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송과 명대 성리학자 묘소 탐방기 - 조남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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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다음은 이제 북송 시대에서 이제 다시
남송 시대로
넘어오면이 저기 우리 호남학 여러분들
많이 배우시죠 호남학
도남막창 쪽으로 간 사람들이 이제
호국 호갱을 거쳐서 장식을 거쳐서
주위로 이어진다고 후난 슈에
호남학이라고 하는 것에 대표적인 것이
호국과 그 아들이라고 하는 분이
있는데 여기 하는 것처럼 호국과
호갱의 묘소에 근데 잘
보시게지만 문정 문정 호정이 것이
호저
한국이고 부인 유하고 또 옆에다가
저기 저이 호갱이 하는 사람도 같이
묘소를 썼어요 그니까 아버지 어머니
아들을 같이 합장을 했어요 이거는
보시는 것처럼 남성 상
샹탄현 베드 황평 황형 평촌이 데를
찾아갔어요 여기에는 뭐냐면 이제 그
형산이라고 하는 데에서 그 택시
잡았다고 두시간 반 걸리는 데에
있더라고요
그래서 택시 기사도 두 손 두발 다
들었어요 한고은이 어디 이런데
찾아오고 그래서나요이 사람 요새 공부
열심히 한다고 그 있잖아요 어 그
호남학 도남
주자 공부하시는 분들은 반드시 공부
호자 지연이라고 하는 걸 썼는데
유감스럽게도 호남성 인물들이 너무
많아 거게면 무슨 모택동 있고 팽덕회
있고 무슨 뭐
하여튼 걸리는게 다 중국 근대사의
인물들은 다 호남성 사람이에요 그 아
이게 중국이라는 데는이 우리가
춘추전국 시대는 다 뭐야 산동성
사람이야 그리고선 산동성에 인물이
없어
이게 인물들이 다
돌아요 그리고 아까도 얘기한 것처럼
근현대 모택동 시절에 다 남성이
그다음에 장점 이시절에는 또 다 상하
방이야 이해됐어요 그까 이게
번갈아가면서 이거를 하는 거지 어 그
당시에는 그 사람들이 다 장악을 하는
거야 그렇게 되더라고 그래서 오
여기는 그래도 세대
교체가 그 성 우리나라 커요
사실은 절강성 우리가 중국 중국
하는데 제발 중국은 하나의 국가가
아니야이 이게 너무너무 커 그래서
중국에 대한 환상이 우리가 너무
얕잡아 보는이 한국 사람들이 되지도
않게이 아까도 얘기했잖아요
그니까
형산에서이 호남성이 호국의 묘소를
찾아가는데만 두시간 반이 거 택시
잡았다고 중 예 아실 거예요 주 여
내가 다 잡아놓고 여기다가 해놨어요
이게 이렇게 찾아가 보라고 이게
굉장히 쉽지 않은데
그러니까이 여기다가 묘수를 썼다고
하는
거랑 왜 여기다 썼는지 아직 저기를
못 찾았어요 제가 아직 공부가 거까지
못 갔는데
하여튼간이 호환 국이가 이제 그
기록에 의하면 저 이쪽 그 남북
멸망하고 나서 그리고서는 이제
이쪽으로 내려오다가 길에서 죽어
가지고 그래서 여기다가 쓴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주자가 주자 우려에서
얘기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이 호남성
여기다가
그 쓰지 않았는가 저는 그렇게 추측이
들어요 그리고 그 호남성의 있었기
때문에 이제 호국의 아들인 호갱 이제
여기에다 같이 붙이지 않았는가 이런
생각이 들고 여긴 너무 초라하고 생각
보세요 여기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
밑에 어 호국 적기도 없고 호갱
적기도 없고 우리만 호나 호나 그래
가지고 유명하게 되는 곳이었다고 하는
거 그다음은 제이 아까 얘기한
것처럼이 주희 주자라고 하는 분이고
주자라고 하는 분의
특징이 2015년에 제가 여기 4월
6일 날 갔다고 써 있네요 이게
갔는데이 그냥 한 갈수는 없고이 여기
보이는 것처럼이 오양주 고량주 한 명
사 가지고 저기 했는데 그날이 이제
음력으로 3월 3일 삼진 날이여
가지고 그래
가지고이이이 저 누가 왔는지 저렇게
저 조화에 또 엄청나게 또 폭죽을
터트려 신들 깨어나라 그러는 건지 그
여기 보면 저 폭죽 터틀이
상이죠 저 혼 상이 혼들이 놓이는
상이죠 우리를 얘기하면 유원 혼들이
놓이는 상인데 굉장히 지저분해요
그러니까 저게 죽 퍼티는 것까지데
거리를 안 하고 간다 이건 중국분들이
좀 반상 해야 될 점이 아닌가 치우지
않고 그 어순 모습을 하는 거고 두
번째는 여기에다가 돌을 죄에 쌓
가지고 그 다른 데는 그워
저기를 많이 해가 시멘트로 발라
놨어요 마테오리치 뭐 무덤 이런 데를
가보면 시멘트로 다 저 도굴 하지
말라고 그리고 풀 나지 말라고 이렇게
했는데 여기는 이제 도를 저기를 해
가지고 저
이렇게 이렇게 쌌다고 하는
거 그 장소는 복건성 남평시 건양고
어 황경진 황 이이라고 하는데 그니까
건양 시에서도 저기 승합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을 가다 보면 저 황건
가는 그 차가 있더라고요 승합차 그걸
타고서는 아 이거 이거 너무 오래
간다 진짜 아 그래 가지고 드디어
이제 꿈에도 그리는 주자 묘소를
간다라는 거고이 주자 묘소는 여기도
보는 것처럼 그 뒤로 올라가 봤어요이
그 미우라 군유 선생이
풍수 하는
책에서에 주자의 풍수가 주자 묘소의
풍수가 이게 그 대단한 그 명당 중에
하나다라는 하고 있고 또 그 인자
수지라고 그이 그 기본적으로이 풍수에
대해서 알아야 될 그런 기본적인 책
중에 하나가 주의 묘소를 소개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여기 조 주산이
있고 뒤에 조산이 있고 그래서 이렇게
쭉 해서 용맥이 흘러가
주한테 내려오고 있다라고 하는 걸
제가 확인을 했어요 그걸 누가 잡아
줬느냐 이제 그 그 최원정이라고 하는
사람이 잡아 준 거고 여기가 바로
최원정의
동네예요 그래서 이제 그
최원정이가 잡아 주는 건데 그
이따가도 보시겠지만
최원정이는
뭐냐면 원낙 집안이 돈은 있지만
출세를 하지 못해서 최원종 후손들은
뭐예요 출세하는 곳을 택했고 주인은
뭐예요이 출세는 했지만 돈이 없다
그래서 자기 후손들은 돈 되는 걸
원한다 그래서 이거는 돈이 모이는
상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이따가
보시게 될 최원정의 묘는
저이 그 고관으로 다 올라갈 상이다
그래서 그 최원정의 후손들은 나중에
잘 돼 가지고 이제 고의 관직으로
올라가더라고요 그리고 주 이 아들들은
별로 현고 그렇지만 그냥 그냥저냥 잘
사는 그런식이 되지 않았나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고 여기는 보건
주자 고고 주자
지라고이 그 한년 오브리에 가면 이제
여기 있는 것처럼 주자가 산 여기
주위 묘소 저기 동상이 여기 있걸랑요
그래서 아 여기 한년 원래 이제 그
누구죠이 주희가 그 그 주자 아버지가
그 저 저 안위성 사람인데 그
남성으로 오면서 이제 복건성
이쪽으로가 오게 되고 그 그 유신의
집안들한테 이제 더부 사리를 하게
되면서 그러면서 이제 여기다가 그
죽게 되고 그 유자후 아고 하는
사람한테 이제 맡기게 되죠 그래서
이제 그 유자후이 숭한 년에 있었기
때문에 오브리에 그 거처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오브리에가이 자기 집을 거처하게 되는
건데 여기가 보니까 대게
습해요가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중국의
남쪽 지역이라고 하 데는 우리가
생각하는 거하고 차원을 달리 해요
그러니까 우리는 햇볕이 좋고 그리고
건조하거든요 대한민국 요새는 이제
조금 바뀌었는데 그 중국은 이쪽
그이이 복건성 하더라도 굉장히 습해요
이게 해양성 기거 그 그걸 어떤 걸
잘 느끼게 되느냐면 그 대만 같은데
이제 지금 11월 12월 가면은 그
한 영상 10도 이렇게 돼요 근데
비가 오면 한 영상 5도 그러는데
대만 사람들은 다 뭐냐면 파카 입고
다녀요 우리는 파카 안 입죠 근데
이제 한 3개월 살고 나면 어 파카
입어야 돼요 그리고 뭐냐면 그 추운데
비까지 오게 되면 속 까지 주어요 아
이게 해양성 구름이 한 데구나 그래서
주위가 이게 살던데
여기보다는이 권양현 아까 얘기하는
것처럼 자꾸이 숭안현 보다는 권양현
권양이 따뜻하고 양지 바르다는 것으로
자꾸 살았던 것이
순환보직 않아서 그래서 산 것이
아니었겠는가 이런 추측을 해봐
그니까이 이이 습도가 장난이 아니다
이쪽 남쪽 지역 한참
대만하면 요건 주위 그 묘소 주위 집
꾸지 주자 고거 앞에 있는 이제 뭐
말은 뭐 주위가 심었다고 하는 그
녹장 나무 장나무 하는 건데 이게 뭐
뭐 7 800년된 나무 같지는 않고
하여튼간 뭐 주위가 심었다고 하는
앞에
조만한 그공 비슷하게 돼
있어요 그 뭐 자양로 뭐 이렇게 유지
그리고 앞 주위의 동산이다 해서
주의원이다 이렇게 있는 걸 제가 찍어
2015년인 날짜 찍는게 고장이 나
가지고 그다음은 이제 그 주위가
다녔던 곳이 뭐냐면 그이 서원들 많이
돌아다녔죠 그 아우 서원이라고 하는
데데 그 아우 서원은 여기 보시는
것죠 처럼 주위와 육산 3이 서로
도문학고 존덕성 토론했던
그 그런 거죠 1975년에 아오
선언에서 만나서 육상산 형제들 아고
주의 제자 주의를 비롯한 제자들 아고
서로 한 바탕 쌈박질을 한는 곳이
아호다 그니까 그 거위와 호수가 있는
그런 서원이다 그래서 그 그걸로
연산에 강서성 그니까 복건성에서
넘어갈 때 그 연산으로 넘어가게
되거든요 연산에 있는 아우 서원이라고
하는 거고 그 아우 서원도 거의
퇴락을 했어요 그 거의 여기가 아까
얘기한 것처럼 습도가 많고 하는
것처럼 이기가 많이 겠죠 그리고 돌
보지를 않아 가지고 완전히 고색
창연하다이 아우 서원을 이래서 한번
사문 종주 그 사무는 유학의 으뜸이
되는 것인데 굉장히 그 생각 만큼 어
실망을 했고 옆에 이제 회나무이
있었는데 거의 무너져 가는 것이 아호
사원이었다 제가 요새는 뭐 중국이
조금 돈을 많이 벌어서 여기다가
투자를 했었는지 몰랐는데 2015년에
갔을 때는 그다음이 이제 그 주위가
그 백록동 서원이 그
1979년에 이제 남광근 지사가
되면서이 거기에 있었던 이제 한편으로
강군 그 아까 얘기하는 국강현 시에
있는데 구현에 있는데 그 여산 바로
밑에 백록동 서원이 이제 버려져
있다는 것을 보고서는 이거를 이제
중수를 하기 시작을 해요 당나라때
그래서 이게 뭐랄까이 세계 문화
유산이기 한데 경관 유산이 그 당시에
경치로 다가
유명한 서원이 경치로 다가 그래서
백록동 서원을 했는데요 앞에 내가가
흐르고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들 그
풍기에 가면은 영주 풍계 영주에
가면은 소수서원 백운동 서원 있죠 그
백운동 서원을 가보고 나서 아 이게
이렇게 그 본 다구나 걸 확연히 할
수가 있어요 그니까 느낌이 딱
비슷해요 그니까 백록동
서원은이 그 아까 얘기한 그 여산의
여산 북포 밑에 있걸랑요 그래서이
난간에 있을 때 그때 이제 그 그
중수한 소원이고 그 백록동
서원은이 하는 것처럼 하나의 소원이
아니라 여기가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래서 굉장히 커요 그러니까 그 다섯
개의 구역으로 이루어졌고 어 이것들이
각각 그 이게 강당 그 제사
공간으로가 이루어져 있다라고 하는
거고 이제 여기 보이는 것처럼 맨
마지막에 이제 그 주자 선생 묘소가
있는 거고 그래서 이게 그 이게 사대
소원이라 그랬죠 아까 얘기하는
숭양서원
그리고 백록동서원 주의가
얘기했던 그리고이 이게 뭐냐면이 이게
사슴이 사슴 그 당나라 때이이
발이라고 하는 사람이 여기서 사슴을
길렀다 그래서 흰 사슴을 길렀다
그래서 백록동이라 그랬고 그 거기에다
이제 백록동 서원을 지은 건데 주위가
그 당시에가 보니까 완전히 퇴락을
해서 그 임금한테 여기를 사선으로
만들어 주고 이책도 내려 달라고
그래서 그래서 이제 이게 그 유명하게
된 건데 그 앞에 사슴
모형을 만들어 놨다 그래서 제가 어
찍고 온거다 그 아까 얘기한 것처럼
맨 마지막 다섯 개 구역 맨
마지막에 주의 상인데 주의가 굉장히
그 온화하고 굉장히 인자한 모습의
주의 상도 있는데 여기는 굉장히 센
모습의 주위상 이었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이
사람들이 주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라고 하는 거를 알 수가 있는
거고 뭐 뒤에 보면은 이제 많은
아저씨들이 더우니까 여기 와
가지고서는 차를 모시는 그런 담소
장소로 이용을 하고 있다라는 걸 알
수가 있었어요 그 여기는 저 그 무의
정사라고 무의 서원이라고
나중에 얘기를 하는데 이거는
1883년에 주위가 아 쉬운네 살에
이제 백록동 서원을 50살에 하다가
한 2 3년 하다가 그만두고
그리고서는 이제 제자들
하고이이 무위 산에 오거든요 무위
산은 그니까 바위 하나로 돼 있는
산이에요 놀랍죠 바위 하나로 된
산인데 그 바위 하나 산의 은병
산이라고 하는 그 밑에다가 아여이
정도면 여기서 공부할 만 하다라고
하는데 개뿔 을 가보면 너무 습해
습해서 어이 못 있을
곳이다 생각이 든다 그니까 대체로
이런 데가 습해서 이게 오래 있기가
뭐 하다고 한국 사람들은 특히 뭐
중국인들은 좀 다르겠지만 한국
사람들은이 습하면 관절염 걸리기 딱이
걸랑 그래서이 무의 정사를 짓고 그
그거를 이제이 기록을 했다 라고 하는
건데이 여기에 이제 재밌는 거는 저이
삼국 두배에 올라가도 뭐냐면 차밭이
있어요 그니까 무이산의가 보면 유명한
무이산 차라고 있어 그 이름 잊어
먹었는데 그 무이산 차가 굉장히
유명한 차예요 근데 거기다가 뭐냐면
대체로 다 저기 뭐야 농약 그고
비료를 준다라고 하는 거고 두 번째는
나무를
준부 없애 버리고 거 이제 그 돈되는
이제 작물 그 그 차나무를 심어
가지고 한다라고 하는게 그게
인상적이었다고 하는 거야 그러니까
주위가 굉장히 차를 좋아해서 무의 산
차가 아직도 굉장히 유명하다 아 근데
아까도 얘기한 것처럼
농약과이 비료의 디본 복이다 먹을 땐
조심해라 그래서 항상 어 덜어내고
드시는게에 그게 만수무강의
지장이
없다이 알고는 드셔라
그러니까 그 그
1883년에에이 그 이거를 짓고
여기서 이제 학생들하고 강하했다
그래서 그 무의 정사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의사는 한번 가볼 만하다
그다음이 이제 고정 서원이라고 하는
건데 이거는 그 100에 그 92년
주위가 돌아가시기 63세 때 70세
들어가시는데 그 아버지 생각이 남는가
봐요 그래서 아버지 주의 아버지
주송이 아고 하는 분이 주위를 데려
다니면서 여기다가 자기가 만년에 은퇴
하면은 여기다가 그 그 강학을 하고
싶다라고 주한테 얘기를 했다 그래요
그래서이 고정 서원이 우팅 이죠
아버지의
종자요
아버지가 나중에 여기에다가 정자를
마련하고 달해 가지고 고정 소원을
여기다가 만들어 근데 조사를 해
보니까이
1992년에 세운이 고정 소원은이
자리가 아니라 여기 뒤에를 보시겠지만
이까 원래 자리가 있었는데 거기에
댐이 있어요요이 고정 서원 자리 원래
있었던 자리에 댐이 생겨 가지고
거기가 풍경구가 돼서 그래서 고정선
옮겼는데 최근에 옮겼는데 그래서
10개년 동안 여기를 겠다라고 하는
건데 뒤에는 가보면 허 판이라고 하는
거 아무것도 없어요이
방만 옮겨 왔더라고요 그 당시에 갔을
때 2015년에 그래서 여기서 이제이
뭐 돈 접수 받는데 사람도
없고 그리고 그이 고정원을 찾아가다
보니까 또 뭐예요 오이
권양 시에 그 주의와 관련된 뭐가
없다 그가 봤더니 중 민주 조아하지만
그래도 주희
대도라이프 우리로 얘기하면 그
초등학교를 이제이 여기가
우팅 그 샤시라 해서 이런 지명이
있어 가지고 아 이거는 알려줘야
되겠다 고정이 이게 주의 아버지
종자를 세우고 했던 것이고이
사람들에게는 이제 지역 명칭인 하지만
그래도 그 존중을 하고 있어 가지고
이런 이름들을 했다라고 하는 거고
그 그 아까도 얘기한 것처럼 그 사대
서원 이름이 생각이 안 났는데 아까
얘기했죠 숭양서원 그다음에 백록동서원
그다음에
악록서원이에요 그 그 이게 그이 악서
원이 이제 원래
1668년에이 주위가 장식을 찾아가요
호남정 그래서 이제 형상까지 가는데
그때 이제 와서 같이 무거웠어요
그래서 그 악록서원이 유명하게 되고
나중에 1994년 주위가 죽기 얼마
안 돼 가지고 담주 지사로 가면서 그
여기다가 이제 그 이걸 중수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이제 이게 사대
서원이 된다 이게 그 악목 서원이다
근데 그 주희와이 아까 얘기하는 장식
그거에 관계로서 유명해진 소원이고 어
두 번째는 이제 여기에 이게 훈한
다시의 안에 있는 건물이라고 가버
그래서 그 당시에 이제 제가 아는
후배가 훈난 다시에 있어 가지고 훈난
따시 돈 안 내고 여기 들어가려 그
또 200원 300원 내야 되는데
훈한 다시에 자기 연구실로가 가지고
뒷길로 들어가야
이게 바로 우리 옛날에 성대 저기
문만
넘어가면이 여기가 있잖아요 지금은 못
넘어가 청경 넘어가죠 갔다 그래
하더라고요 그 그렇더라고 그래서 훈남
호남대학 안에 있어요이 악록서원 사대
소원이고 그 그다음에 이제 하남성의
응천 서원 그래서이 그 중국의 천하의
사대 서원이라고 하는 건데
그 주의하고
장식의 그 관계 때문에 유명해진
대학인데 그 소원인데 나중에 이제
뭐죠이 모택동 마우저 동이이 훈난
시에서 공부를 했어요 그래서 그 그
나중에 호남성 훈한 스 스한 따시
였거든요 그 당시에 사범
대학이었다 을 다닐 때 그 기숙사요
앞에 바로 있는 거요 성대요 기숙사
있죠 뭐 양제 동제 서제에 의해서 그
모택동이
거기서 기거하면서 그때 이제 막스
주의 사상이 뭐 이런 사상을 그이
동재 서제에서 우리로 얘기하면 양
현재에서 거기서 공부를 했다 그래
가지고이이 그래서 유명한 대학이
바로이 훈한 고 악록서원 있었다라고
하는
거고 그다음에 이제 주의 어머니 이게
중요한데 뭐냐면 그 주의 어머니
묘소를 찾게 되는 건데 그 주의
어머니 묘소를 찾게 되는 이유가
있는데 원래는 이제 주자 묘소 황금천
찾아가다 보니까 어 중간에 이런게 딱
나오는 거예요 서산농원 최원 정묘 어
내가 알고 있는 최원 정묘 여기 있단
말이야 그래서 스톱 시키고서는 거기서
내렸어요 소산이라고 하는 내가
여기구나 그래서 소산을 갔죠 최원
종묘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없어요 두 시간을 산을 헤매고
돌아다녔는데도 없어 아 그래서 아
이제 끝인가 보다 그러고서 막
내려오는데 어떤 아저씨가 어 떡
내려오더니 어 물어봤죠 어 난리 저
같은 이제 한골은 차인 미 미아오
따더니 다오 다오 그러더라고
야이 두시간 반만에 찾은 야 이게
최원정 선생이 한고 원이 찾아오니까
그분을 보내신 거예 왜냐면 아까
얘기했죠 3월 3일 날 자기가 최원정
학회 이사인데 거기 묘소에 갔다가
오다가 제사를 지내고 오다가 우리를
만난 거래 그래서 너무 고맙다고
그래서 최원정 묘소를 알려준 거예요
그게
이제이이이 이게 최원정 권시 권양
복건성 권양이 요구진단 3이라고
하는데를 찾아간 거예요 그래서 여기
어 태자 태부 어 채원
원공
최원 정공 지묘 최원정 묘소 하는 걸
알고 있 주인처럼 이렇게 도을 자가를
쌓아 가지고 이렇게 묘소를 했다라고
하는 거 알고 있고 그 앞에 중국인
색으로다가이이 뭐죠
조화에이 폭죽 터트렸다고 하는 걸
그때 알 수가 있었다라고 하는 거고
그래서 아이 최원정
선생이이 저희를 오게끔 했구나 못
찾아요 중국은 이게 사실은 다 알 거
같은데 이따가 다시 얘기하지만 제가
여주기 선생을 찾았지만 못 찾았어요
결국은 그 산을까 뒤집어야 되는데 그
나타나야 되거든요 그분의 훈령이
나타나서 인도를 해 줘야 돼 아예
한국원이 거기가 어딘줄 알고 갑니까이
중국이이이 서산이 너무더라고 두
시간을 뒤져도 안 보이는데 어떡해요
모르면 깜깜 있데 바로 옆에 누구도
모르더라고 그러니까 그래서 그런 거고
근데 그 최원정의 묘책을 읽다 보니까
최원정이가 풍수지리를 했어요 그래서
풍수지리를 해서 자기 주인 어머니
묘수를 잡아줬다고 하는 기록을 제가
바꿀려 아 그러면 주
주주도 미우 난리 그랬더니 다 모른데
그 뭐 노인네도 모르고 그래서 에이
포기하는 심정으로다가 그 동사무소로
지금 뭐라면 공산당 그 건물에
찾아갔더니 한 30대 그 당서기가
있더라고 그랬더니만 물으니까 안 되는
거야 따라오라고 그래서 간게
바로이 축부 인요가
나타나더라고요 나를
만났구나 놀라워요 그니까 이런 경우에
가질 수는 없거든 그니까 뭐 뭐 노인
애들도 모르고 아무도 몰라 뭐 한
열몇 분한테 다 물어봤는데도 모르는데
그 공산당 간부만이 젊은 사람이니까
역시 똑똑하다고 그니까 중국 공산당
역시 대단해 그니까 이런 문물을
지켜야 되겠다라고 하는 정심이
있어서이 묘소를 제가 찍어 놨어요
그니까 그리고 이제 그 여기 연자
기념을 해 가지고 건양 시 문물
곡에서 여기 주의 어머니 묘소를
소박하게
썼어요
송 죽부인 뭐 뭐 무슨 수 공정 이래
가지고 이게 주의 어머니 묘소
있다라고 하는 걸 알 수가 있는
거고 그 왜이 옆을 쓰느냐 하면
주위가 이제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그다음에 그이
175년 여조겸이라고 하는 사람하고
그 어머니 묘소에서 심묘 사리를
하면서 근사록 편찬을 해요 그
역사적인 장소라고 근사록 편찬의
장소가 바로요 요거 묘소 바로
옆자리에 이제 무슨 허름한 집이
있는데 바로 여기가 내가 생각하기
이게 한천정사 근사록 편찬하는 응 그
한천 정사의 자리가 아니었겠는가 아
추측을 해 본다라고 그래서 찍어
왔어요 그리고 이제 이게 이제
죽부인과 관련된 내용이고 그다음이
이제 그 주위 아까 만난 그
구연이 이제 아호사에서 만났는데 그
구연을 막이 또 찾아갔죠 아까 얘기한
대로 아우 서원에서 다시 이제
그 강서선 금현 6방향 청전
준이라는들도 찾아가게 돼요 금기현
내려가지고 곧 가자 그랬더니 아 거기
뭐 못 간다고 난리
피더라고요이고
그래서 라이라이 그랬더니만 그 어떤
젊은 여자분이 데려다 주더라고요
그러니까 아 이런 분들이 있구나
그래도 아 고맙다고 이런데 찾아줘서
고맙다고 그래서 여기 그 구연의 형인
구소 사산 사산 유명한 사산의 묘소가
여기 있고 어 그다음에 이제 우리가
알고 있는 육구연 육상산 선생 지묘
여기 딱 보이시죠 예 그 육구연
육상산의 묘소는 이렇게 그 허름하게
돼 있다 여기도 보이는 것처럼 누가
제사를 지냈는지 뭐죠이 조화하고
폭죽이 있다 제사를 지내는 흔적이
이게 예 그 3월 삼진 날이라 그래서
자기 조상도 안 지내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래도 여기다가 아 제사를
지내는구나
그까 이게 전국단위 인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인물들은 그 이게
꾸준하게 이렇게 제사를 지내는 그런
아름다운 전통은 있었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늘상 제사를
지내듯이이 사람들도 그 그니까 이게
성단이 그가 뭐 이런 자원은 아니더라
이걸 기억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어서 이걸 지켜내고 있구나라는게
이제이 사진에 남겨 있다 그 육부
부연은 생각만큼이 주의나 뭐 이런
거에 비해서는 초라하다고 하는 거고
그래서 그 앞에 이렇게 썼는데 학고
지본 경계 주각 뭐죠 학문은 진실로
근본을 알아야 되니게 되면 육경은
모두 나의 마음에 주석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거고
사속 분내 일이라고 하는 건 다 자기
직분 안의 일이고 그리고 천성 동심
많은 성인들이 있지만 그것은 다
나하고 마음을 같이 한다 심이라고
하는 그 구절이 있어
가지고 이게 상산 소원인데 너무
후지게 만들었어 그죠이 청이라고
하는데가 안 만드는게 이러면 차라리
좋은데 이렇게 개떡으로 들가고 이게
잘못 만들면 이렇다는 걸 제가
보여주기 위해
가지고 진짜 보다고 없게 상선 소원을
이런 식으로다가 준공을 했다라고 하는
거 그니까 이게 구연은이 강서에서
그렇게 그게 높게 추 받는 인물은
아니었다라고 하는 거 이거를 알 수가
있고 제가 누구 전공이라
그랬죠 로순이 음순 제가 꿈에도
그리든
나음의원
그니까 제가 나음이 이제
한국 중국 사람들은 별로 중요한
인물이 아닌데 한국에서는 뭐 퇴계가
언급한 이래로 모든 인간들이 다
한마디씩 했어 그게 엄청난 인건데
어디죠 강서성 기안시 태화연
상모
어촌이라는데이 묘소가 있어요 어떻게
찾았느냐
모르죠 제가 근데 뜻 그 그 가는 날
보니까 뜻 신문에 난 거야 여기에
도둑이 들어 음순의 성물 훔쳐가는
도둑
잡히다 그게 바이두에 나오더라고 야
이게 나순 선생이 조나라는 한국인을
도와주는구나
기란 시를 어떻게
찾아가요 란는 진짜 저기
저 에서도 강서성 성도 난창 창에서
한식까지 가면 한도끝도 없이가 한
네다섯 시간은 가야 돼 이게 장난
아니더라고
그 그리고 어떻게 있는 줄 알고 근데
이게 마침 발견돼서 보시죠 강서성
문물 단위
나순 강서성 인민정부
1967년 12월 음순의 묘소가
나라고 하는 거를 어 그래서 이제
이걸 찍어오게 됐다라고 하는 거죠 그
아이이 여기도 저기 했는데 원래
중국의 묘제는 이렇다는 거야요
그러니까이 성물들이 있는 거죠
성물들이 있는데 중국에서 다 없애
버린 거고 다행스럽게도 이런데 촌
구석에는 이게 이런 사대부들도 이런
문인상 무인상 있을 때고 뭐뭐 무슨
뭐 뭐 시비지 신상을 여기다가
세웠다고 하는 거를 알 수가
있어요 그래서
오 그랬구나 왜냐면 이거는 처음 보고
올랑 뭐 주위 무덤도 이게 없고
육구연 무덤 다 없는데 라음 묘만
있다라 아니에요 중국에 다 있었을
건데 근대화 되면서 아니면 이게 돈
된다 라면서 다 쓰어 갔을 테고 이런
촌
구석에만요이 성물들이 남아 있었겠구나
이게 맞겠구나 지금 우리가 성물 쓰는
거는 우리는 이제 간단하게 문인석
무인성 쓰고 조금 높으면 뭐 당상관이
뭐 영의정 정도 돼야지 이런 이런 걸
쓰거든요 성물들을 근데이 정도 급은
아니에요 나순 선생은 그런데 이게 그
적어도 중앙 관직을 한 사람 정도면
이런 정도의 성물을 썼다고 하는 걸
알 수가 있다는 거 이였고 그 또
가보니까이 나음 선생 살던 집이 있는
거야이 그 상 모양에 갔더니 고촌에
갔더니 이렇게 뜻하 저기 뭐야 태화연
그래도
여기서이 저 승합차 타고서는 한 두
시간을 가요 아 지겨워 그냥 한두
끝도 없이 가서 종점에 가니까 어
기다렸다는 듯이 나음은 묘소 나음은
선생이 이렇게
생겼대 그런지 안 그런지는 모르는데이
여기가 있고 그 그이 바로 앞에 이제
그 아저씨가 한 분이 있더라고요
자기가 나씨 후손이라고 그래서
따라오라고 아 그래서이 나무순 묘소를
찾아간 거죠 산에 묘소 못 찾아요
그분이 자기가 후손이라고 그러면서
그래서 100원 주고 왔어요
고맙다고 아저씨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이 자기 집 대대로
하 여기 뒤에는 이제 다
무너졌는데이이 집이 나음이 살던
집이라고 얘기를 해 주더라고 그러니까
이게 궁보 상서대 공보라 하는 건
뭐냐면 이게 바궁이 그래 가지고 자
우리로 얘기하면 태자 태자를 가르치는
거를 파오라 그래 그니까 태자 사부
였 걸라 그리고 상서는 나순 선생이
그 상서 벼을 해요 물론 저
그 남경 국자감 상서를 하거든요 이부
상서 이부 상서를 했기 때문에 궁보
상서고 하는 이게 음순의 직하고
걸맞는 장소였다 그래서 아 이게
나순이 살는 집이 맞구나라고 하는
거를 알 수가
있었고 그다음이 이제 또 우리가이 알
수 있는 그 왕명 보이시죠
그 는데 절강성 소흥시 교구 선하
3이라고 하는 거고 여기 이제 앞에
통계라고 하는 그 개천이 흘러요
그러니까 여기다가 묘소를 썼는데 그
찾아보니까이 왕양명 선생이 제자들고
항상 다니면서
여기다가이 묘소를 썼으면 좋겠다라고
해 가지고 와영 선생 묘소를 했다라고
하는 그리고 이제이 이게 이제 그
제가 갔을 때는 2013년에
갔는데 그 왕양명 선서 어 꾸지
유지라고 하는 건데 왕양명 선생이
여기서 살았다라고 하는 거예요 근데
지금은 이제이 시진핑이 절강성 서기가
된 적이 있었더라고 그래서 그
절강성에서 띄우는 인물이 시진핑이
띄우는 인물이 노신이 아니라 왕이에요
노신은 동이가 띄웠고 지금 시진핑
동지께서는 노신 동지를 결국 띄우고
싶지 않하세요 그래서 왕명 현창
사업을 해요 그래서 지금 이제 여기
보시게 되지만 왕양명 동네 앞에 호수
연못이 있어요 연 연못이 있고 여기
이제 왕이 집이 있는데 이게 이제 그
유명한 전에도 나온 사 사유선 사무서
천천 다가 여기 있었다 지금은 이제
이거를 동지께서 요거를 전부 갈아엎
가지고 여기 성화 했어요 지금
그거는에 제가가 보려고 그랬는데
2019년에 가는데 그때 비가 너무
와 가지고 도저히 갈 수가 없을
정도로 비가 와서 아 이거 가지
말라라는 호구나 그래서 유감스럽게도
여긴 못 갔어요 그 대신 2013년에
제가 찍은 거예 이제 아 이게 아직
시진핑 공께서 여기를 개발하기 이전에
그래서 여기가 저 무셔 가지고
아줌마들이 여기서 그냥 빨래도 하고
그런 아주 그 이게 현화 사업하기
이전에 원래 모습을 제가 여러분들한테
보여주는거다 지금은이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여기 아까 얘기한
것처럼 노시는 깎아내리고 왕명
전국단위 인물 아까 얘기했죠 전국
단위 인물로 만들어버렸어요이
시진핑 강상 서기를 썼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어이 여기를 뭐 몇백억을 들여 가지고
엄청나게 현창 사업을 했다고만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아 이게 그래도
옛날의 모습은 이랬었구나 걸 알 수가
있었고 다음은 이제 그 소시에 가게
되면 소시 가운데 산이 있는데 그게
집산이에요 집산 유산
유종주 그 고양인데 그 집산 밑에
왕희지 살았고 어 저 소에 자라라
하는 인물들은 다 그 집산 밑에서
살더라고요 산이 이름이 산이에요 집산
집산 그요이 집산 이걸 한국어로
집이라고 있고 중국어는 지예지 지산
지산의 꼭두배기
집산 서원이
있더이 집산 서원을 2013년에 갔고
여기 보시는 것처럼 여기 유념 선생
강당 유념하고 하는 건
유종주에 자거든 유념 선생 당이고
그래서 그 여기서 이제 강학을
했다라고 해서 굉장히 이거는
폼을 그대로 잘 보여 주는 것이
아니었는가이 이상으로서
제가이 대충 간단한 아마이 중국
성리학자들의 묘소 그리고 또 죠이
생각 그리고 서원 이렇게 몇개를
찾아봤습니다
[음악]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