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강) 조선에 온 선교사(3) / 질병의 멍에를 끊고 조선을 자유케하다 (이승만과 자유민주주의의 시작) #이승만과자유민주주의의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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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수용 올림 -
[음악]
[음악]
이번 시간은 조선해운 선교사 세 번째
이야기 조선 백성에게 드리워진
질병의 멍에를 끊어준
의료 선교 역사 중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한국보건 산업진흥원이
한국외국인 환자 유치 등록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집계한
2022년
외국인 환자 유치실적 통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이후부터
2022년까지 대한민국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은 사람이
총
327만 1574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2020년에
갑자기 그 수가 줄어든 것은
코로나로 인해 외국인들의 입국이
제한되었기 때문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매년 외국인들이 치료를 목적으로
대한민국
병원을 찾아오는 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수많은 외국인이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우리나라에
온다는 것은 우리 의료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결과를 얻기까지는 수많은 노력과
헌신의 과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또
시작도 아주 중요하죠
시작이 없었다면
결과도 없으니까요
지금부터
의료강구 대한민국의 출발점이 어디인지
살펴볼까요
구한말 기록을 보면
당시 조선의 으슬로는
고칠 수 없는 병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일이 빈번했죠
원인도 모르고 치료법도 모르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구한말 조선 백성들은
질병의 멍에가 당연한 듯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조선의 이제껏 본 적 없던
신기한 의원이 나타났죠 바로 조선
최초의 서양식 병원
재중원입니다
재중원은 1885년
4월 14일
서울 제동 지금의
헌법재판소 자리에 세워졌습니다 어떻게
서양식 병원이 조선의 세워지게
되었을까요
제중원의 시작에는이 사람
호러스 뉴턴 알렌이 있었습니다
1884년 9월
20일 조선에
입국한 그는
의료 선교사로 조선해 왔습니다
당시 조선의 상황은 선교사를 환영하지
않았지만 미국 공사 간 의사 자격으로
조선의 입국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의사이자 선교사로 조선해 왔고
외교관으로 조선에서의 사역을
마무리했습니다
알렌 선교사가 조선의 입국한
1884년 12월
갑신정변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이 엄청난 사건은 조선
백성의 질병의 멍해를 끊어줄
놀라운 선물을 남기게 됩니다
갑신정변 당시
고종과 민비의 총회를 받았던
민비의 조카
민영익이
큰 부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15군데가
넘는
큰 자상을 입어
당시 조선의 으슬로는 살아나기 힘든
상황이었죠
그렇게
죽어가던
민영익을 살려낸 사람이 바로 알렌
선교사입니다
고종은 알랜 선교사가 펼친
서양의술의 감동을 받았고 알렌
선교사를
호의적으로 대했고 자신의 주치의로
임명했죠
20년이 지난 1904년 알렌
선교사가
민영익을 치료한 기사가 미국 신문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알렌 선교사는이
빅 찬스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종에게
서양식 병원에 설립을 요청했고
그렇게
광혜원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1885년 2월 25일 광혜원 설립이
허가되었고
4월 14일
드디어
널리 은혜를 베푼다는
뜻을 가진 조선 최초
서양식
의료기관 광혜원이 문을 열었습니다
광혜원은 대중을 널리 구한다는 뜻의
재중원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일반
백성들도 그 혜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음악]
1887년 알렌 선교사가
주미조선 공사간의 서기로 임명되면서
해로운 선교사가
재중원의 2대 원장이 되었습니다
헤론 선교사는 1885년
6월 21일 조선에 왔습니다
그는
의사로서 최선을 다해 조선 백성을
대했을뿐만 아니라 나의
임무는 위대한 의사 예수님에 관해
알리는 것이며
단순히 의학 기술을 베푸는데 있지
않습니다 이들을 위해 돌아가신
구세주를 전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라며 조선 백성의 영원 구원의
열정적이었습니다
해로운 선교사는 미국 동남부의 명문
테네시 대학을
학교 설립일에 최우수성적으로
졸업할만큼 유능한 인재였습니다
학교 측에서도
헤론에게 교수직을 제안했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헤론 선교사는 그 제안을 마다하고
조선해 왔습니다 그가 늘 말하던 대로
위대한
의사이신 예수님을 조선 백성에게
전하여 조선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말이죠
제중원의 2대 원장이 된 해론선
교사는
외국인 거주지에 있던 제중원을 지금의
을지로 입구인
구리개로 이전합니다 좀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재중원에 올 수 있게 하려는
배려였습니다
구리계로 이전한 제중원은
본격적으로
외과 수술을 시작했고 남자
의사에게
치료 받기를 꺼리는 여인들을 위해
여성 의사를 초빙해 부인과를 개설해서
누구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병원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헤론 선교사는
종종 사무엘 무어선교사를 제중원에
초청해 예배드리고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지식을 쌓고
몸이 건강에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다면 그 모든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해로운 선교사는 조선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구원자 예수님을 알리려 했던 것입니다
해로운 선교사는 1890년
6월 조선 선교사회를 창설하여
복음을 전하는
소책자들을 인쇄하여 출판하는 일에
아주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는 조선에서
문서 선교의 중요성을 주장한
첫 번째 선교사였습니다
해로운 선교사는 조선 사람을 사랑하고
누구나 치료하는 이상적인
의료 선교사
신실하게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
복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선교사로
복음 전파에
기초 공사를 다져 놓았죠
그렇게 조선에서 사역한지
5년이 되던 1890년
7월 26일 그는 전염성 이질로
주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당시
서울 사대문 안과
도성 주변에는
외국인들을 매장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조선 조정이 허락한 부산
원산
인천의 일부 지역에만
외국인을 위한 묘지가 허락되었습니다
외국인의 수가 늘어나자
프랑스 공사관에서
외국인 시신을 매장할 부지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마침 해로운 선교사의
죽음으로 그 일이 급속히 추진되면서
양화진에
외국인 묘지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로운 선교사는 이틀 후인
7월 28일
양화진에 묻힌 최초의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해로운 선교사 이후로 많은 선교사가
목숨을 바쳐 조선의 복음을 전하다가
그 달려갈 길을 다하고
양화진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이 사람은
고정의 시의
즉 주치의였습니다 그리고
재중원의
4대 원장이기도
했죠이 사람은 우리나라 최초의
의과대학을 신설하여 우리나라 최초
의사 7인을 배출한
의학 교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병원인
세브란스병원을 세운
의사였죠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올리버
에비슨
선교사입니다이 그림은
에비슨 선교사의 사역을 아주 잘
묘사하고 있죠
그림의 가장
뒤편에 보이는
기와집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
제중원 그리고 그 앞에
7명의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은
우리나라 최초의사 7인 마지막으로 맨
앞 나이든 할아버지가 안고 있는
건물은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병원
세브란스 병원입니다
캐나다에서
의사로 성실히 일하던 에비슨 선교사는
선교사들을 돕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언더우드 선교사의 권유로 조선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캐나다
감리교회 소속이었던 그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교파는 상관이 없다 하며 1893년
6월 미국
북 장로회 파송을 받아 조선에
왔습니다
부산에서
언어 공부를 하던 중
재증원 원장직을 제의 받고
서울로 오게 됩니다
1대 원장 알렌 선교사를 거쳐 2대
원장이었던 해로운 선교사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난 후
빈틈 선교사가 제중원의 3대 원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시간이 흐르면서
조선 왕실과 제중원은
잦은 마찰이 있었습니다 마찰의
원인은
복음을 전하는 일과
우정권을 가진 왕실의 운영상
BD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운영비의 대부분이 선교부로부터 오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결국
빈틈 선교사는 제중원의 원장직을
내려놓게 되었고
에비슨 선교사에게
재중원의 4대 원장을 맡아 달라는
제의가 들어온 것입니다
에비슨 선교사는
원장직을 수락하는 조건으로 조선왕실이
운영해서 빠지는 것과 그 운영권을
미북
장로회로 넘겨주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드디어
1894년 조선 왕실이 가지고 있던
제중원의 운영권은 미북장노회로
넘어왔고
제중하는 비로서 완전한 선교 병원이
되었습니다 미
북장로회가 운영권을 가지게 되면서
제중원은 더 많은 사람에게
의료혜택을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어디일까요 미국
뉴욕
카네기홀입니다이 사진은 카네기홀의
1900년대 모습입니다 1900년
4월 21일부터
5월 1일까지
약 10일 동안
카네기홀에서는
해외선교회의라는 아주 큰 선교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때
에비슨 선교사도 2회의에 참석했습니다
당시 조선의 의료선교는 제중원을
비롯해 선교사들이
각각 운영하는
진료소들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위급한 환자가 왔을 때 그
환자에게서 발생하는
여러 상황을 한 번에 대처하기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환자의 증상들을 치료하려 해도 전문
분야의 의사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의사를 기다리다가
환자는 증세가 악화되어
목숨을 잃는 일이 빈번했던 것이죠
에비슨 선교사는 이런 상황이 너무나
안타까웠고 만약 조선의 종합병원이
있다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에비슨 선교사가
뉴욕에서 열리는이 해외선교대에
참석하여 조선의 의료 선교 실상을
말릴 기회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에비슨 선교사는 카네기홀에서 조선은
선교사들이 활동하기에 제약이 많은
편입니다 하지만
의료 선교 만큼은 제재가 없습니다
복음실은 의술을 펼치려면
우선 제대로 된 병원이 필요합니다
작은 진료소를 운영하는
의료 선교사들이 안정적으로
함께 일할 수 있는
적어도
40명 이상을 수용할
병원이 필요합니다라고
호소했습니다
에비슨 선교사의이 강력한 호소에
마음이 움직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루이스 세브란스입니다
그는
신실한 기독교인이고
석유 왕 록펠러의 사업 파트너이자
스탠다드 오일의 대주주였습니다
세브란스병원을 설립할 비용이 얼마인지
물었고
에비슨 선교사는 이미 설계도까지
준비했던 터라 주저없이 1만 달러라고
대답했습니다
세브란스는 자신이 그 일만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1만 달러는 지금 한화로
환산하면 1000억에
달하는
돈입니다뿐만 아니라
세브란스병원이 개원한 후에도 더 많은
돈을 기부했는데요
총
5만 5천 달러나 된다고 합니다
세브란스는
1913년 세상을 떠나며 아들
존에게도 세브란스병원을
도우라는 유언을 했고 그의 아들 조는
1934년까지
20년간 124,500달러를
기부했다고 합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생전에 좋은 세브란스 재단을 만들어
지금까지도 그 도움을 지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병원이 바로 세브란스병원입니다
세브란스의 아름다운 섬김을 기념하기
위해
병원의 이름을 세브란스로
지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서울역 앞
연세재단 빌딩 자리에
40 병상 규모로
지하 1층과 지상 2층 건물에
입원실 진찰실 수술실
실험실
약국 등과 보일러
증기탕 시설
엑스레이 촬영기
압축공기구
물리치료기구 등을 갖춘 최신식
종합병원이 탄생했죠
[음악]
1904년
9월 23일
봉헌식과 함께 정식으로 문을 연 후
10월 4일
세브란스병원에 첫 수술이
진행되었습니다 그 수술은
백내장 수술이었는데
에비슨 선교사는 조선 백성을 빛으로
인도한다는 의미를 담아 그 수술을
첫 수술로 결정했다고 하네요
에비슨 선교사는 세브란스병원 내에
의학전문학교를 신설하고
우수한 의료
인재양성에도 힘썼습니다
허스트 선교사를
의학교
교수로 영입하고 나서
의료 교육은 더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이 사진은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하는
에비슨 선교사
허스트 선교사 그리고
뒤편 중앙에 보이는 사람이
백정 출신 의사 우리나라 최초의
7인의 의사 중 하나인
박서양입니다
백정
박가
박성춘의 아들이죠
에비슨 선교사는 자기 같은
외국인 의사 몇 명만으로 조선의료를
책임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결국은 조선인 의사들이 조선인을
돌보아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의사를
교육시켜 배출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했죠 그는 조선인 의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한글로 된 해부학
교과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에비슨 선교사는 열정을 다해 해부학
책을 번역했지만
원고가 사라지거나 불에 타는 좌절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에비슨 선교사는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김필순 번역
에비슨 교열의 첫 한글 해부학
교과서인 해부학을 1906년
완성했습니다
그 후로도
여러 교제를 한글로 집필해 조선인
의사를 키우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세브란스병원
의학 교는 1908년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 면허를 부여받은 제1회
졸업생 7명을 배출했습니다 1909년
학교 이름을 세브란스 의학 교로 계층
하였고 1913년에는
서울에 있던
각 선교 교파가 공동으로 세브란스의
지원하게 되면서
학교 이름을 세브란스
연합의학교로 바꾸었습니다
1917년에는 전문학교
규칙에 따라 세브란스 연합의학
전문학교로인가 되었습니다
당시 일제에 의해 운영되던
관리 의료기관이나
학교와는 달리 세브란스는 유일하게
조선인을 위한 병원이자
의학 교육 기간이었습니다
일제 말기에
학교의 이름이 아사히 의학 전문학교로
바뀌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으나
해방과 함께 세브란스 의과 대학으로
재탄생하였고
1957년 세브란스 의과대학과
연희대학이 하나가 되면서
연세대학교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앱이 쓴 선교사는 자신의 뒤를 이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 두 번째
교장으로 조선 사람 오금선을
지명했습니다
세브란스의
다른 외국인 선교사들은이 결정에 대해
적지 않게 반발했지만
에비스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가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조선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비슨 선교사는 선교사들은
언젠가 떠날 사람이고
결국은 조선 사람이이 모든 일을
맡아야 한다 그들은
충분히 우수하며 그 모든 일을 맡는데
전혀 부족하지 않다고
믿었습니다
에비슨의 그 믿음대로 지금 대한민국의
의료는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고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죠
현재
연세의료원은
서울 신촌과 강남
경기도 용인
강원도 원주 등을 합쳐
3400 병상 규모의
의료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보건대학원
간호대학원
의과대
치과대
간호대 등의 교육기관을 거느리고 있는
거대병원으로
성장하였고
여전히 많은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 의료진을
길러내고 있습니다
의사이자 교수이며 집필가였던 김두종
선생의
한국 의학사에서 김두종 선생은
세브란스병원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세브란스병원은 우리나라 서양의학의
발상지로서
우리나라의 전해 온
근세의학의 역사 중에 가장
광채 있는 페이지를 차지한 것도
세브란스병원 이건희와 우리의학이
발전적 과정에 있어서
민족적 고난과
호흡을 같이 하게 된 것도
세브란스병원이다
김두종 선생의 말처럼
세브란스병원은 우리나라 서양의학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대한민국의 건강을 책임지며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그 시작이 바로
의료 선교사들이었습니다
오늘 배운 것을 한번 정리해 볼까요
[음악]
1884년 12월
갑신정변은
뜻밖에도 조선 백성의 질병에 멍에를
끊어줄
놀라운 기회를 여는 문이었습니다 그
문을 열고
광혜원이 세워졌고
광혜원이 제중원이 되었습니다
재증원은
4명의 선교사 원장을 거치며
점점 조선 백성에게 드리워진
질병의 멍에를 끊어 갔습니다
제중원은 우리나라 최초 종합병원인
세브란스가 되었고
질병으로부터 해방을 선포했습니다
이 역사의 시작에는 하나님이
계셨고 그 말씀의 순종하여 조선에
와서 조선 백성을 사랑한 선교사들의
헌신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