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그노처럼] 한달묵상 DAY9 - 고난을 창조적으로 해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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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만이라도 위그노처럼 살아봅시다!
[위그노와 함께 하는 한 달 묵상 시리즈] 9일째 이야기- 이영상은 파리선한교회 담임이자 위그노 전문가인 성원용 목사님이 쓰고 국민북스에서 출간한 책 [위그노처럼(한달 묵상집)]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매일 자녀들, 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이 영상과 더불어 『위그노처럼』이란 책을 꾸준히 읽는다면 우리 믿음의 지평이 놀랍게 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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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창조적으로 해석하라.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어려운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베드로전서 4장 12절
인생은 고난의 연속입니다.
누구도 고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인생의 대의 주제인 고난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 고난을 창조적으로 해석할 자유가 인간에게는 있습니다.
사건보다는 해석이 중요합니다.
고난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새롭게 해석할 때
고난의 진흙 속에 숨겨진 영롱한 진주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극심한 박해와 고난을 경험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매를 맞고 풀려났고
옥에 갇혔다가 천사의 도움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는 평생 고난과 죽음의 위협 속에 살다가 로마에서 순교했죠.
그럼 그가 하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왜요?
고난은 우리를 단련하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고난을 믿음으로 해석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불시험을 당했습니다.
불시험은 쇠를 녹여버리는 풀묵불로 가해집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견디기 어려운 시험입니다.
하지만 그 불은 성도들의 믿음을 태워 없애지 못했고
오히려 그들의 신앙을 더 빛나게 만들었습니다.
불같은 시험과 고난은 옥석을 가려내는 과정입니다.
고난을 감당한 이는 보석과 같은 사람이 됩니다.
고난이 올 때 피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용기를 내서 감당한다면
당신도 보석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위그노들은 고난의 풀묵불을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1534년 10월 17일에 데자버 사건으로 분노한 프랑스와 일세는
개신교도들에 대한 박해를 시작했습니다.
열성적인 개신교도들이 가톨릭교회의 예배인 미사를 비난하는 그를
파리와 인근 도시 그리고 앙부아지 성에 있는
왕의 침실 문앞에 내걸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아들 앙리 일세는 1551년에 샤토브리앙 칭령을 선포하면서
더 강하게 박해했습니다.
성경과 개신교 서적을 소유하거나 읽는 것을 금지하고
종교계획에 연루된 사람들을 잡아서 화영에 처했습니다.
그는 위그노가 화영을 당할 때 소리를 지르거나 찬양하지 못하도록
혀를 잘랐습니다.
앙리 일세의 왕비인 카트린드 메디치는
자신의 딸 마르고 공주와 부르봉 왕가의 공작
앙리 3세의 결혼식이 끝난 뒤 며칠 후인 1572년 8월 24일에
르브르 궁전 앞에서 개신교도 3천명을 죽여
생강에 던지는 등 전국적으로 무려 7만명을 죽이는
대학살을 자행했습니다.
루이 14세는 낭테 칭령을 폐지하고
프랑스 땅에는 하나의 왕 하나의 종교
하나의 법만 존재한다라며 위그노들을 전멸시키려 했습니다.
102년간 지속된 이 박해의 기간을 교회의 광야시대라고 부릅니다.
너무나 길고 험난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박해와 고난은 그들을 침몰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순금같이 빛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그 고난을 피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감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거기에는 비결이 있었습니다.
바로 해석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광야를 이스라엘의 광야와 동일시했습니다.
광야를 그저 물과 양식이 없고
장려라는 태양과 독을 품은 전갈이 우글거리며
아말렛 같은 적이 출몰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장소로 보지 않았습니다.
대신 광야의 여정을 이집트의 노예의 습성을 뿌리뽑고
약속의 땅인 가난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견딜 수 있었습니다.
믿음의 해석은 희망을 낳습니다.
그 희망은 절망을 몰아내고 고난을 감당하는 힘이 됩니다.
그 고난으로 그들은 더 순수해졌고
보금신앙을 보존할 수 있었으며
세계사를 변화시키는 주역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고난 중에 있습니까?
그 고난을 피하지 마십시오.
고난과 타협하지 말고 직면하십시오.
믿음으로 해석하십시오.
위그노처럼.
그러면 고난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그것을 통해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끝까지 고난을 감당하십시오.
그러면 고난 속에서 정결하게 되고
성숙해지는 축복의 열매를
열두광절이 가득 거두게 될 것입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믿음의 선배인 위그노들이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며 순금처럼 나온 것을
기억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 또한 기가 막힌 고난의 광야를 지날 때
타협하거나 절망하지 않게 하소서
용감하게 고난과 직면하고
그것을 믿음으로 해석하는 지혜를 주소서
그리고 고난 속에서 희망을 보는 눈을 열어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