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충성 안 해요”… 북한 MZ세대의 조용한 변화 | 강규리 탈북민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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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7. 02 촬영
“이젠 더 이상 충성하지 않아요.”
북한의 MZ세대는 더 이상 체제에 순응하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한국 드라마와 K-POP을 몰래 접하며
자유에 대한 동경이 자연스럽게 마음속에 자리 잡았고,
더 나은 삶을 향한 갈망은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이를 철저히 억압합니다.
단지 한국 콘텐츠를 봤다는 이유만으로
청년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하기까지 하죠.
그 참혹한 현실을 더는 견딜 수 없었던 강규리 씨는 목숨을 걸고
가족과 함께 탈북을 결심했습니다.
작은 목선을 타고 한겨울 어두운 바다를 건너는 위험한 여정.
NLL(북방한계선)을 넘기 4시간 전,
알 수 없는 불빛과 함께 추격이 시작됐고,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그들은 끝내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거센 너울성 파도가 그들을 살려냈고,
마침내 자유의 땅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자유를 꿈꾼 사람들,
그리고 점점 무너져가는 북한 청년들의 충성심.
북한 내부에서 시작된 조용한 변화와 절박한 목소리!
영상에서 강규리씨의 생생한 증언을 만나보세요
강규리tv
https://www.youtube.com/@GYRIKANG
#강규리 #탈북민 #강규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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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이 나오면서
저희 청년들을 한국 드라마
한류를 접하면 총살까지 했어요
그런 데서 산다는 게
저희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왜 우리가 이런 걸 겪어야 되고
왜 친구들이 저렇게 무의미하게 죽어야 되는지
용감했다고 해야 될지
그냥 출발을 했어요
그런데 또 목선 배는 추적이 안 돼요
어떻게 그렇게 발견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밤에 거의 NLL 넘기 4시간 전에
저희가 발견됐어요
모르는 불빛이 뒤에서 나타나더라고요
4시간 동안 추격을 당했어요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오늘은 좀 특별한 분을 모셨는데요
2023년 북한을 탈출하신 걸로 알고 있는
강규리 씨를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북한을 탈출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됩니까
북한에서 어릴 때부터 한국 드라마나
콘텐츠를 되게 많이 접했었어요
그래서 한국에 대한 동경심이 어릴 때부터 자라났거든요
저는 평양에서 태어나서 살다가
저희 외할머님이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저희 온 가족이 지방으로 추방을 당하게 됐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정부에 대해 뭔가 좋지 않은 감정이 있고
또 집에서 저희 부모님들은 항상 대한민국에 대한
이런 동경심을 품고 계셔서
그런 마음으로 자라오다가
제가 평양에서 체육대학을 다니면서
탁구를 전공했었어요
나중에 지방에 다시 내려와서
레슨을 하면서 돈도 벌었었습니다
근데 그 돈을 벌다 보니까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욕망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그 순간에 어떤 친구가 저에게
‘너는 배 선주를 하면 되게 잘할 것 같은데‘라는
그런 얘기를 해 주셨어요
그래서 ‘내가? 근데 그거 하면 얼마씩 벌 수 있어’라고
제가 질문을 드렸는데 저한테
‘그런 거 하면 하루에 50만 원 번다‘고 하는 거예요
저는 10만 원밖에 못 벌었는데
그런데 또 사실 북한에서는
하루에 1만 원 벌기도 너무 힘든 그런 조건이기 때문에
저 같은 경우에는 되게 돈을 잘 버는
원래 그런 직업이었거든요
그런데 50만 원이면 5배잖아요
그래서 귀가 솔깃해서
엄마를 찾아갔어요
저희 어머님이 북한에 있을 때 약간 한의사 치료
이런 거 동의보감 아세요?
그런 걸 하시면서 치료로 좀 유명하셨어요
그래서 돈을 좀 많이 모아두고 계셨어요
물론 제가 시집 갈 때 엄마가 시집 보내려고
장만해 둔 돈이었기는 했는데
제가 그거를 알아서 엄마한테 가서
‘엄마 나 시집 안 가도 좋으니까 나 배 사줘‘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엄마가 ‘미쳤냐’고 ‘어린 나이에 무슨 배를 하냐’고
막 그러시는 거예요
저희가 앞쪽 지역에서 살다 보니까
함경남도 지역에서 살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대체로 북쪽 지역 국경 지역이 되어야지
한국으로 가든 중국으로 가는 노선이든
브로커 이런 거를 알 수 있거든요
가는 방법을
그런데 저희는 전혀 그런 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 배가 있으면 갈 수 있다는 희망은 있었어요
그래서 엄마한테 배가 있으면
‘엄마 남조선으로 갈 수 있을지도 몰라‘ 막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엄마가 저한테 ‘가서 자세히 알아보라‘고 하시고
내가 알아봐서 엄마가 저에게 배를 사주셨어요
배를 언제 사주셨어요
2022년도에 사주신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거기에서 배 선주를 하게 됐어요
그런데 배 선주를 하는 과정에서
제가 어린 나이에 하다 보니까
엄청 힘들었죠
특히 북한에서는 억압과 통제가 심하잖아요
근데 2019년도가 다르고 2020년도가 다르고
점점 더 억압을 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니까 이건 좀 아니다 싶었어요
왜냐하면 반동사상문화배격법
평양문화보호법, 청년교양보장법이라고 3가지 악법이 나왔거든요
코로나 기간 동안에 그런 악법이 나오면서
저희 청년들을 한국 드라마, 한류를 접하면 총살까지 했어요
그런데 그런 데서 산다는 게
저희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왜 우리가 이런 걸 겪어야 되고
왜 친구들이 저렇게 무의미하게 죽어야 되는지
나도 또 한국 드라마를 엄청나게 좋아하거든요
거의 중독이 돼서 살았는데
‘아 ,나는 그냥 가야 되겠다‘
사실 계기라는 거는 그냥 원래부터 가고 싶었지만
특별한 계기는 더 억압하고 통제하고 그러다 보니까
좀 나은 삶을 찾기 위해서 자유를 찾아서
제가 돈을 벌었지만 그 돈 번 게
의미가 없어 보이는 느낌이 들어서
출발하게 됐습니다
코로나 이후에 더 압박이 심해졌다고 하셨는데요
코로나 전에는 그래도 사람들이
장마당에서 뭔가 판매를 하고
그래도 밀수도 하면서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었어요
그래서 돈 많은 사람들도 꽤 있었거든요
2019년도까지만 해도
제가 레슨을 하면서 살 때도
많은 사람들이 돈이 많았어요
제가 아는 사람만 돈이 많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솔직히 굶어 죽는 사람을 못 본 것 같아요
일반 주민들 같은 경우에는
장사를 하면서 살아야 되잖아요
근데 개인 장사를 없앤다는 지시를 내렸어요
정부에서
사람들이 쌀을 먹고 살잖아요
그런데 그 쌀 장사를 진짜 못하게 하고
이제 곳곳에 양곡 판매소를 설치해놓고
그리고 국가에서 직접 판매를 한 거예요
제가 있을 때는 쌀 가격이라 하면
4천~5천 원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가격이 7천 원까지 오른 거예요
국가에서 판매를 한 게
입쌀(멥쌀)이라고 하면 아실지 모르겠지만
흰쌀밥, 흰쌀밥을 못 먹고
북한 사람들은 좀 어려운 사람들은
그냥 다 옥수수 밥을 먹어요
그런데 그 옥수수가 옛날에 2천2백 원까지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4천 원
옛날 쌀 가격으로 올라버리고
그렇다면 사실 주민들의 불만이 클 것 같은데
주민들이 동요하거나 그렇지는 않습니까
주민들의 불만이 많이 커졌고
또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다 귀찮아해요
내가 목숨을 유지해야 충성을 하든
뭘 하든 할 거잖아요
그런데 그 유지하기가 너무 어렵고 힘들다 보니까
사람들이 악밖에 안 남았어요
TV를 보면 김정은에 대해 찬양하는 모습이
언론에 자주 나오고 하는데
네, 맞아요
누가 그런 노래를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첨꾼이 아마 엄청 그런 노래를 많이 지었나 봐요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노래처럼 들리죠
그런데 그렇지는 않아요
그럴 수가 없잖아요
왜냐하면 주민들을 먹고 살게 해줘야지
저희가 진짜 우러나오고 하는데
진짜 사회주의인지 자본주의인지 모르겠다니까요
저희는 공짜로 받아본 적이 없어요
엄마 세대는 평양에 있을 때
좀 많이 받았다고 했었는데
3대까지 오다 보니까 저희한테는 도무지 없었어요
북한에 계실 때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라고 하면
어떤 장면을 꼽으시겠어요
당연히 저희 청년들을 무자비하게 총살하는 거죠
제가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제가 보러 안 갔어요
실제로 그걸 봐야 하거든요
어떤 이유로 총살을 당하는데요
한류를 접했다는 이유로
그러니까 이게 총살 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 이유가 저희가 납득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깜짝 놀랐죠
딱 친구는 아니지만
아는 친구가 그런 일을 겪었을 때
그냥 엊그제도 봤는데
재판 받고 몇 달 뒤에 총살을 당했다
그러면 믿겨지지 않는 거죠
저희는 무서운 거죠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길에 나가면 그냥 계속 통제 받아요
원래 이전에는 내가 어떤 머리 스타일을 하고
이게 뭔가 잘못됐다 싶으면
‘청년동맹지도원‘에서 '야! 오라'고 막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지나다니면 그냥 바로 오라고 할 수 있고
그리고 직장이 어디냐, 어디서 사냐
이런 걸 다 물어볼 수 있고
휴대폰도 저희가 보여줘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개인 정보 다 보여주고
문자에 ‘오빠‘라고 하면
‘이건 남한 말투다‘ 이러면서 트집을 잡는 거예요
어려서부터 공산주의 세뇌 교육을 받으면
당성이 생긴다고 하는데요
용어가 조금 어렵기는 하네요
저한테는 줄임말을 쓰시면 안 되요
일단 원래 세뇌 교육이 잘 되어서
충성을 당에 많이 해야 하는데
저희 청년들 같은 MZ세대는
충성을 하는 세대가 별로 없지만
군인들은 좀 달라요
군인들 같은 경우에는
워낙 바로 학교에서 졸업하고
바로 군대를 가니까
좀 그렇기는 하지만
그리고 저희 어머니 세대는
옛날에는 좀 충성심이 많았죠
왜냐하면 뭔가 고마움 그런 것도 있고 그랬었는데
한류가 들어서면서부터 이 한류를 보잖아요
한류를 접하게 되면
우리가 잘못된 삶을 살게 됐다는 걸 깨닫게 돼요
그러다 보니까 사실은 저는 (충성심이) 없어서
제가 봤을 때는 제 친구들도 분명히 없거든요
그래서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점점 퍼센트가 적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젊은 세대들은 당성이 옅어지고 없어진다
없죠
그러니까 저희한테 기대를 안 한다니까요
그냥 총살을 해버린다니까요
북한이 왜 한국 드라마 음악을 엄격하게 단속하고
한국이나 통일 같은 단어도 지금 금지어로 돼 있다고 그러는데
같은 민족 끼리 왜 그렇게 적대적 관계로
계속 가져가려고 했는지 모르겠어요
저희 MZ세대가 장마당 세대가 워낙 한국을 동경하고
문화 따라하고 그리고 또 말투까지도 따라 하다 보니까
이러다가는 조금 위험해질 수 있겠다는
위협감을 느꼈다고 생각해요
안 그랬으면 저렇게까지 반응할 수는 없잖아요
정말로 한국 드라마를 봤을 때
저희가 별로 뭐 이렇게 달라지는 게 없었다면
그걸 통제를 안 할 거잖아요
그런데 정말로 변화가 빨리 되고
그리고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냐‘라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되니까
아마도 그렇게 하는 것 같아요
북한 주민들의 인식의 변화나 이런 부분이
정부에서 바라는 대로 안 되고 있는 것 같은데
가장 큰 원인이 뭡니까
민심을 잃은 거죠, 이제는
그리고 민심을 잃었다는 걸 알고 있을 것 같아요
당국 스스로
네
아무리 저희 귀를 막고 눈을 가려도
어느 정도까지잖아요, 이제는
그러다 보니까 자기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한류가 계속 몰래몰래 들어오고
그거를 접하게 되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엄청 무서워지는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실천이 남았어요
그런데 그 실천을 못하게 그냥 죽여버리고
강압적으로 하는 거죠
북한에 계셨을 때 즐겨보는 드라마나 노래가 있었습니까
저는 엄청 많았죠
BTS도 제가 즐겨서 보고
트로트 가수 노래도 되게 좋아했고
임영웅도 저는 거기서 알았거든요
그리고 백지영 노래도
그런데 백지영은 그때는 엄청 젊었어서
여기와서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요
아무튼 그런 노래를 굉장히 즐겨 듣고
또 저는 KBS나 이런 것도 되게 많이 접했어요
그런 걸 계속 많이 접하고 또 드라마는
오기 전까지 ‘김 비서가 왜 그럴까‘
그렇게 (청년들을) 총살해도, 저는 그런 걸 보고 그리고 왔어요
그럼 어디서 구입해서 보신 건가요
아는 오빠가 저를 찾는 거예요
그래서 왜 찾냐고 했더니
한국 드라마 서로 교환해 보자고 막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교환해 봤었어요
목선을 타고 남하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위험한 순간이 없었습니까
있었죠, 당연히
저희는 한국까지 오는 데 한 44시간이 걸렸거든요
근데 저는 올 때 NLL을 넘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또 목선 배는 추적이 안 돼요
그래서 북한 군인들이 우리를 발견하지 못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이게 되게 용감했다고 해야 될지
저는 그냥 출발을 했어요
그래서 어머님도 태우고 이모님도 같이 오고
또 저희 배 사람 중에 한 명도 같이 왔는데
저희는 낮에는 항행을 안 했거든요
밤에만 항행을 하고
그런데 밤에 거의 NLL 넘기 1시간쯤 됐을 때
발견될 줄 알았는데
4시간 전에 저희가 발견이 됐어요
어떻게 그렇게 발견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르는 불빛이 뒤에서 나타나더라고요
4시간 동안 추격을 당했어요
근데 다행히 NLL을 넘어서 올 수 있었던 이유는
파도가 저희를 살렸습니다
그 파도가 이렇게 엄청 높이 친다고 해야 하나요
분다고 해야 하나요
너울성 파도요
네, 맞아요
이제 한국하고 북한의 용어가 너무 달라서
저도 조심스러워지네요
아무튼 그래서 저희 작은 배는
이렇게 막 뭐지
같이 밀려서 이렇게 오거든요
그런데 저희를 따라오는 추적배는 큰 배였던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그건 (파도를) 맞받아 오다 보니까
시간이 더뎌지고
저희는 그래도 발견된 거리가 있다 보니까
NLL 넘을 때까지 무사하게 도착했죠
저희는 그 순간이 위험했습니다
하늘이 도우신 것 같아요
맞아요, 하늘이 도우셨어요
이건 진짜 저는 기적이었어요
저희는 살 수가 없는 건데 살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