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에 이런 호강은 따로 없었지 암..없었구말구 허지만 난 맘이 어딘지 좀 불편해야! 그 이유는 말여,,, [강선달] 채만식 #책읽어주는남자 #오디오북 #책과함께하는하루단잠

책과 함께하는 하루 단잠
93 팔로워
📚 책과 함께하는 하루 단잠 | 감성적인 이야기로 잠드는 시간 💤
🛏️ 잠들기 전,
🚶♀️ 혼자만의 감성 산책 시간,
🎧 눈은 쉬고 싶지만 마음은 이야기를 원할 때—
언제든 이곳에 들러주세요.
✨회원 가입하셔서 '단잠'을 응원해 주세요. ^^
https://www.youtube.com/channel/UCWBs5r5b1MhDURiz-uTXfhA/join
타임라인
00:00:00 인트로
00:03:00 본문낭독
00:30:44 단잠의 아주 주관적인 감상평
00:33:12 클로징 음악 "살아보니 그저 그렇더라"
#오디오북 #한국문학낭독 #자기전듣는책 #소설낭독 #파피루스의책읽는하루
저는 보통 아침에 출근을 할 때 버스를 이용합니다.
시원하고 빠른 지하철도 있지만 버스를 주로 타는 이유는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이 좋아서 입니다.
버스를 사시사철 타고 다니다 보면 계절이 바뀌고
그 계절의 풍광을 몸으로 그대로 맞으면서 달리는 기분이어서
내가 사는 이 세상에게 참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예전엔 저도 지하철을 많이 탔어요.
빠르고 정확한 시간을 지켜주니까 누군가와 시간 약속을 할 때
거의 어기지 않고 정확하게 잘 지킬 수가 있어서 참 좋았죠.
그런데 어느날 약속 시간까지는 여유가 많았고 해서
느긋하게 가자는 생각에 버스를 탔는데
이게 참 신선하더군요.
버스 타는 게 뭐 대단할까 싶은데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다가도 어느 순간 눈이 번쩍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차창 밖으로 거리 가로수에 부서지는 햇살이 너무 반짝이는 겁니다.
그리고 거리를 걷는 활기찬 사람들과 싱그러운 푸른 빛으로 빛나는 풀들과 꽃들
이런 것들이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 내내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왜 나는 그동안 그 어두컴컴한 땅 속으로만 다녔던가
계속 그렇게 지하철만 이용했더라면
이 아름다운 계절이 바람과 하늘과 무지갯빛 거리를 보지 못했을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멋들어진 교통수단을 두고 왜 땅 속으로만 다녔는지 스스로 좀 반성을 했습니다.
그래서 전 이젠 버스 예찬운자가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약속 시간은 넉넉하게 잡아야 했죠.
그리고 여유를 부리는 겁니다.
여러분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어디 가실 일이 있으시다면
저와 같이 버스를 타시면서 이런 여유를 느껴보시는 건 어떨까요?
오늘 소개해드릴 작품은 채만식의 1942년작 강선달입니다.
오늘 읽어드릴 작품 강선달은 우리들 아버지가 생각나게 하는 작품입니다.
다 커서 출가한 막내 아들을 내 집으로 놀러 왔는데
그는 무슨 이유에선지 자꾸 다시 시골집으로 내려가겠다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만듭니다.
그 사정을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영상 뒷부분에 감상평과 매진말도 있으니 거기까지 쭉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채만식의 강선달 낭독을 시작하겠습니다.
강선달, 채만식, 아들 삼주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좁은 수저를 놓으면서 인에 일어서 기름묻은 작업복 저고리를 떼어 입고
아낙은 벤또싼 보자기를 마침 들려주고 한다.
아랫목에서 세살밭의 손자놈을 안고 앉아 밥을 떠먹여주고 있던 강선달이
아들의 낯꽃을 보고 보고하다 침짓 지날 말처럼 묻는다.
오늘도 늦게 나오냐? 악센트하며 김만경 그 등지 농민의 알짜 전라도 사투리다.
네 삼주는 얼굴과 대답 소리가 모호하면서
뭘 딴 생각을 하느라고 우두커니 한눈을 팔고 섰다.
그러고는 무슨 말을 하기는 하려면서도 옆에서 보기에도 민망하도록 덤덤히 섰기만 한다.
오늘 일랑 인호거리가 있더라도 직공들끼리 하게 하고서 일찍 나오시오.
보다 못해 아낙이 거드름을 하던 것이다. 해도 삼주는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기색이 시무룩하고 좋지가 못하다. 아낙은 더욱 마음에 불안스러워.
짐도 있고 하니까 매시고 나가서 차표도 끊어드리고 제리도 잡아드리고 하자믄
하는 것을 강선달이 질색하며 며느리의 말을 막는다.
야야 정거장으로 나와서 뭐하러 오냐? 아 나 저녁 일찌감치 먹고서
천천히 나가서 기다리다가 차표 사갖고 차 타면 그만이지.
아 무엇으로 웬종일 고된 이런 사람이 날 바래다 준다고 또 정거장까지 나온단 말이야?
아예 그럴라마라. 아이 그래도 모셔다 드려야지 아버님 혼자 못가세요.
글씨 걱정 말래도 그러냐. 그러고 정거장은 오구 가구하는 전차값하고
입장표 값하고 건만 휘어도 돈이 20전인디. 야들아 글씨 돈이 20전이 니 애기 이름이냐?
돈을 그렇게 함부로 쓰면 못쓴다. 요새는 젊은 사람도 찰 타기가 고생스러운데 어떻게 혼자 나갈 수 있어 타신다구.
저때 올라오시면서도 밤새도록 서서 오시느라고 욕을 보셨더라믄서
걸어서도 댕길라더냐. 그까지껏 하루 저녁 좀 서서 가면 어쩌라대야.
그러다가 강선달은 빠진 아랫니 세로 말과 침이 한꺼번에 새어 흘러 씻하고 드려 마신다.
삼준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면서 정 내려가시겠어요? 하고 새삼스럽게 말을 또 묻는다.
찡그린 듯한 이마살이며 말 운이 약간 성화스런 무엇조차 없지 않다.
강선달은 그러나 심상하고서 별로 대답도 하려고 앉는다.
볼때기에다 바바를 다래다래 쥐어바른 어린놈이 저희 할아버지의 무릎에서 발딱 일어나더니 비척거리고 제 아범한테로 쫓아가
아빠! 하면서 아랫도리를 걸싸 앉는다. 저 콧물!
아범이 나무라던 것이나 어린놈은 도리어 눈웃음을 치면서 도로 비척거리고 달려와 할아버지의 무릎에 가 털썩 안긴다.
강선달은 하도 귀여워 못하겠다는 듯이 어린놈을 들여다보고 같이 웃으면서 수탁 발목 같은 손가락으로
콧물 흐른 것을 훑으려 자기 벗은 바닥에다 쓱 씻는다. 그러고는 연신 어린놈을 어루면서
아 내가 우리 강아지 새끼 보고 잡아서 어쩔까? 오늘 저녁은 내리 가면 우리 강아지 새끼 보고 잡아서 어쩐단 말이여?
응? 누누가 삼삼 발필틴데 보고 잡아서 어찌여? 그 말에 며느리가 왜 아니냐는 듯이
어린놈이나 데리고 노시면서 오래오래 좀 기시들랑 안으시구서. 아버님은 활옷가에다 옆붙여 놓고 웃었나봐.
아 야들아. 강선달이 아들과 며느리를 번갈아 보면서 계제삼아 또 발명을 내놓는다.
내가 제일 가깝이서 그런다. 가깝이서 그리여. 아 눈만 뜨면 웬종일 들러나가서 살고 얻은 사람이
아이 좁은 집 안에서 밤이나 낮이나 우두커니 들어앉아 있으란게 속에서 가깝증이 나서 살 수가 없구나.
글쎄 가깝하시기도 하실테지만. 가깝하시서 그러시나? 삼준이 버럭 안악을 거찌르면서 눈까지 흘긴다.
이를테면 부친한테 못하는 헛불이를 안악에게 미어다 부딪는 셈이었다.
안악은 그래서 같이 성구지 않고 비기시 웃으면서. 나도 모르잖아 알아요.
어서 내려가셔서 일하시고 싶어서 그러시는 줄 다 알아요. 아버진 인전 삼준이 음성을 도로 부드럽게 하여 부친 도로 원정하듯.
제발 인전 그 일 좀 그만하시고 편안한 영감님 노력 좀 하세요. 야야 너도 딱 헌 소리도 다 헌다.
내일 모레가 70이신데 그 흉악한 총구석에서 잘 잡숫지도 못하시고 잘 입지도 못하시고
욕장 그 고된 농사일만 하시고 계시니 그럼 자식 된 마음에 좋아요?
그것도 내가 기운이 아주 빠져서 일 감당을 못하게 생겼으면서.
내 말도 괘이찬을 띠지야만 아직 이렇게 정정한데 아 그 심심 삼아서 일 좀 하기로 어쩌간디 그러냐.
그러나마 70평생을 일로 삼아온 이 애비 아니냐. 어디서 그리여?
혹시 집안에 아무도 일 감당을 해나갈 사람이 없다면 또 모르죠?
아 형수가 있고 영호놈이 올해 스무살이니 장정 아녜요? 영호란 삼준이 죽은 맏형의 맏아들이다.
그 애는 시골서 상리를 하고 다리병신 둘째 아이 병호는 삼준이 데려다 가계지기를 시키고 있는 참이다.
넌 겨우 일곱 말지기에 밭이나 한 삼천평 된다면서 그만 농사할 형수가 영호놈 데리고 휘어잡아 나가지 못해요?
또 둘째 형이 있으니 오면 가면 보살펴줄 터.
너는 속내 평을 모르니께 그런 소리를 넌 허는가 보다만 그 너 형수라는 아씨땜이 내가 속이 질어썩는다.
과부된 핑계하고서 농사야 집안 살림이야 뭐다 모른 새하고는 절루 불공허로 댕기기가 일이고
그놈 영호는 자식이 쓰기는 쓰겄어. 몸도 실직하고 부지런하고 속도 가중커리고.
그리두 넌 아직 나이가 어려놔서 뭘 알아야지? 농사 짓는 것도 물리가 나의 허는 뱁인데 아직 그럴 낯세가 되었어야지.
그렇더라도 어디가서 태산을 떠오는 일도 아니고 그저 모른 채 하시고 내버려 두시면 다 해요.
내가 모른 채하고는 내 삘에 두어보아라. 농사하며 집안 살림이며 쥑이 되는지 뱁이 되는지 모른단께.
강선다리 아들 내외가 그대도록 만류하는 것을 듣지 않고 분해 넘치는 호강도 다 마다하고
부득부득 고향으로 내려가기로만 고집을 세우는 것은 이유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강선다는 미상불 자기 말 따나 농사라든지 집안 살림이라든지가 두루 마음이 뇌지 않았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것만이라면야 가령 농사만 하더라도
이제는 가을거지 밖에 남지 않았으니 웬만큼 자기가 아니더라도 큰 손자가 영호가 저 혼자서 넉넉 해치울 수가 있었다.
또 방금 며느리가 하던 말대로 어서 내려가서 일이 하고 싶어서 물론 그렇게도 했다.
그러나 역시 단순히 일이 하고 싶어서만 어서 바삐 내려가지 못해 애를 쓰는 것도 또한 아니었다.
아무리 일이 하고 싶어도 손발이 저리기로서니 한 가을쯤 그걸 못 참을 바 없지는 않았다.
갑갑하다는 것도 일반이었다. 1년 365일을 거의 하루같이 아침 어둘력부터 온종일 날이 저물도록 들에서 살던 영감이다.
넓은 들에서 넓은 하늘 아래서 활개를 펴고 마음대로 호흡하며 마음대로 일하고 살던 영감이다.
그리고 영감이 하루아침 이 옹색스런 속에 들어와서 들박혀 있으려니 응당갑갑증이 날 노릇이었다.
뜰이라야 두 걸음만 거리면 세 걸음째는 앞 한 장이 이마에 가부딪힌다. 좌우는 이웃집 뒷벽이 답답히 가슴을 누른다.
하늘은 처마와 처마 사이로 손바닥만큼 올려다 보인다. 하루의 태반을 좁고 더운 방구석에서 누웠다 앉았다 서성거렸다 해야 한다.
강선달은 그래서 이건 바로 전중이 살기보다 더하다고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암만 그렇더라도 꾸욱 참고 견디자고 들면야 결단코 못할 것은 아니었다.
이 밖에도 구실은 얼마든지 많이 있었다. 시골로 내려가겠단 말이 날 적마다 번번이 이유가 달랐다.
뭘 한 지게에 5전씩 내고 사먹는단 말에 강선달은
야야, 원 5전이면 엽전 2돈 오픈 아니냐 하고 놀랐다.
이 동네는 언덕 꼭대기가 돼서 그게 정한 시세인걸요? 이렇게 심상희 며느리는 대답했다.
허, 서울은 물가장 다 사먹는다고 소문이사 들었더라만 뭘 한 지게에 돈이 2돈 오픈이라니? 응?
그래도 이 꼭대기 거정 저다 주느라고 힘든 일 생각하면
네가 저렇게 돈 아깐 중을 몰라서. 어쨌거나 돈이 2돈 오픈이면 야야,
10년 저짝만 휘어도 돈이 상답으로 한평이다. 한평이요.
그 대신 시방은 돈이 옛날보다 흔해지지 않았어요. 아버님, 암만 돈이 흔하게는 말고
세금팔이 쪼각으로 맹글어 쓴들 물 고까지껏 한 지게여다 2돈 오픈을 주고 사먹다니.
손벅허겄다. 손벅허겄어. 아잉, 아버님도 참. 나는 그놈을 못살겄다.
어서 도로 내리 가야겄다. 에잉, 무서운 세상이다.
그럴래서는 큰 방죽 하나만 갖고 있으면 당장 만석군이 부자가 되겠구나.
그게 어디 물값인가요? 저다 주는 값이죠. 둘러치나 미어치나 일반이지야.
참 사람 못살고장이다. 나는 죄로 가깝게 웃어서 그런 물 못 먹겠다.
어서 도로 내리 가야겄다. 바로 그날 저녁이었다. 삼준도 공장에서 돌아오고 하여 부자 나란히 앉아 저녁을 먹는데
너 내일은 양철동 우럴 두 개만 사갖고 오느라. 하고 강선달이 아들 덜어 일렀다.
생철동이요? 무엇에 쓰시게요? 물 한 지게여다 2돈 오픈씩 주고 사먹는다면서?
물 기르실려고 그러세요? 그런다.
그만두세요. 왜? 못 기르세요. 왜 못 찔어? 야야 내가 시방도 220원짜리 나락 한 썸을 지고 심리식을 당긴다.
근력이야 있으시나마나 며느리가 옆에서 거드는 말이. 늙으신 아버님을 물 기르시게 하자고 모셔왔나요?
편안히 가셔야 자식 된 지이가 다 마음이 즐겁고 민망한 생각이 들지 않지요?
글씨, 네가 날 그렇게 위여주는 정성은 반갑다만서도 아니 눈 멀뚱멀뚱 뜨고 앉아서
물 한 지게여다 2돈 오픈씩 주고 사먹는 걸 그냥 보고 있으란 말이냐?
그러나마 지이가 한 달 물값이나 한 3원 내게도 군색한 살림살이라면 몰라도
나는 손목 헛가무서서 그런 물 먹고 못 살겄다. 어서 어서 도로 내리 가야 겠다.
곰곰 무슨 생각을 하면서 반만 뜨고 있던 삼준이 문득 조용한 음성을 하여
아버지? 하고 부른다. 왜야? 제가 어머니를 생각하면 철천의 한이 되어요.
그러고는 삼준은 잠깐 말을 끊었다. 이었고 다시 어려서 일찍 부모스라를 뛰쳐나와서
종족도 소식도 없이 객지로 떠돌아 다니느라고 지지리 해 애가 받게 해드리지 않았어요?
그러다 필경은 임종도 못 해드리고 삼준이 목이 메어 또 말을 끊는다.
눈에는 눈물도 어리었다. 다만 한때라도 편안히 모셔 드리지를 못하고서 끝끝내 그 모진 고생을 하시다가 돌아가시게 한 일을 생각하면
아따 야야! 강선달도 창현한 기색으로. 그러나 쓸어덮듯 아들의 말을 막는다.
시방 와서 그런 말 1년이 상신만 되지 소용있냐? 고생하다가 후분 못 보고 그냥 죽은 것도 다 자기 팔자지.
내남없이 세상일이 다 운수 속 아니요. 타고난 팔자건이 험한 구만이니라.
어머니한테 못해드린 대신 아버지 한 분이라도 제가 매시고 제 정성, 제 힘 믿는 것 편안히 기시게 하자는 노릇인데
벌써부턴 물을 기르시네, 무얼 하시네 하시니 어디 매시온 보람이 있어요?
너덜 그 맘 하나면 구만이어야. 마음 하나면 구만이어야. 나는 아무것도 더 안 바랜다.
너가 시운을 타서 먹고 살기가 쪼들리지 않고 그러면서 단돈량이라도 밀려가면서 살고
그러면 나는 구만이어야. 좋은 음식, 비단옷 그런 건 내게 당치도 아니어야.
내가 9살부턴 쪽지개를 지고 나무를 히어다 떼고 12살부턴 장정돌 투모가 찡겨서 지심을 맸다.
그렇게 살아온 70평생이요. 그렇게 70평생을 살아온 내가 느닷없이 비단옷이 어디 당헌 것이며
끈이마다 괴기반찬으로다가 반주가 어디 당헌 것이냐. 물 한 지게여 두 돈 5푼씩 주고 사먹는
이 대쳐서 오래 산답게 어디 당헌 소리냐. 온 아버님도 오래도록 그렇게 일만 하시고 고생으로
지나섰으니깐 더구나 인전 편안히 좀 호강을 하셔야죠.
며느리 말이다. 강선달은 커다랗게 고개를 젓는다.
뭐라는 소리다. 옛말로도 송충이는 솔리벌 먹어야지. 갈립을 먹으면 못 산다는 뱁이니라.
그러고 그러고 내가 네가 날 위헤어 주니라고 돈 함부로 쓰는 뒤 그만 아주 질색을 허겠다.
가만히 보면 나 때문에 권현실이 안 쓸 돈을 딜이 없이 써. 이렇게 강선달은 아들 내가 돈을 함부로 쓰는 것,
둔에 맞지 않은 호강을 시키려 드는 것, 이런 것도 제각기 내려가고 싶게 하는 이유의 한 가지씩이었다.
그야 물론 한편으로는 두루 다 좋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들 삼준이 시골 농토에 파묻혀 농사꾼으로 평생을 마치기를 원하지 않고 부모 몰래 집을 나간 것이 보통 학교를 마치던 봄이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이었다. 그 뒤로 13, 14년을 묘연히 종적이 없었다.
집안에서는 분명 어디 가서 죽었거니 했다. 그러던 삼준이 5년 전 그의 모친의 초상마당으로 푸뚝 나타났었다.
집을 나가면서 무얼로든 한 가지 성공을 해야만 두 번 다시 고향을 찾으리라고 이를 가라 맹세했던 그는
과연 그 맹세를 헛되이 하지 않았었다. 경성에서도 유수하다는 어떤 인쇄소의 기계과장이라는 지휘회까지 올랐던 것이다.
안학도 잘 얻었었다. 같은 그 인쇄소의 재본공으로 다니던 여자인데 저희끼리 마음이 맞아서 결혼을 했었다.
인물은 그리 보잘 것이 없어도 첫째 왈, 사람이 퍽 사근사근하고 붙임성이 있으며 겸하여 살림 규모가 대단했다.
그래서 이건 작년 봄일이지만 친정집이 몹시 가난하던 끝에 뒤받쳐주는 사람을 잘 만나
함경도로 가서 정어리를 한 것이 소를 잡아 일조에 힘을 펴게 되자 돈을 3천원인가 타다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사고
몇백원 남은 걸 가지고는 장소가 마침 적당하여 구멍가게를 내고 했었다.
되라는 사람은 되기로만 마련이더라고. 시험 삼아서 낸 구멍가게가 순식간에 번창을 하여
불과 1년 반인데 지금은 가게 수입이 삼준의 월급 값절도 넘을 만큼 버젓한 것이 되었다.
삼준 내외는 그동안 누누이 부친 강선달을 쟤네가 모시겠노라고 직접 혹은 중형 재준을 통하여 졸랐으나
강선달은 좀처럼 응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나간 7월 백중에야 농사일이 녹금함 계제에
잠깐 다녀가려니 하고 올라온 것이 여지껏 그만 붙잡힌 모양이 되었다.
강선달은 올라와서 눈으로 보자니 생각더니 보다도 훨씬 더 흡족하고 따라서 마음에 기쁘고 했다.
나가서 죽은 줄 알았던 막동 자식이 이렇게 잘하고 살아. 저희끼리 오다 가다 만났을 망정 그 가속이 대단히 현숙해.
소같은 큰며느리나 촉새같은 둘째 며느리에다 대면 이건 바로 어른하고도 어른이었다.
가볍고 시원한 비단옷을 입혀주어 7월 복중인데 솜버선까지 신겨주질 않는가.
촌농군이야 입동이 지난 뒤에도 얼마를 잇다. 겨우 버선 한결에를 신으면 설이나 혹시 새걸 갈아 신을까.
그러고는 이른봄 모짜리를 하는 날 버선을 벗으면 다시 입동 후에야 비로소 신는 그 버선이 아닌가.
끼니마다 새로 지은 밥에 고기나 하다못해 생선 꽁댕이라도 솜씨내서 장만하여 밥상이 어설프지 않고 반주를 떨어뜨리지 않고
가끔가다 냉면이니 우동이니 하여 별식을 시켜오고 갑갑하고 심심해 할까 봐서 며칠 걸러큼씩 며느리가 모시고 나가
서울 장안을 곱이 샅샅이 구경을 시켜주고 이런 팔자 편한 영감님일 대라고는 없었다.
강선달의 마음에도 다 좋고 즐거웠다. 노상이 싫거나 괴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70평생을 흙에 묻혀서 더불어 살아온 강선달에게는 그 모든 호강이 아무리 해도 몸에가 작 안기는 줄을 모르겠었다.
마치 남의 옷을 빌려 입은 느낌이었다. 옷감도 펀치르르하고 또한 뜨뜻해서 좋기는 했으나 어쩐지 옷이 살해가 붙지를 않고 엉성한 것 같은 마음 어색스러움이었다.
그리고 무엇인지 불안스러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간절히 고향집으로만 내려가고 싶었다.
아직도 운모계가 충그리고 서 있는 아들 덜어 강선달이 재촉을 한다.
네 삼주는 건성으로 대답이다. 며느리가 남편과 시아버지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깜짝깜짝 무엇을 생각하더니
왜야? 즈희한테 지시는 심치시고 이제 며칠 남지도 않았고 하니까 말씀이에요.
추석이나 쇄시고서 내려가세요. 에이 못서! 못서! 강선달은 엄살스럽게 손과 얼굴을 설설 내젖는다.
모처럼 올라오신 길에 추석이나 즈희하고 같이 쇄시고서 내려가시면 즈희도 객지서 외롭지 않고 할걸. 갔다가 쉿! 또 오마!
암! 자주 오명 가명하고 말고. 그럼 내려가셔서 추석 쇄시고는 곧 또 올라오시죠.
오냐! 오냐! 곧 아니 오시면 왜 싫어 내려가요? 오냐! 곧 올라오마!
그렇게 오느라 가느라 허자니 노수가 자꾸 들어서 걱정이다만 강선달은 문득 한 말이 있었으나
아주 와서 있는 게 아니고 가끔 가끔 며칠씩 다녀 내려가고 하는 것은 차라리 해롭지 않은 노릇이라고 생각했다.
이튿날 아침 7시. 강선달은 호남선 암흑의 역에서 무사히 차를 내렸다.
고향의 정거장이 우선 반가웠다. 모두가 눈에 있고 친숙했다. 서로 누가 누군지 모르는 사이건만.
역의 사람들이 다 이무의로운 것 같고 또 무슨 잘못한 것이 있더라도 별로 허물지 않을 것 같았다.
역 앞에 이루어진 조그마한 저자의 가게하며 사람들도 역시 그런 것 같았다. 내려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강선달은 무한 마음이 즐거우면서 삼준이 내외가 이것저것 많이 사서 짐 메워준 짐을 멜빵 걸어 묵직하니 짊어지고
집 동네를 향하여 걸었다. 소로로 가면 10오리오 신장로로 가면 20리다.
강선달은 가까운 소로를 버리고 도는 신장로로 갔다. 선산과 논이 있는 곳을 지나가고자 합니다.
동네까지 거진 오늘하면 신장로 옆으로 조그마한 야산이 있다. 이 야산 아래자락으로 따로 떨어진 3천평 가량 되는 산판이 강선달 내 선산 맷갓이다.
그리고 그 선산과 연달아서 일곱마직의 논이 있다. 이 논은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산하답이다.
한때 궁하다 못해 팔아버렸던 것을 그 뒤에 자작롱 창정으로 도로 내 차지를 만들었었다.
그런만큼 강선달에게는 더욱 소중하고 재미가 곡진한 전장이었다. 강선달은 돈두덕에 가 멈춰서서 논을 내려다본다.
한 달 남짓했건만 잃어버렸던 것을 다시 찾은 것 같이 반갑고 마음이 놓였다.
토박한 봉답이 되어서 웬만큼 걸음을 하지 않고는 양석 소출이 어려운 논이지만 금년은 간 곳마다 풍년이라 역시 탐스러운 변목이 척척 숙었다.
어떻게든 흐뭇한지 몰라 강선달은 혼자서 싱글에 웃는다. 이제 며칠 더 있다가 저걸 죄다 베어서 등찜을 해서 집 마당에다 그득히 가려놓을 생각을 하니
자꾸만 입이 흐물흐물하여 견딜 수가 없다. 역시 이렇게 일찌감치 내려오기를 잘했다 싶었다.
서울 아들내의 살뜰한 봉양과 그 호강도 좋지만 암만해도 이 재미만은 못한 것 같았다.
하나, 둘, 셋. 강선달은 무심코 이렇게 논이랑을 세어본다.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아홉이랑 다 그대로 있다. 한이랑도 없어지지 않았고 고개를 끄덕끄덕 하다가 비로소 자기의 실없음을 깨닫고는 벌쭉 웃는다.
싫도록 논을 보고 나서는 그 다음 맥갓으로 천천히 발길을 옮긴다. 맨 입시로 마누라의 무덤이 있다.
영호가 그새 말끔히 벌초를 해놓았다. 강선달은 무덤앞으로 가까이 가서
나 삼준이한테 갔다 왔네 한다. 산 사람과 인사하듯 한다.
잘 덜하고 살되. 그러고는 조금 있다가 또 할멈도 한 십년만 더 살지 그린 넌가.
십년만 더 살았으면 삼준이 덕도 보고 실컷 호강을 히었지. 가하도 애여 마무 걸리넌가 부대.
또 조금 있다가 날더러 거기서 즈하고 함께 살자고 만류하더면 쯥 내려왔네.
다 편하고 좋대만 암만 히어도 여그만 못한 것 같덩만. 그래서 또 감하고 허고 내려오는 길이네 시방.
뭘 담복 사주어서 이렇게 한 짐이 휘어지고 정거장은 내리서 시방 집으로 가는 질이네.
그런 중이나 알라고 할멈 무덤을 댕겨가니라고 이질러 왔네. 무슨 철양하다거나 간절한 음성도 아니오.
예사 그저 영감이 마누라더러 이야기하듯이 오히려 구수하다.
참 그리고 강선달은 발길을 돌이키려다가 뒤밀쳐 생각이 나서
강선달은 아들 내외가 그토록 만류하는 것도 듣지 않고 분해 넘치는 호강도 다 마다하고 부득부득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고집을 피우는 데에는 그리 단순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강선달은 자기 말 맞다나 농사라든지 집안 살림이라든지가 두루 마음에 놓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러나 단지 또 그것만도 아니었습니다. 또 갑갑해서라는 것도 마찬가지인데요.
1년 365일을 들에서 밭에서 지내던 사람이 마당 한 뼘 하늘 한 조각 구경하기도 힘든 집에서 하루 종일 있으려니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좀 참자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는 일이겠죠. 이 단편 소설 속에서는 속 시원하게 그 이유를 알려주진 않습니다만
하지만 강선달의 마음을 표현한 마지막 즈음의 문장에서 그가 왜 그리도 시골집으로 내려가고자 했는지 그 이유를 좀 눈치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을 다시 한번 읽으면서 오늘의 영상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토박한 봉답이 되어서 웬만큼 걸음을 하지 않고는 양석 소출이 어려운 논이지만 금년은 간 곳마다 풍년이라 역시 탐스러운 변목이 척척 숙었다.
어떻게도 흐뭇한지 몰라 강선달은 혼자서 싱글에 웃는다.
이제 며칠 더 있다가 저걸 죄다 베어서 등짐을 해서 집 마당에다 그득히 가려놓을 생각을 하니 자꾸만 입이 흐물흐물하여 견딜 수가 없다.
역시 이렇게 일찌감치 내려오기를 잘했다 싶었다.
서울 아들 내의 살뜰한 봉양과 그 호황도 좋지만 암만 해도 이 재미만은 못한 것 같았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군요.
즐거운 감상이 되셨나요?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읽으면서 재미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채만식의 강선달을 감상하셨습니다.
그럼 전 다음 시간에 또 재미있는 작품으로 찾아오겠습니다.
끝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막상 겪어보니 그냥 그런 거 복잡하게 생각했던 것들
시간 지나니 이미 다 흘러가더라
어디로 가는진 모르고 그냥 걷다보면 어느새 여기 와있고
그저 그런 인생이야 흘러가는 대로 살다보면
좋을 때도 힘들 때도 별거 아닌 일상이 인생이 되더라
흐르고 싶은 것도 많아
지금 보니 그냥 하루하루 사람들 만나고 헤어지고 그렇게 흘러가더라
무엇을 위해 사는지 물어보면 답이 없고 사라지니까
그저 그런 인생이야 흘러가는 대로 살다보면
좋을 때도 힘들 때도 별거 아닌 일상이 인생이 되더라
잊지만 어쩌겠어 지나간 건데 다시 살라 해도 똑같이 살 것 같아
그저 그런 인생이야 흘러가는 대로 살다보면
좋을 때도 힘들 때도 별거 아닌 일상이 인생이 되더라
욕심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게 행복이더라
인생이란 게 사는 거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