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선 상상도 못하죠" 탈북녀가 눈물날 정도로 감격한 한국의 '이것'|강은정 2부

달란트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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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상은 11월 18일에 촬영되었습니다. (시청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유튜브 채널 '강은정TV' 바로가기: https://www.youtube.com/@TV-kl6yv/videos
01:08 "100년 후로 온줄.." 한국 온 탈북녀가 기절초풍한 충격적인 이유
09:15 한국에서 교통사고 낸 탈북녀가 경찰서에서 충격받은 이유
#탈북녀 #강은정 #북한현실
▶강은정 1부: https://youtu.be/r1L-86wia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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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후로 온 것 같다는 말이 100% 저는 와닿는 게 뭐냐면
한국에 와가지고 집이 완전히 궁전인 거예요.
그 화장실 안에 다 있잖아요.
목욕 한번 하기가 진짜 힘들었거든요, 북한에서.
평양에서도 이렇게 샤워기 마음대로 툴고
뜨거운 물 언제든 나오고 이게 없대요.
야, 여자가 운전한다는 건 상상도 못하거든요, 북한에서.
근데 남자들도 출신 성분 안 좋으면 운전을 못해요.
승리 오팔이라고 목탄차예요.
아, 작체적으로 만드는구나.
만드는데 자동차에 불을 떼서 가는 거예요.
진짜예요?
제 꿈이 뭐였냐면
아버지 엄마를 제 차에 태워서
아버지 엄마가 딱 배정받은 국가의 국민 임대까지
모시고 가고 싶은 거예요.
제 차에 다 모시고 오는데 너무 행복한 거예요.
밤에 드라이브 다 돌아다니니까
야경도 보고 있네, 저녁 야경도.
직진하려고 하다가 딱 들이받은 거예요.
경찰이 오고 막 이러길래
나 완전 죄인이구나 생각하고
그리고 이제 많은 탈북민들이 한국에 처음 오자마자
약간 타임머신을 타고 100년으로 온 것 같다.
1950년도에서 2000년대로 온 것 같다.
그런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인촌 대교 등 탈북민들이 한국에 와서
특히 놀란 부분은 무엇이 있을까요?
진짜 뭐 많이 있죠.
사실 저는 타임머신이라는 말도 몰랐어요.
아, 북한에서?
네, 몰랐고 여기 와서도 몰랐었는데
그냥 저는 과거에서 미래로 왔다.
이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어느 분이 이 말을 딱 쓰는데 와닿더라고요.
100년 후로 온 것 같다는 말이
이게 100% 저는 와닿는 게 뭐냐면
북한은 지방이랑 평양 차이도 70년 차이나요.
아, 그렇구나. 차이가 엄청납니다.
그러니까 평양에는 거기가 다 있어요.
다 있어도 대한민국만 못하거든요.
그래도 지방이랑 비교하면
완전 북한의 또 다른 왕국이거든요.
1차적으로 저는 한국에 와서 놀랐던 게
도로였던 것 같아요.
도로가 얼마나 매끈하고 좋은지
거기다가 사람들이 여기는 잘 걷지를 않잖아요.
내가 걸으려고 안 하는 게 아니라
걸을 수 없게끔 시스템이 딱 되어 있어요.
그러네, 진짜.
난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북한에서는 출근도 걸어서
퇴근도 걸어서
그래서 자전거 한 대 있으면
진짜 벤츠 한 대 입는 느낌이었어요.
한국식으로 표현을 하잖아요.
그 정도로 정말 그게 이동수단으로 참 좋았는데
여기는 보니까
제가 하나운을 나와서 집을 배정받은 게
부천이었거든요.
근데 처음에 나갈 때 어디로 가야 될지 모르니까
도우미 이모한테 물어봤더니
아파트에서 내려와서 그 정거장에
딱 거기 가면은 버스가 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 나갔어요.
나갔더니 전광판에 몇 번 버스
내가 그때 12-1번인가를 타고 가야 되는데
그게 몇 분 있으면 도착한다는 것까지
딱 서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거 타고 저는 북한처럼 생각하고
몇 시간 가야 되는 줄 알았어요.
한 10분도 안 가서 5분 가니까 내려주더라고요.
거기서 내려가니까 바로 전철인 거예요.
이렇게 교통수단이 너무 잘 돼 있어가지고
평양에만 가야 지하철을 볼 수가 있대요.
저도 못 가봐서 모르겠는데
그리고요 고속도로도 웃긴 게
남포고속도로 무슨 뭐 이렇게 해가지고
우리는 거기가 다 고속도로잖아요.
그리고 여기 뭐 대통령 다니는 길이 따로 있어요.
없잖아요.
근데 북한은 1호 도로라고 해가지고
김부자들이 다니는 도로가 따로 있대요.
그런데만 이제 이렇게
피치포장이나 이런 걸로 다 잘해 놓고요.
그리고 제가 살던 그 양강도 대홍단에
살다가 탈북한 곳이죠.
거기도 김부자들이 이제 오게 되면
딱 다니는 1호 도로라고 따로 만들어놨어요.
근데 그 도로도 다 흙도로여가지고요.
뭐 이제 언제 이렇게 현지시탈을 나온다 하면
다 동원돼가지고
방망이 들고 그냥 다지면서
돌 하나 건물 하나 있을 때라 걷어내고
쫙 길을 만들고 이랬었거든요.
근데 여기 오니까 도로예요.
사람도 안 보여요.
근데 도로가 너무 잘 돼 있고
일단은 사람들이 계속 걸어다니니까
제 피부적으로 가장 와닿았던 거는
도로였던 것 같아요.
이동수단이랑.
그리고 그다음에 제가
참 좋다라고 이렇게 느꼈던 게
화장실.
화장실, 밤에 무섭게 안 나가도 되잖아요.
그런 것들이 이제 보면
일단은 아무리 좋아도 나한테 공감이 돼야 되잖아요.
이 화장실만 봐도
그 화장실 안에
세상에 저는 화장실에 거울이 있을 거라는 거
상상도 못했거든요.
처음에 중국을 딱 넘어왔을 때
화장실이라고 해서요.
저는 화장을 하는 방인가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렇죠.
북한은 변석관이라고 그러거든요.
근데 제가 처음에 중국에 와서
이렇게 갔던 집은
그렇게 잘 사는 집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그 북한의 일반 아파트에 있는
그런 위생실이죠.
그거랑 비슷한데
그래도 조금 괜찮기는 하더라고요.
근데 한국에 와가지고
저는 이제 연구임대 아파트를 봤다 보니까
그러고 갔는데
그 안에 진짜 화장실이 엄청 작기는 했어요.
그래도 거울이 다 달려있고
그리고 도우미 이모가 자기 집을 초대를 해서 갔는데
집이 완전히 궁전인 거예요.
어차피 그걸 떠나서
그 화장실 안에 다 있잖아요.
화장실도 볼 수 있고
거울도 볼 수 있고
세수도 할 수 있고
샤워도 할 수 있잖아요.
목욕 한번 하기가 진짜 힘들었거든요, 북한에서.
물을 길어와야 되고
데워야 되고
집 안에 목욕탕이 따로 있어요.
없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정말 부끄러운 얘기지만
겨울 같을 때는
두 달에 한번 목욕했던 것 같아요.
그렇구나.
다 그런 건 아니겠죠.
근데 제가 제 수준에서 살았던
비슷한 계열의 사람들은 다 그랬어요.
그래놓고 이제 목욕하는 날 저녁은
복구해야 되니까
우린 딸이 둘이었으니까
엄마랑
우리 여자들끼리 하고
다음 날은 우리가 나가고
아버지하고 오빠가 목욕하고 이랬었거든요.
이런 것들을 볼 때
얼마나 놀라워요.
아니 드라마 속에서만 보던 거
샤워기 틀고
저도 그거 따라해봤어요.
수글레스 받으면 남자든 여자든
화장실 들어가서 물을 받으면서 이러더라고요.
저도 그거 해봤어요.
좋더라고요.
비 맞는 것 같고
이런 데서
그리고 너무 이거는
제가 놀란 게 뭐냐면
사람이 정신적 건강에서
위생이 진짜 중요하더라고요.
위생.
제가 아침에 늦잠 자고 일어나고
씻지 않으면 정신이 안 드는데요.
벌써 딱 씻고 나와서
스킨 로션 바르고
드라이하고
커피 한 잔.
얼마나
이게 있잖아요.
그 전과 후가 완전 바뀌는 거예요.
그때 행복 지수가 있잖아요.
엄청 올라가요.
그러니까 북한에서는
평양에서도 이렇게 사람들 못 써요.
저는 평양을 못 가봤으니까 모르잖아요.
그래서 평양에서 살다 온 친구들을 많이 아니까
많이 탈북하셨죠.
박성진 오빠도 나왔었잖아요.
제가 소개해드렸죠.
물어보니까요.
평양에서도 이렇게 샤워기 마음대로 틀고
뜨거운 물 언제든 나오고 이게 없대요.
우리 보통 대한민국에서는
쌀밥 기본적으로 먹잖아요.
뜨거운 물 샤워 기본적으로 다 하잖아요.
못하는 사람 없잖아요.
북한은 그 지방과 평양의 70년 동안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평양도 왜 수도 시절이 안 되거든요.
그리고 물을 또 덮이려고 하면
보일러가 돌아가야 되는데
전기가 있어요.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국에 오니까
저는 도로 시설이랑 화장실의 이런 문화들이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하나는 운전이었던 것 같아요.
여자가 운전한다는 건 상상도 못하거든요.
북한에서.
근데 남자들도 출신 성분 안 좋으면 운전을 못해요.
일단은요.
왜 운전을 못하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러게요.
차가 없잖아요.
차가 없으니까 차가 왜 없겠어요?
시장 경제가 아니니까.
개인이 사적 세상을 소유할 수 없으니까.
근데 갑자기 궁금한 게
북한에서 돌아다니는 차는 어떤 차예요?
수입해오는 차잖아요.
수입해온 차들도 있었어요.
옛날에 내가 탈북하기 전에
일본에서 들어온 차들 이스즈라고
파란 차들이 들어왔었어요.
감자 고장이니까 감자 날라야 된다고.
그렇게 오는 차들도 있고요.
기본적으로 북한 내부 국내 자동차죠.
승리 오팔이라고 목탄차예요.
자체적으로 만드는구나.
만드는데 자동차에 불을 떼서 가는 거예요.
진짜예요?
네.
승리 오팔이라고 있어요.
약간 증기기간 그런 느낌으로?
네. 그런 느낌으로.
휘발유로 가는 차, 디젤리로 가는 차도 있는데
대부분이 강냉이, 옥수수 송치라든가
찬나무숲 이런 거 놓고
불 떼면서 이렇게 하면
여기 불 풍기면서 가거든요.
그 정도고 차가 있다고 해봤자
기업소당 한 대,
농장은 작업반당 트랙토로 한 대
이 정도 있는데 기름이 없으니까
잘 못 움직이고 이러거든요.
그런데 그런 차들조차도
운전이라는 걸 너무 하고 싶으니까
너나 나나 하고 싶어 하는데
일단 돈이 있어야 돼요.
왜냐하면 그 차가 고장났을 때
내 자비로 내가지고 수리할 수 있는 능력이 돼야 돼요.
대신 이 사람은 그 번전을 어디서 뽑냐면요.
이동수단이 아까 말했다시피 없잖아요.
사람들이 다 걸어다니고 그러니까
예를 들면 내가 경기도 부천에서
여기 강남으로 와야 된다 하면
이쪽으로 오는 차가 있으면
사람들이 3km밖에 멀려요.
타고 오려고.
그러면 그 운전기사는 차비를 받는 거죠.
그래서 자기가 들였던 돈을 뽑아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정도인데
지금은 그래도 중국 차들이 많이 들어왔대요.
그래가지고 이렇게 소유권을 인정을 안 해주니까
그 기관에다 등록을 하고
얼마를 들여놓고 운전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많이 바뀌었죠.
근데 어쨌거나 여자가 운전하는 거는
꿈도 못 꿔요.
근데 드라마가 사람 참 망쳐요.
많이 망가졌어요.
아우 진짜.
제가 중국에 딱 넘어왔을 때
봤던 그 가울동화 드라마에서
뭘 제일 인상 깊게 봤냐면요.
여자들이 이렇게 생머리를 하고
한 손으로 운전을 하면서 담배를 피는데
담배는 그렇게 좋게는 안 보이더라고요.
워낙 저도 보수주의로 살다 오다 보니까
근데 여자가 운전을 하는 게 너무 멋있는데
그 차가 겁나 예뻐요.
빨간 차예요.
진짜 예쁜 거예요.
근데 한국에 오니까 나도 언제 운전할까 해서
너무 운전하고 싶었는데
운전하려고 하니까 돈을 못 모으겠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4년 만에 차를 뽑았어요.
뽑았는데 왜 뽑았냐면
우리 아버지 엄마가 한국에 얼마 있으면 도착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제 꿈이 뭐였냐면
아버지 엄마를 제 차에 태워서
아버지 엄마가 딱 배정받은 국민 임대까지 모시고 가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때는요.
차 20일이면 나왔어요.
2011년 그때.
지금은 한 몇 달 기다리대요.
인기차전 같은 경우에요?
네.
그래서 가서 계약을 한 게
SM3.
그거를 샀어요.
1,300만 원인가.
할부로.
완전 오벌뚝지도 커요.
그래서 정말 혁명적으로 갚았어요.
혁명적으로?
정말 미친 듯이 일해서 그걸 갚았거든요.
우리 아버지 어머니 딱 나오셨을 때
모시러 가잖아요.
제 차에 다 모시고 오는데
너무 행복한 거예요.
처음으로 가족들이 한국에서 다 만났는데
막내딸이 이제
그 당관부들도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의 삼성차를 끌고 가서
물론 그게 중용이지만
우리 다섯 식구가 타니까 꽉 차더라고요.
이래서 우리 오빠 새끼는 완전히
우리 오빠는 너무 귀여운 게
은병아, 이거 네 차야?
너 완전히 승급했구나.
이러면서 눈이 이만해서
내 옆에 앉아서 자꾸 만져보는 거였어요.
나 운전할 때 만지지 마 사고나 이랬었거든요.
근데 이게 운전을 너무 하고 싶으니까
뭐부터 해야 돼요?
면허를 따야 돼요.
그렇죠. 맞아요.
저 면허 9번 떨어지고 10번 만에 붙었어요.
난 강서적으로 쳐다보기 싫어요.
그쪽 가서 많이 하니까
근데 제가 좀 머리가 나쁘긴 나쁜가 봐요.
분명 맞는 것 같아서 했는데
매번 1점짜리로 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겨우 진짜 어렵게 어렵게
그걸 따서 그렇게 했는데
우리 아버지 어머니 너무 행복해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맨날 그거 있잖아요.
나와서 밤에 드라이브 다 돌아다녔어요.
야경도 보고?
저는 진짜 한국에 오니까
이것만 봐도
북한에서 달구지 하나 타고 다녀도
육체가 편하니까
그 달랑 달구지 모는 사람도
건쇠가 장난 아니에요.
근데 한국에 안 왔으면
제가 운전이라는 걸 어떻게 해봤겠어요.
그러고 나서 그 차를 타라고 그랬어요.
열받아서
왜요? 갑자기?
이거는 조금 우리 집안에 좀 그런 일인데
아버지를 만났단 말이에요.
엄마랑 만나가지고
차에서 내려서 가가지고
처음으로 먹은 게 오리고기였어요.
온 식구가.
그래서 부추에다가 오리 로스 있잖아요.
그걸 구워서 아버지 넣어드리고
소주 따라줬더니
남조선은 고기도 풀에다 싸먹냐?
정말 맛있구나 이러면서
진짜 하기 애애한 분위기로 집으로 왔어요.
와가지고 엄마는 안 자고
서로 탈북할 때 있었더니
너 보고 싶었었는데
우리 딸이 이렇게 컸구나 이러면서
막 물고 빨고 난리가 났어요.
엄마 아버지가.
근데 그러다 제가 잠들었단 말이에요.
엄마 팔베고.
한참 자고 있는데 누가
울고 있는 거예요. 제 앞에서.
운종아 오빠가 잘못했어. 미안해.
그래서 저랑 2년 차예요.
우리 오빠랑.
눈을 떠보니까
두 무릎을 꿇고 벌벌 떠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너 왜 그래? 그랬더니
운전이 하고 싶으니까
제가 잠들었을 때 운전면허도 없어가지고
제 차를 꿇고 동네에 나갔다가
앞에서 오토바이가 오니까
화딱딱 놀래가지고
핸들을 꺾느라고 꺾었는데
그 아파트에 보면은 이거 뭐야 이거.
우리 콘크리트로 의자처럼
둥근한 거 몇 개 해놨잖아.
거기를 뒤디박아가지고
착 그냥 나가버린 거예요.
어머. 그래서 다음 날에 수리하러 갔더니
150만 원 내려요.
그 다음에 너무 화가 나가지고
사람을 쳤으면 어쩔 뻔했어요.
그리고 안 다친 게 다행이었어요.
이거 봐서 대한민국 도착하자마자
하루도 안 지나도
대형사고를 쳐버린 거예요.
그래가지고 제가 너무 속상해서
그거 이제 시빠졌다.
그러니까 북한 말로 재수 털렸다.
에이 쌍놈 새끼.
이렇게 하고 가가지고
그걸 팔아버렸어요.
안 탄다고.
너무 상처를 크게 받아가지고.
얼마 안 됐는데.
그리고 나서
또 차가 있어야 되겠더라고요.
있다가 없으니까.
그래서 탄 게
이제 그거 뭐예요.
가을동화에서
성애교랑 애기가 바뀌잖아요.
한채영 씨.
한채영 씨 맞나요?
바비인형이라는 연예인이 있어요.
원빈을 짝사랑하다가
오래돼가지고 잘 기억이 안 나.
맞아요. 근데 그 여자분이
그 드라마에서
한 손으로 빨간차를 운전하면서 오는데
그거 너무 멋있었거든요.
그래서 빨간차를 이번에 산다 해가지고
밸러스터를 뽑았어요.
밸러스터요?
밸러스터 약간 달리는 차인데?
네. 포즈카로.
그러니까요.
너무 예쁘더라고요.
그래서 탔는데
잘 탔어요.
2017년까지 타고
그때 교통사고 크게 나면서
제가 이제 폐차를 해버렸거든요.
근데 그때
폐차를 하고 너무 마음이 아팠던 게
물건인데도 너무 정이 들어가지고요.
저의 에마였거든요. 완전히.
근데 웃긴 게 뭐냐면
사고가 났는데 제가 잘못해서 사고를 냈거든요.
집에서 출근하느라고 딱 나왔는데
늦었어요.
마음이 급하니까
여기 황색불을 파란불로 제가
자외선 신호로 잘못 보고 딱 간 거예요.
근데 이렇게 지금 가는데
앞에서 택시도
그 황색불 사이에 직진하려고 하다가
딱 들이받은 거예요.
근데 이렇게 이렇게 해서
제 차가 세 바퀴 돌면서 완전
뚫어진 거예요.
괜찮으셨어요? 몸이?
안 괜찮았어요.
근데 그 순간 있잖아요.
충격을 너무 받다 보니까
에어백이 물론 터져도
위장이 정말 다 그냥
뒤틀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하나님 살려주세요. 이러다가
기절했어요.
기절을 했는데 웃기는 게 뭐냐면
자꾸 이렇게 흔들어 깨우니까 깨더라고요.
정신은 돌아오더라고요.
근데 이게 북한처럼 생각하고
정신이 없었으니까?
아니죠. 정신이 돌아오긴 했는데
북한처럼 생각하고
내가 이제 감옥 가는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고 정신을 잃은 척한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어떤 현상이 발생했냐면요.
제 허락 없이 견인차가 제 차를 끌고 가서
35만 원을 더 내야 되는 거예요.
견인비.
네. 저는 있잖아요.
막 경찰이 오고 막 이러길래
나 완전 죄인이구나 생각하고
법을 처음 겪어보잖아요.
너무 무서워가지고
나는 정신 못 차린 척해야죠.
기절한 척했어요.
돌리고 처음엔 이랬다가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러고 경찰서를 갔는데
이 사람들이 저를
죄인 취급도 안 해요.
그냥 사고 났으니까 법대로 처리하더라고요.
근데 저는요.
완전 북한이란 말이에요.
그 앞에 가가지고 잘못했습니다.
사실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러고 있더라고요.
17년이나 됐는데도
그 갈 일은 사실 없으니까.
그래서 그때 경찰분이 하는 얘기가
저한테 죄송할 필요 없어요.
앞으로 안전운전하면 되죠.
이러는데 그 말 한마디에 충격받았잖아요.
북한 같으면요.
물론 차도 없지만
그 정도로 사고를 쳤다 하게 되면
감옥을 가야 된다든가
이놈 간다.
인권이 어디 있어요.
같은 맥락으로 봤을 때
난리가 나야 정상인데
여기는 아닌 거예요.
난 진짜 북한처럼 생각하고
잘못했다고 형사들한테 가서
그리고 나서 택시 아저씨를 다
물어내서
새차 뽑아드리고
보험으로 다 처리가 됐거든요.
그 차도 폐차였어요.
그리고 그렇게 떠나보냈어요.
군대를 떠나보냈어요.
아 진짜.
지금 운전하세요?
당연히.
그때부터는 지금까지
한 번도 사고를 거의 안 내가지고
조심하죠.
마음이 급하면 안 되더라고요.
그렇죠. 맞아요.
그래서 지금은 아주
근데 저 우리나라 차 너무 좋은 거예요.
진짜 요즘은 뭐
알아서 운전도 해주고
자유주행이죠.
너무 이게 진짜 괜찮더라고요.
이것만 봐도
이 세 가지만 봐도
저는 진짜 북한에서
최상위층도 누리기 힘든
이런 삶을
대한민국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열심히 하면 살 수 있기 때문에
이 세 가지만 봐도
백년은 미래로 왔다고 생각이 들어요.
죽었다 깨어나도 북한에서
이런 차 타볼 일이 없을걸요?
있어야 타죠.
어 정말 기가 막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