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내 강사의 근대사 강좌 1강 | 서세동점(西勢東漸) - 국제정세와 조선의 패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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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단법인 우리 역사
바로알기 강사 송신혜 있니다네 오늘은
강화도 조약에서 경술 국치 아지
우리나라가 국권을 잃어가는 그 과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자료로는 일본 그 학자
야마타 겐타로의 한일
합병사례 있는 걸로 보여서이 책을
기반으로 해서 여러 논문들과 어
최근에 나온 책들을 보충을 했습니다
어 야마타 겐타로는 뭐라고 얘기했냐
men 일본의 조선 침략 문제 이것을
빼놓고는 일본의 근대사를 알 수
없다라고 이야기를 하면서이 조선
침략의 과정이 어 일본의 근대사에서
아주 중요하다라고 얘기하면서 조선은
일본을 보는 거울이다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이 사람이 참고한
자료는 일본의 국립 국회도서관
자료라든지 도쿄대 서양사 연구실 등에
있는 자료들을 바탕으로 해서 어 쓴
책이 되겠습니다 야마타 겐타로의
모습이고요네 어 우리나라가 조선이
일본의 나라를 빼앗긴 것은 조선과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었죠 바로 전
세계적인 그런 추세 안에 들어
있었는데요 그 그 당시에 추세는 어떤
추세였고 서세 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서세 서양의 세력이 동점 동쪽으로
밀려 흘러 들어오는 것을 서세 동점이
하는데요 위키미디어의 지도를 통해서
본다면 식민주의의 지도라고 하는 편을
보면요
92년부터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1492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고
했을 때의 그 연도가 되겠죠
1492년 1550년 1600년
1660년 17 50년 1820년
이렇게 보시면 어 점점 여기
식민지가 색깔을 보시면 식민지가 점점
전 세계에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는
1885년에지도 점점 색깔이 진해지
1898년에 되어서도 아프리카 이런
쪽에 많이 되어 있고요
1945년 이제 우리나라가 해방이
됐던 그런지도 를 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1992년부터
1945년까지 500년이 좀 안 되는
그러한 식민지의 역사를 볼 수가
있는데요 좀 자세히 보자면
1992년부터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때 식민지를 어 개척했던 나라들에
대한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여기 이제
구소련이 그리고 어 영국과 프랑스 그
당시에 스페인과 포르투갈 이렇게 어
되어 있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가 바로
어 터키 키라고 여기 표시가
터키라는
1600년대에 소련도 이제 점점 그
세력을 넓혀 가고 있고요 여기에 이제
노란색이 보이기 시작하는데요 바로
스페인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스페인의
콜럼버스 콜럼버스가 이제 이게
신대륙을 발견을 하고 이쪽 지역을
아메리카 지역에 어 세력을 확장한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있고요 여기
터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력이 넓어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1660년 이렇게 해서 소련이 큰
영역을 차지하게 되는 모습들을 볼
수가 있고요네 그리고 어 포르투갈도
남미에서 많은 세력을 뻗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인도 지역의 색깔들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프랑스와 붉은색은
영국이 되겠죠 그래서이 지역도
마찬가지로 영국과 프랑스가 어 확대된
걸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1822년에
모습이고요
1885년 결국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가 된 그런 모습 그리고 호주
지금의 호주 호주가 요렇게 영국
영으로 변화가 되었고요
1898년이 되면이 아프리카 땅이
보세요요 앞에까지 해도
1885년까지 해도 아프리카의
가운데는 식민지가 되지
않았는데 98년 그러니까 15년
정도의 차이 만에 이렇게 아프리카가
프랑스와 영국의 어 식민지가 되어
있는 그런 모습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 1936년의 지도인데요
우리나라도 결국엔 일제의 식민지로
표시가 되어 있는이 그림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네 여기 보시면 18
19세기에 세계 국가별 점유율을
보시면요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위스 미국 이렇게
해가지고 어 서양 세력들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볼 수가 있는데요
1720년 1750년 1780년
1800년 여기 보시면 언제부터 눈에
확띄게 숫자가 증가하
1800년에 33% 영국이 차지하면서
다른 나라들과 달리 아주 압도적으로
어 영국이 어 세계의 무역을 점유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에도 계속 20대를 유지하면서
1960년대까지 이렇게 영국이
앞장서고 있다는 것을 볼 수가
있고요이 구미 합계를 본다면 이렇게
서양 세력이 많이 점유를 하고 있는
걸 볼 수가 있고요 미국의 경우는
17년도에는 미흡합니다 그렇죠
그렇지만 이제 서서히 미국도 세력을
뻗치고 있는 그러한 상황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영국에서 과연
1800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여러분 잘 알고 계시든 산업 혁명이
일어나게 되죠 그래서 우리가 1차
산업 혁명 2차 3차 4차 산업
혁명까지 이야기하는데요 영국에서 산업
혁명이 시작이 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 내가 손으로 수공예로 집에서 옷을
만들든 것이 이제 공장에서 대량이
생산이 되면서 그 원료들도 많이
필요하게 됐고 또 그것으로 가공된
어떤 물 건을 또 팔만한 시장이 또
필요하게 된 거죠 그러면서 이제
아시아나 아프리카와 같은 그런
지역들이 필요하게 되면서 식민지
시대가 더 확장되었다고 볼 수가
있겠는데요 그래서 영국의 산업 혁명을
우리가 기억을 해야 되겠습니다 바로
이러한 식민지라는 세계로 뻗어 나가는
것은 대항의 시절 그러니까 선박을
이용해 가지고 또 바다를 어 바다를
이용해 가지고 세계로 뻗어 나가는
그런 기술뿐만이 아니라 이러한 산업
혁명들의 발달로 인해서 이러한 그
과학 기술이 먼저 발달한 나라들이
무기도 군사력도 발달을 하면서 전
세계의 그 파워를 손을 뻗치게 되는
그런 것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1784년이 1차 산업 혁명으로
이야기하고 1870년이 2차 산업
혁명이라고 되어 있는데요이 시대는
1784년 하면 우리나라로 치면 이제
영종도 시대 영 정조 시대를 이야기할
수가 있습니다 그때의 어 우리나라와
서양의 그런 어떤 비교를 해 볼 수가
있겠고요
1870년대 되면 우리나라가
1876년에 강화도 조약을 맺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점점 제국주의의
어떤 침략의 꽃내 들어갈 때어서
서양에서는 2차 산업 혁명이 일어나서
활발하던 그런 시기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3차 산업 혁명은
1970년대 되 있는데요 이때부터는
우리나라도 산업화를 어 이뤄내 가지고
열심히 그때 공장이 돌아가고 그럴
때라고 할 수가 있겠죠 그리고 4차
산업 혁명은 저희가 코로나 직전에
4차 산업 혁명에 대한 어 붐이 많이
일어났었는데 사물 인터넷과 빅데이터
우리나라가 인터넷 광 케이블이 많이
설치가 되면서 이러한 쪽에서 독보적인
우의를 차지하게 되면서 3차 산업
혁명 이후로 우리나라도 발전하게 되어
이제 앞으로 지금은 이제 또 AI
로봇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봤을 때 우리나라는 앞으로 또 많은
과학의 어 투자를 더 해야 되는 그런
것을 교훈으로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네 이렇게 어 식민지를 많이
가졌던 영국의 경우는
1819년에 싱가포르 그다음에
1824년 말레이시아를 어 식민지로
만들었고요 결국에는 18 58년에
인도 인도를 그 당시에 어 많은 서양
세력들은 그 식민지로 삼고자 했습니다
후추라면 그런 향신료 그리고 인구도
많이 있고 물자가 풍부한이 인도를
점령하기서 서양 사람들은 많이 요구를
하고 있었는데요 영국이
1858년에 인도를 점령을 하게
되고요 프랑스의 경우는 1862년에
베트남 63년에 캄보디아를 식민지로
두게 됩니다 입니다 자 그렇다면
중국은 어땠냐 사실은 중국은 17세기
18세기 그때까지만 해도 아주 그
풍요로운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
중국이라는 나라가 원래는 동양이 더
서양보다 발전을 해 가지고 중국이
서양보다 더 발전을 했던 그래서 뭐
나침판이 아든 화약이 아든 문자라는
뭐 이런 어 많은 문물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이제 되어 있잖아요
그랬는데 그러한 중국을 서양은 계속
침범을 했지만 중국은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들과
달리 중국의 경우는 땅도 넓고 인구도
많고 그랬기 때문에 안에서 모든 것이
자급 자족이 이루어지고 그런
나라였어요 그래서 중국을 개방하기
쉽지 않았는데 어떻게 중국의 문을
열었나 하면 바로 편이라고 하는
마약이 들어가면서 중국이 어 영국에게
무너지게 되는 거죠 그래서 영국 의
앞편 전쟁이
1840년에 영국이 앞편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중국이 무너져가고 무너져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843년에 미국과 프랑스 그리고
58년에 러시아가 이제 중국과 교역을
이제 하게 되는데요 그러면 이제
일본은 그다음에 일본은 어떻게 됐냐
일본의 경우는
1854년에 미국으로부터 개항 요구를
받게 돼서 이제 개항을 하게 됐습니다
어 그리고 는
14년이 14년이 지난
1868년에 메이지
유신네 명치 유신이라는 그런 걸 통해
가지고 새로운 천왕 중심의 그런 일왕
중심의 그런 국가를 새롭게 개화가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런게 있었고요
그런데 조선의 경우는 어땠냐
1866년에 병인년에 프랑스군이
쳐들어오게 되죠 그래서 강화도로
쳐들어오게 됐는데 그 것을 이제
물리쳤고 그다음에
1871년에 신미 양료 해서 미국이
또 신미년에 어 강화도로 침범을
해오게 됩니다이 프랑스와 미국 두
나라가 강화도로 들어왔을 때 이것을
물리치게 되면서 여기에 대한 또
자신감이 생기게 되면서 더 최국
정책을 강화하게 되는 그런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이때는 언제냐
하면 바로
1863년에 보종이 직위를 하게
되는데요 어 그 앞에 철종의 경우가
후사를 남기지
않고 그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후에
어떻게 해야 되나 했을 때 흥선
대원군이 어 첫째 아들을 놔두고 둘째
아들 12살짜리 둘째 아들을 어
왕으로 이렇게 올리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흥선대원군이 실제적으로
정권을 장악하고 어 정치 활동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때 흥선대원군의
경우는 개혁 개혁을 아주 잘 해
나갔었습니다 그래서 국내 개혁은 잘
이루어냈지만 사실은 쇄국을 하게
되면서 어떤 그 전 세계적인 흐름을
좀 보지 못한 그런 안타까운 면들이
있게 되는 거죠 어 그런데 10년이
지난 후에 고종의 나이가 이제
20대가 되면서 고종이 직접적으로 어
내가 정치를 하겠습니다라고 나서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옆에는 어 민비
명성 황우도 불리는데요 민비 부인인
민비가 있었고 그리고 대표적으로 이제
최익현을 비롯해서 위정 척사파 이런
사람들의 요구에 의해서 흥선대원군이
이제 물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이
흥선대원군과 민비 사이에 그니까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에 갈등이 이제
깊어지게 되는 그런 사건들이
있었는데요 특히
1875년에 민승호 그 민비의 양
오빠라고 하는 민승호 암살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민승호게
배달된 그 선물 상자를 열어 보는
순간 폭탄이 터지면서 그 자리에서
민승호 그리고 민비의 생모 어머니
그리고 민승호 아들 아 세 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를 하는 그런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어
대원군과 민비 고종 사이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그런 국내 정세에
조선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이제 그 사료
고종시대의 사료를 통해서 보면 이렇게
일본의 경우는 1868년에 이제
메이지 유신을 이제 단행한 다음에 어
조선에게 장계를 보내게 되는데요 그서
서게하고 되어 있습니다 대수사 서계를
보냄이라고 보냈는데 어 조선에게 더
많은 교류를 요구하는 그런 서한을
보낸 그 글 안에 뭐라고 되어 있냐
우리 황상이 표현이 있어요 그러니까
일본의 천왕을 황상이 이야기하면서
우리 황상이 등극하였고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교류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그 장계를 보내게 되는데요 이것에서
조선의 경우에는 어떤 이야기를 했냐면
황이라 하는 것은 중국의 황제에게 쓸
수 있는 어 단어인데 어떻게 그거를
일본 니네가 쓸 수 있느냐라고 하면서
이것을 거절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어
일본과의 어떤 교류를 계속 미루는
그런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875년에 일본이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미국이 일본을 침략했던고
방법을 그대로 써서 이제 부산항에
배가 왔다 갔다 하고 나중에
강화도까지 배가 오르 내리는 그러한
일들이 벌어졌는데요 어이 책에서 보면
어떤 이야기가 나와 있냐 군함을
파견해서 이제 일본 사람이 쓴
글입니다 군함을 파견해서 대마도
근해를 측량해 하여 이로써 조선 국의
내분을 틈타 우리가 협상하는
성원할인마트 군이라는 사람을 그
관리를이 배에 태우게 됩니다 태워
가지고 거기서 폭탄을 쏘는 배 아 배
위에서 아주 그 굉음의 소리가 나는
그 포를 쏘는 것을 연습을 이렇게
보여 주면서 위기감을 얼마나 일본이
세졌고 그러한 무기들을 자랑을 하는
그런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나중에 이런 것들이 조정에 연락이
되면서 위기감을 이제 느끼게 되는데요
결국에는 강화도까지 와서 9월에
강화도에 있는 그 포대들을 파괴하고
옆에 있는 영종도의 민가로 어 일본
수군들이 내려서 방화를 하면서 약탈을
해 가는 그러한 사건이 있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것들에 대항하는 그
포를 쏘고 이렇게 하면서 강화도
사건이 이제 일어나게 되고요 이걸
빌미로 삼아서 일본은
1876년 2월에 강화도 조약 일명
강화도 조약이라고 하는데 어 정 그
원래 그 명칭은 조일 수호 조교가
되겠습니다 이것을 맺게 되는데요
이것이 바로 최초 우리나라가 외국과
맺은 근대적인 조약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불평등한 조약이었다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마치
영일 수호 통상 조약이라고 해서
1858년 그러니까 20년 조금 안
되는 그 남짓 전에 영국이 일본과
맺은 그런 일본으로서는 불평등한 조약
그 조약의 문구만 달라진 것입니다
영국이 바로 자기 일본이 되고요
자기들의 일본의 입장이 바로 조선이
되면서 영일 수호 통상 조약과 똑같은
그런 조약으로 우리에게 들어온
것입니다 주일 영국 공사인 파크스의
그 글에 의하면 이때 뭐라고 했냐면
이들 조항에 대해 강화도 조약이
강화도 조약에 대해 조선 대표가
전혀지 식이 없어 토의할 수 없다는
것을 일본 전권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라는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당시에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런 국제법
새로운 국제법 질서의 이러한 조약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것을 일본들이 그대로 그런
약점들을 알고 우리에게 이러한 조항을
내밀어서 어 강화도 조약 조일 수호
조교를 맺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조선의 개항은
일본이 들어왔지만 미국 영국 프랑스도
찬성하는 바였습니다 왜냐하면 미국
영국 프랑스는 제국주의로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의 식민지를 어
개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조선이라는 나라도 외세가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을 찬성하는 그런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 이러한 운요 사건
그리고 강화도 조약을 맺는 그런 사진
그림인데요이 일본 측에서 그린이
그림에 보면 이렇게 우일기이 당시에도
우일기 가지고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 우일기 바로 일본의 어떤
조선 침략을 상징하는 깃발이 바로이
우일기 되겠습니다 근데 이제 최근에
저런 우일기 아파트에 걸리는 이러한
사태까지 일어나는 걸 보면서 정말 어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일기 의미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대로 안다면 어떻게 그런 일들 들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역사를 우리는 어 국민들이 알고
교육하고 또 배우고 이러한 시간들이
꼭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자
이렇게 운요호 모습이고요 그 당시에
조일 수호 조교를 맺는 어 모습
사진입니다이 강화도 조약의 내역을
보면요 제 1조에 보면 조선은 자주
국가로서 일본 국가 평등한 권리를
보유한다고 되어 있어요 어 되게 좋은
말 아니야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실상 외국과 맺은 이러한 규약 규약에
있어서 첫 번째 놓여져 있는 자주
국가라고 인정하는 것은 사실은 그
숨은 뜻은
무엇이냐이 나라를 내가 찜 했으니
건드리지 마라라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조선은 자주 국가로서 협한
권리를 보유한다이 말은 우리 일본이
조선을 책임질테니까 다른 나라들은
간섭하지 마라라는 그런 의미가
되겠습니다 특히 우리 조선의 경우는
그 이전에 동양의 어떤 정치적인 그
국제 관계에서는 어 청 중국이 어떻게
보면 종주국인 그런 어 정치 지형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일본의
경우는 조선에서 천국의 영향을
배제시키고 싶었기 때문에 더욱이
의미가 자주 국가라는 의미는 바로
청으로부터 조선을 뛰어 넣기 위한
그래서 일본이 손쉽게 조선을 가져가기
위한 그런 어 밑에 깔려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 4조에 보면 두 곳의 항구를
별도로 개량해야 된다라고 했기 때문에
부산 외에 원산과 인천의 재물포
재물포 이쪽을 어 개항을 하게 되는
거고요 그리고 제 7조에 보면 해안을
측량할 수 있게 우리 조선의 해안을
측량할 수 있게 했고요 제일 마지막
10 관해 보면 이것이 아주 불평등한
조약이라고 하는 대표적인 건데요
일본국 인민이 조선국이 지정한 각
한구에서 죄를 범하였을 경우 어떻게
한다 조선국이 교섭하여 인민은 모두
일본에 돌려보내서 판결하게 한다이
말입니다 즉 치외법권 지역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일본 사람이 죄를
지었는데 우리나라의 판단을 받 는
것이 아니고 일본으로 보내서 일본에서
재판을 한다라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불평등한 조약이라는 어 반증이
되겠습니다 자
1876년에 에노모토 다케 아키는
뭐라고 얘기했냐 조선은 그 지리상의
위치라든가
정리상자 관계로 보아 우리나라 즉
일본이 일본의 중대한 곳이므로
정치가가 소홀이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저 프랑스 미국 두 나라가 중도의
일을 집어 치운 것은 그죠 심미 양료
그다음 병인 양료 이렇게 도중에
물러난 것은 그 일이 두 나라
프랑스와 미국의 시리이 없을뿐 아니라
정략 전략상의 요무 이도 관계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일본한테는 아주
중요하다이 얘기입니다 그러면서이 일은
아직 세계인이 착수하지 않은 것으로서
유독 일본이 능히 이루어 이에 앞서는
것이다 일본 우리가 제일 먼저 한
거기 때문에 자랑스럽다 이런 이야기를
일본 사람이 한 내용이 되겠습니다
그마만큼 일본은 항상 임진 회란 때도
그랬지만이 조선 우리나라를
항상 중요한 정치적인 관계나 이런데서
이익이 되는 땅이다 생각하기 때문에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음악]
있습니다 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