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 '음악 장인'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이 전하는 '과거ㆍ현재ㆍ미래 음악 이야기' (35주년 앨범 공개 기념 음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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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조혜인 기자] ‘‘봄.여름.가을.겨울 2 -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 35주년 (2024 MIX)’ 앨범 공개 기념 음감회가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CJ 아지트 광흥창에서 열렸다.
이날 음감회에 참석한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이 앨범 소개 및 취재진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봄.여름.가을.겨울 2 -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 35주년 (2024 MIX)’ 앨범은 봄여름가을겨울의 Make-Do-And-Mend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으로 따뜻하고 평온한 공기로 가득한 시대에 즐겨들었던 사운드를 현재로 불러와 애정을 담아 수선하고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을 통해 현재에도 당시의 음악을 마음껏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티브이데일리 조혜인 기자 [email protected] / 사진 = 송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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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김종진입니다.
이렇게 먼 곳에 가득 메워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봄, 여름, 가을, 겨울 2집이 나온 지 35년 되는 날이에요.
정확한 날은 기억은 못하지만 정확한 주는 기억을 합니다.
지금부터 35년 전에 10월 셋째 주에 앨범이 나왔거든요.
그때를 기념해서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를 했는데요.
우선 아날로그 테이프 마스터 테이프를 꺼내서 믹스 다운을 새로 했고요.
그 음원을 내일 정오에 발표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하루 먼저 이 자리에 오셔서 그 음악을 들으실 수 있고요.
그리고 35년간 끊임없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사랑해주셨던 팬들을 위해서
그들의 기억을 추억을 수선하는 의미로 걸치고 다닐 수 있는 티셔츠도 만들고
귀여운 에코백도 만들고
그렇게 해서 뭐라고 할까
시간을 뛰어넘는 그런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저희가 준비를 해봤습니다.
다시 한번 이렇게 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2집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요.
아마 지금까지 나온 앨범 중에서 앨범 타이틀이 가장 긴 제목을 갖고 있는 앨범이 아닐까 생각이 되는데요.
앨범 제목은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 이고요.
영어 제목은 훨씬 간단하고 짧습니다.
This is my song for you.
그게 어떤 애꿈이라는 곡이 시작될 때 여성분이 This is my song for you 하죠.
그게 당시에 저희 봄, 여름, 가을, 겨울 김종진, 전태관의 마음속에 있는
음악인으로서의 정신을 말씀드린 구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앨범은 발표될 즈음에 그때는 요즘보다 가을이 있었고
가을에는 상당히 쌀쌀해서 사람들이 외투를 미리 입고 다니던 그런 즈음이었고
바람이 쌀쌀하게 부을 때 버스정류장 앞에 가면은 레코드 가게들이 있었고
레코드 가게에서는 음악이 나왔죠.
남녀노소를 불렀고 세상에 많은 분들이 같은 음악을 들었던 그 시절이었습니다.
10월 첫 주, 둘째 주 정도는 이문세씨의 앨범이 1위를 하고 있었고요.
그때는 이제 레코드 가게마다 신곡이 나오면은 기대되는 앨범 또는 여러분의 주문이 많이 들어온 앨범
그런 것들을 차트로 만들어서 이렇게 만드는데요.
걸어놓는데요.
저희 앨범이 나온 셋째 주에 이문세씨의 앨범을 갑분싸 이렇게 이기고 바로 1위로 등극을 했어요.
일주일 정도 잘 달리다가 네번째 주에 이승철씨 앨범 나오니까 저희가 확 밀리더라고요.
하지만 그로부터 약 1년 이상 여러분들께서 크게 사랑을 해주셔서
당시에 있었던 유명한 언더그라운드 그리고 방송 횟수, 앨범 판매 전부 집계를 해서 만들었던 차트가 있었는데요.
혹시 아시나요? 뮤직박스 차트라고 있었는데
거기에 상당히 오랫동안 특히 그 내 품에 안기어라는 곡은 뮤직박스 차트에 1위도 했었고요.
신기하게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는 어떤 이의 꿈은 1위를 못했어요.
하지만 그 나이트클럽 춤을 부르는 장소에서는 어떤 이의 꿈이 거의 한 1, 2년간 굉장히 많이 들려졌다고 하고요.
그리고 차트 그리고 언더그라운드 그런 데는 그랬지만
그 당시에 연주곡이 앨범에 들어가는 걸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2집 앨범에는 3곡의 연주곡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여러분이 정말 사랑해주셨던 곡은 앨범 마지막 곡인 못다한 내 마음을 이라는 곡이 있었어요.
두 곡은 아마 대한민국의 직장인 밴드 대학생 밴드 멤버로 기타리스트였다면 연주하지 않았던 사람은 없을 정도로 여러분의 큰 사랑을 받았던 그런 곡이었고요.
그리고 연주곡 중에서 또 그대 별이 지는 밤으로라는 곡이 그 당시에는 CD가 나오지 않았던 시기거든요.
1989년에는 오직 LP만 있었던 시대예요.
그런데 당연히 A면 B면이라는 게 너무 자연스러웠고 또 그 카세트 테이프도 A면 B면이 있었죠.
B면 첫 번째 곡이 또 연주곡이었는데 그대 별이 지는 밤으로라는 어쿠스틱 기타와 색소폰으로 함께 연주하는 곡인데
그 곡이 또 연인들 사이에서 굉장히 인기를 끌었던 그런 기억이 납니다.
어떻게 보면 그 앨범 전체에 대부분의 곡이 여러분의 큰 사랑을 받으면서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이 이렇게 온그라운드로 부상하는 그런 데 큰 기여를 한 앨범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되고요.
이 앨범이 정말 잘 돼서 인기를 얻어서 그때 국내 최초로 억대의 광고도 저희 봄, 여름, 가을년에 찍었던 기억이 납니다.
금강재와의 랜드로바라는 신발 광고를 2년간 찍었고 그게 광고 대상도 받고
그 광고를 찍었던 김동용 감독이신가 그분은 문화체육부 장관도 하시고 그랬던 기억이 나고요.
또 그렇게 말하자면 앨범이 앨범을 잘 만들만한 충분한 능력이 있는 팀이구나라고 믿음이 가니까
과거에는 없었던 라이브 앨범 국내 최초의 라이브 앨범도 제작해서 만들게 됐던 그런 원동력도 됐고요.
또 3집 앨범은 국내 최초로 전 과정을 미국에서 작업하여서 좋은 사운드를 한국에 소개할 수 있었던 또 그런 원동력이 됐습니다.
지금에야 정말 한국 음악이 전세계에서 가장 사랑을 받고 가장 핫한 그리고 음악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모든 면에서도 사랑을 받는 앞서가는 음악이지만
1989년은 그렇지가 않았어요. 한국 음악은 해외의 것을 귀기울여서 빌려오기가 급급했고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게 좋은 소리를 내는지 그런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참 척박했던 시기였던 걸로 기억이 되는데요.
저희 봄여름가을겨울은 아무래도 가수가 아니라 뮤지션 출신의 밴드였기 때문에 조금 더 음악에 집중할 수 있었고
음악에 더 많은 부분을 비중을 둘 수 있었기 때문에 사운드를 만드는데 좋은 사운드를 만드는데 엄청 시간과 열정을 투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레코딩 스튜디오를 여기저기 전전을 하면서 최병철 기사라는 당시의 엔지니어분과 작업을 했고
어떤의 꿈이라는 곡에서 나왔던 독보적인 사운드, 악기의 소리, 분리도, 보컬의 앞으로 톡 튀어나오는 소리 같은 것들이
그 당시에는 레코딩 스튜디오의 엔지니어들한테 큰 영감을 줬고 그 이후에 한국 음악계의 사운드, 편곡법 그런 것을 발전시키는 데에도 큰 기여를 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 그래서 여러분을 이렇게 모시고 자리를 갖는 이유는요 그 당시에 저희가 만들었던 LP 사운드를 들려드리고
내일 발매하는 음원은 뭐가 다른지 조금 더 직접 체험해 보시고 귀로 들으시고 기사를 적으실 수 있도록 잠깐이나마 사운드 비교를 해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을 가져봤어요.
그때도 굉장히 좋은 사운드를 냈다고 LP가 여러분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그리고 그 이후에 한국 100대 음반이라는 공인된 건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굉장히 그 100대 음반을 선정한 위원들이 한국 음악계를 이끌어가는 그런 대단한 힘이 있는 평론가, 기자분들 그리고 뮤지션은 첨가를 하지 않았지만 음악 제작자들
그런 분들이 선정한 100대 음반 선정이 한국 음악사에 총 3번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요.
100대 음반의 3번 모두 100대 음반 안에 들었던 앨범이었는데요.
아마 혁신적인 사운드 그리고 편곡법 그런 것도 있지만 저는 노랫말이 갖고 있는 힘도 아마 여러분을 100대 음반에 이 음반을 꼽을 수 있게 만든 어떤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리자면 그 어떤 이의 꿈이라는 곡은 그 당시 한 10년간 있었던 좋은 노랫말상이라는 그 상이 있었는데
두 번째, 두 번째 해에 좋은 노랫말상을 수상한 곡이고요.
이 곡이 유튜브라든지 뭐 그런데 끊임없이 계속 여러분들이 다뤄주는 소재이기도 한 이유는 바로 노랫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에도 꿈, 꿈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곡들이 그 당시에 특히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꿈이라는 주제는 지금까지도 한 번도 빼지 않고 특히 젊은 사람들, 미래가 더 많이 남아있는 사람들한테는 정말 중요한 단어 하나를 꼽아라 그러면 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꿈, 나는 누굴까, 내일을 꿈꾸는가 혹은 아무 꿈 없지 않은가 그런 질문이 노랫말에 담겨있는 게 여러분을 많이 흔들었던 것 같습니다.
먼저 그 당시에 나왔던 이 앨범은 초반이에요.
앨범이 맨 처음에 나오면 기획사무실에서 이걸 한 2천 장 정도 받죠.
그러면 홍보반으로 쓰기도 하고 구멍을 뚫어서 저희 가수들이 몇백 장 가져와서 주변 분들한테 선물을 드리는데
저희 대학교 선생님한테, 교수님한테 선물을 드리려고 준비를 했다가 끝내 찾아뵙지 못하고 두 분은 세상을 떠나서 제가 아직도 갖고 있는 그런 앨범인데요.
이 앨범을 꺼내서 여러분들께 들려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제일 많이 알려진 곡이 어떤 이 꿈이니까 어떤 이 꿈 한번 들려드리겠습니다.
많이 들으셨던 곡이죠. 정스럽고 절적.
이 앨범을 지난 4월부터 제가 직접 믹싱에 참여를 해서 3개월간 스튜디오를 거의 통으로 쓰다시피 하면서 믹스를 했습니다.
그냥 믹스를 했다는 게 요즘 분들한테는 음악을 들으시는 분들한테는 와서 닿지 않을 수가 있는데요.
보통 리마스터링이라는 말은 흔히 많이 쓰시죠.
이 음악을 그대로 가져다가 스튜디오에서 좀 좋게 만들면 리마스터링이고요.
저희는 뉴믹스를 했는데요.
그 당시에 썼던 아날로그 테이프를 스튜디오에 가져와서 완전히 새로 풀어서 새로 믹스를 했습니다.
믹스의 기준은 과거의 음악을 그대로 쓴다.
그리고 그대로 쓰되 수선을 해서 지금 들어도 그 어떤 음악보다 뒤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힙해서 힙스터들이 내가 좋은 음악이야 라고 추천할 수 있을 정도의 그런 음악으로 만들어 본다라는 기준이었고요.
그리고 과거의 것을 너무 고집하지는 않았습니다.
음악 산업 중에서 가장 발달한 게 AI의 힘도 있었고 하지만 스튜디오 안에서 엔지니어들 그리고 뮤지션들도 컴퓨터로 음악을 하게 되면서 뭔가 믹싱의 기술, 마스터링의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을 했어요.
제가 이렇게 보면 연주력은 고만고만한 것 같아요.
보컬의 능력도 과거의 분들이 더 뛰어나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이 되는데 갖고 있는 재료들을 갖고 만들어서 보컬 튜닝을 하고 음악을 끌어올리고 그렇게 해서 들으면 너무 좋게 들린다 그렇게 만드는 믹싱의 기술이 정말 발전한 것 같아요.
그런 현대의 기술을 저희도 차용을 해서 과거의 음악도 35년 전의 음악도 요즘 기술로 믹스를 하면 어떻게 들릴까 요즘 듣기에도 충분히 좋게 들릴까 그런 질문을 갖고 작업을 했고요.
대답은 여러분한테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말이죠. 아까 잠깐 말씀드렸는데 버스 경주장 앞에서 레코드 가게에서 음악이 들리고 그때는 남녀노소가 다 똑같은 음악을 듣던 시대라고 말씀드렸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같은 음악을 듣지 않는 시대가 됐습니다.
제 딸과 아들도 무슨 음악을 요즘 즐겨 듣는지 몰라요.
이어폰으로 듣기 때문에 어느 정도 볼륨으로 듣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노랫말이 그 친구들한테 어떤 영향을 미쳐서 어떤 길로 가게 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가 만든 음악은 35년 전에 그 사람들이 들었던 우리 선배들이 들었던 음악이고
그 사람들이 아마 20대 때 20살에 들었다면 35를 더하면 지금 55시군요.
그분들의 자녀들은 대부분 20대더라고요.
좀 빨리 가신 분은 30대 초반 자녀를 두고 있을 수도 있는데
저는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 음악을 엄마와 아들이 그리고 아들과 딸이 같이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모와 자녀가 같이 들으면서 우리는 이런 음악을 들었는데 너희도 들을만하니?
아니, 들을만하니 정도가 아니라
야, 우린 이런 음악 들었어. 죽이지 않냐?
노랫말도 멋지고 연주, 편곡도 멋지고 사운드도 죽이지?
우린 이렇게 멋있었어.
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공감하고
그러면서 자녀가 부모님의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어떤 매개체로 음악이 항목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전통이 생기면 아마 지금 20대 청년들도
언젠가 자기의 다음 세대와 같은 음악을 공유하면서
같이 토론도 하고 그런 전통이 생기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저는 저희 2집 35년 전에 이 앨범을 만들 때를 작업을 하면서 돌아가볼 수 있었어요.
그때는 저 김종진이 그리고 전태권이 20대 후반이었는데요.
뭐라고 할까?
그때는 배사의 정신이 있었던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음악가의 정신이 있었고요.
또 장사하는 분들은 상인 정신이 있었습니다.
뭐라고 할까?
좋은 물건을 값싸게 팔려고 노력했던 정신이 있었고요.
그 바닥에 정말 어려운 단어지만 금휼의 정신이 죄송합니다.
훨씬 간단한 것도 요즘은 헷갈린다고 하지만
그 세상에 정말 좋은 것을 선사하게 놀아라는 그런 정신으로 가득했던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정신은 많이 사라졌어요.
그때는 우리가 하나 돼서 세상을 좋게 바꿔보겠느라고 하는 정신도 강했고요.
그리고 무슨 이야기나 물건이나 책이나 그런 게 나오면
책과 음악의 내용에 대해서 얘기를 했지
사변적인 얘기를 별로 안 했어요.
포커스가 강했던 뭐라고 할까?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정신력이 강했던 시대였습니다.
아마 그때 한강의 노벨상이 나왔다면
그 한강이 썼던 구절, 책의 내용
구절들이 타고르의 구절들처럼 아포리즘이 돼서 막 나왔을 것 같은데
지금은 한강의 내용은 사라졌고
오로지 번역을 누가 했다더라
번역의 힘이 노벨상을 만들었다더라 그러면서 사변적인 얘기를 하죠.
저는 제가 바라는 점은 정말 이쁘게
에코백 선물 받으셨나요? 오밤 귀엽죠.
35년 전에는 정말 귀엽죠. 오밤 귀엽죠. 그렇게 썼어요.
진짜 귀엽죠.
귀여운 아이템들도 나오고
이제 CD 발매하고
LP 곧 몇 개월 뒤면 나오고 그러면
수집의 도락을 즐기시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음악을 많이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람들이 노래에서 음악에서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었고
어떤 마음으로 연주를 했고 그런 건지를 귀 기울여 들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제시를 계속해 나가야
본질이 남고 사변적인 게 취미로 덤으로 남는 그런 세상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여러분들 이제 정성껏 만들었던 음악을 들려 드릴 시간인데요.
아까 어떤 예꿈 들으셨으니까 이번에도 어떤 예꿈 들려 드리겠습니다.
들려 드리는 순서는 이 곡 한 곡 다 들려 드리고요.
그리고 잠깐 얘기를 나누고 한 곡 정도 더 들려 드릴게요.
아닙니다.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 마음에 뭔가 울림이 분명히 전달됐을 거라고 믿어요.
저희 더 나누실 말씀이 많을 것 같긴 한데
기자님들도 궁금하신 점이 있으실 것 같으니까
기자님들 질문도 좀 받으면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질문이신 분들 손 들어주시면 마이크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한겨레 이정국 기자라고 합니다.
음악 잘 들었는데요.
저도 2집 앨범을 갖고 있거든요.
오늘 오전에 듣고 나왔는데
감사합니다.
지금 믹스의 새로운 앨범을 들어보니까
전반적으로 포커싱도 좋아지고 채널 분리도 좋아진 것 같거든요.
가장 중점적으로 차별화시켰던 점은 어디였는지 궁금합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사운드 기술, 과거의 것과 과거의 에센스를 그대로 간직하면서
현대의 기술로 가장 좋은 사운드를 구현해서
모든 세대가 같이 들을 수 있는
그런 걸 만드는 게 가장 작업의 중점적이었는데요.
기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요즘 음악들이 갖고 있는 특징들이 있어요.
그거는 저음이 풍부하다.
그리고 가사의 전달력이 굉장히 선명하다.
기술적으로 3.5km에서 4km 정도가
그런데 그 부분이 올라가면 굉장히 쏘게 들리는데
그거를 눌러주는 게 상당한 기술이고요.
그리고 또 하나는 저희가 중점을 뒀던 것은 뭐냐면요.
과거에는 뮤지션들의 어떤 개별적인 연주도 굉장히 많이 들었던 시대예요.
하지만 요즘은 그런 거는 좀 채취하고
뭉뚱그려진 사운드가 사람들한테 파도처럼 들리도록 하는 그런 트렌드가 있는데
그것에 있어서 만큼은 저희가 조금 다른 접근을 했어요.
개별적인 악기의 연주자들의 그런 연주 소리
이 앨범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단 5명이 밴드로 연주를 했고요.
거기에 추가로 곡에 따라서 트럼펫이나 색스폰이 한 명 추가가 되는 정도의
그래서 가령 드럼을 듣겠다.
난 드러머 전태관의 팬이 될 거야 라고
그렇게 앨범을 하나 들으면 그렇게 될 만큼
드럼만도 따로 들을 수 있게
각 악기 연주가 분리가 잘 되도록 그렇게 작업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세계적인 마스터링 엔지니어
지금 거의 전설이시죠.
버니 그룻만 이라는 분한테 마스터링을 의뢰를 해서
이분은 1960년대 말부터 마스터링을 하신 분인데요.
카펜터즈라든지 스틸리 데니라든지
정말 세계에서 가장 사운드가 좋았다는 앨범들을 마스터링 한 분인데
지금도 살아계세요.
그분한테 의뢰를 해서 마스터링까지 마쳤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사실 극상의 음질을 추구하는 편이에요.
그러니까 상상을 뛰어넘는 정도의 극상을 추구를 하는 편이라서
이렇게 음악 애호가 정도가 되셔야 알아들을 수 있는
어떤 툴들을 계속 이용을 했어요.
그런 게 바로 너무 기술적인 것 같아서
다음에 따로 유튜브라든지 그런 걸 통해서
전문적인 얘기를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기자님들 혹시 질문 있으신 기자님들 질문 생각하시는 동안에
제가 하나 여쭤보겠습니다.
예전 작업물들 좀 돌아보시면서
예전에 만들었던 작업물들을 돌아보시면서
아마 그때 에피소드라든가
그때 옆에 계셨던 분들 생각 많이 나셨을 것 같은데
그런 얘기를 좀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에피소드요? 정말 많죠.
2집을 녹음했던 스튜디오가 성수동에 있었어요.
아세아 레코드라고
그 성수동이 그때는 전부 공장 지대였고
물론 지금도 공장 많은데요.
그때는 정말 모두 공장이었어요.
근데 지금 가보면 아세아 레코드 자리가
완전히 힙한 팝업 스튜어들의 성지가 됐더라고요.
그런데 그 주변에는 공장이 많아서 그런지
해만 지면 다 퇴근을 하시고 아무도 없는 거예요.
배고프면 갈 데가 없어요.
시켜 먹을 수도 없고
그래서 밤 늦게까지 있다가
그리고 통금 비슷한 게 있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태원으로 넘어가서 나리식당이라는 데 가서
삼겹살을 때려 먹었던 기억이 엄청나고요.
그리고 이제 앨범 최초의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
이게 연주곡인데요.
트랙이 딱 시작될 때
스튜디오 문이 탕 닫히고
드럼 하이햇이라는 게 있어요.
드럼 하이햇 소리가 덜컹 소리 나고
우리가 허허허 웃는 소리가 나는데
우리 전태원 씨가 그렇게 덜렁이였어요.
드럼에 앉으러 이렇게 걸어가다가
그때는 이제 녹음 시작합니다.
그럼 미리 레코딩 버튼을 딱 눌러놓는데
들어가다가 불이 탁 붙어져서
피나고 그런 게 일상 다반사였는데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레코딩까지 넣어놓은 거예요.
전태원 씨 얼마나 덜렁댔냐면
그때는 중국집 간판이 나무로 되어서
길을 막고 있었어요.
빨간 리본도 달려있는 집도 있었고
그러면 걸어가다가 딱 부딪혀서
특히 연주를 하고 나면 우리가 좀 하얘져요.
연주로 인한 도파민 과다한 상황이 생겨서
영적으로는 정신적으로는 안테나가 이만큼 펼쳐지는데
육체적으로는 완전 사그라들거든요.
전태원 씨 걸어갈 때 계속 간판, 돌 그러면서
그래도 계속 부딪히고 그랬던 기억이 나고
그런 기억이 보고 싶네요.
기자님들 또 질문 있으신 분들
질문 두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음악도 음악이었지만
커버도 되게 그 당시 파격적이어서
서종원 선생님이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커버 당시 하셨을 때
그때 일화 같은 거 들려주셨으면 좋겠고요.
또 하나를 아까 출동 얘기하셨지만
이게 이제 본질의 질감, 사운드 본질의 질감은 계속 있겠지만
기술이 발전하면 또 40주년, 45주년 되면
또 욕심을 내실 것 같은데 장애인으로서
근데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사운드의 궁극은 좀 뭔지
너무 좋은 질문을 해주셨네요.
서두호 군 얘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전태관 군이 초등학교 어릴 때부터 가장 친했던 3인방이 있었는데
그 3인방 중에 한 명이
전태관 그리고 유재하 그리고 서두호
이렇게 세 명이었어요.
유재하 세상을 떠난 유재하 씨
여러분 너무 잘 알고 계시겠지만
전태관 씨도 안타깝게 재하를 먼저 만나러 갔고
서두호 군은 지금 세계적인 미술가로
내년 5월에 영국의 페이트 모던에서 단독 개인전을 한다고 하죠.
이 자켓 이외에 1집을 먼저 도우가 만들어줬어요.
그런데 노란 앨범에 이렇게 도형이 들어가 있는 걸 갖고 와서
그때 제가 뒤지게 뭐라 그랬어요.
이게 뭐야 무슨 애들 색종이 장난친 것도 아니고 그랬더니
무슨 갑자기 듣도 보도 못한
칸딘스키의 무슨 해체와 재구성 무슨 해체주의의 미술 작품이다.
그러면서 얘기를 했었던
그리고 나서 이제 너무 어려운 걸로 가지 마 철학적이다.
그랬더니 두 번째 앨범을 이렇게 만들어 갖고 왔는데
정말 제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제가 제일 사랑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앨범 자켓 중에 원픽이고요.
이거는 직접 본인이 유화로 그림을 그렸고요.
그거를 사진 찍어서 필름 작업을 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에요.
그리고 뒷면에는 본인이 또 크레용으로
유화 크레용으로 두 번 덧붙여서 쓴 본인의 캘리그래피로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는 표제가 있고요.
그 아래에 있는 사진은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나신
사진가 김중만 씨의 사진입니다.
얼마 전에 도호 군을 만났어요.
한국에서 이제 아트 선제에서 개인전을 할 때
정말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 친구도 이 자켓을 너무 좋아하고요.
조만간 기회가 된다면
우리들만의 특별한 작품을 한번 만들어보자 얘기를 했어요.
어떤 얘기를 했냐면
지금 대중예술과 수집예술은
완전히 건널 수 없는 강이 생겨버렸다.
특히 미술 시장은 너무 부자들의 세상이 됐고
대중음악은 그냥 아무리 잘 만들어도
똑같은 값에 팔 수밖에 없는 세상이 돼버렸다.
제작비가 집에서 한 시간 만에 쭉딱거려서 만든 것도
멜론, 애플 뮤직에서 똑같은 값에 팔리고요.
저희같이 몇 억을 들여서 만든 곡도
똑같은 금액에 팔리는 시장이 됐단 말이에요.
그게 뭐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돈 많이 들인 사람 입장에서는 좀 상당합니다.
보람리적이라고 생각하고
그리고 자존심에도 약간 기스가 가는 그런 건데
그쪽은 너무 신기해요.
막 부르는 대로 값이 정해지는 그런 시장이잖아요.
그런데 아마 음악을 들으시는 분들 중에서도
그쪽과 같은 호사를 누리고 싶은
호사라는 게 다른 게 아니라
자기 지갑에서 좋은 음악에 대해서 인정을 하고
돈을 좀 써서 그 가치를 올려주고 싶은
심정을 갖고 계신 분들이 있을 거예요.
그런 분들을 위해서
미술계와 대중음악계의 콜라보레이션 작품을 한번 해보자.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미술가이고요.
그 친구는 작품에 어떤 뭐라고 할까
현대 피카소라고 할까
자신의 작품에 들인 시간도 엄청나고요.
기본기는 말할 거 없이 들어볼 필요 없이 대단하고요.
그리고 그 작품에 담겨있는 심오한
우리 현대인을 따스하게 얼음 만져주는
외로움에 대한 통찰은 정말 놀라울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이 대중음악하고 굉장히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대중음악은 외로움에 대한 통찰이 있을수록
대중이 화답을 하는 경향이 크거든요.
두 번째로 물어봐주신
음악의 궁극
궁극은 저는 현대 음악가들한테 좀 죄송합니다만
저는 2000년대에 들어서 음악은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은 죽고 제작자는 살아났습니다.
그런 경향이 앞으로 가면 갈수록 더해갈 거고요.
음악의 본질보다 그걸 갖고 산업을 만들고
그걸로 재미를 추구하는 그런 형태가
앞으로 계속 더해갈 거라고 생각을 하고요.
음악은 거기에 어떤 부가적인 부시돌 정도의 역할 정도로
사그라들지 않을까
그렇게 제가 미래학자는 아니지만
그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 뭐냐면요.
200년 전에 음악을 한번 들어보세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그게 대중음악이었어요.
최고의 악기로 최고의 홀에서 단 한 번의 연주로
듣는 사람을 감동시켰던
그리고 작곡도 편곡도 놀라운 그런 시대가 있었습니다.
시대가 지나서 1960년대 비틀즈 정도가
정말 아름다운 곡 만들었고
80, 90년대 들국화 봄, 여름, 가을, 겨울 정도가
어떻게 해보려고 하다가
2000년대니까 음악은 죽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공극의 모든 음악의 근원은 과거에 있습니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우리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다 흘러나가버린
사라진 것들을 복원하고
다시 그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장인급의 사람들이 혼신을 다해서
여러분들한테 과거의 거를 다시 재구성해서
들려드리는 그런 음악
그런 것들을 많이 사랑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파이낸셜 투데이 김영재 기자라고 합니다.
7집에 이어서 2집을 다시 믹스하셨는데요.
앨범 선정 기준이 제가 보기엔 대중성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중간에 실험적인 음악도 한 번 시도하셨으니까요.
앞으로 또 어떤 앨범을 뉴믹스하고 싶으신지 궁금하고요.
또 하나 질문은 아까 모래알처럼 흘러나가버린 것들을 복원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봄, 여름, 가을, 겨울 외에도 김현식 씨나 유재하 씨처럼 과거 인연이 있던 분들의 앨범을 뉴믹스하고 싶은 생각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두 번째 질문이 너무 세서 앞에 거를 살짝 잊어버렸네요.
앨범 다음 믹스 작품 선정에 대해서 여쭙겠습니다.
두 번째 질문 먼저 답해드리겠습니다.
너무너무 하고 싶죠.
특히 함께 음악을 했던 그런 분들, 김현식, 유재하, 이승철, 박광연,
저의 시간이 함께했던 그런 분들의 음악이라면 정말 하고 싶지만
제작자가 우리가 아니고 마스터 테이프들이 보존되어 있어야 된다는 그런 조건이 따르거든요.
그래서 아마 한국에서 마스터 테이프를 다시 풀어서 뉴믹스를 하는 것은
앞으로도 접하기 힘든 작업이실 거예요.
또 하나의 이유는 뭐냐면 타산성이 떨어져요.
그러면 제작비 꽤 많이 들어가는데 듣는 거는 이게 나온다고 해서 히트곡이 되지 않는 한은 더 많이 안 들으시거든요.
그래서 아까 말씀드렸지만 음악밖에 모르는 바보들 아니면 이런 작업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이 되고요.
그 기준은 대중성도 있지만 저희가 마스터 테이프를 안 갖고 있는 앨범이 두 개가 있는데요.
그게 1집과 3집이에요.
1집은 독특하게 저희 봄, 여름, 가을, 겨울은 그 시대부터 지금까지 흔치 않은데
저희가 제작자예요.
동화기획이라는 데에서 음반이 계속 나오고 했지만
저희가 제작을 해서 판권을 모두 저희가 갖고 있고요.
그래서 가능한데 신기한 건 1집은 마스터 테이프를 서울 스튜디오에 맡겨놨더니
한영애 누나가 전화가 왔어요. 어느 날.
종진, 지금 나 건널 수 없는 강 녹음하고 있는데
자기네 1집 앨범에다가 녹음하고 있어. 다 지워졌어. 그러는 거예요.
사라져버렸습니다.
그거는 믹스를 새로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고요.
3집 앨범은 이제 전 곡을 미국에서 했잖아요.
에크네 스튜디오라고 뉴욕에 있는 스튜디오에 마스터 테이프를 맡겨놨었는데
이제 한국에 갖고 와야 되는데 너무 무거운 거예요.
그리고 또 그때 세관에 어떤 문제가 있어서 여기저기 알아봤더니
마스터 테이프 값은 한 200만 원에 불과한데
그 안에 들어있는 음원의 가치가 산정할 수가 없다.
이걸 잘 해서 팔면 몇억 원어치도 팔릴 수 있는 거 아니냐라고 세관에서 답이 왔어요.
그래서 그러면 이거는 세금을 말도 못하게 때려맞을 수 있는 거니까
그럼 좀 펜딩을 시켜보자.
그래서 LA에 있는 전태관 씨 친척집 창고에 일단 보관을 하고 있었는데
그 집의 주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그리고 이제 우리 전태관 씨도 건강이 나빠지면서 소실됐어요.
그 이외에는 저희가 저희의 5집 앨범이
여러분이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한국 대중음악 중에서는 LP로 가장 마지막 LP가 생산됐던 앨범이에요.
물론 클래식에서는 더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1995년도로 기억이 되는데
그때 이미 LP 공장들이 문을 닫으면서
그게 우리나라 마지막 대중음악 LP가 됐고
흑소량 이렇게 제작이 됐고
판매는 거의 안 됐고 그렇게 되다 보니까
그 앨범이 LP가 엄청 중고가가 비싸게 거래가 되는 앨범이에요.
그래서 그거를 아날로그 매니아들이 꼭 듣고 싶다 요청이 계속 오세요.
그래서 아마 다음 앨범 작업하는 리스트에는 5집이 들어있지 않을까 생각이 되는데요.
2집 정도까지는 믹스를 다시 하고 싶은 욕구가 굉장히 커요.
왜냐하면 그때 한국의 음악 기술이 굉장히 낙후되어 있었고
그래서 지금 만들면 굉장히 좋을 거라고 생각이 되는데
그 이후의 앨범들은 미국 가서 작업하고
최고의 엔지니어들과 뮤지션들과 작업을 한 거라서
지금 들어도 거의 세계적이에요.
그래서 믹스를 다시 해도 더 잘 나올지는 모르겠는데
어쨌거나 그것 또한 여러분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하는 작업은 항상 반정반을 발매하는 거고요.
그 이유는 정말 그 아날로그 고음질의 취미를 갖고 계신 분들의 도락을 위해서
제공을 하는 어떤 음악가의 정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답이 됐나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시간 관계상 질문이 혹시 있으시면 한 질문만 더 받고 마무리하려고 하는데요.
질문이 없으시면 제가 마지막으로 한 개만 더 질문드리고
주최 측에서 왜 이렇게 질문을 계속
요즘 아까 잠깐 말씀하셨는데
요즘 젊은 친구들이 봄여름 가을겨울 음악을 다시 듣고
찾아서 듣고 발굴해보고 하는 얘기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어린 친구들, 10대, 20대 친구들이 봄여름 가을겨울 음악을 듣고
감상도 전해주셨을 것 같고
직접 만드신 30년 전에 곡을 만드신 분 입장에서는
그분들의 감상의 평가가 어떻다고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시티팝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저희 곡들 몇 곡이 살금살금 들어가서
여러분들의 플레이리스트에 계속 올라가고
특히 젊은 분들이 그렇게 음악을 즐겨주시는 부분이 너무 감사해요.
기분이 좋고요.
이런 앨범을 다시 뉴믹스를 작업해서
계속 과거의 음악을 즐겨달라는 저희 바램과 너무 부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약간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저희 봄여름 가을겨울의 어떤 곡들은 시티팝의 범주에 들어가긴 하지만
과거의 기록들을 아마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저희 봄여름 가을겨울은 데뷔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일관적으로 늘 하던 말이 있어요.
봄여름 가을겨울의 음악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때는 이제 퓨전이라는 퓨전 밴드 뭐 그렇게
록입니까? 블루스입니까? 뭐 이렇게 물어보시잖아요.
아마 답은 퓨전이라는 말을 듣고 싶으셨겠지만
라디오 DJ라든지 기자분들이 이렇게 인터뷰를 하면
그 그런 질문을 하시면
저희는 일관적으로 저희 봄여름 가을겨울은 봄여름 가을겨울 류의 음악을 만들고 싶습니다.
라고 얘기를 했어요.
바죽에 빗대서 조치흥류, 서봉수류 그런 그들만의 어떤 수들이 있거든요.
그들만이 즐겨 써서 그 수를 딱 보면
어 이건 서봉수류인데 뭐 그런 게 있거든요.
근데 어느 구절만 딱 들어도
어 이건 봄여름 가을겨울인데
후배들 음악가들이 들어도
어 이건 봄여름 가을겨울 류야라고 말하는
그런 정도까지는 좀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어요.
특히 일본의 무슨 뭐 야마시타 무슨 뭐 그런 음악은
뭐 사카모토 그런 음악은
엄청 그들만의 음악에 류가 있는 걸로 추앙을 하는데
한국에서 음악가로 이건 봄여름 가을겨울 류야
들국활 류야 무슨 류야
라고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은 없어요.
그 정도로 들으시기에도 충분히 한 구절만 들어도
우리들만의 사운드의 개성이 있고
뭐 편곡법이 있으며
그 에피소드들 그들이 추구하고 싶었던
메시지 그리고 그들만의 스토리도 많으니까
지나간 선배의 음악들
하나의 캣동어리로 몽둥그려서 듣는 것도 감사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들고 파서
요즘 패션에는 그런 경향이 참 많습니다.
청바지
일본의 무슨 코지마 지역에 가면 생지를 개발을 하는데
거기에 만들어진 웨어라우스 진이 최고야
캐피탈 진이 최고야
뭐 그렇게 엄청 연구해서 하시는데
우리 한국 음악도 그렇게 하시기에 충분히 가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되고요.
웃긴 얘기지만
시티팝이라는 말 제가 만든 거 아세요?
당시에 네이버에 있던 김홍기라는 친구가
네이버에서 어떤 장르의 음악을
과거의 음악을 젊은 친구들이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일본의 하바드라는 팀이 있었어요.
그런 류의 음악을 한국 음악에서도
몽둥그려서 사람들한테 소개하고 싶은데
어떤 이름을 붙이면 좋을까
그렇게 물어봐서 몇 가지 얘기를 하다가
결국 종착지가 시티팝이 됐어요.
거기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숟가락을 얻는 정도는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저희 준비될 시간이 마무리돼서
마지막으로 김동희님 끝인사 듣고
저희 일정 오늘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저희 봄, 여름, 가을, 겨울 소식을 항상
먼저 알려주시고 애정을 갖고
이렇게 글을 써주시고 보도해주시는 분들이
다 와주신 것 같아서
정말 감사의 마음으로 이 시간을 함께했는데요.
제가 이 앨범 오늘 준비를 하다가
35년 전에 악보를 찾았어요.
그게 무슨 악보냐 하면
그 당시에는 심의가 있었어요.
그래서 심의를 하려면 깨끗하게 적어서
깔끔하게 도장까지 적고
이렇게 악보를 잘 만들어서 제출을 하면
이걸 보고 이 음악이 괜찮은가 아닌가 판단을 한 뒤에
심의가 나야 음반을 발매할 수 있었던 시대거든요.
지금은 심의가 사라졌습니다.
세상이 참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우리들이 마음껏 음악을 발표하고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같은데요.
이렇게 많이 변한 세상 속에도
어쩌면 과거의 음악들이 같이 있고
다시 들을 만한 그런 음악이 있다면
여러분들이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들어주시면 감사하겠고요.
혼자보다는 돌아서 있는 사람을
다시 내 쪽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그런 음악이 되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세상이 돌아서 있는 것 같아요.
이제는 돌아서 있는 사람을 내 쪽으로 돌려주는
그런 음악을 우리 음악가들도 만들어주시면 감사하겠고요.
들으시는 분들도 그렇게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요.
정성껏 만든 음원 노래 한 곡 연주곡 한 곡 띄워드릴게요.
노래는 앨범의 A면 5번 트랙에 담겨있는
내 품에 안겨 그리고 연주곡은 이어서
B면 6번 트랙에 담겨있는
그대 별이 지는 밤으로 두 곡 이어드리겠습니다.
긴 시간 함께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