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건국 후 황제 즉위식에 동참 하지 않은 조선 정부가 겪은 비극, 청나라의 역사 총정리 몰아보기 통합본 2부

역사돋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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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의 역사 총정리 몰아보기 통합본 2부
그럼 역사돋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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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역사 돋보기입니다 유목
민족사 청나라의 역사 부입니다
1626년 누루 아츠의 여덟 번째
아들 홍타이지가 팔기의 다른 기주를
호쇼이 보일러를 제치고 본인만의 독재
권력을 구축한 뒤 후금의 2대의
황제로 등극했습니다 팔기 중 두기를
직할로 삼았던 아버지 누루 아치보
홍타이지는 한 개 더 많은 세기를
직할로 삼았죠 안정적인 독재 권력을
다진 홍타이지는 이제 다시 명나라
전선에 집중하기로 했는데 아버지 누루
아치가 영원성에 싸우다 졌죠 홍 지는
조금 더 신중해지기 합니다 명나라와
싸우기 전에 후금의 여진족 양 옆으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존재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몽골과 조선이었다
몽골과 조선에 대한 결말을 맺지 않은
채 명나라와 싸움에 전념할 수가
없었습니다 먼저 홍타이지가 손을 본
건
조선이었다 joh 광해군이 쫓겨난
뒤로 집권한 서인 정권이 여진족의
후금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1627년 홍타이지는
아민을 조선에 보내 조선을 침략하게
합니다이 전 굉 정묘호란 있데요
아민의 후금군은 단 2개월 만에
황해도까지 내려가고 조선 조정을
압박해 강화 협상을 맺도록 합니다
양측이 강화를 체결해 아민의 후금
군대가 철병 아는 대신 후금과 조선의
형제국 되며 처음에 후금은 조선에게
같이 명나라를 칠 것을 요구했으나
조선 정부가 그건 참마 안 된다고
해서 조선은 명나라를 적대하지 않돼
명나라를 도와주지도 않겠다는 내용으로
합의를 봅니다 강화를 맺는 과정에서
예전에 사루 전투에서 항복했던
강홍립이 조선으로 돌아와 중재를 많이
해줍니다 정묘호란 이후 고정
홍타이지는 아버지 누루 아치가 끝내지
못한 영원성을 쳐들어갔다 이번에도
원숭환의 수성전 막혀 영원성을
함락시키지
못했습니다 조선과의 문제를 해결한
홍타이지는 이제 몽골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몽골의
대한은 링단
칸이었다 역사 시리즈를 정주행하는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잠깐 원나라 이후
몽골의 역사를 개관해 보겠습니다
원나라는 중국에서 쫓겨 뒤로 부건이
이름으로 짧게 이어졌지만 예수대
칸부터이 쿠빌라이 칸 기 직기가
끊기면서 황제직을 포기 다시
몽골이라는 이름으로 돌아갑니다 원래
몽골의 대한은 징기스칸의 후회들
그러니까 보르지기트 부족 출신들을
습해 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오이라트
부족이 부상을 하더니 오이라트 출신의
에센 타이 시가 몽골의 대한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몽골 사회를
주도했으나 에센 타이 시가 직접
몽골의 대칸으로 등극하자 이에
보르지기트 부족들이 똘똘 뭉쳐 에센
칸을 몰아 내고 다얀칸 다시
보르지기트 대칸 직을 사수했다 아칸은
통일한 몽골 초원을 조직적으로
다스리고자 좌익 세계 우익 세계 총
여섯 개의 만호로 나누고 각 만호장
자신의 아들로 임명해 다스렸습니다
그러니까 대칸이 가장 정성에 있고 그
아래로 여섯 개의 만호장이 있는
건데요 여섯 개 중에서 호보트 귀화성
만호장이었던 알탄칸이 다시금 그
대한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본인이 몽골
사회를 주도하려고 했으나 알타 사후
몽골 은 다시 쇠락하여이를 그나마
회복시켜 놓은 대칸이 링단
kan이었습니다 링단 그래는 대칸이
중앙집권화를 위해 여러 개혁들을
펼치고 명나라와 교류를 활성화하는 등
노력을 펼쳤습니다 이미 몽골 종
내부에서는 좌익 세 만호장 우익 세
만호장 그이 친 링단 칸이야 반 링단
칸이라 두고 경쟁을 하고 있었고 그
외 몽골의 타 부족들도 보르지기트
부족 대칸의 등을 돌리는 등 링단
칸도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나마
링단 는 자신에게 우호적인 우익 새
만호장 힘을 합치고 수도를 동몽골
쪽으로 옮기는데 이렇게 몽골의
동쪽으로 오면은 만주와 가까워지기
때문에 후금과 맞닥 때리게 됩니다
링단 그은 후금과 싸웠고 몽골내 반
링단 cons 부족들은 또 후금 쪽에
붙습니다 이렇게 유목 초원 지대에서
다이나믹하고 복잡한 전투가 이어지던
중
1629년에이 아시아의 대기근이
일어났었습니다 후금의 여진족들이
심각한 식량 내에 시달렸습니다 싸움은
고사하고 당장 오늘 살아남기도 힘든
상황이었죠 홍타이지는 당장에 영원성을
뚫고 만리 장선 이나무로 들어가는
것보다 식량 확보를 위해 원숭환
모르의 몽골 초원을 경유에 크게
돌아서이 만리장성 내부로 들어갔습니다
1629년 10월경 홍타이지의
군사들은 말리장성 새끼를 찾아내
들어왔으며 무려 베이징 코앞까지
진격하는데 너무나도 당황한 원숭환은
부랴부랴 정예병 몇 천 정도 차출해서
베이징으로가 홍타이지의 공격을
막아내기 막아냅니다 홍타이지 몽골
초원을 크게 우에서 들어온 거라 이
보급선의 문제가 있었고 아직 링단
칸의 몽골 부족들도 있었으며 이미
충분한 약탈을 해 놓은 상태여서 더
큰 싸움을 일으키지 않고 돌아갔던
거죠 그러나 홍타이지의 후금군이
베이진 코앞까지 오는 동안 원숭환이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가
원숭환의 공적을 질투하고 벼르던
명나라 신하들이 원숭환 명나라 황제를
이간질 했고 결정적으로 홍타이지
쪽에서 사실 우리가 원숭환 그
내통하고 있었다는 거짓 정보를 흘리자
1630년 명나라 황제 숭정제 는
명나라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원숭환은
처형시키는 아무리 해도 이길 수
없었던 원숭환이 제거되자 홍타이지는
이제 몽골 쪽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몽골의 링단 그과 후금의 홍타이지가
격렬하게 싸웠으나 링단 그래는 몽골내
친 후금 부족들과 싸우는게 쉽지
않았고
1634년 홍타이지는 몽골의 수도였던
차하르 점령합니다 링단 그는 오르도스
도주하던 중 병사하고 말았고
1635년 링단 그래의 가족들은 홍
타이즈에 항복하며 기준합니다
[음악]
이로써 몽골의 대화는 끝이 났고 한때
전설이었던 징기스칸의 후의 그
가족들이 지금 홍타이지 게로 귀순을
하는 거잖아요 이제 홍타이지의 후금은
여진 족만이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홍타이지는 유목민족 전체를 아우르는
대칸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금나라는이
여진 족만이 지칭하는 어감이 있기에
홍타이지는 이제 여진족이 아닌 그들의
민족을 만주족이 부르고 1636년
금나라 의 국호도 청나라로 바꿉니다
그들 발음대로 다이칭 구루이
홍타이지가 청나라의 황제로 새로
지휘실 가지자 홍타이지는 용골대
마부대 조선의 사신으로 보내서 조선
정부도 홍타이지의 황제 등극에
동참하라고 요구해 옵니다 그러나
조선정부 입장은 황제는 명나라 황제
한 명이라 동참할 수 없으며 용골대
가져온 공식 서한 역시 조선의 관례상
받아들일 수 없다며 홍타이지의 편지를
아예 인조에게 올리지도 않습니다
화가난 용골대는 인조를 보지도 은 채
그냥 돌아가고 이들이 돌아가자 인조는
척화 선언 즉 앞으로 청나라를
배척하고 관계를 끊게하는 선언을
합니다 분노한 홍타이지는 용골대게
3만의 병력을 주어 조선을 재침게
하니 바로 병자 호환입니다 단 2주
만에 한양까지 함락되었고 인조와
조정은 남한산성에 들어가 항전하다
1637년 홍타이지가 직접 조선으로
친정을 왔고 남한산성에서 눈물겨운
47일 항정 끝에 인조는 항복하기를
결정 홍 타이자 앞에서 39 고드래
아는 굴욕적인 항복 식을 거치죠 병자
호환으로 청나라는 조선을 완벽하게
굴복시켜 놓습니다 홍타이지는이 팔기
몽골과 팔기 한군을 또 따로
조직하기도 합니다 팔기 몽골은 말
그대로 몽골로 구성된 특수부대이 팔기
한군은 중국인 한족으로 구상된 특수
부대였습니다 팔기 몽골과 팔기 한군은
기본적으로 몽골 출신과 한인
출신이었지만이 홍타이지 때 공식적인
기구는 구성원의 출신이 훨씬 다양하고
복잡했습니다 만주족 몽골족 한족이
뒤섞여 있었을뿐 아니라 조선인 위구루
무슬림 티베트 인까지 편성되어 있었죠
하지만 만주족이 중국인 한 족에게
월등이 떨어지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바로 행정력 있니다 실현하자 오나
역사적으로 거대한 국가를 운영해왔던
중국인 한족들의 행정력을 무시할 수는
없어서이 홍타이지가 한족들의 관료로
등용하기 합니다 이렇게 보면
홍타이지가 한족들을 우대한 것처럼
보이죠 어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홍타이지가 타민 족들에게 관대하기
했지만 한 족들에 대해서 확실히
박혔습니다 누루하치 때 만주족과
한족을 함께 살게하는 만한 동거
정책을 실시했다가 극심한 분란으로
혼란스러웠어요 홍타이지는요 동네
한족과 만주족의 거주 지역을 철저하게
분리했고 팔기군 내에서 만주족과
한족은 엄청난 차별이 있었습니다 병자
오한 이후 홍 타이즈는 몇 년간
만리장성 일때를 대규모로 약탈하고
만리장성 입건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명
나라도 홍타이지의 청나라 군을
어떻게든 막아야 했는데 하필
1639년 명나라 내부에서 농민
반란이 연이어 터져 나옵니다 명나라
황제 숭정제는 홍 를 통해 농민
반란을 강경하게 진입했는데 이후
숭정제는 홍순주 요동 방면으로 보내
홍타이지의 청나라를 맡게 했습니다
1642년 홍승주 13만 대군으로
만리장성 바로 앞에이 송산과 금주에
싸웠으나 13만 중 6만 가량의
병사를 잃습니다이 전투가 송산
전투입니다 이로써 명나라는 사실상
모든 전력을 잃어버리게 됐죠 홍수주의
홍타이지 투항하다 이제 말리 장석만
뚫으면 되는데 하필 홍타이지가 최후의
일격을 남겨놓고 1643년 사망합니다
홍타이지 사후 유력한 후계는
홍타이지의 장남 호가와 홍타이지의
동생 도르곤이 있습니다 도르곤의 힘이
조금 더 셌는데이 다른 부족장들이
괜한 내분으로 청나라의 국력이
약해져서 안 된다며 둘 모두 황제로
추대하기 않고 홍타이지의 아홉 번째
아들을 3대 황제로 옹립하다 도르곤이
섭정을 맞는다는 조건으로 홍타이지의
아홉 번째 아들이 다섯 살의 나이로
3대 황제 순치제 등극했습니다 아무리
황제가 어려도 도르곤은 유능한 섭정
였고 충분히 명나라와 마지막 전쟁을
담당할 수 있는 역량이 있었죠 그런데
예상 외에 유능한 인재가 명나라 쪽에
있었습니다 만리장성 동쪽 끝 산해관을
지키던 오삼계 있죠 오삼계가이
산해관을 우주 방어하고 나서니
오삼계의 산회 3을 뚫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1644년 또
예상 외의 사건이 터지니 명나라에서
다시 일어난 농민 반란 이자성의 난이
성공하여 명나라의 수도 작 자금성을
함락하고 명나라 왕제 숭정제가 자금성
뒷산에 목을매 죽으면서 명나라가
멸망하고 만 겁니다이 이후 이야기는
어떻게
[음악]
될까요 오삼계는 고향 자체가 요하
지역이었기이 지역에 대한 이해도가
빠듯했습니다 젊은 나이부터 무장의
길을 걸으며 1641년 42년
명나라의 마지막 전력을 퍼부었지만
병력의 절반을 잃었던 송산 전투에서
그나마 삼기가 지휘하는 부대 만에
탈출하여 회관으로 들어가면서이 마지막
항전을 할 수가 있 있었습니다 삼계도
나가서 싸운다면 청나라 군을 상대로
이길 수 없다고 판단 산회 관에
머무르면서 오로지 방어에만 치중하기
합니다 산해관을 바다를 끼고 있기
때문에 포기하기도 힘들며 함락시키기
어려운 난공 블락이이 우주 방어만
한다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는
조건이었습니다 마지막 최종보
만리장성의 산회 3만을 남겨둔
청나라는 발을 동동 굴릴 수밖에
없었겠죠 그런데 1644년 산해관의
5 3개나이 청나라 쪽이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니 명나라
내부에서 농민반란 이자성의 난이
일어나 이자성이 베이징의 자금성을
함락하고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가 자음성 뒷산에서 목을 매달아
자결하면서 명나라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산내 관의 오 3개나
청나라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청나라는 그가 명나라를 멸망시키는
유일한 적이 본인들이나 생각했는데
내부적으로 명나라가 멸망해 버렸고
산내 간의 삼기 입장에서는 지켜야 할
자기 조국이 없어진 겁니다 그렇다고
자기 조국을 멸망시킨 장군이는
이자성을 따라 수 없잖아요 이에
자금성에 있는 이자성과 말리장성 밖에
있는 청나라의 도르곤이 동시에 오
기에게 투항을 제안해 옵니다 여러분이
삼계라면 누구를 택할 것인가요 그간
청나라가 명나라의 적이었던 건
맞습니다 그렇지만 명나라를 멸망시킨
건 이자성이 아아 청나라는 적이고
이자성은 역적이 삼기는 이자성과
역적의 길을 걸을 순 없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자금성에는 오삼계가
아끼던 애첩이 살고 있었는데 이자성이
자금성을 함락한 후 이자성의 부화가
오삼계의 애첩을 뺏었다고 해요 이후에
어찌됐든 삼기가 이자성의 투항 제한을
거절하자 이자성은 곧바로 산회 간의
오 3기부터 토벌하고 하고자 했는데요
삼계는 이자성의 군대를 막아야 했기에
청나라 도르곤게 군사 지원 요청을
합니다 청나라 도르곤은 이자성을
토벌하여 명나라의 복수를 하겠다는
명분으로 오삼계와 연합하기 하며
마침내 산해관을 무혈 입성을 합니다
그렇게 무력으로 어떻게도 무너지지
않다 산해관의 문이 이토록 쉽게 열린
거죠 이로써 청나라의 만주족은 만리
정성을 공식적으로 넘어 중국 본토
안으로 들어왔고 이때의 사건을
청나라가 사회관으로 들어왔다고 하여
입관이 용어를 사용한답니다이 입관
당시 조선의 소연 세자도이 자리에
함께 동참했습니다 이자성은 아예
청나라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우선
이자성은 베이징 입성 후 과도한
약탈로 민심의 지지를 잃어버린
상태였으며 군사적으로도 재능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습니다 병력 수도
이자성의 농민 반란군 중 제대로 싸울
수 있는 병력은 3만 정도 도르곤이
이끌고 온 청나라 군은 무려 10만이
넘었는가 청나라 53기 연합군은
이자성을 물리치고 베이징에
입성했습니다 베이징을 탈출한 이자성은
산발적으로 항전하는 하지만 대세를
거스릴 순 없었고 1645년
사망합니다 이렇게 청나라는 내부적으로
멸망한 명나라의 빈자리를 꿀꺽할 수가
있었죠 청나라가 쉽게 만리장성을
돌파하고 입건하여 베이징 자금성 아지
입성할 수 있었던 건 누가 모래도
삼개의 결정이 컸죠 오삼계가 이자성의
편을 들었더라면 청나라의 베이징
점령은 몇 년 더 걸렸을 겁니다
오삼계와 더불어 청나라를 도왔던
명나라 한죽 출신의 무장 대터
있었습니다 먼저 상가희 아고 역시
요동 지역 출신으로 홍타이지가 살아
있던 시절 일찌감치 청나라에 투항했다
명나라 장수가 있었습니다 다음은
경중명이라고 그 역시 상가이 함께
청나라에 투항했다 장수였습니다 상가
희가 이끌던 부대를 천조 경중명이
이끌던 부대를
천우이엔지 이와 경중명 투항을 개인의
투항이 아니라 그들이 데리고 다니는
병력 전체가 다 투항한 것이기에이
청나라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죠
청나라의 도르곤은 입관 후 청나라로
도은 명나라 출신 항장 오삼계 상가희
경중명 세 사람을 지방의 왕으로 봉해
줍니다 우선 오삼계를 귀주성 운남성의
책임지는 평서왕 삼가기를 광자로
책임지는 평화왕 경중명 복건성의
담당하는 정남으로 봉했다 세 개의
번을 설치하고 세 사람을 각각 번들의
왕으로 봉해 준는
[음악]
거죠 그런데 평서왕 오삼계 평남
상가희 정남환 경중명 새 왕들이
봉해진 번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전부
남부 지방이라는 거죠 왜 청나라는 새
왕들을 남부 지방에 집중시킨 것일까요
남부 지방에서 명나라가 부활했기
때문입니다 중국 왕조들이 북박
민족에게 북부 지역을 빼앗기면 남부
지역에서 황족 일부들이 다시 왕조를
개장하는 일이야 역사적으로 늘
반복되는 일이랍니다
명나라도자기
수도가 남쪽의 난징 즉 남경이
있습니다 원래 명나라의 건국자 홍무제
주원장이 첫 명나라의 수도로 삼은
곳은 난징 이었죠 3대황제 영락제 때
베이징으로 선도하였습니다 난징은
꾸준히 제 2해 수도였고이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가 자결하여
명나라가 멸망하자 자 난징에서 명나라
지식인들과 황족들이 새로운 명나라
황제를 추대하며 명나라의 부활을
알렸고이 명나라를 를 남명이 구분하기
명나라의 완전한 초보를 위해 남부
지방으로 떠났지만이 남명의 황제를
죽여도 다른 곳에서 다른 한족들이
다른 명나라 황족을 추대하면서 계속
명나라의 회복을 부르짖었습니다 여기
진압하면 저기서 다시 튀어나오고 저기
진압하면 또 다른 쪽에서 튀어나오고
이런 식이었죠 언제까지 청나라가
명나라 토벌에는 전념할 수가 없고 어
또 남부 지방 한족들의 민심을
생각했을 때 청나라가 직접 토벌하기
보다는 3번의 왕으로 임명한 평서왕
삼계 평남 상가희 정남아 경중명이
토벌하는게 그러니까 같은 한 족이
토벌하는게 더 낫겠다 싶어서 명나라
부흥 세력 견제라고 53개 상가의
경중명 남부 지방의 번왕으로 임명했던
겁니다 명나라 부흥 운동에서 크게
기여한 해상 세력도 있었습니다 명나라
또 한 명의 해적 왕인데 바로 정성공
있니다 명나라의 해적왕 하면 유명한
해적왕이 명나라 중기때 외구 거느렸던
중국인 왕직 있니다 그러나 왕직
결국엔 체포되어 처형되고 통제되지
않은 외구의 명나라해진 를 털어
먹었지만 첫 개강이 부임하면서 외구의
소탕하고 한동안은 독립된 해상 세력이
나오지 않았으나 명나라 말기이 명나라
중앙정부의 행정 지배력이 약해진 틈을
타 다시 해상 세력에 나타납니다
대표적으로 정지룡 있었는데이 정지룡
명나라의 해금 정책을 피해 불법 해상
상단을 거느리면서 독립된 무장 집단을
보유하던 해적 겸 상인이었던 정지용은
명나라와 일본 사이 바다를 누비면서
일본에서 만난 일본인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바로 정성공이
있습니다 정성공은 중국이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에서 태어난 혼혈인
거죠 정성공 어머니의 고향 히라도 어
바다에 인접한 해양 도시로 일본
에도막부는 나중에 가서 나가사키로
제안은 하지만 원래는 나가사키와
더불어 히라도 아지 유일하게
에도막부가 네덜란드 서양 상인들과
교역을 허락한 곳이었습니다 이러니
자연 세의 정성공 어린 시절부터 해상
세력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이때 때마침
명나라가 멸망하고 남부 지방에서
권기한 남명 정권이 청나라와 대항하기
위해 강력한 해상 군벌을 소유한이
정시 반에게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정지룡 정성공 부자는 그들의 해상
군벌로 명나라 부흥을 지원해 주었는데
철저한 사업가적 마인드였다 정지룡 그
청나라가 뜨는 해로 인식하여 청나라에
붙기로 합니다 하지만 아들 정성공은
아버지의 명나라 배신을 동의하지
못합니다 정작 아버지 정지룡 토사
구행 당하고 아들 정성공은 청나라의
투항 재앙과 회의로 거부하고 명나라
부흥을 지원하며 청나라와 끝까지
싸웁니다 하지만 바다에서 선거를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당장
명나라가 해상을 봉쇄해 버리면 정성공
이게 치명적이었던 육지에서 다른
남명의 군사들은 기대에 전혀 못
미쳤고 중국 본토 남부 지방에서는이
청나라 서와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정성공은 차라리 근처 가까운 섬으로
넘어가 그곳을 근거지로 삼으며
청나라와 싸우기로 하는데요 정성공이
선택한 섬이 바로 지금의 대만이 있죠
자 한편 청나라 황실 족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청나라에 어린 순치제의
대신하여 삼촌 도르곤이 섭정을 맡고
있었는데 도르곤의 정적이 순치제의
큰형
호호고시텔 과 8기 호쇼이 보일러는
내분 일으키지 말라고 합의를 번거
있지만 자금성을 점령한 후 도르곤이
먼저 선수로 쳐서 코어를 무고하게
탄핵시키고 호원은 옥중에서 사망합니다
하지만 몇 년 안 가서 도르곤
1650년 사망했고 이때부터 순치제가
친정을 시작했는데요 순치제 때 8기
여덟 기 중에네기를 황제 직속으로
삼았고 한 10년 정도 통치하지
1661년 2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천연두에 걸려 사망합니다 그의 젊은
죽음이 불쌍하긴 하지만 순치제 4후
청나라 4대 황제 증 극한 순치제의
아들이 중국사에 나올까 말까 한
역대급
명분이었다 강희재 있죠 1661년
청나라의 3대 황제 순치제가
2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으면서
그의 세 번째 아들이 여덟살의 나이로
등극하는데 그가 바로 4대 황제
강희재 있니다이 여덟 살은 너무
어리잖아요 그래서 팔기를 여덟 기
가운데 대한 황제의 직속 팔기 네기가
아닌 나머지 네기의 기준들 이른바
호쇼이 버일러 그이 보정 대신이
되어네 명의 보정 대신이 집단 섭정
체재를 수립합니다
그러나네 명의 보정 대신들 중 양황기
기주 오보이가 다른 세 명을 제거하고
독재 권력을 누렸습니다 엄연이 섭정
임에도 황제가 어리다는 이후로 보이는
황제보다 더한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렇게 한 8년 정도 오보이의 세상이
이어졌는데 이젠 16살 사춘기
10대일 접어든 강희제는 앞가림 사리
분별을 할 줄 아는 나이가 되었고
오보이의 오만 방자함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강희제는 이제
사춘기 소년인 판면 보인는 8년이나
최고 권력을 누린 관력 있는 노련한
정치인 그러나 강의자는 성립부터
달랐습니다 겨우 16살에 불과했지만
강희제는 1669년 기습적으로 군사로
동원해 오보이를 체포했습니다 강희제는
오보이를 죽이려고 했지만 오보이의 몸
안에 있는 상처를 보여주면서이 상처는
강희재 다 더 어린 나이부터 누루하치
홍타이지의 따라다니며 전장에서 입은
상처라고 하자 마음 약한 강희제는
오보이를 죽이진 않해 그를
구금시설 sign 있고 강희제는
16살이라는 나이에 친정을 시작합니다
강희재의 떡잎은 이게 끝이 아니었
습니다 강희제 치세 초반에는 아직
청나라가 중국 전역을 완전히
지배했다고 보기 힘들었습니다 명나라
후신 국인 남명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남부지방에는 청나라에 반발하는
한족들의 세력이 있었고 대만에는
정성공이 명나라 복수를 외치고 있었죠
16살의 젊은 소년 황제는 중국
전역에 대한 완전한 지배를 꿈꾸며
개혁과 원정을 단행합니다
[음악]
청나라는 입권 후 중북부 지방까지
직접 다스리려고 했지만 여전히 반
만주족 장서가 심하고 남명 정권
들어섰던 남부 지방에는 청나라에
항복했던 항장 삼개 상가의 경중명
각각 귀주성 운남성의 책임지는 평소
왕으로 광자로 책임지는 평남 아으로
복건성의 담당하는 정남으로 봉했다
직할지 번을 맡기고 그 번의 왕으로
임명하여 한족이 직접 한족을 진압하고
다스림으로써 한족들의 불만을
최소화하려고 했던 거죠 오보이 제거
후 친정을 시작한 강희제는 황제의
완전한 중국 지배를 원한다며 3번을
폐지하기로 합니다 당연히 3번에서
반발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겠죠 평남
상가이 자신은 이제 늙었다며
강희재에게 평남의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본인은 고향인 요동으로
돌아가겠다는 허락을 받습니다 강희제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허용하겠다
세습은 안 된다면 반대합니다 그러나
정남향의 경우 이미 세습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그건 강희제가 친정을
시작하기 전이었고 자신이 친정을 하고
부어는 번왕들은 세습을 절대 허용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내보인 거죠
자신의 입지가 불안해진 평서왕 삼계는
167 13년 오랑게 청나라를
토벌하고 명나라를 부활시키겠다는 결국
반란을 일으켰고 가뜩이나 청나라의
지배에 불만이 많던 남부 지역 한족들
전부 53개의 반란에 호응하다 청나라
군이 53개의 반란군을 전혀 진압하지
못하고 53개의 반란군은 호남
호북성지 진출하는데 이대로 가다가
남무 지방 전체를 빼앗길 것 같았던
강희제는 3번 폐지을 처리하기로
합니다 강희재의 사태 수습이 무색하게
경중명 1 손자였던 정남환 경정충
53개의 반란에 동참하기로 하죠
강희제는 어떻게든 평남 상가이 만큼은
포섭하려고 했고 강희재의 가진 회유에
3번의 왕들 중 상가이 청나라 편을
지기로 합니다 그러나 이에 불만을
품은 상가이 아들 상지 신이 쿠데타를
일으켜 아버지 상가를 내쫓고 본인이
평남 권력을 독재지 한 뒤 오삼계의
반란에 동참하기로 하죠이 사건이
3번에 나입니다 강희제는 사령관
도해를 감수성으로 보내 53개의
북진을 막는 한편 지리적으로 그나마
가까웠던 정나한 경정충 압박하고
회유하여 3번의 난에서 이탈시켜 경증
충이 3번의 난에서 나오자 후달렸던
상지 신도 항복해 버렸습니다 습니다
반란의 규모가 확 줄어들자 오삼계의
반란은 지지부진하게 장기전으로
이루어졌고 오삼계 역시 늙었기
오삼계가 죽고는 그의 손자가 반란을
이어 나갔으나 53개 4후 반란군의
사기가 급락하고 지위 통계가 무너지자
1681년 완전히 진압되었으나 아는
3번의 난에 진압하면서 군대가 남부
지방까지 진출하였고 남부 지방에 대한
중앙 정보의 통제력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그리고 강희제는 번을
완전히
해체하였다 다스리던 병력들을 모두
와해시킨 뒤 기군 혹은 노경으로
분산시켜 놓았습니다 노경이 청나라에
귀순하여 중국 정복에 동참했던 한족
구성의 부대로 강희재 이전 순치제 때
섭정였던 도르곤이 도저히 8기의
규모로는 그 넓은 중국 당과 그 많은
중국에는 다스릴 수가 없어서 8기와
함께 중국 지방 전역을 다스리는
세력으로 만들어 놓은
[음악]
부대였습니다 남부 지방까지 청나라의
지배력을 더욱 공고해 한 청나라의
다음 목표는 대만이 있습니다 대만에는
청나라를 호시 노리던 정성공이 있었죠
해적기 해상 상단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정성공은 청나라의 중국 입관
후 명나라 부흥운동을 주도하며
청나라와 싸웠는데 오로지 정성공의
힘으로 중국 본토에서 싸우기 어려웠던
정성공은 대만으로 넘어가 대만을
기지로 삼고 청나라 공격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청나라의 3대 왕제
순치제가 죽고 4대 왕제 강의자가
등극할 무렵 정성공이 대만으로
넘어갔습니다 당시 대만은 네덜란드가
식민지를 삼고 있었는데요 정성공의
해상 세력은 대만의 현지인과 연합하여
네덜란드를 쫓아내고 정성공이 완전히
대만에 정착해 동령 왕국을 세우고
본인이 왕으로 증거합니다 정성공이
대만으로 넘어오면서 중국 문명의
대만으로 유입됐고 대만도 중화권에
서서히 편입되기 시작했던 겁니다 물론
정성공이 대만의 동영 왕국을 세우고
동영 왕국을 통치하는 과정에서 대만
현지인들과 충돌이 많았고 현지인들에
탄압했던 어두운 역사도 있고요 하지만
정성공은 동영 왕구 세우가 얼마
아니어 1662년 말라리아로 사망했고
그의 아들 정경이 동명왕의 2대 왕이
되어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나라
타도를 준비합니다 청나라는 그간
정성공의 대만으로 넘어가자마자
정성공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중국
본토 해안가에 거주하는 민간인들을
육지쪽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해안을
봉수 하는 천계령 시행하고 있던
도중이었는데 진압한 강희제는 그저 천
기력만 대만 정시 일과의 공격을
막기만 하면 의미가 없다며 대만
정벌을 단행했습니다 더군다나 동네왕의
정경은 3번의 난 당시 반란군을
지원해 주기도 했거든요 3번의 난이
진압될 무렵 정경도 죽었고 그의 아들
정극 장이 동영 왕국의 대왕이
되었으나 정극 장의 반대 세력들이
정극 장을 죽이고 왕족 정극 상을
허수아비로 세웠는데요 강희재
입장에서는 동영 왕국에서 내분이
일어난이 틈이 대만을 정벌할 절호의
기회였죠 당시 청나라에 있는 유능한
수근 제독이 있었는데 바로 실랑이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랑은 그
정실 가의 세력 출신이었습니다 시랑은
정성공의 아버지 정지룡 때부터 바다로
눕혔다 수군 장소였는데 정성공이
대만을 넘어가고 대만에서 정성호가
싸움이 번졌고 이싸움 싸움 때문에
시랑은 확김에 첫날에 투항해
버렸습니다 1683년 강희제는 실랑
제독에게 군남 23척 이만 병사를
주고 대만 정보를 지시했습니다 대만
앞바다에 펑후 제도라고 여러 섬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실랑
제독의 청나라 군과 정시 동영 왕국의
수군이 22일 간의 펑구 회전을 치룬
결과 동영 왕국 수군 159기
격침하는 청나라 군의 대승으로
끝이났습니다 평우 제도에 투입된 동영
왕국의 수근은 동영 왕국의 수근의
전력이었던 청나라 군을 막을 병력이
없던 동 국의 구왕 정극상이
항복하면서 강희제는 대만까지
점령합니다 대만은 중국 역사상 최초로
중국 본토 왕조의 직할 영토로 편입된
것인데요 이제 청나라는 중국 전역을
지배할뿐만 아니라 이제껏 중국인들이
지배하지 못하는 것들까지 지배를 하는
겁니다 드디어 중국 통일로 완수한
강희재 하지만이 정도로 후대인들이
강희재 강희제를 외치는게 아닙니다
강희제는 북방으로 외정 떠나 황제였던
중국의 북방 적들로 몽골계 유목민족
혹은 서방의 투르크계 유무 민족들이
있었는데 10 7세기 경에는 새로운
북방의 적이 나타납니다 바로 만주
부근에서 러시아가 나타나는데요
러시아는 17세기부터 아시아로
진출하겠다서 매우 적극적으로
시베리아를 개척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계속 시베리아를 개척하다 ka 아시아
대륙의 동쪽끝 만주까지 다 다른 거죠
러시아와 청나라가 처음으로 만주
부근에서 충돌한 시점이 3대황제
순치제 시절이었습니다 순치제는
러시아군과 싸우기 위해 군대를
조직하는데 조선군도 참전했죠
1954년과 1658년 두 차례에
걸쳐 이른바 나선 정벌이 아는
조선군이 청나라군 연합해 러시아와
전투를 치른 적이 있었습니다 두 번
모두 조청 연합군이 승리하였네
송화강의 싸웠던 1차 전투 당시 조청
연합군은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나오지
않았고 흑룡강에서 싸웠던 2차 전투
때는 조선군은 일곱명 전사해 청나라
군은 100명 정도가 전사했다고 하고
러시아군은 무려 800명을 잃었습니다
당시 조성군 조총병 그이 어마어마하게
활약을 했고 러시아군이 조성군
조총병의 사격수를 매우 두려워 했다죠
다만 피해 규모에서 알 수 있듯
대규모 전투는 아니었고 러시아는 계속
만주로 진 하려고 했습니다 심지어
만주 현집 부족들 중 일부을 러시아
쪽으로 붙기도 했는데 강희제 그간
러시아를 주시하고 있었고 대만을
정보라고는 곧바로 러시아 원정의
박차를 가합니다 강희제는 러시아와
어떻게 끝을 낼까요 그럼 역사 돋보이
있습니다 저희 역사 돋보기가 멤버십
가입을 시작했습니다 멤버십 가입을 해
주신 분들 덕분에 영상 제작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상 재미있으셨다면 구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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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드리겠습니다 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