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獬豸) 꼬리를 문 사연

SOH 희망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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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비디오 조회수·2026. 3. 12.
문화부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옛날 아주 먼 옛날 하늘이 세상을 다스릴 기운을 나누어 줄 때
초나라의 깊은 안개 속에서 태어난 영웅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해치.
네, 요즘은 보통 해태라고 하는 그 전설의 신수입니다.
사자 같은 용맹함과 신수 기린의 영엄함을 닮았으며
이마 한가운데는 하늘의 이치를 꿰뚫는 외뿔 하나가 빳빳하게 솟아 있었죠.
해치는 세상의 그 어떤 거짓말도 그 어떤 위선도 결코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에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해 싸우고 다툴 때면 왕은 엄숙하게 해치를 불러들였습니다.
그러면 해치는 그 신미와 눈으로 사람들을 보다가 정직하지 못한 자,
즉, 마음속에 불인내가 풍기는 죄인의 가슴팍을 그 단단한 외뿔로 사정없이 들이받아 버렸습니다.
꿀에 바친 자는 비명을 지르며 혹부러졌고 세상은 비로소 보유함을 되찾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힐 만큼 커다란 시비가 붙어 해치가 마당으로 끌려 나왔습니다.
양쪽 모두 자신이 천하의 공정이오 상대가 천하의 악이라며
목을 놓아 루부짖던 그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해치는 누구도 들이받지 않았습니다.
대신 해치는 갑자기 제 자리에서 뱅글뱅글 돌기 시작하더니
자신의 길고 두툼한 꼬리를 덥석 깨물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루종일 해가 지고 달이 뜰 때까지 제 꼬리를 물고 팽이처럼 돌 뿐이었습니다.
왕이 당혹스러워하며 물었습니다.
영물이여, 어찌하여 죄인을 받지 않고 네 꼬리를 씹고 있느냐?
그러자 해치가 입에서 꼬리를 스르륵 놓으며 지친 듯 대답했습니다.
전하, 제가 이마에 뿔로 들이받으려 고개를 들 때마다 저들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저쪽은 이쪽이 틀렸다 하고 이쪽은 저쪽이 죽일놈이라 하니
제가 보기엔 저들이 모두 각자의 오름 속에 갇힌 불쌍한 짐승들일 뿐입니다.
해치는 다시 제 꼬리를 물 준비를 하며 덧붙였습니다.
남을 들이받는 뿔보다 내 꼬리를 무는 이 아픔이 차라리 더 정직합니다.
세상의 시비가 멈추지 않는 한 저는 이 무한한 굴레 속에서 제 꼬리 맛이나 보며 살겠나이다.
장자가 말했습니다.
이것이 저것이고 저것이 곧 이것이다.
옳고 그름의 문설주에서 그 중심을 얻은 장하니
비로소 무궁한 시비의 소용돌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오늘도 바깥세상에선 수억의 시시비비가 빙글빙글 돌고 있겠지요.
그 끝에 매달려 정신없이 핑핑 돌다가는 정말 돌아버릴지도 모릅니다.
그 고요한 부동의 중심을 잡아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