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 인물열전 27] 야율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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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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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네이버 국역 고려사
-한국고전종합DB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고려시대 사료 데이터베이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토크멘터리 전쟁사 67부 [고려vs거란 전쟁2]
-blog.naver.com/suu1/221040082308 (요사 야율팔가열전)
-방기혁, 『요사열전 1권』, 슬기야단비야, 2015
-방기혁, 『요사열전 4권』, 슬기야단비야, 2015
-김인희, 『움직이는 국가, 거란』, 동북아역사재단, 2020
최근 방영된 고려거란 전쟁 28화에서
드디어 기문 체질의 난이
진압되었고 다음 주부터는 오래
기다려왔던 제 3차 열 전쟁과 귀주
대첩이 마침내 시작될 것 같은데요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귀주대첩 신화의 수문
주역 야율 파가에 대해 한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야율 팔가 그의
성에서 알 수 있듯이 요나라의 황족이
문신이었던 따르면 그의 자는
오고인이며 원부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총명을 책을 한 번만 보고도 바로
외울 정도였다고 합니다 진짜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만큼
재능이 뛰어난 천재였다 뜻이겠죠 야율
8단은 성종 제위 초기의 가업을 이어
원부에 관리가 되었으며 얼마 뒤에
갑사로 거쳐 추밀원 시어에 임명되게
됩니다 이후 986년 송나라의 장수
조빈 그 미신이 연 지역을 침공해
오자 이때 그는 성종을 호종의 공을
세워 상경 유수의 임명 되게 되죠
그리고 11년에는 부건 추미 부사에
임명되었으며 얼마 뒤에 동경 유수에
임명되었습니다 그러다 118년 말
소배이 신망 정애 기병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하면서 제 3차 율 전쟁이
발발하게 되는데요 이때 야율 판가는
요나라 군의 도감으로 참전하게 됩니다
이미 다른 영상에서 여러 번 살펴본
바 있듯이 당시 고려를 침략한 소배
아의 요나라는 고려의 성들을 싹 다
무시한 채 고려의 수도인 개경으로
집공하는 작전을 쳤습니다 그러나이
과정에서 흥화진 자주 탄에서 고려군에
유격을 당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죠 하지만 그럼에도 소배압은
계속해서 개경을 향해 남아 있고 이의
고려군의 총지 의관이 강감찬은 수도
방어를 위해 병마 한관 김종현에게
기명 1만 명을 주어 개경으로
급파했습니다 이후 소배압은 요나라는
온갖 고생 끝에 드디어 개경 근처에
도착했지만 고려의 현종이 직접 청야
전수를 펼치며 방어 준비를 철저히 해
놓은 상태라 개 을 공략하기가 쉽지
않았는데요 이에 그는 결국 개경
공격을 포기하고는 군대를 돌려
철수하게 되죠 유사 야율 팔가 열전에
따르면이 과정에서 야율 파가가 약탈을
자행하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후
퇴각하던 소배압 요날 하고는 얼마 뒤
비주 부근에 이르게 되는데요 이때
강감찬의 고려군 본대와 마주치게
되면서 양측은 얼마 뒤 드디어 최후의
결전을 버리게 됩니다 당시의 상황을
지도로 살펴보면 처음에 요나라는 기
성 동쪽의 언덕에 자리잡은 뒤 두
강을 사이에 두고 고려군과 대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유사
야율 팔가 열전에 따르면 이때 요나라
군의 여러 장수들은 소배압 그게
고려군이 주강의 건너기를 기다렸다가
공격하자고 권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 야율 파가가 반대하며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적이 만일 두 강을
건너면 반드시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니 이것은 위험합니다 두 강
사이에서 공격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자이 말을들은 소배압은 야율
파가에 주장을 받아들였다고 하죠 당시
요나라 군의 장수들은 언덕의 진영을
고수하면서 고려군이 주 강을 건너오고
유도한 뒤 유리한 위치에서 고려군을
상대하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에
야율 팔가 강을 하나 건너간 뒤 두
강 사이에 평지에서 결전을 버리자고
주장한 것이죠 이후 요나라는 야율
파가에 주장에 따라 강을 건넜고
고려군 역시 강을 건너오면서 양측은
모두 배수진을 친 형세가 되어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결전을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이는 요나라 군이 고려군에
전멸에 가까운 대패를 당하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는데요 일단 전투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요나라 군 칙의
상황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고려사
강감찬 열전에 따르면 당시 양군이
막상막하로 승패를 결정짓지 못했다고
하니 말이죠 군사의 수능 고려군이
요나라 군보다 두 배 정도 많았지만
아무래도 평지에서 전투를 버렸기에
기병 중심의 요나라 이 막강한
전투력을 발휘했으나 봅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요나라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변수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병마 판관 김종현이 이끄는
고려의 일만 기병이 있죠 양측이 모두
물러설 곤 없이 배수진을 친 상태로
막상막하의 치열한 혈전을 버리고 있던
중 앞서 강감찬이 개경 방어를 위해
급했던 김종현의 김명 1만명이 갑자기
요나라 군의 후방에 갑툭 피한 겁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고려군 기마대의
등장이 순식간에 양 초가에 노인
요나라는 크게 당황하여 전열이
무너지기 시작했죠 게다가 갑자기 기사
병까지 일어나 이바람이 요나라 쪽으로
불기 시작했는데요 그러자 고려군은 그
기세를 타고 총 공격에 나서서 결국
요나라 그을 크게 격파했습니다 애초의
소배 아이 다른 장수들의 의견대로
언덕의 진영을 보수하였다 김종현이
이끄는 일만 기병이 느닷없이 갑툭
트려 해도 크게 위협적이진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적당한 시점을 퇴각 하여 병력을 다수
보전함으로써 훗날을 기약할 수
있었겠죠 하지만 야유 팔가 주장에
따라 강을 번호가 배수진을 친 상태로
고려군과 혈전을 버린 것이 결국 큰
패착이 되고 말았습니다 유사 이국이
고려전 따르면 비주의 패배로 요령
장상은 아가달 백성사 작고 발해 상은
고청명 천웅 군상은 해리 등 요나라
군의 지휘관 대다수가 사망했다고
하는데요 게다가 고려사 강감찬 열전에
따르면 요나라 군의 시체가 들을
덮었으며 사로잡은 포로와 노획한 말
낙타 갑옷 병장기를 다 셀 수 없을
지경이었고 살아서 돌아간 자가 겨우
수천 명에 불과했다고 하니 당시
요나라 군이 얼마나 심각한 타격을
입었었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야율 5가는 그래도 간신히 살아서
본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보이는데요
요사 야율 팔가 열전에 따르면 그는
이후 자신의 부임지인 동경으로 돌아온
뒤 성종에게 바레 승 공간에도 통령이
있어야 한다고 아뢰었다 합니다 그러자
이때까진 기조에서 a 대패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는지 성종이 그의 말을
쫓아 도지 아빠을 부었다고 하죠
하지만 얼마 뒤 비주의 대패 소식이
성종에게 전해지면서 야율 판가는
관직이 가격 서북 무도가로 강등되었다
사망했다고 합니다 또한 고려사 강감찬
열전에 따르면 비주에서의 대패 소식을
전해들은 성종이 소배 아에게 사람을
보내 내가 적을 얕잡아보고 적국 깊이
들어가 이런 지경이 되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나를 보려는 은 너의 낙가
죽을 벗긴 뒤에 죽일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요이 말을들은 소배압은
당시 야율 파가에 말을 들었던 것을
얼마나 후회했을까 지금까지 야율
파가에 대해
살펴보았는데요 야율 팔가 책을 한번
보면 바로 외울 정도로 어려서부터
천재였고 도건 충 일보 살라는
고위직에 오릴만큼 승승장구하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쟁 경험이
별로 없었음에도 3차 열 전쟁에서
소배 합에 잘못된 전수를 제시하면서
도치 않게 고려군이 귀주에서 요나라
군을 거의 몰살시킬 정도로 대승을
거두어 요나라가 두 번 다시 고려를
침략할 수 없도록 막대한 타격을
입히는데 큰 기여을 해버렸죠 물론
김종현이 이끌던 고려의 일만 기병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이긴 하지만이
정도면 비주 대첩에 숨은 지역이
아닐까 싶은데요 오늘의 영상은
여기까지입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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