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으로 고갱이 고흐에게 해바라기에
화가내는 작품을 그려주는데 고가 그거
보고 굉장히 화를 내요이 그림 속에
등장하는 광인처럼 생긴 자가 나냐
이러면서 그 그림을 보고 좀 분노를
하죠 결국 이걸 빌밀러 터집니다
그래고가 막 술에 만취해서 막 술병
치고 던지고 막 이런 다툼이 이어지자
결국 고갱은 더 이상 못 살겠다
떠나겠다라고 선언을 하자 고는 이걸
약간 말리려고 했었던 건지 아니면
자신 를 표현한 건지 우리가 이제
그것까지는 알 수는 없지만 그
과정에서 고흐가 자신의 길을
[음악]
잘라 처음에 네덜란드에서 활동을 했던
고우가 나중에는 프랑스로 이사를 오기
시작해요 그리고 프랑스에서도 파리에
갔다가 그리고 아르에 갔다가 생
레미에 갔다가 그리고 마지막에 사망한
것은 오베르에서 사망을 하게 되는데
이렇게이 를 다니면서 화풍이 점점
변화가 되는 건가요 고강 이동을 좀
많이 해요 근데 이동을 했던 데에는
다 사연이 좀 있었거든요 일단
86년도 여름에 파리를 가게 된 것은
그때 당시에는 예술의 중심지가 파리다
보니까 유럽의 활동하는 모든 화가들은
다 파리에 대한 선망 약간 이런
것들이 있다 보니 아 그래도 내가
예술하는 사람인데 파리는 한번 가봐야
되지 않겠어 이런 마음이 있다 보니
빠리에 간 것으로 추정이 되고요 그
이후에 이제 프랑스 남부 를 거쳐서
오베르지 올라오게 되는데는 좀 사연이
좀 있습니다 오베르 간 곳은 파리를
벗어나서 파리에서 이제 워낙 힘들게
지내다 보니까 파리를 좀 벗어나서
예술가들만의 유토피아를 좀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아를로 찾아갔었던
거고요 이후 생레미 옮기게 된 것은
그 자기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에
입원하면서 옮기게 된 것이었고
정신병원에서 1년 가까이 치료받다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리고 동생 태우도
좀 매달 매달 보내는 범이도 좀
만만치 않았었고 형을 좀 그래도 내
바운더리 안에서는 두면 좋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당시 파리에
머무르고 있었던 동생 태우가 북쪽으로
한 25km 정도 떨어져 있는 오베르
하는 곳에 형이 이제 새로운 거처를
마련해 주면서 형 여기서 지내보는게
어때라고 추천을 하면서 이제 옮기게
된 거죠 그러니까 고흐는 어떻게 보면
자기 의지로 옮긴 것은 파리와 알을
두 번 정도만 있었다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니까 화 음악가도 그렇고
화가도 그렇고 주변 환경 내가 사는
공간이 달라지면 작품 그니까 화풍에
영향을 당연히 주겠죠네 자연스럽게
영향을 좀 받은 거 같아요 근데 이제
두 가지 정도로 원인을 볼 수가
있는데 하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후의
실력이 늘어나면서 변하는게 있고요 두
번째로는 그 지역으로 옮기게 되면서
환경에 따라서 이제 작품의 영향을 좀
받은 것도 있고요이 두 가지를
복합적으로 좀 보셔야 될 것 같아요
어 그러면 고는 아 두 가지 관점에서
첫 번째는고 는 자기 스스로 생각할
때 어디에서 살았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작품적으로 보면
어디에서 살면서 그린 작품이 가장
고의 명작이 됐다 이렇게 좀 나눠 볼
수 있나요 일단 고흐 스스로 생각했을
때 가장 행복했던 시기는 아를이 것
같아요 아네 아를은 고에 이제
전성기에 해당되는 순간이기도 하고요
정말 우리가 알고 있는 고부의
스타일이 정립되기 시작한게 이제 아를
그 꽃 그림이 거기서 나 해바요네
맞습니다
통 을에서 그렸던 작품이고요 그때부터
이제 본인의 스타일을 찾은 거 같아요
그리고 난 이후부터는 이제 좀 더
감정적으로 좀 치우 쳐지는 그림이
이제 점점 등장하기는 하지만을 시기와
비교를 했을 때 퀄리티적인 차이가
나지는 않는 거 같고요 이후에는
상황이 변하다 보니까 어 그 안에
이제 자신의 감정이 좀 어떤 식으로
투영이 되었냐 정도의 차이인 거
같고요 어느 식에 작품 퀄리티가 제일
높냐고
물어보신다면부터는
비슷비슷하다네 아를이 그러면 방구에
아주 최 절정의 이르던 그 그렇죠
알을 찾아간 것이 1888년
2월이었다 고우가 사망한게 1890년
7월이었다 몇 년 안 살았네네 말년
딱 2년 6개월 정도가 고에 이제
전성기에 해당되는 순간인 거죠 너무
짧은 시간을 성기로 살다 가네요 아
안타깝죠 딱 2년 6개월이 끝입니다
예 그곳은 어때 뭐 지우라는지
아니면이 고우가 이렇게 그 감정적으로
고집센 남의 말 잘 안 듣는이 고집센
고우가 좀 마음에 좀 평온을 느낄
만한 곳이었나 아이요 처음에는 굉장히
좋아했죠 그리고 아을 갈 때부터
희망이 가득차 있었거든요 어 약간
우리도 지역마다 그 상상하는 특징들이
있잖아요 검증되지 않았지만 그 개한
이미지 같은 것들이 있는 동네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음 아를은 우리로
치면 여기랑 비슷하거든요
우리 흔히 어디에 미인이 많다
그러죠 어느 동네에 미인 많다
그러잖아요 보통 우리가 어디 예 대구
보통 대구 미인 많다 그러잖아요 대구
사과가 유명해 사과 먹으 미인 된다고
근데 왜 그러면은 아를이 이제 대구와
같았다는 거죠 그 프랑스 내에서
대구에 미인이 많다 아르의 미인이
많다 이런 말이 있어요 오 실제로네
실제로 그래서 그 동네가 아를은
미인이 많은 동네 약간 이런 이미지가
있어요 그래서 혹자들은 그걸 말을
하기도 돼요 그 남부 지역은 사실
어딜 가도 상관 없었거든요 그러니까는
남부를 가고 싶다 남프랑스에서 지내고
싶다라는 이야기는 했었지만 그 지역
가운데 굳이 왜 그런 마르를
선택했을까 대해서는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어요 자 때문이구나 그럴 수도
있다라고 목자들은 누군가는 이야기를
하는 거죠 인들 찾아서 어차피 내가
남부 갈 거면 위안이며 너무 이렇게
복잡한 대도시 말고 뭐
마르세우스 말고 적당한 남부에서도
조금 조용하고 농촌의 느낌을 가지고
고 있으면서도 미인들이 많은 위
아이면 미인 많은 동네 설 수밖 없네
그래서 아르간 거 아니냐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실제로 있어요
제가 가급적이면 이제 고우와 관련된
콘텐츠를 이야기를 할 때 여자
이야기는 안 하려고 해요 왜냐면 이게
고에 대한 이미지가 깨져요 아 그죠
그가 약간 금사 빠거 아 금사빠 금세
사랑에 빠지는 사람 아 바람둥이
바람둥이는 아니죠 바람둥이는 아니죠
바람둥이는 동시 다발적으로 이렇게
지탄을 받아야 되는 대상이요 금사
빠는네 사랑에 그냥 잘 빠지는 사람인
거지 나쁘다고 얘기할 수는 없죠 뭐
취향이니까 그거 약간 그런 사람이라
고는 예술가구 예술가에게 사랑은
필수라고 생각을 했어요 혼 맞는 말
같은데요 그렇죠 사실 뭐 모든
예술가들은 다 사랑을 중요하게 생각을
했었고 단순한 사랑을 뛰어넘어서
예술적 영감을 주는 뮤즈라고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화가와 사랑은 때려야
뗄 수는 없죠 그래서 고흐는 좀
사랑을 굉장히 권장했던 사람이고요
항상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어딜
가든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게 너무 좀 잤다 보니까
웬만하면 좀 얘기를 안하려고 하는데
말을 해서도 좋아하는 여자네
있었습니다네 결론적으로 결혼은네
못했습니다 안 했죠 못한 건지 안한
건지 못했습니다 하고 싶어 했었던
여자들이 중간중간 여러 명 있었는데요
조건이 맞지 않고 상황이 여지 않아서
집안에 반대도 있었고 아니면 본인이
거절 당하기도 했었고 여러 이후로
그러면 이제 결혼도 안 했고 후세
없고 자식도 없고 오로지 이제 동생
태우한우 부르의 화가 어 고흐고 이제
친했던 친구들이 이제 몇 명 있기는
했었는데 고객은 친구라고 이야기하기
조금 어려워요 고우가 88년 2월
아를로 찾아가면서 아룰 이제 파리를
떠났던 이제 근본적인 이유는 화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함이었어요 그니까
본인이 생각을 해도 4년이라는 시간
동안 플랑드르 지역 혼자 오고
다니면서 그리고 리 2 렀 인상파가
어울리면서 단기간 내에 실력이 너무
늘어 버리는 거예요 이거 다 혼자
그리는 거보다 어울려서 그림을 그렸을
때 같이 살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그림을 그리면 시 짧은 시간
동안 실력이 확 늘겠구나 화가
공동체를 만들어야겠다 근데 그
공동체를 만들려면 큰 집도 얻어야
되고 생활이도 많이 들고 했기 때문에
다리에서는 이게 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지방으로 내려간 거예요음 지방에
내려가면 여러 화가들이 얻을 수 있는
큰 집도 얻을 수 있고 좀 부담없이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내려갔는데 아무도
안와요 일단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그거 다 세세하게 이야기하긴 좀
그렇고 그때 이제 고흐가 가장 바랐던
그 화가 공동체에 합류해 주기를
바랐던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 볼
고객 그래서이 마음을 알고 있었던
동생 태우가 고갱을 설득하는 거예요
생활비도 보내드리고 빚도 갚아 드리고
알을 내려가서서 그리시는 그림들 제가
책임지고 고 열심히 팔아 들일테니까
내려가서 저희 형이랑 같이 이제 그림
그려 달라 태우의 제한 때문에 고객은
아로 향하게 된 거였어요 그때 고객은
고랑은 조금 다르게 되게 잘 나가던
화가였던 거네요 엄청 잘 나가지는
않았었지만 고흐다는 당연히 잘
나갔습니다 그니까 지금하고 물론
지금은 고갱이 너무 잘 나가요 고갱
그림
지금
뉴욕에서 그 카타르 공주가 사간 너
도대체 시집 언제 갈래라고 하는
2억 이랬거든요 그니까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인데 지금은 너무 잘 나가는데
당시에는 지금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명성이 있었고 고후
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잘
나갔던 화가죠 고는 뭐 그림 한
점밖에 못가 그니까 고는 완전 무명이
그러니까 약간 지금요 정도 생각하시면
될 거 같아요 어 고부는 저기 이제
홍대 인디 밴드에서 앨범 절대 안
팔리는 그런 그냥 어디 무대에서 세워
주지도 않는 길음 에서 그냥 혼자
그냥 음악하고 있는 하지만 언젠가에
반 성공할 거야 라면서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그런 무명 가수라면
고객은 그래도 방송 조금씩 나오고 뭐
뭐 불타는 트로 한두 번 정도 딱
예선 통관을 했던요 정도 수준의
화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근데 그런
고갱을 기다리면서 기대감에 차서 만든
작품이 해바 아이잖아요네 맞습니다
그게 사실
잘하네요 이게고 입장에서 는 고갱이
내려온다는 것은 너무 감사한
일이었어요 더욱이
고갱이 내가 내려가 줄게라고 이야기를
하는 그 편지를 보낸 시점이
1888년 8월이 든요 고흐가
내려온게 88년 2월 그러니까 6개월
만에 드디어 자신의 그룹에 응답해
주는 화가가 나타난 거예요 얼마나
기뻤겠지만
그가 사용하게 될 방을 꾸며줄 목적
으로 해바라기를 그립니다 근데 여기서
이제 중요한 포인트는 그럼 왜 해바라
었을까 이게 이제 중요하잖아요 고갱이
유년 시절을 보낸 장소가 그의 고향
가도 같은 곳이 남미 페루에 음네
그리고 페루를 상징하는 꽃은 해바라기
아 그래서 그래서 고흐는 지금 고갱이
아를로 찾아오잖아이 아를이 하는
장소가 고갱에게 있어서 그의 고향과도
같은 그런 상징적인 장소가 되기를
편안한 장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그의 고향을 상징하는 꽃인
해바라기로 고방을 고갱 방을
꾸며주기로 결심을 했던 거죠 그래서
이때 고흐가 해바라기 이제 푹 빠져요
그리고 나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해바라기 시리즈가 일곱 점이 이제 총
그려지게 되고 원래 이제 아에서는
이제네 점 그렸고요 나중에 이제
정신병원 들어가고 나서 세 점을 더
그려서 총 정물화 시리즈는 일곱 점인
거죠 그럼 그네 점을 고객은
좋아했나요 어 좋아했던 거 같아요
왜냐면 색은 잘 안했 했지만 나중에
이제 두 사람의 돈거 생하는 두 달
만에 끝나요 그리고 이제 파리로
돌아갔던 고객이 이런 편지를 쓰거든요
내가 급하게 올라 오느라고 내
개인적인 짐들을 다 정리하지 못하고
왔는데 내가 두고 온 내 짐들 뭐
너가 어떻게 처벌해도 상관없다 뭐
팔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라 그런데
혹시 자네가 나를 위하여 그려주었던
그 해바라기 그림들 그건 나한테 좀
보내주면 안 되냐고 어 좋아했네요
좋아했죠 분명히 좋아했어요 분명히
좋아했습니다 근데 이제 자존심 때문에
크게 내생을 못 했던 거 같 그렇겠죠
그니까 두 사람은 애초에 어울리기가
좀 힘든 상황이었어요 그니까 고은
이상주의 자에 가까워요 아제
말씀하셨지만네 약간 그 화가 공동체
만들 때 화가들이 많이 참여를 안
했었던 여러 이유 중에 하나가
유토피아를 꿈꿔요 그니까 예를 들어서
여기 공동체 생활하고 있는 화가들의
작품이 팔리면 누가 팔던간에 무조건
m 명가
아니라이 좀 나오는 것 같아요 당시에
예 혁명적 사상을 갖고 있었던 거
같아요 공산주의적 그 유토피아를
꿈꿨던 약간 그런 이상적인 삶을
사는데 고갱은 원래 직업이 화가
아니에요이 남자가 본 직업은 따로
있었어요
증권맨이요 어 그러니까 누구보다도
손입 계산이 빨랐던 사람 근데 그런
사람한테 지금 1 하자 뭐 이런
얘기하면 이게 애초에 안 맞아 말이
안 맞아요 그리고 고갱은 상징주의의
대가라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 눈에
보이는 걸 그리는게 아니에요음
머릿속에 있는 상징격인 대상을 그리는
거지 그니까 특정 대상을 보고 그릴
수 있는게 아니에요 보고 그리는게
아니에요 근데 거는 어떤 대상을
보았을 때 그때 느끼는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애초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도 다르고 그림을
생각하는 입장도 다르고 경제 관념도
다르고 고객은 굉장히 좀 남자다 이런
상남자 스타일이었는데 고는 뭐라
할까지 f 대문자 F 같은 스타일
그니까 애초에 안 맞아요 그러다
보니까 좀 많이 부딪혔고 결
고이 고에게 해하기 화는 작품을
그려주는데가 그고 굉 화를 내 이게
진짜이 그림속에 등장하는 광인처럼
생긴 가냐 이러면서 그 그림을 보고
좀 분노를
[음악]
하죠 Que Je vo Je de
VR toujours me fou
laisse F IL rendu
fou IL veut Je dans
MA
impossible peses
Pour Que Je puisse
ven I ton frre
parb
To
frre Je veille
[음악]
결국 고갱은 아 더 이상 못 살겠다
떠나겠다라고 선언을 하자 고은은 이걸
약간 말리려고 했었던 건지 아니면
자신의 분노를 표현한 건지 우리가
이제 그것까지는 알 수는 없지만 그
과정에서 고흐가 자신의 길을 잘라
버립니다 아 그리고 길을 자르자
고갱은 바로 떠나버립니다 아 그 있을
때 자른 거였군요 어우 끔찍해라 더
이상 칼로 잘랐다는 막 말 도
있더라고요 어 당시 고갱이 어 두
사를 많이
하셨 이게 두 사람이 정확하게 그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잘 안 해요 그니까
고객도이 날에 있었던 일을 고우가
죽고 나서 몇 번 이야기 한 적은
있었지만 고흐가 살아 있을 때는이
날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진신을
아무도 모릅니다 다
추정인데 당시 고갱이 아마추어 팬신
선수였어요 그리고 고갱 방에 펜신
칼이 이렇게 걸려 있었거든 요 벽에
장식이 되 있었어요 평소 이제 팬싱
연습을 했었나 봐요 나중에 고객이
빠리로 돌아가고 나서 고가 이런
편지를 써요 저 끔찍한 벽에 걸리는
펜싱칼 당장 없애 버리라고 그래서 왜
이런 내용의 편지를 썼을까 그럼 귀가
잘린게 저 펜싱칼 때문에 이런 글을
적은 건 아닐까라고 사람들이 이제
수정을 하는 거죠 그래서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이걸 근거로 이런 주장을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근데 저는
개인적으로 자기가 잘은 거 같아요 어
그 왜냐면 어 일단 왼쪽 길를
자랐거든요 그 오른손을 이렇게 이제
자른 거 같은데 요렇게 기보를 자른
거예요 기 전체를 자른 건 아니고
기보를 렇게 자른 다음에 요걸 손속
온으로 이렇게 이렇게 이제 감싸 놓고
평소에 이제 즐겨 찾던 술집 여정
원하게 다가가서 선물이라고
줘요 선물 예 선물이라고
줬어요네 그림을 주지 왜 약간 여러
가지 여기에 이제 또 이유가 있어요
왜 그랬어요 그니까 당시 이제 고갱과
고가 그 투후 경기를 자주 봤었어요네
그 투후 경기를 떠올려 보시면 그
투우사가 이제 막 그 소화 막
싸우잖아요 그리고 나서 이제 투우사가
승리를 탁 쟁취하고 나면 그 승리의
기념품으로 소 귀를 잘라요 그리고 그
자른 그 소의 귀를 투우사는 자신의
연인에게
선물하거나 투 문화니까 평소에 이제
투 경기를 남부 내려와서 자주 봐
든가 그래서 이제 거기에서 비롯되어
한 행위가 아닐까 그럴 수 있겠네요네
비록 자신은 길을 잘렸지만 이것은
나의 기가 자리는게 아니라 내 내면에
있는 그 패배자의 길를 자른 거고
그리고 나는 승리한 투사기 때문에
사랑하는 나의 연인 그때 찾았던 이제
단골로 이제 했던 그 솔직히 여정
머게 선물로 이제 주면서 나는
승리자다 약간 자아도취적인 이런
행위가 아니었을까 자아분열이
시작됐군요 자기는 패배자인 또 승리자
동시에 갖고 있것 추정입니다 가
자기입으로 얘기한 건 아니기 때문에
아마 그랬던 것이 아닐까 그니까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정서적으로 지금
굉장히 불안정네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인 거죠 그래서 결국에는 어
사고가 난 직후에 이제
아래에서 임시 방편으로 치료를 좀
받았고요 그 이후에 이제 아래에
머무르는데 마을 사람들이 너무 이제
불안한 거예요 아 그렇죠 얼마나
무서워요 그래서 결국에는 마을
주민들이 막 연잔 돌리고 결국에는
쫓아내려고네 결국에는 인근에 있었
레미드 프로 사라는 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생풀 모졸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
[음악]
거죠이 방송을 보시고 댓글을 남겨
주시는 분들 중에 이제 저희 제작진이
추첨을 통해서 이제이 전시 티켓도 좀
드리는데 너무 이렇게 공짜만 바 얼마
안 비쌉니다
그죠이기를 다볼 수 있는 작품전시가
아까 말씀하신 12년 만에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거니까 번씩
시간들을 내셔서 가족들하고 아이들을
손잡고 한번 오셔서 보시면 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