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까지 무너지고 있어요" 김정은 충성파 싹 다 사라졌다. 북한 붕괴 이제 돌이킬 수 없다 (강은정 / 풀버전)

웅달 책방
185 팔로워
🌕 "평양까지 무너지고 있어요" 김정은 충성파 싹 다 사라졌다. 북한 붕괴 이제 돌이킬 수 없다 (강은정 / 풀버전)
✔ 본 영상은 10월 25일에 촬영되었습니다 (시청에 참고해 주세요)
🌕 강은정 님의 채널을 소개 합니다 :)
📌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TV-kl6yv
🌕 오태민 교수님의 책을 소개합니다 :)
📌 더 그레이트 비트코인(책) - https://bit.ly/4fdXl0e
📌 비트코인, 달러의 지정학(책) - https://bit.ly/4f9a58l
00:00 인트로
00:14 탈북 후 중국에서 겪었던 끔찍한 사건
07:48 중국에서 강제로 인신매매 당하며 팔려나가는 북한 여성과 노예처럼 일하는 북한 남성
16:50 중국에서 탈북민이 겪게되는 처참한 현실
19:14 탈북 후 부모님과 눈물의 재회
37:36 부모님이 탈북한 후 있었던 에피소드
41:02 시청자분들께 마지막 한 말씀
🌕 함께 보면 도움 되는 영상들
📌 https://youtu.be/6gbUp-Zq45s
📌 https://youtu.be/Sd-vQBTwh_8
#강은정 #북한붕괴 #김정은 #북한중국 #북한도발 #북한미사일 #북한군사망 #탄도미사일 #웅달
※ 출연자에 대한 비난, 욕설, 비속어 등을 포함한 댓글은 무통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성숙한 소통 문화 형성에 동참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출연 신청 / 제휴 문의
✔ [email protected]
너네 니네 마음대로 못한다 여기서.
왜요?
그러니까 니네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이유가 일단은 나가서 까딱 잘못하다가는
북한 사람인 게 들키면 강제 복성돼요.
그리고 두 번째는 뭐냐면 돈 주고 우리를 사왔다는 거예요.
어? 돈을 주고 사왔다고요?
네. 동네 언니가 팔아먹은 거였어요.
진짜요?
일을 알선해 주겠다는 게 아니고 꼬셔서 그냥 돈을 꼬셔요?
21살이면 얼마나 이쁩니까?
못생겼어도 그땐 젊은만으로도 이쁜 아이였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한 사람당 3천 위안씩 받고 우리를 팔아먹었더라고요.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고마워요.
나 안 그러면 어떻게 내가 북한을 나왔겠어요.
나 지금 쭉쭉 걸으면서 아마 언제 죽었을지 모를 거예요.
이제는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미음이 없어졌어요. 오히려.
근데 와가지고 뭐 그렇게 팔레혼 신세요.
일도 할 수 없다니까.
진짜 웅웅 울면서 문 박차고 나왔어요. 북한 간다고.
근데 내가 뭐 길을 알아요.
돈이 있어요. 아니면 뭐 말을 합니까.
완전 그 생소한 땅에 까뚝 잘못하면 강제 복성 당한다니까.
너무 무서운 거예요.
근데 가만히 이제.
근데 제 친구는 안 따라 나오더라고요.
이미 상황 파악을 했어요. 얘는.
이 친구는 아버지가 간복수가 왔어요.
간복수.
배에 물 차는 거.
그런 병이 대한민국에서 같은 경우는 의료가 잘 돼 있으니까
열 번도 거쳤을지 모르겠어요.
근데 북한은 의료도 개판인데다 돈도 없고 약도 쓸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얘는 뭐예요.
둘 다 심청이에요. 우리 다 그냥.
얘는 아버지 살리려고 탈북했는데 팔려왔고요.
저는 진짜 너무 먹을 게 없고 맨날 가족이 사는 게
난 우리 엄마가 더 불쌍해서 제가 탈북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희 엄마가요.
제가 출근할 때 보게 되면은 항상 있잖아요.
그 부투막에 앉아가지고 텅 빈 가마 앞에서
은정아 점심은 또 뭐 해 먹니.
끼꼬리가 없으니까.
너무 난 그거 볼 때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우리 엄마를
도와줄 수 있을까 해가지고요.
제가 진짜 그 합숙 생활할 때도
그 유곡이라는 산 속에서 나무까지 해서
제가 집에다 내려보냈어요.
엄마가 너무 불쌍해서.
남들이 다 쉴 때 제재하고 남은 나무 찌꺼기 있어요.
그거를 토막토막 내서 말려가지고
불소식에 본나무 껍질이라고 있어요.
그것까지 해서 몰래 돈 모았다가
담배 한갑 준비해서
이제 산장으로 내려가는 운전기사한테 부탁해서
아저씨 담배 한갑 드릴 테니까
이거 우리 집에 그 길 옆에 떨고만 주면 돼요.
엄마가 너무 불쌍해가지고 아버지도 너무 불쌍하고
저는요.
아니 저는 그러다 보니까 그 환경을 보고
가족을 살리려고 돈을 벌려고 탈북을 했고
둘 다 지금 완전
야 근데 왔는데 어떡해요.
맞아요.
뭐 일도 못하고 팔려왔으니까
그렇죠.
그래가지고 이제 어떻게 해야 돼요.
그러니까 시집가래요.
강제로 시집을 보내는 거예요?
네 강제로.
그러니까 나는 선택권이 없어요.
남자 열이면 열 있다 칩시다.
나는 저 남자가 좋아요 이게 아니라
그 수많은 남자들 중에
나를 선택하는 남자가 나를 데려가는데
그 나를 선택하는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거예요.
나 싫어요 좋아요 권리가 없는 거예요.
그렇죠.
근데 이렇게 비참한 일을
오늘날까지 진행이 되고 있어요.
지금도 그게 아직도 있나요?
아니 그럼요.
인신매매가?
네.
안 그러면 북한 여성들이 생존할 방법이 없어요.
지금 중국의 탈북민 여성들이
30만에서 20만이 존재해요.
그렇게 많이?
저기 산덩이나 흥용성 그 산골에 가면
북한 여자들이 바글바글해요.
진짜요?
그래가지고요.
이제는요.
그 경찰들도 뭐라는 줄 아세요?
처음에는 잡아서 내가 써요.
근데 또 탈북한단 말이에요.
왜?
오늘도 살다 보니까 애가 있잖아요.
세상에 자식 안 보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어요?
중국 남성이라는 경우는 아이가 생겼구나.
아기가 그 접목이 된 애를 넣고 탈북되는 경우도 있고
또 재탈북을 하는 거예요.
근데 재탈북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북한 감염.
북한 딱 나가서 발 디디는 순간
나 이거 어떻게 살지?
아무리 중국에서 팔려가서 그 시골에서
정말 이런 표현은 그렇지만
거지같이 살아도 북한 보단 나은 거예요.
아 중국에 정말 그 거지같이 살아도
낙후된 데까지
배는 안 걸거든요.
기름도 국자로 먹거든요.
배고픈 소름이 얼마나 비참한 줄 알아요.
엄마 죽은 소름보다 배고픈 소름이 더 크다고 그랬어요.
밥은 안 굶는다.
완전 바글바글해요.
근데 저도 그 중에 한 사람이 된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이 일을 알 필요가 있어요.
이거 알아야 될 것 같아요.
이거 알고요.
왜 통일을 해야 되는지
이 비극이 통일이 안 되면 안 끝나요.
그래서 이제 북한 주민들이 무슨 얘기하는 줄 알아요?
전쟁이나 칵 일어나라.
이래도 저래도 망할 거.
전쟁이라도 빨리 나가서 어떻게든 결론을 낳아라.
지금 북한에서는요.
항상 이렇게 배웠어요.
한국이 식민지다.
어느 나라의 식민지냐.
미제의 식민지다.
근데 한류를 보면 너무 잘 살잖아요.
그리고 탈북민들이 가서 살면서 가족 돈 보내잖아요.
이걸 보면서 북한 주민들이 식민지도 저렇게 잘 사는데
우리도 미국이 우리를 식민지를 하든
중국이 하든 러시아가 하든
어느 나라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이건 가장 최근에 들은 얘기예요.
그 정도로 그렇군요.
이제 북한 주민들 70년 넘게 당과 수령을 위해서
우리 민족의 태양이고
우리를 일제로부터 구원해준 김일성 수령
이딴 게 다 개설이 이루어져 있는 거예요.
필요 없는 거예요.
왜?
내 삶에 독이 됐어야죠.
내 새끼는 굶어 죽었어요.
내 새끼는 강제로 군대 나갔어요.
나는 지금 골쿠 있어요.
나는 뭘 위해 사는지도 몰라요, 이 사람들이.
그러니까 이제는 식민지라도 되라 이거지.
지금보단 낫지 않겠냐.
근데 예전에 어르신들이 하는 말씀 있어요.
일제 시대를 겪은 어르신들이
일제 때도 이렇게는 안 살았다.
그때도 식민지예요.
와, 북한은 진짜 식민지 시대가 더 잘 살았군요.
정말 우리 진행자님은 축복받은 인생 중에
인생이 이거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뭔지 아세요?
북한에 안 태어난 거예요.
그렇죠, 학교 조금만 잘못 갔어요.
그래가지고 진짜 힘들어도 힘을 내세요.
지금 얘기가 제가 딴 쪽으로 샜는데
이거는 알아야 돼요.
얼마나, 근데 얼마나 잔인하냐면
또 그걸 또 강제 북송해서 내간단 말이에요.
그래서 북한이 노예 사회인 거예요.
누구의 소유권입니까, 도대체.
김정은의 소유가 돼가지고
도망쳤다는 이유로
또 잡아다가 감옥 넣고 두들겨 패고
아우, 정말 나쁜 새끼예요.
그중에 제가 한 사람이 돼서 저도 세 번 팔려갔어요.
아니, 근데 아까 한 번 팔려가서
이제 결혼을 앞둔데 어떻게 세 번이나 팔려갔어요?
아니죠, 북한에서 팔려갔잖아요.
이미 한 번
그렇죠, 그렇죠, 한 번 팔려갔죠.
팔려오다 보니까 인신매매꾼은
우리를 이윤을 붙여가지고
또 다른 인신매매꾼한테 파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신매매꾼들도 이게 있어요.
북한과 직접 거래하는 인신매매꾼이 있고
중국 내에서 중국사람끼리 거래하는 인신매매꾼이 있고
이게 2단계고
거기서 이제 직접 또 살 사람들
그러니까 한족들
북한 여자를 살만한 사람들에게
직접 파는 인신매매꾼이 있어요.
이게 막 단계별이 있어요.
우리 여기 도매, 소매하는 것처럼
야, 그럼 북한 여성이 그냥 무슨 상품 같은 거네요.
똑같은, 말 잘하셨어요.
물건이에요.
이윤 붙여서 팔고
네, 그래서 제가 북한에서 3천 위안에 오고
이윤 6천 위안 붙여서 9천 위안에 두 번째 가고
마지막에 만팔천 위안에 간 거예요.
근데 저는 다행히 심량으로 갔어요.
시내로, 조선적 집에.
근데 제 친구는 천장 아들한테 갔어요.
시골로?
네, 시골인데 그래도 간부니까
그나마 얘는 보호가 돼서 강제북송은 아직까지는 안 됐어요.
내가 아는 결과, 조사해본 결과
근데 한국도 아직 안 왔어요.
근데 왔으면 제가 꼭 만나고 싶은데
제가 그 넓은 땅에서 얘를 찾고 싶어도 찾을 수가 없어요.
근데 보세요.
저는 만팔천 위안에 마지막에 팔려 갔는데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면 조선적인데요.
한국에 돈 벌러 간 거예요.
한 달 된 사람.
남편?
네, 남편될 사람이.
그 누나될 사람이 자기 동생을 소개해줘서
제가 만났는데
컴퓨터로 손을 보세요.
한국에 돈 벌러 갔대요.
그래서 보니까 저는 썩 마음에 들었던 거 같지도 않고
그냥 마지막에 가는 거죠.
그렇죠. 팔려갔는데 뭐 보여줘봐.
근데 그 사람이 제가 마음에 든대요.
그래서 그 집에 남기로 했는데
정말 자유가 없다는 거를
북한에서는 솔직히 자유를 모르고 살았잖아요.
근데 그래도 내 지역 안에서
내가 사는 경기도 안산에 내가 예를 들어 산다.
그러면 그 마을은 왔다 갔다 했단 말이에요.
다만 그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넘어갈 때는
통행증이 필요하고
또 검문이 엄청나요.
근데 저는요. 문 밖에도 함부로 못 나가는 거예요.
누가 신고할지 모르니까.
그럼 이 사람들이 직접 감시도 있지만
누군가가 나를 신고해서 북한 끌려가면
이제 정말 막 강력한 처벌받으니까.
근데 또 제가 팔려간 집 앞이 다 대사관들이었어요.
한국 대사관, 북한 대사관이었어요.
하루는 걸어가다가
여기 뱃지단 북한 대사관 사람들이 걸어오는데
저도 모르게 확 놀래서
갑자기 돌아서 오니까
이 사람들이 눈치채고 따라오더라고요.
근데 제가 팔려가서 만난 남자가 돌싱이어서
딸이 9살짜리가 있었어요.
그 아기가 똑똑해서 처신을 하더라고요.
마마! 마마! 하면서
걔 정말 똑똑했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오다가
중국 한족말을 하는 애가
엄마 어쩌고 하면서 어디 아프냐 이러니까
저는 너무 놀래서
그러니까 그냥 일반 중국 사람인가 보다 돌아간 거예요.
안 그러면 저 잡힐 뻔했어요.
근데 보세요. 그렇게 자유도 없어요.
먹고 사는 거는 걱정이 없어요.
근데 제가 그 안에서 나도 사람이라는 걸 느낀 거예요.
꿈에 맨날 우리 엄마가
은정아 너 어디 있니? 나 배고파 하고 나오는데
정말 미치겠는 거예요.
빽빽 야인 모습으로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리고 한쪽으로는 제가 한류를 보는데
북한에서는 많이 못 봤어요.
먹고 사는 게 힘들어서
한국 드라마 이런 것들도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봐요.
비싸가지고
근데 중국에 오니까 조선적 집이니까 한국 집이 보잖아요.
드라마 봐.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아연동 많이 이런 것도 보고
별은 내 가슴에
그다음에 아름다운 날들
진짜 장밋빛 인생
그거는 왜 한국에 와서 본 것 같고
장윤정 씨 콘서트 듣고
이러니까 제가 꿈이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탈북민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북한에서는 탈북민들을 한국 가면 죽인다고 그랬는데
그래서 절대 가면 안 된다고
괴담을 퍼뜨렸어요.
근데 탈북자들이 한국 가 너무 열심히 잘 사는 거야.
저랑 똑같이 가수 출신들이
MBC인가 무슨 그 방송에 나와서
스포트라이트를 딱 받으면서 노래를 안 하는데
이야 박수도 엄청 받고
와 나 한국 가고 싶다.
근데 저는 그 남편들 분 얼굴을 못 보고 만났잖아요.
한국에 간 상태에서 채팅으로 봤잖아요.
근데 그때 그 사람이 말했던 게 너무 신기한 게
중국에 10억 인구였어요 그때는.
11억인가 그랬는데
그 수많은 땅덩어리의 사람들이
큰 나라 땅덩어리 사람들이
이 작은 5천만 인구밖에 안 되는 한국으로 돈을 벌러 간다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가 3년인가 4년인가 벌어오면
집 한 채를 산대요.
그러니까 제가 한국에 대해서
썩고 병들고 미제 식민지 밑에서
신음하고 있는 저 땅을 해방해야 되고
거지들이 득실거리고 이렇게 배웠는데
내가 보니까 전 세계 경제가 10위래요.
그리고 중국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서 얼마나 환상이 많은지요.
그냥 막 한국 한국 해요.
노래도 한국 좋아하고 드라마도 한국 한국.
이게 뭐야.
근데 그런 나라에서 같은 민족이라고 헌법에 있다고
우리를 받아준다는 거예요.
너무 가고 싶은데
이 남편들 분을 그때 당시 제가
채팅으로 이렇게 만났지만
저를 보겠다고 들어오면 일자리 뺏긴다고
제 생일이 6월이어서 어차피 6월에 우리 만납시다.
이렇게 돼서 공백 기간이 있었어요.
그 사이에 제가 도망을 친 거죠.
도망갈 때 그 집에서 막 감시할 거 아니에요?
감시하는데 몰래 몰래 했어요.
그래서 중국에서 같은 탈북자 언니의 도움을 받아서
그 남편들 분을 만나기 이틀 전에
그 집에서 도망을 쳐서
탈북한 지 같은 해 12월
그러니까 2008년 1월 24일 날 탈북을 했고
2008년 12월 18일 날 대한민국에 입국했어요.
그럼 그 집을 나와서 대사관으로 가신 거예요?
아니면 뭐..
그때 2008년이다 보니까
베이징 올림픽이 있었어요.
아 맞아요.
그래서 야 이거 언제 끝나나 빨리 갔으면 좋겠는데
검문이 너무 심해서 출발 못하다가
청도로 내려와서 아이들을 봐줬어요.
아이들을 봐주니까
제가 출발할 때 2000위안이란 돈을 주더라고요.
부모들이
그래서 그거를 제일 부피가 작은 달러로 바꿔서
국경을 이제 넘어야 되는데
중국 국경 넘고 저는 베트남 넘었어요.
그리고 라오스 들어오고
그리고 한국으로 온 거예요.
근데 이게 이 과정이 정말 보통 힘든 게 아니에요.
이게 중국에서 이렇게 베트남까지 가서
어떻게 합니까 그거를?
진짜 오는 과정에 또
브로커가 돈을 제대로 지불을 안 했대나
이래갖고 또 우리 팀만 또 안 보내는 거예요.
아우 도마뱀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거보다 깜짝깜짝 놀리고
입맛이 안 맞아서 죽을 것 같고
덥기에는 또 왜 그렇게 더운지
잡힐까 전정궁궁
낮에는 자고 밤에는 걷고
와 그러면서 왔어요.
까딱 잘못했으면
제가 그 이틀만 늦었어도
그 남편분한테 붙들려서
그 당시
다행히 저는 실제로 한 번도 못 보고
도망쳐서 한국으로 오게 됐어요.
그러면 이렇게 강제로 인심배매 당해서
그냥 애기 낳고 사는
20-30만 명이 된 거예요?
저는 사실 지금 크리스찬이다 보니까
성교단체에서 저희가 그런 사람들을 돕고
또 구출도 하고
그렇게 또 북성대에서
버려지면 아이들이 고아가 돼요.
그러니까 북한 여성들이
그 제대로 된 남편을 못 만나요.
정말 시골에 가난한 집이라든가
술주종병이라든가
장애를 가진 남자들이라든가
이런 사람들한테 쌍값에 팔려가는 거예요.
결혼 중국여성하고 결혼 못하는 사람들
그렇죠.
그러다 보니까
그렇게 해서 그
아버지가 운전지 못하면
아이들이 버려져요.
그래서 저희가 또 그런 고아원도
예전에는 운영도 했었고
그러다 보니까
제가 누구보다 그런 상황을 잘 알아요.
그러면 북한 남성들도 탈북을 하지 않습니까?
남자들의 인권은 더 처참해요.
이거보다 처참하죠.
그러니까 여성들은 그래도
이게 구조적으로
팔려가면 가정이 생기는 거예요.
그렇죠. 팔려갔지만 남편하고 와이프가 되는 거예요.
그렇죠.
가정이 생기고 집이 있으니까 살게 돼요.
근데 북한 남자들은
넘어오게 되면
중국여자랑 살아요? 아니에요.
은신처가 일단 없어요.
그러다 보니까
합숙 생활, 기숙사 생활하면서
돈 벌 수 있는 곳을 가요.
가면 어떤 데서 참 비참함을 느끼냐면
북한 사람이니까
똑같이 일을 하고도
월급을 50%도 못 받는 거예요.
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안 주는 게 태반이고요.
그 50% 중에도
너 해 해
계속 해. 몇 개월 모아서 줄게.
너 어차피 돈 살 데 없잖아.
이랬다가 돈 달라고 하면
그래서 강제 북성돼요.
중국 사장들이?
나쁜 놈들 너무 많아요.
저는요.
그래서 예전에
그렇게 북성됐던 남자가
복수하려고 다시 탈북해가지고
그 악덕 고영주라고 말해야 되죠.
칼부림으로 칼로 찔러 죽이고
그 집 다 불태우고
이 사람 또 북성돼서 나가고
진짜요?
정말
잘해주는 사람도 있는가
반면에 정말 악한 사람
악한 고영주들이 있었더라고요.
그러니까 어떤 현상이 일어나냐면
내가 이제 북한 사람이라는 게 들켰어요.
그러면은
빨리 이 지역을 떠야 돼.
그래서 돈 달라는 말도 못하고
또 떠버리고
도망가고 빨리
잘 데가 없으니까
생질방 같은 데서
몰래 돈 얼마 내고 자고
또 나오고
근데 중국말도 잘 못하잖아요.
못하니까요.
근데 중국 사람들이
북한 사람을 딱 알아봐요.
보면 알겠죠.
알리죠.
키 작지, 새까맣지, 말 안 통하지
알려요 일단은
우리가 외국인 오면 알아보는 것처럼
아 진짜 참 너무 마음이 아파요.
북한 남자들한테 더 처참하다.
그래서 저는 북한 인권에 대한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을 해요.
우리 대한민국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일으카고
어느 누구보다도
인권에 대해 민감한 나라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이제 정말 꿈에 그리던
한국에 탈북을 하셨는데요.
북한의 부모님이
정말 마음에 걸리셨을 것 같아요.
하루도 잊은 적이 없죠.
탈북할 때부터
우리 엄마 정말 너무 군주린 것 때문에
사실 돈 벌어오겠다고 탈북한 거잖아요.
쌀밥만 봐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상하게
우리는 쌀밥에 한이 맺혔어요.
왠지 아세요?
저 북한 놈들이
저 얼마나 악질이냐면
쌀밥에 고깃국으로 올고매고
70년 동안 세뇌를 시켰거든요.
지금도 쌀밥에 고깃국
통일되면 먹여준다는 거예요.
근데 한국에 오니까
야 세상에
집을 배정받고 나왔는데
국정원을 거치고
하나온 조사를 받고
집 배정받고 딱 나왔는데
브로커가 앞에서 기다리는 거예요.
돈 내놓으라고
우리가 한국으로 올 때는
오는 경비를 지불해요.
그래서 직행
저같이 직행인 사람들은
돈이 없잖아요.
정착금이 나와요.
기초자산이 없잖아요.
이 땅에 왔으면
정착을 하려면
뭔가 있어야 되잖아요.
임대 아파트가 제공이 되고
정착금도 얼마가 나와요.
그래서 처음에 나올 때
300만 원을 주세요.
그리고 갖고 나왔는데
브로커가 앞에서 기다리는 거예요.
빨리 내놓으라고
그래서 다 주고 나니까
5만 원 남은 거예요.
아 후불제로
딱 그만큼 훑어가는 거구나.
근데 제가 한국에 와가지고
나는 진짜 정말 미안한 얘기인데
한국 가면 제가
장윤정 씨보다 노래 더 잘할 줄 알았거든요.
나 배우면 진짜 잘할 줄 알았어요.
그만큼 꿈이 생겼다는 거예요.
꿈이 생겼다는 거.
근데 아이고
그 꿈이 하루아침에
지하 7층까지 떨어진 거예요.
돈도 없어.
거기다 식당에 알바를 나갔는데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도 못 듣는 거예요.
한민족인데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그래도 일단 열심히 하려고 했어요.
근데 오면서 너무 스트레스와
정신적 소모가 많다 보니까
이제 한국에 와서
긴장이 딱 풀리니까
나 몸이 아파 좀 쉬어줘
이러는 거예요.
힘이 없어.
북한에서 통나무 메고도
날아다니고 했는데
너무 힘든 거예요.
근데 그래도 일했죠.
버틸 수 있는 힘이
정말
하루 일했는데
38,000원
따박따박 주는 거예요.
그때 알바가
일당이 38,000원이었어요.
무슨 알바했다니
고깃집 알바했죠.
고깃집 좀 셉니다.
힘들어요 일이.
그때 16년 전인데
맞아요.
단체 손님 어머머
굉장해요.
몸도 빨리빨리 움직여야 되고
불판 넣고 닦고
아
그래도 그 돈 받는 재미에
또 얼마나 잘 먹여요.
쌀밥에다가
또 북한에서 왔다고
고기 그 귀한 불고기를요
사장님 나 너무 감사해요.
근데 그 사장님
제가 지금 유튜브를 하니까
홍보해드리려고 찾았는데
그 가게 없어졌어요.
아이고 어떡해.
네 그래서
못 찾았어요.
너무 안타까운데
사장님이 그 고기까지 또
이렇게 볶아서 먹이는데
너무너무 진짜 감사한 거예요.
공이 있었구나.
구석에서 제가
돈을
이제 빨리 모아가지고
얼마라도 일단 모아서
북한 1차로 보내는 게 목표였어요.
아 우리집
우리집에 엄마 아빠
그래야 엄마가 쌀밥을 먹을 거 아니에요.
그렇죠.
돈 줄이고 계시니까
그렇죠.
근데 400만 원이 모여졌어요.
딱 10개월 일하니까
그래서 북한으로 연락을 했죠.
그래서 아버지 엄마 만났어요.
아버지 엄마 만나가지고
눈물의 상봉을 했죠.
운명님이 북한으로 가서 만났어요?
아니요.
제가 간 게 아니라
연락 체계가 있어요.
왜냐면
제가 살다 온 데가
양강도 대흉단 국경이다 보니까
중국의 통신사가
국경 지역에서는 터져요.
아 전화가 되는구나.
그렇죠.
그러니까
중국과 밀수 거래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브로커들이
그래서 이거 연결시켜주고
거액의 수수료를 받아먹는 거예요.
전화통화 한 번 해주세요.
그렇죠.
그때 전화 통화만 한 번 시켜주는 게
30만 원이었어요.
진짜 비싸네.
그렇죠.
제일 가까운 나라인데
그래서 제가 그렇게 해서
부모님 통화를 했고
엄마는 그때 당시
제가 평성에 장사 가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어디가 있냐 해서
한국에 왔다고 솔직히 말을 했고
근데 아버지는 막 댕댕 나는 거예요.
역적의 나라에 갔다고
아버님 충성을 해야
썩어넘어야 되니까
완전 새빨같다.
생이 당하니까
아 그래서 눈물의 상봉을 하고
다음날에 돈 받았다는 게
성불제였어요.
그때
내가 우리 아버지 엄마랑
통화가 확인이 됐잖아요.
그러면
그 북한 브로커한테 말하는 거예요.
우리 엄마한테 5천 원을 주세요.
중국 돈으로
그리고 전화해서 아버지가 받았다.
나 배에 돈을 찼다.
지갑이 없으니까
카드도 안 되니까
북한이란 당국은 이상하니까
그래서 배에 찼다.
딱 우리 아버지 엄마 손에
돈 들어갔던 게 확인이 되면
5천 위안을 내가 그때 보내는 거예요.
수수료까지 얹어서
근데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다음날 연락이 안 된 거예요.
아버지 엄마가 콜라랑 잡혀서
도청에 걸려가지고
또 북한도 그걸 막으려고 하는구나.
그래가지고
그때 이제 부모님 돌아가셨다는 얘기 듣고
잡혀서 고문 받다가
저는 한국에서는
자살을 하려고 또
한쪽으로 시도를 했었죠.
보세요.
나 아니면 우리 아버지 엄마가
그렇게 될 일도 없는데
아 정말
쌀밥만 봐도 눈물이 나고
내 꿈은
아버지 엄마가 이 돈을 받아서
좀 잘 먹고 잘 사는 것뿐이었는데
한국 모셔오는 건 차차 문제였어요.
일단은 먹어야
영양이 있어야
기운이 있어야
4개의 국을 건너야
한국을 도착하는데
옳고 아니에요.
그것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싹 뺏어가 버리니까
제가 너무 원망스럽더라고요.
그래서 자살하려고 했다가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고
한국 언니의 한 도움으로
제가 수면제를 딱 먹으려고 하는 순간에
고기 먹으러 오라는 거예요.
자기 집에
저 고기 좋아하거든요.
웃으면 안 되는데 죄송합니다.
이왕 죽는 거
고기 한 끼 더 먹고 죽자
이런 심정으로 갔어요.
야 이게 또 이렇게
좋은 연락이 왔구나.
가는데 언니가 좋은 말 많이 해줘서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고
그때부터 취업 장여금 받고
돈 벌어서 따박따박 모으고
그러니까 원래도
워낙 찌질하게 가난한 북한에서 오다 보니까
뭐라고 해야 될까
그 삶의 기준치가 낮았어요.
한국에 와서도
밥만 먹으면 되지 뭐
제가 아메리카노의 맛을
몇 년 만에 알았는지 아세요?
6년 만에 먹어봤어요.
그 정도로
한국 사회에 왔지만
새까맸어요.
정말
뭘 벌어도 누릴 줄도 몰랐고요.
투자가 요즘에
제가 우리 어태민 작가님한테 빠졌어요.
웅다리 책방에도 빠졌어요.
비트코인 좋아하신다고
초리 형님한테도 빠졌어요.
그때는 투자가 뭔지도 모르고요.
로또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오로지 벌어서
여기 놓는 게 최고의 행복인 거예요.
그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다는 얘기죠.
그러다 보니까
기준치도 너무 낮아.
여기서는 쌀밥에 고깃국만 먹으면
나는 완전 최고의 행복한 사람인 거예요.
그러다 보니
돈도 못 쓰고
안 쓰고
돈 하나는 잘 모았겠네.
그러니까 4천만 원을 모았다니까요.
제가 한국에 와서
딱 3년 만에
3년 만에 대단하십니다.
알바 있는 대로 해재고
알바하면 그치.
어떤 우리 한국인처럼
정규 직업 들어가면
이게 아니잖아요.
이게 돈 모으는 재미가
얼마나 행복하냐면요.
제가 돈의 힘을 그때 느꼈어요.
100만 원 모으니까
어머
한 번 더 하면 200만 원 되겠네?
그다음에 또 밤에 생각해요.
와 이렇게 해서
한 몇 개월 하게 되면
어머 1년이면
1천만 원이네?
그렇게 그렇게 생각해서
한 게 진짜 4천만 원 됐어요.
근데 1천만 원이 모이니까
신기한 게 희한하대요.
2천만 원 금방 돼요.
어떻게 그렇게 되지?
나는
돈의 힘이 그렇더라고요.
이자가 붙어서
네 제가
우리 김승호 회장님의
돈의 속성을 읽었는데
공부 열심히 하시는 분이에요.
그 공감이 됐어요.
돈의 힘이 있더라고요.
그래갖고
우리 언니하고
오빠는 살아있는데
이제 그
행방불명됐다고 들었어요.
엄마하고 아버지는
보이비에 끌려가서
저랑 찾다가
통화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서
고문받다 돌아가셨다고
제가 들었거든요.
그래서
언니하고 오빠를 찾으려고
저희 집을 가장 잘 아는
저를 팔아먹은 언니
그 인간을 찾았어요.
이게 참
네
그래가지고
얘기는 안 했어요.
또 이해돼요.
그 사람들도 살려고 그랬고
어찌 보면 이게
역지사지라는 말도 있고요.
화가 보기 된다는 말이
그 말이더라고요.
저 그 언니가 안 팔아먹었으면
난 지금
북한에서
죽었다 깨어나도
내 인생에 이런 날은 없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찾아가지고
우리 언니하고 오빠 좀 데려와라.
내가 심부름 값을
두 배를 주겠다 하니까
다음날 데려왔대요.
아무튼 그 계집애는
돈이라면
근데
우리의 엄마를 데려온 거예요.
정말요?
돌아가시는 거 아니었어요?
죽은 줄 알았는데
제가 그 편지 써놓고 나왔단 말이에요.
수령님과 장군님이 싫어서 가려고
아 맞아 우리 아까
처음에 시작할 때
세뇌를 잔뜩 당해서
그래서
그 편지 덕분에
살아나와서
살아계셨던 건데
이제 브로크들이
가운데서 장난을 또 친 거예요 저한테.
그러니까 한 번 꼬리가 잡히면
그 집은 위험해서 안 가요.
어느 정도 시야가 벗어날 때까지.
근데 이제 돈만 받아먹었던 거죠.
그리고 돌아가셨다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이 사람들 이제
뜬 소문으로 듣고
저한테 전해줬던 거죠.
그래서 그때 이제
엄마 한국으로 오세요.
아 진짜
그때 그
아우
차라리 제가 탈북하는 게 낫지.
걱정이 또 엄청났어요.
오다가 잡히면 어떡하나.
그래서 저는요
진짜
부모님 탈북할 때
기도로 같이 탈북했고요.
부모님이
진짜 중국에 들어와서
우리 이제 잘게 하면
그때 잤어요.
너무너무
무섭고
막 점하점하하고
막 이래가지고
근데 그중에 우리 아버지가
어후
죽어도 한국을 못 가겠다고
또 뽀다귀를 쓰는 거예요.
아버지도 충성심이 대단하니까
그렇죠.
그리고 어린애를 하고
이거 무슨 뭐
또 달래서
속여서 데려올 수도 없고
그래서 우리 오빠가
아버지를 수면제에다
술을 타서 먹였어요.
근데 잠든 다음에
마대석에 뒤집어 놓고
이제 두만강 건너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깨버린 거예요.
그래서 실패하고
결국에는 뭐냐
속였어요.
엄마가 그러더라고요.
중국까지 온다면은
뭐 방법이 없으니까
중국에서 만나자고 하래요.
돈을 주겠다고 얘기하고
그래서 알았어요.
하고 아버지한테 그랬죠.
아버지 알았어요.
한국에 그렇게 안 오기 싫으면
오지 마세요.
내가 오란 말 안 할 텐데
중국에서 그럼 만나자.
내가 돈 한 배낭 줄 테니까
그 돈 갖고 북한 가세요.
그러니까 탈북했어요.
그리고 제가 부모님
딱 중국에 들어오셨을 때
심리전을 폈죠.
아버지
제가 이제 한국 드라마
뉴스
노래
들으면서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았고
나는 자유도 몰랐고
인권이 뭔지도 모르고 살아왔고
김부자들에 대한 분노가
엄청났어요. 제가
내 아버지 엄마가
아직도 저렇게 속아 산다는
자체도 화가 나는데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 아버지를 보는데
막 치가 떨리더라고요.
너무 불쌍하고 아버지가
그러면 뭐예요
제가 뭘 보고 세뇌가 깼어요.
드라마
뉴스
노래
인터넷이었잖아요.
우리 아버지한테도 똑같이 했어요.
매일과 같이 북한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고기 반찬에
쌀밥에
소주를 대접해 드리면
밥 먹고 뭐해요
커피 한 잔 다 마시고
한국 TV 보는 거예요.
계속 틀어준 거죠.
브로커랑 다 짰단 말이에요.
아버지가 처음에 무슨
진짜야 이렇게 봤대요.
그러다가 일주일 나니
바뀌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북한에
대한민국의 드라마와
노래를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술을 보내요.
뉴스가 더 중요하다.
왜
사실 있는 대로 보여주니까
그쵸 실질적으로
북한에서는
제가 1994년에
김일성이 죽었을 때
9살이었어요.
그때부터 저는
배고픔이라는 걸
달고 살았어요.
탈북하기 전까지
그때 권한의 행군 시기에
300에서 350만 명이
굶어 죽었어요.
근데 뉴스에 한 장 안 나왔어요.
오로지 김부자들의 선전선동만
우리가 못 먹고 못 사는 건
이런 개소리나 제쳐댔지
그 불쌍한 사람들이
왜 죽어갔는지
지금 어느 더해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하나도 안 알려줬어요.
근데 한국도 뭐예요.
불이 나고
재산이 몇조가 탔고
몇 명이 실종됐고
아니 나조 타고 등산을 했는데
그 사람 구조하겠다고
헬기를 뛰어요?
그게 대단한 충격으로
엄청나죠.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려고 하는구나.
그럼요.
우리 아버지가
똑같이 거기서 깬 거예요.
전철 궐랑 11분인가
늦었다고
철도부 간부가 나와서
90도로 사과하더래요.
우리 아버지 코웃음쳤대요.
처음에
근데 똑같이 북한처럼
대통령에 대해서만 얘기해주고
좋은 것만 나왔으면
우리 아버지 한국 안 믿었을 거래요.
아버지가 일주일 만에
처음엔 너 왜 중국으로 안 오냐고
막 펄펄 뛰시더니
울더라고요.
소가 살아요.
은정아 내가 한국에 갈게.
너 마음고생 시켜 미안하다.
그래서
12월이 항상
저희 집에 축복의 달이에요.
올해도 12월이
제가 경제 뉴스를 보니까
이 웅달을 보니까
좋을 거라는 예상이 있더라고요.
비트코인 불장 올 것 같아요.
12월에 저도 한국에 왔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12월에 다 만났고
그래서 탈북한 지 4년 만에
온 가족이
언니, 오빠, 아버지, 엄마, 저
제가 막내거든요.
그래가지고 또
아버지 엄마 또 한국에 나오는 날
새 차를 태우고 싶어가지고
탈북 다 시키다 보니까
돈이 없어서요.
빚내가지고
할부로 SM3 차를 뽑은 거예요.
그래가지고 이거 완전 드라마예요.
부모님 이제 한국
이제 하나원 딱 저러면서 나온 날
제 차에 다 태우고
운전하면서
오리고기는 먹으러 갔어요.
첫 식사로
근데 우리 오빠는 눈이 이만해가지고
그 북한에서
이런 고급 승용차를
누구나 탄다는 거 상상도 못 하는데
그것도 내 동생이
여자애가 운전을 하고
한 손으로 이러면서
여보세요 하면서
서울말도 너무 잘하면서
전화를 받으니까
우리 가족이구나
야 우리 운전이 대단하구나
이러고 바라보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서
적응이 시작이 됐고
오늘까지 왔는데
전 막내거든요.
근데 저는 일을 좀 치는 스타일
제가 일을 어떻게 치냐면
이렇게 막 드러나지는 않아요.
제 성격이거나
못된 짓도 안 하고
나쁜 짓도 안 하고
근데 제가 뭔가 딱 결단을 해서
이거 해야 된다고 하면 해요.
우리 북한에서 살 때도
저희 삼형제 중에
그리고 저희 동창들 중에서도
제가 제일 어리버리했어요.
꼬집엇대로 시키는 데만 일을 하고
하라는 대로 하고 살다가
결정적 한 방울 칠 때는
제대로 치는 거 같아요 제가
결심하면 한다
탈북도 너무
근데 뭐 저는
이게 다 내가 잘나서 된 게 아니라
하나님의 궁유람과
도심이 있어서
제가 왔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러다 보니까
오늘날은
내가 잘나서 온 것도 아닌데
저 땅에서 저렇게 죄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기도하는데
막 통고기 나오는 거예요.
너무 가슴이 아프고
나는 이 땅에서 자식도 낳았잖아요.
근데
아 나 우리 딸을
요즘에 너무 속상한 게
얘가 잘 안 먹어요.
예전에 너무 잘 먹어서
아우 넌 나 닮았나 보다
이쁘다 했는데
이제는 생선이랑 같이 주면
생선만 딱 먹고
쌀밥을 안 먹는 거예요.
그냥 너 북한 같으면
말도 못하는 애한테 그러는데
이렇게 풍요로운 사회에서
내 새끼를 낳았다는 게
내가 너무 감사하다 보니까
막 북한의 아이들을 생각하면
운전을 하다가도 눈물이 나는 거예요.
아 그냥
빨리 북한 사람들
정치고 뭐 나발이고
다 떠나서 그냥
저 사람들도 우리랑 똑같은 사람인데
우리랑 좀 똑같이 사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난 다도 안 바래요.
그냥 제발 저 체제가 좀 무너지고
사람들이 벌어먹고 살길만 해줘도
나는 배고픔에서만 해방이 돼도
나는 덜 슬플 것 같아요.
진짜
북한 김부자가 빨리 무너져야 되는데
그 김부자들의 세뇌가
어떻게 보면 반동의 자식이라고
가장 북한에서 하대받고
수십 년 어렵게 사신 게
이제 아버님 부모님이
근데 우리 아버지 이제 완전 반공주의자들
아휴 말도 못해요.
아주 정치의 경제 뉴스 다 보고
저 새끼 졸으면 안 돼 다리야 이러면서
깨졌으니까
완전히 이제 뭐
자유를 수호하는 데 있어서
투사 같아요.
부모님이 한국에 오시고
가장 기뻐하시거나
뭐 좋아하셨던 에피소드
하나만 있으실까요?
배 안 곯는 거
집을 받고 나왔는데
동사무소에서 20kg짜리 쌀을 준 거예요.
그냥 임대주택이 쌀을 보내주는군요.
그리고 저희가 이제 나오자마자
일자리 못 왔잖아요.
그러니까 뭐 나오자마자
일용직 취직할 수도 있고
아니면은 그냥 내가
뭐 조금 자격증을 따서
전문직을 갖겠다면은
그 텀이 있잖아요.
그 오간 생계급여와 함께
쌀이 지급이 돼요.
동사무소에서 쌀을 받아가라니까
너무 좋아가지고
야야야 쌀도 준다.
그리고 사람이 너무 행복해도
밥맛이 없대요.
저희 엄마 6개월을 밥을 못 먹었어요.
왜요?
너무 붕 떠가지고
아 너무 좋아서?
엄마나 이런 나라가 있냐
이러면서
안 먹고 싶더래요.
그게 난 너무 웃겼어요.
입맛이 없어질 수가 있구나.
난 진짜
그러면은 한국 오시면은
정말 뭐 그 아르바이트나
일용직을 하더라도 정말
배는 안 곯으니까
배는 안 곯고
그리고 내 능력만큼
내가 돈을 받아가지고
사실 저는 이게 평등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평등
그렇죠.
북한에서 맨날 똑같이 잘 살자고
똑같이 망하고
계급은 있는 대로 만들어 놓고
있는 대로 차별하잖아요.
그리고 뭐 어느 날 시장 경쟁인
대한민국에서도 평등을 외치는데
저는 평등은 나는 싫어하는 단어입니다.
평등이 있을 수가 없어요.
난 대한민국이라는 시장 경제를
왜 좋아하냐면요.
우리 투자의 세계도 너무 좋아합니다.
벌어도 내 거고
잃어도 내 잘못이잖아요.
근데 보세요.
한국은 개인의 사적 재산을
소유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보세요.
시장 경제니까
저 같은 사람도 와서
이렇게 사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전 너무 좋은 게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존경스러워요.
시장 경제니까
그 사람들이 가능했던 거고
그러니까 잘 사는 사람은 더 잘 살고
못 사는 사람도 잘 살고
정말 못 사는 사람도
열심히 하다 보면
기회가 오는 땅이잖아요.
그럼 그 속에서 기업이 어느 날에
정말 이게 활성화되고
또 요즘은 제품만 갖고 안 되잖아요.
기업의 윤리와 도덕과
또 서민들의 공감대
이런 것들이 다 가치에 부과가 되면서
막 저 기업 너무 좋다.
아니면 우리 불매하자.
이런 것들도 있고
결국에 소비자가 왕인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 사회가 기업이
이익에서 더 나아가
윤리와 도덕과 선행을 베풀려고
기부도 많이 하고
그러면 그런 기부들이 어디가
약자들한테 돌아가잖아요.
저는 이걸 보면서
정말 진짜 평등은
내가 일한 만큼 보는 것이고
진짜 평등은 나누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해요.
오늘날에 와서
우리 집은 정말 팔자를 폈죠.
저는 막 이 땅에서
어떨 때는 나도 성공해서
고향에 멋지게 돌아가고 싶다
이 땅에서 이렇게 살아가는 것만 해도
성공했다 생각을 하고
참 감사하게 살고 있어요.
또 김정림의 아버님께서
굉장히 한국에서 유튜브 세계에서
유명 인기가 많다라고 제가 들었는데
다음번에 같이 모셔보고
인터뷰를 하겠습니다.
우리 아버지 또 여기 나와요?
네. 긴 시간 동안 인터뷰 나누셔서
끝으로 저희 몽달책방 시청자분들에
대한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저는 유튜브를 하다 보니까
우리 몽달책방까지 오게 됐는데요.
항상 잘 봐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몽달책방에 좋은 정보들이 많아서
요즘에 제가 잘 듣고 보고 하거든요.
여러분 우리 다 함께 부자 됩시다.
감사합니다.
강은정님 유튜브도 많이 사랑해 주시고요.
이렇게 해서 강은정님과의
인터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긴 시간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