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떤 밥을 먹었을까? 우리가 모르는 조선시대 식사 문화

역사돋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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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떤 밥을 먹었을까
그럼 역사돋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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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역사돋보기입니다.
여러분은 일상생활에서 어떤 음식을 가장 자주 먹으시나요
한국인의 주식은 역시 밥일겁니다.
배달문화가 왕성해지면서 혼자 배달음식을 먹는 식생활이 퍼
지고 있지만 어릴 적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던 기억은 대부분 비슷하실 것 같습니다.
아니면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서 밥 먹던 기억은 더 비슷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조상님들 즉 조선시대 사람들은 밥을 어떻게
먹었고 그 흔적은 오늘날에 어떻게 전해지고 있을까요
쌀밥은 아무나 먹을 수 있는게 아니 었습니다.
조선시대 양반이나 지배층들이나 쌀밥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애당초 관료들은 쌀로 녹봉을 받았 죠.
녹봉 지급량은 정일품이 곡식 97석을 받았다고 하며 곡식 1석이
144kg 정도이니 정일품 최고위 관직 은 약 1만4천kg 즉 14톤 정도였던
겁니다.
물론 월별 지급되는 월급이 아니라 1년에 2차례 지급이긴 하지만 그럼
에도 많은 양이었죠.
더불어 양반들이 소유하는 평균 토지는 약 200에서 30맞이기 1맞이기
가 200평이니까 4만에서 6만평을 소유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반면 농민들은 잡곡밥을 먹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사진이나 박물관 전시 혹은 각종 매체에서 조선시대 농민
들의 밥량이 그릇 높이보다 더 높이 쌓여있는걸 보셨을겁니다.
이를 고봉밥이라고 하는데 kbs 다큐멘터리 방송에서는 현재 우리가
먹는 공깃밥의 평균량이 210g 정도인데 조선시대의 고봉밥은 약 640g이라고
하더군요.
실제 이덕무의 청장관전서를 보면 보통 사람들은 한 끼에 5혹 양이
큰 남자는 7혹을 먹고 아이는 3혹 을 먹는다고 나와있는데 이는 현대인들의
밥량의 2-3배에 해당한다고 하네요 .
먹을게 없었다면서 어떻게 이렇게 많이 먹을 수 있었을까요
일단 기본 전제로 생각해주셔야 하는게 조선시대 농민들은 하루에
아침저녁 2끼만 먹었습니다.
점심은 아침에 남긴 음식이나 간식 개념으로만 먹었죠.
그래서 한번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 놓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번 먹을 때는 현대인보다 많이 먹지만 조선시대 사람들이 현대인들
보다 마른건 우선 밀가루 요리가 발달하지 않았고 고기 많이 먹을
수도 없었을 뿐더러 반찬도 다양 하지 않아서 오로지 밥으로만 영양소
를 채웠으며 또 그만큼 농사 등의 노동량이 식사량보다 더 컸다는
뜻이 됩니다.
물론 그냥 한국인이 많이 먹은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먹을게 없었다는 주장도 나름 설득력이 있고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흰 쌀밥으로 고봉밥을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며 흰 쌀밥으로 그렇게
많이 먹는건 인생 성공의 척도나 다름없었습니다.
쌀밥을 많이 먹는 것에 대한 심리 가 이어져 오늘날에도 한국에서는
밥그릇을 싹싹 비워야 맛있게 잘 먹었다는 의미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밥이 안넘어가면 물에다가 밥을 먹어서라도 먹는 문화가 있었던
거죠.
일본에서는 밥그릇을 싹 비우면 식사량이 불충분하다.
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민족 이기에 기근이 발생하면 이는 농민들의
삶에 치명적이었습니다.
당장에 먹을게 없어지잖아요.
특히 기근들이 조선 후기에 많이 몰려있었는데 이 밀란도 조선 후기
에 집중이 되어있는건 직접적인 계기는 물론 탐과 놀이들을 가름
주고였겠지만 간접적인 배경에는 기근들로 인해 농민들이 먹을게
없어서 당장에 언제 굶어죽어도 이상할게 없는 사회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엄청난 양의 쌀 들은 수탈당한걸 생각하면 당시
우리 식민 조선인들이 얼마나 먹을게 더 없었을지 가늠해볼 수 있겠죠
.
1924년 동아일보 기사에는 초목이뿌리나 잎새로 연명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가 보풀을 먹는 사람이 11만 2362명 소나무껍질 머름 칡뿌리
등 30여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71만 3000명 전체 인구의 6할이다
라고 나와있습니다.
또 몇첩 반상이라는 말 많이 들어보셨죠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 때부터는 황제의 수라상엔 12첩 반상이었다
고 하지만 그 이전의 국왕들의 수라상
은 9첩 반상이었습니다.
그 아래로는 7첩 반상과 5첩 반상 이 있었는데
여러분 공통점을 찾으셨나요 전부 홀수라는 겁니다.
유교원리에서는 홀수는 양의 기운 을 짝순의 음의 기운을 가진 숫자
라고 하여 홀수가 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
되었기에 반상 구성을 전부 홀수로 맞춘 것으로 추정됩니다.
밥의 종류는 워낙 다양했는데요 .
흰쌀밥이 귀한만큼 여러가지 재료 들을 섞으면서
그에 따른 명칭의 밥들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먹는 방식에 따라서도 지역별로도 밥의 종류는 천차만별
이었는데 서울에선 양반집들 위주로 제사를
지내고 남은 고기들로 육수를 낸 뒤
밥을 말아먹는 장국밥이 있었다고 하고
강원도에선 갖가지 산나물이나 구황정물을 곁들인 밥들
예컨대 곤드레밥 강냉이밥 간자밥 수수밥 등이 있었으며
경상도에선 무밥도 많이 먹었다고 하네요.
근처에 우시장이 크게 발달한 곳 에선
육회비빔밥 갈비탕 등 고기를 활용한 밥들이
바닷가 마을에선 해초밥 굴밥 등 해산물과 같이 먹기도 했습니다.
이북에는 황해도에 김치밥과 비즈밥 평안도에는 온밥
함경도에는 가릿국밥 같은 것들 도 있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밥을 먹을 때 의자 없이 바닥에 앉아서 먹었습니다.
식탁이란 개념이 별로 없었구요 .
식탁은 모두가 같이 모여먹는 큰 연회자리에서
특히 구광이 대소신료들이나 외국 사신들을 접대하는 곳에서
혹은 명절때나 쓰이지 일상생활 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한옥이 온돌기반이다 보니 단층구조에 집이 낮기 때문에
주거형태에 따라 밥먹는 자세가 결정되었던 겁니다.
식탁은 없는 대신 일상생활에서 밥을 먹을 때는 상을 사용했습니다.
상은 높이가 낮기 때문에 밥을 먹을 땐 양반다리를 하고 앉죠 보통.
그렇다면 양반다리는 어떻게 유리 했을까요
바로 퇴계이왕에 의해서입니다.
사실 퇴계이왕에 권한 양반다리는 밥을 먹을 때가 아닌
선비가 책을 읽을 때 가장 바른 자세라고 하는데
적당히 불편하면서 약간의 긴장 이 있고
또 책도 읽을 수 있는 자세야말로 고견한 선비의 자세이기 때문에 그랬죠.
비록 책을 읽기 위함이고 선비의 좌식 자세였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며 보편적인 자세로 확산되었던 거죠.
사실 명칭은 양반다리라고 부르지 않았고
이왕은 책상다리 혹은 한자로 반좌라고 표현했습니다.
양반다리라고 표현한 건 1970년대 때부터라고 하네요.
이렇게 바닥에 앉아있는 문화 때문에 아직까지도 한국인들은
서양식 소파를 사도 소파에 빨래값만 올려놓을 뿐
쇼파를 오히려 등받이로 사용하고 바닥에 앉죠.
또 파티를 할 때 서양인들은 서 있다 보니까 계속 돌아다니지만
한국인들은 앉아서 놀다 보니까 움직일 수가 없고
필연적으로 원을 그리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왜 조선시대 상은 높이가 낮을까요
기왕 앉아서 먹을 거면 적당히는 높이가 높아야
그 정확한 이유는 밝혀진 바가 없지만
역시 온돌 문화인지라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음식에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혹은 한국 현대인들의 기준으로 상이 낮은 것이
평균 키가 훨씬 낮았던 조선시대 사람들에게는
적당한 높이였다고 하는 주장도 있고요.
그리고 휴대하기도 편하고 무게도 무겁지 않아
벽에다 걸어놓고 밥 먹을 때만 내려다 놀 수 있고
안 먹을 때는 다시 벽에다 걸어서
소반이라고도 하는 상은 다리 위에 받침을 올려놓는 형태로
다리 모양이나 받침 모양에 따라 디자인과 명칭도 정해지곤 했습니다.
더불어 소반은 크기가 크지 않아서 1인용인 경우가 지배적인데
따라서 손님이 와서 같이 먹어야 할 경우에는 소반을 하나 더 내다 가져왔고
양반 집 한옥에는 소반이 벽에 걸려져 있는 이유도
이런 손님이 왔을 때를 위해서랍니다.
김홍도의 그림 주막을 보시면 역시 1인용 소반이라는 걸 볼 수 있죠.
조선 후기 실행자 서효군은
중국인들은 의자에 앉기 때문에 매번 두사명이 하나의 탁자에 함께 앉아 식사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은 땅에 앉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오로지 한 개의 소반을 준다라고 기록해 두었죠.
소반의 디자인은 지역적 차이가 컸고
특히 해주, 나주, 통영이 유명했는데
해주반, 나주반, 통영반이라는 고유 명칭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조선시대 밥의 문화에 대해 알아봤는데
정말 다행인 건 보릿고개가 이제는 없어진 게 아닐까 합니다.
봄철 기근에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림을 참아야 했던 철인데
5, 6월 쌀은 다 먹어가고
보리 수확까지는 시간이 남은 이 기간이
우리 조상들에게는 지옥의 기간이었죠.
이 보릿고개는 1960년대까지 있었고
70년대 들어서야 사라졌습니다.
근래에 정말 많고 다양한 음식들을 접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역시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식들은
알게 모르게 전통이 배어있는 음식들이 아닐까 합니다.
그럼 역사독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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