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비색 천하제일" 우리나라에는 어떤 고려 시대 유물이 남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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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는 어떤 고려 시대 유물이 남아있을까?
그럼 역사돋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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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역서 돋보기입니다 최근
고려 거한 전쟁이 인기를 끌면서
덩달아 고려 시대의 역사도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참
반가운 현상이지만 안타깝게도 고려의
수도가 지금의 개성이 있고 그
중심지가 대부분 한 반도 북부
지방이다 보니까 백제 신라 조선과는
다르게 고려의 흔적을 우리 눈으로
보고 체험해 본 경험이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게 고려가 다른 우리나라의
역사에 비해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생경한 이유일 텐데 그렇다고 남한의
고려시대 유물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랍니다 남한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유물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강릉에는 명관이라는 객사가 있습니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려시대 관화
건물인데요 오늘날 이명관 복원한
것이지만 그 정문인 산문만은 그대로
전해지고 있어 국보 51위에
지정되었고 이명관 산문 물류에 관려
있는 명관이라는 현판은 공민왕이 직접
쓴 공민왕의 친필이니다 보의 구조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독특한 구조로
띄고 있죠 지금까지 전해지는 이영관의
산문은 그저 문위기에 온전한
건축이라고 볼 순 없지만 온전한
건축을 소개해 해드리자면 안동에 있는
봉정사의 극락전과 영주에 있는
부석사의 무량수전이 있습니다 둘 모두
정확한 창관 년대는 알 수 없지만 원
간섭기 이전인 것만은 확실하답니다
안동의 봉정사 영주의 부석사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지정되어
있죠 현재 학자들은 안동 봉정사의
극락전이 영주의 부석사 무량
수준보다는 더 오래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래서 봉정사 극락전은 남한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이랍니다
안동의 봉정사 극락전은 국부
15호이며 전문가들만 하는 봉정사
극락전에 백미가 있으니 바로 극락전에
작게 그려져 있는 복화 아입니다이
복화은 다른 건축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그림으로 고구레 박화 있만
확인된다고 합니다 즉 고구려 양식을
반영했다는 뜻입니다 영주에 있는
부석사의 무량 수준이야 말할 것도
없이 가장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건축물이자 무량 수전은 미술 사학자
건축 학자들이 이견 없이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 건축물로 뽑는답니다 고체
수능 미술 사학자 무량 수전에 대해
이렇게 평론 했는데요 멀찍이서
바라봐도 가까이서 쓰다듬어 봐도 무량
수준은 의젓 타고도 너그러운 재택이
근시안적인 신경질이 거드름이 없다
무량 수전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지체와 말로 석구라 건축이나 불국사
돌계단의 구조와 함께 우리 건축이
지니는 참멋 즉 조상들의 안목과 그
미덕이 어떠하다는 실증을 보여주는
본보기라 할 수밖에 없다 부석사의
무량 수전은 국보 18호 있니다이
외에도 고려시대 건축들을 보자면 충남
예산 수덕사는 절의 대웅전 또한
고려시대 때 만들어졌습니다 국부
49인 수덕사 대웅전은 기둥과 기둥
사이가 유난히 넓어 시원스러운
맛을내는 건축물인데 유용준 교수는
수덕사대 대전에 대해 대웅전의 병만은
아무런 수식 없이 흰색과 노란색
단장으로 저 조용한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그것은 그림을 그리지
않음으로써 그린 것보다 더 큰 그림
효과를 얻어낸 것이다 더욱이
가로세로의면 분할이 가지런한 가운데
넓고 좁은 리듬이 들어가 있고 둥근
나무와 편편하게 다듬은 나무가
엇갈리면서 이루어낸 변주는 우리의
눈맛을 더 없이 즐겁게 해준다
그리하여 수덕사를 답사했을 때 내가
가장 오랜 시간 머무는 장소는 저
대웅전의 측면이 한 눈에 들어오는
오른쪽 꽃밭 한 귀퉁이로 되어
있다라고 면사 하셨죠 마지막으로 경북
영천에 있는 은혜사 거조암이 영산전에
있습니다 국보 14호 있데요 거조암
은혜사 터 4km 정도 떨어진 암자
합니다 영산전은 고려 말이었던
1375년 우왕 직기 년도에
지어졌습니다 정면 일곱 칸짜리 건물로
높이에 비해 옆으로 퍼져 있는 안심사
통해 위압적이지 않고 포근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건축의 색상이
안락한 느낌을 더 해 주는데 영산전
특유의 색상은 마치 인간의 피부
살색과 닮아 있어 더 정감이 갑니다
이렇게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예산 수덕사 대웅전
영천의 은혜사 거주함 영산전이 남한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네 개의
건축물이니다 석조 조형물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려 이전 통일신라
시대에는 3층 석탑이 가장 기본이
되는 매뉴얼이 있습니다 고려 시대로
접어들면서는 3층만 고집하지 않고
여러 층의 다층탑이 만들어졌습니다
왜냐하면 과거 신라 고구려 백제
영토였던 지역에서는 그때의 전통이
계속 내려오고 있었기에 고려시대 석조
조형물은 지역성이 컸습니다 고그의
영향을 받은 곳에선 다각 다층 석탑이
만들어졌는데 가장 유명한 예시가
강원도 평창 월정사에 있는 8각 9층
석탑을 겁니다 국보 48호점 이런
고로의 다양한 석탑의 분화는 원나라
간섭계 때 원나라를 통해 들어온
밀교의 영향으로 더 화려해집니다
밀교는 원나라 시대에 유행했던 불교의
2단 종교입니다 밀교의 영향으로
화려함을 극대화하여 만든 석탑이 국보
86호 경천사지 10층 석탑입니다
국립 중한 박물관을 한 번이라도
다녀오신 분이라면이 석탑을 잊지
못하실 텐데요 로비 끝에 박물관의
천장에 닿을 정도로 우뚝 자리하고
있는 석탑이 바로 이 경천사지 10층
석탑입니다 우리나라 석탑은 거의
대부분 우리 산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화가 함으로 만드는데 경천사지
10층 석탑은 무려 대리석으로
만들었습니다 탑의 1층에는 고려말
권문 서적들이 원나라 황제와 황후였던
기 황우의 복을 빌기 위해 만들었다고
적어두었습니다 구한말 순종 황제 당시
일본 국내 대신 다나카 미스 아키가
석탑을 마음대로 해체한 후 일본으로
반출시 버렸습니다 내막을 알게 된
대한 멜 심보의 창가 인겸 영국
언론인이었던 어네스트 패들이 경천사지
10층 석탑의 무담 줄 문제로 공로나
있고 조선 총독부 측에서는 일본에
있는 경천사지 10층 석탑을 다시
가지고 왔습니다 데라우치 조선 총독은
조선의 문화제는 총독부에서 직접
관리하겠다며 일본 본국에서 터 가져온
곳이었죠 해방 후 경복궁의 전시에
두었다가 보존상의 문제로 인해 국립
중앙 박물관으로 옮긴 거랍니다
승탑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완벽한
조형성을 갖추었다고 평가받는 국부
54호 전남 구래의 연곡사 현각
선사탑 또한 고려시대의 승탑 있니다
또 하나 꼭 소개해 드리고 싶은
고려시대의 조형물은 국보 41호에
해당하는 용주 사제 철 당간 있니다
아마 청주분원 많이들 아실 텐데요
옛날에는 사찰마다 깃발을 달았습니다
당간이 그 깃발을 다던 기대입니다
당간은 주로 돌로 만드는데 청주에
있는 용두사지 철 당간은 철로
만들었죠 높이 무려 13m 단관으로
원래 철통 30개를 위로 이어붙인
형태였으나 지금은 20개만 남아
있습니다 지금 용주사는 없어졌고
오로지 이철 단가만 남아 있는데
용주사 자리는 오늘 날에 청주시의
번화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용주사
J 철당간 청주 도심 한복 판에 혼자
우뚝 솟아 있죠 용두사지 철 단간 중
세 번째 철 통에는이 철 단간 관련된
긁기가 새겨져 있습니다 용두사지 철
당간이 제작되었던 연대는 준풍 33년
2월 29일 그러니까 고려 4대 왕인
광종 13년 서기 926년이라고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고 당간을 세우게
된 과정과 그 의미 그리고 시주한
승려 및 기타 시주자의 명단까지
열거하고 있죠 불상을 살펴보자면 고려
초에는 철로 만든 철불이 유행했습니다
국립 중앙 박물관에 있는 하남
하사창동 철조 석과 열의 좌 상이
있는데 철불 중에는 가장 큰
철불이니다이 불상과 마찬가지로 국립
중한 박물 관에는 철조 비로자나 불자
상이 있는데 과거 법정 스님이이
철불의 사진 하나만 방에 걸어서
웠다고 하죠이 외에도 고려 초에는
강력했던 지방 호족들의 영향력으로
인해 독특한 불상들이 많았는데
대표적으로 논산 관촉사의 석조 관음
보살 입상 강릉 한송사지 석조 보살
좌상 평창 월정사 8각 구층 석탑의
석조 보살 좌상 등이 있습니다 원
간섭기 때는 역시 밀교의 영향으로
불쌍도 화려해지는데 국립 중앙
박물관의 소장 중인 윤왕좌 금동 보살
좌상 국립 춘찬 박물관에 있는 금동
관음 보살 좌상 호림 박물관의 소장
중인 금동 세지 보살 좌상 등이
있습니다 딱 봐도 원나라 간섭기
밀교가 지향했던 미술상인 어떤 건지
느껴지시죠 또 합천의 해인사에 가면
희랑대사의 초상 조각도 있습니다 희랑
대사는 무려 태조 왕건 때의 고승으로
고려시대 유일한 초상 조각이 이때
우리의 조사님들은 이렇게 생기셨다
겁니다 하지만 뭐 역시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미술이라 하면 고려 청자
고려 청자의 정확한 시작 시점은 알
수가 없지만 10세기 후반에서
11세기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미 고려에는 삼국의 독기 기술을
계승한 신라의 독기 문화가 축적되어
있었고 통일 신라부 바다를 통해
중국의 도자 문화가 전파되고 있었죠
11세기 고려 청자의 감화가 전부
중국과 가까운 서해안과 남해안 일 때
집중되고 있는 이유랍니다 청자 자체는
중국에서 시작했지만 중국 송나라가
내우 외환에 시달리면서 청자의
생산력이 떨어지자 고래는 자체적으로
청자를 개발해 내기 시작했고 고려만의
청자를 구분하기 위해 고려 청자라고
부르는 겁니다 고려가 자체적으로 지작
했던 고려 청자의 색깔은 중국인이
보기에도 처음 보는
빛깔이었다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 방문 후 고려의 풍속에
대해 저술한 선화 봉사 고려 도경회
고려 있는 고려 청자의 영롱하고
신비스러운이
빛가을르빵
비가 그친 뒤 겐 하늘색이란 뜻에
우후 청천이 하며 중국 송나라의 학자
태평 로인은 그의 저서 수중금 분야별
공예품의 최고 작을 꼽을 때 도자기
편에서는 고려 비색 천하 제일이라며
고려 청자를 꼽기도 했습니다
11세기에 12세기 고려 청자는 주로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 순청자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국부 94호이자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청자 참매 모양
병인데요 일제 강점기 때 어느 도굴
자가 고려 17대 왕인 인종의 무덤
장릉을 도굴 하다가이 청자를 꺼내고
조선 총독부에 팔아버렸습니다 인종의
무덤 출투 품 민이 아마 인종식이
고려를 방문했던 서긍이 받던 청자가
이런 류의 청자 있겠죠이 작품 하나만
봐도 과연 우리 조상은 곡선을 가장
예술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세삼 느끼게
해줍니다 고려 청자는 대몽 황진기
직전에 상감 기법을 고려 청자에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상감이 도자기
철제 금속판 목재 등에 원하는 그림을
음각으로 파내고 파낸 홈에 같은
재료를 박는 공의 기법으로
한국사에서는 고대 시절부터 발전시켜
온 기술이랍니다이 기법을 고려청자에
넣어 그림을 그리면서 상감 청자가
탄생하였고 고려 청자를 생산하던 도는
주로 남서 해안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최고급 청자를 만들어
내던 도요는 강진과 부안이 있다고
하죠 상감 청자의 그림으로는 주로
나무 꽃 오리 학 구름 수풀 등이
있습니다 귀족 문화의 정수라고 하지만
압도적인 화려함은 없죠 고유하고
적요하다 일종에 정중동의 미학이 특히
학을 많이 그러는데고 최소는 미술
사학자의 평론을 다시 한번 빌리자면
옷같이 푸르고 갓 맑은 살가 위에
검고 희의 수노인 상감의 아롱진
무늬들이 마치 흘러간 고려 문화의 꽃
그림자처럼 차가운 청자 살 뒤에서
파이이 숨을 쉬고 있다 학은 고려
사람의 마음속 하늘을 나는 하나의
꿈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고려 말
외구의 노략질이 심해지면서 해안가
있던 도료들이 쑥대 버치 되었고 고려
청자의 맥도 끊겼죠 이렇게 남한 땅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대표적인 유물들을
소개해 드렸는데 우리에게 고려시대
유물이 상대적으로 적은만큼 그만큼 또
귀하기에 여행 도중 고려시대 유물을
본다면 눈길 한번 더 보내 주시는 건
어떨까요 그럼 역서 돋보이 있습니다
저희 역서 돋보기가 멤버십 가입을
시작했습니다 멤버십 가입을 해 주신
분들 덕분에 영상 제작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상
재미있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