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지켜낸 국군 장병들! 누가 우리 영웅들의 명예를 짓밟는가? "영웅을 귀하게 대접하지 못하는 나라는 멸망한다"[인도태평양전략연구원 / 공작관TV 그레이트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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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7. 18. #인도태평양전략연구원 #공작관TV그레이트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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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수용 올림 -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공작권 TV 그레이트 게임입니다 저는
인도 태평양 전례연구원의 철수입니다
오늘은 제가 특별한 분을 모셨습니다
옆에 계신이 여성분은요
지난
2002년도 우리
한국과 일본에서 공동 개최했던
월드컵
4강 경기
한국과
터키의 경기가 치러지던 바로 그날
오전에
서해안에서는
정말
역사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때 그때
그
연평해전에서
우리는 위대한 우리의 한국의 해군
용사
6분의 영웅을 우리는
잃었었습니다 그때
돌아가셨던 분들 중에 한 분인
한상국 상사의 미망인 되시는 김한나
씨를 오늘이 자리에 모 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벌써 온 세월이 흘러서
21년이란 세월을 지났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어원
강산이 두 번이 변할 수 있는 그런
세월이 흘러버리고 말았습니다
자 지금 우리 국민들의 뇌리 속에서
제2연평해전에서
돌아가셨던 우리의 영웅들을 지금
많이들
기억 속에서
잃어버린 분들도 아마 계실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그날의 그 우리의 상황을
잊어서도 안 될 것이고 또 반드시이
이야기들을
역사에 남겨서 우리가
귀한 교훈으로 삼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이 김한나 씨를 모시고 그동안
어떻게
지내오셨는지도
여쭤봐야 되겠지만 보다도
근본적인 것은요 지금 이런 그
유가족들께서
쉽지 않는 삶을 영위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상황을 여쭤보고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들과 그리고
대통령 이하
국가보훈처 또 국방부
여러 곳에 관련된
국가 공직기관에 계시는 분들한테도
귀한 말씀을 전해 드리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네 그동안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많이들 힘들게 지내 오셨을 텐데
최근에는 어떻게 지금
생활하고 계시는지요
요즘에는 그냥 지금 1인
하고 있고 그 다음에
며칠 전에
41째까지 하고 제가 더위를 먹어서
지금
병원 왔다 갔다
하면서 다시 몸 좋아지면 이젠 다시
시작하려고 지금
그러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면 지금 대통령 실 맞은편 그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1인실을 하고
계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과연 무엇 때문에 한낮씩 해서 직접
그 시위를 하시게 됐나요 이게 제가
한 2년 전인가
3년 전 날짜는 기 네 저희 아는
분의 군 행정사 하시는 분께서 지금
국방부 연금이
상사로 나오지 않고 중사로 나오고
있다 그럼 한번 확인 좀 해봐라라고
언제를 주셔서 제가 이제는 국방부
쪽에다 전화해서 확인해 보니까
국방부 연금이 중사로 나오는 거예요
저는 상식적으로 1개가 특징을 했기
때문에 이제 상사로 나올 거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근데 중사로 나오고
있어서 아 이거는 아니지 않나
하고 이제는 그 사실을 안 그 해부터
저희 이제는 감사하게도 양 정당에서
저희 행사 때
[음악]
19년인가 19주년
될 거 같아요 거기 끝나자 만나서
이거는 아니지 않느냐 이거 바꿔달라
이거는 법으로라도 바꿔 줘야 된다 법
때문에 안 된다고 하니
법령을 좀 바꿔달라고
읍소를 드려서
작년 1월 달에 발의를 했는데 통과가
안 됐어요 그리고 이제는 아 근데
제가 이제는 기다렸거든요
작년에 20주기
국방부 장관께서도 아 연금 저희가
어떻게든 하겠습니다라고 약속을 또
하셨고 하셨고 또 올해 이젠 그
정권이 바뀌면서
연정권이 들어왔잖아요
윤석열 대통령께서도 이게 공약이에요
그래서 1월 25일 날 이제는
기사 난게 있는데 이건 공약이다
이거는 잘못됐다 이거는
고쳐야 된다라고 얘기를 하셔서
공약으로도 내놓으셨기 때문에 이거는
활발하게 이젠 이루어지고 있는데 안
되고 있더라고요 제가 계속
기다렸거든요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좀 보탬이 되고자 1인 시위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지금 보면은 그 우리나라에도
재보궐 있고 근무하시는 분도 있어요
가장 대표적인 계획 우리 군인들이
되겠는데
저 또한 국립묘지에 저희 아버님께서
벌써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국립묘지 현충원의 영면에 계십니다
그런 제가 과거 기억을 되살려 볼 때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고 나
합동 유령제를 지내던 날 그날 공군
조종사 아마 대위 정도 되셨을 것
같아요 한 4살 5살 정도밖에 안
되는 아장아장 걷는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오셨던
리마인을 전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냐면 저희
아버님께서도
맹호부대로서
1967년과 1970년 두 차례에
걸쳐서
월남전에 다녀왔던 월남전
참전용사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날 그 아버님의 그
합동 유령제를 지내는 날 만약에
아버님께서
베트남에서 돌아가셨더라면 나 또한
저런 운명이 됐을 텐데 하면서
불과 같은 처마 밑에서 아버님과 사는
것은
5 6년이 최 안 되었지만 어쨌든
계속해서
돌아가시지 않고
고등교육을 마칠 수 있게끔 저를 길
아버님께 다시 한번
마음 깊이 감사를
국립묘지 현장에서 제가
느꼈던 소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그 김한나
씨도고 한상국 상사의 미망이 되셔서
참
결혼 생활도 1년도 채 못 하셨죠
아마
그렇죠
그런데 지금 벌써 온
21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자
군인이 전사를 했으면 1계급
촉진시키는게
당연하죠 그리고 제가 알고 있기로도
한상국 상사는
벌써
그니까 배에서 그 참변을 다하듯 그
6월 29일 이미 중사로
진급을 한 상태였습니다 그랬었죠
중사하도록
그렇게 나오는 걸로 되어 있었죠
임명장을 받게 되는데
그때는 이제
6월 29일 날 그 일이 데리고 나서
그 읽고 나서 이제는
중사로 해주셨어요 그래서 이거는
이틀 남겨놓고 이건 억울하다 이거는
아니지 않느냐고 얘기를 했지만 그 뭐
소용이 없었고요
2015년도에 다행히도 저는이
연평해전이란 영화가 나왔고 또 이젠
그
여론을 형성을 시키고 또 제가 청원
운동도 같이 하면서
바꿔달라 그리고 그 전에 이제
2010년도에 이제는 천안함 독침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이제는 그때는
다 상사로 다 이렇게
다 만들어 주셨었어요 그래서
형편성이 어긋나다 저 이거 좀
바꿔달라 그래서
여론이 형성이 되니까 그때서야 이제는
다시 상사로 한 번 더 이제는
특징이 된 거죠 자 그러면 우리
군인들이
재벌이 있고 국가 국민을 위해서
헌신하는 과정에서
느닷없는 예상치 못한 북괴의 남침으로
인해서
연평해서
작렬하게 전투를 하다가 그 참수로
했던 여섯 분의 우리의 영웅들께서
운명을 달리 하셨습니다 자 그런데
지금 그
국방부는 지금 말씀처럼 그
당시고 한상국 공사가 상사로 취소가
됐죠 그리고
났을 때도
계속해서 지금 중사로서의 해당하는
연금만을 지급했었다
그런데
국방부 혹은 국가보훈부에서는 어떠한
설명이나 해명이 좀 있었습니까 저희는
그 받을 당시에 사실 제가 이제
국방부 연금을 제가 받고 있지 않고
처음부터 저는 다
시부모님께 드렸기 때문에 저는 얼마
나오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개선된지도
몰랐고요 저한테는 그런 계산한 그런
거를 알려주거나 이러지 않았어요 그
당시 때는 2002년도에는 그리고
제가 이제는이 일 있고 나서 제가
이제 부모님께 여쭤보니까 아버님께
여쭤보니까 설명 받은게 없다이 부분에
대해서 이게 얼마 나오고 이거는
이렇게 해서 중사로 나가는 겁니다라는
설명을들은 적이 없어요 저 차라리
설명을 들었으면 아마
반감이 되게 심했겠죠
국방부에서도 아마도 그런 거는
생략을 하고
여태까지 그냥 쭉 그렇게 내려온 거
같아요
자 그러면 저기
듣기로는 그 국민의 힘 그 예비역장성
출신 한기호 님께서
군인사법 개정안을
작년도 1월 달에 이제 대표 발휘를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근데 아직도 그 법이 통과가 안 되고
국회의 계류 중이라고 합니다 그건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작년 1월달에
발의를 하셨을 때요 제가 알고
있기로는 8월 달에 검토가 끝나서
검토 보고서를 봤는데요 그 검토
보고서에서는
군인 사법에 맞지 않다
군인 재보상법이나 또는 그
국가유공자의 그 지원 및 등을 그런
법이 있어요 그 법으로 하는게 맞죠
적당하지 않겠느냐에서 다시 하라 다시
하라고 해서 이제 계류되었다가 요번
5월 달에 제가 이제 5월 10날부터
이제는 그 1인 시위를 시작을
했거든요 그때
시작하고 나서
20 몇일 24인가 25일쯤에 이제는
그 법사위가 있었어요 그래서 법제가
있어서
법사에서 이렇게 하다가
통과를 요번에 또 못 했어요 왜냐하면
요번에는 그 민주당의 권체성
위원님께서 아니 전사전만 하면 이거는
형평성에 어긋나다
군만 하면 안 되지 않느냐 경찰이고
소방관도 있는데
[음악]
그러면 그래서 안 된다 형평성이
어긋나서 안 되니까
통과를 못한 거야 요번에도
그러면 제가 이제는 말씀을
드렸어요 전부터 계속 말씀드렸어요
이건 공무원
재해보상법
군인재해보상법 제가 뭐 경찰이나
소방관까지 그 법을 보지는 못했지만
공무원재의 보상법은 다
한꺼번에 되어 있는 거니까 거기에
퇴직 전날로 본다라는 그 문구가
있으니 그거를 바꿔 주십시오 우리가
제목에 보신 분들 우리 군뿐만 아니라
그 제복해 보신 분들에 대해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잘못된 거는 바뀌어야 되지 않냐
이런이 부분에서는
언제 어느 때 갈지도 모르는데 그럼
남아있는 가족들한테 그 몇 푼 안
되는 거지만 몇 푼이 아니라
명예를 이왕 가시는 길
명예스럽게 보내 드려야 되지 않겠느냐
그리고 남아있는 가족들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제가
의원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아 그거는
좀 생각을 알고 있다 알고는 있는데
본인은 이제 군인이셨으니까 이걸 다
할 수가 없어서
그젠 제가 이제는
권선동 의원께서 제가 이제는 그쪽에다
연락을 해서
연락을 했고 또 이제 연락이 잘 돼서
이젠 그걸 이제 1월 달에도 제가
계속 말씀을
드렸거든요 그분도 알고 계세요
그분께서 그러면 우리가 다 하자
저쪽에서 안 된다고 하니 우리가 다
하겠다고 해서 지금 하나부터
그러니까 군 경찰 소방관 다 발의를
하시겠다 하셔서 지금 하고 있는
중이세요 그래서
의원이 지금 공무원 재해보상법을
바꾸겠다고 그걸 이제는 발의를 하고
계시고요 하나씩 하나씩 있으면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보면 그
민주당이 그 뭐 한미연업사 부사령관의
김병주라는 자가 그 국회의원 군필지를
달고 있던데 그자가 지금 그 뭐 또
하는 얘기들 보면 이런 것들이 그
군인사법에 맞지 않는다는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거 같아요
군인사법
인사법으로 말씀하시면 인사법이잖아요
그냥 군인 사법
군인의 해당되는 모든 법을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이 부분은 이젠 아무래도 이제
그 연금에 관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
군인 사법은 전체적인 내용이 들어
있거든요 거기 거를 다
뜯어고치면 안 되고 거기 있는 거를
뜯어고치는 것보다
군인 재보상법 거기 거를 뜯어 그
문구를 뜯어서 바꾸는게 낫다라고
생각을 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계류를 한 상태고 아예 폐기된게
아니라
계류하고 다시 또 이젠 또 하실
거라서
근데 아마이 김병주 같은 사람들은 그
똥별 출신이라서 그 우리 그 야전에서
그 열심히 일하고 또 순직한 사실
한상사님 같은 경우는
순직단이 전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현장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이런 똥별들은
그러한 우리 그 현장에 우리 그 참
군인들의 그런 거룩한 희생이나
봉사 이런 것에 대해서 아마 전혀
공감을 하지 못한다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래서 그거는
저는 그런 생각이 좀 듭니다
제가 뭐라고 감히 말씀을 드릴 수는
없지만 제가 요번에 이제 21주기 때
오셨어요 저희 이제 21주기 때 그
이명 이재명 그 당 대표를 모시고
오셨더라구요 저희는 깜짝 놀랐어요
사실은 이제는 그
웃지 않을 거라고 왜냐면
원래 20주기는 크게 하고 우리가
이제 50 15 이렇게 크게 하잖아요
주기마다 근데 이제 21주기니까
이제는 크게 할 거라 생각 안 했는데
국방부 장관님도 오시고
양 정당 대표 다 오시고 김기현
대표님께서는 이제는 몰랐다이 사실을
지금 알았다 아 내가 이거를 꼭
하겠다 미안하다 그리고 너무 존경하고
사랑한다 뭐 이렇게 뭐
쇼지만 그래도 어쨌든 뭐 진심을
다해서 그래도 말씀을 하셔서 아 그럼
믿겠다 그럼 꼭 좀 이걸 관찰시켜서
꼭 해달라 그리고 이재명
당 대표한테 제가 얘기를 했어요
말씀을 드렸어요 이런 거 좀 있으니
좀 바꿔달라 반대만 하지 마시고 좀
요번에는 좀 통과시키기 좀 해 달라
말씀을 드렸는데
살펴보겠다까지 말씀을 하셨고 그
다음에 김병주 의원도
의원님께서도 의연노라고 하면 안 되죠
의원님께서도
살펴보겠다 가시기 전에 처음에는 인사
별로 이렇게 떨뜨름 하시더라구요
왜냐면 예전에
전사자를 안 하고 순직자라고 써
놓으신 거예요 제작 작년인가 아니
그래서 20주년 아니 20주기 어떻게
이거 전사자하고 전 순직자를 구분을
못 하시나 아니
군에 오래 계신 분 아니에요 그래서
너무 실망스럽다 이런 걸 쓴 적이
있어요 그걸 아마 보셨나봐요 실수했다
미안하다 뭐 이렇게 얘기를 하신 적
있는데
그래도 그거를 전체적으로 저한테 뭐
따로이 뭐 보좌관께서 따로 연락은
왔지만 그래도 본인이 지적하셔야죠 뭐
보좌관 시켜서 사과를 시키는게 그게
무슨 사과예요 솔직히
아니 뭐 전화번호라도 아니니까 그냥
미안하다 뭐 문자라도 주면은 뭐 누가
뭐라고 합니까 근데 그걸 좀
서운했어요
서운하기도 하고 아
별게 아니구나
이런 일은 별게 아니구나라고
생각하는구나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근데 사실 우리가 우리나라가
전사자법이 이게
생긴게
2004년도에 생겼으니까 전사자랑
개념도 없었어요 사실은 다
돌아가시거나 그냥 그 나라에서 뭐를
하시고 돌아가신 분들은 다 숨직으로
만든 거예요 공모 중 사망 막 이렇게
나오고 그래서 왜 공부 좀 사막이냐
그것도 따져가지고 전사자로 다 아니
연평해전이라는 내가 이름을 붙여줬지
않으냐 그러면 연평해전에서 전
사셨다고 써줘야지 모빌리면 얘기해서
예전에는 그게 하나도 안 돼 있던
거예요 그래서 그거를 다 열심히
열심히 제가 이제 20년 동안
물론 제가 다 했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그래도 제가 열심히
바꿔야
됩니다라고 말씀을 드리고 또 일하시는
분들의 그 뭐라 할까 좀 제가
말하는게 아이 여자가 말하는게 맞다
이게 틀리지 않느냐 해가지고 많이들
도와주셔서 이게 많이 바뀌어 가지고
온 거거든요 그래서
2004년도에 전사자법이 생겼지만
저희는 소급적용이 안 됐어요
전선석법이라는게 그냥 나라에서 너무
적금주니 좀 더 챙겨주자라는
의미로 그 금액을 좀 상적 높게
상정해서 주는 거였거든요 그래서 아
이게
그러면
소극적용이 안 된대 안 된다고 하니까
그럼 저희는 전사자라는 것을 저희가
인정을 못 받는 거 같은 제가 알기로
제가 느끼기엔 그랬어요 그래서 저는
이거 안 됩니다 바꿔야 됩니다 해서
2017년도에 다행히도 전사적법이
통과가 됐어요
발휘를 해서 통과가 됐어요 전사적
연평해전 전사자 특별법 해가지고
그래서 아 그러면 그때서야 나는 이젠
인정을 받았다 나라에서 우리가 이젠
전사자라는게 인정을
받았다라고 생각을
했고 이젠 제가 다 회의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딱 나타난 거예요
그래서 어쨌든 이거를 마지막으로
해놓고 이제 끝내야겠다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제가 얘기가 살짝 옆으로
샜지만 아무튼 저희가 이제 그
전사자나 순직자가 구분이 안 돼
있어요 그것도 나라에서
쓰지를 않으니까 잘 쓰질 않으니까
국민들도 헷갈리는 거예요 사실 저도
국간직구 시절에 있었던
아마 그 이유 같기도 한데 그 우리
블라디보스
러시아 연예주 지방 있잖아요 거기에
나가 있었던 우리 그 최덕근 선배라는
분이 계셨어요 그분이
북한 요원들한테
도끼로 두개골이 한 10여 차례
얻어맞으면서
골이 완전히 깨져서 함몰돼서
돌아가셨어요 그야말로
처참하게 사례를 당했는데요
그때도 보면은
만약에 그 우리가
한국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만약에
유혼이 가서
그렇게 당했다는 아마 그쪽 지역을
아주 초토화시켜요
그런데 그때도 우리가 보상을 못
했어요
그거 하겠다 그런 이제 미친놈이 되는
거죠
근데 사실은 그 김대중이라는 그
천하의 그 몹쓸 인간이 그 당시에
대통령으로 있었다고요 그리고
월드컵 4강전을 하던 바로 그날
아침에 공구시
45분인가요 그때 이제 그런 참극이
발생을 했었죠 사실은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는
무자들에게 가서 저게
근거지를
갖다가
완전히 그냥 잿가루로 만들어야 되는데
그거를 안 하고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정도의 그 국가를 위해서
희생했던 우리 영웅들의
정말
갑옷이 그렇게 돌아가셨으면
불구하고 못 했어요 그나마 남아있는
유족들한테도 이런 식으로 한다는게
제가 또 다른 자리 이런게 있어요
국군포로로
붙잡혀갔던 분들이 그냥 그 탄광
지역이나 이런 데서 그냥 평생을 그
탄광의 광고로 일하시다가
그렇게 해서 이제 가정을 이루고
살았던 그래서 이제 자식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한국에 왔을 때요
일가친척의 유전자 다 확인해서
아버지의 그 dna가 일치한다는 걸
증명을 해도
인정을 안 했죠이 이런게 이제
대한민국인데 자 그러면
굉장히 지금 우리 김한나 씨도 속이
많이 상하실 것 같은데
그러면
지금 법안이 지금 만약에 제대로 지금
국회를 통과하고 개정이 된다
근데 또 상황은 소급 적용은
불가능하다 이런 말씀 아니에요 왜냐면
우리나라는
법의 정해지면 그 정해진 날짜도
시행이 되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
이전권이 정권은 소급 작용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그 제가 받는게
문제가 아니라 제가 받지도 않지만
물론 저희 부모님이 더 많이 받으시면
더 좋겠지만 그 받는게 문제가
아니라요 이거를 바꿔 놔야 내가
나라를 위해서
뭔가 나라의 문제가 있었을 때
앞서 나가서
막아주고 우리 시민들을 챙겨주고 이런
분들이
가족들 생각 안 하고 바로 뛰쳐나가서
할 거잖아요 그 사명감으로 일을
하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근데 그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저는
소극적인 안 받아도 상관없어요 받을
수도 없지만 그럼 욕심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다만
법을 바꿔놔야 그래도 앞으로 좀
발전이 있지 않을까
국가를 위해서 희생한 우리 재보궐
입었던 우리 군인들이
국가를 위해서 희생했을 때는 거기에
상응한 우선
경제적인 보상도 있어야 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
고인 되신 분들을
명예를 갖다 우리가
또 그분들을
역사책에도 기록을 하고 우리가 참
늘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 생활에
우리 자녀들한테도
귀감이 되는 그런 우리의 영웅들로
그렇게 이제 기록을 남게 될 텐데
지금 하고 있는 거 보면은 참 그
안타까운게 한두 가지가 있습니다 자
그렇습니다 그러면요
요즘에도 보면은 그 지금 우리나라에
친북 좌파 세력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2010년도 3월 달이죠 천안함이
복진당했을 때도 그때도 보면은
교회담을 형성해서
무슨 뭐
잠수함이 와서 들이받았다
온갖 설들이 많이 있었죠 자 그러면은
당시에도 보면 우리 천안함 한주호
주님까지 해서
총
46분의
47분 그러니까 한 주 주인까지 해서
47이죠
그러면 그때에 그 천안함 때도 그
많은 시상자도 있었고 또 유족들이
마음고생을 엄청 많이 한 걸로 알아요
지금 보면 우리 김한나
씨도
굉장히 그 많은 그 삶에
고통과 그 어려움이 적지 않으셨을
텐데 자 지금 이렇게
부군 되시는 우리 한상사님이
올라가시고 나서
연평에 좀 관련해서 지금 남편을
기억하면서 책도 쓰시고
여러가지 또 1인 피켓 시도 하고
계시는데 지금 어려운 점이 적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더
심했었어요 왜냐면 천안함 폭침에
관해서는 그 정권이 바뀐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명박 정권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일주일 내내
tv로
생중계를 하고 중계를 해줬단 말이에요
근데
저희는이 김대중 정권에서 김대중
정권이 펼치는 햇빛 정책으로 인해
완전 묻혔어요 그리고 그때 큰 행사인
월드컵에 있었기 때문에
니네가 뭐 어민이 넘어갔다 우리가
넘어갔다 너네가 잘못했네 니네가
그러니까
북한의 잘못이 아닌이 햇빛정책으로
인해서
햇빛정책을 해서 북한하고 끊어지고
싶지 않으니까이 정권이 그냥
묻어버린 거야 묻혀버린 거예요이
사건을 이건 별일 아니야 이거 그냥
작은
충돌이었을 거야
충돌이었기 때문에 별일이 아니야
그렇게 만들어 놨기 때문에
엄청난 더
음모론이 엄청났었어요 뭐 그때는
인터넷이 그렇게 많이 발달되지 않은
상황에서 2002년도에는
인터넷이 있었지만
근데 그때 막 그 연평도 총각이란
사람이 막 말도 안 되는 뭐 우리나라
어부가 거기를 넘어가서 그걸 구해
오느냐부터 시작해서 그 다음에 뭐
포를 어떻게
쌓았고 막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게
공장인 거죠 우리가 뭐든지 얘네들은
뭐냐면요 북한이 잘못한게 아니다라는
거를 하고 싶었던 거예요
근데 얘네들은 분명히
2000
199년도에
제1연평해전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때는 저희가 밀어내기 식으로 해서
저희가 승리를 했어요 쟤네를 쫓아냈단
말이에요 그때 얘네들이 3년을
설혹해서 벼르고 벼르고 내려온 거예요
얘네들 배에다가 85mm짜리 대포로
달고 내려왔어요 그리고 모든 판을
철갑탄을 쓴 거예요 그냥 일반 탄이
아닌 거예요
근데 이거 내려올 때도
분명히 그 첩보부대에서
감지를 했어요 발표하겠다
얘네들은 내려가면 우리가
복수를 하겠다라는 거를 해서 발표를
나왔었어요 그래서 그걸 가지고 청와대
국방부에 다 그 보고를 했는데
묵살당했어요 이거를 그래서 제가 그게
한입 많이 남아 있어요 정부에서
묵살했기 때문에 아니면 뭐라도 조금
언질을 줬으면 아마 좀 달라지지
않을까 물론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근데 제 생각이 짧은 생각으로는 좀
먼지를 줬으면 너네 조심해라 나가는
애들 다 조심해라 항상 조심하라고
얘기는 하지만 정부 자체에서
국방부 자체에서 야 이런게
들어왔으니까 너네 조심해라 이렇게
했었어도
뭔가 조금이라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근데 그런게 없었어요 그런데 그거를
보고한 그
장군을 소장님이셨거든요 한칠용
그분이신데 그분은 그분을 잘랐어요
아마 그분이
그분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쓰리세븐 부대장을
잘리냐 나는 내 일을 했을 뿐이다라고
해서 소원송을 해서 이겨가지고 다시
그 자리에
하신 거예요 그래서 지금 제주도에
사시는데 그분이 책을 쓴 책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 것도 있고 그 그런 거를
가지고 내려왔는데도 불구하고 그거
아니다 그냥
잠깐 이렇게 설치하고
얘가
북한에서 그냥
실수로 싼 거야 근데 우리가 대응한
거야 이런 식으로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래서
그 처음에는 막 우리가 잘못됐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니까 해군에서도조차도
우리 3월 7일이나 3월 7일에
근무하셨던
생존 장면들도 다
패전병들 왜 왜
지구와가지고 이렇게 우리 힘들게 하는
거야 막 이런 식으로 보는 시선과
배가
침몰했기 때문에 졌다라고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계속 그건 아니거든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되는데 전체적인
걸 봐야 되는데 그거 하나만 보고서
침몰했으니까 졌는데 뭘 그 증거
사실이잖아 막 이러면서 사람들이 너무
그런게 많아 가지고 제가 너무
우리 가족들은 얼굴도 못 들었어요
재인 취급 당해가지고 너무 완전 너무
힘들었었어요 너무 제인취급을 당해서
아니다 이거 아닌데 해서 하나하나씩
찾아서 이거 아니었다 이게 이건데
너무 억울하다 우리는 이게 아니었다는
걸 계속 이제 밝혀졌죠 제가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부터
여태까지 이제 제가이 길을 해오면서
이거는 제가 아니면 해결할 수 없다
왜냐면 제 남편 일이고 제가 제일
가까웠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여기까지 온 거였거든요 근데
진짜 너무 많은 음모론이
장난이 아니었어요 진짜로
자 지금 우리 김한나 씨께서
증언하고 있듯이
남아있던 유족들이 너무나도 많은
심리적인 압박과 고통 속에서 그
기나긴 세월을 견뎌 오신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제가 중간에 이제
2005년도에 미국에도 가고
캐나다도 가고 그냥 갔다 다시
돌아오고 그 다음에 또 2005년에
도저히 안 되겠다 이런 나라에서 내가
살 수가 없다 그래서
미국에 가서 3년 만에 다시 돌아왔죠
근데 그때부터 이명박 정권 들어오면서
이명박 정권에서 이제는 명칭도 바뀌고
서혜교전이었잖아요
명칭이 굉장히 중요한게요 지금도
사람들의
얘기를 해요
근데 저희는 나라의 정부에서
바꿔줬는데도 그거를 이게 퍼지지가
않으니까
연평해전이라고 잘 안 해요
그러니까 이것도
명칭도 바뀌고 그 다음에 저희가 이젠
제가 원하는 다섯
가지가 있었는데 다 이루었거든요
그러니까 뭐 얘기가 특징도 됐고 그
다음에 이제는 357 배도
전쟁기념관에 옮겨 달라
근데 옮기지를 못하니까 그거를 이제는
모형으로 똑같이
배 그 배 똑같이 만들었어요 그래서
그게 한 30억
들었다고 얘기를 들었어요 그것도
해놓고 그 다음 명칭도 바뀌었고
그다음에 우리 유공자 우리 대원들
살아가 계신 그 생존 대원들이 한 번
지금 한 번 빼놓고는 지금 다
유공자가 됐어요
심사를 앞두고
분만 계시고
그래서 제가 원하는 사실
훈장이 그
월드컵 때는 월드컵 이사장 선수
그다음 선수들이랑 그다음에 그
임원단들 있잖아요 다 우리가
훈장에 1 2급 1급도 5급까지
있잖아요 그게 체육도 있고 그다음에
군도 있고 여러 문화도 있고 있는데
체육 쪽에는 11등급을 받았어요 근데
저희는 4 5등급을 받았어요
물론 그분들도 나라 위해서 위상을
높였죠
근데 나라를 지키다 가신 분들은
4 5등급을 받았어요 이게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이것 좀 바꿔 달라고
했는데
한 번 준 건 끝난다 그래서 더 줄
수는 더 줄 수 있는 있지만 더 줄
수는 없잖아 이게 형평성이 어긋나니까
왜냐면 우리가
국지점부터 시작해서 저 6.25
전쟁부터 시작해서 국제전이 얼마나
많았어요 그런 분들 다
항상 국방부에서 하는 얘기는네 거
해주면네 남편까지 해주면 다 해줘야
된다 아니 다 해줘라 다 해주는게
맞지 않느냐 우리가 저는 항상 그렇게
주장을 해왔거든요
근데 어쨌든 그것만 빼놓고는 제가
이제는 다
원하는 대로 많은 분들이 도움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제 저는 이거
하나만 남았습니다 제가 사실은 이제
안 하려고 했었어요 그냥 조용히 제
삶을
저는 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이만큼 해놨으면 이만큼 다
이루어졌으니까 저는 이제 할 일을 다
끝냈다 그래서 이거를 이거 하나만
남았어요 저는 지금
꼭 잘 마무리되기를 바라고요
감사합니다
그러면 지금 윤석열 정권이 출범을
했고 또 공정과 상시의 의거해서
법치를 근간 모든 국가를 갖다가
7위에 나가시겠다
그러면서 이제 국가 정상화를 갖다
이제
윤 대통령께서 하신다고 해요 그
혹시
윤석열 대통령한테 좀 하고 싶은 얘기
있으시면 좀 한마디 해주시죠 제가
제가 이제 모든
첫 번째로는 재봉 입으신 분들의
관한 정당한 대우
명예를 세워 주셨으면 좋겠고요 두
번째는 빨리이 법이 통과가 돼요 제가
1인 시를 지금 그만했으면 지금은
잠깐 소강상태지만 1인실을 그만
했으면 좋겠고요 세 번째는
그 우리가 그 전쟁도 마찬가지로
일어난 순서대로 얘기를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근데 항상
천안함 얘기할 때는 그 천안함 얘기
우리 얘기할 때는 우리 얘기가
명칭이 나오는게 맞지만 이거를
연평도 포격이라니까 세계를 다 묶어서
얘기할 때는 항상 천안함이 먼저
나오더라고요 그게 먼저 나왔다고 해서
기분 나쁘거나 그런게 아닙니다 여러분
뭐냐면 일어난
순서대로 해줘야
국민들이
헷갈리지 않아요
국민들이 뭐라고 하냐면요 저한테 제가
이제 sns에 페이스북을 하고 있는데
거기서 항상
천안함 얘기 나오면 저한테 같이 와서
저는 분명히 대문에다 연평해장을 너무
훌륭하시다 저는 차단하는 유가족이
아닙니다 그건 굉장히 실례되는
얘기예요 예 그거를
천안한 유가족으로 한 번만 들었으면
몰라도 그게 아니라 한 사람만 그런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저한테 그렇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저는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어요
99년 제1연평해죠
2002년 제2경택이죠
2010년
천안함 폭염 그 다음에 그거는 3월
달이고
2010년 11월 달에 연평도 포격
그 다음에 이제는 대청 해전이 있어요
몇 년도인지 갑자기 저도 까먹었는데
순서대로
순서대로 써주셨으면 좋겠고 순서대로
얘기해 주셨으면 좋겠다 이거는
정부뿐만 아니라
언론 쪽에도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희
지금 제가 이제는 소강상 제가 지금
1인실을 못하고 있는데 못하는 못하고
있는 대신 이제 더위를 먹어서 제가
좀 쉬고 있고 못하는 대신 제가
이제는 그
서명 운동을 하고 있어요 여러분 제가
우리도 링크를 좀 달아주시면
여러분께서 많은
분들이 서명해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 우리 이거
애청자 여러분 오늘 그 김한나 씨께서
나오셔서 지금 이제 제가 이렇게 들고
있는게요 우리 제2연평해전에서
당시 어 전사했던 우리의 영웅들이 배
이름이요
pkm 357호가 되겠습니다
꼭
당시
2002년도
6월 29일 아침에 벌어졌던 그
참담했던 일을 우리가
기억 속에서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그때
고귀한 생명을 바쳐서 나라를 위해서
전사하셨던
우리의
6분의 용사들에 대해서도 우리가 늘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우리의
고마움과 따뜻한 마음을 전달해야
되겠습니다 오늘
책을 하나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영웅은 없었다입니다 영문 없었다
우리가 한산국 상사 이방이신 김한나
씨께서
직접 이렇게 만드신 책자입니다
그래서이 기억하라 357호입니다이
책을 가능한 좀 많이들 좀 구매해
주시고요 또 이런 책을 통해서
얼마나 우리의
귀한 자유와
민주주의가 이분들의
희생과 헌신 속에서
지켜질 수 있었음을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자 국민 여러분 오늘
이렇게 한상국 상사의 미망인이 되셨던
우리 김
21년의 세월을 경과한 후에도
여전히 회복되지 못하는 그런
남편과 또
다른 다섯 분들의 그 명예회복을
위해서 이렇게
애를 쓰고 계시다는 것을
국민 여러분들께 알려드립니다
동시에
2002년 6월 29일 날 벌어졌던
당시 김대중 정부 하에서 이루어진
여러가지 사태를 보시면 지금 왜
북한에서도
우리 대한민국의 대통령까지 지냈던
김대중에게 향해서
철천지 원수라는 얘기를 우리 국민연인
북한 인민들이 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이야기는요
김대중이 다 죽어갔던 김정일에게
돈과 곡식을 가져다 주지 않았으면
김정일 정권이
붕괴되어서
북쪽 인민들이 자유로운 해방을 맞이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김대중의 그와 같은 반역사적인
활동
즉 모반과
역모에 해당하는 그런 끔찍한
범죄행위를
북을 도와줌으로 인해서이 나라는
결국 전진하지 못하고 아직도
뒷걸음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국민 여러분 오늘 이렇게
귀한 발걸음을 해주신 우리 김한나
씨에게도 많은 관심들을 가져주시고요
그리고 이미 하늘나라에가
계신 우리
제2연평해전에 우리의 자랑스러운
6분의 우리의 영웅들을 우리 다시
한번
기억하고 또 그분들을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아 그분들의 넋을 위로하고
우리가 잘 살아갈지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당시 참술이 사무치레는요 정장으로
근무했던고
윤영하 소령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타장을
했었던고 한성국 상사 그리고
경기장을 했던고
조천형 중사고
황도현 중사 그리고 내연사
고서후원 중사 그리고
의무병고
박동혁 병장 이렇게 해서 모두 여섯
분의 영웅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서이 나라를
인하이 나라에
서해 바다를 지켰습니다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이 영웅들
6분의이 영들을 우리 국민들 모두
가슴속에 새기고 이분들의
녹슬 위로할뿐만 아니라 우리가
도가 한 걸음 나아가서
북한 지역을 해방시켜 버리고이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가
달성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
오늘
귀한 발걸음을 해주신 우리 김한나
씨에게 거듭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네
고맙습니다네
국민 여러분 오늘
참으로 의미 있는
녹화를 하게 됐습니다 오늘도 저희
공작권 TV 그레이트 게임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건강하십시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