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이해교육] 다함께꿈꾸다 2부
본 영상은 우리다문화장학재단이 다문화 인식개선을 위해
MBN과 함께 2023년 추석특집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다(多)함께 꿈꾸다' 2부 입니다.
#우리다문화장학재단 #다문화이해교육 #다문화교육 #다문화인식개선 #다함께꿈꾸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nI-3jq4c7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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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벽이 서로에게 다가가는 것을 망설이게 합니다.
우리는 다르지만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각양각색 다양한 빛깔로 아름답게 빛나는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
다름이 모여 만들어내는 특별한 어울림의 이야기.
대한민국의 무지개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우왕이 몇 살 때 왔어요?
여섯 살
여섯 살 때요.
또?
굉장히 어렸을 때
굉장히 어렸을 때 왔어요. 좋아요.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우리 부모님은 한국인이 아니다.
손 들어보세요.
그럼 부모님이 한국에 오신지 되게 오래됐겠네요.
부모님 두 분이 다 한국인이 아니셔서 외국 국적인 사람.
손 들어보세요.
나 한국 국적이 아니다.
외국 국적이?
어, 그런 사람도 많죠. 맞아요.
수년간 다문화 학생 비율이 좀 높아져서
현재는 정확하게는 약 48%가 외국 국적을 가졌거나
아니면 중도에 입국한 그런 다문화 가정 학생입니다.
한국어 특별학급이 있어서 전혀 언어가 안 되는 학생들은
따로 언어 교육을 시키고 있고요.
그 외에 여러 가지 지원을 받아서 다문화 교육을 좀 하고 있습니다.
교실의 풍경도 교육의 내용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6개를 나눠줬지요.
그중에서 국적이 달라서 차별 받은 사례, 차별 사례를 2개 쓰는 거예요.
다문화라는 단어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교과서의 개념이 아닙니다.
바로 내 이야기이고 내 친구들의 이야기인 셈이죠.
나라의 문화를 가지고 언어가 속상해서 차별당했어요, 처음에 한국 왔을 때.
온 지 얼마 안 돼서 언어가 속상한 것뿐인데 차별당해서 속상했고.
편견은 행동이 아니라 뭐예요?
이건 생각이에요, 생각.
그러면 우리가 이 차별 행동을 고치려면 어디서부터 부수는 게 좋겠어?
교정관념.
이거 어떻게 부술까요, 교정관념?
교육을 통해서 바꿀 수 있죠?
다름이 결코 틀림이 아니라는 걸
아이들은 옆에 있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아버지는 중국 분이시고 어머니도 같이 중국에서 오셨고요.
저는 근데 한국에서 태어났어요.
처음엔 어려웠는데 10년 정도 살다 보니까 편해졌어요, 좀 많이.
다문화 친구라고 했을 때
크게 막 거부감이 들거나 아니면 특별한 생각을 하지는 않고요.
그냥 저희랑 똑같은 친구라고 생각하고.
서로 잘 맞는 것 같고 다른 게 없는 것 같아요, 똑같아요.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더 이상 거리의 외국인들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지 않습니다.
어디서 왔어요?
스리랑카.
한국에 온 지는 얼마나 됐어요?
4년 됐어요.
아, 반 년 됐어요?
네.
사람들이 좀 그...
저는 방글라데시에서 왔어요.
한국에 온 지는 얼마나 됐어요?
한국에 10월.
이거는 노래는 많이 좋아해요.
그리고 한국의 드라마 제가 많이 좋아해요.
일단 태국이랑 말베리아랑 혼혈이고
지금 현재는 한국에 살고 있고
추석이니까 시야철이나 그런 거 타면서도
편안하게 피어나면서도 사람들이랑 말을 걸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드니까 저는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의 이웃이 된 사람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묻습니다.
당신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점심시간,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
밀려드는 주문에 아르바이트생 진아 씨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진아 씨.
하지만 구직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더 험난했습니다.
제가 이름이 8글자여서 다 적으니까 갑자기
어? 저희 외국인 안 뽑아요?
이렇게 말을 하시더라고요, 제가.
어? 저 외국인 아니에요?
다문화예요? 하니까
그냥 계속 단련이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막 그래, 약간 이런 느낌.
처음 보니? 그래, 약간 이런 느낌으로 넘긴 것 같아요.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꽤 익숙해졌습니다.
나이지리아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진아 씨.
4남매의 첫째로 늘 의젓하고 웃음 많은 착한 딸이었습니다.
잘하면서 저한테 싫어, 안 해 이런 말 한 번도 안 하고 컸어요.
항상 엄마 많이 도와주고 이해하고.
우리 애들이 다문화이기 때문에 상처받는다는 걸
안 지가 별로 안 됐어요.
지극히 평범한 가정.
하지만 진아 씨는 집 밖으로 나가면 절대 평범할 수가 없었습니다.
애들이 되게 구경하러 많이 오고
또 하는 말이 너 한국말 진짜 잘한다.
한국말 잘한다. 이 말 되게 많이 하고.
나도 그냥 한국 사람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좀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어느새 남들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바라보며
자신에게 이상한 꼬리펴를 달았습니다.
다 언더스테이지에서 온 거 아니지 않니?
아, 한 번 해봐요.
힘든 거 생각해보면 스스로를 차별했어요.
얘네는 한국 사람이고 나는 다문화야.
나는 외국인 같이 생긴 다문화야.
그래서 나는 그거 하면 안 돼.
라고 스스로 좀 가둬놓던 것 같아요.
스스로를 보이지 않는 벽 너머에 가둬뒀던 진아 씨.
특별한 친구를 만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네.
잘 지냈어?
네.
연습 많이 했어?
어.
진아 우리 저번주에 뭐 했지?
연습을 좀 잡히면 가요.
어, 할게.
많이?
네.
목이 아프다고?
괜찮아?
네.
저런 쪽으로는 소리는 좀 나오긴 해.
호흡 너무 빼지 말고 한 번 불러봐.
잘 유지하면서.
노래는 그녀에게 또 다른 세상을 열어줬습니다.
학교 안에서 힐링 콘서트 식으로 위클래스 상담선생님이 열어주시고
학교 축제에 나가보고 그러면서 더 이쪽 길에 대한 확신?
아, 나는 진짜 음악을 그냥 하고 싶은 거, 재밌어 하는 거는 해야겠다.
내 마음을 좀 많이 받았던 것 같아, 고3 때.
그래서 고3 졸업하고 재수, 3수까지 하고 이제 학교를 들어왔어요.
남들과 다른 나는 더 이상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었습니다.
진아 씨는 음악을 통해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아, 죄송해요. 그러니까 제가 질 것 같긴 해요.
음악이라는 친구가 생기면서 진아 씨에게는 마음을 터넣을 수 있는 또 다른 친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너무 예쁘다.
아, 네.
우와, 그런데 진짜 퍼럽긴 하다.
좀 시원해지긴 했다.
우와, 여기가 딱 괜찮다.
친구들과 만날 때면 진아 씨도 역락 없는 20대 청춘입니다.
예쁘게 나와?
채연 님, 네모네이드 너무 예쁜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어, 지우 왔다.
오랜만에.
지우 왔어?
엄청 정색하고 이렇게 딱 말씀하시네.
음악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비슷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친구들.
함께 웃고 함께 꿈꿀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어 행복합니다.
버스킹 신청했어.
진짜? 나도?
어, 나도 넣었어.
그래도 돼?
일단 넣었어.
오늘 그냥 너, 너, 나, 승아, 선우랑 민영이에요.
여섯 명 이렇게 해놨거든.
같은 과 동기예요.
같이 꿈이 가수인가요?
네, 그렇죠.
싱어송라이더?
저는 비욘세예요.
비욘세요?
한번 보여줘.
이런 가수예요.
저는 이런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
맛있는 거 사주세요.
네,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진짜.
다가가기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는데
이 친구 덕분에 그런 게 많이 조금 허물어지면서
되게 뭔가 저의 그런 수용 범위가 넓어졌다.
그러니까 다문화 과정 이런 걸 뛰어넘는
뭔가 얘가 그런 음악에 대한 그런 마음이나 이런 게 있어서
저는 진아가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씨앗을 씹는 아티스트.
좋은 영향력?
저는 영향력이 저를 통해 흘러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를 보면서
오, 되게 에너지가 좋다.
되게 기운이 좋다, 너를 보면.
이런 소리를 좀 많이 듣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다문화 과정의 대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할 수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해서
다문화 과정의 자녀인 사실을 알리지 않는
비정상인가요에 대해 얘기를 해보려고 하는데
알렸을 것 같아요, 안 알렸을 것 같아요?
안 알렸어요.
굳이 먼저 알리지 않아도 되는 사실이어서
얘기를 안 하고서 했던 것 같아요.
먼저 물어보면은
어, 그래, 맞다.
하면서 얘기를 하는데
얘기를 나오는 거에 대해
뭔가 더 거리를 뒀던 기억이 있거든요.
경험을 한번 얘기해 줄 사람이 있을까요?
제가 좀 불리한 상황이 되면
아이들이 이제 엄마 욕을 하고 그러시더라고요.
남들한테 알려지는 게 좀 싫었어요.
부모님에게도 안 좋은 얘기가 들어가게 되는
그런 상황이었어서 좀 숨기다가
대학교 와서 이제 어린애를 하면서
조금 다시 주변에 오히려 자랑을 하면서
고등학교 때 친구들한테도
다시 한번 기회가 된 얘기를 하고
그런 식으로 많이 바뀌었죠.
당당하게 알렸다기보다는
뭔가 당당해진 케이스인데
제가 이제 굉장히 시골에 살았는데
학생 수도 얼마 안 됐어요.
초등학교 전교생 30년?
근데 저희 어머니께서
저희 초등학교 일본어 선생님으로 오셔가지고
친구들도 뭐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저희 친구들의 일본어 선생님이
저희 엄마가
다 저희 엄마를 좋아하고
선생님으로서 이렇게 대우를 해주니까
뭔가 당당해진 케이스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당당하게 알린다랑
굳이 알리지 않는다가 반반인데
어렸을 때 알렸다가
나쁜 말을 들었던 상처도 있고
말했을 때 친구들에게
굉장히 좋은 반응을 받았던 경우도 있어요.
자신이 고민하는 부분들을
한번 적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하나의 그림을 만들기 위해
이 사연들을 앞으로 실어 보낼 거예요.
자, 컷 할게요.
가끔은 혼란스럽기도 하고
때론 상처받기도 했지만
그 속에서 성장해 왔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바로 한국으로 출생신고를 해서
베트남에는 사실 국적이 없어요.
그래서 또 막상 한국에 와보니까
친구들은 저를 베트남 사람이라고 놀리고
그러다 보니까 나는 베트남 사람인 걸까
한국 사람인 걸까
이렇게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계속 있었던 것 같아요.
언제든지 주변에 다문화 가정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차별도 있지만 다양한 문화 앞에서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이 제 주변에서 따뜻한 응원을 해주기 때문에
저는 지금 과거의 아픔을 딛고
이렇게 잘 성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울의 한 중학교
수업이 없는 주말에
학부모들이 학교를 찾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다문화 가족들인데요.
한국에 살다 보니
역시 최고의 관심사는 교육입니다.
부모 교육 채용하던 애들 때문에 찾아왔어요.
외국에서 오니까
한국 교육 자세히 잘 알지 못해요.
아이가 좀 공부 어려워해서
도움이 되는 이야기 들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학교 학생들에 관련된 이야기도 나누시고
정보도 얻으시고
유익한 시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부터 그러면 첫 번째 프로그램으로요.
우리 학교에서 고등학교 진로 진학 상담을 해주고 계시는
선생님께서 어떤 고등학교 진학하고 있는지
강의 한번 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등학교 입시에 있어서
초등학교, 중학교하고 고등학교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고등학교는 누가 정해주지 않아요.
자기가 선택을 해서 지원해야 됩니다.
모두들 대한민국 사회 안에
조금 더 단단하게 뿌리 내리고
조금 더 잘 어우러지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방인이 아닌 이웃이 되기 위한 노력입니다.
정보만 얻어가는 게 아닙니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다문화 가정의 부모들이
취미 활동을 함께하며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됐습니다.
2007년에 왔다가
다시 2016년에 갔다가
힘들어서 언어가 못하는 거
문화 부족하고 내가 조금 해야 되니까
그 다음이 15살 때
또 한 번 돌리면 끝.
다 풀려요.
다문화니까 외국이니까 라는
입장이 벗어나서
어쨌든 외국이면 바깥으로 나가야 되는 거거든요.
자기만 아니라 온 세상에 사는
다 사람들이 외국인 사람이
언젠가는 돼요.
외부로 나가면은.
그 입장 자기가 스스로 먼저 바꿔서
활동하게 된다면은
사업이 많이 변화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땀 한 땀
어울림을 바느질합니다.
굉장히 다양한 스펙트럼의 친구들이
지금 학교 교실 현장에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은 누구나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그것들을 아이들이
우리 한국 대한민국 사회 안에서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긍정하고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가 다양성을 더 품을 수 있는
그런 대한민국으로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 어디에서 왔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축구 경기가 한창인 중학교 1학년 체육 시간
눈에 띄는 남학생 하나가 있습니다.
친구들의 응원에 힘입어
체육관을 휘잡고 다니는 성우
성우가 여기서 축구 가장 잘해요.
여기 있는 애들은 다 조성우가 이겨요.
조성우! 조성우 화이팅!
학교에서 축구대장으로 통한다는 성우
와 날쌘돌이가 따로 없습니다.
인기도 많고 그래서 친구도 많은 성우
바이 바이
성우는 14살 평범한 중학생입니다.
앙숙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여동생 아랑이
그리고 성우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
이렇게 네 식구가 함께 살고 있는데요.
남들과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성우네는 흔히 말하는 다문화 가족입니다.
베트남과 대한민국의 만남으로
가족이 탄생했습니다.
이거 지난주 봤다?
조성우 중 베트남에 편지 왔어
이거 베트남 전통 우체국
무슨 성당 옆에 있는 우체국에서 편지 썼는데
방문해 봤어? 그 우체국은?
가운데 호치민 사진 크게 있고
얼마 전 성우가 엄마의 나라에 다녀왔습니다.
베트남 갈 때 많이 체험 봤어?
여기 전쟁했던 데
구찌 터널?
어 구찌 터널
엄마는 많이 얘기했는데 가본 적 없는데
여기가 주방이래
주방이라고?
여기 연기 나오는 곳
다음에 어디 갔었어?
너 여기 가서 옷 사지 않았어?
어떻게 샀어?
말을 안 통하는데 어떻게 샀어?
여기서 옷 깎으면서 샀는데
어떻게 깎았어?
엄마도 할 줄 모른데
너무 비싸다고
한국에서 온 학생들인데 돈 없다고
엄청 깎아줬는데
지난 여름 한 다문화 장학재단의 지원으로
베트남 역사, 문화 체험을 하고 돌아온 성우
전에 몇 번 가보긴 했지만
이번 방문은 특히나 색다른 경험으로 남았습니다.
저는 항상 할머니 집이 약간 시골 느낌의 안에 있는 집이라서
제일 큰 거리라 해도 시장 근처에 있는 길, 병원 근처에 있는 길이어서
그렇게 많은 걸 겪어보지 못했는데
많은 문화 체험도 해보고
그래서 좀 더 베트남이 새로워졌다는 걸 느껴질 수 있었어요.
막연하게 엄마의 나라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베트남
곳곳을 돌아보며 새롭게 보고 배우면서
즐거운 궁금증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엄마가 어떤 생활을 했었고 어떤 학교에 다녔는지도
더 자세하게 알게 됐어요.
엄마 학교나 아니면 엄마가 갈려했던 대학교?
아니면 엄마가 항상 집에서 끝나고 뭐 했는지
이런 걸 좀 더 궁금해져요.
베트남 가서 이것저것 많은 활동하면서 좋았던 것 같아요.
성우도 좀 많이 만족하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베트남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생각하고
베트남을 조금 더 이해를 해서 왔었기라 생각해요.
알려줬는데 생각이 나.
자신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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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볼래?
오늘 엄마가 준비한 식사는 베트남표 집밥.
엄마 덕분에 정통 베트남 음식을 제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오, 잘 만든다.
괜찮다.
맛있지?
맛있어.
야채가 이상했다 맛있지?
맛있어?
엄마 문화를 애들한테 알려주고 싶어요.
한국이랑 베트남이랑 문화가 뭔가 차이가 있는지.
음식 요리할 때 베트남 음식이랑 한국 음식을 알려줘요.
엄마 옛날에 어렸을 때 할머니가 뭐 해준 음식이
지금 애들한테 해주는 음식이 그렇게 해주고 싶어요.
3년 전부터 태권도를 배우고 있는 성우.
실력이 보통이 아닙니다.
엄마가 한번 자존심을 길러보라고 하셔서
길거리에 왔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다니고 있어요.
학교에서도 장난도 많이 칠 수 있고
그런 거를 하나하나씩 다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태권도인 것 같아요.
엄마의 나라도 아빠의 나라도 성우에게 참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네가 할머니랑 대화할 수 있게 간단하게 몇 가지 엄마가 알려줄게.
통화할 때 할머니랑 하고 싶은 말.
네가 한국말 적어놔봐. 그럼 엄마가 베트남어 알려줄게.
틈날 때마다 엄마에게 베트남어를 배우는 성우.
안녕하세요.
첫 번째 통화할 때는 무조건 안녕하세요 해야지.
안녕하세요.
할머니잖아.
안녕하세요.
저는 베트남 사람이니까 애들은 베트남어 어느 정도 할 줄 알아야
가족들은 통화할 때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그렇게 하고 싶어요.
당당하게 또 자연스럽게.
성우는 부모님의 나라를 모두 품고 커갑니다.
안녕하세요.
아랑이는 귀여운 춤으로 인사를 대신합니다.
가족이라는 단단한 끈이 베트남과 한국을 이어줄 듯
성우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끈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내가 외국인이랑 한국인이랑 다를 게 없는 사람이라
이런 거를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그 친구들과 더 친하게 지내서 외국인에 대한 인식을 바꿔주는 그런 느낌도 많았어요.
이른 아침부터 난리가 났습니다.
선화장사가 3시나 됩니다.
아침부터 힘이 다 빠져요.
아직 이제 오전인데 힘이 다 빠졌어요.
에너지가 차고 넘치는 새 아이를 키우느라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부부.
첫 만남은 운명 같았다고 합니다.
집사람이랑 이제 영상으로 이렇게 보고 나서
그게 좀 약간 설레었어요.
약간 이상형이라고까지 표현하면 좀 오버일 수도 있는데
그때 그 첫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한국 드라마라든지 영화라든지 그거 보고
저는 한국 남자를 이미 사랑했죠.
한국 남자들이 다 이렇게 잘 챙겨주고
한 번 사랑하면 끝까지 해주고 그런다고 생각했는데
드라마는 드라마예요.
남편을 따라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온 이로다 씨.
이젠 한국살이가 누구보다 편한 다둥이 엄마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한가득 짐을 챙겨 집을 나서는 이로다 씨.
마음이 안 좋긴 한데 그래도 이제 일은 해야 되고
그래서 아빠한테 이제 믿고 가는 거예요.
아이들까지 맡기고 그녀가 향한 곳은 인근의 한 중학교.
이로다 씨는 우즈베키스탄을 알리는 다문화 강사로 활동 중입니다.
우리나라 전으로 만드는 거는 그거는 그냥 한복처럼
이렇게 뭐 특별한 날 때 명절 때 입는 옷도 있어요.
이거는 그냥 신부가 입는 거예요.
그런 식 다음날 20일 동안.
아이들에게 우즈베키스탄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기 위해
이것저것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우즈베키스탄 친구는 없겠죠?
없겠죠?
자, 오늘부터 우즈베키스탄 선생님은 있네요.
국기 보실 때 달 모양이 있는 나라는
다 똑같은 이슬람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똑같은 종교는 달 모양이 꼭 들어가야 되는 국기예요.
그저 지도상에 있는 많은 나라 중에 하나가 아니라
좀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이웃나라로
우즈베키스탄을 알리고 싶은 이로다 씨.
가끔은 반가운 얼굴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로다 씨는 꼭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얼굴, 언어는 다르지만 사람이 똑같고
그리고 좀 발음이 이상해도 이해해 줬으면 좋겠고
같이 외국 문화를 존중하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문화는 완전 다르잖아요.
그래서 다른 나라 응원단이나 문화나
그것도 존중하면서 같이 알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요즘 이로다 씨의 하루는 참 바쁩니다.
영상 번역하고 있는데 원래 이제 영상 번역은
한 번씩 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 나서
그 다음에 이제 보면서 해야 되는데
왜냐하면 한국 사람들 알아듣기 어렵기 때문에
번역도 통역도 참 잘한다고 소문난 이로다 씨.
뛰어난 한국어 실력 덕분입니다.
근처에 사는 우즈베키스탄 친구와 함께
자주 전통시장을 찾는다는 이로다 씨.
언니들처럼 예뻐.
엄청 기분이 좋아요.
너무 친절하시더라고요.
이젠 똑순이 한국 아줌마가 다 됐습니다.
오케스트라단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는 은지.
이곳 친구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한국 분이시고 아버지는 멕시코 분이십니다.
일주일에 한 번 은지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입니다.
저는 원래부터 그 악기를 정말 배우고 싶었고
그 악기를 배우면 여러 악기 중에서 좋은 새 소리 내면서
더 음악이 좋아져요.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단.
아이들은 악기를 배우며 자연스럽게 어우러짐을 익힙니다.
오케스트라 활동 같은 경우에는 혼자 하는 경우 보다는
같이 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이렇게 선생님들과 또 함께 하는 친구들과
더 함께 정서적인 교류 그런 게 더 많기 때문에
정서 발달에 더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함이 얼마나 아름다운 하나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아이들은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며 조금씩 성장해갑니다.
반가우나 일각 학원 가면 아무래도 다 한국 사람이고
한국 아이들이고 그러는데 그래도 다문화 오케스트라 가면
우리 은지처럼 다 다문화 아이들이잖아요.
그래서 더 자연스럽게 잘 배울 것 같아서
그래서 너무 고맙게도 여기에서 하게 됐어요.
다른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의 소리를 연주하는 합주 시간.
비록 아직은 조금 서툴지만 최선을 다해 가장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갑니다.
다름을 존중하고 이해하며 배려할 줄 아는 밝고 건강한 아이로 자라나길.
이로다시 부부는 오늘도 기도합니다.
제일 먼저는 건강하게 안 다치게 자랐으면 좋겠는데
우리 아이들은 꼭 자기가 맞는 일을 잡아서 꼭 자기 꿈을 이루었으면
다문화 과정에 누구누구 조명을 받기보다는
그냥 한국인으로서 한국 사회에서 어떤 기여를 하고
커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그렇게 찾아줬으면 하는 바람이죠.
더없이 화창한 날씨 속에 다문화 가족들이 특별한 소풍을 즐기기 위해 모였습니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함께 마음껏 웃고 뛰어놀 수 있는 시간.
반가운 이웃들과 함께해서 더 즐겁습니다.
가족이 같이 이렇게 할 기회가 많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기회가 너무 좋아서 참여하게 됐어요.
요즘 가족 여행으로 못 가고 기회도 없어서 아쉬웠었는데
이런 기회가 있어서 참 섰겠어요.
다문화라는 이름표를 떼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우리의 이웃들입니다.
지난 3년간 코로나로 인해서 가족들이 조금 화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좋은 날씨에 또 좋은 계기가 되어서 다문화 가족분들이 서로 화합하고
더 소통하고 단단해질 수 있는 그런 계기를 만들고 싶어서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소중한 추억을 예쁜 기억으로 남겨봅니다.
다들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가 함께 꿈꾸는 세상이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 학생들과 똑같이 같이 놀고 즐겁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나누고 차별하고 가리지 않고 함께 가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다양한 빛깔이 어우러진 무지개처럼 빛나는 다름을 품은 이들은 우리의 소중한 이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