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며듣는소설 어느 날 한량 남편이 웬 여자를 데리고 왔다 '앞으로 이 여자랑 같이 살거야' [굴비] 형경숙 #책읽어주는남자 #오디오북 #책과함께하는하루단잠

책과 함께하는 하루 단잠
93 팔로워
#잠자며듣는이야기 #잠자리소설 #책읽어주는남자
하루의 끝, 조용한 밤.
당신을 깊은 이야기 속으로 이끄는 오디오북 채널, 책과 함께하는 하루 '단잠'입니다.
🛏️ 잠들기 전,
🚶♀️ 혼자만의 감성 산책 시간,
🎧 눈은 쉬고 싶지만 마음은 이야기를 원할 때—
언제든 이곳에 들러주세요.
이번에 낭독할 작품은 형경숙 작가의 단편 소설 "굴비" 입니다. 😊
즐거운 감상 되세요.
🎵단잠의 클로징 플레이리스트 https://www.youtube.com/@MnightSound
✨회원 가입하셔서 '단잠'을 응원해 주세요. ^^
https://www.youtube.com/channel/UCWBs5r5b1MhDURiz-uTXfhA/join
타임라인
00:00:00 인트로
00:01:32 본문낭독
00:45:26 단잠의 아주 주관적인 감상평
00:47:37 클로징 음악 "가을이 오면"
#오디오북소설 #한국문학낭독 #밤에듣기좋은이야기 #감성오디오북 #잠이오는소설 #책읽어주는유튜브 #단잠을위한오디오북 #소설읽어주는채널 #조용한밤이야기 #audiobook #한국소설 #소설낭독
이번에 여러분들께 읽어드릴 작품은 형경숙 작가의 단편소설 굴비입니다.
예전엔 귀한 대접을 받았지만 요즘엔 좀 흔하다 싶은 생선 중에 으뜸이 있다면 아마 굴비가 있을 것 같은데요.
굴비와 관련한 어느 자린고비 이야기는 유명하죠. 자린고비 아버지가 가족들과 밥을 먹는데
밥상 위로 굴비를 한 마리 끈으로 매달아 놓고 밥 한 술을 입에 떠 놓고 굴비 한번 쳐다보고
또 한 숟가락 입에 넣고 굴비 한번 쳐다보고 하면서 밥을 다 먹었더라는 이야기는 아마 들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이건 우습게 소리이긴 하지만 잔치상이나 특별한 날이 아니면 먹기가 힘들었던 시절이 있긴 했습니다.
그만큼 굴비가 귀하고 그래서 한번 먹어보기가 쉽지 않았었나 봅니다.
그런데 오늘 읽어드릴 소설의 주인공은 굴비와 관련해서 뭔가 가슴 시린 사연이 있는가 싶은데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요? 이제 그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형경숙 작가의 굴비 낭독을 시작하겠습니다.
굴비, 형경숙, 삼복더위에 가뭄까지 겹쳤다.
밭 가장자리의 잡초들까지도 땡볕처럼 내리쬐는 햇살 아래 저렇듯 시들시들 말라비틀어지고 있으니
동식물 할 것 없이 불볕더위로 몸살들을 알아대고 있는 것이다.
밭작물이 타들어가고 논바닥이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진 게 벌써 보름째다.
사람마저도 가뭄으로 식욕을 잃어 시름시름 앓고 있는 이 마당에 우리 집만이 살 맛을 내고 있으니 동네 사람 대하기가 민망할 지경이다.
지금 한창 재미를 보고 있는 참외밭이라는 것이 군데군데에 수렁이 있어 논농사는 물론 밭작물을 심기에도 적절하지가 않아
둔네미 논베미에 참외씨나 묻어볼까?
한평의 땅도 비워두지 않으려는 것이 농심이다. 농사꾼이라면 농사철에 누렇게 드러누운 땅을 보기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서세요 작년에 뿌린 메밀장 나려고요? 영감의 심정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나는 메밀씨앗이 썩고 나오지 않은 일을 들어 제동을 걸었던 것이다.
또 알아? 해마다 실패를 보면서도 봄이면 농사철에 맨땅이 거슬려 무엇이든 심고픈 게 농심인걸 어쩌랴
그 농심으로 심은 참외가 풍작을 이루었다. 극심한 가뭄으로 수록론이 마르면서 오히려 밭작물이 자라기에 적합해진 것이라고 한다.
내 예상을 깨고 참외가 대풍을 이루고 보니 영감의 농심에다 기상대의 장기예보에 맞춘 손자 녀석의 안목이 적중했던 것이다.
손자인 영호가 호박모를 사다가 심더니 뿌리가 내리기를 기다렸다가 순을 잘라내고 그 위에 참외 싹을 잘라 접을 붙이는 것이었다.
그 과정을 처음 본 영감과 나는 무슨 마술을 대하듯 신기해하며 지켜보았다.
접붙인 참외 모 주변에다 곰삭은 닭똥을 묻어주고 공을 들여 키우더니 저렇듯 황금알 같은 열매들이 주절주절 달렸다.
가뭄과 불볕더위로 참외가 귀하게 되자 요즘은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한다.
그래서인지 꼭두새벽으로 참외가 가득 실린 경운기를 몰고 나가는 손자 녀석의 어깨 위엔 신바람이 묻어들어 있다.
영호가 숨막히는 도시를 탈피해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농사를 짓겠다고 들어왔을 땐 정말이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어미, 애비가 자식을 공부시키겠다고 도시로 나갔고 큰 놈인 영호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괜찮은 회사에 취직이 되었다.
결혼해서 남매도 두었다. 그런 녀석이 농사를 짓겠다고 들어왔으니 기가 막힌 노릇이 아닐 수가 없었다.
여북하면 제 어미, 애비가 장가도 들지 않은 둘째 성호에게 형처럼 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쓰게 했을까.
저희와 함께 사시니까 좋으시잖아요. 좋긴 뭐가 좋아. 둘째까지 장가들이고 나면 어미, 애비가 들어올 계획이었지만서도 영호 말 맞다나 싫지는 않다.
하지만 영호가 세웠다고 하는 특수작물 계획이라는 것이 뜻대로 되어갈 것인지는 염려스럽다.
굴비나 한두름 사오렴. 영감도 손자 녀석의 신바람을 느꼈음인지 등 뒤에 대고 한마디 던져붙인다.
영호가 대답은 냉큼하고 같지만 할아버지의 속뜻을 짐작인들 할까.
나는 두발 달린 고기는 물론 물고기도 먹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굴비만큼은 먹었으니 무슨 조화 속인지 모를 일이다.
요즘은 너무 흔해져서인지 그때 굴비 맛이 아니다. 지금이니까 어디 굴비, 어디 조기, 무슨 굴비, 무슨 조기 해가면서 사 먹고 있는 것이지
모든 것이 귀하기만 하던 그 시절에는 굴비면 그냥 굴비였고 조기면 그냥 조기였다.
그 때문에 영감은 오일장이면 산배나 무명배를 팔고 오면서 굴비를 두름으로 사가지고 왔다.
시어머니는 이를 시집살이는 혹독하게 시키면서도 먹는 것은 관대한 편이었다.
한 번을 먹어도 먹는 것처럼 먹어야 감질이 안 난다면서 사오는 그날로 큼직한 굴비를 너댓마리 굽게 했는데
그것을 실컷 먹고 나면 정말로 며칠 동안은 굴비 생각이 나질 않았다. 말은 없으면서도 그처럼 굴비를 사들고 왔던 걸 보면
내 생각을 꽤나 했던 것 같다. 그날의 굴비 사건만 보더라도 그날의 굴비 사건이 아니었으면 영감과 그 여자는 어찌 되었을까.
오후 2시가 지났다. 공판장에서 경매로 참회를 넘기고 10시쯤이면 돌아와야 할 손잔 녀석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손부가 좌불안석으로 들락거리는 걸 보자니 나 또한 덩달아서 불안해지는 마음이다.
혹시 사고가 나지 않았나 하는 방정맞은 생각까지 든다. 거참, 둘째를 들잡고 나간 손부는 저녁 지을 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고추를 거둬들이고 나가버리던 참인데 원두막을 지키고 있어야 할 영감이 땡감시분 얼굴로 들어오면서 던져붙인다.
왜요? 가슴이 덜렁 내려앉는다. 내가 원두막으로 나가야 영감이 들어와 밥을 먹고 영감이 나오면 비로소 내가 집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원두막을 비워두고 저리 들어와 버리다니. 임자가 나가봐야겠어.
다급해하는 영감의 말에 나는 멍석에 말린 고추부터 주섬주섬 거둬들인다.
본 뒤 말수가 없는 영감이 저리 다급하게 나오는 것으로 보아 예산들이 아니다 싶어 원두막 쪽으로 잰걸음을 친다.
산모퉁이를 돌아서는데 나비일리가 없는 하얀 두 물체가 논두렁을 타고 납풀거린다.
무엇인가 싶어 눈에 초점을 모아 살펴보는데 애가 달린 손부가 웬 여자를 쫓고 있다.
참회서리는 의당 있는 일. 먼저 들여보내 전역을 짓게 하지 않고 저런 일을 손부에게 맡기고 들어와 버리다니 영감도 참.
이곳은 분지로 둘러싸인 산골 마을이다. 세월이 바뀌면서 20여 가구가 사는 산중인 이 마을에도 전기가 들어오고 자동차가 왕래하게 되었다.
2년 전만 해도 오일장을 보고 해 떨어지기 전에 돌아오려면 새벽부터 서둘러야 했지만 지금은 버스가 생겨 한달음에 달려갈 수가 있어
한나절도 걸리지 않는다. 한 가지를 얻으면 한 가지는 잃어야 하는가.
사람들이 왕래가 자자지게 되면서 순박하기만 하던 젊은이들이 도시 사람들의 흉내를 내가고 있다.
그 때문에 요즘은 젊은 여자애들이 낫도깨비 같은 옷차림에 눈길을 어디다 두고 보아야 할지 여간 난감한 게 아니다.
붙들지도 못할 거 그쯤 쫓으면 됐지 억척스럽게도 쫓는다. 생각하며 원두막으로 들어서는데
손자인 영호가 그 밑에 쪼그리고 앉아 뻑금 담배를 빨아 대고 있다.
내가 있으면서 애를 업은 어멈더러 서리꾼을 쫓게 해? 어이가 없어 나무란다.
그런데도 손자로부터는 아무런 대꾸가 없다. 보아하니 입을 열 눈치가 아니다.
영문을 몰라 지켜보고만 섰는데 손부가 헐레벌떡 다가든다.
이럴 거야 정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데다 음성까지 카랑카랑하다.
가랑잎에 불을 지를 기세다. 이 땀 좀 봐. 우선은 성질을 가라앉혀야겠다 싶어
목에 누르고 있던 수건으로 얼른 손부의 얼굴을 훔친다. 할머니 저희 하는 짓 좀 보세요.
집에서는 식구들이 제때에 오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는데 글쎄 여자와 놀아나다 여기까지 데리고 온 꼬락선이를 보라고요.
증손자를 받으려던 나는 남편한테 꼬락선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손부의 입을 멍하니 바라본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요원은 손부가 쫓던 게 서리꾼이 아니었던 것이다.
방학인 요즘은 아이들이 때로 몰려다닌다. 그 아이들이 문제인데 참외서리를 하러 들어왔다가 들키게 되면 사방으로 흩어져 버리는 바람에
한 놈도 붙들 수가 없게 된다. 그래 이번에도 서리꾼이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별일 아니에요. 별일 아닌데 여자를 데리고 와? 제 서방을 한 입에 달칵 물어 삼켜 버릴 것처럼 얼굴을 지켜들고 대들면서 하는 말이다.
시골에 가더라도 당신은 집안에서 애 돌보고 산림만 하면 된다. 농사를 짓더라도 일은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다.
특수작물로 월급쟁이보다 수입도 몇 배로 올리겠다. 두고 봐라. 절대로 후회하지 않게 해주겠다.
거기다 문방만 나서면 아름다운 자연의 공기가 맑아 얼마나 좋으냐?
아이들도 어려서는 자연 속에서 성장시키는 것이 정서적으로 좋다. 바람 쐬고 싶으면 버스가 다니니 바깥 나들이를 하면 될 거 아니냐?
노후가 되면 전원생활이라고 해서 모두들 농촌으로 들어가는데 우리는 미리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부어 삶아 귀농을 따라 나서도록 만든 모양이었다.
별일 아니야? 그럼 나 말고 그 여자하고 농사 짓고 살면 되겠네? 손부가 어깃장을 놓는다.
바른대로 실토하거라. 손부 태도로 보아 일 나겠다 싶었고 영문도 모르고 당해야 했던 내 지난 날을 생각하며
영호를 여지없이 다그치는데 그 말이 솔깃했던지 손부가 나를 힐끔 돌아본다.
내 다그침 때문이었는지 영호가 자초지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영호는 오늘 농협에 들렀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참회 얘기가 나왔는데 귀한 내접을 받고 있는 터라 모두들 호감을 갖더라고.
병충해, 농약 문제 등으로 농협의 신세를 지고 있는 터에 참회를 보내겠다고 하자.
신참내기 여직원을 선뜻 딸려 보내더라는 것. 그래 보낼 참회를 따 놓고 원두막에 앉아 참회 하나를 막 먹으려는데
집에서 나오던 손부가 그 장면에 눈을 불아리며 다가 들었고 그 기세에 놀란 여직원이 참회고 뭐고 냅다 도망을 쳐버렸다는 것.
그게 수상 적었던 손부는 잡아서 요절이라도 내버릴 양으로 뒤를 쫓아갔던 것인데
애를 업고 쫓는 손부에게 혼자 뛰는 여자가 붙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죄가 없는데 도망쳐? 영호의 실토가 거짓이 아닐 것 같은데도 손부는 믿으려 들지를 않았다.
보다 못한 내가 영호의 말이 사실인 것 같다. 그러니 이번 한 번만 넘어가 주면 안 되겠느냐고 사정하다시피 해서 집으로 들여보내게 되었다.
손부는 마지못해 들어가기는 했는데 어른을 모시고 사는 처지라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있을 수만도 없었을 터였다.
손자가 제 할아비처럼 느닷없이 여자를 집으로 들인다면 손부의 태도로 보아 그 자리에서 요절을 내버리고 말일이었다.
밥 안 먹어? 참회나 하나 깎아 먹고 말아야겠어요. 삐거덕거리며 원두막으로 올라와 모기장을 털며 들어오는 영감한테 한다는 소리가
나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나가고 만다. 그때 일이 새삼스레 고가워진 듯이. 손부는 어떡하고 있어요?
입이 붙었지. 그 냉전 속에서도 묵묵히 앉아 밥을 다 먹고 왔을 영감. 안 봐도 고원하다.
그 배심으로 나에게 한마디 언질도 없이 여자를 불쑥 집으로 데려왔을 것이니까. 손자가 여자를 데리고 왔으면
손부가 엉뚱한 오해를 해서 손님을 쫓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했어야지.
나 몰라라 들어와 버리다니. 그것이 어른으로서 취할 자세냐 싶어 밉살스럽다.
어여 들어가. 오늘 밤은 여기서 자야겠어요. 한대 잠을 잔다고?
내 속내를 알 리 없는 영감은 증송까지 본 할망구를 그래도 여자라고 한대서 잔다는 것에 기겁을 하는 것이다.
나는 손자 내외가 나 때문에 할 말을 제대로 못해서 앙금이 쌓일까 그게 염려스러운 것이다.
하여 오늘 밤 저희들끼리 오해를 풀 수 있는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 나는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그 같은 상황에 직면해야 했다.
바보는 아니지 싶은데. 씨앗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쑥맥에다 씨앗에 대한 감정을 세울 줄도 몰랐다.
다시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지금도 그럴까? 뜨거운 태양 아래 여름을 열창하던 매미 대신 이제는 풀벌레들이 밤을 예찬하고 있다.
풀벌레들이 다양한 소리로 노래하는 오늘 밤처럼 씨앗과 나는 뒷곁에서 사이좋게 목욕을 했다.
안 되셨겠네요. 손부가 여자를 쫓아버리고 말았으니. 불쑥 던진 말투에도 영감은 주머니를 부스럭대며 담배 찾는 신욕만 한다.
새삼스럽게 투기는 무슨. 그보다 영혼은 제 할아비가 사오라는 굴비를 사오지 않았다.
바빠서 그럴 경향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은 되면서도 그 비싼 시절에도 사다주던 영감의 속정이 헤아려져 고가운 마음쯤 풀어버린다.
영혼 녀석이 여자를 데리고 왔다면서요? 내 그 말에 영감은 쓰다 달다 이런 반국 없다.
양심은 있었던지. 그런 일이 지금 벌어졌대도 그랬을까?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씨앗에 대한 감정이 그렇게도 무디었을까?
내가 그때 손부하듯 했으면. 영감은 영호의 이야기나 내 푸념에도 알한 것 없이 어둠 속만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35-36년 전 무더위가 고비에 이른 8월 초순이었다.
영근 뀌약볕으로 고추가 붉게 물들어가고 애호박이 살을 찌워가고 있었다.
날씨마저 우거진 녹음의 숨결로 숨통이 틀어막히는 후덥지근한 날이었다.
그날따라 시어머니는 관대해져 내게 일을 시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괜스레 텃밭에 상추를 뜯어다 놓고 고추를 따다 놓았는데도 또다시 따다 놓는 등 마음의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빨대가 되지도 않은 오가지들을 챙겨 개울로 나갔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같은 행위가 타고난 여자로서의 육감 때문이지 않았을까?
점심을 먹고도 멀리 선으로 가물거린 논밭을 눈이 시리도록 바라보면서
말끔한 모시옷 차림새로 여자를 데리러 간 영감을 기다렸던 것이다.
바보, 멍청이 같은 이라고. 가뭄으로 모를 낸 눈이 말라가고 있었다.
동네 남자들은 너나 없이 밤마다 논에 물을 대는 게 일이었고 새벽 엿게야 돌아와 코를 고라댔다.
그러던 영감이 어느 때부터인가 물을 데려 나가면서도 속옷을 갈아입으려 들었다.
영감의 그런 행위를 이상하게 여길 줄도 몰랐던 쑥맥인 나는 바쁜 와중에도 남편의 속옷을 준비해대기에 여념이 없었다.
새벽에 들어온 남편의 모습에선 밤이슬을 맞아가며 물을 댄 것 같지도 않았는데 그것조차도 나는 의심할 줄을 몰랐다.
남편의 나이 서른여덟이고 내 나이 겨우 스물다섯이었다.
중매로 시집을 왔다고 해도 노총각인 영감에 비해 나는 푼내기에 지나지 않았다.
까닥모를 불안감에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날 밤, 영감은 밤이 깊어서야 돌아왔다.
소척새의 철향한 울음소리에 섞여 딸깍딸깍 대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이내 알아들었다.
여느 때 같으면 대문을 칠 것도 없이 아들 이름을 불렀을 것이지만 그날은 문고리만 딸깍댔다.
영감임을 직감한 나는 등을 밝혀 마루에 걸어놓고 대문계로 쫓아나갔다.
가슴속에선 까닥모를 방망이질이 쿵쾅대고 있었다. 나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조심스레 빗장을 풀어 대문을 안으로 잡아당겼다.
삐거덕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영감의 등 뒤로 돌아서는 물체가 언뜻 잡혀들었다.
여자였다. 나는 내가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 다시금 살피다가 이내 얼굴을 수그리고 말았다.
영감은 내게 어렵기만 해서 예 아니요 라고만 했을 뿐 호칭을 부를 엄두는 내지 못했다.
그때까지 나는 영감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본 일조차 없었다. 영감은 16인 내게 29살로 장가를 들었다.
영감은 내게 지압이라기보다 우덜음 같은 존재였다. 들어가. 한참을 묵묵부답으로 서있던 영감이 여자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노란 보자기의 보통일을 아는 여자가 쭈뼛대며 영감을 따라 얼른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짧은 파마머리에 반호장을 두른 노랑 저고리의 빨간 치마의 새색시 같은 여자는 대문 안으로 들어와서도 쭈뼛댔다.
그에 비해 나는 쪽을 접고 물감 들인 무명의 청치마와 분홍 저고리의 초라한 촌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내 모습이 초라하다는 생각도 못 가졌을 정도로 세상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영감의 꽃무늬에 묻어 여자가 안방으로 들어갔는데도 나는 선뜻 따라 들어가지 못하고 토방에서 서성거리기만 했다.
엄엄도 들어오느라. 시어머니의 인자한 음성이었다. 영감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온 마당에 들어보는 시어머니의 그 같은 음성에
나는 가슴이 따뜻해져 옴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내가 들어가고도 시어머니는 아랫목에 꼿꼿이 앉아
문쪽으로 서 있는 여자의 이모저모를 뜯어보기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때서야 나도 호롱불에 비친 여자를 보게 되었는데
얼굴이 네모저 남상이고 두툼한 입술에 입이 유별나게 커 보였다. 절을 받고 난 시어머니가 여자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고향은 어디냐? 부모 형제는 있느냐? 결혼은 했느냐? 아이는 있느냐? 나이는 몇이냐? 등이었다.
여자는 진천 고향에 부모 형제가 있으며 결혼은 하지 않아 아이는 없는 상태로 술집으로 떠돌아다니는 처지라고 했다.
여자의 그 말에 시어머니는 저기 안심이 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여자에게
나는 형님으로 6살짜리 명섭이와 2살짜리 명순이를 자식들로 여길 것을 엄명처럼 내렸다.
시어머니의 그 말에 나는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외모로 보나 9살이 많은 나이로 보나 내가 여자에게 형님이라고 해야 오를 일이었다.
시어머니의 말 한마디로 형님이 되어버린 나는 여자에게 동서나 아우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씨앗이 무슨 뜻인지조차 몰랐던 나는 시샘의 대상으로 여겨지지도 않았다.
다만 남편이 하는 일이니 남편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었을 뿐이다.
시어머니는 여자에게 사랑방에서 기가하게 하고 내게는 건넘방에서 자라는 것이었다.
시어머니의 그 느닷없는 말에 나는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건넘방은 당연히 영감과 나이방이었다. 그런데도 시어머니는 홀래를 치르고 열흘 동안만 우리에게 합방을 허락했다.
열 하루째 되던 날 나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짐승과도 같이 시어머니의 방으로 건너갔다.
젊은 것들이 한 방을 쓰면 일을 못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이후 나는 밤늦도록 일을 하다 시어머니가 자라고 하면 자야 했고
시어머니와 함께 꼭두새벽으로 일어나야 했다. 시어머니가 하는 일은 주로 길삼이었다.
여름에 삼을 져서 벗기면 째고 바래고 잇고 틀을 메고 배를 짜야 했고 겨울에는 목화섬을 물레질하여 짜야 했다.
그러자니 손길이 수도 없이 많이 갔다. 그 일을 해내자니 며느리를 자식의 품에 안겨둘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명섭이와 명순이는 내가 데리고 잘 것이니 넌 네 방으로 건너가거라.
나는 시어머니 살아생전에 영감과 한 방에서 기가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체념해 버리고 있었다.
그러니 그 상황이 나로서는 느닷없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영감과 여자가 사랑에 있지 않은가.
그럼 명순이는 제가 데리고 자겠어요. 그럴 것 없다.
나는 내 쫓기다시피 해서 시어머니의 맞은편 건너방으로 혼자 건너와야 했다.
7년 만의 해방이었다. 나 혼자만의 독수공방이 시작된 것이다.
그때까지 한 방을 써왔는데 어린 것들 둘을 다 데리고 있겠다면서 며느리에게 독수공방을 시키려는 어머니의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아들 내외를 완벽하게 갈라놓은 처지에서도 우리는 명섭이와 명순이를 낳았다.
그때 영감은 굶주린 일이와도 같았다. 꼭두새벽에 부엌으로 나오면 바람찬 뒷곁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내 입을 틀어막고는 건너방의 뒷곁으로 잡아 끌었다. 지금처럼 세상이 험했다면 순순히 끌려갈 수가 있었을까.
그러나 나는 의심의 여지 없이 끌려가서 영감의 꼿꼿한 성기를 잠재워 주었다.
그건 소나 돼지, 개 같은 행위였는데 이틀이 멀다 하고 버리다 행위가 끝나기 무섭게 사라지는 영감의 뒷모습에서
옆면의 눈길을 지울 수가 없었다. 명섭이와 명순이는 그렇게 낳은 아이들이었다.
명섭이와 명순이를 낳은 것에 대해 모든 것을 훤히 꿰뚫었을 시어머니는 거기에 대해 한마디의 언급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무서운 분이었다. 여자가 들어온 다음 날 새벽이었다. 건너방에서 나온 나는 절로 사랑방 쪽으로 눈길이 가졌다.
대똘 위에 벗어놓은 두 켤레의 신발이 부엌에 드러나 보였다. 나란히 놓인 신발을 보는 순간 당연히 일어나야 할 질투심은 없고
여자에 대한 호기심만 잃었다. 나는 단지 호기심에서 사랑방 쪽으로 가만 가만 다가갔다.
영감의 콕 오는 소리가 베어 나왔다. 한참을 서 있어도 여자의 인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날이 밝고 해가 떠오르는데도 사랑에선 아무런 귀척이 없었다. 시어머니는 자고 있는 두 사람은 내버려 둔 채 아침을 못 자고 있는데
당신이 데리고 자면서까지 나에겐 잠시의 틈도 주지 않던 시어머니가 어른 앞에서 늦잠을 자는 여자에겐 그토록 관대하다니
도무지 납득이 되질 않았다. 어쨌거나 나는 손님을 두고 우리만 먹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가 못했다.
입맛도 나지 않았다. 그래 몇 수저 뜯어 말았다. 그렇게 물린 아침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속치마바람의 여자가 부엉문 앞을 쭈뼛걸었다. 세수는 어디서 해요? 내가 돌아보자 여자가 말을 붙였다.
화장기 없는 얼굴 눈 주위로 빗금처럼 그어진 잔주름들이 또렷했다. 어제 밤에 봤을 때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였다.
시어머니가 분부한 형님이라는 호칭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여자 또한 쓰지도 않았다. 따라와요.
내 안내에 여자가 부엉문을 타고 펌프 음물이 있는 뒷곁으로 넘어왔다.
여자가 물을 품어 올려 세수를 하는 동안 나는 두 사람의 밥상을 차렸다. 차린 밥상을 들고 여자보다 먼저 사랑으로 갔다.
잠자리는 여자가 개키고 나왔는지 실엉 위에 이불이 얹혀 있었다. 동쪽으로 나 있는 문 앞에 앉아 담배만 피울 뿐
영감은 밥상을 들고 들어간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 모습에서 나는 내가 오히려 죄를 지은 사람처럼 주눅들어 있었다.
털커덩 겁까지 나서 밥상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도망치듯 나와버렸다. 그리고 한숨까지 내쉬었다.
영감은 사랑에서 꼼짝하지 않은 채 밥상을 들여보내면 여자가 상만 내다놓은 사흘이 나에게는 답답하고도 긴 시간이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건 그걸 보면서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무심해하는 시어머니의 태도였다.
영감과 여자는 하숙생인 양, 사랑에서 따로 밥을 먹으면서 지냈다.
내가 밥상을 들고 가 기척을 내면 여자는 언제나 속심화바람으로 상을 받았고 먹고 난 후에는 밥상을 부엌에다 내다놓고 상포로 덮어놓았다.
그렇게 아침 먹은 설거지는 점심을 준비하면서 했고 점심 먹은 설거지는 저녁을 준비하면서 하는 식이었다.
여자가 들어온 지 1회가 지나면서 동네 남자들이 우리 집 사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허물 없이 농까지 하는 것으로 보아 여자는 동네 남자들과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여자가 소리를 하고부터는 인근의 남자들까지 찾아들었다.
농사철인데도 남자들은 들에 나가는 대신 우리 집 사랑방으로만 모여들었다.
그 이후 여자는 소리하는 것이 일과가 되어버렸다.
여자 또한 소리하기를 즐겨하는 것 같았다.
나 역시도 여자의 소리가 좋았다.
요즘으로 말하면 판소리였는데 꽤 잘하는 것 같았다.
그 노랫소리에 반해 제 옷은 제가 빨아 입으려는 것을 내가 빼앗아 다림질까지 해다 바치곤 했다.
여자는 아침에 나와 세수하고 변소 출입하고 밥상 얻어먹고 나서 부엌에 내다놓는 등이 그녀의 바깥 나들이 전부였다.
그러는 중에도 여자와 나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은 정의라는 것이 쌓여가는 것 같았다.
나의 호기심도 남자들 못지않았다.
하루는 사랑방 문 밖에서 소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안방문이 덜커덕 열렸다.
찌찌.
저런 바보 천치 같은 이라고.
신발을 채 꽤 신지도 못하고 쫓아 나온 시어머니가 나를 냅다 잡아 끌었다.
시어머니의 섯을 퍼런 노요움으로 안방에 갇힌 신세가 되어서도 나는 오직 여자의 소리에만 귀가 기울여졌다.
목욕 같이 안 할래요?
여자는 저녁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내게 마치 자매나 되는 듯이 스스럼없이 제안해왔다.
나도 여자의 제안이 내심 반가워 함집악에 물을 받게 했다.
나는 여자가 펌프질하여 받아놓은 물을 날라다가 건넌방 가마솥에 붓고 아궁이의 장작불을 집혔다.
방에서 나왔다가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아궁이 앞에 그녀와 내가 나란히 앉아있는 것을 본 시어머니는
보기 좋은 광경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듯 이내 다시 들어가 버리는 기색이었다.
넙적한 돌을 아무도 보이지 않을 굴뚝 뒤로 여자와 함께 맞들어서 옮겨다 놓았다.
데운 물도 함집악에 퍼담아 맞들어서 옮겼다. 그렇게 함께 하는 사이에 어느덧 동질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갖다 놓은 소쿠리에 여자가 먼저 옷을 벗어 담았다. 벗은 옷을 소쿠리에 담고 알몸이 된 우리는 넙적한 돌 위에 앉아 물을 끼얹어 가며 서로의 등을 밀어주었다.
여자의 피부는 매끄럽지가 못했고 뼈마디가 나뭇가지와도 같이 앙상했다.
뼈마디가 툭툭 붉어진 여자의 등을 미는데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서운 시집살이 속에서 여자가 들어옴으로 해서 오히려 내게는 숨통을 틔우는 여지가 생겼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또 무섭게 시집살이를 하던 참에 나와 동등한 여자가 생긴 것에 의지가 되었던 것 같기도 하고
시어머니에겐 감히 등을 밀어 달라고도 못했고 부탁한들 들어줄 시어머니도 아니었다.
여자와 목욕할 때만큼은 시어머니가 모른 척해 주어 눈치 보지 않아도 돼 자유로웠다.
여자가 오기 전엔 삼복 더위에도 이틀이나 사흘 만에 하는 목욕을 시어머니의 눈치 보아가며 해야 했던 것이다.
둔내, 댁속도 좋아? 서방 빼앗기고도 괜찮아?
하루는 웅덩이 세면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동네 아낙들이 놀려댔다.
빼앗기긴요? 빼앗기지 않았다고? 뭘 빼앗겼는지를 모르나 봐? 정말 모른단 말이야?
동네 아낙들이 저마다 놀려댔다. 빼앗길 게 있나요?
어머머, 저걸 어째? 내 그 한마디에 동네 아낙들이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그들의 태도에 무한해진 나는 채빨지도 못한 빨래감들을 주섬주섬 주워 담아 집으로 달아와 버렸던 것이고
그날 밤이었다. 동네 아낙들이 쑥은거림에 귀가 간지럽기라도 한 듯
시어머니와 함께 길삼리를 마치고 건너방으로 잠을 자러 갔는데
잠시 후에 영감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덤벼들어 나를 쓰러뜨렸다.
신혼 열흘을 제외하고 정상적으로 관계를 가진 것이 그때가 처음인 셈이었다.
요도 깔지 않은 맨바닥에서 도둑처럼 그 일을 해치운 남편은
바지를 축혀 올리기가 무섭게 사랑으로 건너가 버렸다.
그건 마치 마누라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허둥지둥 달아나 버리는 바람둥이 남자 같은 모습이었다.
그 뒤로도 남편은 그런 식으로 다가왔다 바람처럼 사라져 가고는 했다.
그런 다음 날이면 시어머니는 전혀 없이 알 수 없는 웃음으로 나를 흙기 쳐다보곤 했다.
그런 날이면 나는 잘못을 저지른 죄인마냥 얼굴이 붉어져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건 시어머니의 의도에 의해 벌어진 일이었다.
서방 빼앗겼다는 안학들이 쑥은거림처럼 며느리인 내가 안 돼 보였던지
시어머니가 여자를 안방으로 불러들였던 것이다.
나에 대한 시어머니의 배려였던 것이다.
하루는 초저녁에 여자를 불러들였다.
한가락 뽑아봐라. 들어보자.
겁먹은 얼굴로 들어선 여자에게 시어머니가 명령처럼 내렸다.
놀라운 일이었다.
밤낮 없이 사랑에서 뽑아대는 소리에 싫은 기색을 보이진 않았지만
소리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시어머니였기 때문이다.
왜? 싫으냐?
여전히 긴장된 표정인 여자에게 시어머니가 다그쳤다.
그게 아니고...
그게 아니면 서 있지만 말고 해봐.
조글조글한 눈꺼풀을 걷어올리면서 시어머니가 몰아세웠다.
그럼 제 입은 보지 마시고 듣기만 하셔요.
여자가 잠시 목을 가다듬은 후에 소리를 뽑기 시작했다.
낙양사 심리하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 호거리 몇몇이냐
절세가이니 그 누구냐
우리 내 인생 한 번 가면 저 모양이 되더이다.
에라 만수 에라 채신이야
시어머니는 여자의 말에 따르기 위함인지
눈을 내리감은 채 잠옷 심각하게 듣기만 했다.
하지만 나는 시어머니 옆에서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끄듬절을 길게 뽑을 때면 입이 어찌나 크게 벌어지던지
남자의 주먹이 드나들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여자는 심청가 중에서 신봉사가 봉사잔치에 초대되어 가는 장면과
춘향가 중에서 사랑가와
이 청춘전 중에서 들려주었는데
알아듣기 쉽게 설명까지 해주었다.
그로 인해 소리에 대해 문외한이던 나도 의미를 새겨가며 듣게 되었다.
그날 밤 여자가 안방에서 물러갔을 때는
동네 남자들이 기다리다 못해 모두 돌아간 뒤였다.
어쨌거나 나는 크게 벌어지던 여자의 입을 본 이후
그녀의 밥을 남편 것과 함께 수북하게 퍼올려 담게 되었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을 때까지 사랑방에선 밤낮으로 소리 그칠 날이 없었다.
남자들이 반해버릴 정도로 여자의 소리는 듣기가 좋았다.
남자들이 소리에 홀려 허구한 날 우리 집 사랑방에만 몰려있게 되자
동네 안학들이 들고 일어났다.
시어머니가 여자를 안방으로 불러들여 소리를 뽑게 한 다음 날이었다.
이젠 명섭이 할머니까지 이러시기입니까?
이러다간 동네 다 망치고 말겠어요.
얌전하기로 정평이나 있는 수분이 엄마도 화를 냈다.
첩을 들였으면 혼자나 데리고 살 일이지
왜 암케마냥 동네 남자들을 다 불러들이냐는 말이오.
입빠른 소리 잘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금순이 할머니가 작정을 하고 나선 듯이 쏘아댔다.
아닌 게 아니라 명섭이 할머니까지 이렇게 나올 줄은 정말로 몰랐네요.
술집 여자를 들인 명섭이 아버지가 마땅치 않았어도
모두들 명섭이 할머니 때문에 잠잡고 있었는데
어르신까지 이러신다면 저희도 이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구먼요.
더 지속되다가는 동네 남자들을 다 망치고 말리리라구요.
경우가 밝은 문구 어머니도 쏘아붙였다.
논이고 바치고 송갈대는 많은데
허구한 날 남자들이 이 집 사랑방에만 죽지고 앉았으니
집집마다 다 굶어죽게 생겼다구요.
아낙들이 저마다 악에 바친 소리들을 해댔다.
알았네. 알았으니 그만들 가게.
안에서 듣고만 있던 시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나오면서
벌컥 소리를 질러댔다.
가는 거야 어렵지 않지요.
하지만 무슨 조처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확실한 말씀을 해주시기 전에는 돌아갈 수가 없겠구먼요.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기세였다.
내가 알았다고 했으면 됐지. 무슨 말이 더 필요해?
그렇다면야 가지요.
명섭이 할머니만 믿고 가겠으니 그리 아십시오.
갑시다들.
문구 어머니가 쐐기를 박듯 다짐을 주고는 아낙들을 몰고 갔다.
시어머니의 고민은 그 밤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때때로 일손을 놓고 멍해져 있는가 하면 끼니를 거르기도 했다.
내가 아이들을 건너방으로 데리고 와도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다른 사람 같았다.
그렇게 보낸 나흘 후였다.
자식을 안팡으로 불러들인 시어머니는
동네와 떨어진 외딴 곳으로 여자를 보내야겠다고 했다.
논 두 마지기를 팔아 집까지 마련해 주겠다는 것이었는데
자식에게서 여자를 떼어내려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거기다 영감이 여자와 함께 가겠다고 하는데
시어머니는 그것도 말리지 않았다.
여자를 안방으로 불러들이면서까지 영감을 내게 보내준 시어머니였다.
그런 시어머니가 집을 구해주면서까지
자식에게서 여자를 떼어놓으려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빠져나간 우리 집은
동네 남자들의 발길마저 끊겨 횡댕그렁했다.
동네 또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남자들이 그곳으로 왕래한다는 소문이었다.
술 장사를 한다고도 했다.
동네 안학들은 술집 여자인데 별수 있느냐,
제 버릇 개 죽였냐고 입방아들을 찌어댔다.
하지만 나는 집에서 양식을 가져다 먹는 것이
부담스럽고 불편해서 장사를 하게 되었을 것으로 보았다.
내색은 않지만 시어머니도 그리 짐작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곳에 갈 엄두는 내지 못했다.
제사 음식, 명절 음식,
그리고 보름에 나물과 찰밥 같은 색다른 음식을 다루게 되면
고사리 같은 명섭이의 손에 들려 보내주곤 했다.
그러면서 한가닥 소식을 기대해보는 정도였다.
여자가 살림을 나간 다음 해의 일이었다.
가을거지가 끝나기까지는 눈코 뜰 사이없이 바빴다.
가을일은 영감이 와서 거들어주었다.
가을거지를 끝내고 돌아가는 영감에게
차마 마늘을 들려 보낼 수가 없었던 나는
다음 날 명섭이의 손에 달랑달랑 보내주었다.
그런데 마늘을 들려 보낸 다음 날로 영감이 돌아왔다.
가을거지를 끝내고 돌아간 지 이틀 만이었다.
다음 날, 그 다음 날도
영감에게선 여자에게로 돌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별일이었다.
그렇게 시일이 지나던 동지 딸 어느 날 저녁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게야?
일은요?
그런데 안 가고 있어?
상을 들고 밖으로 나오던 나는
여자한테 가라는 식으로 등을 떠미는 듯한 시어머님이 말해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저렇게 내버려둬도 되는 게야?
남들이 뭘 하겠어?
시어머니의 다그침에도 영감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럼 내가 직접 가서 알아봐야 해?
그럴 게 뭐 있어요?
시어머니는 정말로 여자에게 쫓아갈 기세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니까?
굴비 때문이었어요.
굴비가 왜?
영감이 마늘을 가지고 온 명섭이에게
굴비 몇 마리를 주워보내라고 했다 한다.
술 장사를 하고 있으므로 굴비는 항상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자가 돈 주고 사먹으면 되지
왜 사놓은 것을 보내야 하느냐며 구시렁대더라는 것.
지금은 굴비가 흔해 터진 세상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귀하기만 하던 그 당시엔
여간에서 굴비를 사먹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럴 때에도 굴비를 두름으로 사다주던 영감이었다.
그 일로 발길을 끊었다.
팔자 땜질이 그렇게 되는가?
시어머니의 알 수 없는 말을 끝으로
모자 간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이른바 굴비 사건.
그로부터 영감은 영영 발길을 끊어버렸고
시어머니도 홀가분해하는 기색이었다.
마음이 아파진 쪽은 오히려 나였다.
혼자 살아가게 될 여자가 걱정스러웠고
또 몹시 측은했던 것이다.
어떻게 들으셨나요?
굴비 사건.
주인공은 굴비를 보면 옛날 자기 남편과
씨앗으로 들어온 남자 얼굴형의
창을 자라던 그 여자가 생각날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들이면 화를 내거나 했을 텐데
주인공은 나이도 어리고 세상 물정을 너무 몰라서 그런지
그것도 아니라면 너무 착해서 그런 것인지
오히려 씨앗으로 들어온 여자의 창하는 목소리에 반해버렸죠.
참 소설 속에서 씨앗이란 표현이 나오는데요.
씨앗은 남편의 첩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그렇게 영감과 한평생을 살아온 아내는
손자와 손부의 오해로부터 일어난 소동을 보면서
과거의 자신은 왜 지금의 손부처럼 당당하게
남편에게 따지고 덤벼들지 못했는가를 생각하는데요.
그런데 아마도 제 생각엔 말이죠.
아내는 그때가 되어도 지금의 손부처럼은 못할 것 같습니다.
왠지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 남편도 여자에게 발길을 끊어버리고
시어머니도 그 여자의 떠남으로 홀가분하게 생각한다 할 때에도
본인만은 여전히 그녀의 안부를 걱정하고 있었으니
그때 그 상황이 다시 와도 따지고 되들어서
속이라도 후련하게 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말씀이죠.
마음이 너무 착한 게 탈인가요?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이 소설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형경숙 작가의 단편소설 굴비를 읽어드렸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재미있고 유익한 작품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다음에 또 뵐 때까지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바람이 채워 이름 모를 그리움이 발끝에 내려와
계절은 또 아무 말 없이 내 곁을 스쳐가고
손에 쥔 따스한 온기는 조용히 흩어져
가을이 오면 하늘을 닮아 닿을 수 없는 구름처럼 너를 또 그리게 돼
잊은 줄 알았던 기억이 너처럼 번져오네
길 위에 쌓인 시간 바스락 소리를 내고
익숙하던 거리마저 조용히 빛을 바래고
저녁은 더 다가와 달빛은 깊어지고
하지 못한 말들만 가슴에 남아
차가워진 공기 속 내 마음 따뜻해지네
부르지 못한 그 이름이 나의 입술 끝에 맺혀지네
가을이 오면 닿을 수 없는 구름처럼 너를 또 그리게 돼
가을이 오면서도 흔들려 잊은 줄 알았던 기억이 노을처럼 번져온
낙엽이 떨어지는 그 소리마저도 너를 부르는 것 같아
멈출 수가 없어 지나간 시간 위에 아직도 남은 온기
가을이 데려온 너의 흔적들
가을이 오면 너는 더 선명해지고
차가운 밤공기 사이로 연기처럼 피어나
나는 또 멈췄어 지금 내 전하지 못한 말들만
떠올라 그리게 되는 이 가을밤에 너를 사랑했었어
말없이 그리워하네
가을이 오면 너의 그리움은 내 깊은 곳에 남아있지
가을이 오면 너의 따뜻함으로 내 깊은 곳에 숨을 쉬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