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 비디오 조회수·2026. 5. 30. #잠자며듣는이야기 #잠자리소설 #책읽어주는남자 #잠자며듣는이야기 #잠자리소설 #책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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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낭독할 작품은 이동하 작가의 단편 소설 "헐거운 인생" 입니다. 😊
[ 작가 이동하에 대하여 ]
이동하(李東河, 1942년 12월 1일~)는 대한민국의 소설가로, 본명은 이용(李勇)입니다. 1942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으며, 광복 후 귀국하여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후 건국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학업을 마쳤습니다.1966년 단편소설 「전쟁과 다람쥐」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습니다. 주목할 것은 등단 이듬해인 1967년, 공보부 주최 신인예술상 모집에 단편 「인동」이 당선되고, 《현대문학》 제1회 장편소설 공모에 「우울한 귀향」이 당선되는 등 등단 직후부터 단편과 장편 양쪽 모두에서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았다는 점입니다. 이후 목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거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정년 퇴직하였으며, 김동리선생기념사업회 회장과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을 역임하였습니다.이동하는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입니다. 1981년 「굶주린 혼」으로 한국창작문학상, 1982년 연작중편집 『장난감 도시』로 제1회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1983년 「파편」으로 한국문학작가상, 1986년 「폭력연구」로 제31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이 밖에도 한국소설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무영문학상, 요산문학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올해의소설상, 성균관문학상 등을 두루 수상하며 한국 현대 문단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영역 단편선집 〈Shrapnel And Other Stories〉가 미국에서 간행되고, 「장난감 도시」가 영어, 아랍어, 중국어, 베트남어로 번역 출간되는 등 해외에서도 그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이동하의 작품세계는 크게 세 가지 특징으로 요약됩니다. 첫째, 자전적인 요소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귀국한 경험, 6·25 전쟁이 남긴 상처, 이데올로기의 충돌 속에서 살아야 했던 시대의 비극이 작품 전반을 관통합니다. 둘째,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입니다. 군더더기 없는 절제된 문체로 인간의 내면과 현실의 비극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것이 그의 강점입니다. 셋째, 현실에 대한 허무감을 통한 자아인식입니다. 삶이 지닌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응시하면서도, 그 안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를 끈질기게 탐색하는 것이 이동하 문학의 핵심입니다. 주요 작품집으로 『도시의 늪』, 『모래』, 『바람의 집』, 『저문 골짜기』, 『폭력 연구』, 『냉혹한 혀』, 『문 앞에서』, 『삼학도』, 『매운 눈꽃』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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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라인
00:00:00 인트로
00:02:22 본문낭독
00:39:38 단잠의 아주 주관적인 감상평
00:42:28 클로징 음악 "If We Could Meet, Even in a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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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침마다 커피를 한 잔씩 마시는데요 아메리카노도 좋지만 믹스 커피가 더 좋습니다
맛도 좋고 일단 달달하니까 또 그게 습관이 되다 보니 아침에 한 잔을 마셔야만 하루가 시작되는 기분이 들거든요
뭐 그렇습니다 그래서 출근하지 않는 주말엔 뭔가 시작을 못하고 오전 내내 뒹굴뒹굴하게 되는가 봅니다
오늘도 한 잔 차갑게 믹스 커피를 마시면서 작품 녹음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어드릴 작품은 이동화 작가의 헐거운 인상이라는 단편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인생과 사람을 만나는 인연에 대한 생각을 나에게 들려주듯이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여러분들도 들으시면 재미있어 하실 것 같아서 오늘 제가 준비해 봤습니다
그리고 먼저 이 소설을 쓴 이동화 작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동화 작가는 1967년 단편 겨울비둘기 그리고 같은 해 현대문학 제1회 장편소설 공모에
우울한 귀향이라는 작품이 각각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소설집으로 모래, 바람의 집, 저문골짜기, 폭력연구, 삼학도, 문앞에서 물엉각시는 알까?
그리고 장편소설로는 도시의 늪, 냉혹한 혀, 장난감 도시 등이 있는데요
그리고 또 한국창작문학상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또 현대문학상, 오영수 문학상 등을 수상한 작가입니다
오늘은 그의 작품 중에서 단편소설 헐거운 인생을 지금부터 저와 함께 감상해 보시죠
이제 작품 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끝까지 함께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헐거운 인생 이동화
요즘 반상회 화제가 뭐냐구요? 아직도 노통장 얘기 아니냐구요?
천만의 말씀 만만의 말씀 반상회라고 해봤자 고작 동네 옆에 있는 애들 모임인데 뭐 때문에 그딴 얘기 늘어놓겠소?
옛날 반상회가 아니라니까 왜 한땐 그러지 않았소? 지체높은 양반들이 모처럼 이웃 사촌들과 정답게 둘러앉은 모습을
테레비가 요리조리 비춰주고 하던 그 반상회 말이오 당신도 두어 번 불려나갔었지 왜?
하긴 그래봤자 어거지로 급조된 것인데 무슨 미풍양속이라고 지금 세상에 남아 있겠소?
게다가 여기만 해도 최근 몇 해 사이에 주민들이 죄에 물가리가 됐다구요?
3,40대 부부들로 말이에요 10년 전 우리가 이사 올 때만 해도 거의 4,50대 였지 않소?
그러니까 주민 평균 연령이 그새 적게 잡아도 10년은 더 젊어졌다구요?
반상회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우리 연배라고는 어쩌다 한둘 뿐이고 죄다 귀때기 새파란 젊은 엄마들 일색이라 분위기가 영 그래요
우리 같은 늑다리는 매사에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요 엉덩이를 빼고 뒷전에 멍청하게 앉아서 그저 귀동냥이나 하다가 오는거지요 뭐
사정이 이런 판에 노통장 얘기가 왜 나오겠소? 무슨 영양가가 있나 아니면 단맛이라도 있나
젊은 엄마들 입방아 찍을 거야 지천인데 뭘 할 일 없는 남정래들이나 여직 칡불이 씹듯 하고 있는 거지 뭐
백수가 되고 나더니 당신도 입안에 군내가 나는가 보구려 그런데 관심 드는 걸 보니
어쨌거나 오늘은 경로당 노인네들 이야기가 중심 화제였다구요 그것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연애 이야기가
그렇죠? 이쪽 얘기에 훨씬 낫고 말구요 그 뭐라더라 영화 있잖아요 죽어도 좋테나 어쩐데나 하는
칠순 노인네들의 사랑을 실화 그대로 찍었다는 영화 말이에요 그것과 흡사한 사랑 얘기가 우리 동네서도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는 거라
어째 입맛이 당기지 않수? 뭐요?
그래봤자 노망난 늙은이들의 빠꿈살이 일 뿐이라고요? 저 양반 말하는 거 좀 봐
자기는 뭐 아직 청춘인 줄 아셔? 내가 보기엔 그나저나인데 환갑상 챙겨 먹지 않는다고 나이가 그냥 있나 뭐
피차 거덜난 인생이긴 마찬가지인데 뭘 어쨌거나 드러나봐요
안씨 할머니라고 계세요 저쪽 우리 단지서 제일 큰 평소에 사세요
70이 넘은 분인데 그래도 아직 고운대가 남아있는 할머니에요 여유있이 사는 집이라 그런지 아주 곱게 늙으셨더라구요
나도 그래야 할텐데 추하게 늙진 말아야 할텐데 하지만 영감 잘 만난 덕분에 그건 이미 가망 없는 일이 됐지 뭐
그런데 말이에요 남편과 사별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이 할머니가 글쎄 지난번부터 남자친구를 사귀기 시작했대나봐요
김씨 할아버지라고 일은 너댓 되셨대요 물론 싱글이고 뭐라구요?
그 나이에 가당참께 무슨 싱글이냐구요? 그럼 싱글이란 말은 젊은 애들만 쓰기로 특헌했나?
봄이 오면 고목등걸에도 움이 튼다잖아요 그 말인 괜한 햇소리가 아니더란거죠
두 노인네가 경로당을 드나들며 이심전심 눈이 맞았던가봐요 지난 봄에 싹 튼 사랑이 여름 들면서부터 부쩍 뜨거워 졌다나봐요
처음엔 사춘기 적 애들처럼 쑥스러워 하기도 하고 수줍음도 타고 그러더래요
경로당 안에서는 대면대면한 척 서로 시침이 떼고 앉았다가는 둘 다 슬그머니 사라지곤 하더래요
남의 눈을 피해 몰래 데이트하러 가신거지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대요
부쩍 몸이 다는 두 노인네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대담해지더니 필경 경로당 아니고 바뀌고 가리지 않고 매일 붙어서 살더래요
아침상을 물리기 바쁘게 경로당으로 나와서는 저녁상 받으러 다시 들어갈 때까지 둘이서 해 종일 산책도 하고
점심때는 만난거 찾아 다니기도 하고 또 공원 벤치에 비둘기처럼 나란히 앉아 구물구물 졸기도 하고
그러니까 귀민머리 풀고 평생을 해로한 노부부처럼 서로 그렇게 살갑고 다정할 수가 없더래요
나도 이미 여러 번 본걸요 단지 입구에 소공원 있잖우
두 노인네가 거기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무슨 얘긴지 도란도란 나누고 있는걸 더러 보기도 했고
탄천 산책로에서 두 분이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기도 했어요
그렇죠? 당신도 본 적이 있구만요 맞아요 그분들이에요
할아버지는 좀 마르고 키가 훤칠하게 크신 대비해 할머니 쪽은 몸매나 키나 아담한 사이즈에요
하여간 좀 별나 보이긴 하대요 여기가 미국 같은 나라도 아니고 그분들 세대는 왜
부부 동반 나들이 할 때도 남자는 서너 걸음 앞서서 가고 그랬잖아요
여자는 혼자서 아이를 업고 걸리고 하면서 뒤쳐져 따라가고
알아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죠 뭐 세상 참 많이 변한 거죠
그렇다고는 해도 두 노인네가 연출하는 풍경은 나 같은 옆에 내 눈에는 아무래도 별나 보이더라구요
당연히 소문이 짜하게 나돌았지요 그 할아버지 할머니를 두고 젊은 거 늙은 거 가릴 것 없이
열심히 이빵하들을 찌어대는 거죠 그러고 있는 두 분의 모습이 너무너무 아름답고 감동적이 더라는 얘기에서부터
민망스럽더라 웃기더라 심지어는 꼴불견 이더라는 소리까지 반응이 다양하대요
나요? 이미 말했잖아요 세상이 변했다고는 해도 그렇지 아무렴 늙은이들이 짝짓긴 우리가 왜 그리 아름답거나 감동적일 게 있나 싶어요
뭐 그렇다고 웃긴다거나 꼴불견일 것까지야 없는 일이고
그러니까 좀 별난 노인네들의 좀 별난 짓거리랄지 하여간에 마주 보기가 조금은 민망스러운 풍경이더라구요
뭐요? 그러니까 장차 안 그럴 거냐구요? 저 양반 은근히 수절하길 바라는가 봐
그럼 당신은 어쩔 건데? 내가 먼저 가고 나면 절대로 혼자 살겠다 그런 거요?
뭐라고? 사내는 다르다고? 무해달라? 사내는 늙지도 않남? 늙지 않는 건 단지 고놈의 도둑심법 뿐일 테지
에잉 말을 말아야지 난 설거지를 해야겠으니 당신은 그만 9시 뉴스나 보셔
요즘 화제가 뭔지 궁금하다며? 노통장 밑에 이반장이라며? 그쪽 얘기에나 관심 두시라고?
뉴스 따윈 이젠 관심 없다고요? 당신이? 아이고 어쩔까 명퇴 당하더니 사람 한번 엄청 달라졌구먼
참 안됐어 그럼 야구 중계라도 보시구려? 없다고? 중계가?
그러니 하던 얘기나 마저하라? 알았수다 계속할게
이러네 저러네 동네 옆에 네들 입방하야 그랬다 치고 경로당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 사이에서도 두 분 얘기가 뜨거웠대요
어째 보기가 좀 민망 타는 분도 있고 무슨 얘기냐 보기 좋고 부럽기만 하더라는 소리도 있고
그런 중에 어찌됐건 저리도 떨어지기 싫어하니 그럴 바엔 차라리 합방시키는 게 어떻겠냐는 소리까지 나왔대요
같이 살게 하자는 거지요 인생 70 고래희라는 말도 옛날 캐캐 묵은 소리다
998823 사례지 않나? 이젠 60 환갑이 청춘이고 70은 한참 작년이다
새 인생 설계 못할 것도 없다 둘이 저렇듯 죽고 못 사는 걸로 보아 아마도 천생연분인 듯 싶다
그러니 방 한 칸 얻어 살림 차려주자 그래서 마침내 노인회 회장님이 팔 걷어붙이고 나서신 거래요
당신도 알 거야 왕년에 교장선생 하셨다는 그 양반 방학되면 애들 모아놓고 한자 공부랑 예절 교육도 시키는 할아버지 말이에요
어머니들한테는 인기 있는 훈장님으로 통한다고요 엄마들로 써야 학원비 없는 과외 선생이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정작 애들한테도 인기 짱이래요 날마다 옛날 이야기를 한 가지씩 들려주시는데 너무너무 재미있다고 해요
옛날 이야기를 통해 한자도 가르치고 옛날 교육도 하시는가 봐요 언젠가 우리 부녀회에서 강사로 모신 적이 있는데
노인네 입담이 보통이 아니더라구요 인연의 소중함 뭐 그런 주제에다
초빙연사는 퇴물교장이라 좀 길고 따분한 주례사 같은 걸 들으려니 했는데
웬걸 전설따라 삼천리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를 청산유수로 풀어내는데
아 보통 이야기꾼 솜씨가 아니더라구요 어떤 이야기였냐고요
그 외 있자누 호랑이 각시 이야기 옛날 옛적에 한 총각이 달밝은 밤에 혼자 탑돌이를 하다가
한 처녀를 만나 사랑을 나누었는데 나중 알고 본 즉 그 처녀가 무시무시한 호랑이더라는 이야기
어찌나 실감나게 잘 엮어가는지 무슨 구연동화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니까요
한바탕 재미난 이야기 끝에 딱 한마디 교훈하시대요 요즘 사람들 특히나 젊은이들은
부부인연 알기를 이 호랑이 만큼도 안터라고 하시대요 얼마나 가슴에 와 닿는지
다들 고개를 주웍거렸어요 그런 분이라고요 이야기 좋아하는 거야 애 어른 따로 있나요 뭐
애들 사이에는 숫자에 이바구 할배로 통한대요 이 할배가 오늘은 무슨 이바구를 해줄까
하고 늘 시작하신대요 바로 그 회장님이 나서신거지요 결과가 궁금하지요
저 두 노인의 러브스토리가 어떻게 발전할 것 같나요 노인회 회장님이 양가를 방문해서 여러가지 좋은 말로 권고하셨대요
저 두 사람이 저렇든 몸이 달아 있으니 방이라도 하나 마련해설랑 같이 살게 해주면 어떻겠느냐
옛말에도 늑마엔 효자 효부 열명보다 악처 하나가 낫다지 않던가
때늦게 이처럼 만난 것도 인연이 있어 그런 것 두 늙은이가 친구처럼 등 기대고 살면서 서로 서로 가려운데 긁어주고
아픈데 쓰러지면 오조 다숩겠느냐 어쩌고 뭐 그랬을 테지요
그 언변 어디 갔겠어요 하여간 곡진하게 설득하고 권면 했다는 거에요
한데 양가 사람들이 반응이 아주 뜻밖이었다지 뭐에요 한마디로 아주 냉담 하더라요
특히나 할머니 쪽 사람들이 더 그렇더라 입니다 아들과 자부가 몹시 기분 상해하면서 대꾸하는 말인즉
10년 넘게 혼자서 고이 살아오신 분에게 이제 와서 무슨 망신 살리를 만들려는 거냐
묵은 2년도 짐이 되는 연세이신데 뭐 때문에 짐을 더 지우려 하는가
혹 어머님이 원하신다고 해도 우리는 반대다 그러면서 완강히 거부하더라 요 글쎄
당신은 이해가 가우? 아들이나 며느리나 한 목소리라던데 난 모르겠습니다
뭐 때문에 싫다는 건지 내 생각으론 아들은 효도에 좋고 며느린 짐 덜어 좋지 않나 싶은데
네? 뒤집어서도 보라? 그러면 아들은 호기부터 싫고 며느린 돈 드릴 일이 싫다?
따는 맞는 말이네 젊은 내외한테서 나의 대접도 못 받고 당하기만 한 회장님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돼서
경로당으로 돌아와서는 한동안 혀를 차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져웠다는 거에요
좀 사는 집 자식일수록 그렇더라고 무슨 다른 근거가 있는지
65평 아파트에 원목을 깐 거실 외제 응접세트 등 부티나게 해놓고 사는 것까지 흉을 잡더라지 뭐에요
그 점자는 분이 얼마나 심사가 꾸였으면 그런 말까지 했을까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대요
김씨 할아버지가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대나요? 글쎄요 얼마 전에요
알려진 사연인 즉 이렇다는군요 김씨 할아버지는 딸네 집에 얹혀 살았대요
암요 그거 수월한 거 아니죠 그러니 내내 눈치밥을 자신거지요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딸 내외가 금술이 좋지 않았대요 보통 안 좋은 정도가 아니고 꽤 고약했다고들 하더군요
결혼한지 10년이 넘었다는데 왠지 애들도 없대요 그래서인지 툭하면 그릇 깨지는 소리를 내곤 하더니
결국 갈라섰다지 뭐에요 가진 거라고 달랑 아파트 한 채
그게 32평 짜리라지 아마? 뿐인 처지라 그걸 팔아서 똑같이 나눠갖기로 그것만은
의논성스럽게 민주적으로 합의하고 복덕방에 내놓았는데 요새 이 동네 아파트가 뜨는 판이라 그랬는지 내놓은 당일로 팔렸다진 뭐에요
이혼녀가 된 김씨 딸은 이웃 도시로 서민 아파트를 구해 이사를 갔고 그리고 달리 대책 없는 김씨 할아버지도 묻어갔더라
그런 사연이라고요 그걸로 러브스토리가 종쳤냐구요 천만에요 그렇다면 내가 이렇게 조잘되지도 않았지
끝난 게 아니고 현재 진행형이라고 내가 진작에 말하지 않았었나 김씨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만나러 여기까지 오신다구요
버스 타고 전철 타고 다시 마을버스 타고 그렇게 두세 시간씩 걸려서 원정 데이트를 오시는 거죠
일주일에 두세 차례씩이나 참 대단하시죠 그런데 날씨가 추워지면서부터 걸음이 더디어지더니 요새는 한 주에 한 번 정도로 뜸해졌다고는 해요
칠순 노인이니 그럴 수밖에에요 그러다가 기력이 쇠해지면 결국 발길도 끊어지겠거니 다들 짠하게 생각하고 있는거지요
문제는 안씨 할머니래요 요즘 그 할머니 보기가 영 애처롭다는 게 중론이에요 벤치에 혼자 앉아서 찬바람을 맞으며 떨고 있는 모습이
너무 가엾다고들 해요 그 곱게 늙은 얼굴이 이제 늘 수심에 잠겨있고 얇은 어깨죽지가 기운을 잃어 눈에 띄게 까불어졌다는 거에요
꼿꼿했던 허리도 약간 꼬부라지고요 경로당엔 아예 들어서지도 않고 저기 공원벤치에 앉아서 해종일 큰길 쪽만 내다본다는 거에요
역락없는 짜기는 기력이죠 뭐 그 하고 있는 꼴이 하도 철양해서 노인의 회장님이 또 나섰다는 거에요 까진 한 번 더 당할 각오를 하고 다시 할머니 댁을 찾아갔다래요
그리고는 그 젊은 내외를 앉혀놓고 저 호랑각시 이야기를 했다나 봐요 아무렴 애들 앞에서 처럼 그렇게 실감나는 구현동화야 했겠어요
어쨌거나 그 얘기 끝에 곡진하게 거듭 권유했대요 이런 옛날 이야기들이 지금 세상이라고 아주 허황된 것만은 아니다
사람과 짐승간에 맺어진 인연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인간사의 인연이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중하게 지키고 가꾸는 것이 어진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나
근데 보아한즉 저 두 사람의 연이 아무래도 예사롭지가 않다 전생의 연이 닿아도 깊이 닿아있어 저승길까지 함께 갈 연분인데 싶다
그러니 다시 신중히 생각하고 결단해야지 않겠는가 우리 경로당 친구들 마음이 대체로 그러하다
회장님은 구구절절 참으로 곡진하게 말씀하셨대요 세상에 그런데도 아들내외는 꼼짝도 않더라지 뭐에요
어르신께서는 우리 어머니를 잘 모르셔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유들유들하게 웃기까지 하더래요
그러더니 필경엔 할머니의 과거지사를 까발리더라지 뭐에요 어르신께서 인연의 소중함을 유난스럽게 강조하시니까
글쎄 안씨 할머니가 결혼하고 두 해만에 천남편과 헤어진 전력이 이미 있노라고
그런즉 인연 운운하며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게 좋겠다고 하더래요 글쎄 그 부려막심한 인간이 말이에요
여보 우리 사는 세상이 왜 이렇게도 삭막해졌수 그 얘기 듣고 나니 입맛이 싹 달아나버립디다
뭐잖아 나도 자식들한테서 저런 꼴 당하지 않나 싶어지고 이놈의 세상 대충 살고 얼른 가야지 원 안그러수
당신은 어찌 암 싫었지도 않다는 얼굴이구먼 건 또 무슨 속네요 뭐라구요 그게 바로 세대차라고
세상이 그만치 달라진걸 이제서야 알았냐구요 왜 몰라 막상 그런 일을 보니까 또 속이 뒤집어지는거지 뭐
노인회 회장님도 그러셨대요 왕년의 교장선생님 답게 말이에요 요즘 젊은 것들은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
도무지 가르치고 훈육할 수 없는게 이 세대의 특징이다 그러면서 한탄 하시더래요
옛날 이야기들이 결코 허황된 것이랬나 헛것이 아니라고 노인회 회장님께서는 열심히 강조하셨지만
안씨 노인 아들노에는 시답지 않게 웃기만 하더라고 아내의 이야기를 들은 그날 밤 나는 서가를 뒤져 새삼스레 삼국유사 속의 그 설화를 찾아 읽었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 쉽게 아득한 기억을 더듬어 가며 되짚어 보는 재미가 결코 적지 않았다
누가 말했던가 허구의 세계가 현실보다 더 실감나는 시절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나는 그 어린 시절의 감동이 아련하게 되살아나는 듯한 기분에 달콤하게 빠져들었다
신라 성황때 이야기다 김현이란 총각이 흑륜사 뜰에서 밤늦은 시간에 홀로 탑돌이를 하고 있었다
탑을 돌며 소원을 빌면 그게 이루어진다는 풍속을 쫓아서 했다 그가 밤이 깊도록 혼자서 탑돌이를 하고 있는데 언제부터인가
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낭자가 하나 지성스럽게 연불을 외면서 그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는 게 아닌가
어느 바람결에선가 매향이 은은히 풍겨오는 듯 싶은 2월 달도 휘영청 밝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남녀는 뜨거워진 손을 맞잡았고 그리고 으슥한 곳을 찾아 무화중에 몸을 섞었다
꿈같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문득 정신을 챙긴 낭자가 다시 장옷을 뒤집어쓰더니 도망치듯 황망히 그곳을 떠났다
김현이 서둘러 쫓아가자 그녀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러시면 도련님께서 장차 커다란 재앙을 입으십니다
제발 저를 쫓아오지 마소서 낭자의 표정이 너무나 애틋하고 그 목소리가 하도 간절하여 김현은 차마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한 번 인연을 맺은 이상 이대로 보내버릴 수는 없다고 굳게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서 낭자가 한사건 말리는 것을 듣지 않고 그는 기어이 그녀의 집에까지 따라갔다
낭자의 집은 깊은 골짜기 험한 산 깃을 게 자리잡은 초가였다 마당으로 들어서자 지게문이 열리고 한 노파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 노파는 팥불이처럼 하얗게 샌 머리털에 눈빛이 섬뜩하게 날카로웠다
내 뒤에 서 있는 젊은이가 누구냐 노파가 물었다 낭자는 고분고분 그간의 일을 토설하였다
그러자 사정을 듣고 난 노파가 근심뛴 얼굴로 말하였다
너를 나무랄 수야 없다마는 이제 뒷일을 어떻게 감당하려느냐
허나 기왕 지사 저질러진 일이니 우선 저 총각을 벽장 속에 꼭 숨겨두도록 하여라
내 오라비들이 곧 돌아올 터인데 그들이 해칠까 두렵다 낭자는 서둘러 김현을 숨겼다
곧이어 밖이 소란스럽더니 송아지만큼 덩치가 큰 호랑이 세 마리가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집안으로 들이닥쳤다
그 중 한 마리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였다 집안에 웬 비린내가 진동하고 있지 않느냐
다른 두 마리가 콧구멍을 벌룸벌룸하며 맞장구를 쳤다 그래 이는 분명 사람 냄새다
올커니 시장하던 차에 잘 됐네 이놈을 찾아내어 요기를 하잤구나
드디어 세 마리 호랑이가 집안을 마구 뒤질 기세이자 낭자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그러자 노파의 호통이 떨어졌다 무슨 말 같지 않은 수작들이냐
네놈들이 어디서 또 비린내를 묻혀온 거로구나 내가 모를 줄 아느냐
네놈들이 저 아래 인간 세상으로 툭 하면 드나들며 아무나 상대를 가리지 않고 못된 짓거리를 하고 다닌다는 걸
내가 권히 알고 있느니 이제 곧 하늘이 벌을 내릴 터인지 단단히 각오들이나 해두어라 이놈들아
기세등등하던 호랑이들이 그만 기가 죽은 듯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그러자 정말 위로부터 천둥치듯 우렁우렁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네놈들의 행패가 갈수록 자심하여 사람들 사이에 원성이 자자한 즉
내가 더 이상 모른 척할 수가 없구나 미구에 너희들 중 하나를 죽여 반드시 그 죄값을 치르게 하리라
호랑이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두려움에 떨었다 그제야 낭자가 나서며 말하였다
오라버니들이 앞으로는 절대로 근신하여 사람들을 함부로 해치지 않겠노라 맹세한다면 내가 대신 그 벌을 받겠소
그러한 즉 오라버니들은 멀리 가서 은신토로 가세요 호랑이들은 반겨 꼬리를 치고 기뻐하며 멀리 멀리 도망갔다
낭자가 김현에게 말했다 낭군께서 제 뒤를 쫓아오지 마시라고 소녀가 한사코 만류한 까닭을 이제 아시겠지요
모든 사정이 다 드러난 마당에 무엇을 감추겠습니까 소녀 비록 사람이 못되오나 낭군님과의 이미 부부의 연을 맺었으니
제 말을 부디 귀담아 들으시고 그대로 행해 주실 것을 간절히 청합니다 낭자의 말인 즉 이러하였다
자신은 사람으로 태어나 좋은 낭군 만나기를 소원하여 해마다 복회가 열리는 2월이면 인적 뜸한 밤중을 택해 흑륜사 탑돌이를 해왔다는 것
지난밤에 하늘이 편들고 귀신이 도와 천만 뜻밖에도 도련님을 만나 오매불만 그리던 부부의 연을 이승에서 맺었으므로
그리고 또 말하기를
자신이 내일 성한 저자로 내려가서 한바탕 소동을 벌이겠다는 것 그러면 나라에서는 호환을 무서워하여 높은 벼슬을 걸고 자신을 죽이고자 할터인 즉
그때 낭군께서 나서서 공을 세우시라고 하였다 낭군께서는 결코 두려워 마시고 저를 쫓아 북문박 숲에까지만 오소서
그러면 소녀는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가 목숨을 내놓겠나이다 절대로 그럴 수는 없어
김현은 완강히 머리를 가로 지었다 사람과 호랑이가 서로 정을 통했으니 이는 천하만물의 질서를 범한 것이라 마땅히 벌을 받을 일이지만
그러나 이 또한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아니겠소 그런 즉 내가 어찌 당신의 목숨을 팔아 벼슬을 사겠소
둘이서 같이 죽어 장차 축생계에 태어날지언정 결국 그렇게는 할 수가 없어
하지만 그녀 역시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 말씀 마소서 사리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소녀가 일찌 이승을 하직함은 하늘의 뜻이자 저의 간절한 소원이기도 합니다
이로 인하여 남군께서는 벼슬을 얻게 되시니 또한 경사가 아니겠습니까
이는 또 우리 가족이 화를 면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나라가 근심을 덜고 백성들이 기뻐할 일입니다
그러므로 저 한 목숨 바쳐 다섯 가지 유익을 얻을 것인 즉 어찌 주저하리까
마침내 두 남녀는 손을 꼭 부여잡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다음날 성안 저자거리에는 과연 사나운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사람들을 위협하고 다녔으나 아무도 이와 맞서는 자가 없었다
나라에서는 호환을 물리치고자 높은 벼슬을 내걸었다 그러자 김현이 용감하게 나서서 호랑이를 쫓았다
이었고 북문 밖 숲에 이르자 그 사납던 호랑이는 호련이 아리따운 낭자로 몸을 바꾸었다
낭군께서는 부디 소녀와 맺은 인연을 소홀히 하지 마소서
억겁의 세월 뒤에라도 기어이 제외하여 이승에서 못다한 부부의 연을 누리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너무나 애절한 눈빛으로 작별 인사를 구한 다음 낭자는 김현의 칼을 빼어 스스로 목을 찔러 죽고 말았다
그러자 그녀의 아리따운 몸은 사라지고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목에서 피를 흘리며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벼슬길에 오른 김현은 훗날 호원사란 이름의 절을 지어 호랑이 각시의 혼백을 지성으로 천도하였다고 전한다
뒷얘기가 궁금하다고요? 그러니까 사나을 거리로 이루어지던 두 노인네의 원정 데이트는
한 주일에 한 번으로 바뀌었다가 나중에는 두어 주일에 한 번씩으로 점차 뜸해지더니 겨울 들어서는 그나마 중단되고 말았대요
김씨 할아버지가 낙상을 했다는군요 글쎄 안씨 할머니를 만나러 오다가 얼음판에 미끄러져서 그만 쓰러지셨대요
그다지 심하게 넘어진 건 아닌데 노인네라 뼛속이 비었던가 봐요 엉치뼈가 아주 못쓰게 바스러졌다지 뭐예요
그럼요 골다공증이죠 뭐 김씨 할아버지는 대충 응급치료만 받고 내처 집에만 누워서 사셨대요
나이도 있고 또 사는 형편도 그렇고 이래저래 죽는 날만 기다릴 밖에 무슨 도리가 있겠어요
혼자된 딸이 그 늙고 병든 아비 대하기를 마치 늙은 개에게 하듯 한다더라면서 안씨 할머니가 노상 눈물바람을 했답디다
적대 왜 안씨 할머니 과거사 얘기 했었지요 결혼 두 해만에 첫 남편과 갈라섰다는 거
재미있는 건 김씨 할아버지도 비슷한 과거지사가 있더라는 거에요 안씨 할머니도 그걸 알고 있더래요
김씨 할아버지가 경로당에서 평소 그랬대요 조강지처와 등 돌린 후로 내 인생행로가 영 개판이 되고 말았노라고
자주 푸념했다는군요 그 노인 어떻게 첫 마누라와 헤어졌는지 이야기를 듣고 본 즉 참 어처구니가 없더라구요
들어볼래요 가세가 좀 넉넉한 집 막둥이로 나고 자란 터수의 그 양반 청년 시절에는 꽤나 풍류적 귀를 밝혔다나 봐요
장가든 뒤에도 그 버릇은 여전해서 부부 갈등이 잦았다고 그래요 그 시절에도 부부 갈등 같은 말이 있었는지 어쩐지는 모를 일이지만
부인도 앤간한 성품은 아니었나봐요 하지만 김씨는 그걸 별로 대소롭지 않게 치부했대요
오히려 뒤집어 생각하기를 옆에 내 강자는 초장에 잡지 못하면 평생 성가신 존재가 된다는 식으로 그 외 있잖아요
그 시대 남정래들의 그 한심하고 무지막지한 사고방식 그것 하나만 청대같이 믿고 한 수 더 떠는 식으로 사태를 악화시키기만 했대요
예나 이제나 사내들이란 참 미련한 구석에 있는 동물이잖수
그러는데도 징징대며 그 그늘에 눌러앉아 산 대다수 여자들도 문제긴 하지만
하루는 김씨가 밤늦어 귀가했는데 부인이 대문을 따주지 않더라는 거예요
취기도 있겠다 까진 하기로 들면 월장도 어렵지 않았지만 김씨는 산에 오기로 대문 앞에 그냥 버티고 서 있었대요
마침 엄동 한가운데라 밤추위가 만만치 않았대요 금방 귓불이 얼어붙고 발가락 동통도 장난 아니었건만
1시간이 지나도 2시간이 지나도 닫힌 문은 도무지 열리지 않더라는 거라 독이 오를만도 했지요
김씨는 이웃들의 창피하단 생각도 팽개치고 나중엔 대문을 발길로 걷어차며 냅다 소리를 질렀대요
당장 나와서 문을 열지 않으면 내 다시는 이 집구석에 발을 들여넣지 않겠노라구요
온 동네 사람이 다 들을 정도로 크게 소리를 쳤는데도 안에서는 여전히 기척이 없었대요
추위 때문에 더 이상 견뎌내기도 힘들고 하여 김씨는 하는 수 없이 돌아서고 말았는데
정말로 그 후 다시는 찾아간 적도 만난 적도 없노라고 실토하더래요
세상에 어찌 그럴 수가 있대요? 귀민머리 팥불이 되도록 해로워하지는 못할 망정
피차 첫 옷걸음 푼 사람들끼리 그렇게 갈라서는 법도 있나요? 안씨 할머니 경우도 그래요
고작 스물하나 인생이 뭔지 부부가 어떤 건지도 모르던 철부진 나이에
지금 생각하면 별일도 아닌 것으로 투정하고 다투다가 아차 이건 아닌데 싶어 멈칫하고 본 즉
이미 봉합할 수 없게 틈이 벌어져 있더라는 거예요 대바람에 보따리 싸들고 집을 뛰쳐나온 게 치명적인 실수였대요
데리러 오겠거니 싶어 이집 저집 전전하다 보니 열흘이 가고 또 열흘이 가고 어느새 계절이 바뀌었더래요
그래서 혼자 살다가 결국 다른 산에 만나 아들 딸 낳고 살아온 인생이라나 그러더라구요
참 어처구니 없다고 해야 할지 그만큼 독한 사람들이라고 해야 할지 사실 난 많이 헷갈린다구요
어찌 그런 오기를 부려서 자기 인생을 하루아침에 달팍 뒤엎어 버린대요 글쎄
그러고는 엉뚱한 길로 껍벅 껍벅 들어서요 그런 것도 자기 인생이기는 한가
뭐라구요 그러니까 팔자라는 말이 있다
확인 그 말도 맞는 것 같네 하지만 정작 속볼병이 들기는 했던가 봐요
애들 말로 당근이지 뭐 아 그러고도 무심하다면야 사람이 아니지
아마도 마음속 깊은 회안을 지닌 채로 평생을 살아온 건 두 노인네가 다 마찬가지였나 싶어요
동병 상년이었던 거죠 김씨 할아버지는 생각할수록 그 일이 너무나 후회스럽다고 하더래요
사정이 그랬다고는 해도 잘못은 100번 자기에게 있노라고 그깟 놈의 오기 때문에 결국은 매정하게 조강지처를 버린 거라고
평생 상처를 껴안고 살아왔는데 일이 늙고 본 즉 더 회안이 깊어진다면서 자주 탄식했다는 거예요
안씨 할머니도 그랬대요 다른 남자를 만나 아들 딸 낳고 오손도손 살아오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늘 아릿하게 저려오곤 했는데
지난 봄 이곳으로 이사와서 김씨 노인을 만나면서부터 그게 부쩍 더 심해졌다고 하더래요
당신 말로는 김씨 노인만 보면 첫 남편이 생각난다는 거라 외모나 성품이나 어느 한구석 딱히 닮은 것도 없는데
이상스럽게도 남편 얼굴이 겹쳐 떠오르면서 곧잘 깊은 회안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김씨 노인의 처지가 더 안쓰럽고 애틋해지노라고 정말이지 속내를 알 수 없는 노인네들이라고요
엊그제 일이래요 아침 일찍 우리 아파트 단지를 나서신 안씨 할머니가 저녁 답쯤 해서 돌아오시더래요
그날 몹시 추웠죠 왜? 12월 추위로는 17년 만에 제일 춥다고 한
네 그날 저녁이래요 외투를 두껍게 입고 커다란 숄로 상체를 둘러싼 안씨 할머니가 경로당 앞을 지나가더라는 거죠
전과는 달리 견눈도 주지 않고 말이에요 마침 경로당을 나서던 할머니들이 보고 안씨 할머니를 붙들어 세웠다는 거예요
노인의 며치 그녀를 둘러싼 채 물었답니다 이렇게 추운 날 어디를 다녀오는 거냐
그러다 혹 낙상이라도 하면 어쩔 거냐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이구동성으로 묻고 나무라고 했대요
안씨 할머니는 한동안 대답을 안 터래요 자그마한 몸뚱이가 시퍼렇게 얼어붙은 데다
몰라보게 검버섯이 푸루푸루 핀 얼굴은 꾸적꾸적하게 젖어 있더래요 다잡아 사연을 캐고 본 짓
김씨 할아버지의 장례식에 갔다 오는 길이라며 눈물을 훔치더래요 글쎄 성남 화장터까지는 염치 불구하고 따라갔으나
더는 고집할 수 없었노라고 노인 애들의 시선을 비켜 허공으로 하염없이 처연한 눈길을 던지더랍니다
사람들도 죄의 말을 잃어버렸대요 그래서 안씨 할머니의 눈길을 쫓아 망연히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던가
아파트 숲 위로 저녁놀이 발그레 피는 듯 싶더니 금방 사그레 지더라고 누가 그러대요
인생이 뭔지 나만 참 아까 팔을 다듬었더니 여직 눈이 맵네요 글쎄 작품의 마지막 이야기하는 사람의 말이 인상 깊게 다가오는군요
인생이 뭔지 여러분들 중에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계실 것 같아요
인생을 다 살면 인생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인생은 이것이다 하고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제각기 말하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가 정답일 수도 있고 동시에 틀린 답일 수도 있죠
내 삶에 비추어 맞으면 정답이고 틀리면 오답이 아닐까 싶은데요
결론은 정답은 있긴 있되 제각각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이 작품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가 동네에서 있었던 황혼의 러브 스토리를 남편에게 가십거리처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원래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어떤 뉴스보다도 흥미진진 하죠 그래서 더 집중하게 되기도 하고요
노인이 되어 만난 황혼의 러브 스토리 누가 젊은이들의 사랑만이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랑은 나이를 상관하지 않고 언제든 찾아오는 것을 그것을 자연스럽게 인연으로 인정하고 뜨겁게 사랑을 나누었던 두 사람은
자식들의 반대에 부딪혀 결실을 맺진 못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제 표현에서 결실을 맺지 못했다는 말은 좀 안 맞는 것 같아요
꼭 같이 살고 결혼을 해야 사랑의 결실일까요? 아니죠 사랑을 한 것 자체가 사랑의 결실 아닐까 싶은데요
사랑을 하면 그 다음 단계로 꼭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정해진 틀에 맞추려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전 사랑 자체만으로도 순수하게 평가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요
사랑에는 다양한 길과 다양한 형태가 있을 테니까요 꼭 한 가지만을 고집할 수는 없는 거죠
음 제가 지나치게 좀 진보적인 건가요? 아무튼 오늘 소설에서 안씨 노인의 초췌해진 모습이 많이 안 돼 보이긴 합니다
사랑은 있을 때 마음껏 원없이 하시길 바랍니다
가족 여러분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이동화 작가의 헐거운 인생을 읽어드렸습니다
다음에 뵐 때까지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사랑은 있을 때 마음껏 원없이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