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TV의 인터뷰 프로그램 [이야기를 담다]에서는 대한민국 문화계의 살아있는 전설, 송승환 감독의 진솔한 이야기를 만나봅니다.
송승환 감독은 배우, 제작자, 연출가로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예술인이자, 59년간 무대와 스크린을 넘나들며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시력 저하라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활동을 이어가며, 더욱 깊어진 집중력과 연기력으로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최근 연극 [더 드레서]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펼치며 열정을 이어가고 있는 그는, 여전히 무대를 사랑하는 배우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송승환 감독은 27년간 국내외에서 꾸준히 사랑받아 온 [난타]의 제작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공연이 중단되었던 시절을 지나, 다시 무대에 선 배우들과의 재회를 가장 감동적인 순간으로 꼽으며, 연극의 진정한 가치를 재확인했다고 전합니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개·폐막식의 총감독을 맡아 대한민국의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무대를 연출한 그는, 최근 2024년 파리 올림픽 개막식 해설을 맡아 특유의 박학다식한 해설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송 감독은 "인생 3막을 배우로서 마무리하고 싶다"는 소회를 전하며, 좋은 노역을 맡아 연기 인생을 완성하고자 하는 포부도 밝혔습니다.
[이야기를 담다]는 매주 목요일 저녁 6시 30분, 매일경제TV 채널 및 홈페이지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정치문화 CEO 스포츠 각 분야의 굿피플 핫피플 갓피플을 모시고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는 이야기를 담다 이담입니다.
오늘은 대한민국 문화계의 갓피플입니다.
27년 전에 탄생해 전 세계 관객에게 사랑받고 있는 난타의 제작자.
앞이 잘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연극 무대에 올라 관객을 웃게도 하고 울리기도 하는 데뷔 59년차 배우입니다.
또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막식 총감독을 지낸 배우이자 뮤지컬 제작자 송승환 감독과 함께합니다.
보이지 않아도 듣는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안 보이는 게 아니라 형체는 보이니까 그 정도도 감사하죠.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차 한 잔 따라드리면서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이제 벌써 날씨가 많이 추워져서요.
고맙습니다. 잘 봐주겠습니다.
저는 워낙 어렸을 때이긴 하지만 목욕탕집 남자들에서 배우로서 송승환 감독님을 알게 됐었는데 그게 벌써 한참 전이더라고요.
그게 96년도일 거예요.
그러니까 벌써 거의 30년 전이죠.
그러니까요.
저는 애기때라 재밌게 봤다기보다 저희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재밌게 보시던 게 기억이 나더라고요.
그때 배우로서 쭉 활동을 하시다가 제작도 하시고 연출도 하시고 굉장히 여러 가지를 하셨는데 저희가 오늘 그 얘기를 조금 조금씩 나눠보겠습니다.
일단 지금 연극 한 편 시작하시잖아요.
더드레서 어떤 연극인지 설명해 주시죠.
연극 작품이고요.
1940년대 2차 대전 때 지방 투어를 도는 세익스피어 극단의 얘기입니다.
그래서 연극하는 사람들의 연극 뒷무대에서 일어나는 분장실에서 일어나는 그런 얘기를 다룬 작품이에요.
굉장히 뭔가 느껴지기에는 카리스마가 있는 것 같은 그런 역할을 맡으신 것 같은데 맞나요?
바로 이제 배우면서 극단 대표죠.
그리고 또 극중에서 연극 안에서 연극을 하거든요.
리어왕을 해요.
리어왕의 연기를 하기도 하고 또 극중에서 굉장히 극단 대표로서 카리스마 있는 그런 연기를 하기도 하죠.
그 연극 속의 역할 한번 잠깐 보고 가시죠.
억수 같은 폭우야 내려 쏟아져라.
참나무를 쪼개는 천둥봉개여.
내 백발을 치져라.
잠깐인데도 확실히 뭔가 카리스마가 확 느껴지는.
이거는 연극 속의 연극 리어왕 역할인 거고요.
또 실제 연극 속에는 극단주의자, 배우의자 이렇게 하시는 거잖아요.
이게 이제 첫 번째 하시는 게 아니라 2010년, 2020년, 2021년 그리고 이제 세 번째 하시는 거더라고요.
2020년에 막을 올렸는데 그때 이제 코로나 때문에 일주일 정도 공연하고 그만.
극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공연을 멈췄어요.
그래서 공연을 못하고.
그다음에는 괜찮겠지 하고 2021년에 막을 올렸는데 역시 그때도 코로나 상황이 끝나질 않아서
한 자리 띄기, 두 자리 띄기 이렇게 듬성듬성 관객을 앉혀놓고 공연을 했죠.
그래서 다들 아쉬워해서 이번에 3년 만에 다시 막을 올렸습니다.
그게 원래 극중에서는 막 소리 지르는 거예요.
그런데 영상을 찍으면서는 영상에서 그렇게 소리 질러봐야 이상하니까
리얼리티가 너무 깨져버리니까 차라리 그냥 읊조리듯이 하자라고 그렇게 했죠.
다시 한 번 하면 참나무를 쪼개는 천둥, 번개여.
내 백팔을 이겨라.
이런 느낌이에요.
그런데 지금 연극도 너무 활발하게 준비를 하고 계시고
여러 가지 일을 하고 계시지만 시력이 조금 안 좋으시기 때문에
불편한 점도 좀 많으실 것 같은데 어떻게 하고 계세요?
처음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하면서는 굉장히 불편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죠.
이제는 많이 안 보이는 거에 익숙해졌어요.
그리고 안 보이긴 하지만 아주 안 보이는 건 아니거든요.
제가 우리 이담 씨의 얼굴은 안 보이지만 그래도 형체는 느낄 수 있어요.
목소리는 잘 들려요.
사람이 보이지 않아도 듣는다는 것만으로.
그리고 또 아주 안 보이는 게 아니라 형체는 보이니까 그 정도도 감사하죠.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고 어려웠지만 이제는 이 정도라도 보이는 것에
언제부턴가 감사하게 되더라고요.
좋은 마음을 갖고 계시네요.
그러면 일할 때는 익숙해지셨으니까 괜찮으신 거고
혹시 그렇게 되면서 아까 말씀하셨듯이 들리는 건 잘 들린다고 얘기하셨지만
더 좋아진 점도 있으신가요?
잘 안 보이니까 잡생각이 많이 없어져요.
그냥 뭐가 보이면 보일 때마다 뭔가 생각이 떠오르잖아요.
잘 안 보이니까 별로 잡생각이 많이 없어지는 것 같고
그리고 이제 좀 더 집중력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런 면은 오히려 좋아진 면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저는 가족이 집사람밖에 없어요.
부모님 다 돌아가셨고 저는 애들이 없고.
그래서 집사람밖에 없어서 어떤 말을 하기보다는
그냥 집사람이 심청이 노릇을 잘하겠다고 해서
집사람이 심청이 노릇을 잘해주고 있고
가끔 뺑덕어멈이 될 때도 있어요.
왜냐하면 심청이 노릇을 계속 잘하는 건 쉽지 않거든요.
그러나 어쨌든 집사람이 많이 도움을 주고 있고
덕택에 별 문제 없이 잘 살고 있죠.
그게 말이죠. 늘 고마움은 고맙다는 말을 잘 안 하게 돼요.
그 부분은 좀 그런 것 같아요.
그냥 당연히 옆에 있고
당연히 내가 넘어지면 일으켜줘야지
내가 넘어지는데 안 일으켜주면
그거 부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사실 고맙다는 얘기를 그렇게 입에 달고 살지는 않아요.
그런데 늘 마음으로 고마워하고 있죠.
시력이 처음 안 좋아지신 게 2018년쯤인가요?
글쎄요. 그런데 의학적으로 꼭 그렇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고 그러고요.
이 병이 아직 원인을 잘 모르는 병이고
그래서 또 치료가 힘든 병이고
원인이 뭐다라고 딱 얘기할 수는 없다고 그래요.
그래도 그때 정말 고생 많이 하셨죠.
힘든 작업이었어요.
우선 3년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준비했고
그동안에 많은 일들이 있었고
굉장히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래도 올림픽이라는 존재감이 굉장히 컸던 것 같아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래도 올림픽인데
또 평생에 내가 한 번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잘 해내겠다는 그런 생각
어쨌든 올림픽이라는 존재감이 워낙 컸기 때문에
그래서 버틸 수 있었고
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갖게 해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서 최근에 파리올림픽 개막식 중계를 했는데
칭찬 일색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어떻게 이렇게 박학다식하게 이야기를 하실 수가 있는가
평창동계올림픽 끝나고
도쿄올림픽하고 페이징올림픽도 제가 해설을 했었어요.
그러면서 올림픽 개회식이라는 게
그 나라의 문화와 예술을 굉장히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거니까
미리 공부가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도쿄올림픽 때도
일본 문화와 예술에 관한
또 역사에 관한 책을 여러 번 읽고 준비를 했고
페이징 때도 그랬고
이번 파리올림픽 때도 준비를 많이 했어요.
그래서 프랑스에 대한
또 파리에 대한 여러 가지 자료들을 미리 보고
그리고 갔고
워낙 파격적이었잖아요. 파리올림픽이
그동안 100년 넘게
올림픽 개표회식을 스터디움에서 하는 것이
우리의 고정관념이었는데
그걸 깨버리고 파리 시내에 나와서
파리 시내 곳곳 샌드강을 주변으로
개막식을 하는
굉장히 파격적이었고
굉장히 저는 감동적인
올림픽 개막식이었다고 생각해요.
전혀 예상 못했던 흐름이었죠. 개막식이요.
시작하자마자 비가 와서
제가 우산 쓰고 중계하다가
나중에는 비가 너무 많이 쏟아져서
비닐 덮고 중계했어요.
그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네요.
열악했어요. 중계석은.
들을 때는 저희가 굉장히 편안하게
차분하게 하셨던 것 같은데
중계석은 열악했습니다.
저희가 이쯤에서요.
담담감 토크를 준비를 했습니다.
감독님의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서
저희가 보석함 속에
여러 가지 담들을 넣어놨거든요.
하나 뽑아주시면
저희가 관련해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기서 하나 뽑을까요?
글씨를 아주 큼지막하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건가요?
추억담이라고 써있어요.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어린 시절에 딱지치기나 구슬치기보다
책 읽기가 더 좋았다.
재자랑하는 것 같지만 사실이거든요.
가능한가요?
보통 애들한테 놀지 말고 책 읽어 하는데.
어머니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한글을 안 가르쳐주셨어요.
미리 알면 재미없다고.
그래서 초등학교 들어가서 한글을 깨우쳤거든요.
한글을 깨우치고 나니까
글 읽는 게 굉장히 재밌더라고요.
그때 마침 아버지가 어린이 명작 전집
이런 걸 사다 주셨는데
그게 너무 재밌는 거예요.
읽고 또 읽고 읽고 또 읽고.
그래서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책 읽는 재미에 일찍 빠졌던 것 같아요.
지금 뒤에 나온 사진 보니까 마이크가 있고요.
저거는 제가 데뷔한 게
초등학교 3학년 때예요.
65년도에
은방울과 차돌이라는 프로에
차돌이 역할이죠.
제 옆에 있는 여자분이 은방울 역할했던 분이고
왼쪽이 담당 프로듀서 오른쪽이 담당 작가 선생님.
제가 처음 방송을 시작한 1965년
KBS 스튜디오죠.
아역으로 데뷔를 하신 거니까
65년인 거면 지금 59년이 흐른 거예요.
내년이면 60주년이잖아요.
60년을 쫙 돌아봤을 때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어떤 시대가 있으신가요?
전성기다.
전성기라고 얘기하기보다는
그래도 제가 배우를 하다가
공연을 만드는 제작 일을 시작하면서
난타라는 공연을 만들게 됐고
난타라는 공연을 만들고
그 작품을 해외에 소개하기 위해서
세계 여러 나라를 뛰어다녔던 그 시절.
그 시절이 아마 저한테는
뭔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서
힘도 들었지만 신나게 뛰어다니는 시절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가장 힘들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게 마련이기도 하고요.
난타는 어떻게 하게 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간단히 얘기하면
연극 제작을 하다 보니까
밤낮 빛을 지고 망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연극 제작을 해서
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결국은 시장을 넓히는 거죠.
많은 관객들한테 공연을 보여주는 거죠.
그 많은 관객은 결국은
전 세계의 관객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 나가서도 공연할 수 있는
그런 공연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데 외국에 나가면
우리 한국말을 아무도 못 알아듣잖아요.
그땐 더 그랬죠.
그래서 언어가 없는
비언어 공연을 만들 생각을 했고
그래도 한국적인 것이 필요하죠.
그래서 한국의 산물놀이의 리듬을
기본으로 한 비언어극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난타를 만들게 된 거죠.
난타라는 무대를 통해서
많은 분들이 배출이 됐잖아요.
배우들도 굉장히 일이 많아진 것도 있는데
후배 배우들을 도와주신 것도 있는 거잖아요.
난타가 올해 27년째
코로나 때 한 2년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공연이 되고 있거든요.
지금도 서울 명동과 홍대에
난타 전용 극장에서 365일 공연을 하고
제주도에도 전용 극장을 하고
해외 투어도 계속하고 있고
그래서 많은 배우들이
난타를 통해서 연기활동을 하고
또 난타하다가 영화 쪽으로 진출해서
스타가 된 배우들도 있고요.
어떤 배우들이죠?
잘 알려진 유승용 씨, 김원혜 씨
이런 분들이 난타 초기 멤버죠.
오랫동안 난타를 했고
나중에 드라마와 영화에서
아주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후배들이죠.
그 2년 동안 공연을 못한다는 게
단순히 못하는 게 아니잖아요.
배우들이 다 실업자가 되고
그래서 연기하던 사람들이 택배를 하고
물류센터에서 물건을 분류하는 일을 하고 있고
또 어디 가서 서빙을 하고 있고
그게 너무 정말 가슴 아팠어요.
그리고 그 2년이 지나고 다시 공연을 시작해서
그렇게 엉뚱한 일을 하고 있던 배우들이
다시 극장에 모여들고 다시 연습을 시작할 때
난타 처음 시작할 때보다 더 벅찼던 것 같아요.
너무 가슴이 벅찼고
또 관객 여러분들이 지금 코로나 이전보다
더 많이 난타 작을 찾아주고 계시거든요.
특히 저희는 90%가 외국인들이죠.
그런 관객들이 너무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지고 있죠.
그리고 그동안 정말 많은 작품에 출연을 하셨잖아요.
그런 출연작들 중에서 혹시 딱 기억에 남는
가장 인상적인 이런 것도 있으신가요?
연극도 있고 드라마도 있고 영화도 있고
굉장히 많은 작품을 했는데
그래도 연극이 오랫동안 연습을 하고
그래서 보는 관객의 숫자는 드라마나 영화에 비해서 작지만
저한테는 굉장히 오랫동안 남아있죠.
에쿠스라는 연극이 저를 좀 세상에 알린 작품이고요.
그 이후로 피터 셰퍼라는 에쿠스 작가의 작품 중에
아마데우스를 제가 모잘트 역할을 했었고
또 제가 좋아하는 테니시 윌리엄즈의 유리동물원의 톰 역할
또 유진원일의 밤으로의 김여로의 아들 역할
그리고 최근에 했던 웃음의 대학이라는 연극
지금 공연하고 있는 드레서 이런 연극들이
저한테는 오랫동안 제 머릿속에 남아있는 작품들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에도 많이 출연한 배우분들한테
이렇게 작품을 물어보면 항상 연극을 많이 얘기하시는 것 같기는 해요.
연극의 특별한 매력이 뭘까요?
아무래도 드라마나 영화는 배우의 힘도 중요하지만
작가나 연출의 영향력이 굉장히 큰 장르잖아요.
드라마는 특히 작가의 영향력
영화는 감독 예술이라고 불릴 만큼 감독의 영향력
연극은 사실 배우가 해야 할 일이 굉장히 많은 장르거든요.
무대 위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편집이 없고 NG도 없고
2시간이면 2시간 동안 그 캐릭터로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배우의 역할이 그만큼 크기 때문에
배우 입장에서는 연극이 그렇게 기억에 남는 거죠.
지금 저희가 오늘 계속 얘기를 듣다 보니까요.
감독님께서는 모든 방법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굉장히 긍정적인 게 크게 느껴집니다.
그래요?
어떻게 이렇게 살아가실 수 있는지 이것도 궁금해요.
실망하고 부정해봐야 되는 일이 없잖아요.
맞습니다. 정답이죠.
그러니까 긍정하는 거죠.
왜냐하면 제가 눈이 안 보이기 시작할 때
처음에는 모든 걸 다 그만둬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그러기에는 아직 눈 빼놓고 다 건강하고
또 아주 안 보이는 것도 아니고 형체는 보이고
그다음 생각은 이 정도 보이는 걸로 할 수 있는 게 뭐 없을까?
그러면서 방법을 찾다 보니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더라고요.
사실은 제일 처음에 힘들었던 건 휴대폰 문자가 안 보이는 거예요.
우리 늘 휴대폰을 끼고 살잖아요.
이걸 어떻게 하지? 아무리 글자를 키워도 안 보이고.
그런데 안 보이면 들을 수가 있더라고요.
문자도 들을 수 있고, 메일도 들을 수 있고, 카톡도 들을 수 있고.
들으니까 해결 다 됐어요.
그런 식으로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가니까
안 보여도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이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일부러 긍정해야겠다, 희망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이게 안 되면 다른 방법이 없을까 하고
하나하나 방법을 찾다 보니까
그게 바로 긍정이 되고 희망이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럼 앞으로는 이렇게 하시면서
뭐를 하는 게 제일 재미있으실 것 같고
뭐를 더 하고 싶으신가요?
이제 많은 걸 정말 해본 것 같고요.
정말 다양한 걸 하셨죠.
저도 이제 나이가 있고
이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인생에 산막쯤 들어온 것 같은데
인생 산막은 배우로 마무리하고 싶다.
배우가 좋은 점이 뭐냐면
늙으면 또 늙은이 역할이 있잖아요.
또 새로운 역할을 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이제 인생 산막은
좋은 노역이 나오는 연극이나 드라마, 영화
이런 곳에 출연하면서
연기자로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글쎄요, 나한테는 뭐
그래도 꽤 열심히 산 것 같으니까
수고했다라고 한 마디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리고 사실 저는 나 자신보다는
제가 그동안 해온 일들이
결코 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거든요.
연극을 하는 것도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거고
평창올림픽도 제가 칭찬 들을 때마다
조금 쑥스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게
평창올림픽 저 혼자 한 거 아니거든요.
정말 수백 명의 많은 스태프들이 함께 이룬 성과인데
제가 총감독이라는 이유로
저 혼자 칭찬을 듣는 것 같아서
굉장히 좀 불편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그런 의미로
정말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온 거는
저 혼자의 힘이 아니라 주변의 많은 분들의 도움 덕택이죠.
그래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얘기를 꼭 하고 싶어요.
정말 다양하게 많이 하셨는데
진짜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 대한민국 문화계를 난타를 하고 계신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난타해 주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한국 최고의 공연 기획자이자 제작자이자 배우인
송승환 감독님의 이야기를 담아봤습니다.
앞으로의 송 감독님의 원더풀 라이프도 계속해서 기대가 됩니다.
저희는 그럼 이단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