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권 제3신라본기(나물 이사금~소지 마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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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
3 356년 4월 나물 이사금이
즉위하다 나물 이사금이
즉위하였다 성은 기이고 구도 갈문왕
손자이다 아버지는 각간 말이고
어머니는 의
부인이다 비는 김씨로 미추의 딸이다
해가 죽고 아들이 없어서 나물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신라의 근친혼에 대한
사론 논하여 말한다 아내를 얻을 때
같은 성실을 취하지 않는 것은 분별을
두터이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노공이
오나라에서 아내를 얻고
가네 명의 히시 성을 가진 첩을 둔
것을 진나라의 사태와 정나라의 자산이
매우 나무란
것이다 신라의 경우 같은 성실을
취하는 대에서 그치지 않고 형제의
자식과 고종 이종 자매까지 모두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다 비록 외국은 각기 그 습속이
다르지만 중국의 예속 따진다면 도리에
크게 어긋났다고 하겠다
흉노 어머니와 자식이 상관하는 것은
또한 이보다 더욱
심하다 2년 봄에 사자를 보내 호라비
호로이 고아 자식 없는 늙은 일을
위로하여 각각 곡식 3곡을 사하고
효재의 남다른 행실이 있는 사람에게
직급 한 등급을 올려
주었다 3년 봄 2월에 몸소 시조묘
제사를 지냈는데 자주빛 구름이 묘
위를 감돌고 신비로운 새가 묘의 뜰에
모였다 7년 여름 4월에 시조묘 뜰의
나무가 서로 엉켜
붙었다 9년 여름 4월에 외병이 대거
이르렀다 왕이이를 듣고 대적할 수
없을 것을 두려워하여 풀로 허수 아이
수천개를 만들어 옷을 입히고 무기를
들려서 토함산 아래에 나란히 세워두고
용맹한 군사 천명을 현의 동쪽 들판에
매복시켜
외인이 무리가 많음을 믿고 바로
나아가니 매복한 군사가 일어나 부의에
공격하였다 외인이 대패하여 달아나자
격추하여 그들을 거의 다
죽였다 11년 봄 3월에 백제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찾아왔다
4월에 홍수가 나서 산 곳이
무너졌다 13년 봄에 백제가 사신을
보내 좋은 말 두피를
바쳤다 17년 봄과 여름에 크게
물었다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리고
떠도는 사람이 많았으므로 사자를 보내
창고를 열어 그들을 진하였다
18년
제독산 주가 300명을 거느리고
투항해 왔다 왕이 그들을 받아들여
육부에 나누어 살게 하였다 백제왕이
문서를 보내 말하기를 두 나라가
화친을 맺어 형제가 되기를 약속했는데
지금 대왕께서 우리의 도망한 백성을
받아들이니 화친한 뜻에 매우
어긋납니다이는 대왕에게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청컨대 그들을
돌려보내십시오라고 하였다
나물 이사금이 대답하기를 백성은
일정한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생각이 들면 오고 싫어지면 가버리니
진실로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대왕은 백성이 편안하지
않음을 걱정하지 않고 과인을
나무라시는 것이 어찌 이렇게
심하십니다라고 하였다 백제는 그것을
듣고 다시 말하지
않았다 여름 5월에 서울의 물고기가
비에 섞여
떨어졌다 21년 가을 7월에
부사관에서 뿔이 하나 달린 사슴을
바쳤다 크게 풍년이
들었다 24년 여름 4월에 양산에서
작은 참새가 큰 새를
낳았다 26년 봄과 여름에 가물어
흉년이 들고 백성들이
굶주렸다 위도를 부시의 지내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부견이 두에게 묻기를
경이 말하는 해동의 일이 옛날과 같지
않으니 무엇 때문인가라고 하였다 두가
답하여 말하기를 역시 중국과
마찬가지로 시대가
변역되어 지금 어찌 같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여기서 진은 전진 중국 5호
16 에
하나이다 33년 여름 4월에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다 6월에 또 지진이
일어났다 겨울에 얼음이 얼지
않았다 34년 봄 정월에 서울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2월에 흙비가
내렸다 가을 7월에 누리가 생겨서
곡식이지
다 37년 봄 정월에 고구려에서
사신을 보냈다 왕은 고구려가 강성하
때문에 이찬 대서 이의 아들 실성을
보내 볼모로
삼았다 38년 여름 5월에 외인이
와서 금성을 에워싸고 5일 동안
포위를 풀지 않았다 장수와 병사들이
모두 나가 싸우기를 청하였으나 왕이
말하기를 지금 적들은 배를 버리고
깊이 들어와 사지에 있으니 그
날카로운 기세를 당할 수 없다라고
하고는 성문을
닫았다 적이 아무런 성과 없이
물러가자 왕이 용맹한 기병 200명을
먼저 보내 그 돌아가는 길을 막고
또한 보병 천 명을 보내
독산지구 협격 아여 크게 물리쳐서
죽이거나 사로잡은 사람이 매우 많았다
40년 가을 8월에 말갈이 북쪽
변경을
침범하였다 군사를내어 그들을 실직의
들판에서 크게 처
부었다 42년 가을 7월에 북쪽
변경의 하슬라에 가뭄과 누리의 피해가
있어 흉년이 들고 백성이
굶주렸다 이에 그 지역의 수를
사면하고 1년 동안 조세와 공무를
면제하여 주었다
44년 가을 7월에 누리가 날아와
들판을
덮었다 45년 가을 8월에 살별이
동쪽에
나타났다 겨울 10월에 왕이 늘 타던
내구 아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었다 여기서 내구의 내구는 궁궐의
마구간으로 내구는 왕이 거둥할 때
주로 사용되었으며 왕족과 고위 관려게
주던 하사품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46년 봄과 여름에가
물었다 가을 7월에 고구려의 볼모로
갔던 실성이
돌아왔다 47년 봄 2월에 왕이
돌아가셨다 42년 2월 실성 이사금이
즉위하다 실성 이사금이 즉위하였다
알지의 후손으로 이찬 서지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이리 부인으로 아간
석의
딸이다 왕비는 미추의
딸이다 실성은 키가 7척 촌으로
총명하고 사리에 통달하여 니를 해하려
알 수 있는 식견이
있었다 나물이 죽고 그 아들이 어림
나라사람들이
실성을를
하였다 원년 3월에 외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나무의 아들 미사흔
볼모로
삼았다 2년 봄 정월에 미사 품을
서불 한으로 삼아 군사와 국정에 관한
일을
맡겼다 가을 7월에 백제가 변경을
침입하였다 3년 봄 2월에 몸소
시조묘 배열하였다
4년 여름 4월에 외병이 와서 명활성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왕이 기병을 이끌고 독산
남쪽에서 잠복하다가 두 번 싸워
그들을 깨부수고 300여명을 죽여 그
목을
베었다 5년 가을 7월에 나라
서쪽에서 누리가 곡식을
해쳤다 겨울 10월에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다 11월에 얼음이 얼지
않았다 6년 봄 3월에 외인이 동쪽
변경을
침범하였다 여름 6월에 또 남쪽
변경을 침범하여 100명을 노략질에
갔다 7년 봄 2월에 왕이 외인이
대마도에 군영을 설치하고 무기와
군량을 쌓아두어 우리를 습격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서 그들이 일어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정의 군사를 뽑아
적의 군영을 격파하고
하였다 서불 미사이 말하기를 신이
듣건대 무기는 흉한 도구이고 싸움은
위험한 일이다라고
합니다 하물며 큰 바다를 건너서 남을
정벌하는 것은 만에 하나 이기지
못하면 후회해도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험한 곳에 의지하고 관문을
설치하여 그들이 오면 곧 막아서
침범하지 못하게 하고 유해지 곧
나아가 그들을 사로잡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남을 유인하지
남에게 유인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가장 좋은
책입니다라고 하니 왕이 그 말에
따랐다 11년 나무의 아들 보호를
고구려의 볼모로 보냈다
12년 가을 8월에 산에서 구름이
일어났는데 바라보니 누각과 같았고
향기가 가득 퍼져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왕이 말하기를 이것은 반드시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노는 것이니
마땅히 이곳은 복받은 땅이라고
하였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그곳에서
나무 베는 것을 금지하였다
평양 쥐의 큰 다리를 새로
만들었다 14년 가을 7월에 혈성
들판에서 크게 사열하고 또 금성
남문으로 가서 활쏘기를
구경하였다 8월에 외인과 풍도 싸워
이겼다 15년 봄 3월에 동해
바닷가에서 큰 물고기를 잡았는데 뿔이
있었고 그 크기가 수레에 가득 할
정도였다 여름 5월에 토산이 무너지고
샘물이 솟아 올랐는데 높이가 3장이나
되었다 16년 여름 5월에 왕이
돌아가셨다 417년 5월 눌지
마립간이
즉위하다 눌지 마립간이
즉위하였다 나물 왕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보반 부인으로 미추 왕의
딸이다 왕비는 실성 왕의
딸이다 나무랑 37년에 실성을
고구려의 볼모로 보냈는데 실성이
돌아와 왕이 되자 나물이 자기를
외국의 볼모로 보낸 것을 원망하여 그
아들을 헤쳐 원을 갚으려
하였다 사람을 보내 고구려에 있었을
때 서로 알던 사람을 초청하여래
말하기를지를 보면 곧 죽이시오라고
하였다 드디어 지로 하여금 가서 길
중간에 고구려 사람을 중하게
하였다 고구려 사람이지를 보니 외모와
정신이 시원스럽고 우아해 군자의
풍모가 있으므로 마침내 고하기를 그대
나라의 왕이 나에게 당신을 치라고
시켰으나 지금 그대를 보니 참마
해치지 못하겠소 라고 하고 인해
돌아갔다지가이를 원망하여 도리어 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2년 봄 정월에 시조묘 몸소
배알하다
왕의 동생 보호가 고구려에서 나마
재산과 함께
돌아왔다 가을에 왕의 동생 미사이
외국에서 도망해 돌아왔다
3년 여름 4월에 우곡 물이
솟아올랐다 4년 봄과 여름에 크게
물었다 가을 7월에 서리가 내려
곡식을 죽였다 백성들이 굶주려 자손을
파는 사람도 있었다 죄수들을 조사하여
죄를 용서해
주었다 7년 여름 4월에 당에서
노인들을 접하였는데 왕이 몸소 음식을
집어주고 곡식과 비단을 차등 있게
내려
주었다 8년 봄 2월에 고구려의
사신을 보내
예방하였다 13년 시제를 새로
쌓았는데 두 개 길이가 2170
보였다 15년 여름 4월에 외병이
동쪽 변경을 침입하여 명활성
포위하였다
갔다 가을 7월에 서리와 우박이 내려
곡식을
죽였다 16년 봄에 곡식이 귀하여
사람들이 소나무 껍질을
먹었다 17년 여름 5월에 미사흔이
죽자 서불 한으로 추증하였다
가을 7월에 백제가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함 이에
따랐다 18년 봄 2월에 백제왕이
좋은 말 두피를
보냈다 가을 9월에 백제왕이 또 흰
매를
보냈다 겨울 10월에 왕이 황금과
빛이 나는 진주를 백제의 예물로 보내
보답하였습니다
19년 봄 정월에 거센 바람이 불어
나무가
뽑혔다 2월에 역대 왕릉을 수리하였다
여름 4월에 시조묘 제사를
지냈다 20년 여름 4월에 우박이
내렸다 죄수를
조사하였다 22년 여름 4월에 우두
그에서 산골 물이 세차에 쏟아져
50여 가가
떠내려갔다 서울에 거센 바람이 불었고
우박이
내렸다 백성들에게 우차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24년에 외인이 남쪽 변경을 침범하여
사람을 노략질 해서
돌아갔다 여름 6월에 외인이 또 동쪽
변경을
침범하였다 25년 봄 2월에 사물
현에서 꼬리가 긴 흰 꿩을 바쳤다
왕이이를 가상히 여겨 현의 관리에게
곡식을
내려주었다 28년 여름 4월 외이
금성을 10일 하였는데 군이 다
떨어지자
돌아갔다 왕이 군사를내어 그들을
추려고 하니 우에서 말하기를 병가의
말에 궁지에 몰린 도적은 쫓지 말라고
하였으니 왕께서는 그 일을
그만두십시오
하였다 그러나 왕은지 않 수천의
기병을 이끌고 독산 쪽까지 추격해 어
싸우다가 하여 장수와 사졸 가운데
죽은 사람이 절반이
넘었다 왕이 허둥지둥 말을 버리고
산에 올라가자 적이 몇 겹으로 에어
쌌는데 호연이 짙은 안개가 끼어
지척에 있는 것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적들이 이르기를 귀신이
도와주는구나 말하고 군사를 거두어
돌아갔다 34년 가을 7월에 고구려의
변방 장수가 실의들에서 사을 하였는데
하슬라 성의 성주 삼이 군사를내어
갑자기 공격하여 그를
죽였다 고려왕이 그것을 듣고 노하여
사신을 보내 말하기를 내가 대왕과
더불어 우호를 닦아 매우 기쁘게
여기고 있었는데 지금 군사를내어
우리의 변방 장수를 죽였으니 무슨
의미인가
하였다 이에 군사를 일으켜 리의 서쪽
변 을
범하였다 왕이 겸한 말로 사과하자 곧
물러갔다 36년 가을 7월에 대산에서
상서로운 벼이삭을
바쳤다 37년 봄과 여름에
물었다 가을 7월에 이리 때가 림에
들어왔다 여기서 시림은 김씨의 시조
찌가 탄생한 곳으로 는
숲이다 38년 가을 7월에 서리와
우박이 내려 곡식을
해쳤다 8월에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침범하였다 39년 겨울 10월에
고구려가 백제를 범하니 왕이 군사를
보내
구원하였다 41년 봄 2월에 거센
바람이 불어 나무가 뽑혔다
여름 4월에 서리가 내려 보리가
상하였으므로
씨이며 성왕의
딸이다 2년 봄 2월에 시조에
하였다 여름 4월에 웨일이 병선 일여
척으로 동쪽 변경을 습격하고 나아가
월성을 포니 사방에서 화살과 돌이
쳤다 왕이 성을 지키자 적들이 장
물러나려 하였고 이에 군사를 내 하여
그을
시켰다 북쪽으로 추격하여 바다 어기에
이르니 적들 중에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절반이
넘었다 4년 봄 2월에 왕이 서울한
미사한의원 B
삼았다 여름 4월에 용이
금성정비 활계 성을 습격해 깨뜨리고
천 명을 사로잡아 갔다
6년 봄 2월에 웨인이 삼성에
침입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물러갔다 왕이 지와 덕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길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다가 공격하여 그들을 크게
물리쳤다 왕은 외인들이 자주 영토를
침입하였을
쌓았다 가을 7월에 군대를 크게
하였다 8년 여름 4월에 홍수가 나서
산 17 곳이
무너졌다 5월에 사벌 군의 누리의
피해가
있었다 10년 봄에 담당 관청에
명하여 전함을 수리하도록
하였다 가을 9월에 하늘이 붉어졌고
큰 별이 북쪽에서 동남 쪽으로
흘러갔다 11년 봄에 고구려가 말갈과
더불어 북쪽 변경의 실직을 습격하였다
가을 9월에 하슬라 사람 가운데
15세 이상인 자를 징발하여 이하의
성을
쌓았다 여기서 이하는 현재의 남한강
상류 혹은 강릉 일대에서 동해로
들어가는 하천을
이른다 12년 봄 정월에 서울의 방
리 이름을
정하였다 여름 4월에 나라 서쪽에
홍수가 나서 민가가 떠내려가고
무너졌다 가을 7월에 왕이 물난리를
겪은 주군을 다니며
위로하였다 13년에 3년 산성을
쌓았다 14년 봄 2월에 모로 성을
쌓았다 3월에 서울에서 땅이
갈라졌는데 가로 세로의 길이가
2장이며 탁한 물이 솟아
올랐다 겨울 10월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16년 봄 정월에 아찬 벌지
급찬 덕지 좌우 장군으로
삼았다 가을 7월에 명활성
수리하였다 17년에 모성 사시성 광석
달성 구성 라성 등을
쌓았다 가을 7월에 고구려왕 거이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를
공격하였다 백제왕 경이 아들 문주를
신라에 보내 도움을
요청하였다 왕이 군사를내어 구해주려고
하였으나 신라군이 미쳐 도착하기 전에
백제가 이미 고구려에
함락되었고 또한
살해되었다 여기서 경은 백제 제
21대 개로 왕으로 재위 기간은
455
475년이다 18년 봄 정월에 왕이
명활성 거처를
옮겼다 19년 여름 6월에 외인이
동쪽 변경을
침범하였다 왕이 장군 덕지 명하여
외인을 공격하고 물리치 200여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20년 여름 5월에 외인이
군사를 일으켜 다섯 방면의 길로
쳐들어 왔지만 결국 성과 없이
돌아갔다 21년 봄 2월 밤에 붉은
빛이 한 필에 하얀 비단이 펼쳐진
것처럼 땅에서 하늘까지
뻗쳤다 21년 봄 2월 밤에 붉은
빛이 한필의 하얀 이 펼쳐진 것처럼
땅에서 하늘까지
뻗쳤다 겨울 10월에 서울의 지진이
일어났다 22년 봄 2월 3일에 왕이
돌아가셨다 479년 2월 소지
마립간이
즉위하다 소지 마립간이
즉위하였다 비왕의
맞아들이다 어머니는 씨로서 서한
미사의 딸이고 왕비는 선해 부인으로
이벌찬 내숙
딸이다 소지는 어려서부터 부모를 잘
섬기는 행실이 있었고 겸손하고 공손하
있으며 스스로 말과 행시를 잘
지켰으니 사람들이 모두
따랐다 원년에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2년 봄 2월에 시조묘 제사를
지냈다 여름 5월에 서울에 가뭄이
들었다 겨울 10월에 백성들이
굶주렸을 곡식을내어
진출하였다 11월에 말갈이 북쪽
변경을 침략하였다
3년 봄 2월에 비열성 행차하여
군사들을 위로하고 군복을 내려주었다
사월의 고구려가 말과 함께 북쪽
변경에 처들어와 명성 등 칠성을
빼앗고 또한 미부로 진군하였다 우리
군사는 백제 가야의 구원병 함께 길을
나누어 막으니 적이 폐하여
물러갔다 이하 서쪽까지 추격해
물리치고 천여명의
목을었다 4년 봄 2월에 거센 바람이
불어 나무가 뽑혔다 금성 남문에
불이났다 여름 4월에 비가 오랫동안
내림로 중앙과 지방의 담당 관청에
명하여 죄수를
조사하였다 5월에 웨인이 변경에
쳐들어왔다 5년 여름 4월에
홍수가났다 가을 7월에 홍수가났다
겨울 10월에 선계에 행차하여 재해를
당한 백성들을 위문하고 곡식을 차등
있게 나누어
주었다 11월에 천둥이 치고 서울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6년 봄 정월에 오을 벌
찬으로
삼았다 3월에 토성이 달을 범하였고
우박이
내렸다을 7월에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침범하여 우리 군사가 백제와 함께
모산성당
7년 봄 2월에 구벌 some
쌓았다 여름 4월에 몸소 시조묘
제사를 지내고 사당지기 20가 추가로
두었다 5월에 백제가 예물을 가지고
찾아왔다
8년 봄 정월에 이찬 실축을 장군에
임명하였다 일선의 장정 3천명을
증발해서 성과 산성 두 성을 고쳐
쌓았다 2월에 숙을 이벌 찬으로 삼아
국정에 참여하게
하였다 여름 4월에 외인이 변경을
침범하였다 가을 8월에 낭산의
남쪽에서 를 크게 사하였다
9년 봄 2월에 신궁을 나흘에 세웠다
을은 시조가 처음 태어난
곳이다 사월의 처음으로 사방의 우역
설치하였고 해당 관청에 명하여 관도를
수리하게
하였다 가을 7월에 월성을
수리하였다 겨울 10월에 천둥이 쳤다
10년 봄 정월에 왕이 월성으로
거처를
옮겼다 2월에 선군의 행차하여 호라비
호라미아 자식 없는 늙은 일을
위문하고 곡식을 차등 있게 내려
주었다 3월에 일선에서 돌아오는 동안
지나온 주군의 옥에 갇힌 죄수 중에
두 가지 사형제를 제외하고 모두
용서해 주었다
여름 6월에 동양에서 눈이 여섯 개인
거북을 바쳤는데 배 밑에 글자가 쓰여
있었다 가을 7월에 나성을
쌓았다 11년 봄 정월에 놀고 먹는
백성들을 몰아 다시 농사 짓게
하였다 가을 9월에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급습하여 과현 이르렀다
겨울 10월에 고구려가 호산성
함락하였다
12년 봄 2월에 비하성 다시
쌓았다 3월에 용이 추화정이 나타났다
처음으로 서울에 시장을 열어 전국의
재화를 유통시켰다
14년 봄과 여름에가 물었음 왕이
스스로를 책망하여 반찬을 줄였다
15년 봄 3월에 백제왕 모데가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하였다 왕은 이벌찬 비지의 딸을
보냈다 가을 7월에 혜진과 장진의 두
개진을 설치하여 외적에
대비하였다 16년 여름 4월에
홍수가났다 가을 7월에 장군 실 등이
고구려와 살수 의 들판에서 싸우다가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 변화성 지켰는데
고구려 군사가 그곳을 포위하였다
백제왕 모데가 군사 3천명을 보내
구원하여 포위를 풀어
주었다 여기서 실축은 신라 소지
마립간 때의
장군이다 살수는 현재의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혹은 청천면 흐르는
달천으로
17년 봄 정월에 왕이 몸소 신궁의
제사를
지냈다 신궁은 신라 때 설치된 국가적
제사 시설에
하나이다 가을 8월에 고구려가 백제
양성을 포위하자 백제가 구원을
요청하였다 왕이 장군 덕에게 명하여
군사를 이끌고 구원하게 하니 고려
리들이
졌다 백제왕이 사신을 보내 고마움을
표하였다 18년 봄 2월에 가야국이
흰 공을 보냈는데 꼬리의 길이가
척이었다
3월에 궁실을 다시
수리하였다 여름 5월에 큰 비가 내려
알천의 물이 넘쳐 여가가 떠내려가거나
물에
잠겼다 월 고구려가 쳐들어와 우산성
공격하였다 장군 실이 출격해 이하
가에서 그들을
깨뜨렸다 8월에 남쪽 교회에 행차하여
농사 짓는 것을
보았다 19년 여름 4월에 외인이
변경에
쳐들어왔다 가을 7월에 가물고 누리의
피해가 있었다 여러 관리들에게 명하여
성 을 다스릴 만한 제주가 있는
사람을 각각 한 명씩 거하도록
하였다 8월에 고구려가 우산성
공격하여 함락하였다
22년 봄 3월에 외인이 장봉진
공격하여 함락하였다
여름 4월에 폭풍이 불어 나무가
뽑혔다 용이 금성정비
가을 9월에 왕이 나리에 행차하였다
군 사람 로에게 딸이 있어 이름이
벽화이고
16세였다 그 아버지가 딸에게 수놓은
비단옷을 입혀 수레에 태우고 색깔
있는 명주로 덮어 왕에게
바쳤다 왕은 음식을 보낸 것으로
생각하고 열어보니 얌전한 어린소녀가
오므리고 있음
이상히 여겨지
않다 궁으로 돌아왔는데 생각이 그치지
않아 두세 차례 미행하여 그 집에
가서 그녀와 사랑을
나누었다 군을 지나가는 길에 어느
할머니의
집에었다 왕이 묻기를 지금 사람들은
국왕을 어떤 군주로 생각합니까라고
하니 할머니가 대답하기를 많은
사람들이 성인으로 여기지만 저만은
그것이
의심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가만히
듣 건데 왕이 나리의 여자와 사랑을
나누기 위해 여러 번 미복 차림으로
온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무릇 용이 고기의 옷을
입으면 어부에게 잡히는
법입니다 지금 왕은만의 지위에
있으면서 스스로 신중하지 못하니이를
성인이라 한다면 누가 성인이
아니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왕이이를 듣고 크게 부끄러워
그녀를 몰래 맞아들여 별실에 두었는데
아들 하나를 낳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나리군 현재의
경상북도 영주 시이고 고타 그는
현재의 안동 시를
이른다 겨울 11월에 왕이 돌아가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