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어 죽지 않을까 걱정하던 주원장의 중국 통일왕조 건국기, 명나라의 역사 총정리 몰아보기 통합본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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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의 역사 총정리 몰아보기 통합본 1부
그럼 역사돋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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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역사 도포기 있니다
명나라의 역사 시리즈를 연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명나라 역사 1부는 명나라
황제 중 가장 유명한 명나라의 시조
주원장을 다루겠습니다 명나라는 몽골족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중국 한족들이
들고 일어나 원나라를 중국에서 내
쪽고 세운 한족의 국가인데요 명나라가
원나라를 내쫓고 중국을 되찾은 시점과
한국에서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으로
넘어가는 시점이 거의 비슷하고 또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조선이란 나라가
워낙 명나라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보니 명나라는 중국의 여러 왕조들 중
한국 들에게 가장 친근하고 가장 많이
들어본 국가가 아닐까 하는데요
명나라는 어떤 역사를 품은 나라였을요
그 첫 시작 명나라의 건국자 주원장에
시작합니다 주원장은 오늘날의 안후이성
취저우 출신으로 아마 주원장은 역대
중국사 중 나라를 건국한 시조 중
가장 찢어지게 가난한 거렁뱅이 출신일
겁니다 매우 가난한 농민의 집에서
태어나 마을의 전염병 때문에 가족을
잃고 오늘 하루의 걱정은 내일 어떻게
굶어 죽지 않을까를 고민했 너무
가난한 나머지 죽은 부모님을 매장할
수가 없었는데 어느 한 지주의
도움으로 그나마 날고해진 천으로
시신을 감싸 겨우 매장을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비참한 삶을 살았던
주원장은 오로지 먹고 살아남겠다는
것만이 목표를 가진 채 탁 발성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승리로 살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20대 중반에 홍건적이
입단합니다 주원장의 영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홍건적이 입단하며 자신의
이름을 주원정
[음악]
바꾸죠 극심한 혼란의 시기를 거치던
원나라 말 기에 대대적으로 유행했던
사이비 종교가 있었습니다 바로 백년교
있죠 백년교 불교의 미륵 신앙과
마니교와 혼합한 종교로 미래의
구원자가 나타난 중생들을 구원한다는
구원자 신앙 일종의 메시아 신앙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원나라 정부의
혹독한 탄압을 받던 남쪽 지방의
중국인 한족들 중심으로 백년고가 더
쉽게 퍼집니다 한족들은 백년교회
구세주 신앙을 곧 원나라가 타도되고
중국 한족의 나라가 다시 수립되는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한족들을
중심으로 100년 구로 내세우며
원나라에 대항하는 각종 민중봉기가
일어납니다 그 첫 시작은 1351년
오늘 날의 허의 이성에서 일어났습니다
한산동이라고 백년교 깊숙히 관련되어
있는 농민이 스스로를 옛 송나라
황제의 후손이라고 칭하며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한산동 살해되고
한산동 나는 금세 진압되었다 그
여파가 엄청났는데요 한산동이 반란을
일으킬 때 반란자들게 붉은색 두 권을
쓰게 했습니다 한산동 사 후 한산동
반란의 주축 중 한 명이었던 유복통
이어 받겠다며 홍건의 기치를 곳곳에
퍼뜨렸고 한산동 죽었을지 연정
원나라의 통치 불만을 품던 한족들은
모두 붉은 두건을 머리에 매고 일제의
본기를 일으켰습니다 100년 구에서
시작한 홍건의 사상은 매우 빠른 시간
안에 퍼졌고 몇 개월 안에서 그
규모가 자그마치 만에 달하게 됩니다
훗날 유복통 한 산동의 아들 할리마
황제로 옹립하다 바로 홍건적의 난이
발발한 것입니다 다만 홍건적을 하나의
거대한 조직적인 단체가 아니라 당시
원나라 중부지방과 남부 지방 곳곳에서
일어나던 여러 세력들을 총칭하는
개념이니다 백년 구에서 비롯한
홍건적이 아는이 기치가 워낙 파급력이
컸기에 민중 본기를 일으키는 이들은
너도 나도 홍건적을 자처했던 거죠
그중 주원장의 고향이었던 안호성 취저
후에는 곽자 흥이 홍건적의 난을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주원장은이 곽자
흥의 세력에 들어가는데 처음에는 그저
일개 병졸이 있습니다 곽자 흥은
자신의 세력을 데리고 취저 후했던
원나라 당국과 싸우는데 기 병인
주원장이 너무 활약을 하는 겁니다
주원장은 금세 발탁되었고 각장을
싸우는 전투마다 점점 주원장에게 높은
임무를 주고 임무들을 모두 완수하는
주원장의 모습을 높이서 어느덧
주원장의 장 세력의 2인자가 될
정도였습니다 주원장을 청했던 곽장근
심지어 주원장을 사위로 삼죠 주원장이
일개 병졸 입단하여 곽장인 2인자가
되기까지가 약 1년 남짓한 기간 내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사실 호의성 취저 후에는
각장의 홍건적 말고도 다른 수령들이
지휘하는 홍건적 파벌들이 있었습니다이
파벌들이 싸움도 치열했는데 어느 순간
곽장근이 많이 안 좋아지면서이
주원장의 실질적인 수령이 되어 인재를
선발하고 조직을 더 키워 나갔습니다
자기 고향에 있던 친구들과 무리
700명을 합류시키기 했죠 이때
주원장이 등용한 제야의 어느 지식이
있었는데이 성기에게 정도전이 있고 한
고조 유방에게 장자방 있고 유비에게
제갈량이 있다면 주원장에게 바로이
사람이 있었습니다이 선장이었던이
선장은 주원장을 한 고조 유방에
비유하면서 주원장의 브레인이 되어
주었습니다 주원장은 몸 상태가 나빠진
곽장인 원나라 군과 싸우고 취저
인근의 다른 홍건적
파벌들이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곽장인
뒤를 이은 건 그가 모든 실무을
도맡아 온 주원장이 아니라 곽장인
아들 곽서 있습니다 주원장은 자신이
세력을 잊지 못한 것에 매우 통탄해
했지만 우선은 곽전사 함께 남경 오늘
날에 난징으로 진출하게 합니다 그런데
덜커덕 난징으로 가는 도중에 곽창석
전사하고 맙니다 다행인지 뭔지 곽사의
죽음으로 주원장이 모든 세력을
이어받았고 1356년 남경 함락에
성공 남경 함락 후 주원장은 스스로를
오국 공이라 자처하면서 당시 강력한
군벌 중 하나로 자리잡았습니다
주원장에게 적이 원 나라만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다른 군벌들 있었죠
홍건적을 하나의 거대한 조직체가
아니라고 말씀드렸는데 당대 홍건적을
크게 두 가지 개파 서의 홍건적과
동계 홍건적이 있었습니다 서계
홍건적을 서수희 조직한 세력이었고
면포 판매업자 출신으로 후배 이성에서
홍건적을 자처하며 자신만의 세력을
형성한 후 확대해 갔습니다 그 세력은
점점 커져 서수희 나라를 선포할
정도였는데요 다만 서수희 부하들의
배신으로 서수 위의 서기 홍건적
세력은 부하 진우량 qu 명옥진 의해
두 개를 찢어졌습니다 동계 적은 첫
홍건적의 원조 정통 유복통 그가
황제로 옹립한 할리마 세력이었습니다
정통인만큼 동기 홍건적의 세력이 가장
컸는데요 그들은 원나라의 수도 대도지
나아갔다 원나라의 수도 대도 함 락만
남겨 놓았을 때 1359년 원나라의
맹장 착한 테모르 나서면서부터 동계
홍건적을 속절없이 무너집니다 동계
홍건적을 와해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흩어진 홍건적의 서력 일부가
1359년 1361년 두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공해 왔던 겁니다 유통과
할리마 남 쪽으로 밀렸는데 거대했던
조직 동계 홍건적이 무너지자 그들을
벼르던 또 다른 장소성의 군벌이 동계
홍건적의 최 후다를 날리려고 합니다
바로 장수성 군별 장사성 이었는데요
장사성 홍건적을 아니지만 염전
노동자로 일하던 중 원나라의 반기를
일으키며 독재적인 군벌을 형성했습니다
장소성은 본인이 홍건적이 아니었던지라
홍건적 자체도 그에겐 적대 세력이었고
원나라에 패퇴한 동계 홍건적을
마무리하고자 유복통 할리아이언 있던
현재의 안호 이성 화인 한 시인 안풍
포위했습니다 동계 홍건적을 장선과
어떻게든 싸우려고 했으나 원나라에
패배한 뒤로 세력이 워낙 약해져
있었고 전투도중 유복통이 전사하는
지경까지 와 버립니다 할리마 자신을
도와줄 세력이 필요했고 할리마 구원을
요청한게 바로 남경에 있던 주원장이
1363년 주원장은 안풍로 달려가
할리마 구출해 내는데 성공합니다
이로써 중국 남부 지방의 군벌은
남경의 주원장 장사성 석이 홍건적이
찢어진 진우량 명옥진 이렇게네 개로
정리가 됐는데 홍건적의 정통 였던
할리 마를 주원장에 모시게 되면서
주원장의 세력이 정통인 세력이 되었고
당연하게도 다른 세력들의 공동의 적이
되어 버렸죠 이중 진우량이 장사성게
동맹을 제기해 장사성 수락했고 이들은
주원장을 토벌하러 남경으로
향합니다 중국 기록의 숫자를 어느
정도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문헌상으로는 진우량은 무려 60만
대군을 이끌고 있었고 이에 맞서는
주원장의 군대는 20만 정도였다고
합니다 주원장은 도무지 진우량 장사성
동시에 상대 할 수가 없어서 부하였던
오량게 군대를 주어 장사성 움직임을
맞고 주원장 본인은 진우량은 상대하러
떠납니다 진우량이 부대가 너무 많다
보니 주원장의 부하들이 수비에
전념하자 했으나 주원장은 공격을
주장합니다 주원장은 진우량은 매복으로
공격할 예정이었는데요 주원장의 부하
중 진우량의 친분이 있던 강무 이제가
거짓 항복하는 척하면서 진우량은
주원장이 원하는 곳으로 유인해
내었습니다 중국 남쪽의 지형적 특성상
진우량은 대규모 수분까지 동원해서
강을 따라 진군 중이었는데 하필
엄청난 포구로 만난 수군 의 전열이
흐트러졌고 주원장의 매복에 걸려서
진우량은 대패를 하고 도주를 합니다
분노한 진우량은 모든 공력을 퍼부
수군을 제조직 하였고 역사상 유리
없을 정도의 크기의 함선을 제작했다고
합니다 주원장은 수군을 동원하였고
양측의 수군은 파양 호라는 호수에서
만납니다 주원장의 병사들이 진우량의
거대한 함선을 보고 겁을 먹자
주원장은 가장 최전선에서 전투를
지휘하며 사기를 고취시켰다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습니다 주원장에 타고
있던 배가 석포로 맞아 거의 침몰하기
아지 하는 등 아찔한 순간들도 많았죠
그런데 확실히 하늘은 주원장의
편이었을까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주원장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강풍이
불자 주원장의 병사들은 모든 힘을
다해 화공을 퍼부었고 진우량의 배들은
삽시간에 화마의 휩싸입니다 진우량의
수구는 완전히 괴멸되었다 진우량은
소수의 병력만 데리고 도주에 숨어
있는데 그래도 최후의 공격을 날리고자
나섰다가 그 남은 병력도 전멸하고
진우량은 화살에 맞아 전사합니다이
전투가 파양호 대전입니다 파양호 대전
승리 후 1364년 주원장은 스스로
왕에 등극했고 할리마 황제로 옹립하고
위해 난징으로 모셔 오던 중 할리마
의문사를 당합니다 진우량의 세력까지
모두 통합한 주원장의 세력은
압도적이었고 장사성 이렇게 커진
주원장에게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1367년 장사성 주원장에게 패배하고
처영 당했습니다 난방을 제패한
주원장은 1368년 난징을 수도로
삼고 황제에 등극하여 명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이렇게 명태조 홍무제가
된 거죠 하지만 아직 홍무제
주원장에게 최종 보스가 있죠 바로
북방의 원나라 자 이제 홍무제
주원장은 원나라를 목표로 원나라의
수도 대도로 진격합니다
[음악]
대도 진격은 홍무제 주원장이 직접
나서지는 않았습니다 홍무제 주원장은
서달 상우춘게 25만 명의 군대를
주어 원나라 수도 대도로 파견합니다
서달은 주원장의 오른팔과 같은
장군이었다 어릴적 같이 소치는 목동이
있으며 주원장이 홍건적에게 가담할 때
서달로 주원장과 합류 말 그대로
평생을 주원장을 따라 였던 주원장의
최측근이었던 any 교육을 받지 않은
서다 이에도 굉장히 뛰어난 명장이었던
주원장의 모든 전투에서 선봉장 혹은
사령관 역할을 맡았습니다 상우춘은
도적단 출신으로 주원장이 한참 곽자
흥을 대신해서 자신의 세력을 키울 때
포섭했다 장수로 역시 상호 춘도
싸우는 전투에서 공을 세우며 주원장의
총회를 받았고 명나라 군부에서는
서달의 이은 넘버 2였습니다 당시
원나라의 칸은 원 해종 토곤테무르
있습니다 바로 기황우 남편으로 유명한
사람이죠이 시점이 되면은 토근 테무르
노세 하여 기황우 사이에서 나는
황태자 아이실리 다라가 실권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국 중부
지역을 사수하던 원나라 장수는 하나만
코케테무르 있는데요 코케테무르 예전
유복통 할리마 동기 홍건적을 격파했던
착한 테무르의 양아들이 있습니다
코케테무르 서달 상우춘 이끄는 명나라
군의 북상을 저지해야 했는데 코키
테무르 명장은 명장이었다 조정과
사이가 매우 좋지 못했습니다
코케테무르 원혜종 토군 테무르 친정을
할 때 칸의 총회를 받았지만 조종과
거리가 멀어진게 실 을 행사하는
황태자 아유시리다라 때문이라고 여겼죠
아유시리다라 명나라군 막아야 하는
임무를 만약 코케테무르게 임할 수가
없어서 코케 테무르의 부하들을
포섭했다 kan 테무르의 세력
내에서도 메고 관보 등의 부하들에
배신을 하고 하극상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원나라는 명나라군 맞기도
벅찰 텐데 지금 내분의 시달리고 있는
겁니다 보다못한 원 해종 태곤
해무리가 나서서 조종과 코켓 해무를
중지했고 맥고 관보 등 부하들의 반란
진압한 코키 테무르 원 해종 소군
태무에만 바치면서 본격적으로 명
라군을 막으러 갑니다 그러나 코케트
무르의 세력은 이다은 내전으로 많이
약해져 있었고 서달의 명나라 군과
싸우는 족족 패배합니다 코케트 무르가
패잔병의 세력을 규합해 전열의 재정비
사이 1368년 여름 서열과 상우춘
명나라 군은 원나라의 수도 대도를
함락 하는데 성공합니다 원혜종 토군
테무르 아내 기황후 그리고 황태자
아유시리다라 대도 함락 직전에 대도를
탈출해 말리장성 2북 오늘 날 내몽골
치팡 신인 응창 그로 도주하면서
마침내 명나라 군은 몽골 원나라를
타도 하고 만리 장선 이북으로 내
쫓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명나라 군의
목표는 비단 원나라를 내쫓는 것만이
아닌 원나라의 완전한 멸망이 있습니다
서다가 상우춘은 만리장성 넘어
진격하기 하고 1369년 상우춘은
원나라 대한들이 여름 별장인 제너두
고도 알려진 상상도를 점령하는데
성공합니다 상도를 점령했지만 서열과
상어 추는 함부로 더 북진하게
곤란했습니다 코케테무르 산시성 태
1이라는 곳에서 세력을 회복한 후
반격의 틈을 노리고 있었거든요
코케테무르 명나라 군을 압박하며 대도
타 의 목적으로 대도를 향하지만 역시
명나라의 서달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서달은 대도 방어가 아닌 코키 채무의
본거지였던 태원을 우회해 공격하는
바람에 코케 티무르는 본거지를 잃었고
별수 없이 다른 곳으로 도주하여 간
수성의 영하에서 전혀를 다시
재정비합니다 코키 테는 포기하지 않고
간수성 서달의 명나라 공과 계속
싸웠습니다 양측의 싸움은 오래도록
매우 치열하게 전개되는데 치마요
대전에서 쿠켄 테무르 제기할 수 없을
정도의대 패배를 당합니다 전사자만
10만이 넘고 포로로 잡 인 코케
테무르의 병사들이 8만 명이 넘었다고
하죠 모든 병사를 잃은 코케테무르
자기 가족만 데리고 명나라 군의
추격을 피해 몽골 초안의 카라코롬
도주합니다 1370년 원나라의 마지막
칸이었던 원혜종 토근 테무르 죽고
황태자였던 기황후의 아들 아유시리다라
뒤를 이어 원 소종 등극합니다 원
소종 아유시리다라 터 원나라가 아닌
부원으로 분류를 하죠 원 소종
아유시리다라 카라코롬 must 새로운
수도로 삼고 비록 황태자 시절
코켄튜브 앙숙 관계였지만 그의 의
능력만큼은 필요했기에 죽은 고생에서
카라코롬 도착한 코케트 무르를 승상이
임명해 주었습니다 서달은 북원의
완전한 멸망을 위해 만리 장성을 넘어
몽골 초원까지 진입했습니다 야마천
토라에서 승리를 거둔 서달의 명나라
군은 수도 카라코롬 목전까지
도착했지만 확실히 몽골 초원은 원나라
군에게 유리했습니다 코케테무르 원나라
군이 영북 대전에서 15만 명의
서달의 명나라 군을대 격파합니다
사상자만 2만 명이 넘게 속출했던
이로써 서달의 북진의 끝이 났고요
북진을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홍무제
주원장은 서달의 공을 크게 치하 있고
또 적장이 코키 테무르의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보냈다고 합니다 코키 테무르
국경지대 있으면서 명나라는 선뜻
북진을 제기하기가 어려웠죠 원나라
최후의 명전 코케테무르 1375년
사망합니다 한편 명나라 내부의
군벌들이 완전히 소탕된게 아니었습니다
우선 석유 홍건적이 명옥진 진우량 두
개로 찢어졌는데 주원장이 토벌한 건
진우량 뿐이었죠 명옥진 중국 서쪽
수천송이 자리를 잡고 공세를 취하고
있지는 않아서 큰 장애물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명옥진이 죽고는
어린 아들 명승이 세력을 이어
받았는데 1371년 명나라 군에게
토벌 당했습니다 하지만 명승이 계속
명나라에 있으면 반기를 일으킬 수가
있기 때문에 홍무제 주원장은 명성을
죽이지는 않는 대신 고려로 보내
버립니다 홍무제 주원장은 공민왕에게
그를 백성으로 신화도 삼지 말라고
하고 공민왕은 명승을 받아들여 주었죠
명승과 그 후대인들이 이후로 쭉
고려와 조선에 자면서 한국인이 됩니다
또 동남 해안에는 방국진이라는 거대한
군벌을 소유한 해적이 있었는데 명
나라는 방국진 세력도 진압하고 방국진
명나라의 관직을 받으면서 해적 세력도
와해 됩니다 이로서 홍무제 주원장은
모든 적대 세력들을
진압하였다 잔존 세력들이 중국 대륙
내부에 남아 있었지만 1382년 경
지음이 되면은이 원나라 잔존 세력들도
모조리 소탕합니다 그러나 아직
몽골에는 부건이 있잖아요 서달의
북벌이 종료된 후 거대한 전투는
없었지만 긴장은 올 순 없었단
말이죠이 긴장 속에서 명나라와 북원
사이에 줄다리기를 하던 세력이
있었습니다 바로 요동의 군벌 나하추
있습니다 나하추는 몽골인 있니다
징기스칸의 사준 사고 중 한 명인
무칼리
후손이었다 요동의 군벌로 굴림 했는데
당연히 나하추는 원나라를지지
했다지만이 원나라가 부원으로 쫓겨나고
명나라가 중국을 제패했고 이러니
무작정 나하추이 폭락하는 주식이 올인
하기가 애매했습니다 북원에서
아유시리다라 죽고 그의 동생 테구스
테무르 북원의 황조를 등극하면서
나하추는 더더욱 북원과 선을 긋더니
1388년 아예 명나라에 투항해
버렸습니다 이틈을 타 명나라는 다시
한번 북벌에 나섰고 북원의 왕자 태구
스 테무르의 도주하던 중 먼
친척이었던 예수대 그에게 살해당합니다
예수대 그가 몽골의 세력을 다 이어
받았는데 그는 더 이상 원나라는
국호를 쓰지 않을 것이며 황제 친구도
포기하게 다면서 원나라가 드디어
비로서 완전히 살아지게 됩니다
1388년 부건 세력을 완전히
소탕하고 나하추 아지 투항했다 5제
주원장은 요동을 넘어 만주에 대한
완전한 지배를 원했고이는 고려와의
충돌로 이어집니다 딱이 1388년
홍무제 주전장 고려의 천령 이북의
영토를 넘기라고 압박했고 여기에
반발한 최영이 무리하게 요동 정보를
준비하다가 이성계의 위화도 해군을
맞은
[음악]
겁니다 너무 내치 이야기를 안 했던
거 같습니다 홍무제 주원장은 명나라의
가장 기본적인 체제를 수립시기 했는데
주원장의 출신을 생각하면 일자
무식했던 홍무제 주원장이 어떻게
그렇게 장기간에 완벽한 체제를
수립했지만 홍무제 주원장의 브레인이자
참모였던이 선장이 명나라의 행정
시스템을 정비하는데 가장 크게 일조를
했고요 또 출신 콤플렉스가 확실히
강했던 홍무제 주원장은 명나라 선포
이전부터 지식인들을 매우 중용했던
주원장이 그 많고 강한 군벌들을 해칠
수 있었던 건 지식인들과 유학자들의
행정 기반과 체제를 공고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홍무제
주원장은 성리학을 국교로 삼으면서
유학자 지식인들의 도움으로 명나라는
건국 직후 빠르게 안정화되어 갈 수가
있었습니다 홍무제 주원장이 수립한
명나라의 체제는 극단적인 황제권
강화였다 권력을지기 위해서 뭘 해야
할 요 더 많은 업무를 관장할 록
권력이 높아지는 법입니다 홍무제
주원장은 황제가 국가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면서 황제의 권력을
강화했습니다 당나라 1래 중국의
기본적인 중앙정부 구성지 있던 삼성
6부 중에서이 삼성의 중서성
폐지합니다 국무 총리에 해당하는
승상이이 중서성 대표였다 말이죠
홍무제 주원장은 승상의 권한을
억제하려고 초창기 승상 직을 맡았던
재산들을 모조리 제거해 버렸습니다이
선장도 죽여 버렸어요이 두려움에
아무도 승상 자리에 오르 려고 하지
않았고 승상이 없으니 그냥 중서성
자체를 없애버렸던 거죠 황제가 직접
6부의 상서를 직할 있고요이 재산
권력을 없앤 대신에 황제의 비서실이
내각의 힘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뭐
오늘로 비유하자면 국무 총리직을
없애고 대통령 비서실장의 힘을 키워둔
거죠 홍무제 주원장이 분명히 뛰어난
군주인 건 맞지만 성격이 지랄 맞았던
홍무제 주원장은 황제권 강화를 위해
공포정치를 일관했는데 그가 어떤
황제였지만
[음악]
국가의 존속은 무력 다 체제로
유지된다는 걸 제대로 보여주는게
명나라 건국의 사례인데요 홍무제
주원장은 성리학을 국교 아여 학교
교육제도를 강화하고 여섯 가지의
도덕적 덕목을 정리한 유를 전국적으로
보급하는데 힘썼습니다 또한 송나라때
장비된 과거제가 원나라를 거치면서
많이 쇠퇴해 있었는데 홍무제 주원장은
과거제를 부활시켜 과거제도의 중요성을
대폭 강조했습니다 홍무제 주원장 일래
명나라는 과거 제도를 중요시하며 과거
합격자들을
우대했다 명나라 시대의 지배층이 바로
신사입니다 명나라뿐 아니라 이후에
청나라 때까지 명청 시대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개념을 단 하나만
꼽으라면 저는 신사를 말하곤 합니다
그만큼 명나라 청나라 역사를
이해하는데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것이
신사인데 신사를 설명드리기 전에
명나라가 얼마나 지식인들과 과거
제도를 우대했다 있습니다 명나라 때
과거 제도는 송나라 때와 마찬가지로
3차 시험으로 이루어져 있고요 1차
시험은 향시 아고 지방에서 지역별로
주관하는 시험으로 향시 합격 생들을
거인이라고 합니다 거인들은 수도의
무여 2차 시험 회시 치르게 됩니다
회시 합격생들이 진사라 하며 진사들
기본적으로 모두 관직에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회시 합격해도 사실상
과거제도 합격인데 회시 합격자들
중에서도 순위를 매기는 마지막 3차
시험을 전시라고 하며이는 황제가
주관하는 시험이랍니다 그런데 중국
과거 제도는 경쟁률도 경쟁률 권위와
합격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과거 낙재들은 낙재 3이라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제해 주겠다면서
최악은 말단 관직으로 대우해 주며
노비를 하사해 주고 면책권을 주고
생활비를 지급해 주었습니다 과거
낙제생에게도이 정도 혜택을 주는데
합격생들에게는 얼마나 큰 혜택이
주어질까요 명나라의 이러한 과거제도를
바탕으로 형성된 학생들 현직 관리
퇴직 관리로 구성된 집배 계층을 바로
신사라고 부릅니다 신사의 신은 현직
관리와 퇴직 관리를 말하고 사는
학생들을 말하죠 신사층 단순히
지식인으로서 사회를 선도하고 사회의
상층부 움직였을뿐 아니라 상업에도
뛰어들어 경제력을 확보하였으며 이들은
세금을 면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지식인들 덕에 명나라는 엘리트 적으로
빠르게 국가가 자리를 잡을 수
있었지만 나중에 명나라 중기 말기가
되면 관리는 안 되고 학생만 되려는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명나라의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음악]
한답니다 홍무제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우기 전 중국은 무능한 원나라의
지배를 받으며 사실상 무정부
상태였습니다 그 넓은 땅덩어리의
행정력이 미치는 면 다소 강경하고
강력한 행정 지배력이 필요로 했고
그래서 더더욱 홍무제 주원장은 각종
제도와 법률을 만들어 갔습니다 지난
2부에서 말씀드린 중서성 승상을 없애
버리며 황제권을 강화한 정책 외에도
지방 행정 제도로 이갑제 실시했습니다
전국을 2와 갑으로 구성하는 것인데
갑은 부유한 한 가구의 이장호 평범한
생활을 영어하는 열 가구의 갑수 5
이렇게 총 11개의 가구를 말하고
이러한 갑이 개가 모이면 1 2가
됩니다 그렇다면 1 2에는 100개의
일반 가구 갑수 호와 개의 부유한
가구 이장호 생기는 거겠죠 이장호
갑수 통솔하여 세금을 수취하고 지방
사회에서 요구하는 물자를 걷고 여에
동원 시키고 황제가 정책을 선포하며
낭독하는 등 뭐 하는 일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워낙 중국이 넓다 보니
전국 곳곳의 지방관을 파견할 수가
없지만 또 중앙정부의 행정력이
빈틈없이 투입시켜야 하니 지방관의
업무 일부를 민간에게 맡긴 제도인
거죠 또 홍무제 주원장에게 아들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황제직을이어야 하는
장남을 제외한 25명 의 아들들을
모두 변방의 왕들로 임명한 후
파견하여 다스리게 했습니다 홍무제
주원장은 법치주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대명률 대명령 등의 법률과 법령을
만들어 반포하고 했죠 그리고 대고
해서 관리를 교육시키는 지침서를
편찬하기 했어요 이렇게 보면 홍무제
주원장 때 많은 것들이 빠르게 자리를
잡아간다고 보실 수 있지만 홍무제
주원장은 성격이 아주 괴팍하고 지랄
맞기로 유명했습니다 홍무제 주원장은
유난이 히스테리컬 에서서 마음에 들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심기를 건드리는
신하들을 절대 가만 놔두지 않았습니다
홍무제 주원장이 명나라의 시조이다
보니 개국 공신들이 많지 않겠습니까
정말 많은 개국 공신들이 홍무제
주원장에게 토사 구행 당하며 쓸려
나가는데요 가장 유명한 1380년에
호유용의 옥이 있죠 호유용의 홍무제
주원장의 총회를 받던 관료였다 어느
생각 그의 도덕적 스캔들이 뒤따르니
호유용의 영모리 꾀했다는 고변이
들어오자 별 도사도 없이 홍무제
주원장은 호유용의 구족을 멸하고 그
가까웠던 사람들을 모조리
터 10년 후에 1390년 홍무제
주장은 10년 전 사건이었던 호유용의
옥을 다시 들먹이면서 또다시 피바람이
불었고 이때는 심지어 홍무제 주원장의
장자 방해자 재갈량 포지션이었던이
선장도 숙청 당합니다 1393년 역시
개국 공신 중 한 명으로 군부에서
입지가 높았던 남옥이 여러 계국
공신들이 제거가 되니 본인도 모반을
꾀하다가 발각되어 피바람이 불었습니다
개국 공신들은 측근 세력들이 많아서게
딱 한 명이 제거되면 여러 명이
로되어 피해를 봅니다 남옥의 옥
당시에 2만 명이 처형됐다고 하네요
호유용의 옥과 남옥의 옥을 합쳐
앞글자를 따와 호라의 옥이라는 호라의
오이 가장 큰 두 사건일뿐 뭐 자잘한
사건까지 합치면 훨씬 많습니다 또
홍무제 주원장은 출신이 미천하다
보니이 출신 컴플렉스가 대단히
심했는데 자신의 출신을 나타내는
단어인 빛날 광 대머리독 중승
아니면이 비슷한 발음을 가진 날생
도적적 법칙 즉을 사용하면은 뭐 바로
사용이었다 이거 썼다가 죽을 뻔했던
사람이 조선의 정도전이 있죠 홍무제
주원장이 재임기에 숙청되어 사용된
관료 수가 10만 명이었다고 하는데
홍무제 주원장은 비밀경찰인 금이를
장소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이 금융위가
홍무제 숙청에 숨은 칼이 되어 주었죠
뭐 그렇다고 홍무제 주원장의 충신들을
모두 죽였던 포구는 또 아니었습니다
부정부패는 비리가 밝혀진 경우에
한해서 숙청했다 좀 과하게 심한게
있죠 홍무제 주원장을 긍정하는 쪽에선
이전까지 원나라의 무정부 상태가
이어졌고 언제 다시 군벌들이 걸게
할지 모르고 개국 공신들은 권력을
누리며 명나라를 해체할 수도 있으니
홍무제 주원장 입장에서 그들의 성장
가능성을 조기의 싹을 잘라버려야
했다고 변호를 하고 홍무지 주원장을
부정하는 쪽에서는 아무리 그래도
10만 명 중인건 좀 과한게 아니냐고
보고
[음악]
있답니다 홍무지 주원장은 황태자
장남을 제외한 남은 아들들을 모두
지방의 왕으로 임명한 후 파견했다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황태자였던 장남
주표 아버지 홍무제 주전보다는
주표는 아버지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대요 홍무제 주원장은
유교적 원칙에 따라 다른 형제들이
아닌 적수인 주표의 아들 주윤문 황태
손으로 임명했습니다 1398년 홍무제
주원장이 죽고 황태손 주윤문이 2대
황제 건문제 지기였습니다 그러나
건문제의 나이가 이재 개우 20대
초반이었고 지방 곳곳에는 왕으로
임명된 삼촌들이 25명이나 있었습니다
콜 때리는 거죠 건문제는 어떻게든
삼촌들의 힘을 약화시키고 각 지방
제왕들의 영지를 삭감하고 병력을
해체시키는 삭번 정책을 실시합니다
그런데 이게 오히려 삼촌들을 자극했고
삼촌들이 매우 분노해 있고 특히
분노했던 사람이 연왕
주체였던 홍무제 주원장의 넷째 아들로
연왕의 연은 베이징을 가리킵니다
베이징은 한때 원나라의 수도였으며
원나라는 멸망했지만 아직 몽골 총알에
남아 있던 몽골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아직 몽골은 위협
적이었고 또 연왕 주체는 그들을
막아내야 했기에 그만큼 많은 병력들을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연왕 주체
밑으로 한때 원나라에서 일했다가 미처
골로 돌아가지 못하고 주체에 부하가된
다민족 인재들이 많았어요 연왕 주체의
힘이 다른 왕들에 비해 가장
강력했으나 조카 건문제가 왕들을
하나둘 제거하니 가만히 있을 수 없던
연왕 주체는 1399년 황제 주변에
간신들을 제거하고 황제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연왕 주체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3년간에 내전 그때
1402년 수도 남경을 함락시키다
연왕 주체의 반란을 정난의 변이라고
하며 연왕 주체는 3대 황제 영락제를
등극합니다 초화 건문제는 어떻게
됐을까요 아무도 모릅니다 영락제는
조카 건문제의 시신도 혹은 아주 작은
흔적도 발견하지 못하고 조카 건문제는
갑자기 실종됩니다 건문제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은
중국사의 미스테리 J 이와같은 3대
황제로 등극한 영락제는 명나라 통틀어
최대의 정복군 주였는데요 4부에서
오겠습니다 그럼 역서 돋보이 있습니다
저희 역서 돋보기가 멤버십 가입을
시작했습니다 멤버십 가입을 해 주신
분들 덕분에 영상 제작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상 재미있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