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불명의 선동 폭력배. 그들은 누구인가? #518 당시 #전남도청 보건공무원. #1157. 240320

pine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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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 제가 80년 518 사태를
선장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하고
더구나
전남도청에서 유일하게 518 관련
행정 실무를 담당한 자로서 지금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을 설명자
합니다 1 518 사태는 실체가
없다 518 사태는 625사변
다음으로 거국적인
사건임에도 지금까지 주도자 주동자들
및 거기에 가담한 자들의 신원이
밝혀진 바가 전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상애 임정을
이끌고 주도한 김구 선생님과
독립투사들이 많은 독립투사들이 있었고
에서 독립 활동을 주도한 이승만
대통령과 많은 교포들이 있었고 625
남침을 주도한 김일성과 많은
북한군들이 있었고 516 혁명을
주도한 박정희 대통령과 많은 군인들이
있었음에도 유일하게 518 사태를
주도한 자나 가담한 자들의 신호는
전혀 밝혀지고 있지 않은 것은
그야말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42년 동안 국가적인
차원에서 518 사태를 규모고 하여
왔으나 아직까지도 518 사태를 누가
일으키고 거기에 가담한 자들이나
주도한 세력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는
실정이며 심지어는 국가 518 진상
규명 위 장관 끝 위원장인 송 선태는
5.18 당시 개군 2단을 매혹
기습하여 사단장 찍차 및 군용차량
십대와 무기등을
탈취한 정체 불명의 단자들 중 한
명이었다는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데도 송 선태는 자기가 518
유공자라는 사실과 개군 2단을 매복
기습한 당사자란 것도 극부 숨기고
있는 실정을 보면 기가찰
입니다이 518 사태는 일부
대학생들과 민주화 의지를 가지고
투쟁한 일부 시민들이 주도한 사건으로
인지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이들이
518 사태를 주도했다는 근거는 전혀
밝혀진 바가 없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체 불명의 선동 집단들이 일으킨
정황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이들 전체 불명의 손동
집단들의 신원이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더구나 518사태 당시 사망하였거나
부상당한 자들 중 518 사태를
주도하였다
대학생들이나 진정한 민주와 의지를
가지고 투쟁한 시민들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3
80년 5월 27일에
전남도내 중
여구 시신들을 날라온 정체불명 자들과
혼자 시신들 위해 촛불을 꼽고 있던
여성의 신원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는 점과
구 이상의 시신들을 도대체 어디에서
누가 찾아서 가져왔는지 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으며 그 많은 시신들이 있었음에도
유가족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 시신들을 날라온
매우 낯이 서른 자에게
제가 도대체이 시신들을 어디에서
가져온 것이냐고 묻자 그 자는 표정도
변하지 않은 채 제 질문을 묵살해
버릴뿐만
아니라 그 시각 이후로는 부자들
부자들은 종적을
추었으며 도대체 왜 시신들이 하나같이
붉은 황토 범벅이 되어 있었는지도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자 518사태 당시 계엄군들이 의해
직접 칼로 찔렸 그나 죽임을 죽임을
당했다는
시민들이나 그 상황을 목도한 광주
시민들이 지금까지 한 명도 나타나지
않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러면 그
당시
437명 부상자들과 154명의
사망자들은 도대체 누가 저지른
짓일까요 즉 부상자나 사망한 자들은
있어도 부상을 입힌 자들이나
사망자들을 죽인 자들은 한 명도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80년 5월 21일
1시경에 개군 소속 권일경이 시대
장갑차에 깔려
사망하였으나 그 장갑차를 운전한 자의
신원이 아직까지 밝혀지고 있지 않은
점과 그 당시 전남 도청 공관
4층에서 시대 장갑차에
그 당시 저는 도천 공관 4층에서
시위대 장갑차의 권일경 앞서한 장면을
정확히
목도하였다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망
사건은 5.18 당시 최초로 목격된
사망 사고였습니다뿐만 아니라 그것도
개엄 그이 아닌 정체 불명을 선동
집단 자들의
짓이었습니다 6 518 사태 당시
실제로 518 사태를 주도하였던 정치
불명 선동 집단
자들과의
대화가 일체 없었다는
점으로 즉 이자들은 누구와의 대화
시도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것은
이들이야말로 북한 어투가
탈날까봐 를하지 하는 것으로 충분히
심중이
갑니다 7 본인이 80년 5월 22일
19시 30분 경부터 20시 30분경
사이에
탑승하였다 소위 시민군이 운전하고
있는 장가에서 대면한 장가를 운전한
남성과 가두 방송을 하고 있던 여성의
신혼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정 와
저는 그 당시 캄캄한 방중에 아무런
방도를 찾을 수 없을 때 장갑차가
나타나 저를 무사히 집 근처에까지
태워다 준 것이 고마워서 그 뒤에
장갑차 운전수와 여성들을 찾아 사례를
하고 싶어 백방으로 수소문 하였으나
그들의 종적은 요연하게
하였습니다 8 80년 5월
22일과 5월 25일 경에 하순 어느
골짜기 시골 마을에 주둔하고 있던
소위 시민군 본대에서 총기 오발로
인하여 그곳에서 신부름 하던 20대
여성이
사망하였으나 그 여성과 그 여성의
아버지인 그 마을 2장의 신원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것은 도저히
납이 되지 않습니다 즉 그 당시
시민군들은 위해 밤낮으로 식사
심부름을 하고 식사를 제공하다가 오발
사로
사망하였으며 당연히 518 유공자들
중에서도 최고 등급 수훈자에
해당됨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신원조차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가 있겠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소위 시흥군 본대가 주둔하고 있던
주둔하고 있던 장소라면 오히려
역사적인 장소로 기록되어야 함에도
지금까지 그 장소에 대해서는 극비
사항으로 누구도 거론하지 않는 것은
도대체 무슨 까닭인지 웃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9 80년 5월 21일 밤에 광주
세무서가 전소되고 광주 mbc
반소 그것을 방화한 자들의 신호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는 전과
더구나 세무서는 중요한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고 방송국은 시민들의 귀와
눈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인데 왜 하필
이러한 중요한 곳만 골라 방화를 하고
과연 일반 시민이 이런 강 큰 행동을
할수 수 있었는지 구심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식 518사태 당시 아시아
자동차에서 장갑차와 군용 차량들
탈출시 직접 가담한 자들과이 장갑차와
차량들을 운전한 자들은 신원이
아직까지 밝혀주고 있지 않은 점과 그
당시 민주화를 위한 목적으로 장갑차와
군용차 들을 탈취하였다 오히려 518
유공자로 자랑스러워 함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왜 그들은 수훈을 꼭꼭 숨기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10 80년 5월 21일
당시 전라남도 소재 예비금 무기고
마음 네곳을 일시에 기습하여 각종
무기들을 탈취한 자들을 신원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점과 그 당시
전남 도내에 흩어져 있는 무기고
4고수
장소를 어떻게 알고 불과 시간 년만에
일시의 무기고를 턴 것은 일반
시민들의 행동이라고는 도저히 느끼지
않을 뿐더러 이하 같은 일사불란한
작전은 고도로 훈련된 자들의
소행이라고 밖기 여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12 518사태 당시 광주
교도 교도소를 습격한 자들의 신음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는 점과 그
당시 특수군인 공수부대가 교도소를
방해하고 있었음에도 정체 불명의
집단들이 기관총 등으로 완전 무장한
채 무려 여섯차례 이상을 공수부대
방어망을 뚫고 교도소를 하려 한
것은 일반 시민들의 행위라고 도저히
믿기 어려울뿐만 아니라 도대체 어떤
목적으로 굳이 위험한 죄수들이 수천명
감금되어 있는 교도소를 탈취하게 했던
의도가 무엇인지 웃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끝으로 제가 최근에 겪었던
상당한
경우로 국가 518 진상 규명 위후
허구의 진상 조사에 대하여
말하겠습니다 작년
2023년 8월경 국가 518 진상
조사위 광주 분 사무소에서 80년
5월 21일 13시경 시위대 장갑차의
개군 소속 일병이 압사한 사회에 대한
인증 신문 시간
동안 이영민 조사관 후 조사에
임하면서이 연민이 제시한 일병을
압사한 장갑차는 시위대 장갑차가
아니라 엄군 장갑차에 의한 사고임을
반박하는 자료라고 하면서
이영민이 제시한 사진들을 확인한 바
그것은 80년 5월 21일 당시 실제
장면이
아니라 2000년 이후에 제작된
영화의 한 장면임을 집가 한 봐도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우리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