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끝, 조용한 밤. 당신을 깊은 이야기 속으로 이끄는 오디오북 채널, 책과 함께하는 하루 '단잠'입니다. 🛏️ 잠들기 전, 🚶♀️ 혼자만의 감성 산책 시간, 🎧 눈은 쉬고 싶지만 마음은 이야기를 원할 때— 언제든 이곳에 들러주세요.
이번에 낭독할 작품은 이혜경 작가의 단편 소설 "젖은 골짜기" 입니다. 😊 즐거운 감상 되세요.
[이혜경 — 삶의 그늘을 애정으로 들여다본 작가] 가족, 여성, 소외 — 조용하고 깊은 문학의 궤적
작가의 삶과 등단 이혜경(1960년~2026년)은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 《세계의 문학》 봄호에 중편소설 「우리들의 떨켜」를 실으며 등단했습니다. 그러나 등단 직후의 행보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등단한 그는 이듬해까지 3편의 단편을 발표한 뒤 1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침묵에 빠집니다. 그동안 고교교사, 출판사 직원, 여성월간지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한 편의 소설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 오랜 침묵은 게으름이 아니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묻던 기간이었습니다. 그는 "사람의 허기를 눈밝게 알아보고 어루만지는 손, 내가 쓰는 글이 그런 것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그런 글을 쓸 수 있게 될까"라는 물음을 품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그는 인도네시아 자바섬으로 해외자원봉사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무(無)에서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습니다. 등단 이후 교사, 잡지사 기자로 활동하다가 1995년부터는 전업 작가로 창작에 전념했습니다. 2022년 뇌출혈로 인해 와병하였으며, 결국 2026년 2월 20일 별세했습니다.
주요 작품들 소설집 『그 집 앞』, 『꽃그늘 아래』, 『틈새』, 『너 없는 그 자리』와 장편소설 『길 위의 집』, 『저녁이 깊다』, 『기억의 습지』, 그리고 산문집 『그냥 걷다가, 문득』을 남겼습니다. 『길 위의 집』(1995) — 긴 침묵을 깨고 내놓은 첫 장편소설로, 붕괴 위기에 처한 가족의 관계를 섬세하게 그려내 1995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독일 리베라투르상 장려상을 받았습니다. 문학평론가들은 이혜경 소설이 지니고 있는 슬픔의 힘은 그녀의 소설을 이끄는 순정성의 미학에서 비롯한다고 평했으며, "길 위의 집"을 통해 그 지나친 착함이 어떻게 문학적 힘이 되는지를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그 집 앞』(1998) — 첫 소설집으로, 표제작 「그 집 앞」은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소실의 딸로 태어난 주부가 서출인 시어머니와의 불화, 청각세포가 죽어가는 남편과의 관계 속에서 맞이한 결혼생활의 위기로부터 탈출하는 심리적 치유 과정을 섬세한 필치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수상자로 선정하며 "업고(業苦) 속에 유전하는 중생에 대한 웅숭깊은 연민을 바탕으로 우울한 부정을 단호한 긍정으로 역전시키는 작가의 인간학이 빛난다"고 평했습니다. 「피아간」 — 가족 간 소통의 단절과 인간 존재의 고독을 다룬 이 작품으로 제13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틈새』(2006) — 동인문학상 수상 소설집으로, 표제작 「틈새」는 안온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누리던 가전제품 수리 기사가 자신의 삶에 생긴 균열을 돌아보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심사위원들(박완서, 유종호, 이청준, 김주영, 김화영, 이문열, 정과리)은 "읽을 때 안심하고, 놀라면서, 부러워하면서 읽게 된다", "삶을 작품 속으로 끌고 오는 데 격조가 있다"는 평을 남겼습니다. 작가는 이 소설을 두고 "사람과 사람, 집단과 집단, 인종과 인종 사이의 경계에 대해 고민한 듯하다"며 "문학은 경계를 허물지 못하더라도, 울타리에 틈새를 만들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작품 경향 — 가족, 여성, 소외의 삼각형 이혜경의 문학은 가족사의 균열, 여성의 내면, 그리고 사회적 소외의 문제를 집요하면서도 절제된 문체로 탐구해왔습니다. 삶의 그늘진 국면을 다루면서도 인물에 대한 연민과 윤리적 시선을 잃지 않는 점이 그의 작품 세계를 특징짓습니다. 이혜경이 반복적으로 돌아오는 주제는 '가족'과 '집'입니다. 가족, 집 이야기는 그의 소설을 일관하는 주제라고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그의 소설 속 가족은 온기와 안온함의 공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균열이 일어나고, 오해가 쌓이며, 말해지지 않은 상처들이 켜켜이 가라앉는 공간입니다. 그 내부를 이혜경은 격정 없이, 그러나 집요하게 들여다봅니다. 여성의 삶에 드리운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존재를 건 각오, 여전히 유효한 용기를 담은 것이 이혜경 소설의 또 다른 축입니다. 그의 소설 속 여성 인물들은 사회와 가족이 부과하는 역할 속에서 조용히 무너지거나, 조용히 저항합니다. 드라마틱한 탈출이 아닌, 내면 깊숙이에서 이루어지는 조용한 각성이 이혜경이 그리는 여성상입니다.
문체와 글쓰기 태도 — 느림의 미학, 절제의 윤리 단정하고 섬세한 문장으로 그늘진 삶 구석구석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살피는 것이 이혜경 문체의 핵심입니다. 그의 문장은 빠르지 않습니다. 사건을 앞으로 밀어붙이는 대신, 인물의 감정이 파문처럼 번져나가는 과정을 천천히, 그러나 놓치지 않고 따라갑니다. 이혜경의 소설은 격렬한 서사 대신 일상의 미세한 균열과 감정의 진폭을 포착하는 데 집중해왔습니다. 특히 여성 인물의 내면을 통해 가족과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상처와 침묵을 형상화하며, 1990년대 이후 한국 문학에서 '관계의 윤리'를 탐구한 대표 작가로 평가받습니다. 느리고 조용하게, 치밀하지만 따뜻하게 일상적 삶의 한 면을, 누군가의 아픈 마음자리를 가만히 더듬어보는 것이 이혜경이 소설을 쓰는 방식이었습니다. 그 더듬는 손이 결코 거칠지 않기에, 독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소설 속 인물의 아픔 앞에 서 있게 됩니다. 다작보다는 신중한 창작 태도로 알려졌으며, 발표하는 작품마다 밀도 높은 완성도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가 소설을 많이 쓰지 않은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태도였습니다. 한 편 한 편에 삶의 무게를 충분히 담기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문학적 유산 — 그늘진 자리에 놓인 따뜻한 손 '평범한 삶의 위대함을 각별하게 보듬다'는 표현이 이혜경 문학을 가장 잘 요약해줍니다. 다감하고도 정밀한 시선과 언어로, 일상의 세부와 가려진 삶들을 조명해온 작가였습니다. 이혜경의 소설을 읽고 나면 화려한 사건이나 충격적인 반전은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대신 어떤 인물의 표정, 어떤 대화의 온도, 어떤 침묵의 질감이 오래 남습니다. 그것이 이혜경이 40여 년간 한국 문학 안에서 조용히, 그러나 지워지지 않게 새겨온 흔적입니다.
오늘 여러분들께 들려드릴 이야기는 이혜경 작가의 젖은 골짜기입니다.
이 작품은 인생의 여러 고비를 넘기며 살아온 한 남자가 자신의 삶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소설입니다.
우리의 사는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더 깊이 공감이 되는 작품인데요.
여러분과 같이 읽으면서 편안하고 좋은 시간을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이혜경 작가의 단편소설, 젖은 골짜기,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젖은 골짜기, 이혜경, 산에 가시나 보죠?
아, 전 또 등산하러 가시는 줄 알았지요? 그럼 어디 여행 중이신가 보죠?
성주, 고령, 합천, 어느 쪽으로 가십니까?
네, 대가야의 수도였죠. 볼만한 게 꽤 있어요.
읍내 주산 능선엔 아직도 능들이 남아있고, 시내에서 한 10리쯤 떨어진 곳에 알터라고
암벽에 그린 그림이 있는데, 청동기 시대 거라던가, 우룩선생 비도 있고요.
그런데 말씀 들어보니 여기분이 아니신가 본데, 가야엔 무슨 일로...
혹시 도자기 연구를 하시나요? 거기 도자기 공장이 많잖아요. 잘 알죠?
중학교 땐 걸어서 해인사까지 소풍을 가곤 했는데요. 자동차 길로는 멀지만 골짜기 지름길로 가면 절까지 15리밖에 안되요.
그럼요. 걸어갔죠. 여럿이 한꺼번에 움직이니까 앞사람 뒤만 보고 쫓다보면 먼 길이라도 걷게 되죠.
전 처음엔 등산하러 가시는 분인 줄 알았어요. 배낭을 지셨길래요.
제가 산을 좋아하거든요. 지리산 종주만 해도 7번쯤 했으니까요.
3년쯤 전부터 산을 못 갔더니 이렇게 배가 다 나오는군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관악산에 오르는 게 고작이었으니까요.
네, 그렇게 바쁘게 살았어요. 저런... 아니, 아니, 고개 돌리지 마세요.
멀쩡한 화장실이 저기 있던데. 여기서 자다 나온 사람 같죠?
그래도 용깨들 겨울 넘기고 저렇게 살아가고들 있군요. 모르죠. 우리가 모르는 새 몇 사람쯤은 지상에서 사라졌을지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 그 전엔 그런 걸 생각하면 오싹했는데 한동안은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뭐, 안 좋은 일이 있었다기보다는 직장을 옮긴 지 3주일이 되었어요.
제가 원한 직장도 아니고 일단 들어가고 나면 언제든 마음에 드는 자리가 나지 않을까 해서 들어갔는데
마음이 영 그렇더군요.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려고 영등포역까지 왔는데 직장은 평택이고 집은 개봉동이거든요.
네, 고되긴 해요. 차차 익숙해지겠죠. 영등포역에서 도무지 집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은 거예요.
욱하는 마음에 무작정 밤열차를 탔는데 밤열차 그거 탈 거 아니더군요.
좌석도 3자리가 붙어있는데 하필 가운데 자리고 옆자리 사람이 하도 코를 요란하게 고라서 잠도 못자고
이럴 줄 알았으면 똥차긴 하지만 제 차를 끌고 새벽에 나설 걸 그랬다 싶어요. 사실은 이렇게 낯선 분에게 말을 거는 것도 처음입니다.
차에서 내리니까 어디 들어가 잠들기엔 애매한 시간이고 이 시간이 그렇게 막막할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저렇게 안개까지 끼니 더 그렇더군요. 혹시 제게서 술 냄새가 나지 않나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하도 할 일이 없어서 이 근처를 다 돌았거든요. 저쪽 계단으로 내려갔더니 이 시간에도 포장마차가 불야성을 이루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오뎅국물 좀 마시고 어떤 사람이 소주 반병 달라고 하기에 남은 걸 달라고 해서 마셨어요.
새벽부터 혼자 소주 마신 일도 처음입니다. 이쪽으로 나오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용기를 내어 말을 걸면서도 괜히 무한당하는 거나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그래요. 세상이 워낙 험하니까 당연하긴 해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럼요. 여긴 남자인 제게도 음산하게 느껴지는데요.
아까 대합실에서 책을 읽으시는 것 같던데 무슨 책을 그리 열심히 보셨나요?
아, 그 책이요? 가야 가는 버스는 7시나 되어서야 있을걸요?
첫 차가 6시 반이라고요? 가만있자. 그래도 아직 많이 남아 있군요.
시각표. 그 책은 저도 한 권 가지고 있습니다. 산에 갈 때 이용하곤 했지요.
거기 보면 참 아름다운 이름도 많지요. 혹시 이런 곳 가보셨어요?
고사리, 자미원, 여량, 청령, 정동진.
이름만 들어도 왠지 마음이 설레이지 않습니까? 사실은 저도 어디에 붙어 있는지는 모르는 곳이 더 많아요.
그냥 언젠가는 가보고 싶은 마음의 고향이라고 할까요?
전에는 아름다운 곳을 보면 언제 다시 와야지 싶었는데
이젠 늙으면 이곳에 와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예? 이거 부끄럽지만 한때 글을 쓰려 했습니다.
고등학교 땐 신라백일장이라고 영남권에서는 알아주는 백일장인데
거기서 입선을 하기도 했지요. 글쎄요. 잘 기억나진 않지만
그때 한창 마음에 두었던 여학생을 꽃에 비유한 시였을 겁니다.
에이 무슨, 저 같은 사람 차지가 되기엔 너무 아름다웠어요.
웃으면 주변이 다 환해졌으니까요. 가볍게 튀어오르는 웃음소리만 들으면
온몸에 거품이 끓어오르는 기분이었어요.
어땠냐면 얼굴이 갸름하고 눈이 작았어요.
가느스름한 눈이 웃으면 파묻혀 보이지도 않았는데
혹시 조파문나무꽃 아십니까? 네, 봄의 산호기에 피는.
그래요. 꿈결 같지요? 꼭 그 조파문나무꽃 같았어요.
실바람에도 흩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하지요.
은희라는 이름에 그토록 어울리는 여자를 다시 본 적이 없습니다.
네, 알지요. 이 지역에서 알아주는 집안 아들과 결혼해서
아이를 다섯이나 낳고 산다더군요. 요즘 같은 때 아이 다섯 키우는 게 보통 힘으로 되나요?
그만큼 경제력이 있으니 다섯씩이나 낳을 수 있었겠죠.
잘된 일이지요? 글쎄요. 한 번쯤 먼 발치에서라도 보고 싶은 마음이야 없진 않지만
제 꼴이 워낙 초라해서요. 아니, 아닙니다.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현실은 인정해야죠.
사실은 저도 요즘 말하는 명예 퇴직자입니다. 의류 회사였지요.
규모는 작았지만 백화점에 직영 매장도 가지고 있고 바느질이 꼼꼼하다고 업계에서는 알아줬었죠.
아침 6시에 집을 나서서 12시가 다 되어 들어가는 생활을 십수년 했습니다.
네, 한 번도 안 옮겼어요. 성실한 게 아니라 재주가 없는 거겠죠.
월급봉투 받다 보니 시간이 그렇게 지나가대요. 상모까지 올랐습니다.
자리란 게 뭔지. 상모가 되고 나서는 산에도 못 갔어요.
석 달 전에요. 상모 단지 3년 만에요. 불황도 불황이었고 물론 그 때문이었겠죠.
여기저기 나자빠지는 걸 보니 온어도 겁이 났을 테고.
그래서인지 대충대충 넘어가자 주의로 바뀌더군요. 그동안 품질 하나로 버텨왔는데 그냥 넘어가지지 않더군요.
마찰이 생길 수밖에요. 게다가 여대 의류 직물학과를 갓 나온
오너의 딸이 트집을 잡기 시작하는데 못 견디겠더군요.
그동안 보낸 세월이 무언가 싶기도 하고 6개월 정도 부대 끼는데 머리가 다 샜습니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요즘 성냥은 이 모양입니다. 성냥 꼴에 금분 음분을 칠해 치장하지만
정작 그으면 힘없이 미끄러지기 일수입니다. 성냥이 할 일은 불 피우는 거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이런 걸 보면 그냥 넘어가지질 않아서요. 안 피우던 담배도 그때 피우기 시작했어요.
하루에 두 갑씩 피우게 되더군요. 지금은 그래도 조금 줄었습니다.
아니요. 저도 그렇게 마음 약한 사람은 아닙니다. 조직에 몸담고 있다 보면 본의 아니게 사람이 질겨지지요.
내키지 않는 일도 하게 되고 능률을 앞세우느라 나무의 가슴에 못 박는 일도 덜어 있었겠지요.
중간 관리자라는 게 그렇죠. 오너 쪽에선 제대로 밀고 나가지 못한다고 욕먹고
부하 직원들에겐 잘해봐야 본전치기 십상이고 심지어는 어용이라는 소리나 듣게 되고
네. 그런 적도 있어요. 제 어떤 면이 그렇게 비쳤는지 모르지만 저로선 몸담고 있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성실성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그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더군요. 그런데 거기에다 어떤 사람이 충성이라고 이름 붙이고 나면
그 나머지는 모두 충성이라는 필터를 통해서만 보게 되는 거죠. 말이 무섭지요.
중학교 땐가 저희 반에 꿈이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저도 과학이 큰 편은 못되지만 그 친구 저보다 더 작고 말랐어요.
잘할 땐 못 먹어서 그럴 겁니다. 어느 날인가 장래 희망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그 친구가 자기 처지와 엉뚱한 포부를 말했어요.
그래서 얻은 별명인데 한 번 별명이 붙으니까 그 사람의 다른 특성이나 그 밖의 다른 진실은 다 그 안에 빨려들어 없어지고
별명만 댕그만이 남게 되더군요. 저만 해도 그때 그 친구가 이야기한 장래 희망은 거의 기억 못하면서 별명만 기억하니까요.
사람에게 이름 붙인다는 거 그렇게 무서운 겁니다. 한 번 붙은 이름은 이를테면 블랙홀 같은 거죠.
아무튼 그렇게 해서 제가 어영이 되었더군요. 그래도 어떡합니까. 저처럼 아무것도 없는 집에서 아무 재주도 없이 태어난 사람이
그나마 살아갈 길은 있는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 것 뿐이었는데요. 그래요. 장남입니다.
동생들이야. 저 살기 바빠서 산소 같은데 신경 쓰기 어렵죠. 실례되는 질문인 줄 알지만 형제분이 어떻게 되세요?
네. 부모님께서 고생 많으셨겠어요. 맞이라는 거. 그것도 가난한 집 맞이라는 거. 원죄 같은 겁니다.
혼자 있어도 왠지 발치에 묵지근한 출을 달고 있는 듯한 기분.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발목에서 잡아끄는 출을 의식하면서
제에게 걷는 남들을 쫓아가는 겁니다. 마음은 남들과 나란히. 아니죠.
출발선에서부터 뒤로 물려진 것 같으니까 오히려 급해서 앞지르는데 발은 한정없이 무거워 제자리에서 동동거린단 말입니다.
예. 남동생 둘 여동생 둘인데 남동생들은 다 학교 맞췄습니다.
집사람이 고생했지요. 그래도 가르쳐 놓으니 다들 제 앞가림은 하고 삽니다.
웬걸요? 다들 지 복으로 공부한 거라 생각하지. 그런 생각할 줄 알면 어디 동생이겠어요? 형이지.
부친은 제가 대학 다니던 해에 돌아가셨습니다.
네. 조금 이른 편이었지요. 더 사실 수도 있었는데.
아니요. 그리 다정한 부자지가는 못되었어요. 저기 저 설로 보세요.
저렇게 나란히 이어지다가 서로 닿는 순간 엇갈리잖아요. 아버지랑 저도 그랬어요.
아주 가끔 마음이 닿는 듯 하다가도 끝내 이해하지 못하고 멀뚱멀뚱 바라보곤 하는 그런 사이였어요.
말씀도 통 없으신 데다가 대신 술을 즐기셨지요. 즐겼다는 말로는 부족하고 거의 알코올 중독에 가까웠어요.
조그만 밧돼기 겨우 붙이고 사는 양반이 비오는 날이면 아침부터 술을 드셨지요.
장마철에 집안에 있노라면 쭉쭉 긋는 비에서도 술냄새가 맡아질 정도였어요.
웬 술을 그리 드셔야 했는지 끝내 못 여쭤봤어요.
언제든가 학교에서 막 돌아오는데 비가 오니까 이틀째 밭에 못 나가고 술을 마시던 아버지가 힐끗 고개를 들어 저를 바라보시는데
그 눈, 그 눈을 잊을 수 없어요. 글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겨운에 묶였던 밭을 갈아서 파헤치던 뭉클,
빛깔짙은 흐르기 나오지요. 그걸 볼 때의 철렁함 같은 것. 어린 마음에도 문득 깨달았어요.
나는 아버지에게 혹이구나. 아버지는 나를 혹으로 여기고 있구나.
이제 생각하면 제 아버진 역마살이 낀 사람이 아니었나 싶어요.
특별히 배운 양반도 아니었고 풍류를 즐기는 양반도 아니었는데 왜 그리 발을 못 붙이셨는지
술 친구 한두 명 빼고는 친구도 없이 지내셨어요. 그래요. 참 외롭게 산 양반이었죠.
아니요. 농사 지어야 하니까 늘 집에 계셨죠. 그런데도 홍건이 취해서 퇴마로 기둥에 기대앉은 아버지를 보면
어디론가 하염없이 떠나가는 사람으로 보였으니까요. 그럴 때 막연히 허공을 보던 아버지의 눈.
제가 잠적하고 싶다고 난생 처음 생심을 내던 때 그 눈빛이 떠오르는 걸 보면요.
네. 우습지만 살다 보니 그런 마음을 먹을 때도 생기더군요. 새 직원이 한 명 들어올 때마다 나더러 그만두라는 소리인가 고민하던 때였어요.
누가 뒤에서 잡아 끄는 것처럼 출근길이 무거웠어요. 사람이란 게 무언지.
그땐 아침마다 기도를 드리게 되더군요. 난생 처음이었어요. 집이 언덕 위에 있어서 출근 때면 언덕을 내려오는데
언덕 아래 집들을 보면서 그 안에서 고물거릴 사람들이 왜 그리 안쓰럽고 정답던지
저절로 기도하는 마음이 생기더군요. 오늘 하루 제가 하는 일이 제 판단이 정대하도록 해주십사고요.
왜 하필 정대라는 거창한 말이 떠올랐는지 우스운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그때 우리 회사에 임정대라는 직원이 있었거든요. 출근길에 그 친구와 마주치면 그 와중에도 피식 웃음이 나오더라구요.
그 친구 아침마다 자기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줄 꿈에도 몰랐겠지요. 그럼요. 기도하고 나면 무언가
가슴 속에 든든한 기둥 하나 들어선 듯 했어요. 누가 까딱만 해도 금방 바스라질 모래기둥 같은 거였지만요.
그렇게 바스라져 내릴 때면 그만 그 자리에서 존재도 없이 사라지고 싶어지대요. 전에 거래처에서 알던 사람인데
어느 날 소리 소문도 없이 그만두었어요. 나중에 듣자하니 출장차 몇 번 갔던 LA에 눌러앉아서 거지 노릇을 하고 있다더군요.
학벌도 짱짱하고 그만큼 능력도 있던 사람이었는데 우연히 보았다는 사람 말로는 그렇게 평온해 보일 수가 없더라구요.
술자리에서 그 소리를 듣는데 귀가 열리는 느낌이더군요.
어디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 가서 그렇게 살 수도 있구나.
뭐랄까 제가 옮겨야만 한다고 믿어서 낑낑거리며 짐을 지고 다녔는데 그걸 슬쩍 지나가는 수레에 얹어 놓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거죠.
집사람이나 아이들이 들으면 서운해하겠지만 집에서 나만 기다리며 목매다는 식구들이 있다는 거
어떤 때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집니다. 순종하고 살림 잘하는 아내와 살고 싶어서 그런 사람과 결혼했는데
이쯤 하겐 나가서 돈 버는 부인둔 친구들이 부러워요. 솔직히. 집사람요?
글쎄요. 무던한 편이죠. 남에게 폐 안 끼치고 살려고 하고
이거 워낙 바삐 몰아치다 보니 집사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그리 많지 않군요.
그냥 느티나무 같다곤 할까요? 먼지 뒤집어 쓰고 돌아다니다가 언제든 와서 그 그늘에서 발 뻗고 쉴 수 있는 느티나무.
네? 느티나무의 고독이라뇨? 사람이 머물다 떠난 뒤의 느티나무?
그건 솔직히 생각해 본 적 없는 거 가군요. 그나마 집사람에 대해 생각이란 걸 한 것도 회사 그만둘 무렵이었죠.
만일 내가 사라진다면 이 사람이 어떻게 살까 하고요. 아이러니한 일이죠.
사라질 걸 염두에 두자 비로소 곁에 있던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는 거. 어쩌다 집사람의 머리에서 흰 머리카락이 눈에 띄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요. 둘입니다. 큰 애는 고3이고 작은 애가 고1이죠.
그래요. 한창 돈 들어갈 때입니다. 네, 잘하는 편이에요.
작은 애는 전국에서 뽑는 기숙학교에 들어갔는데 모의고사 점수가 320점대에요.
에이, 그래도 결과를 봐야 알지요. 중학교 때도 전교에서 1,2등을 하긴 했지만요.
그의 앞으로 들어가는 돈이 한 달에 한 80만원쯤 됩니다. 그래도 기숙학교라서 과외비는 안 드니 다행이다 싶어요.
큰 애는 글쎄요. 제 자식이지만 잘 모르겠어요.
격세 유전이라는 거 곰곰이 생각하면 유전형질의 문제가 아닌 것 같기도 해요.
어쩌면 윗세대 사는 걸 보고 달리 살아보려는 마음이 작용하고 거기에 대한 그 다음 세대의 마음이 또 작용해서
격세에 담는 건 아닌지. 어떤 때 큰 애가 절 보는 눈에서 아버지의 눈을 느끼게 되더군요.
모르죠. 그의 쪽에서도 그렇게 느낄지. 공부를 아주 못하는 것도 아닌데 대학엔 안 가겠다더군요.
제 말로는 그림을 그리겠다는데. 그림이라는 것도 학교에서 제대로 배워야지.
그러고도 배곰기 십상일 텐데. 그래요? 하긴 요즘엔 그런 쪽으로도 많이 나간다고 큰 애도 저를 안심시키긴 하더만요.
따지고 보면 천년 만년 버틸 것 같아 보이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나가 떨어지는 요즘 같은 세상을 보면
저 하고 싶은 거 하는 거 그게 행복이다 싶을 때도 있어요. 우리 세대나 아등바등 남들 사는 것처럼 살아야 하는 줄 알고 견눈질 하며 똑같은 모양새로 살려 했지.
요즘은 그건 뭘 하나. 개성이라나 대로 산다니까요. 그래도 남들 사는 것처럼 사는 게 제일 무난하다 싶은데 모르죠.
작은 애와 달리 속을 좀 썩이는 편입니다. 이질만 하면 속 시끄러운 일을 만들곤 해요.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여기까지 왔더라? 그래요. 직장 그만두던 무렵.
그러다 결국 그만두고 두 달 놀고 나서 다시 직장에 들어갔어요. 지금 하는 일은 뭐 남들 앞에 내세울 만한 일은 못됩니다.
어쨌든 아침이면 남들처럼 출근할 수 있다는 게 다행스러워요. 전철 속에서 부대 끼는 것도 전보다는 괴롭지 않고요.
아까 열차에서 내렸을 때 개찰국에서 나와 잠깐 앉으려고 벤치로 갔어요.
밤열차 그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렇게 피곤할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좀 앉으려고 비교적 멀쑥해 보이는 남자 옆에 빈자리가 많기에 거기로 갔지요.
처음엔 그냥 열차 타고 온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내가 다가가니까 그 남자 갑자기 발을 쳐들어
아 발 아프다 하더니 옆자리에 척 올려놓더군요. 나를 빤히 보면서요. 할 수 없이 다른 자리에 앉았어요.
우리 같은 사람이 생각하기엔 혼자 몸이니 사람이 그리워지지 않을까 싶은데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해요.
밀림의 법칙이겠지요. 각자의 영역 안으로 들이지 않으려는 거. 남이 들여서려 하면 목숨 걸고 싸우는 거.
저만큼씩 떨어져 앉은 채 한기를 감당하는 거. 춥지 않으세요? 커피 한 잔 뽑아 드릴까요?
아니 아닙니다. 자판기 커피지만 제가 대접하고 싶어서요. 이거 뜨겁지가 않군요.
많이 추우시면 안으로 들어갈까요? 그러시다면 저도 괜찮습니다. 저기 들어오는 기차를 보세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이라는 수필에 저런 대목이 있지 않았던가요?
네 그런 내용인 것 같군요. 가끔 오래전에 읽었던 글귀가 불쑥 떠오를 때가 있어요.
그런 글을 마지막으로 읽은 게 언제인지조차 기억나지 않지만요. 진공 속에 던져졌다가 겨우 빠져나온 기분이에요.
이상하지요. 제가 물러나 들어앉은 집안. 그것도 세상일 텐데 왜 그리 세상 금밖으로 나아앉았다는 느낌이 들던지.
어떤 날은 그냥 집 밖으로 뛰쳐나가서 알지 못하는 누구라도 붙잡고 묻고 싶었어요.
내가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까 하고요. 웃기는 이야기지요. 그냥 듣고 한 귀로 흘리세요.
그래요. 이렇게 이야기할 분을 만났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막상 그만두고 나니 머리가 새도록 부대끼던 것들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일더라고요.
그게 더 무섭지요. 그나마 작은 집 한 채라도 장만해 놓았고 퇴직금으로도 한동안은 버틸 수 있었는데 왜 그리 막막하던지
안개가 빈틈없이 둘러싼 골짜기에 갇힌 것 같았어요.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덮어버리고 희침이 떼는 안개요.
그럴 땐 물방울에 지나지 않는 안개의 무게도 만만치 않아요. 여자분이라서 그런 경험은 없으셨겠군요.
군대 시절. 예. 전방에서 지냈습니다. 낯선데로 파견 나간 적이 있죠.
저녁 무렵에 낯선 곳에 떨궈졌는데 누가 마중 나와 있으려니 했는데 아무도 없어요.
그래 막연히 길을 잡아 걸어가죠. 저 산모퉁이만 지나면 뭐가 보이려니 그러면서 한 산모퉁이를 지나도 아무것도 안 보이고
여전히 막막한 첩첩산중이 자꾸만 물러날 때 그 풍경 속으로 빨려드는 것 같을 때 그럴 때의 무서움 같은 거예요.
아니요. 이런 이야기 못합니다. 회사일 집안까지 끌고 들어와 이야기하는 것. 저희 같은 사람에겐 잘 안 되는 일이더군요.
요즘 젊은 사람 보면 미주할 고주할 이야기하고 그래서 서로 이해가 넓어지는 부분도 있다고 하더만요.
집사람도 어떤 땐 서운해하는 것 같은데 이야기해봤자 답답하기만 하지. 뾰족한 수도 없을 텐데 뭐하러 하나 싶고.
그래도 회사 그만두는 문제는 아무래도 알려야 할 것 같아서 미리 말했는데 괜히 말했다 싶더군요.
어느 날인가 집 근처 거래처에 왔다가 집에 잠깐 들렀는데 집사람이 문을 열어주면서 당황한 표정이더라구요.
소파에 앉는데 뭐가 발바닥을 찌르더군요. 보니까 구슬이에요. 소파 밑에 구슬을 가득 담은 바구니가 있더군요.
감춘다고 감췄겠지요. 왜 여자들 머리 묶는 구슬방울 있잖아요. 제 집사람 안압이 높거든요.
눈도 약한 사람이 나몰래 낚시줄에 그걸 꿰고 있었더라구요. 그게 얼마나 된다고.
네 그랬겠지요. 불안해서 그랬겠지요. 한창 돈 들어갈 때인데다 제 융통성 없는 성격을 아니까.
지금도 제가 미8군에 다닌다는 것만 알지 거기서 무얼 하는지는 모릅니다. 허드랜 일을 맡아 합니다.
자벽부죠. 사실은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군요. 어제 퇴근할 땐 그만두겠다라고 마음먹고 나섰는데
막상 그만두자니 악몽같던 실업기간이 생각나고 멀쩡했던 친구들이 턱턱 쓰러졌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나마 일손이라도 붙들고 있어야 할 것 같고 마음이 영 그러네요.
네 이 나이쯤 되니까 순서도 예고도 없이 데려가더군요. 그때마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입니다.
노인들이 흉한 일 안 보고 싶어하는 마음 벌써 이해가 되니까요. 언제 내 차례가 닥칠지 모른다 싶어서겠지요.
네 얼마 전에 친구가 죽었어요. 고향 친구지요. 아까 말씀드린 꿈 그 친구요.
그 친구 지지리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고생하더니 숨 돌릴만 하니까 가버리는군요.
중학교 때 그 친구 꿈이 뭐였는지 아십니까? 아니요. 장래 희망 말구요. 그 친구 꿈은
자가용 타고 고향에 오는 거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꿈이죠. 지금이야 시골길도 차로 막히니까요.
하지만 그땐 마을에 자가용이 들어오는 것도 일이었으니까요. 그런 마을길로 자가용이 들어옵니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네 집에 오는 차인가 목을 빼고 본단 말입니다. 그럴 때 차가 천천히 먹고 거기서 그 친구가 내립니다.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지지요. 아니 아무게 내 아들 아닌가?
거기까지가 그 친구 꿈이었어요. 그 말을 할 때 그 친구 표정이 눈에 선하군요.
남자친구는 눈이 큰 편이었어요. 소처럼 선량해 보였어요.
네 몇 해 전인가 사긴 했는데 그땐 이미 늦어버렸죠. 자가용이 흔해진 뒤였거든요.
결국 그 놈의 차 때문에 교통사고였어요. 음주운전이었죠.
사고가 나던 날 저와 통화했어요. 미국에서 살다 온 중학교 동창생을 며칠 전에 만났다더군요.
예 제 동창이기도 해요. 죽은 그 친구 아버지가 그 동창의 집에서 머슴을 살았어요.
분홍이었죠. 나중엔 그 땅 팔아 부동산 부자가 되었고
왜 어렸을 적부터 양지만 딛고 자라게 된 사람이 있더군요. 사람마다 살아가다 보면 거센 계곡물이 흐르는 골짜기를 만날 때가 있잖아요.
다들 바지자락을 둥둥 걷어올리고 휩쓸리지 않으려 애써 가누며 건너는 그런 골짜기요.
그런데 그 동창이 건너려 하면 누군가가 자기 등을 들이대어 발을 적시지 않고 급류를 건너게 해준다 말입니다.
우리가 보기엔 그런 사람이었어요. 부모 유산 받아서 건물 짓고 놀고 먹더니 사업한다고 미국에 가서 말아먹고 들어왔던가 봐요.
며칠 전에 그 친구를 찾아왔기에 같이 저녁을 먹었는데 그날 낮에 전화가 왔더라고요.
강남의 사우나인데 손님 접대하다 보니 돈이 모자라다고 50만 원만 해다 달라더래요.
아뇨 거절했대요. 잘했다고 그랬어요. 그냥 말이 그렇게 나와지더군요.
그날 통화 끝에 술이라도 한잔하자는데 제가 피곤해서 다음으로 미루었거든요.
혼자 술 마시고 집에 들어가던 길이었대요. 그날 저와 술을 마셨으면 어쩌면 그래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사람마다 타고난 명이며 운이라는 게 있다고 하긴 하더군요.
기억도 못하는 전생이 그걸 좌우한다지요. 그래도 사람의 노력으로 조금 비껴갈 수 있는 부분은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같은거지요.
그 친구 가고 나서 다른 친구가 웃지도 않고 말하더군요.
우리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다같이 공증인 세워서 유언장 써두자고요.
시간이 남아둘 때라서 한번 따져보았죠. 가진 재산이 얼마나 되나 그동안 뭘 하고 살았나
톡톡 털어보았더니 허망하더군요. 유언장이라고 작성할 것도 없고
그동안 그렇게 아등바등 산 끝이 고작 이건가 싶기도 하고 겨우 집 한 칸과 얼마 안 된 저금통장
이걸 털어내고 나면 아까 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더라고요.
그래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니겠지요. 사실은 저 사람들이 부러울 때도 있습니다.
저렇게 작은 보퉁이 하나만으로 이 생을 견딘다는 것. 생각하면 어떤 거룩함마저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렸을 적 장터에 나가면 늘 있던 미친년. 죄송합니다. 미친 사람들처럼요.
보퉁이 하나뿐 나머지는 있는 그대로 노출된 삶. 지붕도 담도 없이 몸에 걸친 옷만으로 한 길을 감당하는 삶.
아까 대합실에서 곁에 앉아있던 할머니 보셨죠? 잠든 거. 머리에 쓴 수건이 얼굴을 가려 잘 모르겠지만 칠순도 넘은 것 같더군요.
빈자리도 많은데 왜 눕지도 않고 앉아서 잠들었는지. 잠결에 고개가 옆으로 기울면 퍼뜩 추스르고
그러다 나쁜 꿈을 꾸는지 고개를 세차게 내두르는데 때 전 코고무신하며 보나마나 뚱뚱 부었을 다리하며
왜 눕지도 않고 잠들었는지. 20대엔 저런 사람들의 눈에 안 들어왔지요.
서른 중반을 넘어서니까 저런 사람들의 눈에 띄기 시작하데요. 왜 겨울에 남산 같은 데에서 병든 병아리처럼 오그리고 앉은 노인들.
몇 번이고 피 닦은 담배 공초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불을 붙이는 노인들. 내 앞날이 그렇게 될까봐 겁났나봐요.
참 열심히 일했지요. 왜 눈을 가린 채 옆에서 언제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채찍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를 들으며 달리는 기분.
자칫 속도를 늦췄다가는 바닥물을 어둠 속으로 나동그라질 것 같은 기분. 춥지 않으세요?
이제 곧 날이 밝아오긴 할 텐데 안개가 낀 걸 보니 날이 제법 풀렸나 봅니다.
그래요. 가셔도 될 시간이군요. 가시다 보면 날이 밝아올 겁니다.
저도 내려가야겠습니다. 산에 일찍 가봤자 할 일도 없고 하니 가다가 사우나나 하고 천천히 떠나야죠.
아까 돌아다닐 때 보아두었습니다. 불도 켜져 있고 사람도 있던데 6시부터라고 그때 오라더군요.
정류장은 저쪽입니다. 멀지 않아요. 차 타시는 거 보고 가죠.
아닙니다. 제가 그러고 싶어서요. 고령에 들릴 일이 있으시면 읍내 뒤에 주산이라고 했는데 거기 고분들 한번 구경해 보세요.
능선 따라 쭉 고분들이 늘어서 있어요. 거기 순장묘가 있어요. 왕이 죽으면 따라 죽어야 했던 생목숨들.
생각하면 기가 막힌 노릇이죠. 그 사람들 왕이 알아 누우면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그들 중에 누군가가 산채로 파묻혀야 하는데 왕은 시시각각 죽어간단 말입니다.
그럴 때에요. 덩달아 묻힌 그 사람들도 귀한 목걸이 같은 걸 하고 있었다더군요.
살아생전에 못해봤을 귀금속을 목숨의 대가로 걸고 묻힌 사람들.
회사 그만두었을 때 잠깐 내려왔다 들른 적이 있어요. 그때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씩 쌓아가는 것들. 직책이며 높아지는 봉급이며
이런 것들이 순장하는 시종들에게 걸어주는 화려한 목걸이 같은 거나 아니었나 하고요.
그런데 정말 저승에서 그 사람들이 왕의 시종을 다시 들었을까요?
살아생전 시중만 들다가 죽고 나서까지 시중을 들어야 한다면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닌가요?
거기 서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니요. 고령 음례는 아니고 고령에서 백운동 들어가는 산자락이에요.
비석 하나 없는 초라한 무덤이지만 볕 바르고 아늑한 곳이에요. 안개가 잦게 끼이긴 하지만요.
그래도 가야 쪽보다는 낫다더군요. 거긴 합천댐이 생긴 뒤로 안개가 자욱하다지요.
안개 낀 산풍경 보셨나요? 능선이고 산비탈 밭자락이고 다 뒤덮으며 다 쓸어내리는 안개에요.
자주 내려오진 않지만 어쩌다 안개 낀 날 거기에 가면 생각이 많아지더군요.
골짜기며 숲에서 피오른 안개가 능선을 넘어서면 바로 구름이 되어 몰려가더군요.
어쩌면 제 아버지에게 딱 알맞은 자리라는 생각도 들어요. 바람 한자락 불면 흩어질 안개처럼 그렇게 살려야 했던 분이거든요.
제 아버지. 그래요. 어머니가 고생하셨죠. 어떤 사람은 그런다지요.
이 생이 이 생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돌고 도는 고리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위안이 된다고.
전에는 그런 말을 들으면 무책임한 현실도피거나 우리를 틀어주고 있는 손이 강요하는 목소리로만 여겼는데 그렇게만 생각할 일도 아니더군요.
그래요. 그런 식으로라도 지난 날을 용서하며 살아내야 하는 거. 그게 사는 거겠지요.
안 그러면 지난 날의 잘못이 못다한 일들이 우우우 되살아나서 거기에 발목 잡혀 한 발짝도 못 나가겠지요.
어찌 맨정신으로 살아나가겠어요. 아, 길 건너지 마시고 이쪽으로요. 택시 타시게요?
지금 시간엔 길 안 막히니 버스 타셔도 될 것 같은데요. 정류장이 저기에요. 고맙긴요.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제가 고맙지요. 왜 산길을 걷다가 마주오는 사람에게 길을 물으면 사람들이 그러지 않습니까?
조금만 더 가면 돼요. 하지만 정작 걸어보면 그 조금이 한 시간도 되고 한나절도 되지요.
젊었을 땐 그런 식으로 가르쳐주는 게 답답했는데 나이를 좀 더 먹으니까 그게 참 지혜로운 말 같군요.
멀든 가깝든 그곳을 물은 사람에겐 그곳이 목적지일 테니 조금만, 조금만 하면서 걷는 게 차라리 까마득하다고 질에 가위 눌려
옴쭉 달싹 못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하하, 지금 잠깐 든 생각입니다. 어차피 걸어야 할 길이라면 희망을 가지고 걸으라는 마음이었겠죠.
길 바깥으로 뛰어내릴 용기도 없으면 그저 그 길이 끝나면 무언가 다른 풍경이 나오려니 하면서 걸을 수밖에에요.
그래도 끝내 다른 무엇이 없으면 그저 그랬나보다.
그러고 마는 거지요. 아, 저기 저 버스에 서부정류장이라고 씌어있네요.
네, 그럼 안녕히
어떻게 들으셨나요?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독백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장면인데요.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인생을 살아오면서 느꼈던 것들을 편안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상대방이 모르는 여행자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처럼 자기의 이야기를 꺼내 보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듣고 흘릴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주인공도 한결 편안하게 한 발 물러나서 보는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이 이야기 속에서 저에게 인상 깊게 다가오는 말이 있었습니다. 또 공감도 많이 되었구요.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온 말인데, 산길을 걷다가 마주오는 사람에게 길을 물으면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돼요. 라고 말해준다는데 실상 걷다보면 그 조금만이라는 것이 한 시간도 되고 한낮에도 된다는 거죠.
그런데 젊었을 땐 그 말이 좀 답답하게 생각되었다죠. 하지만 이제 나이 들어 생각해 보니 그게 참 지혜로운 말이었구나 라는 깨달음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살아나가야 할 인생이라면 고통스럽게 또 짜증내면서 살 필요가 뭐가 있겠나 싶은 거죠.
그냥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에 100% 공감하는데요.
맞습니다. 살아가야 하는 인생, 뭐하러 인상 찡그리고 화내며 살아요?
이왕이면 희망을 가지고 즐겁게 살아야죠. 여러분도 제 말에 공감하시죠?
책을 같이 읽으면서 덕분에 여러분들과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이혜경 작가의 저전골짜기를 읽어드렸습니다.
다음에 뵐 때까지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붙잡지 않아도 멀리 가지 않는 이름 없이 머무는 거 행복은 그렇게 말없이 내 곁에 와 지금 이대로 충분해
놓아줄수록 더 오래 남는 거 조용히 머문다
라라라라 라라라 라랄라라
별 할 걸 없는 저무는 시간 마음이 느려질 때 사랑처럼 다가와 설명 없이 자리 지키는 그것이 행복이었다는 걸
찾지 않아도 언제나 여기 있는 소리 없이 채우는 거
행복은 그렇게 말없이 내 곁에 와 지금 이대로 충분해 놓아줄수록 더 오래 남는 거 조용히 머문다
지나간 시간 위에 얇게 내려앉은 위로 그 이름이 행복이라면
아무 일 없던 날이 가장 소중했듯 평범한 이 순간이 전부였듯
행복은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오늘을 덮어주고 대단하지 않아도 부족하지 않은 여기 머문다
라라라라 라라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