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삼국지에서 각광 받지 못하고 저평가된 책사들의 치열한 전략,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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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서 저평가된 책사들
그럼 역사돋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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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역사도 포기입니다 삼국지
좋아하시죠 삼국지는 워낙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다 보니 사람들마다
저마다의 최애 캐릭터를 꼽을 수
있어서 유독 대중들에 많은 관심을
받습니다 장수들의 용감 무쌍한
활약상과 더불어 책사들의 전략 전술들
연이의 재미를 살리는 요소 중 하나죠
그러다 보니 책사들의 대한 잘못된
인식들 쌓이곤 합니다 마치 제갈량처럼
말이죠 전투 전면에 드러나진 않고
전투 후방에서 열일하여 승리에
기여하는 인물들의 노력이 큰 각광을
받지 못하곤 하는데요 이번 영상에선
한국 주에서 저평가된 책사들은 몇명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위나라의 한
호입니다 처음 들어보신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한호는 본디 원술을
모셨으나 원술과 조조가 한창 싸우던
중 하우돈 회유와 천거로 원술을
배신하고 조조 휘어로 들어갔습니다
조조는 한우를 얻고는 훌륭한 인재를
얻었다며 기뻐했다고 하죠 한호의 네임
자체는 유명하진 않지만 한호가 건의한
한 아이디어가 조조가 북방을 재패하는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아주 크게
기여했습니다 바로 둔전제를 건의한
것인데요 삼국지 세계관이 탄생한
배경은 무능한 후한 정보로 인해 각종
밀란과 반란들이 연이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전국적으로 호족과 군벌들이
걸기 있던 사회의 혼란 상에서
기인했다 황건적의 난을 비롯한 각종
밀란 부패한 정권의 과도한 징세 호종
및 군벌들 간의 각축전 그리고 기근
등의 자연 재회로 땅은 황폐화되어
있었습니다 기근이 심각해지면 군벌들
전쟁에 임하기 힘들어집니다 군량미가
없잖아요 그러던 196년 한호는
조조에게 둔전제를 건의했습니다 둔전제
는 전투를 목적으로 보급을 확보하는
토지 제도를 말합니다 후방에서 보급을
준비해서 전선까지 보내는 것이 워낙
큰 일이었기 때문에 더구나나 조조의
세력권이 커지면 보급선을 길어지기
때문에 여관 골치 아픈게 아니었는데요
둔 전재는 전선에서 군인들이 농사를
통해 군량미를 확보한다는 개념입니다
그리고 군인들은 전투를 위한 군량미뿐
아니라 생산량의 일부분을 마치
월급처럼 지급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남자가 군대를가 버리면 농사지을
사람이 사라지기 때문에 가족의 생계
부양이 힘들어지기도 하겠죠 그런데
군인으로 징병 되어서도 농사를 지어
수확량을 걷어 들이면 그걸 가족들한테
보낼 수도 있으니 증병 제도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가 있었습니다
둔전제 해당되는 토지는 주인 없는
땅을 경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생산량도
훨씬 더 늘릴 수 있었고요 조조는
둔전을 실시해서 얻는 이익을 군량미로
확보했습니다 전쟁에서 보급선이
길어진다는 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조조가 세력권을 넓히면 넓힐수록 어쩔
수 없이 보급선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딜레마가 있는데 이걸 둔전제를
해결할 수가 있었던 겁니다 전제는 때
처음으로 시행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옛
한 무제의 흉노 원정 때 이미
실시했었습니다 다만 그 당시에는 다른
명칭이었습니다이 둔 전제라는 명칭이
조조에 의해 정립되었습니다 사실
한호의 존재감은 미비한데 둔전제
이야기하고 싶어서 한우를 어그로 좀
끌었습니다 다음은 위나라의 가후
있니다 본뒤 동탁을 모시다가 조조에
게로 넘어간 책사서 삼국지 역사서를
편찬한 진수는 조조의 3대 책사로
수욱 순유 그리고 가후를 꼽았습니다
그 정도로 가후의 능력은 높이
평가되고 있죠 계산하는 능력만 놓고
봤을 때 가후 의 능력은 장자 방에
비견될 정도였다는 묘사도 있습니다
동탁 4후 가후는 동탁의 부하들 중
장제를 섬겼는데 장재 사후에는 장재의
조카 장수를 모셨어 장수는 조조에게
괜히 덤비다가 패배한 후 항복했던
조조가 장수의 숙모와 관통했다 사실에
장수가 분노합니다 가후의 계략에 따라
조조의 의심에서 벗어나는 가운데
군대들을 무장시켰다 가후가 정해준
날짜에 정해준 시간에 조조를 급습하니
바로 완성 전투적이 완성 전투에서
조조가 토로 가이던 전위와 아들
조항이 사망한 사건으로 유명하죠이
이후 가호에 대한 유명한 화가
있습니다 완성 전투에 복수를 하고자
조조는 장수와 전면전을 치르고
있었으나 조조군이 갑자기 퇴각을 하는
겁니다 조조군의 유인책 같다며 절대
추격하지 말라는 가후의 조언을
무시하고 장수는 퇴각하는 조조군을
추격했다 역시나 매복을 바꾸는
도주해야 만했습니다 그러더니 가후는
다시 장수에게 지금 다시 조조를
공격하면 이길 수 있다고 조언했고
정말로 가후의 말대로 조조군을
공격하고 장수가 승리를 거둔 겁니다
한번 조조군이 전투에서 승리했으니
경계가 느슨해져 있었을 것이고 또
폐조 군대가 다시 돌아와 공격하
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거라고
가오는 분석했던 거죠 그러나 끝끝내
조조를 이길 순 없었고 장수와 가후는
모두 조조에게 완전히 투항하지 관도
대전에서 조조가 원소에게 밀려
절망하고 있을 때 가후와 수능만이
조금만 버티면 이길 수 있다고 조조로
설득했고 적벽대전 직전에는 절대
손권을 자극하지 말고 차라리 손권에게
여러 혜택을 주어 손권을 조조 편으로
만들려는 조언을 했으며 마초의 서량
군부 조조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을 때도
마초와 마초의 숙부 한수를 이간질하고
조언한 것도 가후 있죠 그리고 조조가
후계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 가후가
조조에게 원소와 유표를 잊지 말라고
조언하기도 했죠 삼국지의 결말까지
아은 시점에서 본다면 가후의 거의
모든 개척과 추측은 다 맞아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가후는 위나라에서
정치적으로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었는데이는 가후가 절대 정치
투쟁에는 끼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위나라의 진군합니다
진군은 위나라의 건국자 조비가
사망했을 당시에 고명
대신이었을텐데
실세로 군림하게 됩니다 조비 사망
당시 고명 대신으로네 명이 있었는데
조진 조휴 사마이 그리고 진군이 있죠
조비사 후 조회가 위나라의 2대
황제가 되었고 진구는 위나라 내정을
총괄했습니다 진구는 중국 정치사에서
대단히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위나라를
건국했다 조비는 자신이 멸망시킨 한
나라의 몰락 원인을 의식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니다 쵸비는 한나라 몰락
원인이 외척과 환관의 권력 투쟁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외척과 환관의
발로를 극도로
억제시켰다 호족들의 힘이 너무
강력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삼국지
세계관이 만들어졌으니 그래서 진군이
발휘한 정책이 구품관인법이라는 관리
의용 제도였고 황제가 중정이 불리는
스카우터들은 전국에 파견합니다 그리고
중정이 각 지방의 유력 인사들을 직접
평가하거나 지방관들로부터 추천을 받아
특정 인재의 능력을 9등급으로
분류하죠 하지만 시 시간이 지나며
중정에 여러 로비이다 결국은 지방
호족들이 로비를 통해 중앙정부로 진출
했죠 지방 호족은 억제 되기는 커녕
오히려 중앙 정부에 진출하여 지방의
호족들이 중앙 정치인들과 하나가 되는
현성이 발생합니다 지방 호족들의 독점
점 인사 등용제 점차 심화되다 신분과
특권을 세습할 수 있는 귀족이 되었고
폐쇄적인 문벌이 형성되며 문벌 귀족을
만들었죠 구품관인법 혹은 구품 중정제
과거 제도가 나오게 될 때까지
중국사를 관통하며 계속 시행되었고
그만큼 문벌 귀족의 형성은 확고해졌고
문벌 귀족이 사라지게 되는 건 과거
제도가 강화되는 송나라 때나
되어서입니다 다음은 촉한의 법정입니다
소설 연의에서는 제갈량을 치켜세워
주려고 하다 보니까 실제 역사에서
타인의 활약상을 제갈량의 활력성
바꾸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정군산 전투가 있는데요 유비가 익주를
차지하자 조조가 유비를 공격하기 위해
서정을 단행했고 그렇게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한중 지역에서 붙은 전투가
정군산 전투조 소설에서는 제갈량이
유비의 책사로 정군산 전투를
설계하는데 실제로는 제갈량이 아니라
법정의 작품이었습니다 유비가 이주를
차지한 뒤로 유비와 제갈량이 동시에
전선에 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1인자와 2인자가 동시에 밖으로 나가
버리면 큰일 나잖아요 누구 한 명이
나가면 다른 한 명은 뒤에서 반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정군산 전주
당시에는 법정이 유비 옆에 있었죠
법정은 본 뒤 익주자사 유장을 모시던
유장의 사람이었으나 유장이 무능함에
실망하고 유비가 익주로 오기를 강하게
게 원하고 있었습니다 유배가 익주로
들어오도록 길을 만들어 준 사람도
법정이었다 정군산의 조종은 하후연의
군세를 본 법정이 지금 공격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며 황충을 보내
하후연의 부대를 격파하고 하후연을
죽이기까지 하였죠 그리고 조조가 직접
이끄는 대군의 본대가 한중 지역으로
왔는데 이미 정군산의 유비군이
장악했기 때문에 법정은 유비에게 굳이
싸우지 말고 시간 끝는 작전을
제안했습니다 끝내 보급 부족에
시달리는 조조군은 퇴각할 수밖에
없었죠 제갈량은 늘 법정이 지모와
책략을 높게 여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나라의 제갈근은
보겠습니다 제갈량의 형이죠 소설에서는
이리저리 까이는 불쌍한 형 캐릭터로
나오는데 실제로는 송근식 진영에서
알아주는
외교관이었고 속에서는 제갈량이
지나치게 미화되어 동생 그늘에 가려
그 공이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제갈근은 송군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제갈 근의
성격은 동생 재갈 양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제갈량은 냉정하고
현실적이고 하고 싶은 말은 둘려 않고
직설적으로 하는 인물인 반면 제갈
그는 사람의 눈치를 잘 살피고 말을
직설적으로 하지 않으며 최대한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리며 말을 하는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오나라의 무장이 문신이 두루두루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했다고 하는군요
한마디로 호가명 인간이었어 제갈근은
동생이 적 진영의 넘버 2인데 손권이
제갈근은 가까이 했다는 것만 봐도
그만은 손권이 제갈 그는 신임 했다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형주 지역을
두고 유비와 손권이 대립할 때 사실
양측이 서로 싸워봤자 조조의 위나라는
득되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자존심 때문에 멈출 수가
없을 때 제갈근 그 노숙이
협성해운 3군 남군 영능 무능을 갖고
손권은 다른 형주의 3군 장사 계한
강하를 갖기로 하였죠 뭐 비록 결말은
둘이 결국은 싸우게 되지만요 제갈
그는 오나라의 신화로 있으면서
오나라의 호족이 오랜 장수들로 터
제갈량과 내통하고 있는 배신자 혹은
첩자가 아니냐는 의심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송 직접 나서서
제 가은을 변호해 주었다고 하죠 그럼
역서 돋보기 있습니다 저희 역서
돋보기가 멤버십 가입을 시작했습니다
멤버십 가입을 해 주신 분들 덕분에
영상 제작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상 재밌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