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비디오 조회수·2026. 8. 24. #잠자며듣는이야기 #잠자리소설 #오디오북소설 #잠자며듣는이야기 #잠자리소설
하루의 끝, 조용한 밤.
당신을 깊은 이야기 속으로 이끄는 오디오북 채널, 책과 함께하는 하루 '단잠'입니다.
🛏️ 잠들기 전,
🚶♀️ 혼자만의 감성 산책 시간,
🎧 눈은 쉬고 싶지만 마음은 이야기를 원할 때—
언제든 이곳에 들러주세요.
이번에 낭독할 작품은 윤성희 작가의 단편 소설 "누군가 문을 두드리다" 입니다. 😊
즐거운 감상 되세요.
[윤성희 — 평범이 특별이 되는 자리, 일상의 은하수를 쓰는 소설가]
작가의 삶 — 수원을 떠나지 않은 작가
윤성희는 1973년 경기도 수원 율전동에서 태어나 청주대 철학과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습니다. 수원 율전동 태생으로, 지금까지도 수원을 떠나 본 적이 없는 작가입니다. 그의 소설 속 풍경이 자극적이지 않고 잔잔하며, 어딘가 친숙한 골목 냄새를 품고 있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평범한 일상이 처음부터 작가의 꿈과 연결되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유년시절 작가가 되고 싶다는 구체적인 꿈은 없었다. 수원여고 1학년 때 문예반에 시험봤는데 떨어졌다(하하). 고등학교 1학년 때 황인숙 시인의 첫 시집을 읽고 또 읽었다. 시집을 좋아했던 것 빼곤 예비 작가로서의 재능이나 기질은 없었다. 부모님과 친척도 소설가가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고 밝혔습니다.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그녀는 졸업 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하면서 소설과의 본격적인 만남을 시작합니다.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레고로 만든 집」이 당선되면서 등단했습니다. 현재는 모교인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소설창작 강의를 맡고 있습니다.
주요 작품들 — 작고 평범한 삶들의 목록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 『거기, 당신?』, 『감기』, 『웃는 동안』, 『베개를 베다』, 『날마다 만우절』, 『느리게 가는 마음』과 장편소설 『구경꾼들』, 『상냥한 사람』, 중편소설 『첫 문장』 등을 펴냈습니다.
첫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2001) — 등단작의 제목을 그대로 소설집 이름으로 삼은 이 작품집은 발표하는 작품마다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되는 등 끊임없이 문단의 주목을 받은 작품들로 구성되었습니다.
네 번째 소설집 『웃는 동안』(2011) — 윤성희 소설 특유의 서사적 분위기는 여전하고, 유머도 여전합니다. 문장은 역시나 단문들이고 이야기소는 넘쳐납니다. 앙상한 서사의 별자리가 아니라 무수한 여담들의 은하수를 보는 즐거움은 여전히 윤성희가 우리에게 주는 기쁨입니다. 이 소설집의 표제작 「웃는 동안」은 2011년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하며 윤성희 단편 미학의 정점을 보여주었습니다.
장편소설 『구경꾼들』(2010) — 세 번이나 죽을 뻔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난 소년이 자기 삶을 구경꾼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내용으로, "그리고 마침내 소년은 자신의 이야기보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세상 저편 누군가의 이야기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는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장편소설 『상냥한 사람』 — 인기 드라마의 아역배우였던 형민의 삶에서 시작해 그를 인터뷰하는 사회자, 형민의 가족 등 여러 삶을 차례로 조명하는 소설로, 늘 우리 주변에서 찾아낸 듯한 보통 사람들의 삶과 일상, 그 속의 기쁨과 슬픔을 담은 이야기를 선보입니다. 윤성희 소설의 저력은 바로 이 '주변 인물들'의 촘촘한 디테일에서 나옵니다. 형민의 어머니, 형민의 아내, 형민의 딸, 형민이 다니는 회사의 조 과장, 박 대리 등, 수많은 주변인의 사연을 늘어놓으며 결국 형민이 지금에 이르게 된 순간을 차근차근 짚어냅니다.
수상 경력 — 문학상이 고른 작가
현대문학상, 이수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한국일보문학상, 김승옥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등단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문단의 선택을 받아온 셈입니다. 그러나 작가 자신은 이를 과장하지 않습니다.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을 때도 "빈약한 소설이 상을 받게 되어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부끄럽다"고 했습니다.
작품 경향 — '평범'이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
윤성희의 진짜 무기는 '평범함'입니다. 그의 작품은 독특한 스토리 진행과 미학적 문체를 쓰는 것도 아니며, 특이한 형식을 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일상적인 소재를 별다른 포장 없이 평범하게 다룰 뿐입니다. 자극적인 스토리보다는 누구나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는 평안한 일상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윤성희의 글이 자극적인 것으로 가득 찬 요즘, 희소성 있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평범이 특별함이 된 것입니다.
윤성희의 소설은 따뜻함과 디테일에 있습니다. 일상의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를 포착해 따뜻한 감성으로 끌어안는 형식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굴하지 않거나 우울한 상황에도 긍정을 잃지 않는 부분이 특징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사라지는 감수성을 잡아다가 끌어당기는 미덕을 갖추고 있습니다. 윤성희의 소설은 정교한 논리나 현실에 맞춰져 있지 않고, 우연이나 환상적인 상상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에 대해서는 김애란 작가가 황순원문학상 수상 축사에서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어딘가 틈이 많은 인물들. 그러나 가늘게 빛이 새어 나오는 문처럼, 문 안쪽의 어둠을 가까스로 밀고 나와, 우리도 미처 몰랐던 마음의 테두리를 보여주고, 어느 때는 어둠을 극장으로 바꿔주기도 하는, 그런 틈을 가진 인물들." 윤성희 세계의 인물은 환한 빛이라거나 컴컴한 암흑 같다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대신 틈에서 새어 나오는 빛처럼 희미하게 점멸합니다. 그래서 어떤 시점에 인생을 돌이켜보다 '나름대로 잘 산 것 같은데 어쩌다 이렇게 됐지?' 의아해하며 울상 짓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문체 — 단문의 리듬, 유머의 윤리
윤성희 문체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단문입니다. 문장은 역시나 단문들이고 이야기소는 넘쳐납니다. 앙상한 서사의 별자리가 아니라 무수한 여담들의 은하수를 보는 즐거움이 윤성희가 독자에게 주는 기쁨입니다.
그리고 이 단문들을 타고 흐르는 유머는 단순한 웃음이 아닙니다. 윤성희의 소설이 다른 소설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성숙과 유머에 연루된 화자의 서술태도에 기인합니다. 이 유머는 목적과 의도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적의와 경멸 같은 것도 통제하는 화자의 태도로 가능합니다. 화자는 인간사의 하찮고 절망스러운 순간을 어느 사이엔가 유머로 전환시킵니다.
등단 20년을 맞은 시점에 작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점점 더 타인의 삶을 쓰는 행위가 엄중하게 느껴진다"고 밝혔습니다. 글을 오래 쓸수록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라 더 무겁게, 더 신중하게 느껴진다는 고백입니다.
윤성희는 세상이 화려하고 자극적인 것들을 좇는 동안, 조용히 수원에 앉아 평범한 사람들의 사소하고 소중한 이야기를 써왔습니다. 슬픔을 달래는 느긋한 농담과 유머의 힘, 인간의 선의를 믿고 싶게 만드는 윤성희표 소설의 온기는 바로 그 자리에서 태어납니다. 「웃는 동안」이라는 제목처럼, 그의 소설은 웃음 속에 슬픔을, 슬픔 속에 온기를 담아 독자의 가장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것으로 돌려보내는 문학입니다.
🎵단잠의 클로징 플레이리스트 https://www.youtube.com/@MnightSound
😉'단잠의 꿈꾸는 책방'
https://www.youtube.com/@단잠의꿈꾸는책방
✨회원 가입하셔서 '단잠'을 응원해 주세요. ^^
https://www.youtube.com/channel/UCWBs5r5b1MhDURiz-uTXfhA/join
타임라인
00:00:00 인트로
00:00:44 본문낭독
00:47:08 단잠의 아주 주관적인 감상평
00:53:32 클로징 음악 "살아보니 그저 그렇더라"
#오디오북소설 #한국문학낭독 #밤에듣기좋은이야기 #감성오디오북 #자기전듣는책 #잠이오는소설 #책읽어주는유튜브 #단잠을위한오디오북 #소설읽어주는채널 #조용한밤이야기 #audiobook #한국소설 #소설낭독
오늘 읽어드릴 작품은 윤성희 작가의 단편소설
누군가 문을 두드리다 라는 작품입니다.
이 이야기는 평범하기도 하고 희극적이기도 하고 때론 좀 슬프기도 한 어떤 남자에 대한 소설입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읽으면 좀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준비를 했습니다.
같이 감상하시죠. 이제 작품 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끝까지 저와 함께 해주세요.
30분도 못 탔는데 만화 주인공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사내 아이가 말했다.
돈을 돌려 드릴게요. 그에게 천 원을 거슬러 받은 사내 아이는 매점으로 들어갔다.
그는 자전거를 가지런히 세워놓고 그 위에 비닐을 덮었다. 그러고는 비가 새지 않도록 천막을 더 씌웠다.
그는 시청 녹지공공과에서 7년을 일했다. 7년 동안 단 한 번도 결근을 하지 않았다.
취직을 하자마자 그는 3년짜리 적금을 부었다. 3년이 지나면 패러글라이딩을 배울 생각이었다.
적금을 타면 그 돈으로 자동차를 사고 주말이면 트렁크에 패러글라이딩 장비를 실어 매산리나 대부도로 떠나는 게 그의 소원이었다.
적금을 타던 해 남동생이 유학을 갔다. 그는 남동생을 좋아했다.
그래서 패러글라이딩은 나중에 배워도 늦지 않는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남동생이 태어나던 해 그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남동생이 태어나던 날 작은 지진이 있었다.
칠판에 적힌 선생님의 글씨가 여러 겹으로 보였다. HEC에서는 지진 때문에 몇 명의 사람이 죽었다는 말이 들려왔다.
남동생은 자주 울었다. 남동생은 그가 달래주어야만 울음을 멈췄다.
지진 때문이야. 그가 말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
남동생이 떠나고 그는 또 적금을 부었다. 3년이 지나자 여동생이 결혼을 한다고 했다.
오빠 그 사람은 의사야. 여동생은 처녀 때 쓰던 물건은 단 하나도 가져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는 패러글라이딩을 타다 사고로 죽은 사람에 대한 신문기사를 오려두었다.
자꾸 생각해 보니 패러글라이딩은 너무 위험했다. 그가 녹지 공원과에서 일하는 동안
신은 3개의 공원을 조성했다. 그는 공원에 앵두나무, 살구나무, 사과나무, 복숭아 나무 같은 과실수들을 심도록 과장을 설득했다.
과장은 사람들이 열매를 따가면 어떻게 하냐라고 물었다. 과실수를 심은 공원이 시민들에게 호응을 얻자
과장은 시장에게 특별 휴가를 받았다. 그 후 공원에 심을 나무를 결정하는 것은 그의 몫이었다.
두 번째 공원에는 어린잎을 따서 산나물로 먹을 수 있는 나무들을 심었다. 나무마다 자세한 설명을 붙여 놓았다.
공원은 인근 초등학교에서 가끔 야외 수업을 하는 곳이 되었다.
세 번째 공원에는 잎이나 열매로 물감을 만들 수 있는 나무들을 심었다. 시민들이라면 누구나 천연 염료를 만들어 볼 수 있도록
실습실도 만들 계획이었다. 감사과에서는 공원에 심어진 나무의 수보다 훨씬 많은 나무들이 주문되었다고 글을 추궁했다.
공원에 심어지지 않은 나무들은 여러 군데로 흩어졌다. 시장의 앞마당에도, 계장의 고향집에도, 과장의 처가집에도 모두 그 나무들이 심어졌다.
그는 시청을 그만두었고 복숭아 나무를 50그루나 빼돌렸던 과장은 그에게 공원 한켠에서 자전거 대여점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는 패러글라이딩을 배우는 대신 자전거를 배웠다. 안전했고 무엇보다 돈이 들지 않았다.
그는 한평 남짓한 사무실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았다. 공원에 세워진 동상들이 비에 젖기 시작했다.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는 두통이 찾아와 왼쪽 눈동자를 지그시 눌렀다.
호수 저편에서 한 여자가 우산도 쓰지 않은 채 공원을 거닐고 있었다.
먹구름이 끼면서 공원을 감돌고 있는 공기가 낮게 가라앉았다. 가로등이 일제히 켜졌다.
가로등 불빛이 호수 안으로 빨려들어간 듯 순간 호수가 환하게 보였다. 저 사람은 왜 비를 막고 있는 걸까?
그는 호수 위를 분주하게 움직이는 오리떼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종이컵이 쓰러지면서 빗물에 옅어진 커피가 탁자 위로 쏟아졌다. 이 공원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였다.
공원에는 여러 개의 자동 판매기가 있는데 그는 그중에서 농구장 옆에 있는 자동 판매기의 커피를 좋아했다.
여자는 호수를 두 바퀴나 돌더니 제자리에 서서 호수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지난 겨울 호수에 한 청년이 빠져 죽었다. 자살이었는지 단순한 실족사였는지 밝혀내지 못했다.
여자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그 청년의 시체가 발견된 자리였다. 오늘 아침에 그는 횡단보도 앞에서 미친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그에게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만 원 있니? 라고 말했다. 천 원도 아니고 만 원이라니?
그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 가서 만 원 있니? 라는 말을 연신했다.
아무도 돈을 주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교통신호 제어기라고 씌여져 있는 박스를 보았다.
그 박스를 열어 그 안에 얽혀 있는 전선들을 잘라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파란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도로를 건너갔지만 그는 움직일 수 없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자주 웃었다. 자전거를 고르면서도 웃고 넘어지면서도 웃고 돈을 거슬러 받으면서도 웃었다.
파란불이 다시 빨간불로 바뀌자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미친 여자가 버스를 향해 뛰어들었다. 긴 경적소리가 울렸다.
그는 유리창을 두드리며 외쳤다. 이봐요! 저편에서 여자가 그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유리창에 오늘 아침에 보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 눈을 껌뻑이던 여자.
그 미친 여자의 모습 위로 지금 호수가를 서성이는 여자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 화면을 지우기 위해 그는 손바닥으로 유리창을 두드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유리창을 두드리면 노크 소리가 저 멀리까지 퍼져나갈 것만 같았다. 그러면 남동생은 편지를 보내올 것이고
여동생은 하루 종일 들여다보던 홈쇼핑 채널을 끄고 그에게 전화를 걸 것 같았다.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의 오른손 위로 유리가 쏟아졌다. 비가 사무실 안으로 들이쳐 손목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씻어 주었다.
비가 멈추지 않듯이 피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눈을 떴다. 순간 안경을 안 꼈는데도 시계가 선명하게 보였다.
7시.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눈을 떠보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눈앞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는 안경을 찾기 위해 손을 위로 뻗었다. 그제야 오른손 손목에 붕대가 감겨 있고 왼손 손등에 링거 주사가 꽂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를 발견해 병원으로 옮긴 사람은 매점 여자였다. 그가 농구장 옆에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먹는 것을 본 이후로 매점 여자는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응급처치를 잘 했더라고요. 의사가 다가와 말을 했다. 아마도 매점 여자가 응급처치를 한 모양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의사는 가지런한 일을 살짝 드러내며 말했다. 흰 가운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보기만 해도 신뢰감이 느껴질 정도로 운이 나빴죠.
그는 항상 자신의 생은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두 동생들은 원하는 대학에 쉽게 입학을 했다.
공무원 시험도 한 번에 합격했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인정도 받았다.
비록 전세이긴 하지만 10평짜리 원룸 아파트도 하나 있었다.
여동생은 50평이 넘는 아파트에 살았는데 가끔 그에게 고급 브랜드의 옷을 보내곤 했다.
매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신문에 건강 칼럼을 실었다. 그는 그 기사를 전부 보관해 두었다.
시청을 그만둘 적엔 잠시 실의에 빠지긴 했지만 자전거 대여일이 공무원 일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시청에 다닐 적에는 아침마다 이렇게 중얼거렸었다. 아 오늘이 일요일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는 지금은 이렇게 말한다. 아 오늘 비가 오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자신이 낭만적인 사람이 된 듯했다. 이 정도의 사소한 사고쯤은 일어날 수도 있었다.
제 친구 이야기를 해드리죠. 의사가 말을 시작하려는데 가슴에 온통 피투성인 남자가 응급실로 들어왔다.
의사는 그의 어깨를 한 번 치더니 새로 들어온 환자에게로 달려갔다. 남자에게선 술 냄새가 났다.
남자는 고함을 질렀다. 간호사들은 그런 장면은 익숙하게 보아왔다는 듯이 태연했다.
일단 이거 치료하고 죽이세요. 그렇게 농담 섞인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에게 말을 건넸던 의사가 남자의 팔을 꺾었다. 남자는 침대에 묶였다. 그의 옆 침대에 누워있는 할아버지는
남자가 소란을 피우는데도 눈 한 번 뜨지 않았다.
혹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할아버지 코 밑에 손을 대보았다.
숨을 쉬고 있었다. 한참 만에 의사가 다시 그에게 왔다. 제 친구 이야기를 해드린다 그랬죠.
고등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자 그 충격을 못 이겨서 자살을 기도했대요.
응급실에서 위세척을 하고 살아났죠. 그 후로 그 친구는 우울증에 시달렸어요.
한 번은 사랑니를 빼러 치과에 갔다가 스케일링을 하게 되었대요.
병원에는 스케일링을 정기적으로 하면 늙어서 풍치에 걸리지 않는다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던 거죠.
스케일링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는 자신의 존재가 너무 우수워 견딜 수가 없었답니다.
늘 자살만 궁리하는 자신이 풍치에 걸릴 것을 걱정했으니 우수운 거죠.
제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죠? 그는 의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제야 그는 의사가 왜 그랬어요? 라고 묻던 의미를 알아차렸다.
그게 아니에요. 그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누군가 신음소리를 내며 간호사를 불렀다.
정신과 의사가 필요하면 제게 부탁하세요. 아까 말한 그 친구는 지금 정신과 의사가 되었으니까요.
의사는 그의 손등에 있는 링거 주사바늘을 빼주었다. 그는 천천히 응급실을 빠져나왔다.
그는 오른쪽 뒷주머니에 있는 지갑을 꺼낼 수가 없어 지나가던 간호사에게 부탁을 했다.
그는 왼손으로 사인을 했다. 카드 뒷면에 있는 자신의 사인과 너무 달랐지만 여직원은 그걸 확인하지 않았다.
응급실 밖에서 아이를 업은 여자가 울고 있었다. 그는 내딛는 발에 힘을 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발이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 병원 지하에 갇혀버릴 것만 같았다.
택시 운전사가 힐끔거리며 옆자리에 앉은 그를 보았다. 와이퍼는 두개가 조금 어긋나게 움직였다.
그는 조수석 쪽에 있는 와이퍼의 움직임에 맞춰 다리를 흔들었다.
택시 운전사가 다시 한번 그가 앉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게 아니에요.
그는 자신도 모르게 불쑥 그렇게 말했다. 뭐가요? 운전기사는 차가 신호에 서자 와이퍼 작동을 멈췄다.
비가 서서히 그치고 있었다. 육교를 오르다 말고 그는 뒤를 돌아봤다.
누군가 그의 귀에 대고 휘파람을 부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뒤에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여학생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입술에 침을 묻히고 휘파람을 불어보았다. 여학생이 전화를 하다 말고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육교 아래에는 좌판을 펼쳐놓고 여러가지 잡동산이들을 파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육교가 생겼을 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육교 아래에서 물건을 팔았다.
그는 여러 종류의 손톱 손질 도구가 들어있는 세트를 구경했다. 손톱깎이가 두 개나 들어있어요.
그리고 가위도. 이건 브이밀대라고 손톱 가장자리를 다듬는 데 쓰는 거예요.
남자는 그에게 여러가지 기구들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는 10가지 기구들이 들어있는 손톱깎이 세트를 만원에 샀다.
거 손을 다친 모양이네요. 검은 비닐에 손톱깎이를 넣으면서 남자가 말했다.
그래도 손톱은 깎을 수 있어요. 그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엘리베이터에서 그는 위층에 사는 여자를 만났다.
이젠 조용할 거예요. 여자는 자신이 사는 13층과 그가 사는 12층을 동시에 누르면서 말했다.
여자에게는 하루 종일 뛰어다니는 사내 아이가 하나 있었다. 그는 편히 낮잠을 잘 수도 없었고 차분히 앉아서 음악을 들을 수가 없었다.
애가 어디 갔나요? 엘리베이터는 5층부터 층마다 섰다. 누군가 장난을 친 모양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닫힐 때마다 여자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기운내세요.
그는 붕대에 감킨 오른손을 여자에게 보여주었다. 절 보세요. 아무리 괴로워도 이런 짓은 어리석은 거예요.
그렇게 말하고 나니 그는 진짜 자신이 자살을 기도한 사람 같았다. 빵을 물 없이 100개쯤은 먹은 기분이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낯선 사람의 그림자가 자신 안에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이사를 온 첫날처럼 집안 풍경이 낯설었다. 형광등이 켜지지 않았다.
그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텔레비전 위에 있는 자명종을 보았다. 시침과 분침이 야광으로 되어 있는 시계였다.
자명종에는 유명 연예인의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그 연예인은 몇 년 전에 금요일 저녁마다 토크쇼를 진행했는데
그는 침대 귀퉁이에 베개를 서너 개 쌓아놓고 비스듬히 누워 토크쇼를 보곤 했다.
요즘은 스캔들이 터져서 방송계를 떠난 연예인이었다. 시계는 전에 살던 세입자 앞으로 배달되었다.
아마도 토크쇼에 시청자 소감을 보낸 모양이었다. 그 옆에는 오리 모양의 자명종이 있었다.
시청에 다닐 적에는 그는 두 개의 자명종을 5분 간격으로 울리게 해놓았다. 덕분에 지각을 하지 않았다.
오리 모양의 자명종은 남동생의 애인이 보낸 것이었다. 남동생이 군에 갔을 적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편지를 보내던 여자였다.
자명종은 소포로 배달되었다. 남동생이 유학을 가고 난 다음이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네가 나한테 사준 건 이게 전부더라. 쪽지에는 그런 글이 적혀 있었다.
그는 책상 위에 있는 액자를 보았다. 거기에 어떤 사진을 끼워야 할지 그는 결정을 하지 못했다.
액자를 선물한 사람은 초등학교 동창인 피였다. 그는 동창생을 찾아주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피를 만났다.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구나. 너 설마 나를 기억 못하는 건 아니겠지? 피는 이런 쪽지를 보냈다.
그는 피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기에 베란다에 쌓아둔 상자들 속에서 초등학교 졸업 앨범을 찾아야만 했다.
단체 사진 속에 피는 고개를 약간 아래로 숙이고 있었다. 아, 이 아이?
그는 졸업 앨범을 찍던 날이 떠올랐다. 사진을 찍는 순간 앞에 있는 아이의 머리에 검지로 뿔을 만들었던 아이였다.
그것 때문에 그 이반만 다시 단체 사진을 찍어야 했다. 혹시 직구께 장난을 잘 치던?
그는 약간 모호하게 답장을 보냈다. 강남에 있는 호프집에서 동창회가 열렸다.
피는 얼굴을 보고 싶다고 그에게 세 번이나 쪽지를 보냈다. 호프집 입구에는 초등학교 이름과 테이블 번호가 적힌 종이들이 붙어 있었다.
사람들은 천피스 퍼즐을 맞추듯 서로의 기억을 꿰어맞추고 있었다. 야, Q라고 기억나니?
W라고 100미터 달리기를 잘하던 그놈은? 그런 식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친구들의 이름을 대는 것만으로도 몇 시간이 흘렀다.
헤어질 때 피는 길에서 파는 액자를 하나 사더니 그에게 내밀었다. 늦었지만 사과의 뜻으로.
근데 이마에 있던 상처는 없어졌네? 그날 저녁 잠을 자다 말고 그는 피가 자신을 왜 만나고 싶어 했는지 알아차렸다.
피는 같은 반이었던 A와 그를 혼동한 것이었다. 피가 휘두른 대걸레에 A의 이마가 찢어졌던 적이 있었다.
단체 사진을 찍었을 때 피의 앞에 서 있던 아이는 A였다. 방에 있는 물건들 중에서 애당초 그의 것은 없었다.
여동생은 결혼하면서 그에게 침대와 장롱을 물려주었다. 내가 오빠 결혼할 때 집 하나 해줄게.
혼수를 준비하면서 여동생은 자주 그 말을 했다. 농과 침대는 모두 흰색이었다.
여동생은 그가 흰색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컴퓨터로 올려놓은 책상은 남동생이 중학생일 때부터 쓰던 거였다.
책상은 작은 흠집들로 가득했다. 남동생은 볼펜으로 책상을 찍는 버릇이 있었다.
그는 책상 위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펜 자국이 그의 가슴으로 옮겨졌다. 긴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속에 숨어있던 그림자가 밖으로 나와 방 안을 떠돌았다. 그는 텔레비전을 켰다.
화면이 밝아지면서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울한 표정을 거둬들였다.
낯선 그림자도 이내 사라졌다. 그는 오리 모양 자명종의 알람버튼을 눌렀다.
자기야 일어나 아침이야. 남동생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퍼졌다.
여자는 아침마다 자신을 버린 애인의 목소리를 듣는 게 괴로웠으리라.
나쁜놈. 텔레비전에선 변비약을 선전했던 신인 여배우가 화장실 거울을 들여다보며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그는 손톱깎이를 꺼냈다. 손톱을 깎기 위해 텔레비전 앞으로 바짝 다가갔다.
이 방 안에 온전히 자신의 것은 이 손톱깎이 세트뿐인 것 같았다.
왼손을 깎을 때 꽤맨 상처가 따끔거렸다. 텔레비전을 너무 가까이서 보았기 때문인지 눈이 시큰거렸다.
새벽에 누군가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두드렸다. 텔레비전에서는 오래된 서부 영화가 방영되고 있었다.
그는 텔레비전의 볼륨을 낮췄다. 누구세요? 노크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문을 열어보니 작은 상자가 하나 있었다.
혹시 손목에 흉터가 생기면 그때 사용하세요. 1305호
상자에는 가죽으로 만든 팔찌가 들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의 팔찌와 모양이 비슷했다.
그는 왼손에 팔찌를 끼고는 주먹을 쥐어보았다. 그러고는 고맙다는 뜻으로 책상에 올라가 천장을 두드렸다.
한참 후에 위층에서 똑똑하고 대답을 했다. 그는 생활 정보지를 뒤져 중고품 전문점을 찾았다.
숨쉬는 물건들. 가게 이름이 독특했다. 1시간 후에 녹색 티셔츠에 멜빵이 달린 청바지를 입은 직원이 왔다.
티셔츠에는 숨쉬는 물건들이라는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무엇을 파실 생각이시죠?
직원은 방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그는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텔레비전이요? 아니면 이 위에 자명종이요? 직원은 텔레비전을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물었다.
청바지는 엉덩이 아래가 뜯어져 있어 고개를 숙일 때마다 팬티가 보일락 말락 했다.
텔레비전이요? 저기 근데 바지가 뜯어졌네요?
아 이거요? 이건 우리 회사의 방침입니다. 직원들의 유니폼도 중고로 들어온 옷 중에서 고르게 되어 있거든요.
직원은 25인치 텔레비전을 번쩍 들더니 밖으로 나갔다. 텔레비전은 여동생이 3개월 할부로 구입한 거였다.
여동생은 고등학교 동창에게서 텔레비전을 샀다. 고등학교 동창은 사기결혼을 당해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이혼을 해야 했는데
그 뒤로 피라미드 조직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했다. 걔가 자기 부서에서 실적이 제일 낮대.
그러니 어쩌겠어? 텔레비전을 사자마자 여동생은 실직을 했고 할부금은 그가 부어야 했다.
텔레비전은 그가 싫어하는 프로야구팀이 소속된 회사의 제품이었다. 텔레비전을 들고 밖으로 나갔던 직원이 되돌아오더니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텔레비전에는 어떤 사연이 있죠? 사연이라니요? 그는 손목을 감은 붕대 끝으로 머리를 만지작거리면서 대답했다.
모르셨어요? 저희들은 물건을 살 때 그 물건에 담겨 있는 사연도 같이 삽니다.
제가 입은 청바지는 아버지가 대학 입학 기념으로 딸에게 사준 거랍니다. 딸은 이제는 너무 뚱뚱해져서 청바지를 입을 수 없게 되자 저희에게 팔았죠.
딸이 입학한 대학은 S대였어요. 그래서인지 이 바지를 입은 다음부터 운이 좋은 일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그는 직원에게 동생의 고등학교 동창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빚이 1억이 넘었다고.
텔레비전도 팔고 정수기도 팔고 전동 칫솔기도 팔았지만 빚은 줄어들지 않았었다고.
보다 못한 동창들이 동창회를 열어 물건을 하나씩 사주었다고. 직원은 그의 이야기를 수첩에 적었다.
그는 장롱도 팔고 침대도 팔았다. 장롱에서 꺼낸 옷들이 방 한구석에 수북하게 쌓였다.
옷들에게는 어떤 사연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허리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들을 팔 수가 없었다.
이삿짐 직원들이 떨어뜨리는 바람에 취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밥통.
남동생이 교내 달리기 대회에 나가 받아온 기념 쟁반. 국회의원의 이름이 새겨진 냄비를 팔았다.
직원은 남동생의 책상을 비싼 가격으로 샀다. 책상이 밖으로 나갈 때 그는 약간 후회했다.
남동생은 늘 무엇인가에 대해 화가 나 있었고 그 화풀이를 책상에 했다.
이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사람에게 팔아주세요. 그는 직원에게 당부를 했다.
그는 남동생의 주소를 몰랐다.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휴대폰은 결변이었다. 그는 오리 모양의 시계를 작은 상자에 담았다.
그는 컴퓨터의 자판을 무릎에 올려놓고는 맨손만으로 글자를 쳤다.
이건 니 시계니 니가 처분해라. 새로 녹음을 해서 다른 여자에게 선물을 하든지.
두 줄을 치는데 꽤 오래 걸렸다. 상자에 편지를 담고 겉에는 남동생이 다니는 대학의 이름을 적었다.
초등학교 동창인 A를 찾기 위해 그는 동창생을 찾아주는 사이트에 들어갔다.
게시판을 뒤지니 3년 전에 인삿말을 남겨놓은 게 있었다.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라나?
혹시 저녁 6시에 하는 고향은 살아있다 라는 프로그램 보는 사람 있니?
그거 내가 만든다. A는 그런 말들을 남겨놓았다.
신문을 뒤져보았지만 고향은 살아있다 라는 프로그램은 어느 방송국에도 없었다.
그는 방송국마다 전화를 걸어 A의 이름을 댔다. 전화를 받은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만 캐물었을 뿐 자세히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는 각 방송국의 사이트를 뒤져서 3년 전에 어느 방송국에서 고향은 살아있다 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는지 찾아냈다.
이 액자는 초등학교 동창인 P가 너에게 주는 사과 선물이야. 아직도 이마에 상처가 있는지?
이번에는 아까보다 조금 빨리 타자를 칠 수 있었다. 그는 유리가 깨지지 않도록 액자를 수건으로 감쌌다.
그러고는 우체국에 가서 소포를 붙였다. 밤이 되자 그는 커튼을 열고 베란다에 불을 켰다.
방이 조금 환해진 듯 했다. 컴퓨터를 켜자 조금 더 환해졌다. 하지만 모니터는 5분마다 자동으로 꺼졌다.
그는 화면 보호기 작동을 멈추고 절약 모드를 해제시켰다.
그는 모니터를 스탠드 삼아 장롱 아래에서 나온 철진한 잡지들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라면이 먹고 싶었지만 왼손으로 젓가락질 하기가 귀찮아서 참았다. 대신 그는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짬뽕밥을 시켰다.
가끔 누워서 천장에 새겨진 얼룩을 보았다. 위층 화장실이 새면서 생긴 얼룩들이었다.
천장에 누군가 웅크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휘파람을 불었다. 바람이 베란다 창문을 똑똑하고 두드렸다.
새벽에 그는 1305호 앞에 연예인 캐릭터가 그려진 자명종을 갖다 놓았다.
아침이 되자 위층에서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책상이 없어져서 그는 천장을 두드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 천장으로 던졌다. 천장에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혔다.
숨쉬는 물건들의 매장은 시 외곽에 있었다. 그곳까지 가기 위해 그는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예전에 섬유공장이 있던 자리였다. 섬유가 사양산업이 되면서 공장은 부도를 맞았고
그것 때문에 시의 경기가 한동안 위축되기도 했었다. 건물에는 사연이 없는 물건이란 없다 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네모난 뿔태안경을 쓴 사람이 그에게 다가오더니 인사를 했다.
처음이신가요? 뿔태안경은 그에게 지도를 한 장 주었다. 안에 들어가면 길을 잃을 수가 있습니다.
이 지도를 보고 쇼핑을 하세요. 뿔태안경은 그에게 파란색 종이를 한 장 더 주었다.
만약 사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여기에 물건들의 번호를 적어서 나갈 때 제게 주세요.
배달은 무료입니다. 매장 안은 대형 할인마트와 흡사했다.
모든 물건들이 선반에 가지런히 정리가 되어 있고 물건마다 사연이 적혀 있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할인마트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물건의 정리 방식이었다. 매장은 사연의 내용에 따라 4가지 테마로 구분되어 있었다.
그는 기쁨의 세상으로 들어갔다. 돈을 빌려간 친구가 돈을 갚을 길이 없자 대신 자신이 쓰던 오디오를 주었다.
오디오는 그 친구의 재산 목록 1호였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같이 보낸 책상.
대학에 합격하는 날 이 책상이 엎드려 눈물을 흘렸다. 하숙집 아주머니가 선물로 준 선풍기.
더운 여름에 힘들지? 라는 편지와 함께 그는 물건들에 달려있는 꼬리표들을 천천히 읽었다.
어제 자신이 판 물건들은 어느 곳으로 분류가 되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풀빵을 굽는 기계도 있었다.
아버지 회사가 부도가 났을 때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린 건 풀빵이었다. 이제 아버지는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겨울이면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겨울이면 풀빵을 구워 파는 것은 어떨까?
그는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믿거나 말거나 세상에서 그는 목이 잘린 인형과 한쪽 팔이 없는 로봇을 보았다.
애인과 헤어지던 날 너무 화가 나서 인형의 목을 잡아뜯었는데 다음 날 애인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사연과
기르던 강아지가 로봇의 한쪽 팔을 삼켰는데 신기하게도 강아지는 죽지 않았다는 사연이 적혀 있었다.
한 사내가 선반 위에 올라가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는 사내를 흔들어 깨웠다.
여기서 자면 어떻게 해요? 사내는 대답하기 귀찮다는 듯이 팔을 내져왔다.
팔에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그는 꼬리표에 적힌 글을 읽었다.
올해 마흔. 노래 부르는 것과 자동차 운전하는 것을 제외하고 모든 일을 할 수 있음.
슬픔의 세상으로 가는 도중 그는 길을 잃었다. 지도상으로는 믿거나 말거나 세상에서 나와 왼쪽으로 꺾어지라고 되어 있었는데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기쁨의 세상이 나왔다. 그는 똑같은 코스를 한 번 더 돌았다.
선반에 누워있던 사내는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슬픔의 세상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되죠? 그는 사내에게 지도를 보여주면서 물었다.
사내는 눈을 감은 채 손가락으로 오른쪽 뒤를 가르켰다. 분홍색 카디건을 입은 할머니가 만년필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는 비명을 질렀다.
오! 이럴 수가! 사람들이 비명소리를 듣고 모여들었다.
이 만년필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삼촌이 사준 거예요. 할머니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어요? 누군가 물었다. 할머니는 만년필 뚜껑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길 보세요. MK라고 새긴 거. 내 이름이 민경이에요.
할머니는 짝사랑하던 남자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는 날 만년필을 선물로 주었다고 했다.
벌써 50년도 더 된 이야기네요. 사람들은 할머니의 사랑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만년필에 적힌 사연을 읽고는 눈물을 흘렸다. 맨 앞자리에 앉은 주부가 손수건을 꺼내 할머니에게 건넸다.
할아버지가 아끼시던 물건, 치매에 걸린 후로 할아버지는 만년필만 보면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꼬리표에 적힌 내용을 읽어주었다. 매장 안에는 시계가 없었다.
그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이대로 매장 안에서 몇 년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민사소송법을 읽었다. 한수무이 세상에는 고시에 관련된 책들이 많았다.
책 표지에는 포기하지 말자 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읽다가 힘들면 바닥에 누워 잠깐 잠을 자기도 했다.
자신이 선반에 누워있던 사내가 된 듯했다. 어디서 소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그 소리를 자세히 듣기 위해 두 손을 귀에 갖다 댔다. 물건들은 서로 속닥거리고 있었다.
어떤 책은 사법고시에 번번이 떨어졌던 전주인을 그리워했다. 그는 바닥에 귀를 대보았다.
몇 년 동안 자신을 찾아준 사람이 없었다고 가발은 슬퍼했다. 그는 가발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가발의 전주인은 쑥스러움이 많아서 가발을 쓰고 밖을 나가지 못했다.
그는 가발을 쓰다듬어 주었다. 키가 커지는 운동기구인 키높이는 매장에 다섯 번째 들어왔다.
아이들은 처음 일주일만 열심히 운동을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저절로 키가 자랐다.
그러면 부모님들은 구석에 쳐박아둔 키높이를 꺼내 팔아버렸다.
마술용품도 있었다. 마술용품의 주인은 그걸로 자신의 아이들에게 마술을 가르치곤 했다.
아버지가 마술을 부를 때마다 아이들은 박수를 쳤다. 마술용품은 그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아직까지도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주변에 있는 물건들에게 말을 했다.
물건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다 그는 눈물을 흘렸다. 누군가 가슴 속을 똑똑하고 두드렸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들여다보았다. 지난 30년 동안 자신이 얼마나 외로웠었는지를 그는 잊고 있었다.
어렸을 적에 그는 새벽이면 자주 잠에서 깨었다. 심장이 불에 그을린 것처럼 아팠다.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는 주먹을 움켜쥐는 날이 많아졌다. 길을 걸을 때도 달리기를 할 때도 심지어 수학 문제를 풀 때도 움켜쥔 주먹을 풀지 않았다.
침을 삼킬 때면 커다란 얼음을 통째로 삼킨 듯했다. 그러면 그는 자전거를 타고 옷이 땀에 젖도록 공원을 돌고 돌았다.
시정에 다닐 때보다 일은 더 쉬웠는데 이상하게도 너무 피로해서 눈을 뜰 수가 없는 날이 잦아졌다.
그래도 그는 몰랐다. 그것이 외로움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는 가슴에 손을 댔다.
음악을 틀어놓은 스피커에 손을 댄 것처럼 가느다란 떨림이 느껴졌다. 축제가 시작되었다.
그는 자전거를 덮어두었던 비닐을 벗겼다. 며칠 동안 얼마나 심심했는지 아냐고 자전거들이 아우성을 쳤다.
공원 관리를 하는 김씨가 동상들이 세워져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누군가 밤새 동상들을 페인트로 칠해버린 것이다.
전직 국회의원의 양볼이 붉어졌고 공원을 조성할 때 1억이나 기증을 한 지역 유지의 머리는 노란색으로 물들여졌다.
김씨는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을 떼어다 동상들을 덮어버렸다. 그는 자전거 옆에 인라인 스케이트를 일렬로 세워놓았다.
인라인 스케이트는 숨쉬는 물건들에서 산 것들이었다. 그는 어느 노호부부가 아들네 집으로 들어가면서 어쩔 수 없이 판 장롱을 샀다.
텔레비전도 샀다. 물론 그가 좋아하는 프로야구팀이 소속된 회사의 제품이었다.
마술 도구를 사서 1,305호에 사는 여자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하늘이 아주 좋네요. 그는 매점 여자에게 말을 건넸다. 매점 여자는 그에게 커피 한 잔을 타주었다.
설탕을 조금 더 넣었어요. 농구장에 있는 자판기 커피가 다른 곳보다 조금 달더라구요.
매점 여자가 수줍게 말했다. 매점 여자의 남편은 시청 수의실에서 일을 했었다.
그는 시장에게 거수 경례를 하던 수의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났다.
수의는 시청 옥상에서 떨어져 불구가 되었다. 옥상에 설치된 오그의 광고판에 매달린 풍선을 떼어내다 일어난 사고였다.
풍선을 꺼내달라고 울던 아이는 너무 놀라 한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시에서는 미망인이 된 수의의 부인에게 공원 매점 자리를 알선해 주었다.
자전거를 빌리러 왔던 아이들은 인라인 스케이트를 보고서는 마음을 바꿨다.
사이즈가 맞지 않는 아이들은 울상을 지었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던 아이가 넘어지더니 일어나질 않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가 넘어진 쪽으로 뛰었다. 다쳤니? 아이의 부모도 보았는지 호수 저편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아이가 싱끗 웃었다. 아저씨 하늘이 예뻐서요.
아이가 탄 스케이트는 소아마비를 앓는 아이가 8살이 되던 해 생일날 선물로 받은 거였다.
가끔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공원을 누비는 꿈을 꾸기도 한다고 적혀 있었다.
아이는 손바닥에 난 피를 바지에 문질렀다. 그는 손목을 감은 붕대를 부었다.
약사는 손목에 소독약을 바르고 새로 붕대를 감아주면서 말했다.
왜 매일 병원을 가지 않았어요? 잘못하다간 흉터가 남겠어요.
그는 흉터가 남는 것쯤은 상관하지 않았다. 잔디밭에서 노래 대회가 열렸다. 잔디밭 뒤쪽으로는 고염 나무가 여러 그루 심어져 있다.
동상이 날 때 고염을 날것으로 찌어서 바르면 좋다는 설명을 붙여 놓은 뒤로 고염이 익기도 전에 따가는 사람들이 생겼다.
노래 소리에 맞춰 호수에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느름나무의 열매가 여물었다.
느름나무의 열매를 뭐라 부르더라? 몇 년이 지나 느름나무가 든든한 줄기를 만들게 되면 그때 그 아래로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다.
지금쯤 어느 공원에서는 앵두가 익어갈 것이다. 어느 공원에서는 당나무 줄기를 꺾으려다 딱 하는 소리가 너무 커서 놀란 아이가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에 맞춰 매점 여자가 몸을 흔들었다. 그는 아는 노래가 나오면 큰 소리로 따라 불렀다.
아저씨는 손이 왜 그래요?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여자아이가 그를 빤히 쳐다보면서 물었다.
아이스크림이 녹아서 아이가 입은 분홍색 원피스를 더럽혔다. 하지만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얘야 똑바로 걸었는데도 너도 모르게 넘어질 때가 있지 않니? 여자애는 스타킹을 벗어서 무릎에 난 상처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여기요 지난번에 넘어졌어요. 이것도 그런 상처란다.
그는 빨간색 자전거를 꺼내 아이에게 주었다. 아저씨 선물이다.
한 시간만 타거라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자전거들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자주 웃었다. 그는 비가 오던 날을 떠올렸다.
왜 미친듯 창문을 두드렸지? 그런 의문이 잠깐 들었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는 왼쪽 눈동자를 지그시 눌렀다. 커다란 얼음 덩어리가 가슴에 걸린 것 같았다.
냉기가 느껴져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구름은 바람을 타고 흐르다가 여자아이가 먹던 아이스크림 모양으로 변했다.
아이스크림이 녹더니 그의 입속으로 떨어졌다. 재밌게 들으셨나요?
들으신 소감은 어떠셨나요? 삶은 아이러니다. 웃어야 할 때 울게 되고 울어야 할 땐 오히려 웃게 되는
삶은 아이러니구나 라는 생각이 소설을 읽으면서 불쑥 떠올랐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에게서 제가 받은 느낌이 그랬어요. 그의 인생을 쭉 살펴보면 그런 것 같지 않나요?
주인공 그를 소설 속에서 처음 만났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요.
이 사람 호구구나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거든요. 호구가 되는 길은 의외로 무척 간단한 것 같습니다.
너무 무지하거나 아니면 너무나 선량하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주인공 그는 제가 보기에 후자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공무원 시험을 한 번에 합격한 정도라든가 공무원으로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는 걸로 보면 절대 무지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는 너무 착한 사람이라서 호구가 된 케이스다 싶었습니다.
그에겐 남동생 여동생이 있는데 두 사람이 제일 큰 마지로서의 역할을 그는 과하다 싶게 잘 해왔습니다.
남동생이 유학을 간다고 할 때 자기가 배우고 싶었던 패러글라이딩을 위해 모아둔 적금을 타서 동생 유학을 보내고
또 그 후 3년간 부었던 적금을 깨서 여동생의 결혼비용으로 쓰고 결국 자기를 위해선 한 푼도 못 썼습니다.
그리고는 한다는 생각이 패러글라이딩은 너무 위험해서 포기했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달래는 사람이었죠.
그래도 그는 슬프지 않았어요. 그런데 여동생이 결혼하면서 그에게 한 말 때문에 제가 좀 빡셨습니다.
죄송합니다. 화가 났다, 짜증났다 라는 말보다 요즘 시첸말로 표현하는 게 더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아무튼 빡셨습니다. 여동생이 뭐라고 했냐면 나중에 오빠에게 집을 사주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아마도 오빠가 힘들게 벌어서 모은 돈을 쏙 받아먹는 것이 조금은 미안했던가 보죠.
근데 전 여동생의 그 말을 듣고는 진짜 빡쳤지 뭡니까. 아니 뭔 농담을 그리도 찰지게 하시오 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여동생이 나중에 오빠 집을 사줘. 차라리 그냥 나중에 대형 TV 하나 사줄게 라든가
오빠 결혼하면 그때 부조금으로 한 100만원 쯤 줄게 라고 하면 덜 그랬을 텐데 집을 사준다고 말을 하다니
그 말이 현실이 된다면 좋겠지만 여기서 그 말이 현실로 실현되지 못할 거라는 건 누구나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지 않을까요?
놀리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러고 나서 나중에 보면 두 동생들은 연락도 안 돼요.
오빠에게 형에게 아무도 그 후 연락을 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가 전화를 했을 때 전화번호가 바뀐 것도 몰랐으니까 말입니다. 주인공은 그런 단절된 공간에서 지금까지 혼자 살아봤던 것입니다.
자신의 물건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런 공간에서 말이죠.
자기와 직접적인 추억이 없는 물건들만 있는 집. 그런 공간. 그 집은 그의 외로움을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동생들의 추억이 묻은 물건이 있어서 그것들로 그들을 생각할 수는 있었지만 동생들과의 연결성이 끊어진 상황에서 그 물건들은
전혀 그에게 어떤 감흥도 주지 못하는 폐품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렸죠.
그런 것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은 그를 더 외롭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을 외롭게 하는 건 결국 사람 자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좀 역설적이죠.
그래서 그는 남동생의 책상과 여동생의 텔레비전을 팔아버린 것인데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중고 물품을 파는 곳에서 만난 사연이 담긴 물건들이 오히려 그에게 외로움을 잊게 해주는 도구가 됩니다.
참 아이러니하죠. 친동생들의 물건들은 그를 소외시키는데 일조를 했는데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연이 담긴 물건들이 그를 더 감동시키다니요.
그리고 그곳에서 중고 물건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기의 가슴을 두드리는 소리를 문득 듣게 됩니다.
그러다 깨닫습니다. 지난 30년간 자신이 얼마나 외로웠었는지를. 그 후에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궁금하죠? 그는 이제 좀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요.
마지막 부분에서 그동안 대화를 하지 않던 매점 여자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아파트의 윗집에 마술 세트를 선물하기도 하죠.
이런 변화는 그가 이제 사물과의 관계에서 벗어나 사람과의 관계로 관심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관계성입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관계성이 풍요할 때
인간은 더 이상 외로워지지 않습니다. 저는 그의 마지막 말이 인상 깊게 느껴졌는데요.
똑바로 걸었는데도 너도 모르게 넘어질 때가 있지 않니? 그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을 해보면서 감상평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윤성희 작가의 누군가 문을 두드리다 를 읽어드렸습니다.
다음에도 재미있는 작품으로 다시 만날 것을 약속드리면서 그때까지 행복하세요.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그냥 걷다 보면 어느새 여기 와있고
그저 그런 인생이야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면 좋을 때도 힘들 때도 별거 아닌 일상이 인생이 되더라
흐르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지금 보니 그냥 하루하루 사람들 만나고 헤어지고 그렇게 흘러가더라
무엇을 위해 사는지 물어보면 답이 없고 사라지니까
그저 그런 인생이야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면 좋을 때도 힘들 때도 별거 아닌 일상이 인생이 되더라
잊지만 어쩌겠어 지나간 건데 다시 살라 해도 똑같이 살 것 같아
그저 그런 인생이야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면 좋을 때도 힘들 때도 별거 아닌 일상이 인생이 되더라
욕심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게 행복이더라
인생이란 게 사는 거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