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영 교무가 말하는 현대시대에 원불교가 정착할 수 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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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4. 14.
원불교는 불법연구회시절부터 일제시대에 유사종교로 취급당할 정도로
후발에 출발한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 시대에 종교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렇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교리와 규율만이 강조된 것이 아닌
포용과 이웃 종교 간의 화합이 밑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해 없는 믿음”은 이제 그만!
종교가 어려운 현대인을 위한 종교 감수성 입문서, 종교문해력 총서
[종교문해력 총서 5 | 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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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그 이제 우리 다섯 명 중에 이제
우리 마지막으로 우리 원불교 편 어
우리 우리 장진영 소장님께서 내신
소태산이 밝힌 정신 계백의 길 예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이제 원불교를 그
애정을 가지고 많이 연구도 하고
봤는데 또이 책을 보면서 원불교를 또
새롭게 알아가는 것들이 굉장히 많이
있더라고요 이제이 원광대학교 마음
인문학 연구소 소장님이 장진영
박사님이 이제 한국인들은 워낙 외세에
억눌리고 사대주의에 물다 보니까 자기
안에서 난 것들이 위대성을 쉽게
감가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 장진영
박사님이 신 소태산이 밝힌 정신
계백의 길을 읽다 보면은 어떻게
인간과 사회의 진하와 진보 얘기를
이렇게나 정교하게 그려놓는 종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종교라고 하면 신앙인들은 자기 종교는
깊게 믿고 존경하지만 타자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면 귀 신나라까 소리로
들기도 하는데이 책을 보면
그런 구속이라 도이 찾아보기
어려울만큼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종교도
있구나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인데요 종교는 거의 창시자의
개인 체험으로부터 시작돼서 신앙을
갖게
되는데도 갖게 돼서 이제 개인 체험이
중시되기 말인데요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박민의 경우는 어려서부터
치열한 구도 과정을 거쳐서 깨달음을
얻는데 이제 그가 제자들을 키우는
과정은 그런 개인 체험과는 상당히
거리가래 보여요 맨먼저 시작하는 것이
바다를 막아서 2 전평의 땅인 정관평
뜰을 이제 개관한다는 저축 조합을
만든다든지 또 기도를 해도 열명의
제자가 공동을 함께 기도하는 법인
성사 같은 그런 공동체성과 공적인
것을 엄청 강조하는데 그래서 무화
봉공 즉 내가 없이 봉사하고 공익을
위해 성심성의를 다하는 것을 상당히
중요 중시 하더라고요 만약 원불교가
다른 종단처리 주문만 외우면
만사형통이다네 속은 다 들어진다
이렇게 한다면 더 쉽 그게 성장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왜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그렇게 처음부터 공적인
것을 시종일관
강조했습니다 예 어 아무튼 이제
중요한 또 질문이 거 같아요 이제 쭉
보시면서 소태산의 이제 그 생애
과정에서 전반부와 후반부를 굳이
나눈다면 이제 대각 전과 후로 좀
나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
이제 대각 전의 삶이라는 것은 길을
알지 못하고 사실 새로운 시대의 어떤
새로운 어떤 질문들 새로운 도전들이
뭐 소태산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에 있는 모든 민중들에게 도전
새로운 도전이 주어졌었다아요 근데
그거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있었던 이제
길을 모르고 찾아다녔던 과정이라면 어
이제 깨달음을 얻고 나서는 이제
방향을 이제 새롭게 설정하는
시기에서는 우리가 함께 새로 만들어갈
시기는 어떤 시대인가시기 어 어떤
어떤 곳인가 어떤 시대인가 대한
자각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 그랬
있다고 보는데요 말씀대로 이제 그
내용을 좀 비교 해 보면은 소태산
이제 어쩌 아주 기본적인 뭐 우주와
인생에 대한 의무로부터 이제 시작이
되었고 그런 의무는 어 의무를 갖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시대에 이제 이미
살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의문이긴 해요 하지만 그거를
끝까지 이제 구도의 과정에서
이어갔다는게
중요한데 개인적으로 볼 때는 한 이제
4사 그 11세부터 15 이제
4세까지 한 4 5년 동안 이제 개인
기도를 한 거거든요
그런데 이제 그런 기도를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도는 아니에요 내가
볼때 아 특별한 기도인데 깨달음 없고
나서는 열 사람을 이제 제자를 이제
본인 포함해서 열 사람 한 단으로
해서 우리가 한 마음이 되어서 일을
해야 된다라는 생각들을 가졌던 거
같아요 이제 앞으로 시대는 한 사람이
이러고 저러고 하는 시대가 아니고 열
사람이 한 마음이 된다는 거 저는
그게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들고 그래서 열 사람을 한 마음으로
만들기 위한 기도 근데 이건 매일
하는 기도는 아니에요 10일에 한
번씩 기도를 해서 이제 백일 기도
정도를 하고 나서 이제 법인 성사라
하는 이제 어 백지의 혈이 나타난
이적을 이제 함께 경험했기 때문에
이걸 부정할 수도 없고 또 그거를 또
태워 버렸기 때문에 증거는 남아 있지
않지만 부정할 수 없지만 유일하게
이제 원불교 내에서 이적이라는게 이제
바로 그건데 법계 그니까 음계 법계에
이제 인정을 받는 사이거 그러면서 어
개인의 기도를 전체의 기도로 이제
전환시킨 어떤 면이 있을 것 같고요
또 그도 과정에서 이제 아까
정관평이라고 이제 이름을 지었는데
2만 6000평의 1차 방언 공사를
하고요 그 이후에 이제 개관 사업을
추가로 해서 이제 2차 방언이 또
있는데 어쨌든 그거를 한 걸 생각해
보면은 소태산 대사께서 이제 부도
하는 과정에서 사실 부모님 계실 때는
굉장히 후원을 받았는데 나도 신용이
있었고 근데 이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와서는 굉장히 진 거 예요 어 그
비독도 많고 그러니까 그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당시 이제 그 그 임자도
앞바다에 타리 파시 어 바다에서
열리는
파시에라 가지고 그 그 비독 하는
부에게 그 빛을 갚았던 과정이
나오거든요 이거는 영적 수행의 과정이
특히 지금 같은 시대에는 경제적
뒷받침이 없이 어렵다라는 어떤 자각을
개인적 처 통해 했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그러 새로운 종교를 열려고 할
때 어떤 자립적 기반이 생성되지
않았을 때 그게 없었을 때 어 바른
우리의 공부 혹은 이제 어떤 수도를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분명히
하셨을 것 같고 제자들을
모아서 그때 당신도 이제 자기 사제를
내놓고 부에게 일부 빌리고 해 가지고
숫 장사를 한 거예요 그래 갖고 이제
그 돈을 가지고 조합을 통해서 이제
돈을 얻어 가지고 개척 사업을 한
건데 그거는 이제 우리가 수도 생활이
일상생활 혹은 경제생활과 뗄 수
없다라는 어떤 자각이 있었던 거
같고요 그런 시대에 맞 일상 생활을
떠나지 않고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을
당신의 이제 그런 과정을 통해서
제자들 알렸던 거 같고요 또 그
과정이 사실 영적 수행의 과정이에요
열심히 그 금주 구매해서 돈을 모으고
허 폐지해 가지고 돈을 모으고 또 그
돈 가지고 직접 몸으로 뛰어들어서 그
갯벌을 막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
거예요 근데 그 과정을 다 영적
수행의 과정으로 사실 저는 이제
승화시켰다고 보거든요 그게 이제
나중에 앞으로 시대의 종교는 도와
생활이 둘 아닌 산 종교라 한다라는
메시지로 이제 정리가 되는데 그래서
이제 철저하게 소사는 제자들을
일하면서 공부하고 공부하면서 일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이고 이제 아마 이제
그 정경 선생님 그 얘기도 있던데
묵상과 실행을 함께 갖도록 했던 그
예수의 전통 같은 경우 그런 전통도
사실은 이제 불교에서는 이제 그 백장
청교의 나와 있는 일하면서 이제
공부하는 그런 전통들이 사실은 지금
이제 보편적으로 모든 종교나
수행자들이 어어 자기 일상 생활을
떠나지 않으면서 수행하고 수행하면서
일상 생활을 더 적극적으로 어 개척해
나가는 그런 시대가 됐기 때문에 아마
그 방법을 어 당신께서는 이제 취하지
않으셨을까 되게 더디죠 하나씩 다
해야 해가야 되니까 제자들도 막 정말
신비의 이적을 나둬 가지고 막 모으면
금방 막 모일 텐데 그런게 전혀
없었어요 하나씩 하나씩 단계를
거쳐가면서 그 이소 성대라는 작은
것을 하나씩 쌓 크게 이루어가는 그
과정대로
그렇게 닦아 가신 거라고 생각합니다네
그러니까 우리 이제 장진영 소장님
이렇게 책을 보면서 더군다나 이제
소태산 대종사의 어떤 삶을 보면서도
하여튼 우리가 뭐 산속에서 어디
어디에서 뭐 지리산이 금강산이 어디서
도만 닦는다고 뭔가 되는게 아니고
그런 식의 이제 도를 닫고 이런
분들도 상당히 많았지만 그래 가지고
이제 우리가 생긴 민족이란 이름으로
민족 종교들이 뭐 수백개가 있었지만
그중에서 이렇게 오래 남고 보편
종교로 지금도 이렇게 늘리 알려진
천도교 든가 불교라든지 대종교 든가이
정도 되려면에 그런 교조화 이런
분들도 최재후 이미 그 깨달음을 얻기
전에 그 한 10년 동안 전국을
주유하고 만주까지 이렇게 가고 세상에
돌아가는 이렇게 돌아가고 있구나라는
것을 절실하게 이제 알았다
그러는데에 우리 소태산 대종사 께서도
리 궁한 산촌의 영광에서 사셨지만
세상 돌아가는 것을 굉장히 알았고 어
정말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때 당시는 획기적인 간도 하고
임자도에 가서 어떻게 보면은 그 생선
장사도 하시고 그러면서 튼 세상
돌아가는 것을 이렇게 알았구나 뭐
대교도 어
당연히에 우리 홍암나철 뭐 만주까지
가서 어 이제 본부를 백수산 쪽으로
옮기시고 이런 식으로 세상 돌아가는
것에 무죄한 분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는 데 소태산 대종사께서 어
굉장히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자기
내적인 어떤 체험만이 아니고 어
세상과 이제 회통 세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처음부터 굉장히 그
깨달음이 거기로부터났다 하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이 부분 혹시 뭐
또 저는 그 이제 원불교에 대한
원불교 그부 느끼는 이제 매력이
있어요 그니까 저는 이제 동학을
신학대학원 다닐 때 동학을 그 논문
썼거든요 그니까 올해 뭐 수훈 선생
수훈 이제 200주년이기도 하고
하니까 그러니까 이제 이제 구한말 뭐
이제 19세기 중후반 20세기 초
이게 이제 우리 민족에게는 엄청난
고통의 시대잖아요 그러니까 파란
고해의 시대이고 수훈서는 이제 각자
유심의
시대라고 보시면서 그 대한을 찾으려고
했던 이제 종교적 그 창조적 종교
지도자들이 막 정말 막 분출하던
시대였던 거 같고요 근데 이제 그
시기에 그 동학과 이제 원불교에 좀
차이가 있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동학은 그 이제 갑보 농민 전쟁이라고
우리가 또 정의하는 굉장히 이제
혁명적이고 변역이 그 저항의 경험이
있었고 근데 그 저항은 사실상 엄청난
학살에 학살당한 경험이었아요 그니까
우금치 우금치 전투는 우리가 굉장히
자랑스러운 어떤 민족 투쟁의 장 그
사건으로 생각하지만 대학살의 장이든
그러니까 그 민중의 삶이 그냥 이제이
외세의 엄청난 이제 물리력 군사력에
무참하게 짓밟혀 버리고 죽임당하는 때
이제 그 이후에 그니까 동학 이후
이제 수훈 이후에 갑보 농민 전쟁
이후에이 파란 고해를 보시면서 이제
이일
어찌할고 고뇌하고 길을 찾으셨을 것
같은데 그
그 고민을 하셨을 것 같아요 소태산
대종사께서이이 민족 독립과 변의 길로
갈 건가 아니면은 좀 힘을 기르고
너무나 이제 피폐하고 파괴되어 있는
그 민중의 일단 생명부터 좀
살리고 그러면서 그이 변화의 거대한
이제 개벽의 길을 가는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고 그래서 저는이 원불교
어떤 영성은 그리고 어떤 수행의 길은
굉장히 이제 일상적이고 생활적 영성의
성격이 하다 그니까 어떤 이제 사회
역적인 성보다는 일단 민중의 삶을 좀
돌보고 그 보듬고 키워내고 육성하는
그런 길을 걸으셨던 선택하셨던 거
같아요 그리고 금에서 본다면 하지만
이제 동이나 원불교 물론 이제
수훈께서는 이제 개벽이란 말을
정확하게 이제 그 후천 개벽이란 말을
쓰지는 않으셨지만 어떤 이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이 개벽되어 우리가 지금
그 동학에서 가르쳐 어떤 이제 후천
개벽에 거대한 문명 전화는 어 지금
21세기에 가장 필요한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가 왜냐면은 그이 현대
문명 그리고 산업 문명의
어둠과 파국을 20세기 내일내일 겪고
왔잖아요 그래서 면에서 본다면이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이제 한 100년
동안에 우리 이제 내적인 힘 뭐
공동체적 힘을 기르도록 그 길을 어
이제 밝혀주신 거 같고 이제 우리는
진정한 정신개벽 문명 전환의 시대로
간게 아닌가 싶어서 이제 면에서
원불교 영성이 가지고 있는 생활
영성적인 그 매력이 힘이 지혜가 되게
있는 거 같아요 그것을 이웃 종교들도
배울 수 있을 것
[음악]
같아요 혹시 뭐 강교수님 말씀하시려고
아 아닙니다 근데 그냥 저는 다른 건
아니고
그냥이
식으로
뭔가를 그 고민해서 만들어 가신
분들의 자취를 보면 제가 가끔씩
놀라는 것은 어떤 거냐면요 원불교가
불교나 이런 질문들을 이제 일상
생활에서 많이 접하자아요 그런 질문은
아예 접어두고 그냥 제 개인적인
느낌을 그냥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딱
이런 겁니다 중국불교의 시기와
한국불교의 시기를 다 지난 다음에
근현대에 수행론 아고 세상의 문제
해결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했던
분들이 보여주는 굉장히 많은 개념과
패턴들이 제가 옛날에 인도 고대에서
보는 수행론 근본 패턴을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굉장히 많이 받아요 아까
저희들 말씀 나눌 때라 개에 대한
이야기도 했었고 뭐 이랬는데 그런게
저한테는 굉장히
적이고 또는 약간 놀랍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진 진심을 갖고
수행을 하던 사람들이
어 찾아가게 되는 어떤 공통의 길이
있지 않나 이런 식의 느낌을 그냥
받는 겁니다 이론적으로 이거와 이거의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뭐 이런게
아니고요 그리고 또 하나는 굉장히 붕
떠 있지 않고 그 생활 안에
정말 구연이 될만한 구체적인 그
뭐랄까요 구체성 이런 걸 갖고 나가는
이야기들을 발견하게 돼서 그렇습니다네
그렇죠 그러니까 요즘에 이제 그 백락
교수님도 어떤 개벽에 대한 책도 뭐도
김이라 광남 교수님 뭐 또 우리
이정미 교수님 뭐 이은성 교수님
초청서 대담도 하시고 그런 이제 책도
내시고 하셨던데 그 우리 태 빈
대사는 어떤 뭔가를 뭐 뜩 깨달았다
이런 차원이 아니고 시대의 어떤
패러다임의
전환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정교하게
이렇게 제시했다는 점에서 야 이게이
상권에서 돈만 닦아 가지고 20대에
이런게 어떻게 나올 수가 있지 할
정도로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죠 예
보시면 또 이렇게 금주 금면 도박 안
하고 이렇게 사랑받는 남편이
되는
습관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아주 훌륭한
습관으로 사랑받는 남성이 되는 그것도
이게 공중파 같은면 위험한
발언이 하튼 아 사랑 받아야 됩니다
무아 본공 말씀도 하셨는데 사실
무아란 말은 불교에서 굉장히 중요한
핵심
가이아요가 되지 않으면 사실은
공적으로 공을 받드는 삶을 살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무아 봉봉이 말이
이제 불교의 핵심 가치하자 같은
경우는 이제 유아적 가치도 같이 포함
하고 있다 수신 제가 해서 그니까
수신 하자는 이유가 제가 치고 평천
하자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불교에서는
아무리 뭐 그 뭐 왕가의 출신이라
하더라도 출세간의 어떤 지향이 좀
있다면 유가는 이제 반대라고 하는데
원불교 같은 경우도 이거 묘하게 이게
같이 맞물려 있어요 그래서 저희도
이제 출가라고 하지만 전무 출신 이런
출신이라는 표현을 쓸 때이 출신의
개념은 그 불교의 출가 개념고 육아의
출신 개념이 사실 오히려 조화된
그래서 지향은 출세간적인 실천은 이제
굉장히 세간적인 방식으로 하도록이 두
가지를 사실은 어 중도적 어 조화를
시키는게 사실은 어찌보면 이제
원불교뿐만 아니라 근대의 물질문명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모든 종교의
주요한 과제가 아닐까 근데 그런
그래서 근 백천 교수님 말씀도
하셨지만 그 근대 이중 과정이라는
문제 할 때 근대를 어떻게 수용할
건가 하고 근대 어떻게 극복할
건가라는 두 과제가 어 이제 한국말의
모든 식민을 겪은 나라들이 이제
과제로 주어졌는데 사실 그것을
실행한게 이제 뭐 척사파 뭐 뭐
개화파가 아니라 이제 개벽파 아고
이제 최근에 지어진 이제 이름 붙여진
표현이지만 그런 개벽파 그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어 새로운 시대 역할
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아닌가
그래서 이제 그 부분이 사실 종교
원부교 지금 계속 그걸 유지하는게
굉장히 과제고 앞으로 근대 종교나
이제 새로운 물질문명의 시대의
종교들은 그 부분을 놓치지 않고 가야
되지 않을까는 저 생각을 계속 하게
됐습니다 우리 박효대 교수님도 뭐 예
아니 저는 그냥 그 공통점도 있고
그래서 좀 질문을 좀 하나 하고
싶었는데요 그 그 장 소장님하고
저하고 공통점은 후발 종교 전통을
공부한다는 거거든요 뭐 차이점이
있다면 저는 제가 믿지 않는 종교로
공부하고 장소 장님을 믿는 종교를
공부하시는데 그 이슬람은 사실 누가
제 이야기가 좋냐면 유대교
그리스도교를 이해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 이슬람을 되게 편해요음 그
어차피 후발 전교 이슬람 자체가
자신들이 새로운 종교가 아니라
하느님이 이미 유대인들 테 줬고
그리스도에 줬던 말씀을 다시 주는거다
그 오래된 세일이라고 얘기하거든요
그런 그랬었을까 불교를 아는 사람들은
원불교를 더 이야기가 더 쉬울 것
같은데 예예 예 그 원불교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마음공부란 말 굉장히
많이 쓰잖아요 그게 도대체 불교의
마음 공부하고 원불교의 마음공부가
어떻게 다르는 건지 저는 항상 그게
궁금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어쨌든
이제 태어나면서 원불교를 다녔기
때문에 뭐 원불교를 벗어날 수 없는
삶이고 이제 저 개인적으로는 어디
가나 걸어다니는 엄블 였거든요 근데
제가 원불교를 밝힌 이상부터는 근데
제가 이제 이제 그 이제 박사 과정은
이제 동국대에서 이제 화학으로
했습니다 근데 사실은 불교 분들은
원불교를 잘 이해하지 못할 수 있어요
아 예 하지만 온 불교를 저는 믿었
이제 먼저 공부를 했기 때문에 불교가
전부 다 깨지는 거 같은 저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그니까
역사적으로는 불교가 먼저고 원불교는
후발 주자기 때문에 어 훨씬 규모도
작고 그러기 때문에 이제 그런 관계로
설명을 하면은 혹시 그럴지 모르지만
원불교는 어찌됐든 불교를 보고 아
이제 앞으로 이렇게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갖고 불교의 가르침을 근대
새롭게 혁신하는 면이 있거든요
그러니까는 예를 들지 예를 들 마음
공부하면 보통 사막으로 보통 얘기
되잖아요 계정의 사막이 당연히 있고
그 그게 이제 이제 선불교를
거치면서는 자성 사막 얘기가 나옵니다
자성 속에 사막이 다 갖춰져 있다라는
굉장히 그것도 특이한 사상이지만 그
현상 사막을 중심 현상의 어떤 그 그
하나하나의 어떤 문제를 풀어가는
사막이었던
패턴하트 굉장히 다른 패턴이든이 두
가지가 사실 원불교에 다 들어와
있어요 그 원불교 사막은 자성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그 어리석음 그 그
경계다 이루어 나는 요하나 머리선
그름을 닦아 가도록 했거든요 그니까
도적인 베이스에서 점수인 태도를 갖고
있는 것처럼 두 가지를 어떻게
조화시킨 건가 또 들어 있어요
사막에도 그리고 사막의 내용도 개
정해를 보통 이제 뭐 아비달마
이후로는 이제 그 순서를 보통 갖추고
있지만 원불교는 정신수양 그니까는
정을 먼저 얘기하고 그다음에 해 개를
나중 얘기하는데 내용이 좀 제
정신수양 사리 연구 작업 지사
이렇게해 좀 구분이 되는
정신 수은 말도 말 그대로 사마타와
이사나가 조화된 상태예요 선
불교에서는 적적함과 성함 고요함과
이제 두렷한 깨어 있는 마음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이것도 사실 중도적인
태도인데이 태도를 갖는게 중요한데이
정신수양이 그게 들어 있고요 사리
연구도 보면은 이치만 연구하는게
아니라 일을 연구하도록 가셨거든요
재밌는게 이치는 말대로 근본 무지를
다루는 거죠 무명의 문제를 다루는
문제라면 현실의 무지 상 빨리 변하기
때문에 뭐 금방금방 무지해지는 거예요
사실은 그리고 실제 현실의 문제를
우리가 계속 풀지 못했을 때 끊임없이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고
그러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무지를
다루는 이체의 문제와 현실에 무지를
다루는 일의 문제 그래서 그니까 일과
이치를 함께 한다 해서 사이
연구거점
자기를 어 타락하게 만드는 윤리적인
어떤 문제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금지하는 조목이 하잖아요 개라는 것은
하지만 원불교에서 작업 취사는 취하고
버리는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정의는
취하고 불리는 버리는 그래서 금지와
권장을 아우르도록 했고 굉장히 이제
적극적인 실천 이제 그런 말을 잘 안
쓰지만 죽기로 실행하라는 표현이
나오거든요 그래 실행의 문제 굉장히
강조를 많이 하고 있는게 원불교
사막의 좀 더 특징이다 이건 당연히
이제 불교의 개정이 사막을 가져왔지만
더 현대 사회에 상생활 속에서도
적용할 수 있도록 사막을 또 재구성한
거기 때문에 어쩌 보면 이제 이제
새로운 어 그니까 기존의 불교의
개정을 이해했던 분은 어 좀 낯설게
느낄 수 있는 거지만 내용상으로는
그거를 연장하면서 시대에 맞기
재구성했다 이렇게 하면 이제
마음공부의 범위가 좀 이제 이해가
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질문에서 이제 그게 좀 이어지는데요
불교의 특징을 한마디로 꼬부 하면
이제 허무 맥한 구관이 실제적이고
체계적인 망공 무기를 했다는 점인데요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든가 한번
깨달으면 다시 수행할게 없다는 식의
구호가 아니고 실제적으로 마음공부를
진부할 수 있도록 이제 체계적인 길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마음 대조 일기까지
있어서 대조하고 챙기고 또 챙기라
이렇게 한 돼서 요즘 세계적인 유행이
되고 있는 마음 챙김을 챙기고 챙기라
이런 대목이 100년 전부터
마음챙김을 강조했다고 볼 수가
있는데요 한번 신비 체험을 한다고
그걸로 다된게 아니고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이제 보급에서 특급으로 또
급에서 상급으로 법마 상급에서 법강
마로 법강 마에서 출가 이로 출가
대각 열로 이렇게 향상 일로를 걷도록
끄는데요 그런데 그렇게 체계적으로
훈련해서 모범생들이 되어서 원불교
교우님들은 모범생처럼 이제 보이는데
어디 가나 모범생이라 그러죠 하지만
이제 현대사회는 이제 좀 더 자유로운
개성 시대인데 이제 그런 점에서이
자유로운 현대인들의 어필하기에는 이제
단점이 어떻게 보면 될 수도 있다고
보여지는데 우리 정장 님 보시기에는
이제 그런 점을 어떻게 보고 원불교
훈련이 인격과 성숙에 실제로 도움이
됩니까
어떻습니까 아 저도 맨날 듣는 소리가
FM 같다고 예 그런 얘기를 많이
듣고 좀 파격적인 얘기도 좀 하고 좀
벗어난 얘기도 해야 되는데 그 틀안에
늘 있는 거 같다 진적을 많이
받았어요 우리 선생님들한테도 저제
스스로도 이제 그런 거 같긴 한데
이거는 어떻 보면은 원불교가 오랫동안
이제 소수 종교로서 진행
되는 과정에서 좀
뭐랄까 몸에 배인 거 같은 느낌이에요
예를 들어 더 거슬 올라가면 저
어렸을 때뿐만 아니라 더 거슬
올라가면은 일제 시대 때 사실
무라야마 지진이라고 이제 아시겠지만
조선의 유사종교 그 조선 총독부의
이제 촉탁으로 이제 그 조선의 모든
종교를 연구를 하면서 유사 종교란
말은 공인 종교의 반대 말이거든요
공인화 되지 않은 종교들을 다 조사를
한 거예요 예 대표적으로 동학 게 뭐
증산계 또 불교계에서 이제 불법 당시
불법 연구하고 이제 대학교가 있었죠
그때 배경성 스님께서 범어사 문중으로
다시 이제 귀속되기 하셨지만 대학교
운동을 이제 독립적으로 하셨던 시기가
있거든요 근데 그때 사실 불법 연구이
무라야마 지준이 그 조사한 자료가
사실은 그이 지금 같은 종교가 문광부
관리인데 당신은 경무국 관리인 거예요
그러니까 준 범죄 집단으로 바라보고
있는 거예요 사실 중 증산 같은
경우도 이제 아시겠지만 보천교 같은
경우가 굉장히 제일 종교였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 차경석이 죽고 나서
1년 1년이 아니라 몇 개월 사이에
해체가 돼 버립니다 예 그런 과정들이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그 종교를
바라보는 태도가 그 당시 어 어땠는지
알 수 있거든요데 어찌보면 지금
생각하면 좀 여유 있게 얘기하지만
살벌한 시대에 종교들이 살아왔기
때문에 남녀 문제 특히 재정 문제 또
이제 사상 문제 한번 걸리면은
살아남기 힘든 그런 시대 고요
말씀대로 그 내부 규정들이 다 있어
남녀간에 만나려면 그 나이 드신
어른이 있데서 어 서로 만난다든지 뭐
굉장히 세밀하게 그런 남녀의 어떤
교재 문제라든지 또 재정적인 문제도
사실 돈 한푼도 소홀함이 없이
철저하게 그때 회개 그때 경성의 부기
학원에 제자들 보내 가지고 교육을
시켜 가지고 다 회계 관리를 다
합니다 그런 정도로 철저하게 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던 거 같고 요
이건 해방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해방
이유에도 원불교는 사실은 많지 않기
때문에 다른 정교에서 한두 번 큰
사건 나오면은 한번 시청하다가 또
지나가 버리잖아요 왜냐 워낙 또
탄탄한 기반이 있고 또 많은 좋은
이제 그 이제 성직자들이 또 있기
때문에 그러하지만 원불교는 만약에
한두 사람이 문제를 켰다 그러면 바로
그냥 문 닫아야 됩니다 예 우리나라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나라도 아니고
그러니까 사실은 뭐 겉으로 보는
모범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살아가는 거 자체가 한국 사회에서
용인되고 인정받는 과정에서 얼마나
한분 한 분들이 그 철저하게 자기를
관리하면서 살아왔을까 생각을 저는
합니다 예 그러니까 그런 점이 아마
있었을 것 같고요 그게 이제 그게
어떻 모범적으로 혹시 미쳤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정신들이 있었고 또
이제 말씀대로 앞으로 시대는 한
정교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고요 저희들도 공부하다
보면은 뭐 여러 종교 하나 더
덧붙여서 플러스일 하자고 나온게
아니라 오광남 교수님 얘기도 있지만
심층 종교를 저는 지향했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처음에 개교의
동기나 교법의 청소를 하는 거 보면은
그 모든 종교의 이제 그 가르침도
통합 활용한다는 취지도 들어 있고 또
재불 재성 모든 성자와 모든 부처님의
본인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이런
얘기들이 많이 있어요 그러니까 이제
원불교 호발 주자기 때문에도
그렇지만이 시대가 하나의 종교로서
어떻게 하겠다는 시대가 아니라 많은
종교들이 함께 하도록 그러기 위해서는
어 이제 사실은 이제 각자의 마음이
새로워져야 되고 또 그럼으로써 이제
성현들이 부활돼 된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래야만 종교가 다시 부활된다 그래서
도덕이 부활되고 세계가 부활될 수
있다 이런 표현들이 또 이제 대산
종사님이 표현이긴 하지만 그런
표현들이 나올 수 있는 거는
기본적으로 지향 자체가 그런데 좀
가깝게 있지 않은가 그래서 다른
종교들 고도 대체로는 무난하게
원만하게 지내고 또 일상에서도 배척
받지 않는 선에서 어 사회에
참여하면서 그렇게 지내오지 않았을까
되게 모범적인 답을 했 거 같지만
그러니까 모범적인 답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걸 한마디로
압축하면 어쩔 수 없이 모범적으로
하신다는 얘 어쩔수 어쩔 수 없는 차
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모범적인
엄청나게 조심한 거 같아요 제가
어디서 읽어 보면은 그 소태산
대종사께서 그니까 오물 에서는 이럴
테면 여자 교무님 굉장히 많잖아요 초
초기부터 그러니까 이제 남녀 문제가
생길까 봐 그러니까 소 그 밑에 뭐
제자들도 뭐 정산 송규 든가 뭐 대상
김대 그라든가
정말 믿고 맡길만한 기라성 같은
제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소태산
대중 어떻게 말씀하시면 나 외에는
아무도 믿지 마라 남자라고 생긴 것은
절대 믿지
마라 그렇게 할 정도로
그 신뢰받는 제자들이 들었으면 상당히
기분이 안 좋았을 수도
있겠지만 인간에 대한 불신이 굉장히
남성에 대한
특히 맞습니다 여성들의 활동들이
굉장히 또 불교는 초기부터 굉장히
중요 했고요 저도 제 은사님이 이제
여자 교우님 이신데 사실여 여성들이
초기부터 헌신하지 않았으면 원불교가
있지 않았을거라고 제 생각합니다 여성
사실 이것도 종교사 쪽으로 좀 이런
사례가 있는지 모르겠 했는데 이제
정법사 최고 위에 있는 정법사 님은
아직 안 나왔지만 어 남녀가 항상
동수로 최고 의결 기관을 구성하고 또
여성들이 뭐 교정원 저희 이제 교정을
최고 책임지는 교정원 장을 몇 분
하셨어요 그 교구장이 그지 또 뭐
다양한 곳에서 여성들이 차별없이
교육도 받았지만 현재에서 활동을
하거든요 그니까 그런 것들도 보면은
되게 특이하다 예 최근에는 이제 또
거기에다 가 최고 수단을 개방하는
이제 교원 계정이 이루어졌어요
그래가지고 제 가들이 최고 기월
기간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렇게 이제
지금 구성이 되고 있거든요 천주교가
좀 배워야 되는데요네 그런 점은
저희가 이제 좀 작기 때문에 좀
합의만 되면 얼마든지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또 유연성도 있긴
있지만 그런 것들이 다세 소태산
대동사 때부터 남녀 그 그 재가출가
구분 없이 교화 단을 구성했고 단을
구성했고 또 남녀 당신이 돌아가시기
여자 수단을 다 구성해 놓고 가셨어요
다행히 그래서 이제 그런 점에서 그
전통이 계속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까 이제 가톨릭과 불교가 가장
단일한 체제로 군대 조직처럼 돼 있기
때문에에 혼자 그기서 삐져 나갔다가는
바로 이제 거의 심한 말로 해서는
총살감이다 이렇게 이제 되기 때문에
삐져 나가기 어려운 측면이 이제
단일성 때문에 체계 때문에 뭐 불교나
개신교는 뭐 이제 그런 단위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혼자 단독 플레이가
가능하지만 여기 단독 플레이 했다가는
바로 살아남기 어려운 이제 구조 어
어 예 예 오교 테 천주교가 배울게
많습니다 그 왜냐면요 천주교를 가만히
보시면은 사실 교회가 시작한게 제자들
다 도망가고 빈무덤 지킨 무덤을 본
사람 여성들이 아아 그니까 교회에
여성들이 사실 그리스도 교회는
여성들이 시작한 건데 2천년 동안
남자들이 그 숟가락 얹어 놓고
자기네들이 멋대로 하잖아 그 제일
심각한 게기 천정 었습니까
제일제일 심각해요 계속 파문당한
얘기를 하는데 책임
못집니다 박현도 선생님은 이제 지금
이슬람을 대변해서 나오신
건데 천주교는 이제 제가 얘기해야
되는데 아 근데 이제 사실 개신교도
배울게 많아요 원불교에서 그니까
개신교는 상당히 이제 한국의 개신교는
상대적으로 좀 모던하다 뭐
현대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실제 그
여성 남성 이런 이제 양성평등
관계에서 보면 아직도 여성 이제
성직자 목사 안수를 안 하는 교단들이
있고 아주 보수적인 교단들이 있고
그리고 여성 성직을 허용하는
교단에서도 총에 이제의 이제 중요한
것이 의사 결정이자아요 뭐 사회적
현안이다 아니면 교회적 현안이다 근데
그걸 결정하려면 총회라는 곳에서 해야
되는데 진보적인 교단도 그 여성
성직자 목회자 뭐 총대 총대 하는데
회원이 회원의 비율이 한 10% 뭐
아 그고 언인 거예요 그러니까 사실상
한국 교회의 어떤 교회적 사회적
정치적 뭔가 결정을 하는 것은 60대
이상 남성들이 다 하고 있는 거거든요
근데 이미 초기부터 이런 이제 여성
남성의 그 비유를도 균형 있게 하고
최근에 이제 그 제가 자라고 해요네
제가 뭐 이런 뭐 평신도
재가자들이 가장 중요한 의사 결정에
포함시킨다고 하는 거 보면 개신교
배울게 되게 많고 일단 우리
그리스도교로 송 우리 할 말이 없어요
근데 무슬림들 테도 우리가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가 잘 산다고 하지만 그
티니지 같은 경우가 우리 여성
여성들의 정치 참여율 다 니지가 더
높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도대체
여성들이 여성들이 사회에서 하는
목소리가 한국에 더 큰 거 같잖아요
절대 아닙니다 아 아 그러니까 우리
저 박현도 교수님이 그 이슬람권의
여성이 얼마나 정치권에서 수장과
총리와 대통령을 많이 아온지 엄청나게
그 열을 열 13개 국가인가 이렇게
쫙 해놓으셨더라구요 아
흥미로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