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문화연구소 칼럼] 갈라진 틈 사이에 서라

기록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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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 1.
갈라진 틈 사이에 서라. 나라가 어지럽습니다. 조국 사태로 인한 갈등과 혼란이 온 나라를 돕고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여당과 야당은 물론 보수와 진보로 국민들의 마음은 심하게 갈라져 있습니다.
갈수록 양측의 틈이 커져만 가고 있는데도 갈라진 틈 사이에서 하나담과 연합, 화해해를 외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한국 사회와 정치를 바라보는 교회와 기독인들의 견해도 극명하게 갈라져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카카오톡 단체방을 통해 정치적 주장이 담긴 메시지를 받습니다.
같은 사안에 대해 너무나 다른 메시지를 읽다 보면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부 교인들이 보내는 카카오톡 메시지는 너무나 거칩니다. 정제되지 않은, 독설에 가까운 메시지들이
크리스찬들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살포되고 있습니다. 여러 기도 모임에서도 정치적 내용이 담긴 기도가 들여지고 있습니다.
중부 기도 모임을 갔다가 갑자기 정치적 주장을 펼치는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로 인해 모임이 엉망진창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음에도 배려는 없습니다. 주장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 일방적 주장들이 때로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때로는 기도를 통해 발생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과 화해 그리고 주님이 그렇게 강조했던 하나 됨은 실종된 지 오래입니다.
각자의 견해를 갖고 기도하며 주님의 뜻을 펼친다고 뛰어들면서 점점 틈새는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정말 교회는 그리고 크리스찬들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갈라진 틈 사이에 서야 합니다.
갈라진 홍해에 서 있는 모세와 같이 양측으로 갈라진 이 땅의 군중들 사이에 서야 합니다.
모든 견해의 차이를 뛰어넘어 무너진 곳을 막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일치가 가능합니다. 한국 교회와 크리스찬들은 그런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에스겔 22장 30절 말씀입니다.
이 땅을 위해 성을 쌓고 성 무너진 데를 막는 사람은 어디에 있습니까?
크리스찬들은 다르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크리스찬이 되었다는 것은 다르게 살기로 결정했다는 말과 같습니다.
교회는 세상과는 다르게 살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그렇다면 자금의 한국의 현실에 대한 적분도 세상과는 달라야 할 것입니다.
모두가 틈을 벌리는 행동과 주장을 할 때 크리스찬들은 분연히 갈라진 틈 사이에 서서 무너진 그곳을 막아야 합니다.
중보 기도란 말 자체가 틈 사이에 끼어 일치와 화해를 이루는 기도가 아닙니까?
갈라진 틈에 서기 위해선 궁유람 외에는 다른 어떤 감정도 배격해야 합니다.
감정에 휘둘리면 주님의 거룩한 성품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그런 가운데 거룩한 기도가 나올 수 없으며 결국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갈라진 틈 사이에 나아가 중보함으로써 하나님의 분노의 징계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심지어 하나님 편에도 서지 않고 생명을 걸고 갈라진 틈 사이에 나아감으로써 자신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모세 같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한국 교회와 성도들이 한 걸음 물러서서 주님이 말하신 하나님의 기초에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다른 방식이 필요합니다.
그 다르고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합니다.
엠마니오의 카톤 콜레와 크리스 라이스의 화해의 제자도에서 이런 말이 나옵니다.
그리스우인들이 이 세상의 상황을 바르게 보고 불붙은 세계 너머에서 오는 비전을 살아낼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한 걸음 물러서는 능력이다.
따라서 한 걸음 물러서는 능력은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라는 요청이다.
수동적 능동의 자세로 2019년 갈라지고 무너지는 한국 땅을 가슴에 품고 오직 이 땅의 주님의 말씀만이 온전히 이뤄지게 기도하고 헌신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한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