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어떻게 6일 만에 이집트-요르단-시리아를 박살 냈을까? 3차 중동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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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중동전쟁. 6일만에 박살난 아랍국가
그럼 역사돋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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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역사 돋보기입니다
1956년 2차 중동 전쟁은 오합지졸
이집트의 패전이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등장으로 이집트의 독재자
나세르 대통령은 원하던 스웨즈 운화
국유화를 이뤄내 전투에선 졌어도
전쟁에선 이겼죠 영국과 프랑스는
스웨즈 운하를 포기해야만 했고
이스라엘도 시나이 판도 전체를
장악하고 다시 도로 뱉어 내어야만
했죠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나름
불만이었고 아랍에 여전히 아랍 세계
알박기 버티고 있는 이스라엘이 탐탁치
않았고 전쟁은 또 일어날 수밖에 없
었습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3차 중동
전쟁을 다룰 텐데 3차 중동 전쟁은
오늘날 중동 정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음악]
전쟁이었습니다 우선 2차 중동전쟁
이후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을
살펴보겠습니다 스웨즈 운학 국유화를
이뤄낸 나세르는 아주 고안했습니다 또
중동 아랍 권에서도 나세르의 대한
지지도가 굉장했죠 나세르 대통령은
장기 직권에 돌입했습니다 1956년
2대 대통령이 오른 나세르는 4대
대통령까지 죽기 직전이었던
1970년까지 약 14년간 집권했고
3차 중동 전쟁은 나세르의 집권
후반이었던 1967년에 일어난
전쟁입니다 나세르는 2차 중동전쟁
이전부터 그 이후로는 더더욱 범 아랍
주의에 가치를 내걸었습니다 아랍
국가들끼리 연맹을 만들고 나세르
본인은 맹주 같은 역할로 군림하고 다
같이 힘을 앞에 이스라엘을 축출해내는
청사진을 꿈꾸죠 나세르는 이집트를
중동의 패관 국가로 만들고 이집트를
넘어서 범 아랍 연맹의 지도자가 되고
싶어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나 세르
스스로의 거만함과 그리고 2차 중동
전쟁으로 인한 인지도 덕에 나세르는
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나세르의 행보를 나세르 주의 혹은
나세리 am이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까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던 사람 중 한
명이 나세르 있죠 이러한 연장선에서
1958년 시리아가 먼저 이집트에게
제안해서 이집트와 통합하기로 했고
그렇게 이집트와 시리아가 합쳐진 아랍
연합 공화국이 출범했습니다 같은해
이라크와 요르단도 국가를 합치기로
해서 아랍 연방을 수립했습니다
이슬람의 역사 시리즈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요르단 왕국의 왕가와
이라크 왕국의 왕가가 같은 하심
가문이 아아 하지만 요르단 이라크의
아랍 연방은 반년도 가지 못하는데요
이라크 내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납니다 쿠데타 세력은 수도
바그다드로 진격해 이라크의 국왕
피아스 리세를 폐위시킨 뒤 왕실
사람들을
총살시켜야 왕국을 해체하고 이라크
공화정을 세우면서 지금의 이라크가
탄생했죠 살아남은 왕실의 하심 가문
사람들은 영국으로 망명 같죠 다만
쿠데타 정부도 정권을 안정화 시키지
못해서 이라크는 내부적으로 끊임없는
내분에 시달립니다이 혼란을 수습했던게
사담 후세인이 있죠 다시 나세르의 범
아랍 연맹으로 돌아오자면 비록
시리아와 합해 아랍 연합 공화국을
세웠지만 나세르의 비롯한 이집트인들이
시리아를 이집트 인처럼 동등하게
데우지 않아 시리아에선 불만이 쌓여서
결국 시리아에서 분리를 원하던
쿠데타가 일어나 1961년 시리아가
아랍 연합 공화국에서 나와 버렸습니다
체면 국인 나세르는 통합할 다른
아랍국가 없나 차 샀다가 선택한게
예멘이 1962년 예멘에서 공화파와
왕당파 사이에 내전이 발발했던 소련이
공화파의 지원하자 이집트의 나세르
예멘의 공화파 지지한다며 예멘의
지원군을 보내줍니다 하지만 전세가
공화파가 점점 불리해지자 나세르는
매년 군대를 보냈고 1967년이 되면
무려 13만 명의 이집트 군이 예멘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나아지는
건 없었죠 범 아랍 연맹 만들겠다고
예멘 내전에 개입한 나세르 있지만
예멘 내전이 오히 이 나세르의 발목을
붙잡았습니다 세간에서는 베트남 전쟁에
발이 묶인 미국과 예멘 대전에 발이
묶인 이집트를 같이 비유했고 또
나세르가 범 아랍 연맹을 주장하려면이
이스라엘 문제를 짚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범 아랍 연맹의 명분을
위해서라면 이집트의 나세르는
이스라엘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실제
이집트와 이스라엘 국경 지대에서는
국지전이 계속 전개되고 있었고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차
중동전쟁 이후로 시나이 반도를 도로
뱉은 이스라엘은 불만이 계속 많았고
이스라엘이 이 아랍 국가들 사이에서
고립된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선 선재
공격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전략을 군사학
적으로 예방 전쟁이라고 하는데요 훗날
벌어질 것 같은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내가 먼저 선재 공격을 해서 전쟁을
일으킨다는 개념입니다 이집트의
나세르는 시나의 반도 끝자락에 티란
해협을 봉쇄해 버립니다이 티란 해협은
이스라엘이 바다로 나아가는
출구였다 예방 전쟁의 명분을 내걸며
1967년 전쟁을 일으킵니다
비록 2차 중동 전쟁은 이집트의
참패였다 중동 전쟁 때 나세르는 좀
자신 있었습니다 2차 중동전쟁에서
3창 중동전쟁 사이에 약 10년간
소련으로부터 더 많은 무기를 지원
받았거든요 1967년 6월 5일 아침
9시 경에 이스라엘 공군 전투기들이
이집트의 공군 기지들을 기습 폭격하면
3차 중동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이스라엘 공군의 실력은 굉장히
우수했습니다 기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구사하기 어 어려운 운항로 운전하면서
이집트 공군 기지들을 향했습니다 반면
이집트에서는 소련으로부터 받은 우수한
항공기들이 있었지만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었고 활주로의 버젓이
전시에 두고 있어서 공격하게 딱이었어
결국 공습 3시간 만에 이집트 한공기
약 450대 중에서 약 300대가
박살이 나 버립니다 성공적인 폭격으로
이스라엘이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였고
하지만 나세르는 이집트의이 처참한
전황을 공개할 수가 없어서 라디오
방송으로 이집트가 이스라엘 항공기들을
다수 격추시켰다 허위 정보를
선전했습니다 이집트 국민들은 당연하고
뭐 심지어 이집트 군과 해외에서도
이집트가 이기고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나세르의 거짓
방송은 3차 중동 전쟁 내내 이어졌고
이것이 이집트의 피해를 더 늘리는
계기가 되었죠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한
이스라엘은 이젠 육군을 신화의 반대로
진출시켰고이 전투기들도 이스라엘의
보병과 기갑부대를 지원해 주면서
진격하는 이번에도 신나의 반도의
이집트 군은 탈탈 털립니다 또
이스라엘 정 정보 기관의 실력도
엄청나서 이집트와 이집트 군에 대해
이스라엘은 속속이 파악하고 있었어요
결국 3일 만에 신나이 반도가
장악합니다 이스라엘군은 공구는 물론
보병과 기갑 부대까지 정해 병들이
반면 이집트 군은 여전히 오합지졸이
있어요 너무 소련지도 의지하면서
훈련도 안 되어 있었죠 또 소련제
전차들이 사막에서는 적합하지 않았나
봅니다 신나이 반도에서 패전하고
이집트 본토를 후퇴하라는 이집트
군보다 이스라엘군이 더 먼저 스웨지
운하까지 진출하여 신화의 반도 있던
이집트 군은 고립되어 버렸죠지 급들
차이가 컸는데 이스라엘에서는
이스라엘의 하우돈 국방부장관 모세
다양 참모 총장이었던 이츠하크 라빈이
이스라엘 군을 정해화 키고 전쟁을
탁월하게 계획하고 지휘하던
인재들이었다 이집트의 나세르는 계속
거짓 방송으로 승리를 위장하려
바빴고요 이렇게 이집트의 완패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이집트의 구원
투수가 등장하니 바로 요르단이
있습니다 요르단은 아랍 국가들 중에선
그나마 군사력이 가장 출중한
국가였습니다 1차 중동 전쟁 때도
유일하게 승리를 했던 국가가 요르단이
있잖아요 요르단은 이스라엘과 딱 붙어
있다 보니까 요르단 강만 건너면
예루살렘이 조금만 더 가면 바로 수도
테라이 보였어요 요르단의 궁강 후세
일생을 꽤 유능했던 예루살렘의 박격포
세례를 퍼부었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온
이스라엘 공수부대를 괴멸시키고 했어요
하지만 이스라엘의 자랑이 있죠 바로
공군 이번에도 이스라엘 항공기들이
나서서 요르단 공군 기지들을 초토화
시켰습니다 이스라엘의 국방부
장관이었던 모세 다연은 요르단의
군사에게 세서 싸우기를 주저하면서도
어쨌든 전쟁에 터졌으니 적극적인
공격을 허가해 주었고 참모총장 이사크
라빈의 주도로 요르단이 점령한
예루살렘 공방전이 벌어졌는데 승자는
이스라엘이 있습니다 요르단의 군사에게
남 달랐기에 요르단을이긴 이스라엘의
승리는 매우 기쁜 승리였습니다 또
예루살렘이 성지자아요 예루살렘에
들어온 모세의 다양 qu 하빈의
사진이 또 유명합니다 요르단이
이집트의 구원 투수라고 말씀드렸지만
요르단이 이집트를 구원하러 전쟁에
들어온게 아니었습니다 이집트의
나세르는 이집트가 이기고 있다고 거짓
방송을 내보내고 있었다고 했죠 죠
요르단이 여기에 속은 겁니다 이집트가
이기고 있다고 하니까 요르단도
참전해서 뭐 최종 승리하면 숟가락이
얹을 수 있잖아요 하지만 요르단이
괜히 들어왔다가 밀리니까이 시리아를
참전시키자 이집트의 거짓 방송에
속아서 자기들도 숟가락 뭐 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참전합니다
시리아는 이스라엘의 북쪽에서 내려오죠
이스라엘 공군 폭격으로 이집트와
요르단 공군 기지들이 초토화된 것과는
좀 다르게 시리아는 먼저 공군
항공기들을 이스라엘로 보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공군과 항공전에서 시리아
공군 항공기의 약 70% 손실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육군이 이스라엘
시리아 국경지대인 곤란 구원으로
진출합니다 시리아도 이스라엘 공군을
괴멸했다 거짓 방송을 내면서 시리아
육군을 당당하게 곤란 구원으로 향했죠
시리아군이 정예병은 아니었지만이 곤란
구원 지형 자체가 싸우기에는
적합하지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또
다른 자랑인 기갑 전차가 들어가기도
힘든 지질이 있거든요 말 그대로
알보병 투입이 있는데 이스라엘군
피해가 극심할 수밖에 없었죠 각종
지뢰와 철조망에 희생되었던 어
이스라엘 여단 병력의 90% 죽는
마당이었다 뭐 세 명 남고 여덟명
남고 이랬죠 그런 피해에도 이스라엘군
알보병은 진격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절대
곤란 고원으로 못 올라올 거라고
자신했던 시리아 있지만 이스라엘군이
돌파를 해버리니까 당황한 시리아 군은
도망쳤습니다이 곤란 구원 전투에
투입된 여단은 곤란이 여단이 하며
끝끝내 곤란 구원을 차지한 병사들을
본 여단장은 피눈물을 흘리며
통곡했다고 하죠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이스라엘군이 다 스스로
쳐돌 수 있다고 고위직 관료들은
국민들 버르고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어
다만 이스라엘은 더 이상 시리아
방면으로 진격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소련이 등판해서 전쟁을
중단하라고 압박합니다 UN 엔까지
나서면서 이스라엘은 6월 10일 정전
협정을 하며 3차 중동 전쟁도
이스라엘의 완승으로 끝납니다이 모든게
6월 5일부터 6월 10일까지 6일간
일어난 일입니다 그래서 3차
중동전쟁을 6일 전쟁이라고 하는데
6일 동안 일어난 싸움이다 라기보다는
6일 만에 이집트 요리던 시리아가
콩가루로 분쇄되어 버린 전쟁이다 뜻이
더 강합니다 3차 중동 전쟁의
압승으로 이스라엘은 영토를 더 넓혀
신화의 반도와 곤란 구원 같은 군사적
요충지를 차지하면서도 또 요르단강
서한 같은이 경제적 이익을 볼 수
있는 지역들 아지 차지할 수 있었죠
파면 나세르의 위상은 추락하고
나세르가 꿈꾸었던 범 아랍 주의는
3차 중동 전쟁의 패전으로 사실상
종식된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럼
역서 돋보기 있습니다 저이 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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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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