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각이라는 예술과 서각가

타타오墨話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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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 비디오 조회수·2026. 7. 30.
충청도를 제가 사랑하는 건 바로 이 작가가 계시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서각가 차준만, 이 기회에 서각이라는 기기묘묘한 예술세계 한번 보시겠어요?
AI 생성·오류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비디오 요약
AI 생성서각은 서예를 나무, 돌, 금속 등에 새기는 입체 예술로, 붓과 종이가 생기기 전 갑골문자부터 시작된 유서 깊은 분야입니다. 본 영상은 서화각 삼절(서예, 그림, 서각)을 이룬 덕천 차준만 작가의 작품 세계를 통해, 정성과 시간이 깃든 서각의 예술적 가치와 서예와의 조화로운 협업 가능성을 조명합니다.
서각이라는 예술 분야가 있습니다.
서각이란 한자 그대로 서예를 칼로 새기는 것인데
주로 나무나 돌, 금속, 옥, 상하 등의 색입니다.
때로는 서예만이 아니라 문인화나 한국화 등도 그 대상이 되니
참 흥미로운 분야죠.
평면이던 서예가 갑자기 입체가 되고
흑백이 채색의 옷을 입을 수 있으며
질감도 종이에 비해 훨씬 풍부하게 표현이 가능합니다.
3500년 전의 갑골문자
이것은 동물의 뼈에 칼로 새긴 것이니
최초의 서각이라 할 수 있어요.
또한 금속에 새긴 금문과 종정문
울산 방구대 암과카 등도 모두 서각의 일종입니다.
붓이나 종이가 생기기 이전의 서예는
모두 서각이었다는 걸 알 수 있죠.
하지만 지필이 발명된 이후에도
중요한 것은 역시 새겼습니다.
훈민정음 목판본, 팔만대장경, 사찰의 현판과 주련 등에서도
서각은 빛나고 있죠.
무엇보다 우리 서예인들이 모시며 공부하는 탁본들도
전부 돌에 새긴 서각 비문들 아니겠어요?
사실 저도 서각의 매력을 느껴 잠깐 배운 적이 있었는데요.
오래하지 못하고 포기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칼보다는 붓이 더 맞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제가 사모하면서도 감히 범접하지 못한
서각이라는 분야에 대해 약간의 소개를 해보려 합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서예인들에 비해
서각가들의 이름은 남아있는 게 거의 없어요.
그래서 현대의 서각가 한 분을 소개하면서
서각에 대한 견학에 편승해보려 합니다.
오늘의 작가, 덕천 차준만 선생입니다.
그는 현재 충청도 덕산에서 활동 중이며
드물게 서각과 서예, 그림에도 능한 작가입니다.
보통 서각가들은 서예 작가의 글씨를 받아서 새기는데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거죠.
그는 서산의 청석 박봉태 선생에게서 서각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나무질과 칼질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죠.
그리고 산촌 정순태 선생에게서 그림을 배웠고
도곡 홍욱이 선생에게서 서예까지 사사받게 되었는데
저는 이것이 그의 예술세계를 깊고 심원하게 만들어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직접 쓰고 그리며 그것을 새길 수 있다니
그야말로 서화각 삼절을 이룬 것이라 할 수 있겠죠.
서예를 깊이 연천한 덕에 그의 서각은
골기가 탄탄하게 느껴집니다.
알고 썼으며 알고 새겼으니까요.
참 서예가보다 서각가에게 요구되는 하나의 경지가 있으니
바로 그림에 대한 감각입니다.
흰 종이와 먹을 다루는 단색 위주의 서예에 비해
배경의 질감과 칠이 더해지는 서각의 세계는
독특하고도 따스한 생명력이 발출되기에
서예만 하는 저로서는 부러운 면이 있어요.
그의 작품은 한국화, 동양화의 범주까지 이어져
아득한 예술의 지평을 열었습니다.
바위에서 나무가 도전한 이 마띠엘은
정말이지 감탄스럽지 않나요?
부엉이의 털과 안광 속에도 작가의 혼이 비치는 듯합니다.
더구나 심오한 선시까지 더해지니
그 시너지가 더욱 빛을 발하네요.
나무판을 가로지르는 나무 등글의 구비침
그 안에는 노도와 같은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작가님의 작품을 보다가 깜짝 놀랐어요.
수십 년 전 저와 서예 동료로 만났을 당시
제가 써드린 글씨가 그의 서각으로 재탄생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죠.
제 첫 번째 호인 서봉을 쓰던 때였군요.
아주 세상 무서울 것 없이 붓을 휘두르던 시절이었네요.
서예와 서각은 이렇게 콜라보가 가능하다는 것 또한 매력입니다.
서각은 서예보다 먼저 세상에 태어나서 서예를 낳았고
이제는 서예를 더욱 넓은 세계로 확산시켜주는 역할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깊이와 예술성에 비해
세상에서 그다지 넓게 퍼지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시대에
그 편의성에 물결을 타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매 작품마다 새로운 혈액이 흘러야 하고
땀방울이 송송 맺혀야 한다는 이 작업
하지만 저는 그것이 또 서각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보고 있노라면 무언가 꽉 차오르고
청구한 예술의 세계에 접어드는 것 같은 이 느낌
너무나 좋습니다.
오늘은 흔치 않게 저희 채널에서
살아있는 현대의 작가를 조명해 보았는데요.
부디 덕천 차준만 작가와 같은 분들이
오래오래 북각 칼을 쥐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더 많은 작품을 세상에 전해 주어
감탄을 자아내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