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이 불행해도 결국 성공하는 사람의 비밀| 낭만가객 최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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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수빈 아나운서의 첫 에세이 출간 ◆
아나운서 조수빈의 2030청춘 기록, 삶의 지혜
'청춘은 청춘에게 주기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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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가난하게 이제 살 예
힘든 시간들을 잘 받아들이고
성화시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고 교장 선생님이 아 그러면이
나무를 제가 코 나무를 그 남의 일들
다 세상에 널이 내가 우리가
고마워해야 되는구나
영상을 보시는 모든
분들
최백호 선생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자 저희 세대는요 최백호 선생님의
젊은 시절을 잘 몰라요
그런데 참 어려운 일을 많이
겪으셨어요 이제 아버님도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님도 23에
돌아가셨고 아티스트 최백호를
이해하려면 더 많은 걸 내가 알고
있었어야 됐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시련이 있으셨나요 제가
오늘 뭐이 자리에서 모든
여자 관계를 다 밝히는
저희 할아버지는 굉장히 분홍이
있었어요
고향이 이제 오일장에서는 곳입니다
그래서 토목 사원을 하셨어요 아버님이
둘째 아들이었는데 첫째
큰
삼촌 되신 분이 돌아가셨어요
아버님은 좀
외모가 굉장히 무섭게 생
저희 아버님에 비하면
온순한 양이에요
[음악]
집착과 다리 밑으로 떨어지면서 아버님
돌아가시고 그 운전하신 분하고
삼촌의 비서봉은 안 돌아 안 돌아가셔
아버님만 딱 돌아가셨어요 그게 여기가
교통사고로 저는 알고 있었는데 일반적
교통사고라기보다는 전쟁 중에 전쟁
중이고 그때 그 시대에는
암살이 있어요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혹시나 저희들이 이제 4.19가
끝나고
새 정보가 들어섰을 때 저희들이이
죽음에 대해서 조사를 다시 해달라고
정부에다가 그걸 했는데 안 됐어요
터키군 그 트럭이 이탈을 할 이유가
없죠 다리 위에서
근데 그 어떻게 군이었지만 운전한
사람은 한국 사람이었어요 그런 얘기가
있었어요 제가 태어나서 5개월
때였어요
그래서 이름이 백호라서 그렇다고
요
도장 파는데 가면 그런 얘기 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할아버지들 오래되신
분들은
부모님 계시죠 그래서 이제 저는
아버님에 대한
기억이 없고 그저 우리 저희 집 방
위에 이렇게 아버님 사진이 딱 하나
흑백 사진을 붙어 있습니다 그
이미지만 그러니까 아버님에 대한 막
부풀려진 전설처럼 어릴 때부터
훌륭하신 네 아버님
옛날에 저희 아버님이 고등학교를 말을
타고 다닙시다
기찻길을 옆에 자갈길이 있는데 꽤 먼
거리에 몇 키로 되는 거리를 그
아버님 친구들은
기차 타고 가고 있으면 막 말 타고
야 너희 아버지 말이야 옛날에 말
타고 말이야 그러니까 저한테는 뭐
굉장히
우리 아버지 돌아가
시죠 어디엔가 숨어 계실 거야 어느
날
탁 내 앞에 나타나실 거예요 이런게
굉장히 딱 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자존심이랄까 그게 굉장히
내가 누구 아들인데
그러겠어 잘 이렇게 굽히잖아 어딘가
계실테니까
아버님의 부재 그러면서도 아버님이
어떤 신화 속에
인물 같은
혼돈 속에서 비교적 어머니는 현실
속의 인물이에요 사택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2편을 잡으셨었죠
어머니 어떤 분이셨나요 어머님은
울산에 부잣집 딸이었어요 거기도
어머님도 분홍매 막내딸이었는데
근데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이제
시댁에서 좀
힘들어 하셨나 봐요
뭐 이렇게 됐거든요
그래서 이제 어머니님이 나오셔서 이제
그 고향에
좌천국민학교를 하는데 교편 생활을
하셨어요
그러면 저희들도 이제 사택에
그렇게 가난하게 이제 사람
지금 뭐 선생님 하면 안정적인 직장
같지만 그때는 뭐 제
기억으로는
월급을
돈으로 조금 받으시고
매달 한 번씩 트럭에
싸라고 이렇게
우유백
분유를 백업 벌어졌어요
그러니까 가난하게 이제 어머님이 교통
생활을 하시면서 아이들 키웠으니까 그
하여튼 어머니 하면 너무 가난했던
모습만 생각 유니폼을 아주 청색
거기다려 플라스틱 명찰을 딱 달고
어머님이 항상 학교 가시던
제가 아주 어릴 때 다 누님들 학교가
저 혼자 집에 있으니까 어머님을
찾아서 학교에 가서 이제
골마루를 걸어갔는데 그 어머님이
공부를 시켜 있는 그 방에 자꾸
올라갔는데 우리 어머님이 저기 계셨던
그
창남어네 살이나 다섯 살 제가 일곱
살에 입학을 했는데 그 정도 됐을 때
내 기억이 있어요 아버지가 안
계셨으니까
요
저한테
절대적이었죠
저도 아이를 낳으니까
제가 인터뷰하면서 많은 분들을 만나
뵙잖아요
그걸 만드는데 있어서 어머니만큼
강력한 존재가 또 있을까 선생님
책에도
궁핍했던 시절이었지만 최백호라는
그릇에는
물질 말고 그 무언가가 더 많이 담겨
있었다 그 무언가가 어머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노래를 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하는 모든
배경에는
굉장히
순한 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어른이 돼서 뒤에 이제들은 이야기인데
굉장히
강한 면이
계셨더라구요
정치는 아니었지만 그런 사회 운동을
하셨다고 어머니께서
뒤늦게 알았어요
백호가 노래할 거라고 상상도 못하신
채로 가셨을 어머니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힘든 마음에 쓴
가사가 있으시잖아요
노트에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낙엽이
치면 서러움이 더해요
떠나지 말아요
[음악]
낙엽지면
서로 믿어요 저하고 조수빈씨 차이가
뭘까요 조수빈 씨는
멜로디를 자꾸 부르려고
강하게 하는데 저는 얘기하듯이
힘주지 말고
편하게 이렇게 비슷한 거고
당당하지 말고
떠나지 말아요 지금도
x자들은
안 되겠다
선생님 어머니 아버님 말씀만 들어도
어떤 유년기 어떤 그 정서로
자라셨을지 짐작이 되고요 그래서
그림을 더 아까 와이파이 얘기도
하겠지만 그림을 그릴 때는 좀
무라이츠 상황이 되잖아요
마음의 평온을 느끼셨을 것 같아요
너무너무 그림을 그리는 일이 즐거
웠어요 학교에 있으니까 일요일 때
학교에 가면 분필 떨어지게 많이
했어요
그림을 그리고
벽에다가
칼로 뭐 이렇게
어렸을 때 국민학교 다닐 때 저희 그
사택 나무 벽에다가 칼로
참자 최후까지
기억이 남아요 참자
뒤에 가서 그걸 쳐다보니
없어졌더라고요
저는 선생님도 묻고 싶었던 게요 되게
많은 그림들이 있는데
어릴 때 여러 개의 그리셨다는데 다
나무를 그려요 왜 나무만 그러세요
그래서 나무는 나무는 제 산에 있어야
돼요
도시에도 그 우리 모습과 비싸잖아
어릴 때 그 어 살던 학교가 있어요
그 학교 사택 앞에 돈나무가 이렇게
그 벚꽃이 피면 선생님들이
휴일마다 그 밑에서 고기 구워 먹고
소주 한잔 하셨어요 선생님들이 우리
이제 선생님들은
맨날 올라가서 자고 했어요 자고
있으면 저희 어머님이
동명아하고 불렀던 그런 그래서 그
나무에만 가면 어머님 생각이 나고
어머님의
흔적이 있는 것 같아서
참 좋아했거든요 그 지방 부산 공장
가면 꼭 가서 이제 그 앞에 사진도
찍고 했는데
얼마 전에 가니까 그 학교가 폐교가
되고 무슨 예술고등학교가 들어온대요
그
지역의 문화 원장님 뭐 이런 분들이
우연히 알게 됐는데 내가 그 이야기를
했죠 그랬더니 그게 예술고등학교가
들어오니까
실용음악과도 있고 이러니까 그 교장
선생님이 아 그러면 이 나무를
유명해지고
볼 일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갔더니
활 잡혔어요 보존해준다고
가보고 싶어요
선생님 그림을 그리시던 노래를 하시건
책을 쓰시건 어떻게 보면 어머니라는
존재가
잔잔하게
마음속에 흐르고 계신 것 같아요
이제 여기 와보니 모두 기도의
100년
겨우 그 테두리 안에서
특별히 부러워해야 할 인생은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 이런 얘기도 하셨는데
지금 영상을 보시는 분들 가운데서
부모님이 부재하신 분도 계실 거고요
또
힘든 일 괴로워하는 일 또 어떤 분은
부모가 있지만 부모 역할을 못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좀 힘이 되는 말씀 해주실
수 있을까요 가수 쪽으로만 본다면
좋은 가수들의 가정환경을 보면
정상적인 가정하게 자란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그게 다 어릴 때부터
뭔가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좋은
가수가 돼요
뭐 좋은 시인도 될 수 있고 좋은
작가 화가도 될 수 있지만 저는
평범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편안하게
자란 사람은 좋은
예술가 되기 어렵다 저는 그래서 그
상처를
힘든 시간들을 잘 받아들이고
승화시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가
좋은 결과일까요
행복을 얻을 수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여기서 선생님이 좀 가장 애착이
있는
구절이 있으신가요 내가 어렸을 적에
돌아가신 친할머니는 나의 희미한 기억
속에서나 누님들의 정원을
통해서나 중국의 등소평 선생을 많이
닮고 있었다
낮은 코
눈꼬리는 아래로 쳐졌으면 큰 눈도
아니셨는데 지금
천당에서
독실한 가톨릭 신자셨으니 이놈의
장손이란 놈이 남자를 그것도 중국
남자를 나에게
하고 화내실지 모르지만 할머니를
떠올릴 때 그냥 등소평 선생의 얼굴을
생각했다
저희 할머니께서 조그만
창고도 하라고 제가
5일장 하시는 걸 장사하시는 분들이
그러니까 천국에다
들고 왔다 갔다 하기 힘드니까
겨울에 오시면
먼 길에 이제 그땐 다 보리밥
뭉치빠하고 그런 걸 갖고 오셨는데
할머니께서 뜨거운 물을
끓이고 김치를 꺼내서 대청마루에
장사하시는 아주머니들 다 모셔가지고
자 이제 먹어라 이러고 이제 내일
오셔도 돼요 그래서
앉으면 이제 뭐 이런저런 얘기
하시잖아요 어느 동네는 누가 뭐
결혼을 시키고 뭐 좋은 일이 있고
저희 할머니가
옆에서 아이고 고마워라 아이고
고마워라 이렇게 하셔도 돼요 제일
위에 누님이 이제 할머니의 그건
고마운게 아니고 잘 됐다
축하한다라고 해야지 왜 고마워라
하세요 이랬더니 우리 할머니께서
누님을 들여다보세요 그건 고마운거다
이러셨대요 나이가 들어보니까 그게
진짜 고마운 거
그 남의 일들 다 세상 일들이
좋으니까 다 내가 우리가
고마워해야 되는구나 고마워해야
되는구나 하는 걸
뒤늦게 할머니의 말씀에서
깨달았죠
영상을 보시는 모든 분들 아이고
고마워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