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비디오 조회수·2026. 5. 25. #잠자며듣는이야기 #잠자리소설 #책읽어주는남자 #잠자며듣는이야기 #잠자리소설 #책읽어주는남자
하루의 끝, 조용한 밤.
당신을 깊은 이야기 속으로 이끄는 오디오북 채널, 책과 함께하는 하루 '단잠'입니다.
🛏️ 잠들기 전,
🚶♀️ 혼자만의 감성 산책 시간,
🎧 눈은 쉬고 싶지만 마음은 이야기를 원할 때—
언제든 이곳에 들러주세요.
이번에 낭독할 작품은 구효서 작가의 단편 소설 "도라지꽃 누님" 입니다. 😊
즐거운 감상 되세요.
[ 구효서 — 문학의 마라토너, 끝없이 변신하는 이야기꾼 ]
작가의 삶 — 강화도 소년에서 전업 작가로
구효서(具孝書, 1958년~)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창후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배재고등학교와 목원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습니다. 이상의 영향으로 고등학교 때까지는 시를 썼으나, 동화작가 김요섭을 만나 소설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87년은 6.10항쟁과 전국적으로 노동조합이 결성되는 등 사회적으로 많은 일이 발생했지만 구효서에게도 특별한 한 해였습니다. 소설가로 등단한 것이 그렇고 결혼을 하고 연말에 아들을 낳았죠. 87년부터 문학사상에 입사해 4년을 근무한 후 오로지 글만 쓰는 전업 작가로 지냈습니다.
구효서는 등단 직후 문학사상에 입사했습니다. 그리고 문학사상에서 편집자로 일하면서 처음 만든 책이 바로 '이상문학상 작품집'이었습니다. 이후 구효서는 중편소설 「풍경소리」로 2017년 41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합니다. 문학상 작품집을 편집하던 본인이 바로 그 문학상을 수상한 것이니, 참으로 각별한 인연이었습니다.
이상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쓰는 일이 직업이고 먹고 사는 일과 직결된다. 좋은 작품을 써야 한다는 절박감도 있지만 안 쓰면 죽는다는 절박감으로 쓰고 있다"면서 수상을 "삶에 대한 선고"라고 표현했습니다. 문학이 생존이고 소명인 전업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고스란히 담긴 말입니다.
등단과 꾸준함 — 문단의 마라토너
소설가 구효서는 마라토너로 비견되고는 합니다. 이유는 꾸준함에 있습니다. 단편 「마디」로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등단한 이래 30년 넘게 매년 새로운 소설을 발표해왔기 때문입니다.
등단작 「마디」부터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등단작 「마디」는 눈으로 차마 볼 수 없을 때는 가까이 갈 수 없어 '먼 곳에서' 볼 수밖에 없는 광주에 멀리 에돌아 닿는 작품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언덕 위 오동나무 그림자에 금을 그으며 내일 나무 그림자가 다시 이 금에 닿을 때 반드시 데리러 오겠다던 청년이 정말로 나타나 주었다면 아이의 운명은 지금의 비극에 닿지 않았을 것이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이미 첫 작품에서 구효서가 문학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습니다.
주요 작품들 — 단편에서 장편까지, 넓고 깊은 서사
창작집으로는 『노을은 다시 뜨는가』, 『확성기가 있었고 저격병이 있었다』,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도라지꽃 누님』, 『아침깜짝 물결무늬 풍뎅이』, 『시계가 걸렸던 자리』, 『남자의 서쪽』, 『전장의 겨울』, 『라디오 라디오』, 『몌별』, 『내 목련 한그루』, 『슬픈 바다』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로는 『늪을 건너는 법』, 『라디오 라디오』, 『비밀의 문』, 『내 목련 한 그루』, 『나가사키 파파』, 『랩소디 인 베를린』, 『동주』, 『타락』, 『새벽별이 이마에 닿을 때』, 『옆에 앉아서 좀 울어도 돼요?』 등이 있습니다.
특히 홍상수 감독이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영화화한 작품도 구효서의 소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장편소설 『동주』는 시인 윤동주의 삶과 문학을 소설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이 소설이 세상에 나온 것과 맞물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가 제작되면서 폭넓은 독자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수상 경력 — 한국 문학상의 전당을 가로지르다
소설가로서 그의 수상 경력은 화려합니다. 이상문학상(2017), 동인문학상(2014), EBS 라디오 문학상 우수상(2013), 대산문학상(2008), 허균문학작가상(2007), 한무숙문학상(2007), 황순원문학상(2006), 이효석문학상(2005), 한국일보문학상(1994) 등을 받았습니다. 30여 년간 거의 매년 발표한 작품마다 문단의 선택을 받아온 셈입니다.
작품 세계와 문체 — '실험정신'이라는 일관된 변신
구효서 문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끊임없는 변신입니다. 일정한 톤이나 색깔로 예상할 수 있는 작품들을 쓰기보다 새로운 양식이나 주제로 옷을 바꿔 입었습니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의 신작을 대할 때마다 신선함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평론가들도 독자들처럼 그의 도전을 신선함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작품성을 담보한 중견작가의 신선함은 근래에 찾아보기 힘든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36년이라는 상당히 오랜 작가 생활을 하면서 늘 실험정신이 강한 분이란 평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실험은 난해함을 위한 실험이 아닙니다.
새 작품에 대해 작가 스스로 '쉽다'고 표현하며 "제 작품 중에는 만만치 않은 소설이 꽤 있었습니다. 분량도 많고, 주제도 무겁고, 시대적으로는 중세, 장소에서는 유럽과 한국, 평양을 오가는 작품도 있었죠. 그런데 새 작품은 일단 가볍고,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무거운 역사와 가벼운 일상, 거대한 공간과 소소한 관계를 자유롭게 오가며 쓰는 것이 구효서 소설의 스펙트럼입니다.
소설 속 화자의 특징도 흥미롭습니다. 작품들 간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소설의 화자가 30대 중후반의 남성이라는 점입니다. 당시에 작품을 썼던 소설가 구효서와 비슷한 나이로, 작가 자신의 연배와 삶의 국면이 소설 속 인물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방식을 취한 것입니다.
구효서는 한국 문단에서 가장 오래, 가장 꾸준히 달려온 소설가 가운데 한 명입니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새로운 소설을 발표하면서도, 매번 다른 얼굴로 독자 앞에 나타났습니다. 강화도 소년이 품었던 이야기에 대한 열망이 지금도 식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안 쓰면 죽는다는 절박감으로 쓰고 있다"는 그의 말이 과장이 아님을 그의 작품 목록 전체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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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구효서 작가님의 단편소설
도라지꽃 누님을 읽어드리려고 합니다.
구효서 작가님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주제로 한 소설입니다.
구효서 작가님은 이남사녀의 막내라고 하죠.
요즘엔 거의 한두명만 낳아 기르지만
예전엔 이정도의 형제가 있는것이 제법 흔했던 모습이었죠.
저도 형제가 한 세명 되니까
오래전 시대와 요즘 시대의 과도기쯤이 되겠군요.
이 소설은 구효서 작가의 셋째 누님에 대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셋째 누님에 대한 연민과 애틋함이 잘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소설 끝까지 잘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럼 소설 읽기를 시작해볼까요?
도라지꽃 누님
구효서
지금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써서
밥도 먹고 집도 사고 했지만
누님들에 대해선 별로 쓴 적이 없다.
누님이 4식이나 있는데도 말이다.
나는 이남사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4식이나 되는 누님들의 삶은
내 성장과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여태껏 그들에 대해 침묵해왔다.
큰 누님이 예순을 넘겼고
나 또한 마흔을 넘겼는데도
나는 아직 그들에 대해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어느 한 곳을 허물면
와르르 무너져 쏟아질 것만 같은
그들의 지나온 서러운 삶들을
섣불리 건드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감당할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처음으로 셋째 누님의 이야기를 조금 하려고 하지만
나는 둑이 무너져 누님의 회한 어린 삶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길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누님의 얘기라기보단
도라지꽃과 누님이 키우던 백구에 대해
슬쩍 쓰려고 한다.
누님은 2년 전부터
강원도 횡송군 우천면 산전리
산 87-1번지에서 혼자 살고 있다.
다 쓰러져가는 농가 한 채를
공짜로 얻어 살고 있는 것이다.
줄곧 서울에 살던 마흔여섯 먹은 여자가
갑자기 강원도 산골짜기에
혼자 처박혀 살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으면
금방 산장의 여인이라도 떠올림직하겠지만
그건 아니다.
누님한테 집을 내준 집주인의 얘기를 들어보면
누님이 왜 그곳에 내려가 살게 되었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집주인은
내가 누님을 뵈러 종종 그곳에 들릴 때마다
후회조의 한탄을 털어놓곤 했다.
글씨
어느 날인가
땡볕에서 주행일 옥수수밭을 매고 있는데
아가씨인지 아줌만지가 와서 묻는 거요.
아저씨
여기 집안에 살 수 없을까요?
이러는 거요.
그래 내가 말했지
팔 건 없고
그냥 살려면 살 집은 있수다.
그랬더니 좀 보재.
보자길래 베어줬지.
단박에 들어와 살겠다는 것이요.
좀 놀라기는 했지만 집을 주었어.
그렇잖아도
누굴 들이긴 들여야 할 집이었거든.
사람이 나간 뒤로
오랫동안 새 사람이 안 들어서
팔려고 했던 집이거든.
그런데 서울에 나가 사는 자식들이
절대로 팔진 말라는 거야.
조금 더 묵히면 집값이 엄청 뛸 거라나 어쩐다나.
집 비워두면 무너지고 흉조 낀다는 건 모르고.
하여튼
집이라는 건 사람이 들어 살아야
안 무너지고 흉조도 끼지 않는 법이라
그냥이라도 살 사람 있다면 줄 판이었지.
그런데 저 양반이 달라는 거요.
보아하니 시골 맛도 제대로 모르는 부인 같아서 주워버렸지.
기껏해야 서너 달 살다 못 견디고 나가버리겠지 하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게야.
지붕 뜯어 고치고
기둥 바로 세우고
보일러 드리고 어쩌고 하는데
앞이 깜깜해지는 거야.
물어보니까
집 수리하는 데 2천만 원 가까이 들었다네.
일이 이렇게 돼 놓으니
지금 와서 나가랄 수도 없고.
난 이제
자식들한테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저 양반 주민등록과장
얘다 텅 옮겨놔 버렸으니.
누님은 지붕에 스티로폼을 깔고
시멘트를 얹었다.
시멘트가 마르자
유성 페인트를 바르고
정성들여 기타와 악보와 음표들을 그렸다.
오이 썰 듯 통나무를 잘라
벽면을 장식하고
틈새를 황토로 메웠다.
군데군데 벽을 뚫어
격자창을 달고
석가래와 석가래 사이엔
벽회를 발랐다.
대들보엔
손수 만든 한지등을 달았다.
거실 한 켠에 세워 놓은
여러 개의 통나무 토막 위에
촌농을 흠뻑 흘려 놓았다.
마당 한 켠엔
숯불 구이며
바비큐를 해 먹을 수 있는
멋들어진 야외 화덕을 세웠다.
오물가 말뚝 위에는
양옥 모양을 한
새빨간 편지함을
앙증맞게 올려 놓았다.
더도 덜도 할 것 없이
북한광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황토방 카페였다.
테이블과 의자 대신
TV와 이불이 있다는 게
다를 뿐이었다.
누님이 두 마리의 개를 얻어다 키운 것도
마른 장미와 마른 옥수수를
창틀에 멋스럽게 걸어 놓은 일과
그다지 다를 게 없었다.
4만 원을 주고
사다 심은 오물가에 불도화와
이웃에서 씨를 얻은 채송화 곁에
두 마리의 희고 검은 강아지를
배치하고 싶었던 것이다.
흰 개의 이름은 백구였고
검정 개의 이름은 먹구였다.
누님은
어째서 그런 일을
죽을둥 살둥 했을까?
웬만했다면
죽을둥 살둥이란 말을
나는 쓰지 않았을 것이다.
화단을 가꾸고
분꽃과 과꽃을 심고
마른 억새꽃과
수수이삭을 주워다 거는 일들을
누님은
마치 죽기 전에 무언가를
바삐 해치우려는 사람처럼
돌아쳤다.
그년
미쳤지 뭐야?
오죽했으면 둘째 누님이
혀를 참며 걱정했을까.
집을 치장하고
마당을 가꾸는
셋째 누님의 정성은
극성맞다거나
신들린 듯하다는 말로
비유하기에도 부족했다.
온갖 잡동산이들을
끌어모으느라
누님은 뻔질라게
동대문시장이며
황학동 벼룩시장을 누볐다.
종묘 상가며
조경회사를 몇 차례나 들락거렸다.
그것들을 사들이는데
적지 않은 돈을 쓰는 듯했다.
내가 보기에도 누님은
눈이 뒤집힌 것 같았다.
톱질, 망치질도 수준급이었다.
목재를 사다가
하루종일 뚝딱거려
장식대와 간이의자를
척척 만들어냈다.
그러면서도 누님은
도무지 만족할 줄 몰랐다.
물론
그렇게 돌아치며
땀을 흘리다 보면
그 일에 어느 정도는
만족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자족하고 마는
누님이 아니었다.
주말마다
누님은 서울에 사는
형제들이며
친구들을 불러내렸다.
야외 화덕에
생닭을 통째로 구워둘리고
가마솥 뚜껑에다
삼겹살을 구워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았다.
밭두렁에서 뜯어온
고들배기 잎에다
고기를 싸들고
맥주 한 잔을
쑥 들이킨 다음이야
어...
좋다
하고 누님은
비로소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게다가
누군가가
나도 이런 데서
이렇게 살아봤으면 좋겠다
라거나
역시 인간은
자연을 벗삼아 살아야 해
라며 한껏 부러워하면
누님은 마침내
법려를 느낀 듯
온몸을 부르르 떨며
눈을 감았다.
하다못해
어디선 부쇄화로
하나를 구해와도
누님은 그곳에다
된장찌개를 올려
형제들과 나누어 먹어야
만족을 하곤 했다.
방문을 열면
곧장 앞산이 들이닥치는
산전리 87-1번지
씽크대의 작은 창밖은
그대로 푸른 들깨밭이오
호박밭이었다.
자연 한가운데다
낮은 집을 짓고 사는
누님의 행복은
가히 짐작할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누님이 항상
그곳에 머문 것은 아니었다.
서울을 이웃집처럼
드나들었다.
밋밋한 벽 한가운데다
청동 조각품을
하나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기어코 차를 몰고
인사동이며
황학동까지
단숨에 내달아 왔다.
누님의 집 마당 한켠엔
그래서 언제나 떠날
재비를 차리고 있는
아이보리색
록스타 R2
찌푸가 서 있는 것이다.
하여튼
그 누님은 점점
바람같은 사람이 돼갔다.
일단 맘먹은 일엔
머뭇거리지 않았다.
휙 하면 서울이고
또 휙 하면 산전리였다.
언제부터
누님이 그토록
정신없이 몰아치는
사람이 되었던가.
원래 누님은
그런 분이 아니었다.
늘 고개를 반쯤 숙인 모습이었고
말이 없었다.
위로 누님 네 분과
형님 한 분이 있었으므로
어린 막내였던 내 눈엔
그들이 구분되어 보이질 않았다.
남자는 형이었고
여자는 모두 누나였을 뿐이다.
무명틀에 앉아
북을 놀리면서
나한테
무너진 사랑탑을
가르쳐주었던 것도
그냥 어떤 누나였을 뿐이지
몇째 누님인지는
모르는 것이다.
내가 셋째 누님을
처음으로 구별하여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은
아홉 살 때였다.
누님은 그때
칠총간이던
아저씨 댁에 가 있었다.
긴 산모퉁이를
두 개나 돌아야 나오는
그 아저씨 집에
밥을 해드리러
가 있었던 것이다.
아저씨 병 나올 동안
잠깐이면 돼.
가기 싫다는
누님의 손목을
억지로 끌어내며
어머니가 말했었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뒷간 겹
소나무 그늘 아래로
사라지던
누님의 검은 골덴바지를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잠깐이라고는 했지만
언제까지
아저씨 댁에 머물러야 하는 건지
아무도 몰랐다.
자식이 없던 아저씨는
이미 지병이 깊었고
비만에 고혈압이었던
아주머니조차
기동이 불편했던 것이다.
누님의 나이
그때가 열네 살.
국문학교를
막 나온 뒤였다.
큰누님은 이미
시집을 가버린 뒤였고
둘째 누님은
다 성장해서
어엿한 우리집의 살림꾼이었다.
넷째 누님은
국민학교 3학년.
아저씨 댁에 보내질 사람은
셋째 누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필이면
우리집의 누님을
보내야만 했었을까.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미 말했듯이
그 아저씨네는
자식이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분들의 사후제사를
모셔야만 했던 것이다.
그 누군가가 나였다.
문중회에서 그렇게
결정했다는 거였다.
내가 겨우 두 살이었을 때
그분들의 사후제사를
모신다는 조건으로
나는 장차 그분들의
전답을 상속받게 돼 있었다.
겨우 열맞이긴
남짓한 논밭이었지만
단지 제사를 모신다는
대가로는 적지 않은
재산이라고
어머니나 아버지는
생각했던 모양이다.
싫다는 누님의 손목을
굳이 이끌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내가 물려받을
얼마간의 논밭 때문에
누님은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노부부와 함께
살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 난 아무것도 몰랐다.
방학을 맞은
내 손을 잡고
누나한테 가보자던
어머니를
그래서 나는 뿌리치고
또 뿌리쳤다.
하지만 딱 한 번
버럭 화를 내쉬며
다그치는 어머니를
끝내 이기지 못하고
누님이 살고 있던
아저씨대에 간 적이 있었다.
아저씨네 마당가에
날 남겨놓고
어머니는 바쁘시다며
이내 돌아가고 말았다.
누님이 혼자 묵던 건너방은
작고 어둡고 쓸쓸했다.
누님의 물건이라고는
작은 광목보다리
하나뿐이었다.
광목보다리는
방 한 구석에 외롭고
초라하게 놓여 있었다.
벽과 천장의 벽지도 낯설고
대청마루 빛깔도 낯설었다.
저녁때가 되어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으로 나가는 누님이
무쇠소 뚜껑을 여닫는
누님이 가느다란 팔뚝이
애처로웠다.
밤마다 낯선 천장을 바라보며
혼자 누웠을 누님은
나와 함께 자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을 얻은 듯 기뻐했다.
누님은 온 밤 내
나를 꼭 가슴에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침 설거지가 끝난 뒤
누님은 나를 데리고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 한가운데 쭈그리고 앉아
감나무 삭정이로 그림을 그렸다.
나는 그때까지
누님이 그토록 그림을
잘 그리는 줄 알지 못했다.
나는 누님이 하는대로
따라그렸다.
내가 다 따라그리면
누님은
잘 그렸다
꼭 칭찬하고
손바닥으로 땅위에
그렸던 그림을 지웠다.
꽃과 나비와
산과 강을 다시 그렸다.
나는 또 따라그렸다.
누님은 쉴 새 없이
어린아이와 사슴과
비행기와 신부를 그렸다.
그 뒤로
나는 누님이 보고 싶어질 때면
말없이 우리 집 마당으로 달려나가
감나무 삭정이로 그림을 그렸다.
누님이 그렸던 꽃과
어린아이와 신부를 그렸다.
그때부터 그리기 시작한 내 그림은
미술대학에 두 번 낙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스무 살도 안 된 나이에
누님은 막 결혼한
둘째 누님을 따라
서울로 올라갔다.
그러나
단칸 사글쇠 방에서
오랫동안 함께 살 수는 없었다.
둘째 누님이 쌍둥이를 낳자
누님은 사글쇠 방을
나와야만 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고향마을에서
내가 들을 수 있었던
누님의 소식은
소문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원효로에서 닭장사를 하던
둘째 누님은
어머니에게
셋째 누님에 대한 소식을
전했을 터이지만
막내인 나한테까지
그 소식이 전해지진 않았다.
만화가 선생님 집에 머물면서
그림 그리는 시중을 들고 있다는
누님은 어느새
하월곡동에서 살고 있었고
얼마 뒤엔 인천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누님의 삶을
아무도 돌볼 수 없었고
아무도 확인할 수 없었다.
누님과는 이미
가족이라는 유대가 끊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날이 밝기가 무섭게
덜 마른 고무신을 신고
들로 나갔고
어머니는 하루종일
무명틀에 앉아
북을 돌리거나
날과 주저앉은
허수아비 몰골로
고추밭과 콩밭 일항을 맺다.
형은 고만한 또래들과
소를 먹이며 담배를 피웠다.
넷째 누님은
감자를 몰래 훔쳐내
장군 바위 밑에서
친구들과 구워 먹었고
나는 닭장에 기어들어가
달걀을 꺼내 먹었다.
누님의 존재가
잊혀져 가물가물해질 즈음
어머니가 병색이 완연한 누님을
이끌고 나타났다.
누님의 손을
막무가내로 이끌고
칠촌 아저씨 내로 향하던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였다.
어머니는 누님을
안방에다 잡아뜨렸다.
내 눈에는
어머니가 누님의 딴지라도 걸어
넘어뜨리는 걸로 보였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무엇인가 무척 화가 나 있는
얼굴이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산과들을 헤매며
약초란 약초는 모조리 캐다
혹은 찢고
혹은 다려서
누님의 입속에다 퍼넣었다.
말오줌때
개온나무
단풍털이
뱀무
닥치는대로 후려다
어떤 것은 말리고
어떤 것은 이겼다.
우리 집은
이런저런 약초들로 가득했고
냄새는 코를 찔렀다.
누님이 몸을 일으켜 앉던 날까지
어머니는 어둡고
험악한 얼굴을
한 번도 풀지 않았다.
누님은 그렇게 고향집으로 돌아온 날
어머니에 의해
가차없이 잡아뜨려줬고
몸을 가누어 세우자
고향집을 떠났다.
누님이 주검처럼 누워있던
텅빈 아랫목을 보면서
나는 꿈을 꾸었다고 생각했다.
식구들 누구도
누님이 돌아와
알타간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산과들을 정신없이 헤매며
누님에게 약초를 뜯어먹이던 어머니조차
무덤덤한 표정으로
중불나게
콩밥만 맸다.
그리하여
누님은 또다시
바람처럼 떠도는 소문이 되었던 것이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로 올라오면서
누님은 우리와 얼마간 함께 살게 되었는데
벼락같이 결혼을 해
부산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그때 누님의 나이
갓 스물
스물한 살 나던 해 아들을 낳았고
스물세 살 나던 해 딸을 낳았다.
그리고 그 애들이 세발 자전거를 탈 때쯤
집을 뛰쳐나왔다.
애를 키우며 직장일을 다니던 어느 날
생전 처음 회식이란 데를 참석했다가
저녁 늦게
시어머니와 남편과 맞닥뜨릴 생각을 하니
도무지 무서워 견딜 수가 없었단다.
그 길로 누님은 집을 나왔고
아직도 돌아가지 않고 있다.
그 뒤로
누님이 어떤 일로 먹고 살았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다.
몇 차례 나이를 속여 위장 직업을 했고
홈패션 학원의 강사인가를 했고
아파트 건축 현장을 찾아다니며
자연석을 세일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여튼 누님은 혼자 살면서 점점 맹렬해져 갔다.
적의와도 같은 맹렬함이
누님의 거의 유일한 생존 수단이었다.
아공이에 불을 떼다
행여병자에 놀라 몇 달간 가슴병을 앓던
고향마을의 누님은 아니었던 것이다.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도 좌절하지도 않았다.
항상 자신의 처지를 최악으로 여기고 살아온 누님이었던 만큼
오히려 그녀에겐 여유와 달관의 웃음이 깃들이기 시작했다.
산전 위에 집을 얻어 죽을둥 살둥 기둥을 갈고
지붕을 얹고 꽃나무를 심던 누님의 모습은
그래서 전혀 낯선 것만은 아니었다.
다만 이제 좀 그러지 않아도 될 터인데
여전히 맹렬하게 돌아치는 게
가족들한테는 안쓰럽고 딱해 보였던 것뿐이다.
누님은 밭 한가운데다 집을 짓고
계절 따라 피는 꽃들을 바라보며 신선처럼 쉬고 싶었을 것이다.
멀고 깊은 골짜기에다 자신의 존재를 조용히 가두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준비해야 할 게 아직은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서울에 한 번 올라오면 사나흘씩 시장을 돌아다니고
친구들을 만나 산전리 보금자리에 대해 신나게 떠들었다.
누님은 웃으며 말했다.
번질나게 서울을 오가는 자신의 바쁜 일상이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나올 때 사료 왕창 부어주고 왔는데 아마 그날로 다 먹었을 거야.
개들은 도무지 아껴 먹을 줄 모르거든.
누님은 산전리 집을 떠나오면서
백구와 먹구에게 사흘치 사료를 물에 개워준다고 했다.
그러나 개들은 그날로 다 먹어버리고
누님은 개들을 그다지 안쓰러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자연 속의 보금자리를 진짜 자연의 일부로 만들려는 자신의 열정을 흐뭇해할 뿐이었다.
어떤 때는 일주일 내내 서울에 머물 때도 있었다.
혹시 죽었나 싶어 가만히 개집을 가보면
역락 없이 튀어나오면서 꼬랑지를 흔들거든.
개들은 쉽게 죽지 않아.
누님은 점점 개들한테 나태해져 갔다.
시골에 방치되어 있던 것은 농가 뿐만이 아니었다.
다랑고지 논이며 텃밭들 중에는 놀리는 땅이 많았다.
나이 든 이들은 힘에 부쳐 농사를 짓지 못했다.
게다가 산전리의 거의 모든 땅은 이미 주인이 외지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비록 도지 없이 공짜로 일구어 먹을 수 있는 땅이라 하더라도
그곳 산전리 농부들은 오래전부터 농사짓는 의욕을 잃어가고 있었다.
말이지 저 땅들 나보고 공짜로 부쳐먹으란다.
누님은 팔을 곧장 펴서 반언을 그리며 말했다.
마당에 앉았을 때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텃밭을
공짜로 일구어 먹어도 좋다고 땅 주인이 말했다는 거였다.
좋겠네. 누난 이제 땅 부자 됐네.
지난 봄에 나는 정말로 누님을 부러워했었다.
그러나 누님은 농사짓는 일엔 별로 관심이 없는 듯했다.
분꽃과 채송화를 심고 조경회사에서 비싼 돈을 주고
불두하며 벗나무를 사다가 심긴 했어도
콩을 심는다든지 옥수수를 모종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주엔 말이야 나도 농사라는 걸 한번 지어볼까 싶어서
뒷집에서 고추 묘목을 얻어다 두 이랑인가를 심어본 적이 있었거든.
근데 정말 죽는 줄 알았어.
땅심이라는 거 있잖아?
그게 그렇게 텃새가 심한 줄 누가 알았겠니?
한 30분 웅크리고 고추 모종을 하다가 넘어져 버렸어.
닌 거 두 병 맞고 겨우 일어났다는 거 아니니?
저 땅들 아무리 공짜라도 나한텐 소용없어.
난 죽었다 깨어나도 저 텃밭 3분의 1도 일구어 먹지 못할 거야.
참 독하대 그 땅심이라는 거.
누님은 자기가 쓰러졌던 밭이랑 쪽을 바라보며 진저리를 쳤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마당 가장자리를 부쩍 침범해 들어온 잡풀들을
누님은 적의 여린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강아지풀이며 방동산이며 보리뱅이 같은 잡초는
누님이 공들여 키워놓은 화초들을 호시탐탐 넘보았고
누님은 사기충천한 초병처럼 호미와 모종삽 따위를 들고 눈을 불아렸다.
자연 속에 살고 싶어 하면서도 누님은 자연과 무리없이 친화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디까지나 누님은 자신의 방식대로 하늘이며 구름이며 바람을 보았고
식물과 동물들을 키우고 돌보았다.
누님의 그런 방식은 종종 또 다른 자연과의 충돌을 초래했다.
일태면 방동산이며 보리뱅이 같은 잡풀들과
아니면 뱀, 지렁이, 개미, 파리, 먹이 같은 동물들과
우물과 말뚜기에 세워놓은 빨간 앙증맞은 우편함은
늘 외부의 소식을 갈망하는 것 같았다.
언제나 말쑥하게 서 있는 아이보리색 록스타 R2 지프는
언제든 산천리를 뛰쳐나갈 채비를 차리고 있었다.
그리고 산전리 주민이라기엔 어울리지 않는 누님의 평상복들은
잡초와 지렁이 따위의 침입을 방어하려는 듯한 주술적인 색깔과 무늬를 띄고 있었다.
적어도 한 달에 두어 차례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산전리에 놀러가
야외 화덕에다 통닭을 굽고 화로에 알불을 넣어 토종 된장을 끓였다.
누님은 일주일이 멀다 하고 서울에 올라와 실내 장식에 필요한 재료들을 사고
친구들을 만나고 늦으면 우리 집에 와 자고 냈다.
산전리에서 고생하는 건 배고픈 백구와 먹구였다.
그러다 지난 여름 내내 나는 산전리에 갈 수 없었다.
한 TV 프로그램의 초빙 리포터로 페루와 에콰도로와 볼리비아와 파라과이로 갔었고
돌아온 뒤로도 주말에 열리는 문학학교에 6주 동안 강사로 나갔었기 때문이었다.
지난주에야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오랜만에 산전리에 다녀왔다.
집 앞을 흐르는 넷가에서 홀치기 낚시로 버들치를 잡았던 지난 봄이
아이들에겐 꽤나 인상 깊었던 모양이었다.
낚시 바구니에다 새로 산 구더기 미끼를 놓고 하나로 마트에 들러 생닭 두 마리를 샀다.
횡성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7살짜리 작은 아이가 내기를 걸었다.
버들치를 가장 많이 잡는 사람한테 각각 500원씩을 모아주기로.
지난 봄 낚시 때 12마리를 잡아 최고의 강태공이 되었던 녀석이
슬슬 내기 낚시로 형과 아빠의 기세를 미리 꺾으려고 했다.
오후 5시를 조금 넘겨서 산전리에 도착했다.
저만치 누님의 집이 보였다.
지붕 위에 그려진 기타와 악보와 음표가 여름을 나면서 약간 발에 있었다.
왜요 아빠?
변속기를 중립해놓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올리는 나를 보고 작은 아이가 물었다.
아이는 어선 낚시질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더 가야 되잖아요. 왜 여기서 서요?
큰 아이가 물었다.
잠깐 저 꽃들 좀 보고 가자.
나는 차에서 내려 큰 숨을 들이켰다.
누님의 집은 꽃밭에 묻혀 있었다.
도라지꽃이었다.
보라색과 흰색의 통꽃들이 설핏 기운 햇살을 받아 작은 등처럼 빛나고 있었다.
한두 송이가 아니었다.
수백만 송이였다.
야외 화덕 뒤쪽의 둔덕밭은 물론이고
진입로 좌우의 너른 텃밭에도 온통 도라지꽃이었다.
마당 앞에서 개울가로 이어지는 층층밭에도 도라지꽃들이 빽빽하게 피어 있었다.
누님의 집을 가운데 두고 빙 두른 밭에 다른 작물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도라지꽃 천지였다.
누님의 집은 가 없는 도라지꽃 평원에 찍힌 작은 점에 불과했다.
제법 몸피가 붙은 먹구가 꼬리를 흔들며 달려나왔을 뿐
누님의 집에서는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두 아이가 마당에 선채로 번갈아 고모를 불렀지만
누님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우물과 말뚜기에 놓여진 빨간 우편함에 흰 종이쪽지가 붙어있었다.
그곳에 메모를 남기고 잠시 이웃에라도 간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메모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우체부 아저씨, 새가 편지함 속에다 새집을 짓고 알을 낳았어요.
편지는 퇴마루에다 놓아주셔야겠어요.
나는 퇴마루에 앉아 누님을 기다렸다.
퇴마루에 편지 같은 건 없었다.
아이들은 고모를 기다리지 못하고 낚시와 미끼를 들고
내까로 달려 내려갔다.
나는 할 일 없이 집 주위를 맴돌았다.
늦은 봄에 왔을 때와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화초도 더 는 것 같지 않았고 번나무 숫자도 그대로였다.
야외 화덕 곁에다 국화를 심겠다더니
무슨 바쁜 일이라도 그동안 있었던지
국화가 보이지 않았다.
간의 의자를 더 만들려고 잘라놓은 강목과 널빤지엔
검은 곰팡이가 쓸어 있었다.
삼겹살을 구워먹던 가마솥 뚜껑에도 벌건 녹이 앉아 있었다.
그동안 눈에 띄지 않았던 곡괭이며
쇠수랑이 추녀 밑에 세워져 있었다.
호미와 조선낫이 기둥에 매달려 있는 것도 보였다.
농약 분무기와 톱과 비닐과 흙 묻은 삽이
퇴마루 한켠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먹구가 짖질 않지?
보라색 반팔 티셔츠를 입은 누님이
머리에 둘렀던 수건을 풀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개들이 순한가 봐. 짖질 않아.
나는 퇴마루에서 일어섰다.
짖질 않긴. 동네 사람들한테는 죽어라 지져대면서
이상하게도 차를 타고 온 사람들한테는 짖질을 않아.
팔에 둘렀던 토실을 벗고 누님은 우물가로 가 세수를 했다.
맨얼굴이었다. 물 묻은 발등이 검게 번들거렸다.
참 좋아. 도라지꽃. 누가 심은 거야?
내가 물었다. 누님은 대답 대신
도라지꽃밭을 한 차례 휘둘러보고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누나가 심은 거야?
내가 다시 물었다. 손이 보통 가는 게 아니야.
그냥 보기엔 이쁘기만 하지.
누님은 도라지밭에서 돌아오는 것 같았다.
고추 두 이랑 심고 나가 떨어졌던 누나가 웬일이야?
정말 저것 모두 누나가 심었단 말이야?
누님은 다시 말없이 웃었다.
해가 지고 저녁이 되었는데도 누님은 옷을 갈아입지 않았다.
흙 묻은 바지와 보라색 반팔티 그대로였다.
내가 사온 생닭 두 마리를 보았으면서도
야외 화덕에 불을 지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내가 아이들과 함께 장작을 패고 불을 넣었다.
바베큐 도구였던 철근 도막은 분꽃 지지대가 되어 땅에 박혀 있었다.
닭이 다 익어갈 즈음 산초는 어둠에 덮였다.
누님은 마당에다 쑥을 태우고 먹다 남은 소주를 내왔다.
달도 없는 밤이었건만 집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도라지꽃은 빛을 잃지 않았다.
마치 눈밭 속에 파묻힌 기분이었다.
노린노릿하게 익은 닭을 화덕에서 꺼내자.
아이들이 입맛을 다시며 달겨들었다.
하지만 불내가 나는 뜨거운 그것에 섣불리 손을 대지 못했다.
누님이 큼지막한 가슴살을 떼어냈다.
그리고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화덕 뒤쪽으로 던져버렸다.
나와 애들은 말할 것도 없이 누님조차 놀랐다.
나와 애들이 얼른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습관적으로 해버린 것에 대해 놀라는 것 같았다.
당황한 아이들을 향해 누님이 말했다.
백구가 어딨는데요?
작은아이가 물었다.
누님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땅 속에 화덕 뒤에 작은 무덤이 있어.
백구가 죽은 거예요?
큰아이가 물었다.
누님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응 하고 대답했다.
아무런 감정도 묻어 있지 않은 음성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누님의 대답에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말아야겠다는 의지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송편처럼 생긴 달이 동산 능산에 떠올랐다.
달이 없을 때는 잘 보이지 않던 보랏빛 도라지 꽃들이 겁많은 아이처럼 조심스럽게 얼굴을 드러냈다.
달빛을 받은 흰꽃들은 낮과는 다른 빛깔을 띄기 시작했다.
옅은 연두의 형광색이었다.
백구 그놈이 푸른 달빛 아래 흐드러진 도라지 꽃들을 한 차례 휘 둘러보고 나서 누님은 한숨을 내쉬었다.
날 물었어.
손목에 구멍이 네 개나 뚫렸었지.
한동안 오른쪽 손목을 쓸 수가 없었어.
어쩌다가?
김빠진 소주를 한 잔 들이켜고 내가 물었다.
누님은 얼른 대답하지 않았다.
검은 산쪽으로부터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누님의 앞머리카락을 흔들어 놓았다.
어두웠지만 나는 누님의 쓸쓸한 웃음을 놓치지 않았다.
화딱지가 났던 거겠지.
너도 알다시피 내가 개들한테 밥이나 제대로 주었니?
아무렇게나 사료 개어주고 허구한 날 서울로 칩 뱉잤니?
시골집 이쁘게 꾸며서 뭐한다고?
그랬어.
동청회 모임도 있고 해서 닷새 동안이나 이 집을 비웠지 뭐니.
개들이 굶어 죽었을지도 모르겠어서 부랴부랴 왔는데 다행히 살아있더라.
그날은 냉장고에 있던 돼지고기까지 일부러 삶아서 주었지.
그런데 백구 그놈이 밥을 가져간 내 손목을 꽉 문 거야.
그래서 내가 물었다.
손목을 물린 누님이 백구의 옆구리라도 냅다 걷어차버렸다는 말일까.
아이들은 마당 한 캔에 피워놓은 쑥불 주위를 맴돌며 수선을 떨었다.
그러나 어두운 산골마을이었다.
도라지 꽃밭이 달빛의 소금밭처럼 빛나고 있었다.
아이들의 수선이 수선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는 뭘.
나도 깜짝 놀랐고 녀석도 깜짝 놀랐지.
황망간에 당한 일이라 처면 아픈 것도 잘 몰랐어.
몽둥이라도 한 대 세게 때려줘야 했겠지만 그럴 생각도 얼른 나지 않더라고.
이왕 가져간 밥이니까 개집 앞에다 내려놓고 방으로 돌아왔지.
그때부터 물린 곳이 부어오르기 시작하는데 아파서 한숨도 자지 못했어.
아주 된통 물렸더라고.
손이 권투장갑만하게 커지는 거야.
세상에 태어나서 그때처럼 아픈 적은 없었어.
나는 누님의 오른 손목을 보았다.
어두워서인지 개의 이빨 자국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누님은 백구의 무덤이 있다는 화덕 뒤쪽을 클끔 바라보았다.
백구 그놈 참 이뻤는데.
털도 눈처럼 휘었었고.
내가 말했다.
이뻤었지.
지금도 눈에 서네.
누님은 다음 날 아침까지 끙끙거리며 일어나지 못했단다.
독이 온몸으로 퍼진 것 같았고
운신할 수조차 없어 저녁까지 누워있었다고 했다.
누님의 부어오른 손목을 본 집주인 아저씨가 기겁을 해
뒤늦게 백구의 허벅지 털을 잘라 불에 태우고 참기름에 개에서 발랐지만
좀처럼 부기와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다는 거였다.
그런데 이 녀석이 그때부터 통밥을 먹질 않는 거야.
전날 삶아준 돼지고기도 그대로 있더라고.
나만 보면 죄 지은 놈처럼 슬슬 피하고 눈치만 보는 거야.
참.
그래서 볼 때마다 내가 말했지.
괜찮아.
어서 먹어.
앞으로 너한테 잘할게.
약속해.
정말 그동안 미안했다.
그런데도 먹질 않아.
그러다 난 결국 병원을 가야만 했어.
상처가 심각했거든.
집주인 아저씨한테 개들 먹이를 부탁하고
3일인가 원주병원에 입원을 했던 거야.
퇴원해 보니까 백구가 죽어 있더라고.
먹구는 주는 대로 다 먹었는데 백구는 날 문 뒤로 먹이에 입도 안 댄 거야.
집주인 아저씨도 참 이상하다고 혀를 내둘렀어.
누님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달빛 때문에 별빛은 성그렀다.
아이들은 연기나는 쑥불을 폴짝폴짝 뛰어넘었다.
그때부터 도라지를 심기 시작했구나.
내가 말했다.
백구가 죽은 뒤로 텃밭에만 매달렸어.
나 이제 농사도 지울 수 있을 것 같아.
하니까 되더라고. 재미도 있고.
우리가 앉아있던 평상 쪽으로 큰아이가 달려오며 말했다.
고모, 고모 있잖아요.
지난번에 지희가 버들치를 제일 많이 잡았었잖아요.
그래서 오면서 지희가 내기를 걸었거든요.
이번엔 제일 많이 잡는 사람한테 500원씩 모아주기로요.
그랬는데요. 오늘 지희가 몇 마리 잡았는 줄 아세요?
몇 마리 잡았는데?
누님이 물었다.
빵마리요.
한 마리도 못 잡았다고?
그럼 넌?
자그마치 7마리요.
그럼 지희가 가희한테 500원을 줘야겠네?
내가 말했다.
그러자 누님이 비로소 웃었다.
어설픈 강태공이 당했구나.
재미있게 감상하시는 시간이 되셨나요?
구효서 작가님에게 위로 형님과 누님들이 몇 분 계신다는 것을
오늘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구효서 작가님이 막내라는 거죠?
작가님의 상세한 가계도는 잘 모르더라도
작품을 읽다 보니 그런 것 같네요.
가끔씩 저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저도 저의 위로 누나도 며칠 계시고 형님들도 몇 분 계셨다면
참 좋았겠다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위의 형이나 누나 덕분에 저는 좀 편하게
시키는 대로 하면 될 테니까요.
오늘 이야기는 구효서 작가의 셋째 누님에 대한 이야기였는데요.
어릴 적 먼 친척의 집으로 그 어린 누님이 떠나고
거기서 겪었을 누님의 고생을 생각하면서 쓴 작품인 것 같습니다.
국민학교를 갓 졸업한 꼬마 여자아이가
병들어 아픈 두 어른들을 모시면서 지냈을 것을 생각하면
저도 한숨이 나오고 마음 한켠이 짠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더군요.
그런 식의 삶을 예전 사람들 입을 통해서
간혹 비슷한 이야기로 듣기도 해서 그런지
이 이야기는 조금 더 공감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자식이 없는 친척의 수양자식으로 들어가서 고생을 하고
게다가 자기의 친형제나 자매들 심지어는 친부모와도 인연이 약해져서는
급기야 서로 대면대면한 사이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 같은 건 말이죠.
근데 다행히도 이분들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서로 가족으로서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올 수 있었다는 것이
저로선 참 안심이 되었던 대목이었습니다.
시골집에서 정을 붙여 살아보려고 여러모로 집도 꾸며보고 하며 노력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겁니다.
왜냐하면 시골생활이라는 게 제가 생각할 때
그곳의 땅을 읽으며 살아가야 진정 정을 붙이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서울에서 하던 식으로 집을 꾸미기만 했으니
그곳의 마음이 부껴들리가 없었던 것이죠.
그런데 그 백구와의 그 일을 계기로
누님은 이제야 자신이 원하던 시골생활에 진정으로 녹아들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 죽은 백구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사람은 어디에서든 적응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그런데 그것은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거기에 보태서 결정적인 계기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계기, 동기 이것들이 우리 삶의 어떤 동력이 되어
우리들 삶의 새로운 방향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겠죠.
오늘 작품을 읽으면서 제 마음속에 들었던 생각입니다.
감상하시는 동안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이셨나요?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구효서 작가의 도라지꽃 누님을 읽어드렸습니다.
다음에 뵐 때까지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창틈으로 스며드는 느린 바람 한 줄기
낮 동안 흩어졌던 말들이
조용히 가라앉고 잘했는지 못했는지
재지 않아도 괜찮아
시계바늘마저 숨을 죽인 밤
마음이 먼저 쉼표를 찾는다
이 밤이 참 편안해서 숨결이 길어지고
특별한 일 없어도 행복은 여기 머물러
복잡했던 생각들도 잠시 쉬어가고
지금 이 밤이 나를 감싸 안는다
말이 사라진 자리를
기타가 조용히 채우며
하루를 정리해준다
테이블 위에 남은 미지근한 온기처럼
작은 것들만으로도 충만한 이 순간
내일을 몰라도 불안하지 않은 건
밤이 천천히 답을 건네주기 때문
오늘을 여기까지 견뎌낸 나에게
아무 말 없이 어둠이 내린다
이 밤이 참 편안해서 마음이 풀어지고
아무 이유 없이도 조금 부드러워져
대단한 의미 없이도 행복할 수 있는 건
지금 이 밤이 곁을 지켜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허락되는 시간
밤은 늘 이렇게 기다려준다
이 밤이 다 괜찮다고 속삭이는 것 같아
지친 마음까지도 조용히 내려놓고
눈을 감는 이 순간의 작은 행복 하나
밤은 언제나 여기 머물러준다
불 꺼진 방 안에서 나는 깊이 잠들고
밤은 끝까지 곁을 지켜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