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강) 암흑의 땅 조선의 빗장을 연 복음(이승만과 자유민주주의의 시작) #이승만과자유민주주의의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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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수용 올림 -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성경적 세계관으로 알리고
전하는 대한역사문화원의
한국 근현대사 바로 알기 특강입니다
대한민국은
국민주권과 법치를 통해 개인의 자유와
평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자유민주공화국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주권을 행사하고
개인의 자유와 평등한 기회를
보장받으며 그 권리를
법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은 자유시장경제를
채택하여 선진한국을 이루었고
국민들은 그 번영에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과 100여년 전 조선
백성들은 자신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종의 멍에를 짊어진 채로 자유의
개념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온갖 종의 멍에 매어 자유의 개념조차
없던 조선이 하루아침에
우연히 어쩌다 보니
번영과 발전을 누리며 전 세계의
k열풍을 일으키는 선진왕국이
되었을까요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오늘의 번영에는
시작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시작점을
놓은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바로
기독교 선교사입니다 1832년
7월 25일
기출납부 선교사를 시작으로
1945년 해방 전까지
1529명의 선교사가이 땅에 달려와
그 위대한 역사의 문을 열었습니다
선교사들은 조선을 자유케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아무개 땅
조선에 굳게 닫힌 문의 빗장을 열고
조선으로
들어왔습니다
드디어 어둠 속에서
고통받는 조선 백성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한
놀라운 여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름하여 조선탈출
프로젝트입니다
1884년이 거의 다 저물어 갈 쯤
조선은 한바탕 큰 혼란을 겪었습니다
바로
갑신정변입니다
갑신정변은
청나라의 빼앗긴 주권을 되찾고
민시세력을 척결하여 개역을 꿈꾸었던
개화파들에 의해 일어난 난이었습니다
결과는 3일 만에
청나라 군대에 의해 진압되면서
끝나버렸고 조선의
찾아온 개혁의 기회를 또 한번
잃게 되었죠
조선은 이제 더 빠른 속도로 만국의
길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혼란 가운데 조선은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1885년
4월 5일
새벽
인천 제물포항에 두 명의 선교사가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였습니다
이들은 조선에 온 첫 번째 정착
선교사였는데요 정착 선교사란 오랜
시간 그곳에 머물며 사역을 지속하는
이들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조선의 뼈를 묻을 각오를
하고
온 사람들이죠
그날 아펜젤로 선교사는 배에서 내리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부활절 아침에 이곳에 왔습니다
그날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께서이
백성을 얽어맨 결박을 끊으사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유와
빛을 주시옵소서
선교사들이이
땅을 밟은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자유입니다 조선
백성을 단단히 묻고 있는
결박을 끊고 자유를 얻게 하는 것
그래서 그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낯설고 불편하고
심지어
죽음까지 각오해야 하는 조선으로
온 것입니다
선교사들이 전하는 복음의 핵심은 바로
자유입니다 자유는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구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구원이란 어떤 위험한 상황에서
구출되거나
속박에서 해방된다는 뜻이죠
선교사들은 조선 백성에게 어두움에서
벗어날 방법 그 놀라운 방법을 전해
주러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를 선포한 것일까요
먼저는 조선 백성의 영적 자유를 위해
죄에서 자유를 얻는 유일한 길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조선 백성을 묻고
있는
각종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선포했습니다
놀랍게도 선교사들이 전해준 영적
자유는 조선백성을 묻고 있던
여러 억압의 사슬을
끝낸 시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기독교 선교사들의 가장 중요한 사역
교회를 통해 조선의 선포된 자유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교회 이야기를 하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내가 왜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조선 백성에게
현지 개벽을 일으킬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부터 선교사들이 전한 복음이 조선
백성의 삶에
얼마나 놀라운 변화를 주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한국교회의 시작이
언제였는지 그것은 알고 가야겠죠
조선의 세워진 최초의 교회는
현재
서울 광화문에 있는
새문안교회입니다
세문안교회는 조선 최초의 교회이자
조선 최초의
장로교회입니다 1887년
9월 27일 미국
북 장로교회 소속 선교사인
언더우드 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교회가
바로 세문안교회죠 그리고
며칠 후인 1887년 10월 9일
조선 최초의
감리교회 정동교회가
미감리교회 소속 아펜젤로 선교사에
의해 세워지면서 조선 교회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후로 선교사들은 조선의 남과 북
동과 서로부터 저 조선의 드리워진
어두움의 자유의 빛을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조선은
철저한 신분 사회였습니다
그 중 조선인구의 40%나 되는
천민은 사람으로 존중받는 대상이 아닌
물건 취급을 받거나
짐승 취급을 받았습니다
조선의 그 누구도
천민을 이렇게 대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천민들을 사람으로 대한
이들이 나타났습니다
네 바로 선교사들이죠 왜 그들은
조선의 정서에 반하여
천민들을 귀하게 대했을까요
바로
성경의 가르침 때문입니다
로마서 10장 12절에서 13절에 그
답이 있는데요
13절을 한번 보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누구나
차별 없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죠
예수님을
믿기만 한다면요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은
구원에는
인종 신분
빈부의 차 남녀의 구별 그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선교사들은
천민의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조선을
지배하는 세계관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된 것입니다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 노예는
연동교회가 있습니다이
교회의 공식적인 시작은 일대 담임
목사인 제임스게일 선교사가
목회를 시작한 1900년입니다
역사가 어마어마하죠
그러나
연동교회의 시작은
엄밀히 말해
18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이 지도는 개일 선교사의 책 한양의
수록된 한양사대문안
지도인데요
지도에 표시된
흰 동그라미
부분이
연동교회 첫 예배 초소였던
연못골입니다
연못골은 지금의
종로구
연지동이라고 하죠 이곳은
천민 중 가파치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습니다
연동교회는
5명의 선교사에 시작되었는데요 그
5명의 전도자는 사무엘 무어 밀러
그래야 암니
기포드
빈튼 선교사였습니다
1894년부터 1900년 개일
선교사가
연동교회를 단임하기 전까지이 5명의
선교사는
날마다
연목골을 오가며 전도했고
복음의 씨를 뿌렸고 그 열매가
풍성히
맺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에서 자유롭게 되고 나니
천민과 양반이 함께 예배드리는
당대 가장 큰 교회로
성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1905년
연동교회는
첫 장로를 선출하게 됩니다
장로란
담임목회자를 도와
성도들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살아가는지
점검하고
격려하는 직분을 말합니다
그런데
연동교회에
첫 장로 투표에서
놀랍게도 가파치 출신의 고찬익이
장로로 선출되었습니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었죠
양반이 천민의 지도를 받게 된 상황이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한때 일부
양반들이 교회를 떠나기도 했지만 다시
교회가 안정되어 1907년에는
천명이 넘는 성도가 예배드리는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반상의 구분이 철저하던 조선에서
복음은
신분의 벽을 허물고
신분제라는 멍에를 끊는
놀라운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1893년 6월 세 문헌 교회에 이어
두 번째
장로교회가 시작되었는데요
이름하여
곤당골 교회입니다
현재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위치해 있던이
교회는 1892년
46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조선해온
사무엘 무어선교사가
매일 수십 명의 사람을 만나
복음을 전하며 개척한 교회였습니다
무엇 선교사가 조선의 올 무렵
서울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들은 정동에
있던 미국 공사관을 중심으로 모여
살았는데요
안전상의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엇 선교사는 조선 백성 속에
깊이 들어가 선교하겠다며 조선 사람
특히
천민들이 거주하던 지역에 어울려 살며
조선 말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무엇 선교사는
원고 없이 우리말로 설교하는 선교사로
유명해졌죠
이듬해인 1894년
관철동에 살던
백정 박가가
장티푸스에 걸려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르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때 사무엘모 선교사의 주선으로
백정 박가는
고종의 주치의였던
에비슨 선교사에게
치료를 받고 살아나게 됩니다
임금을 고쳐주는 저 귀한 사람이 나를
고쳐주다니 자신을 사람으로 그것도
사랑을 듬뿍 담아 대하는 선교사와
그들이 전한 복음의 감동한
백정 박가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곤당골 교회의 성도가 되었습니다
이제 백정 박가는 더 이상 이름 없는
백정 하나가 아닌
박성춘이라는 이름을 얻고
백정들을 전도하기 시작했죠
놀랍게도 박성춘의 전도로
곤당골 교회에
백정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로 인해
문제가 생겼습니다 일반
교인들이
백정과는 도저히 예배를 함께 드릴 수
없다며
백정을 쫓아내라고
항의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 선교사님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찌 백정이라고
하대하려는가라고 일반 성도들을
꾸짖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렇다면
백정들을 예배에서 뒷자리로 앉혀
구별해 준다면 우리도 계속해서이
교회를 출석하게 써라고 하며
끝까지 순종하지 않자
무엇 선교사는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그들은 교회를 떠나
홍문사골 교회를 세우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는데요 1898년
홍문사골 교회에 큰 불이나
교회가 다 타버리는 일이 일어나면서
곤당골 교회를 떠났던 성도들은
회개하고
곤당골 교회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현재
을지로 입구인
구리계로
교회를 이사하게 되는데요
당시 교인들이 108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 중 백정 출신 교회는
30명이었다고 하죠
그래서이 교회는
백정 교회로 불리웠습니다
1905년 곤당골 교회는
현재 교회가 있는 인사동으로
이사하면서
이름을
승동교회로 바꾸게 됩니다 그리고
백정이었던
박성춘은
승동교회의 장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현민을
천민으로 대하지 않고
친구로 대한 교회가 바로
승동교회였습니다
복음은
백정 박가에게 드리워진
신분의 멍에를 끊어주었고
박성춘이라는 자유로운 삶을
선물했습니다
자유인 박성춘은
평민과 양반들 앞에서
당당하게 연설하는 만민 공동회의
연사가 되었습니다
백정이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하는 바를
연설한다는 것은
당시 조선의 상황으로는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가 외치는
복음의
핵심 자유입니다
[박수]
전북 김제 금산면에 위치한
금산교회는 1905년 미국 남장로교회
파송을 받아 조선호남 지역의
선교사역을 한
테이트 선교사가 개척한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기역자 교회로 유명한 교회인데요
조선선교 초기 교회들은
금산교회와 같은
기역자 모양이 많았습니다
그 이유는 남녀가 유별하다는 조선의
세계관을 배려하여 탄생한 건축 구조
때문입니다
목사님이 기역자 부분에 모퉁이에 서고
남녀 성도를 분리하여 한쪽은 남자
성도 한쪽은
여자 성도들이 앉아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한 것이죠
금산교회는 아주 특별한 두 사람이
있었는데요
이자익과 조덕삼이었습니다
조덕삼은 김제에서 이름 있는 부자였고
이자익은 그 집에 마부이자
머슴이었습니다 이들은
테이트 선교사의 전도를 받고 예술을
함께 믿게 되었고
1905년 10월 12일에 세례도
함께 받고 집사도 영수도 같은 날
함께 되었다고 합니다 그 교회는
장로를 세우게 되는데
놀랍게도 김제 지방이 유지이며
금산교회의 재정을 모두 감당하고 있던
주인 조덕삼을 제치고 그 집 머슴
이자액이
장로로 선출된 것입니다
교인들은
몹시 난감해 했지만 조덕삼은
교회의 결정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교인들 앞에 나아가서 나는 하나님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이자 입장로를 잘
받들고
교회를 더욱 잘 섬기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고 합니다
후에 조덕삼도 금산교회 이대 장로가
되었고 자신의 집 마부였던 이자익을
평양에 있는
장로의 신학교에 보내 공부를 하게
했습니다
물론
장학금까지 주면서 말이죠
더구나 이자이기 신학을 마치고 목사가
된 후
금산교회에 담임목회자로 청빙하여
함께
교회를 섬겼다고 합니다
교회가 세워지는 곳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교회가
기독교인들끼리의 친목 단체가 아니라
자유를 선포하는 곳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복음을 통해 자유가 선포된 곳곳에서
조선 백성들의 어깨를 짓누르던
종의 멍에들이 하나둘씩 벗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를 믿게 된 양반들은
노비들이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들을 속량하고 나아가 자녀로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 신문이라고 하는이 신문에
보면
순환에 살고 있는
박인희라는 사람은 그 종을
속량하고
딸로 삼았다라고 말하고 있죠 또한
평양에 살고 있는이 씨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큰 돈을 주고 샀던 종을
속량하여 주었다는 이야기 또한이
신문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두 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이후에 일어난
놀라운 변화들이죠
그리스도 신문에 기사 하나를 더
보겠습니다
임신근이라는 사람에게 아들과 딸이
있는데요
지금이 두 부분은 아들과 딸의
결혼 문제를 의논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던 중 부인이 먼저 예수님을 믿게
되고 남편도 예수님을 믿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나죠 두 부부가 몇 주의
주위를 지키고 나서 그들이 나는
대화의 내용이이 신문에 기록돼 있는
것입니다
교훈
매매 온 보쌈이 당연하여
여성들의 권리가 없던 조선에
복음이 전해지자 내 딸과 며느리는
짐승이 아니요 사고파는 물건도 아니라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박수]
예수님을 믿고
이름도 없던 여인들은
이름을 가지게 되고
복음은 그녀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선물해 주었는데요
김세지라는 부인도 바로 그 중에
하나였습니다 오랫동안
이름이 없이 살다가 세례를 받고 나서
그녀에게 이름이 생겼고 그래서 그녀의
고백은 조선 여자의 해방은 우리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김세지 부인은 조선의 가혹한
결혼 제도에 피해자 중 하나였는데요
그녀는 어린 나이에 자신보다 나이
어린 남편과 결혼하는 조언의
희생자였습니다 더구나 그 어린 남편이
일찍 죽고 그녀는 보쌈에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둘째 남편과 드디어
헤어지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과
결혼했지만 그 역시도 조선의 연은
남자들처럼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그녀가 듣게 된 복음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만일 예수를 믿으면 집안이 평안해질
것이고
남자도 주색 잡기를 버리고 살림에
힘써 하여네
간 화순하게
되리이다라는이 말을 듣게 된 거죠이
말은 그녀를 교회로 향하게 했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했습니다 그 남편도 예수님을 영접하여
정말 가정의 평화를 선물로 받게 된
것이었죠
그런 그녀의 고백이 바로 조선
여자의 해방은
기독교에서
시작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여성을 천대하던 조선 그 조선의
가련한 여인들을 해방한 것이 바로
복음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황해도 평산 감바이골 교인들이
복음을 듣고 나서
결정한 내용은
정말로 재미있습니다 지금은
성경의 뜻을 안즉 이렇게 하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동네 외인들이 흉볼지라도
이후로부터는이 두 가지를 버리고
밥 먹을 때 부인들도 방에 들어와
남편과 같이 편안히 앉아서 먹기로
작정하자 한 즉 일심이 되어 그대로
하자
정말로 재미있는 기사죠
복음은 남녀가 서로를 존중하게
만들었습니다 한
밥상에서 밥 먹는 일이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조선은 그렇지 않았죠
그런 조선에 복음이 전해지면서 남녀가
한상에서 먹고 마시는
변화를 만든 것이
기독교 복음입니다
천민과 여성의 인권이 존재하지 않던
조선에
조선을 자유케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찾아온 선교사들 그들은 흑암의
땅 조선에
굳게 닫힌 빗장을
복음으로 열고 조선의 자유를
선물했습니다
그 선물은 지금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우리가이 자유를
의식하지도 못한 채 누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