부대원
240명 중 대다수가 전사하거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70여년이
지났지만 전쟁에 앞서 사지에서 북한의
남을 고자 목숨를 수행한 특수부대
전사들의 위협과
애은 역사이자 국민들의 귀감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자리를 함께하신
여러분 오늘의 자유롭고 평화로운
대한민국은 호림 특수부대 전물 장변과
같은 애국자들이 보여주신 순고한 희생
위에서 있습니다이 정부는 어떠한 적대
세력도 대한민국을 넘보지 못하도록
강력한 대비태세를 구축하고 국민들의
안보 의식을 제고해 나가겠습니다
머리를 숙여 얻어낸 평화가 아니라
강력한 힘에 기반한 평화만이 호의
헌신 이설인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음을 널리 알리겠습니다 그리고
목숨바쳐 국가를 지킨 영혼과 그
가족이 국민으로부터 존경받고 명예로운
삶을 영하 이분들 호콘이 후대의 길이
전승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이를 통해 사랑하는
가족을 국가에 안심하며 맡기고
전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그런 나라를
국가 본부가 만들어 가겠습니다 오늘이
자리가 호림 특수부대 전사자들의
순고한 희생을 기리고 애국 정신을
가슴에 새기는 뜻깊은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다시 한번 호국 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2023년 10월
13일 국가 본부 장관 박민식
대도 광복후 귀국하여 호림부대
입대하고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대북 작전 수행 중 전사하신 이한기
지사님과
같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이름도
남김없이 쓰러져 갔던
영웅들을 우리 모두 끝까지 기억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