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며듣는소설 이 여자의 인생이 참 짠해. 낳지도 않은 자식을 그리워하며 혼자 외로워하고 있으니 | #책읽어주는남자 #책과함께하는하루단잠

책과 함께하는 하루 단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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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며듣는이야기 #잠자리소설
하루의 끝, 조용한 밤.
당신을 깊은 이야기 속으로 이끄는 오디오북 채널, 책과 함께하는 하루 '단잠'입니다.
🛏️ 잠들기 전,
🚶♀️ 혼자만의 감성 산책 시간,
🎧 눈은 쉬고 싶지만 마음은 이야기를 원할 때—
언제든 이곳에 들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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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잠의 꿈꾸는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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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라인
00:00:00 인트로
00:00:41 본문낭독
00:43:24 단잠의 아주 주관적인 감상평
00:47:28 클로징 음악 "Evening coffee breeze(연주)"
#오디오북소설 #한국문학낭독 #밤에듣기좋은이야기 #감성오디오북 #자기전듣는책 #책읽어주는유튜브 #단잠을위한오디오북 #소설읽어주는채널 #조용한밤이야기 #audiobook #한국소설 #소설낭독 #단잠의꿈꾸는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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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요약
AI 생성윤명혜 작가의 <시간의 집>은 남편과 사별 후 고립된 삶을 사는 50대 여성의 내면을 통해 상실과 고독, 가족 간의 갈등, 그리고 삶과 죽음의 순환을 다룹니다. 주인공은 타인이 부여한 역할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를 찾고자 하며, 죽음과 탄생이 교차하는 병원에서의 경험을 통해 평생의 한이었던 불임의 슬픔을 내려놓고 삶을 수용하게 됩니다.
오늘 읽어드릴 작품은 윤명혜 작가의 단편소설 시간의 집입니다.
이 소설은 감상하시면 많은 공감이 되실 것 같은 작품인데요.
뭘 할까요? 짠하고 안타깝다고 해야 할까요?
다 읽고 나서 제가 느낀 감정은 그런 것이었거든요.
오늘 이 작품 끝까지 들어봐주세요.
이제 작품 망독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받을 필요도 없다.
설사, 나 찾는 전화라 할지라도 내게 필요한 내용은 아니리라.
전화는 필요한 사람이 받는 법.
어떤 전화도 기다리지 않는 내게 받을 전화는 없다.
밤에 걸려온 것이건 낮에 걸려온 것이건
이쯤 나에게는 기분 내킬 때에만 응답하는 물건이다.
대게는 잘못 걸려온 것이다.
이사온 지 반년밖에 안 되었으므로 당연한 일이다.
이전에 이 전화번호를 사용했던 사람들 중에는
동문엄마도 있고 고사장도 있다는 걸 알 정도이다.
전화는 저 혼자 울부짖게 내버려 두고 침실을 나왔다.
목욕탕 문 틈으로 불빛이 새어나왔다.
문을 열어볼 필요도 없이 스위치를 눌러 껐다.
불빛이 사라지는 순간에 전화벨 소리도 그쳤다.
마치 환청이었다는 듯이.
남편이 살아있을 때에 목욕탕 불이 켜져 있으면
그의 정신없음을 남으라곤 했었다.
처음엔 오래 살던 집을 떠나 갑자기 새로운 구조에 적응 못하여
실수도 당연하려니 여기고 농담삼아 말을 던졌지만
한두 달 지나도 그 버릇을 못 고치자 진담으로 핀잔을 준 거였다.
남편이 없는데도 목욕탕 불은 허언히 켜져 있다.
불 끄기를 잊어버린 사람은 원래부터 나였나 보다.
아니면 둘 다거나.
죽은 사람에게 미안해 하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게 되었다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일 때문에 죽은 사람이 생생히 되살아나기도 하고
몇십 년의 무게가 새삼 짓누르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첫 부인을 앞세우고 그 부인이 낳은 아이들 셋을 키우며
나와 함께 살던 20년 동안 아무 내색 없던 그의 얼굴 뒤에
어떤 감정과 어떤 생각이 시도때도 없이 스쳐갔을지
똑똑히 알게 된 건 서글픈 일이다.
죽은 사람에 대한 미안함은 뒤로 감춘 채
그는 늘 나에게 미안해하였다.
작은 아이까지 결혼시켜 내보낸 이후
우리 둘만 남자.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드러내어 고마워하고
짜증이 날 정도로 미안해하였다.
꼭 1년 동안이었다.
그리고 지금
불도 안 켠 어두운 거실에 50살 먹은 과부가
잠옷 입은 유령처럼 허역해 서 있다.
목욕탕 불 때문에 남편에게 애매한 누명을 씌운 일 외에는
아무리 곱씹어도 그에게 미안한 일을 찾아내지 못한 채
그건 아마 없었으면 훨씬 더 무기력했을 듯하다.
냉장고 모터가 요란하게 돌기 시작했다.
놀랄 만큼 큰 음향이었다.
아무리 밤중이라도
대낮에도 차소리나 사람 소리 듣기 어려운 총구석이라도
당연히 끼고 사는 집안의 생활소음인데
마치 저 혼자 살아있다는 듯이
한참 후에야 지피는 구석이 있어서 거실에 불을 켰다.
늘 째깍거리던 시계가 머저 있었다.
언제부터 죽었는지는 모른다.
남편이 은퇴한 이후 시계 보는 일이 그닥 중요하지 않았고
그가 죽은 다음에는 더더욱 그랬다.
게다가 1년에 한 번쯤 배터리 가는 건 애초부터 그가 하던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배터리를 간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 집에 이사 오기 전이었다.
먼저 집의 거실 벽지엔 시계를 떼어내자
동그랗게 그 부분만 바래지 않은 자국이 드러났었다.
떼어내는 건 발돋움만 하면 되는데
다시 걸 때에는 받침대가 필요했다.
키가 2, 3cm 모자란다고 내가 말하자
그는 늙어서 키가 줄어드는 거라고 대꾸했다.
은퇴와 막내딸 결혼과
육십 고비가 같은 해에 맞물리자
그는 부쩍 늙은 이탈형을 잘하곤 했다.
마치 인생의 숙제를 끝마쳤다는 듯이
아마도 그가 평균 수명 이상 산다면
치매에 걸릴 팔자를 타고났는지 모른다고
최소한 나에게 팔자 편한 중년이라도 남겨주려고 서둘러 갔나 보다고
그렇게 자유하는 나야말로
내 나이를 훨씬 앞질러 늙은 모양이다.
서른 살 노처녀가 마흔한 살 호랍이와 결혼할 때
이미 예견된 일이 아니었던가
일단 그 새끼줄에 얽혀들자
마흔 두 살의 외할머니가 되고
마흔 일곱의 친할머니가 되었다.
남편이 장례식 때 나는 손주가 내신 할머니였다.
막내딸의 배도 꽤 불러있었다.
지금 나는 엄마도 할머니도 아니다.
남편의 죽음과 함께 빌려 입은 옷을 다 벗어버렸다.
구태여 말하자면 그와 결혼하기 전
무덤덤한 독신 생활로 되돌아간 듯하다.
젊어서도 피 끓는 청춘이었던 적은 없으니
앞질러 늙은 게 구태여 남편의 탓은 아니다.
저예요 엄마!
무심코 수화기를 들었더니 서른 네 살짜리 큰 딸이다.
산마루에 점점 가까워지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순식간에 독신녀에서 외할머니가 된다.
잘 있냐?
애들도?
이서방도?
맨날 시끄럽게 잘 있어요.
왜 꼼짝도 안 하세요?
좀 놀러 오시지.
열네 살에 처음 만난 큰 딸은 예나 지금이나 깍듯하다.
기르기 쉬운 아이는 아니었지만 그것도 장점인 게
시집간 후에도 친정에 치대는 요즘 딸들과는 다르다.
당연히 그런 애네 집에는 청하기 전엔 가면 안 된다.
동생들 소식도 가끔 듣고 나는 말을 돌린다.
아들에는 처가 집에 들어가 사니까 남편이 살아 있을 때에도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전화하지 않았더랬다.
며느리가 맞벌이하니 처대 낳고 장모 부려먹기 시작한 셈이다.
장가 갈 때 사준 소형 아파트를 처가에 들어가면서
전세 끼고 중형 아파트로 개비해놓고
아이들 얼추 기를 때까지 재테크에 골몰할 눈치니
안팎이 다 생활력은 강한데
사돈이 전화라도 받으면 괜스레 미안해하고 죄송해야 하는 게 내 입장이었다.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영진이 예정일이 얼마 안 남았대요.
그래? 그렇게 되었구나.
거기야말로 내가 전화해 보았어야 할 터였다.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경황이 없었구나.
하기 좋고 듣기 편한 대사가 얼마든지 있는데
뚱딴지 같은 말이 먼저 나왔다.
죽은 사람도 있고 태어난 사람도 있고. 그렇구나.
딸은 잠시 침묵하였다.
해가 산마루에 딱 닿았다.
이제 눈에 보일 정도로 가라앉을 것이다.
거실의 시계는 여전히 죽어있는 상태이다.
힘드세요? 딸의 음성이 낮게 깔렸다.
힘든 면도 있고 편한 면도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편한 쪽으로 기울 테지.
이번에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한다.
홀몸도 아닌데 아버지 장례 치렀으니 영진이가 제일 힘들겠지.
건강은 괜찮냐?
제 말로는 괜찮대요.
해가 들어가고 있다.
그런데 엄마!
젊었을 때는 석양을 좋아했었다.
서울의 높이에 깔려 석양은 서해안이나 한강다리에나 남아있는 풍경화가 되었다.
시골에 이사오자 어려서부터 보던 소읍의 석양이 아직 살아있다.
엄마!
서울의 고층 아파트에서도 아래층 쪽에 사는 딸의 눈에는
뒷동네의 빨래라거나 앞동의 창고 같은 부엌 베란다가 보이겠지.
엄마!
건강만 괜찮으면 영진이 해산구원 좀 해주실 수 있어요?
잠시 무슨 의미인지 못 알아듣는다.
딸은 말문 터진 김에 한꺼번에 조곤조곤 사연을 설명한다.
아주 설득력 있는 어조로.
영진이 시어머니가 며느리 해산구원 해주실 양반은 아니잖아요.
요샌 친정어머니들도 다 그러지만요.
그래서 산후조리원에 가기로 결정했거든요.
그게 산모한테 제일 편하니까.
그런데 요샌 뉴스 보셨죠?
산후조리원에서 갓난애들 병올면서 죽기도 했던 거.
뉴스 안 보셨어요?
몰라.
해가 완전히 빠졌다.
어지간하면 이런 부탁 안 드리려고 했는데.
영진이 시어머니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영진이가 낳을 아이는 자기 손자다.
그 여자는 내가 개모인 것도 안다.
죄송해요, 엄마.
딸의 얼굴도 어른거린다.
제 동생 때문에 속이 타는 게 목소리에도 묻어나온다.
안타깝게도 나에겐 아무 생각도 없다.
아, 한 가지 생각난다.
전화를 한 건 아쉬운 사람이 거는 거다.
딸은 질기게 기다렸다.
생각해보자.
나는 정말 생각이 안 나서 한 소리인데
반승낙으로 받아들였는지
딸은 반색을 했다.
고마워요, 엄마.
엄마, 나는 도리질을 했다.
이제 머릿속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내가 애를 낳아본 적이 없잖냐.
산모가 어떤 건지 모르는데
해산구안이라니 막막하구나.
내 인생의 20년을 함께한 남자가
마치 한 줄기 바람처럼 빠져나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는데
엄마라니.
나는 누구의 엄마도 아니다.
알았어요.
딸은 전화를 끊었다.
다시는 전화하지 않을 것이다.
결혼한 지 몇 해 지날 때까지
아이가 생기지 않는 걸 이상하게 여길 겨를이 없었다.
한참 사춘기를 차례로 겪어야 하는 아이들 앞에서
덜컥 내 새끼가 생겨도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기는 했다.
서른 다섯 살 때였나.
세배차 들른 고모댁에서
고모부는 새해 덕담으로 아이 얘기를 꺼냈고
고모가 그 뒤를 받았다.
초산이 더 이상 늦으면 안 된다고.
이제 자리 잡혔으니
아들이건 딸이건 하나 낳아야지 않겠느냐고.
나이 먹은 남편은 개면적게 웃기만 했고
대답은 내 몫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엄마가 어떻게 애를 낳느냐고.
고모 내외는 내가 일부러 피임하는 줄 알고 정색을 했다.
앞으로도 계속 입시생 엄마일 텐데
때 놓치지 말고 후회하지 말라고.
생기는 대로 낳던 옛날에는
맞딸이나 맏며느리와 비슷한 때까지 낳았지만
그래도 마흔이면 마감이라고.
생겨야 낳지.
내가 애 못 낳는 여자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남편이야.
세식이나 증거가 있으니까
불임 사유라면 당연히 내 쪽에 있을 터였다.
제취로 왔으니까 망정이지
처녀총각 결혼이었으면 꽤나 스트레스를 받을 뻔하였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남편이 불임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은
결혼 때에도 말 안 했고
헐신 후에 내가 알게 된 것도
그의 입을 통해서는 아니었다.
내가 남편과의 잠자리를 거부한 건
첫 딸이 낳은 아이를 본 이후였다.
그러니 그도 내가 진상을 안다는 걸 짐작하였을 것이다.
허나 죽을 때까지 말은 안 하였다.
알면 그만이지
구태여 안 나오는 말을 왜 하랴
그런 마음이었었나 보다.
남편은 딱 제 새끼들 뒤치다꺼리 끝난 후에
내가 어느 남자의 아이도 임신할 수 없을 때에 죽었다.
죽을 때를 자기가 결정한 건 아니지만
너무 가정스러운 타이밍이다.
그런 너절한 속내를 까발리지 않고도
내가 딸이건 며느리건
해산바라지를 못해주는 이유를 납득시킬 방법은 없다.
내가 남편을 그리워하지 않으면서도
상실감에 허덕이는 까닥조차 이해시킬 수 없다.
그들로 하여금 편리할 대로 이해하게 하라
혹은 오해하게 하라
새벽닥이 길게 운다.
그게 들리니 깨어난 모양이다.
그러나 아직 자고 있는 내가 코를 곤다.
자신이 코 고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는 건 요즘에야 알았다.
다른 소리처럼 귀로 듣는 건 아닐 게다.
머리통 속에서 꽃장 내부의 청각기관으로 전해지는 소리다.
귀를 꽉 틀어막고 노래를 부르면
이상스레 웅웅거리는 제 목소리를 들을 때처럼
동네 닭들은 한 마리가 먼저 울면 하나씩 따라온다.
나는 더 이상 코를 골지 않는다.
눈만 감은 채다.
위장은 아직 잠자고 있다.
간밤에 자리에 들 때엔 몹시 배가 고팠었다.
움직이기 성가시기도 하고
집에 마땅히 먹을 것도 없어서 참고 잤다.
지금은 배가 고프지 않다.
되도록 위장이 늦게 깼으면 싶다.
방광은 새벽닥처럼 일찍 깬다.
화장실 불이 또 켜져 있다.
이번에도 천장등과 세면대 앞 두 개가 다.
아마 하나만 켜고 볼일 보았다가 나오면서
끈다는 게 나머지 등까지 켠 듯하다.
먹는 게 불규칙하니 화장실에서도 일이 수월치 않다.
방광이 탱탱한 채로 제대로 나오지 않아
새벽부터 목욕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뜨거운 물에 한참 잠겨 있으면
오줌이 수월하게 빠져나오곤 한다.
욕조에 물을 받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요 며칠 동안 잘못 걸린 전화조차 없었는데
하필 이런 시간에
영진이가 아이를 낳았나?
은근히 신경 쓰인다.
내 한몸 감당도 힘의 교훈판에
산모와 갓난의 수발을 하라니
말도 안 되는 수작이었지만
애 낳고 연락조차 안 한다면
더 싹수 없는 소행이라
조금씩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며칠만 더 지나면
내가 전화통을 집어들 판이다.
저 형태입니다.
욕조물을 끄고
욕실 불은 끄지도 못한 채
달려와 받은 전화에서
새어나오는 남자 음성은
그러나 영진이 신랑의 것이 아니다.
형태?
아, 고정사촌 동생이다.
고모의 환갑 때 본 게 마지막이니
7, 8년은 조이 지났다.
이 시간에 형태의 전화라면 뻔한 것이다.
누구인가?
고모?
고모부?
오랜만이네.
7, 8년은
내 외종 사촌 간의 거리만큼이나 까마득한데
고등학교 시절의 형태 얼굴은
성큼 눈앞에 다가왔다.
그 애가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자
고모는 중학교만 졸업하고
2년 동안 가사를 돕고 있던 나를
부랴부랴
서울의 야간 고등학교에 진학시켜 주었다.
18살이면 능히 동생 하나쯤 건사하면서
자취할 나이였다.
손바닥만한 음례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건
가슴속 깊이 숨겨 놓고
끝도 없는 대가족 살림에 휘말려 들어가던 나는
형태 덕분에 고등학교에도 가고
그 바닥에서 탈출도 하게 되었으므로
인류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형태보다
더 가슴 부풀게 상경하였지
고모 내외에게 야속한 마음은
털억만큼도 없었다.
조실부모하고 친척집에서 얹혀 자란 아이는
은혜에만 민감해야 살아남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고모부가?
이상스레 실감이 나지 않았다.
고모 나이는 아직 70 안쪽이지만
고모부는 70 넘어 어둠에 일 것이다.
언제?
어제네요.
밤 11시니까.
내일 아침에 발이 내겠구나.
네.
암흑의 병원입니다.
오늘 들러볼게.
의례적인 위로의 말은 끝내 못하였다.
아직 조금 더 사셔도 되는데.
라거나
고모는 괜찮으셔?
라거나
전화를 끊은 다음에야 생각난 대사이다.
진심은 아닌데
세상의 예의에 따라 적당하게 읊는 것이야말로
대사 아닌가.
나는 이제 세상에서
나에게 부여하는 배역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내가 맡고 싶은 인생의 배역이라면
나 자신의 이 역할 뿐이다.
아주 옛날부터도 노인의 죽음 앞에서는
적당한 말을 찾아내지 못해 끙끙거려야 했던 나였다.
나의 부모는
20대 후반 30대 초에 사망하였다.
살면서 배운 어떤 예절도
그 사실에 꽉 길이 막혀서
미사역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얼굴도 본 적 없는 남편의 전처가
33살에 죽었다는 말에
차라리 가슴이 뭉클하였다.
고등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직한 고모부는
남편의 은사였다.
허니깐
우리의 중매쟁이를 겸한 셈이다.
제자이자 조카 사위인 남편의 장례식에도 왔었다.
그는 아무 소리 없이
내 손을 꼭 잡고
오랫동안 놓지 않았다.
결혼식 때 꼭 한번 잡아본 고모부의 손이었는데
남편의 장례 때 다시 잡은 셈이었다.
나는 멍한 낯으로
그가 내 손을 놓아주기만을 기다렸다.
노인의 손이 왜 그리 덥게 꽉 틀어주는지
자기로서는 말 없는 위로의 표시였겠지만
아주 거북살스러웠다.
중년 여자는 늙은 남자와 살 닿는 것을 싫어한다.
아무리
그가 인척관계를 할지라도
그가 슬그머니 손을 놓은 것은
고모가 남들 안 듣게 중얼거린 후였다.
중매 잘못어서
하나뿐인 조카를 소생도 없는 중년 과부 만들었다고
20년 전에도 고모는 펄쩍 뛰기부터 하였다.
기가 막히게 자란 아이를
고르고 골라 제 뒷자리라니
고모가 되었건 이모가 되었건
기절초풍한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고모부가 이 생각 저 생각 다하여
고르고 고른 자리인 게
내 눈에는 훤히 보였다.
야간 여상을 뒤늦게 졸업하고
격리사원으로 나이가 먹어가던 나는
한창 나이 시절에도 고운 구석이 없었다.
점잖다거나
성실하다거나
속이 깊다는 소리는 맨날 들었다.
입이 무겁다.
조신하다.
품행이 방정하다.
기타 등등
그게 모두 사실이긴 하였으나
인물이 없다는 공통적인 의미까지 덧붙여진 칭찬이었다.
큼직하게 썰건 가늘게 채치건
무쪽은 무쪽이었다.
아 물론
내가 고모네의 딸이었다면
부잣집 만며느리감이라는 덕담을 들을 수도 있었겠지.
고모부 못지않게 나 자신도
세상 물정을 잘 알았으니
고모부가 고르고 골라 가져온 혼처라는 걸
왜 몰랐으랴.
이성을 되찾은 고모 역시
한발 늦게 현실을 직시하자
쓰라린 대사가 바뀌어졌다.
아이가 셋은 너무하다.
하나쯤이면 몰라도
셋이 무슨 소리냐고.
보남매를 둔 고모였지만
삼남매가 너무 많다고 말하는데
모수는 없었다.
전실자식 삼남매는 너무 많다는 게
내 입장에서 본 고모의 계산이었다.
나는 종종 고모의 입장에서 서보거나 했는데
시어른들을 모신 대가족살림에서 끼고 살기에는
친정조카 한 명이라도 너무 무거운 짐이었다.
외롭고 막막할 때에
친동생이나 하나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떠올리다가
문득 뒷걸음질 치듯 도리질을 하는 건
고모의 입장 때문이었다.
고모부의 사망 소식에
내가 결혼하던 당시의 정황이 되살아나자
그때보다 더 객관적으로 진상을 납득하였다.
고모네 집에서 비자기간이 만료되자
남편의 집으로 이민간 형국이었다.
세대주의 동거인에서 세대주의 처로 바뀐 건
그럴듯한 신분상승이었다.
불법 체류자에서 시민권자로 바뀐 것만큼이나
그 시민권이 어떤 종류의 시민권이었는지는
오랫동안 몰랐었다.
벌떡 일어났다.
쓰잘데 없는 생각하지 말자.
다 흘러간 물이다.
남편도 남편의 자식들도 상관없다.
나 역시 어디론가 흘러갈 테고
내가 흘러갈 골짜기가 어디건 개의치 않는다.
흐르는 물이 바다에서 만난다는 건 노래 가사이다.
땅에 스며들어 천년을 꿈꾸는 물도 있다.
지금은 영안실에 가야 한다.
보고 전화는 밤낮도 가리지 않는다.
당연히 조문객이 못 갈 시간이란 없다.
조문객들 꼬이지 않는 시간에 밤도둑처럼 다녀오자.
고모부의 제자들도 꽤 올 테고
그들은 구태현 남편의 친구가 아닐지라도
그 바닥 사람들이다.
나를 보면 상가의 입반찬거리 한 가지는 늘겠지.
암흑의 미망이니 선생님 초족하잖아.
고등학교 때 세배 가서 낯선 어린애 봤을 땐
누가 친구 부인 될 줄 알았나?
당사자들도 그리 얽힐 줄은 상상도 못했겠지.
어려서부터 순애 터졌더구먼.
그러니 남이 낳은 애 셋을 별 탈 없이 길러 내놓았지.
누구와 누구가 만나건 비슷한 이야기가 오갈 것이다.
음성도 여느 때보다 낮을 것이다.
공은 공대로 가고 죄는 죄는 죄는 지은 대로 간다는데
자식들 다 키워 보내고 신혼처럼 오붓이 살아볼 판에
훌쩍 먼저 가?
그러게 말이야.
재수시 공 닦은 보람이 없어졌어.
몹쓸 친구지.
가고 싶어서 가는 사람이 어딨나.
죽는 건 죄가 아니잖아.
자네 모르는구먼.
그들은 급기야 아주 낮은 소리로 볼륨을 낮출 것이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60년 이상 이 풍진 세월을 살아낸 사람들 특유의 언행을 아는가?
그들은 아주 복잡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이것도 이해하고 저것도 알만하다는 듯이 머리통을 끄덕거릴 것이다.
가장 천연스럽고 점잖은 사람들이 가증스러움.
나 역시 평생도록 점잖고 천연스러운 사람이란 소리를 들어왔으니
그들의 문화를 잘 안다.
불법 체류자건 2등 시민이건
자기가 몸담고 있는 세상의 질서에 순응하려 드니까
그들보다 더 잘한다.
이해한다.
사람이란 진실로 이해하는 대상이라야 가증스러운 점까지 간파할 수 있는 법이다.
내가 죽은 남편을 알고 이해하고 거기다 덧붙여서 동정까지 하면서도
가증스러워 잠 못 이룬 밤이 그의 생전에 이미 수북하건만
그의 죽음과 더불어 모든 것을 잊어버리려고 몸부림치는 것을 누가 납득할꼬
아주 어려서 이미 알고 있었다.
모든 흰 우애락의 결말은 순순히 잊어야만 해피엔딩이라고.
너무 일찍 알았다.
해피엔딩이라.
콩주가 시집가서 잘 살았다거나 흥부가 부자되어 잘 살았다는 해피엔딩은 말고
해피도 모르고 엔딩이 무슨 뜻인지 모를 때에
나는 이미 엔딩이 죽음이라는 걸 알았다.
해피엔딩이 복받은 죽음이라는 것도 유추해보니 그렇다는 말이다.
옛날 옛적의 할머니는 나한테 옛날 얘기를 많이 해주셨다.
언제나 옛날 옛적으로 시작되었다.
시집가서 잘 산 사람이건 부자되어 잘 산 사람이건
할머니가 만들어 붙이는 후렴은 꼭 같았다.
그래서 아들딸 많이 낳고 오래오래 살다가 엊그저께 죽었단다.
할머니도 거기 가서 떡 한 점 먹고 왔다.
꼭 같은 얘기를 사흘 전에 해도 엊그저께 죽은 거고
1년 후에 다시 해도 엊그저께 떡 한 점 먹을 터였다.
할머니의 해피엔딩은 그러니까 행복한 장례식이었다.
행복한 장례식의 필수 조건은 오래오래 살고
아들딸 많이 낳고 장례식에 떡 한 점 문상객에게 대접할 수 있을 것.
할머니 품을 파고들 적의 내 나이는 잊었지만
할머니는 그 당시에 지금 내 나이인 50 안팎이었다.
그리고 할머니의 행복한 장례식 혹은 해피엔딩에 관한 소견은
지금 나에게도 선망의 대상이다.
유자 생료하고 조문객들 대접하고
좋다.
고모부는 행복한 장례식을 거쳐서 땅에 묻힐 것이다.
남편 역시 그렇게 따지면 아주 행복한 장례식을 치른 셈 아닌가.
70도 좋은 나이이고 60도 억울한 나이는 아니다.
80, 90까지 살아도 유자 생료 따위는 물 건너간 수작이고
조문객에게 떡 한 점은 고사하고
조문객이 있을지 없을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다.
좋다.
좋다고.
냉장고에 남은 마지막 우유 한 잔을 마시고
대충 덮어쓴 채 현관을 나섰다.
고모부의 해피엔딩을 축하하기 위하여 새벽 바람을 가르고 갈 참이다.
불쌍한 처조카를 7살 적부터 키워 시집까지 보내준 은인의 마지막 길을
나 역시 축하해야 하지 않겠는가.
동쪽 하늘이 벌겨졌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쪽 산마루 위를 떠도는 구름이 타오르는 거였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면 새벽 노을도 없다.
이 동네에서는 날이 굳지 않는 한 매일 일출을 볼 수 있다.
그 시간만은 혼자 산다는 것이 더 없이 만족스럽다.
아무하고도 나누지 않는 새벽이 거의 행복하기까지 하다.
혼자만의 밥상은 누추하고 혼자 보는 텔레비전은 정신병자 같은데
혼자 맞이하는 태양은 어찌 그리 완벽한가.
햇뜨는 시각에 서울을 향해 출발 한다는 게 끔찍한 출근 시간대에
갇힌다는 건 염두에 없었더랬다.
40킬로가 넘는 거리라지만 꼬박 2시간 걸렸다.
사부인 아니세요 녹초가 되어 주차장에 내려 서는데
반색을 하는 음성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영진이의 시어머니 였다.
덜크덕거리며 자기 딴에는 달려오는데 제자리 뛰게 하는 형국인 뚱뚱한
중년여자.
멀리서 일찍 오셨네요.
고모부의 초상에 이이가 왜 바보같은 낯을 짓다가 아 불사 낭패하였다.
상가에 온다고 차려입은 검은옷이야 아무날에나 입을 수 있는 옷이지만
이이의 말투로 미루어 영진이가 아이를 낳았나보다는 의심이 점점
짙어졌다.
길이 어찌나 막혀던지요.
그럼요.
찬찬히 오시지 마음이 급하셔서 풍채 좋은 사돈은 몸피 얄팍한
나를 끌어안듯 감싼다.
황당하다.
상가에 왔다는 말을 내놓을 수는 없다.
산모가 건강하냐 아들이냐 딸이냐 아무 말도 물어보기 고약한 상황
이다.
도대체 이 병원에서 몸을 풀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던 터다.
어서 가십시다.
양가 사돈이 만나면 신랑측에서 적극적으로 주인노릇을 해야한다는
세상의 관습이 그나마 다행스럽다.
나는 따라만 간다.
아니 떠밀려간다.
평생 그랬듯이 상황에 끌려간다.
아이가 커서 산모가 좀 고생했다 지요.
무사히 낳았으니까 그게 더 낫지요.
태어날 때 덩치 좀 있는 아이가 기르기는 수월해요.
접받은 힘이 우선 다르니까요.
사돈은 자기가 떠드는 걸 좋아하지 남의 말을 듣는 사람이 아니다.
그것마저 이 경우에는 다행이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멍하니 서 있다.
더군다나 사내에는 큰 게 낫지요.
먼저 타세요.
엘리베이터에 밀려 들어간다.
사돈은 7층을 꾹 누른다.
내가 가려고 했던 영안실은 지하층 이다.
양쪽 다 들여다봐야 할 경우라면 산부인과가 우선이어야 한다.
우연히 사돈을 만나 체면 치료할 계기가 생긴 것도 요행이다.
삼남매 중 누구건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이 연락했다고 여길 것이다.
수다스런 사돈 덕분에 알 거 다 알았으니 낭패 볼 일도 없다.
그런데도 계단에서 헛발짚은 듯 고약한 느낌은 또 무엇일까.
엘리베이터가 덜컥 멎었다.
문이 열리자 바로 앞에 화장실 쪽을 일러주는 표시판이 있다.
먼저 들어가시지요.
아주 침착하게 사돈을 바라보았다.
먼 길 왔다니 들러 가야겠기에.
참 몇 호실이었지요?
7,007호랍니다.
다녀오세요.
여자들은 나이 먹으면 아이고 저도 주책이지 사부인한테 별소리를 다 안 해요.
제가 잘 그렇다는 얘기지요.
분명히 나보다 더 늙었을 여자.
아이를 셋이나 낳았으니 아래가 헐거울 여자.
그 여자 사돈은 호호 면구스러운 척 웃으며 복도 저 견으로 길을 잡았다.
화장실에 들어가자 찬물을 틀어놓고 손을 오래 걸려 씻었다.
여자들은 나이 먹으면 그녀가 급히 끄는 뒷말을 마저 해도 주책이긴 마찬가지다.
원래 성질이 그런 걸 어쩌겠는가.
몇 번 대면한 일도 없지만 들리는 소리에 미루어 짐작하면 별 악의도 없이 툭툭 내어 뱉는 소리로 타인의 심장을 핥기는 줄도 모르는 사람인 듯하다.
게다가 생각 없는 사람들이 항용 그러하듯 툭툭 내어 뱉는 소리라는 것도 제 마음에서 나온 말이라기보다 세상에 떠도는 타인의 말을 차용하는 게 대부분이다.
거울 속에 내 얼굴은 핏기 없이 까칠하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얼빠진 모습이다.
일곱 살 때 고모네 집에 처음 가서 도구만이 앉아 있을 때처럼 막막하다.
내가 왜 어떻게 여기까지 와 있는가.
화장실에 아줌마들이 들어왔다.
나는 수돗물을 끄고 손을 말렸다.
그들이 들어간 화장실 칸에서 오줌 누는 소리가 들렸다.
7705실 문을 열자 병실 안에 자매 얼굴이 한꺼번에 내 쪽을 향한다.
영진이는 누워있고 큰딸인 영화는 서있다.
2인용 병실의 옆자리는 비어있고 사도는 보이지 않는다.
자매의 얼굴에 겹쳐지는 기억은 내가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데리고 나왔던 자매의 표정이다.
14살, 8살짜리의 썬팅한 듯 표정관리된 얼굴.
사부인은 어디 가셨니?
연극에 왜 엑스트라가 필요한지 실감한다.
소독이라도 무방하다.
애기 보러 가셨어요.
큰애가 대답하며 내게 의자를 밀어준다.
자기는 빈 침대에 앉는다.
고생했구나.
나는 영진이의 얼굴을 살피며 의자에 앉는다.
화장기 없는 산모의 얼굴은 부석부석하다.
그런데도 눈부시게 아름답다.
산모처럼 예쁜 여자는 다시 없다고 하더니만
내 입에선 생전 처음으로 대사 아닌 나의 말이 튀어나왔다.
너 처음 보던 때의 그 8살짜리가 아기를 낳을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냐?
영화는 표정이 굳어졌다.
나는 빙글에 웃었다.
산모라서 일까?
영진은 다시 비시시 따라 웃었다.
내가 참 예쁜 애였지.
너 닮았으면 아기도 예쁘겠다.
진심으로 할 수 있는 말과 해야 할 말을 다 하자 입을 다물었다.
때마쳐 사돈이 돌아왔다.
아기가 아주 밤톨 같아요.
또랑또랑한 게 꼭 제 애비 갓 낳았을 때
나는 그저 웃는데
영화가 사뭇 분지르듯이 나에게 말했다.
아침 안 잡숫고 오셨죠?
저하고 같이 가요.
저도 안 먹었어요.
영화는 핸드백을 들고 일어섰다.
아직 내 위장은 깨어나지 않았다.
그렇거세요.
영진이도 눈빛으로 나를 밀어내듯 말했다.
나가시는 길에 아기도 보세요.
그렇게 예쁜 아기는 처음 봤어요.
사돈은 계속 아이 타령이다.
그럼 나가야 될 상황인 듯하여 영화를 따라 나섰다.
어차피 오래 머물고 싶은 자리도 아니었다.
고약한 늙은이 같은 일하고
복도에서 영화가 씹어 뱉듯 중얼거렸다.
누가?
몰라도 돼요.
몰라도 되는 걸 왜 내 앞에서 발설한담?
신생아실이 어디냐?
아기나 보고 갈란다.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는 영화를 제지하였다.
구내식당 가서 뭐 좀 먹어요.
저도 배고파요.
나는 상가에 가면 되는데.
거기 가서 한술 뜨는 게 속 복잡한 듯한 낯을 한 영화와 마주 앉아 숟가락질하는 것보다 편할 텐데.
나는 속이 안 좋다.
결국 내가 우긴 대로 신생아실 쪽으로 갔다.
우리는 복도에서 유리창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무슨 아이가 그렇게 많은지.
영화가 몇째 줄에 몇번째 아이라고 손으로 가리키기까지 하였으나
내 눈에는 그 아이가 다 그 아이가 닿았다.
건성 끄덕이고 건성 예쁘다고 말했다.
사돈 만화님 말이에요.
엄마 오기 전까지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 아세요?
영화의 음성은 들릴랑 말랑 하였다.
고약한 늙은이라며?
몰라도 된다며?
말하지 마라.
내 음성도 비슷하게 낮았다.
결혼 초에 영진이는 울고 불고 친정에 왔었다.
그 고약한 늙은이가 무슨 말 끝에 실수한 게 새색시의 가슴을 찢어밝여서였다.
사위사랑은 장모라는데.
개모 장모라는 게 트집의 발단이었다.
그걸 말이랍시고 내게 옮기는 영진이가 더욱 한심했었다.
그때 하고 싶었던 말을 이제야 영화에게 하였다.
굳은소리 하는 사람은 고약한 거지만 굳은소리 옮기는 사람은 모자란 거다.
남편이 재혼 전에 불임수술을 하였다는 말을 내게 옮겨준 사람은 남편의 친구 부인이었다.
나도 그러려니 짐작을 한 무렵이었으나 남의 입을 빌려 들을 말은 차마 아니었다.
그 모자란 옆엔데는 남편이 전처가 살아있을 때,
그러니까 아이 셋 낳고 그 끝에 시술한 게 아니라
전처 죽고 2년을 아이들 데리고 혼자 살다가
도리없이 재혼할 때에 정관수술을 받은 거라는 사실까지 일러주었다.
고약한 늙은이라면 나도 하나 안다.
알았었다.
누구요?
너네 아버지.
우리의 시선이 마주쳤다.
무슨 말씀이세요?
얘기 옮기고 싶진 않다.
내가 모자란 옆엔데까지 겸할 순 없구나.
어제까지도 태아였을 아이들이 유리창 너머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살지는 모르나,
그들 각각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큼씩 될지는 모르나,
언젠가는 틀림없이 다른 형태로 눕게 될 아기들.
태어날 수도 있던 나의 아이를 향한 그리움은 이제 접어들 때가 되었다.
그리움에도 생명이 있는 법.
생명 있는 모든 것은
잉퇴되고 태어나서
고통스럽고
슬프고
기쁘고
즐겁다가
죽는 것.
시간의 집
어떤가요?
다 읽고 나서
맨 먼저 드는 감상이
이 사람 참 짠하다 였습니다.
마음이 참 안 좋아요.
이 사람에게 자신의 친자식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저도 모르게 들었습니다.
비록 그 자식들이 엄마의 속을 썩이고 말썽 피우는 아이들이었더라도
지금처럼 낳지도 않은 자식을 그리워하며 사무친 외로움을 혼자 감당하진 않았을 텐데.
그렇죠?
저는 이 여자의 인생이 너무 짠하고 마음 아프게 느껴져서
저라도 위로를 건네고 싶을 지경입니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게 있는데요.
우리 사회는 아직도 자기 피부치가 아니면 아무리 살갑게 대하고
친가족처럼 대해준다고 하더라도
그건 모두 그들의 시각일 뿐
당사자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식처럼 길러주신 고모부와 고모라 할지라도
남의 자식
남의 부모라는 한계는 엄연하다는 게 현실이라는 깨달음이죠.
자기 자식이라면 못생겼다고 제주자리에 딸을 들이밀까요?
그것도 아이가 셋이나 있는 집에?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죠.
여러분이라면 그렇게 하실 수 있을까요?
내 딸이 얼굴이 못났으니 아무나 대충 괜찮다 싶은 남자에게 보내겠습니까?
절대 아니죠.
적어도 저는 아닙니다.
차라리 혼자 싱글로 멋지게 살게 할지라도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아요.
백번 양보해서 제가 알지 못하는 사정이 그들에게 있었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래도 키워주신 공이 있어서 더는 뭐라고 탓하진 않겠습니다.
키워준 공이 작진 않으니 이 정도로 진정해야겠죠.
더 나쁜 사람은 남편이에요.
결과적으로 보면 남편이란 사람은 자기 아이들 건사하고 키워줄 부모를 구한 거였습니다.
자기 자식들 키우는데 방해가 될까봐 불임수술을 받았다니.
게다가 그 사실을 아내에게는 입도 뻥끗하지 않았습니다.
죽을 때까지요.
이런 나쁜
남편은 아내가 가질 수 있었을 미래의 행복을 잔인하게도 빼앗은 겁니다.
그러고서 자기 자식들 다 결혼시키고 혼자 죽어버리면 자기 할 일 다 했으니 편안한가요?
뭐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그건 모르겠습니다만
내가 화가 나서 짜증이 다 납니다.
마지막에 병원에서 영진의 아기를 볼 때에서야
자신에게서 태어났을지도 모를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내려놓는 장면에서는
짠하다 못해 슬픈 엔딩을 보는 듯 눈물이 났습니다.
그 막연하고 구체적인 형태를 지닌 그리움
자신의 의지로서가 아니라 타인에 의해 끊어져 버린 행복의 뒷모습을
이제는 걷어들여야만 한다는 걸 받아들이는 그녀의 모습이 애처롭기만 합니다.
저기 새롭게 태어난 생명이 그녀에게 그 그리움을 대체할 무언가를 주게 될까요?
지금까지 윤명혜 작가의 시간의 집을 읽어드렸습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고요.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