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史] 음수의 의미와 수학 정착기

이상엽Math
5 팔로워
후원 | 우리은행 1002-031-127166 (이상엽)
━─ ↓↓ 책갈피 ↓↓ ─━
01:11 1. 음수의 수난기
06:03 2. 음수의 방황과 정착
14:29 3. 음수의 형식화
19:21 마치며
정수의 형식적인 정의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눌러 영상을 시청해주세요 ^^
https://youtu.be/VXakafYENhU
#음수 #정수 #마이너스
http://이상엽math.com
안녕하세요 1 3 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오늘의 메인 소재이기도
1 은수 라고 하는 개념을 아주
자연스럽게 당연하다는 듯이 쓰고
있습니다
당장 중 학생들만 된다 하더라도 뭐
일상생활에서 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수학 공부할 때만큼은 응수 라고 하는
개념을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쓰고 있죠 오늘날 음순은
마치 양수 만큼이나 이 수학의
기초적인 개념으로써 우리들의 인식
속에 잡혔기 때문에 사람들은 마치
음수가 양수 만큼이나 아주 옛날에
서부터 자연스럽게 수 학계에서 쓰여
왔을 것으로 느껴지곤 합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이 음수가 수
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근대 시대인 18세기 무렵부터
라는 사실을요 불과 17세기 무렵만
하더라도 요 이 음수 란 개념은 수
학계에서 인정 받지 못하는게
점이었습니다 많은 수학자들은 이
은수를 외면 했고요
당대 최고의 수학자들이 라 하더라도
이 음수를 다루는 것을 매우 꺼려
햇죠 그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오늘날처럼 이 음수가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된 것인지 오늘은 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음순은 그 시작 시기 부터 양수
보다는 매우 뒤쳐져서 시작했습니다
양수 에서는 이미 유리수 를 넘어서
무리수 까지도 발견해서 쓰이고 있던
시기에 서야 비로소 의무 수는 그
첫발 내리 겠죠 기록을 뒤져 보면 이
은수의 대한 첫 시작을 동양에서 부터
시작이 됩니다 한생명 중국의 위대한
수학자 윤이가 쓴 9장 산 술에서 이
은수는 계산에 필요에 의해서 최초로
도입되기 되었죠 그리고 인도의 선의
6세기 무려 불안하고 타라는 수학자
있죠 이브라 막 오타가 쓴 저서에서
이 양 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써 의미
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브라마 부탄은 이 숫자
위에다가 작은 원을 그려서 은수를
표기했습니다 아만 중국에서도
인도에서도 이 음순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양수의 보조 개념으로써
양수 값을 얻기 위한 그 과정에서
쓰이다 뿐이지 양수와 본 등 안
취급을 받았었던 건 절대 아니에요
예를 들어서 x 더하기 1은 용 이런
아주 간단한 방정식 2 있다
이 시기에 수학에서는 2x + 1은
0 일은 방정식을 풀 수 없다 라고
규정 지었습니다
그 시간이 흘러서 12세기 무렵
이슬람 수학자 r4 말은 보다
본격적으로 이은 수의 덧셈과 뺄셈
등이 연산에 대해서 자신의 저서에서
다루는 데요 2 r 3 r 도 자신의
저서에서 답이 음수 인 방정식의
대해서는 적합하지 않은 방정식 이라고
분류를 했죠 즉 열까 정리해 보자면
이 음수 라는 개념이 시작된
동양권에서는 음수가 비록 드문드문
쓰이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양수와 같은
어엿한 하나의 수로 써 인정 받지는
못했다 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서양은
어땠느냐 서양을 훨씬 더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서양에서는 이은수 라는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다가 최초로
도입된 것이 이슬람 것을 통해서
14세기 무렵의 이슬람 문서들을
통해서 최초로 이 음수 라는 개념이
소개 되었을 것으로 추정이 되요
그런데 이 음수가 소개 되고 나서도
수세기 동안 서양권 에서는 이 은수가
의미도 꼭 심지어 실용적이지 않다
라고 하면서 완전 무시 받았습니다
1500년대 이탈리아 수학자 카르다노
가 최초로 이음 수해를 갖는 방정식을
취급해 보려고 시도를 했는데 결국
실패하고 그 또한 이를 불가능한 해
라고 결론 지어 버렸죠 아니 왜 그냥
은수의 라고 말하면 되는거 아냐 그걸
왜 인정하지 않아 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계시 모르겠지만 이런 현상은
사실 오늘날에도 이은수 라는 개념을
처음 배우는 중 학생들한테 선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게 세상이에요
갓 중학교에 입학한 학생한테
1을 더해서
0이 되는 수가 무엇이냐 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 것 같나요
10중 팔고 그런거 없어 라고 대답할
겁니다
뭐 선행학습을 하지 않았단 말이죠
물론 당시에 이 음수가 수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윤을 보다
본격적인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 들에 대해서는 좀 있다가
아이 살펴보도록 하구요 아무튼
이후로도 이훈 수에 대한 홀대 는
계속 이어집니다 16세기 프랑스
수학자인 비해 트는 요 이은수 가
어떤 물리적인 성질이나 직관이 없다
라는 이유로 아예 보조 수단으로서
조차도 이 음수를 취급하지 않았다 고
해요 그러다 17세기 들어 서영 급
수학자 윌리스 4 드디어 은 수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저서에서 은수를 무한대 보다 큰
개념이라고 규정 지었죠 으엉 보다는
작은 데에 무한대 보다는 큰 개념이란
2
지금의 상식으로는 무식해 나쁘게
안되죠
4 그와 더불어서 당시의 써 짤은
홀트 에 의해서 2 의 수에 대한
뜨거운 논쟁 하나가 펼쳐지게 됩니다
수업 자료 노트는 여러분들 다들
아시는 수학자 파스칼에게 절친 으로도
알려져 있죠 암튼 a 멀티는 당시에
이런 주제를 던져요
- 1대 1은 일대 - 일인가
이 문제는 당대 수학 게 아주 뜨거운
이슈가 되는 데 a 널 때 본인은 이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했다 고
하죠 2 - 일이 1보다 작다 는
가정 하에 이 작은 것과 큰 것의
비가 어떻게 큰 것과 작은 것의 b
와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라고요
지금이라면 고등학생 만 되도 그
당연히 같이 라고 하겠지만 오히 당시
음수의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였는지
대략 짐작 가시겠죠 말고도 2 의
수가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기에 재미
나이라 들 수학자들의 크기 역사들
만약 묶지 는 못할 만한 그런 해프닝
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하물며 18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수학자였던 달랑 벨을 조차도 밥이 은
수로 나오는 문제는 애초에 틀린
과정을 옳다고 했기 때문이다 라고
주장했다 고 하죠
자 그렇다면 왜 그 오랜 기간동안 수
많은 수학자들의 손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이 은 순수 학계에 자리잡지
못했는가
우선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꼽아 볼
수 있는 것을 예로부터 학자들을 이
수학을 실제적인 관점으로 써 바라
받기 때문입니다 즉 현실의 이 자연의
실존하는 그런 개념을 수 에다가
적용하는 것이 고전적인 수학의
이데올로기 얻죠 어떤 물건 하나 이
물건 하나가 곧 일이고 1 더하게
이해를 한다는 것은 물건의 물건
하나를 더 얻는다 라는 개념 저런
받아들인 겁니다 지금에서 보면 상당히
초등 적인 인식이 줘 당연히 이런
고전적인 수와 관점에서 는 - 이라는
음수 같은건 이것을 실체와 시켜 볼
수 있는 그 대상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의 인식에서 음수가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겁니다
그래도 중요한 사상 하나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아리스토텔레스 라는 분이 있었죠 그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이수 라는 것은
양 이라는 개념의 하위 개념으로서
받아들였습니다 즉 수 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뭐 크기라 듯이 길이라 등
시 갯수 라든지 이런 양의 개념을
표현하는 수단이 없을 뿐인 거죠
당연히 길이 라든지 갯수 같은 관념이
음수의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이러한 관념은 음수가 수
학계 받아들여지지 못한 주요한 이유죠
그리고 0
이수 로써 영예의 부여된 철학적
의미가 또 은수가 수밖에 받으러 지
못한 주요한 이유 중에 하나 있습니다
예로부터 이 숫자 경우는요 아무것도
없다 라는 철학적 의미가 내포된 개념
이었거든요 즉 사람들의 인식 상식
속에서 늘 이염 보다 작은 무언가가
있다는건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 더
없는 것 싫어하는 기타 라는 건데
이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그런
관념이 더 버리자 나요 이런 이제
시대 분위기 저게 수학 이데올로기
들이
이음 수 가수 학계에 진입하는데 그
장벽에 됐던 것이죠 사실 이 음수의
계산 법칙을 합리적으로 설명해 주는
그런 통일된 모델도 없었구요 하물며
이 은수를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어떤
통일된 그런 표현 법도 없었죠 그런데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보세요 적어도
아리스토 텔레스
혹은 더 그 이전부터 이어져 오던
이데올로기 인데 이게 쉽게 변화
겠어요 당연히 아니죠 사람들의 상식과
4성 이라는 게 그의 쉽게 바라는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은수 란
개념을 소개된 이후로도 약수 세기
동안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았던 겁니다
그리고 이 이데올로기의 변환해
세계 각지의 다양한 수 학자들에
의해서 조금씩 조금씩 한 발짝 한
발짝 이루어지게 됩니다
우선 이 변화의 물꼬를 튼 분이
누구냐 라고 하며 박 그 유명한
레온하르트 오일러 이십니다
당대 수 학자들 당 배수 학계가
인수를 받아들이지 않아 썼던 가장 큰
문제 이 수학이란 실제 하고 구체화할
수 있는 것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실체와 를 할 수 없는 은수 라는
개념을 받아들일 수 없다 라고 하는
이 문제를 오일러 께서는 자신의 저서
컴플리트 인 트 럭셜 2rs 에서 그
유명한 빛과 잉 모델을 제시하면서
돌파 하지요 이 두 꽈 이 모델이란
양수를 이익으로 은수를 빗으로
비유하는 급이 율법을 말하는데요
은수를 더 한다라는 것은 곧 빚이
늘어 간다 라는 의미이고 음수를 뺀다
라는 것을 곧 기지 사라진다 라는
의미로 해석을 한 것입니다
직관적으로 상당히 와닿는 그런 의미
부여를 한 것이죠 뭐가 료 실제로
당대 최고의 수학자 들도 매우
혼란스러워 햇던 - 의 - a 같은
것을 어떻게 해석하는 야 우선 괄호
안에 - a 라는 것을 에 이만큼의
빚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를 뺀
달하는 것은 곧 이 빚이 줄어든다
라는 의미죠 누 비치 줄어든다 라는
것은 곧 빚을 그만큼 갚았다 라는
얘기 인거고 이 돈을 받은 사람
입장에서는 그만큼 무기 생겨났다 라는
의미로도 해석이 되죠 즉 그 사람
입장에서 늘 a 만큼 2 플러스 가
됐다는 겁니다 따라서 오일러 늘 -
의 - 베인을 곳 플러스 a 와
의미적으로 같다 라는 결론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오일러 가 제시한 이 비꼬아
이 모델을 사람들의 인식에 은수 라는
개념을 실존하는 개념으로써 인 시켰을
뿐만 아니라 우메 기우 로써의 - 로
뺄셈 기호로서 의 - 2 두려
혼용으로 더 찾아 없는거 혼란을
획기적으로 없애는 역할을 했습니다
다만 이 빛과 이익에 대한 비유 법을
오일러 가 직접 창안한 것은 아니고요
사실 동양에서는 군대 중국에서 부터
아주 흔하게 쓰여 지던 음수의 대한
비유 법 이었습니다
그런데 오일로 께서 자신의 저서에
이를 쉽고 공포 함으로써 서양권 수
학자들도 이를 알게 된 것이죠 하지만
오일러 덕분에 수 학계에서 이 은수를
어엿한 수로서 받아들이기는 되지만
오늘날처럼 양수의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 엉
것들을 다시 피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는 여전히 수 라는 것은 양
이라는 개념의 하위 개념일 뿐
이었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이은수 를 받아야 되냐
양수 4 양수 될 무슨 의 음수대 로
독자적인 양의 개념이라고 받아들인 것
라 그러니까 양수는 양수 나름대로 양
해야 그리고 은수는 음수 나름대로
구매 양의 개념으로써 독립적인 양의
개념으로 인식을 한 겁니다 이 수가
양의 하위 개념 이라는 그 인식의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을 18세기 영국
수학자 매 클로 린의 의해서
부터입니다 매크로 리는 일생동안 수
학계의 수 업적 대상이 실제로 존재할
필요는 없으며 그 실제 썸 과는
무관하게 관계가 분명하게 인식되고
연역 되는 것이 바로 수학의
본질이라고 설파 줘 이른바 수학의
형식적인 본성을 주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을 보다 진일보
시킨 사람은 19세기에 잉글랜드
수학자 조지 피콕 그리고 동시대에
수학사 한 캐 를 꼽을 수 있습니다
특히 1 케르 그의 눈 문 국소 수
책의 에 대한 이론 에서 수의 개념을
이른바 양과는 관련이 없는 츤 수안
형식적인 존재라고 못 봤죠
이제 그 이후로 수 학자들을 이수
체계의 실제적인 예를 더 이상
자연에서 찾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수 책의 랄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발명 되는 것이라고
인식하게 되어 쪼 수는 그저 형식적인
관계를 표현하는 기고 에 지나지 않게
된 겁니다 바로 이러한 관점을 현대의
수학 으로도 이어지게 되죠
어 다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
영 이라는 개념이 아무것도 없다라는
그 철학적인 관점을 탈피하게 될 그
계기는 의외로 엄 뿐만 거쳐서 찾을
수 있는데 바로 프로이센의 물리학자
파렌하이트 라 자신이 만든 온도계에
여 아래의 나가 은수 로써 그 눈금
을 표시한 때부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팔에 사이트다 만드니 온도계가
상용화가 되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인수를 여 아래의 숫자 라고 인식하게
되죠 철학적으로 절대적인 그런 개념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기준점으로 써
영에 대한 인식이 변화 하게 된겁니다
그래서 참 백마디 말보다 눈으로 한번
보는게 낫다 는 말이 있죠
너 추가적으로 이음 수의 계산 법칙을
체계화 한 대표적인 수학자로 는
피에르 드 페르마 그리고 이 운수를
기아 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정립한
대표적인 수학적 그는 이 페르마 에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름에 데카르트를
꼽을 수 있습니다 10가지 언어란
설명을 위해서 좀 시대도 왔다갔다
하면 상당히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요약해 보자면 이렇게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세계 각지의 다양한
수학자들이 수백 년 동안 조금씩
조금씩 변화의 물결을 일으켜 왔고
그로써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오던
이데올로기가 완전히 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수학자들이 수와 얘는 은수를
어엿한 하나의 수로 써 받아들이게
됐다 라는 것이죠
어느 한 순간 어느 한 두 사람의 수
학자에의해서 뚝딱하고 이 음수가 쏘아
께 받아들여지게 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자전 파티에서 말씀드린 대로 술을
자연에서 찾는 그 실제적인 관점을
탈피하고 그저 형식적인 관계를
정의하는 부부로서 바라보는 그런
관점이 정착되면 따라서 수학자들은
자연스럽게 더 이상 몸 수의 존재 썽
같은 것에 대한 의문은 뭐 품지 않게
됐습니다
그저 합리적으로 약속한 또 하나의 수
이자 기호 체계 1분 뭐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죠
그리고 20세기 초 비로소 독일의
데스 학자의 시 다 비트의 힐베르트
에 주도하에 이수하게 모든 경우에
대한 형식화 가 진행됨에 따라서 이
은수를 비롯한 수 책의 또한
공식적으로 체계화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
순을 폐하 노곡리 계로서 형식화 돼죠
그리고 은수를 포함한 점수 체계 늘
이 패한 5분에게 로써 형식화된
자연수 책의 를 확장 시킴으로써 그
정의가 완성됩니다 이에 대한 내용을
다뤄 드린 것이 바로 제가 지난 번에
올린 6 영상입니다
킬 베르트 아 왜 수 학교에 전반에
걸쳐 그로 형식화를 주도 했느냐 그
개개인을 하여 제가 오늘 말씀드린
은수가 수 학계 받아들여진 계기
만큼이나 상당히 다양합니다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첫번째로 무한이라고 하는 이
어마무시한 개념의 등 자 그리고
러셀의 역설 것 같은 그런 여러
논리적인 역설 들의 등장이 큰 몫을
했죠 딱 말고도 다양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제 지난 영상을 보고 항 당수
분들께서 오해하시는 것 중에 어떤것이
있냐면 수학자들이 점수를 자연수
로부터 이렇게 형식적으로 정의한 것이
이게 무슨 가치가 있느냐 차림 기준
알고 있던 방식대로 정수를 운용하는
것이 훨씬 더 간편 하지 않느냐
되려 더 복잡해지는 거 아니냐
수학자들이
정수를 운영하고 연산을 할 때 제가
지난번 말씀드린 그러한 구성적인
정의의 를 활용해서 연산 안산 초
당연히 연산이 나 기본적인 이론 의
전개는 원래 알고 있던 방식대로
전개를 합니다 다만 그렇게 이론을
전개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냐
그 수학적인 백그라운드를 제시를 할
때는 지난번에 말씀 드리 에 그
내용을 제시를 하는 겁니다
음 그러니까 정수 m 곱셈의 대한
한동원 용의 성질 곱셈의 항상 월 뭐
덧셈 에 대한 역원 이라든지 자연수의
여건을 의미의 정수 표현하는 그런
것이라든지 등등등등 이정수 책의 에서
실제적으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연상
법칙들이 모두 이 정의로부터
합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죠 라고 그냥
잡을 판명 그러 가지고 이거 수가
이동하는 거라고 이렇게 설명해도 훨씬
간단하고 이해 되지 않느냐 라고
하신다면 상당히 많은 반박 뜰을 제가
드릴수 있는데 하물며 # 팩맨 에다가
수를 표시했다 그건 우리가 술을
벡터로 섭 알아보겠다 라는 건데
하물며 대수 구조상 벡터는 벡터
건가요 즉 가군 모듈의 입 아니지만
정수 라는 것은 가방 1 제 컴터
티르 위해 1 중이죠 애초에 그대
수석 인 성실히 공유된 그런 개념이
아닙니다
술을 함부로 벡터로 보면 안돼요
한번 내 우리가 정수를 곱셈 하듯이
이 벡터 란 것은 그렇게 곱셈 할
수가 없어요 오로지 그 연산 법칙 1
설명하겠다 고
이것의 관계를 어거지로 정의를 내린다
그가 훨씬 더 비율 저 줘 수학에서
왜 그런 형식적인 빈틈없는 논리가
필요하냐 실제로 수학의 세계 늘
직관과 b 직관 의 영역을 마음대로
넘나들 기 때문입니다
짝수 의 개수는 2 4 6 8 10
으로 쭉 나가는 그 짝수 들의 개수는
자연수의 모든 개수가 같아요 이
자연수의 총 개수는 점수에 총 개수
같습니다 그 정수의 총 개수는 분수
형태로 편에 서 있는 모든 유리수
유리수의 모든 개수와 같아요 즉
짝수의 계수는 많으며 외 배수 갯수
7 배수 갯수 키 모든 것의 유리수의
개수와 동등 합니다 이런 처음 들으면
황당한 그지없는 이런 명세 들이
참인지 거짓인지 증명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 논리에 근간 에서부터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네요 빈틈없고
탄탄한 기초가 필요한 겁니다
쉽게 말해서 제가 지난번에 다르다는
정수의 정의의 라든지
하면 자연스레 정의 라든지 뭐
유리수의 정의 빌은 뭐 당장에 우리가
정수 자연수 유리스 그 자체를
파악하기 위해서 만 한게 아니에요
더군다나 제가 지원 것들이 뭐 정수
자연수 1일 수 이런 것들을 이수하게
세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가장 기초적인
그 재료들이 기 때문에 이제 로
들로부터 파생될 무수한 직관적인 b
직관적인 그 이론들 전개에 있어서
혹여라도 어떤 논리적인 허점이
발생하지 않도록 아주 빈틈없이 탄탄한
그런 형식적인 정의가 필요했던 것이죠
자 오늘은 운수가 수 하께 받아들여진
과정과 그 이후 형식화 논의 까지
가볍게 다뤄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쪼록 유익하고 흥미로운 시간이
되셨는지요
여담이지만 노파심에서 드리는 말씀인데
저는 유튜브 채널에서 영상들을 통해서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4
뭐 교육을 이런 식으로 해야 된다라는
그런거 절대 아닙니다 제가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수학 이지
교육하기 아니에요
더군다나 학생들을 아이들을 이런식으로
지도와 된다 이런 얘기 하는거 절대
아닙니다
얼마전에 채널 커뮤니티에 올려
드렸지만 채널 시청자 층에서 학생
비율은 6% 도 채 되지 않아요
애초에 제가 기획 의도를 그런 식으로
잡지도 않고요
혹시라도 여러분께서 어떤 영상에서
보다가 제가 아이디를 이런식으로
가셔야 된다라는 식의 뉘앙스를
느끼셨다면 그건 정말 잘못된 오해
입니다
이제 저는 4번 영상 마다 수 항해기
만 가득 채워 놓게 해도 아주
빠듯하고 든요 이쯤 말씀드렸어요
더이상 이와 관련된 엎은 오해가
없으시리라 고 믿고
어 부티크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구요
끝으로 1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하시는
모두 선생님들 저도 아이들을 가르쳤던
사람으로서 그 곳 m 을 펴 얘기
알기 때문에 진심으로 존경하고 응원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선생님들의 어깨에 이 나라의 미래가
실제로 짊어져야 있어요
오늘 영상을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다음에 또 유익하고
흥미로운 수학 영상으로 여러분을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올드 긴 시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