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의 죽음 이후 3세대들끼리의 더 꿀잼대결, 알려지지 않은 삼국지 후반부는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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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삼국지 후반부의 인물들
그럼 역사돋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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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역사 돋보기입니다 연이
덕에 엄청난 팬심을 형성하고 있는
삼국지라는 역사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삼국지 후반부에 대해선 잘
모르곤 합니다 삼국지의 주인공이 유비
조조 손권 제갈량에 보니 보통은
제갈량의 추풍오장원 즉 제갈량의
죽음을 끝으로 삼국지를 끝내죠 하지만
소설 연이도 그렇고 정사 삼국지도
그렇고 그 다음 페이즈가 있답니다
일종의 3세대들이 이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이 페이지의 삼국지도
대단히 재미있습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일반적으로 잘 알 지지 않은 삼국지
후반부의 주요 인물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먼저 위나라의
문항입니다 삼국지 전투력 순위를 매길
때 여포 관우 장비 등이 거론되는데
이때 문항을 왜 빼냐 그 말이 나올
정도로 문항 역시 전투력 최강
순위권에 속하는 장수입니다 재갈량
사후 위나라는 조씨 중심의 황족과
사마시 중심의 귀족 정권이
대립하였습니다 끝내 사마이 정변을
일으켜 황족 세력들을 몰아내고
꼭두각시 황제를 옹립한 뒤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하지만 반 3마이 세력은
위나라 지방에서 여전히 저항하여
구감과 문이 지금의 안후이성 화이난
시에 있는 수준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문항 역시 아버지와 함께 반란군의
동참했습니다 문항은 문흠의
아들이었습니다 문항은 10대 후반의
청년으로 몸이 상당히 거구였다 하며
전쟁의 최전선에서 선봉장이 되어
진압군을 격파하고 다녔습니다 여의
기병들 수천 명의 진압군 진영을 휘저
온 뒤 100여명 이상의 적을
죽였다고 하죠 진압군 사가는 사마의
아들 사마사 있는데 마사는 문항의
부대가 온다고 하면 항상 두려워
하였으며 심지어 문항의 부대가 온다는
소식에 너무 놀라 눈이 튀어나왔다고
합니다 연이가 아니라 실제 일어난
내용입니다 하지만 사마사 부대는
문항의 아버지 문흠의 측면을 공격해
문흠의 부대를 격파했습니다 문항이
급하게 문흠의 부대로 돌아가 아버지
문흠의 데리고 포위를 뚜르 뒤
도주했으며 문흠의 부대가 격파대
관구검 도망가 버리면서 반란 자체는
실패로 끝이 나죠 문 흠과 문왕은
이후 오나라로 망명을 갔습니다 2년
후 또 다른 반사마 세력이었던 재갈
탄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때 문흠
문항은 오나라 지원 병으로 제갈 탄과
합류했는데 제갈 탄과 문흠의 사이가
좋지 못해 제갈 탄이 무음을 죽이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아버지를 죽인
사람과 함께할 수 없다며 문항은
그대로 사마의 둘째 아들 사마소게
항복했던 주변에서 문항을 죽이라고
했지만 문항의 재능이 너무 아까워
사마소는 문항의 항복을 받아주었습니다
끝내 사마소의 아들 사마염이 위나라를
무너뜨리고 진나라를 건국했습니다
270년 북방의 유목 민족이었던
선비족의 선후 독발수기능이 진나라를
침공했습니다 진나라는 10년간이나
독발수기능의 나는 진압하지 못했는데
마지막 279 사마준 문항 마영이
투입되어 독발 수 개능이 나는
진압되었고 선비족 20만 명이 문항에
항복하였고 다음은 초하의 장원입니다
제갈량이 죽기 직전 유원 자신의
후계로 추천한 제갈량의 후계자입니다
장원은 유비가 익주로 들어올 때 작은
지방의 관리였습니다 유비는 장완의
게으름을 비난하며 재명 키려 했지만
장완의 능력을 알아본 제갈량이 유비를
말렸다고 합니다이 내전 이후 유비가
죽자 본격적으로 제갈량이 장원을
중용하는 시작하며 제갈량의 최측근이
되었습니다 제갈량이 북벌을 진행할 때
장화는 수도 성도에서 내정을 담당하며
든든한 후방에 되어 주었죠 재갈량 사
후 촉한이 1인자가 된 장화는 신하들
사이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며 황제와
대소 신료들을 통합시켜 냈습니다
제갈량이 부재에도 촉한의 내부 상황은
안정적이었고 옆동네처럼 황제 자리를
두고 권력 싸움을 하거나 황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갈량이 북벌의 뜻을 이어
가겠다며 강유에게 높은 관직을
재수하여 북벌을 총괄하도록 하였죠
장화는 위나라의 혼란 팀을 타 북벌을
단행하자 강요와 함께 촉한 위나라
국경 지역이었던 상용 급습 작전을
계획했지만 장환이 앓고 있던 병의
도저 상용 급습 작전은 흐지부지
무산되고 말았죠 다음은 초하의
의입니다 장원사 후 장완의 후계자였던
제갈량이 죽을 때 자신의 후계자를
장원으로 삼았고 장환 다음 후계자는
비의를 지목하기도 했습니다 예전
제갈량이 남만 정벌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제갈량이 우연히 비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제갈량은 비의의
식간에 감탄하여 이후 비를 적극
등용해 북벌을 참여할 때마다 옆에
두었습니다 244년 낙곡대전 당시
비는 왕평의 지원하며 대승리를
거두기도 하였죠 장원사 후 촉한의
1인자가 된 비이는 역시 강유를
내세워 북벌을 강력히 지원했는데 점차
비이은 자신의 재능을 제갈량이나
장원에 미치지 못한다며 북벌의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더군다나
촉한의 동맹국이었던 오나라에서 손건이
칼부림을 부리고 있던더라 도움을 받을
수 없었거든요 그럼에도 강유에게 비은
군사적 지원을 중단하지는 않았는데
북벌 준비를 시청하고자 한중 지역에
왔을 때 위나라가 보낸 자기에게
암살되고 말았습니다 다음은 위나라의
종회 있니다 종회의 아버지는 종 요로
조조를 모시던
신하였다 GI 있던 종회는 꽤나 젊은
나이에 중앙 관직에 진출했는데 처음엔
황족 세력에 가담하였다가 사마이
반란을 성공하자 바로 사마이 편에
붙습니다 반 사마이 세력 중 하나였던
제갈 탄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종회가
제갈탄의 난을 진압하면서 사마이
세력의 핵심으로 성장하죠 사마이 죽고
그의 장남 사마 사도 죽고 사망의
둘째 아들 사마소가 정권을 잡은 뒤
촉한 멸망전을 준비할 때 종회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했습니다 20만이
조그만 되는 대규모 병력이었다 촉한의
강유에게 막혀 버리고 만 겁니다
강유가 지키고 있는 검각 뚫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철수 하자니 본국의
사마소가 자기를 가만 안 냅둘 거고
진태 양난의 상황에서 미스터 마운틴
등에가 스천 지방의 그 험준한 산맥을
맨몸으로 넘어 검각 우회한 뒤 촉한의
수도로 지공에 끝내 황제 유산의
항복을 받아냈고 강의도 별수 없이
항복할 수밖에 없었고 종해 역시
촉한의 수도 성도로 들어옵니다 촉한을
다시 부활시켜야 한다는 사명의 강유는
종회와
등해린의 이게 가서 촉한 멸망은
등해부도 돌아가면 등해부도 차지할
것이며 당신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죠 넘어간
종회는 등애를 모함해 본국으로 압송
키도록 했죠 그리고 강유는 종회에게
촉한의 지방 부대와 연합해 오히려
위나라를 쳐서 마소를 끌어 내리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면서 현재 촉한의 수도
성도에 있는 사마시 세력에게 충성심이
강한 위나라 장소들로 점부 죽여
버리자고 하죠 수위 높은 제안에
종회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눈치를 챈
등애의 부하들이 선수를 쳤습니다
갑작스러 위나라 장수들의 반격에
종회와 강유는 당황하고 그들과 맞서
싸웠으나 종회와 강유 모두 이때
창칼이 찔리고 베어 전사했습니다이
사건이 종해 강유의 나뉘죠 참고로
종회의 모함을 받아 잡혀가고 있던
등에는 종회의 난이 진압되어 풀러
나야 했는데이 등의 공이 질 를 하고
있던 다른 장수가 등애를 살해했습니다
다음은 촉한의 환간 황호 있니다 촉한
멸망의 원흉이라고 할 수 있죠 장환
비에 이어 촉한의 1인자로 등극한
사람은 진지했고 환간 황우가 진지와
친했어 황우가 촉한의 최고 실권자가
친하던 것만으로 점점 자기 멋대로
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진지의
눈치를 최소하는 팠는데 진지가
사망하자 아자 황후의 횡포는 그게
지났습니다 황제 유선은 간신의 새치
혀에 놀아나며 황홀을 감싸 안았습니다
조정에서 중요한 관직을 받은 라면
황우게 무조건 뇌물을 바쳐야 했고
황우 비판하거나 비난하면 황우 바로
자기에게 뇌물을 준 사람으로 교체해
버렸습니다 이렇게 조정에서 황우 이게
줄을 된 간신들이 바글바글 되고
충언을 일삼는 이들은 조정에서
사라져가 버렸습니다 대장군이 있던
강유는 황제 유선에게 몇 번이고 황호
제거하라고 주장했지만 황제 유선은
오히려 강유를 말렸죠 그나마 황우도
강유를 모아 마로 할 때 황제 유선은
강요만 그은 지켜 주긴 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황우가 강유를 노리는
마당에 강요는 자신의 근거지였던 한
한중 지역이 있을뿐 수도였던 성도로
돌아갈 수가 없었고 이러한 중앙과
지방의 불통 문제가 촉한 멸망전
당시의 결정적인 악수로 작용했던 거죠
촉한 멸망전 당시 등애가 검각 우해
수도를 집공 있을 때도 등애 부대가
워낙 지쳐 있던 터라 수도 성도에서
조금만 저항하면 버틸 수가 있었습니다
강요가 수도 성도를 구원하러 오는
와중이었다 그러나 환관 황우가 황제
유선을 꼬득여 곧바로 항복해 버렸죠
다음은 오나라의 유한과 진나라의
양호입니다 촉한의 강유가 있었다면
오나라에는 육항이 있었죠 육상은
육손의 아들입니다 과거 이응 대전
당시 유비의 대군을 육손이 무찌른 뒤
육손은 형주의 담당자였던 육손 사후
육손의 아들 육항이 형주 지역을
담당했습니다 오나라는 손과 말년부터
꾸준히 황제 계승 분쟁으로 그리고
무능한 황제들의 집권으로 대단히
어수선했습니다 이런 내부적 혼란의
와중에도 오나라를 지켜낸이가 바로
육항이 있죠 위나라에서 이어진
진나라는 오나라의 향조를 지속적으로
공격했으나 언제나 유강에게 막힐
뿐이었습니다 그나마 진나라에서 유한을
상대할 수 있는 장수가 진나라의 양호
있죠 두 천재 지휘관들의 명승부로
272서 전투가 있습니다 전략들이
업치락 뒤치락하며 반전에 반전이
이어진 명대 결로 유명하죠 미운 정도
정의라고 둘은 금세 친구이자 적이
되었습니다 육항이 양호에 오나라에서
빚은 좋은 술를 보냈는데 양호의
부하들은 독이든 술일 수도 있다며
먹지 말라고 권유했으나 양호는 항은
그럴 장수가 아니라며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죠 반대로 육항이 감기에 걸렸을
때 양호가 약을 보내 빨리 쾌차 에서
다시 한번 붙어보자고 했답니다서 전투
2년 후인 274년 항은 48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죽기
전까지 항은 오나라 황제 손호게
오나라의 군대 개편 제도와 국경지대
방비 강화를 주장했다고 합니다 육항이
죽자 그의 벗이자 적이었던 양호는
크게 슬퍼했다고 합니다 육항이 죽은지
3년 후 277 양호도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삼국지 후반부의
인물들을 다뤄 봤는데 혹시 제가
다루지 않은 인물들이 있다면 댓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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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습니다 저희 역서 돋보기가 멤 버
가입을 시작했습니다 멤버십 가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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