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어둠에서 찾은 빛으로 세상을 그리다 : 시각장애 화가 박환

NTD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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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비디오 조회수·2024. 11. 22.
1급 전맹(全盲) 시각장애인 화가 박환 씨를 에포크타임스에서 만났습니다.
시력을 잃기 전 삶과, 불의의 사고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사고 후 절망과 고통을 딛고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와 과정을 진솔하게 이야기 나눴습니다.
시력을 잃었지만, 여전히 화폭에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내며 희망을 전하는 삶을 살게 된 박환 작가의 기적 같은 이야기를 에포크타임스를 통해 만나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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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데 뭘 하겠어요. 그림은 포기했었죠. 식물인간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고
제가 삶을 끊으려고도 몇 번 그랬어요. 저는 지금 앞이 캄캄해요.
딱 하마쳐 그냥 11년째 지금 이러고 있어요.
늘 기도를 합니다. 신의 눈으로다가 저는 안 보이니까 이끌어달라고
태양이 뜨기 전에 가장 어둡다고 하잖아요.
버티고 힘을 내서 하시다 보면 태양이 아마 다가올 겁니다. 반드시
희망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저는 앞을 보지 못하는 일곱 시각 장애인
화가 박환입니다. 제가 군대 가기 전에
스케치북에다가 그냥 막 그려보는 거 있잖아요. 열심히 그림을 그렸는데
주위 사람들이 보고 그림을 잘 그렸다 그런 게 아니라 너무 멋있게 어떻게 표현할 수가 있지 하고
그렇게 말씀들을 많이 했었어요. 그게 우연치 않게
미술계도 어떻게 연락이 갔는가 봐요. 그리고 제가 거기 가서 배우고 그래서
아마 하게 시작된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동양화 한국화죠. 그거를 했었어요. 동양화를 한 25년간 했는데
제 나름대로 뭔가 좀 색다른 거 좀 해볼 수 있는 게 없을까 하다가 저도 모르게
서양화 쪽으로 발길을 돌리게 됐어요. 2013년도에
국제아트페어라고 거기에 제가 참여해서
많은 후원을 받았어요. 그래서 해외에 나가서 전시하려고 서울에 갔다가 오다가 그만
고속도로에서 대형 교통사고 나서
그렇게 된 것이죠. 의사 선생님께서 삶을 포기할 수도 있고
다시 산다 하더라도 식물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확률이 매우 높다고 그렇게까지 말씀하셨다고 하니까
엄청난 사고였죠. 사고가 나서 한쪽 눈은 사고 당시 이미 없었고
또 한쪽 눈도 수술을 바로 끝난 게 아니라 수술을 몇 번 하고 그러니까
그래서 가족들은 화가 있는데 시력을 잃으면 어떻게 하냐고
그렇게 말했더니 의사선생님께서는 시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삶이 더 중요한 게 아니냐고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그러더라고요.
머리 한쪽 부분은 긁거나 계속 감각이 별로 없고
귀도 한쪽은 들렸다 안 들렸다 잘 안 들리고
또 코도 한쪽은 감각이 없고 또 입혀도 한쪽은 전혀 감각이 없고
얼굴 이쪽도 감각이 전혀 없고 그런 형태입니다.
사람이 사는데 100가지가 필요하다고 보면
90까지는 적응이 안 된다고 보면 맞을 것 같아요. 우선은
걷는 게 제일 불편하죠. 내가 어디를 가겠다
내 마음대로 갈 수가 없고 움직일 수 있는 게 한계가 있으니까 그게 제일 불편하고
걸어가다 자그마한 돌이라든가 조금 파인다든가 걸리자 그런다든가
또는 그 앞에 무슨 자동차나 오토바이 다른 물건이 나와 있다든가 이런 걸 알 수가 없으니까
그런 것 때문에 불안하고
그런 걷는다는 게 굉장히 불안하다고 보면 되죠.
그림을 그려도 내가 이거 제대로 그렸는지 뭘 어떻게 표현을 했는지
그걸 알 수가 없으니까 그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죠. 보이지 않는데 뭘 하겠어요.
그래서 그림은 포기했었죠. 앉아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죠. 눈물만 흘리고 있고
그러니까 가족들이 한번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그때 당시에
아무 뒤에 들리지도 않았죠.
불가능한 것이니까 그래서 제가 화를 냈어요. 그러면
너희들이 해보라고 막 그럴 정도로 저는 포기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인가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가기 시작하고 그래서 그때부터 조금씩
해보기는 했었어요. 처음에는
방법이 없었죠. 이거 어떻게 표현할까 방법이 없었어요.
우선 스케치부터 해야 되는데 스케치를
할 수도 없는 것이고 어디에 어떤 선을 걷는지 알 수가 없고 또 무엇을 표현했는지도 알 수가 없고
고민하다가 저희 어머니가 뜨개질을 잘하세요. 그 실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실로다 스케치를 하면 되겠구나 해서 실을 이용해서
스케치를 배신했어요. 만져보면 약간씩 입체감이 조금 있으니까 그걸 만져가면서 스케치를 했죠.
표현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으니까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우니까
제가 삶을 끊으려고 몇 번 그랬어요.
이게 운동을 하러 저를 손잡고 이제
밖으로 나가요. 그러면 차들이 막 달리잖아요. 그러면 제가 거기에 뛰어들으려고 몇 번 마음 그런 마음을 먹은 적도 있었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또 하고 눈물을 흘려가면서 또 다시 하고 그러다 보니까 한 4년 5년
지나니까 조금씩 감이 오고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그러다 보니까 여기까지 아마 오게 된 것 같아요.
2절 옆에 큰 상자가 있어요. 거기다 칸을 다 막아가지고
제가 원하는 색깔을 하나씩 다 꽂아놔요.
그리고 꽂아놓으면 한 수십 개가 되거든요. 그걸 다 외워서 찾아쓰는데
칸을 막았는데 거기서 각도가 한 1cm만 삐뚤어져도
헷갈려요. 그러니까 제가 꽂혀 있어야 돼요. 일반인들은 아마
구분하기 좀 어려울 건데 물감마다 점도라는 게 있어요. 약간은
거의 눈에는 식별하기 힘들고 만져서도 잘 힘들어요. 한
2년 물감을 계속 만지고 처음에는 한 1년 2년 동안은 몰라요.
만져도 그게 그거 갖고 전혀 알 수가 없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 이거 뭐 다르네 이게 느껴지지 마요.
그 점도에 따라서 제가 색깔을 구분하고 그렇게
혼합하고 그렇게 사용합니다. 손에 감각이라고 보면 돼요.
그리고 제가 하기 전에 늘 기도를 합니다. 신께 이제 기도를 하는 거죠.
신의 눈으로다가
저는 안 보이니까 이끌어달라고 손은 제가 표현을 하지만 감각을 더 많이
느끼게 해달라고 하면서 온 신경이 손끝에 가 있어요. 손으로다가
만져가면서 그런 식으로 표현해 나가고 있어요. 저는 핀을 거기다 꽂잖아요.
핀을 한 개 꽂고 또 두 개를 뭉쳐 꽂고 또 두꺼운 개가 묻혀서 두꺼운 꽂고 또
하나 꽂은데 구부려놓고 그건 제 나름대로 암호죠.
그거를 다 외우고 있어야 돼요. 여기는 무슨 색깔이고 여기는 몇 퍼센트의 각도로 꺾어졌고
여기는 얼마의 길이고 얼마의 두께고 얼마만큼의 진한 물감이고 그런 식으로 다 구분을
핀으로 꽂아서 사용하고 있어요. 또 나무에는 고목 나면 나무 껍질을
그거를 나무 껍질을 붙여요. 그리고 또 그거를 얇게 하는 게 아니라 두껍게 가늘게
또는 굵게 진하고 흐리게 그걸 다 구분해서 표현을 하니까 더 현실감이 확실하게 느껴지죠.
그래서 그런 자연의 것을 이용하고 또 흙을 사용하고 그렇게 표현해 나가고 있는 것이죠.
제가 마음에 크게 와닿는 작품 중에 하나예요. 저 은행나무가
천년이라는 세월을 살았는데 단 한 번 한 해도
단풍이 안 들 때가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저 은행나무는 가장 최고로 아름답고 최고로
멋있을 때 자기 자신을 은행잎을 다 내려놓는다고 하더라고요.
다 땅에 떨어뜨려 놓는 것이요. 왜냐하면 그것이 나무에
붙어있으면 겨울에 얼어 죽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내년은 없는 것이죠. 이 은행나무는 지혜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아름답고 하더라도 다음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다 내려놓는 거
그것을 우리 인간들도 가장 아름답고 최고일 때 내려놓고 낮은 자세로
이웃들을 돌보고 그랬으면 존경받고
멋있는 삶을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그런 의미로다가 저 은행나무를 택해서
제가 그린 것입니다.
첫 전시를 했는데 어느 분이 오픈하는 날 저의 손 잡고 눈물을 흘리시면서 말씀을 하시는 게
시망을 줘서 고맙다고 그러시더라고요. 본인이 사업을 하다가 몇 번을 망했는데
빚을 많이 끌어오다가 썼대요. 그래서 삶을 끌으려고 그랬는데 제가 전시횡단을 한다는 것을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니 안 보이시는 분이 그림을 그린다고 어떻게 했길래 그러는가 한번 와봤는데 자기가 놀랐다고 하더라고요.
얼마나 고통이 심한 것을 참고 여기까지 이렇게까지 할 수가 있었을까 하면서 자기가 다시 한번
더 노력을 해야 되겠다. 이런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자기한테 희망을 준 거라고
다시 한번 더 노력을 해보겠다고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이런 아무것도 보잘 것 없는
시각장애인인데 제가 남들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뭔가 해줄 수 있는 게 있구나.
앞으로 좀 더 열심히 해야 되겠구나. 이런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때부터
저보다 더
힘들고 하는 분들한테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해서 더 노력을 해야 되겠다. 그래서 아마 그때부터
힘을 더 내고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잘 나가고 열심히 하고 자기 최고라고 생각하고 그랬지만
어느 순간 이렇게 사고가 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다 절망감이고 좌절감이고 그랬죠.
우리가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어느 날 갑자기 불행이 닥칠 수도 있고 또는 또 즐거운 일이 닥칠 수도 있어요.
아 저는 지금
앞이 캄캄해요.
새카맣죠 그냥. 그러니까 잠깐도 아니고 24시간 11년째 지금 이러고 있어요.
밝고 환한 것이 늘 아마 그리운 것 같아요. 자신도 모르게 그런 것을 찾고
야외 들꽃에 피는 꽃
그런 것을 그리워지고 봄에 새싹이 돋고
뻗어나가는 그런 것을 아마 찾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환한
봄 따뜻한 봄 아마 이런 것을 본인 자신도 모르게 찾고 그런 것을
아마 그려고 그리고 표현해 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이렇게 되고 보니까 본의 아니게 자기 뜻대로 된 게 아니잖아요.
세상에는 어떤 일이 누구에게서 닥칠지 모르잖아요. 저는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게 살다 보면 닥칠 수가 있어요. 그런 분들한테
아주 미약하나마 저로 인해서 심황을 얻고
용기가 생기고 그런 것을 전해주려고 하는 그런 의미로다가
더 많이 노력을 하고 뜻을 가지고 표현해 나가려고 합니다.
그림이 없으면 아마 이렇게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 같아요.
그림은 저한테 있어서 처음이고 끝이라고 보면 아마 맞을 것 같아요.
그림 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고 하고 싶지도 않고
어떻게 말로 할 수 없을 그런 장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제 자신이 이렇게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서도
그림을 지금 하고 있잖아요.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힘든 것도 하고 있으니까
다른 분들도 어렵고 힘들고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희망을 가지고 가다 보면 언젠가는 긍정적인 그런 사고 방식으로 바뀌고
즐거운 날도 있고 희망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런 마음입니다.
사람이요.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예를 들어서 산을 보아도 높이 올라갈수록 올라갈수록 멋있어요. 그렇지만 춥죠.
그렇지만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따뜻해져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다 내려놓으면 가벼워진다고요.
태양이 뜨기 전에 가장 어둡다고 하잖아요.
그거를 견디시면 태양을 볼 수가 있는 날이 반드시 올 거니까 끝끝내 버티시고 참고 하시라고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