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그노처럼] 한달묵상 DAY8 - 고난의 영광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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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그노와 함께 하는 한 달 묵상 시리즈] 8일째 이야기- 이영상은 파리선한교회 담임이자 위그노 전문가인 성원용 목사님이 쓰고 국민북스에서 출간한 책 [위그노처럼(한달 묵상집)]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매일 자녀들, 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이 영상과 더불어 『위그노처럼』이란 책을 꾸준히 읽는다면 우리 믿음의 지평이 놀랍게 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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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영광을 알라.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13절
의인이 당하는 고난의 문제는 신학의 난제입니다.
하나님이 정의로우시다면 왜 의인이 고난을 겪어야 하는가는
욕기 전편에 흐르는 질문입니다.
이에 대해 욕은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옳으시다.
놀라운 고백이 아닙니까?
욕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시다는 사실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의인을 단련하셔서 순금으로 만들어내십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신정론이라고 합니다.
우리 역시 욕처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겪을 땐
분명히 하나님은 선한 뜻을 갖고 계실 거야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고난을 지나 유쾌한 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여기에 더 놀라운 의미를 추가합니다.
성도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갈라디아서 6장 17절
주님과 그의 나라를 위해서 살다가 겪는 고난은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주님과 같은 배를 탑니다.
그리스도와 내가 운명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당하는 고난은 슬픈 게 아니라 기쁘고 즐거운 겁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고난을 자처했습니다.
순교마저도 피하지 않았죠.
주후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에
점차 박해가 사라지자 어떤 이들은 이집트 광야로 나가
비난하고 고달픈 삶을 자처하며 기도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고 싶어서였죠.
그게 수도원의 기원입니다.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프란체스코 성당에는
조토가 그린 성스러운 흔적을 받은 성프란체스코라는 이름의
프레스코화가 있습니다.
프란체스코 생애의 하이라이트를 그린 것입니다.
그는 금수저였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에 소중한 것을 버리고
흑수저의 삶을 자처하며 가난한 이들의 벗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탁팔 수도회가 만들어져 죽어가는 중세교회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했습니다.
고난 이후의 영광을 알았기 때문이겠죠.
그가 죽기 2년 전에 그의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에
예수 그리스도의 상처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온전히 참여했다는 증거였습니다.
왜그러도 오랜 세월 모진 고난의 터널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기꺼이 또는 어쩔 도리가 없어서
그 고난의 길을 걸어갔을 겁니다.
그들이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슬픔 가득했을까요?
신세를 한탄하며 원망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길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여정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남프랑스에 있는 광야박물관 마지막 방에
개혁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붙잡혀 고문을 당한 후에
쇠사슬에 묶여 끌려가는 한 무명 위그노의 모습을 그린
이 사람은 맨발로 수백리길을 걸은 후에
노외산에 들어가 노를 졌다가 죽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이시여, 저로 하여금 저를 묶고 있는 쇠고리를 혼인반지로 보게하시고
저를 끌고 가는 이 쇠사슬을 당신의 사랑의 사슬로 보게하소서
얼마나 감동적인지요.
현대교회는 점차 십자가 없는 종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나를 위해서 예수께서 짊어지신 십자가는 사랑하지만
내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는 애써 외면합니다.
예수의 고난으로 인한 은혜는 누리려면서도
다른 일을 위한 작은 헌신도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을 취미생활 정도로 역입니다.
예수를 이용해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을 좋아합니다.
십자가 신앙이 아니라 번영신앙주의를 기웃거립니다.
그리스트의 고난에 참여하는 가치와 영광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 신앙의 현주소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기를 기뻐하는가
아니면 부담스러워하고 부끄러워하고 있는가
기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제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하기 원합니다.
그것이 비록 고난의 길이라고 할지라도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영광스러운 자리임을
마음에 새기고 감사하며 걸어갈 수 있도록
용기와 힘을 더하여 주소서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늘 기억하며
제 삶의 십자가를 회피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감당하는
참된 신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