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옥진 고고학 박사의 고고학 강좌 3강 | 홍산 옥기가 들려주는 환웅천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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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또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뭐냐하면 물론 화려한 채도 채색
토기들이 어 우하량 홍사 문화에서부터
많이 나옵니다 다만 이제 홍산문화
같은 경우는 이제 직접 그림을 그린
채도 그리고 하가점 하층 문화의
경우에는
최외동 여기에서 하가점 하층 문화
당시로 이제
넘어가면 여기서 중요시 되는 거 중에
제가 생각할 때 하나가 뭐냐하면
대부분의 이렇게 화려 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표지 유물은 세 가지
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바탕을 까만
색으로 칠하고 그다음에 하얀색과 붉은
색과 검정색으로 이용해 가지고 세
가지 색을 사용해서 문양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사실은 굳이 다른
색이 있는데 물론 눈에 확 띄고
그리고이 색깔 자체가 갖는 의미도
있겠지만 어이 삼족기 연관지어 생각을
해 볼 때이 시기에 되면 삼족기
비약적으로 발전을 하게 됩니다 이제
홍산문화에서 하가점 하층 시기로
넘어오면 우리가 고조선이 이야기하는
글 시대로 넘어오면 세 계로 된
삼족기 이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야
되는데 거기에 색깔까지도 세 가지
색을 섞어 가지고 이제 화려한 문양을
만들고 다리 세 개 달고 삼족기 같은
경우는 저 같은 경우는 그렇게 해석을
합니다 3이라는 숫자가 물론 이제
다리로 쓰였을 때 안정적이면서도 가장
효율적인 것이 다리가 세 개 달린
겁니다 그 최근에 이제 봄에 화분을
사러 가면 의외로 밑에 다리 세 개에
달린 화분들 많이 보실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에
이걸 사용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고 이쪽 부분은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이제 홍산문화에서
하가점 하측 문화로 넘어오면서 이제
아주 유사한 형태의 이제 토기 문양도
그대로 이제 전승이 되는 것을 보고
있고 그중에서도요 세 발다 달린
것들은 사실 이리도 문화 쪽에 영향을
받았다라는 연구도 있지만 그렇지만이
조기를 가지고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고
굉장히 많이 쓴 거는 하가점 하층
문화다 그래서 하가점 하층 문화의
표지 유물로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이제 문의와 상징 체계를 볼
수
있는데 아까 버클에서
말씀드렸다시피이 시기에는 기 그니까
딱 어떤 문양이라고 얘기할 수 없
그런 무늬들이 사실 이제 많이
나옵니다 홍산문화 시기부터 그 중에
이제 하나가 요런 문양인 홍산문화
당시 이제 대표 유물 중에 하나인
이제 빛처럼 생긴요 모양은 사실 렇게
간대로 자르면 좌우 대칭입니다 좌우
대칭이고 가운데 항상 이제 윗부분에
눈 모양의 동그라미가 있고 똑같이
해가 하층 문화로 나오면 이런 형태로
이제 정돈 돼서요
문양이 대표적 적이지 않지만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입니다 이게 좌우
대칭이고 여기에 이제 눈 같은 것이
있고 그래서 이런 문화들이 영향을
계속 주고 받아 가지고 나중에 상
문화식이 되면 도철문 발전하게
된다라는 것은 이미 이제 중국
학계에서도 인정을 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도철문 기원이
여기에서부터 왔다라고 얘기를 하고
있죠 근데 과연 그 도철문이 무엇을
표상을 한 것인가 저는 그거에 대해서
이제이
또 우리의 기록을 들어서 설명할 수
있다라고 봅니다 이게 보면 이제 구름
모양 구운 형 옷기기 때문에 이제
구름 모양이라는 옷인데 과연 왜 왜
하필 구름 모양일까 그 구름 모양이
뭘
뜻하기 그래서 보면 우리 문헌
기록에는 뭐냐하면 고기에 환인이 아들
환웅이 뭐 천하에 뜻을 두어서 인간
세상에 내려가고 싶다 이제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요 이제 단군
이야기인데 여기에서 뭐이 이야기에서
나오는게 뭐냐면 환인이 어디로 오냐는
위 태백을 내려다보고 인간이 잘 살
수 있는 그 살기 좋은 곳으로
내려왔다는 겁니다 근데 누굴 데려
오냐는 풍백 우사 운사 데리고 옵니다
풍백 우사 운사 거느리고 옵니다
그래서 최근에 이제 이제요 가자마
측문 전문이신 복교 수님 같은
경우에는 요 풍백 우사 운사 순서를
보고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시 된 가장
먼저 우선시 되는 거가 아마
바람이었을거다 그랬기 때문에 바람
풍자에 마백 brought 써서 풍
백이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라고 주장을
하시기도 합니다 이거와 대비되게 중국
쪽에서는 이제 비를 중시하는 하백
그리고 이제 개천 그 물을 중시하는
하백과 비 대비해서 아마 이쪽 지역
사람들은 이제 바람을 보고 바람의
움직임을 보고 이제 그이 기후도
측정하고 아니면 어떻게 될 것인가
예측도 하고 했기 때문에 풍백이 것을
가장 먼저 썼을 것이라고 하는데
어쨌든 이제 그거는 최근에 이제 아직
연구 결과가 나온 거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 이제 나오게 되면 다시 이제
소개를 드리고 일단은 이제 풍백과
우사와 은사를 거느리고 왔는데
그중에서 바람과 비와 구름 이것들이
사실이 셋 중에서 굳이 형상화할 수
있는 것을 따져라 했을 때 이제 구름
모양은 우리가 눈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에 구름형 오기를 이렇게 많이
만든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도 할 수
있습니다 그 이런 기후와 관련해서
이제이 마을 유적 그 홍산문화의
주거지 유적 뭐 하가점 하측 문화의
주거지 유적에서 사실은 가장 크게
학술적으로도 그다음에 대중 적으로도
특징이 지을 수 있는게 뭐냐면 사실은
동지의 일출 방향 혹은 동지의
기준점을 알았다는 겁니다 어 지금
촬영하고 있는 오늘이 사실은
2023년도 지금 12월 22일인데
오늘이 사실 동지라고 합니다 근데이
동지가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근데 여기서부터 이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시작점이 근데 동지가 농사
짓는 사람들 혹은이 시기에 중요시된
이유는이 동지 자체가 갖는 의미도
있겠지만이 기준점을 그러니까 사계절의
기준점을 잡는다는 것이 더 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이 자점 유적에 이제
마을 입구로 들어가는 길에 보면
여기가 이제 양 옆으로 담이 쌓여
있고 가운데로 가다 보면 가운데 가는
도중에 이렇게 왕눈이 표지석이
있습니다 요렇게 보면 근데 요거가
연구 연구 이제 당시에서 이제 연구를
해 보니까 이게 정확하게 오늘 동지에
당시의 동지에 해가 뜨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이게
근데 왜 중요하냐 해가 뜨는 방향과
해가 뜨는 시점이 왜 중요하냐면 어
지금도 그렇지만 이게 기준점을 잡고
그것에 의해서 이제 일상 생활을 하고
아니면 그것에 의해서 이제 시간
운용을 배분을 하고 운용한다 는 건
상당히 중요합니다 그리고이 동지로부터
시작을 해 가지고 낮의 길이와 밤의
길이를 잴 수 있다라는 건 뭐냐면
그만큼 하늘을 관측하고 천문을 관측할
수 있는 기술력이 있고 그거를
시간으로 쓸 수 있고 그리고 그거를
이용해서 다른 걸로 확장 해석할 수
있다라는 거를 보여 주기 때문에
동지의 일출이 거가 중요하게 되는
겁니다 홍산 문화에서는 거대 대형
이제 제사유적 두 가지가 있는데 이제
왼쪽 건을 는
동산치과 우하량 유적입니다 근데
보시면 여기는 위쪽의 북적입니다
이쪽은 아마 이쪽이 북쪽입니다 그래서
둘 중에는 사실 이제 천문 고고
통론이라는 책에 보면 이제 고대의
천문 관련 해석을 보면 사실 이렇게
이게 남북 방향으로 되어 있는게 천원
지방의 오리지널 형태라고 합니다
그래서 물론 이것도 이제 기준점을
잡아서 이제 이렇게 배치해 정확하게
이제 좌우로 배치해 했다라는 거는
분명이 시기에 관측을 할 수 있는
기술력이 있고 그리고 관측의 문제는
하루하루 관측한 것과 365일 관측한
것 그리고 그것이 쌓여서 몇 년이
되고 그러한 이제 데이터들이 모여서
이러 구조물들을 지을 수 있기 때문에
이거는 어 기술력으로는 최고라고 할
수 있다라는 것이죠 또 흔하게
알려지지 않는 유적 중에 이제 발라스
제사 유적이라는게 있는데이 제사
유적이 유적 도 물론 제사 유적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지금 그림엔 첨부하지
않지만 발라
산에서는 요식이 그 얼굴 모양과는
살짝 다른 좀 아랍계든지 이제 선이
굵고 그 얼굴이 이제 동글동글한 그런
이제
인물상이 하나가 출토가 됐습니다
그래서 발라사 제사 유적 같은
경우에도 그런 기술력이나 아니면
이거를 통해서 외부에 무조건 방어만
했던게 아니라 왜 우리랑 외모가
다르게 살았던 사람들이 이제 유물에서
나올 정도로 이렇게 활발한 교류가
이루었을 가능성을 사실은 발람선지자
유적에서 많이 이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아까 이제이 시기의 기술력에
대해서 조금 더 이제 얘기하자면 어
성자산 중심 지역 이게 성자산 이제
유적인데이 유적은 처음에는 그냥
산성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게 연구를
하면 할수록 여기에 현재 이제
우리나라 고인돌에서 보이는 것과 매우
유사한 형태의 의 이제 유적지 형태를
보이고 있다라는 겁니다 이제 중심
구역도 있고 물론 이제 사방의 구역이
있는데 그리고 여기에서도 정확하게
관측을 해서 입간 측경이라는 방법을
써 가지고 이제 관측을 해서이 위치를
배치를 했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쪽에
보면 어 특정 지역에
요렇게 곰 모양 곰 모양이라 하는데
곰 모양에 이제 바위가 있는데 이것을
이제 특정 방향에 이제 위치 났다라는
거
혹은이 안에서의 이제 덮개돌 덮개돌
위에 그 혈자리가 있습니다
이제 별자리를 이제 판 것처럼 그거는
현재 이제 한반도에 발견되는 고인돌의
덮개 돌하고 아주 유사한 그런 모양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이 시기부터
시작된 천문관측 유형 천문 관측
기술력과 그다음에 도을 이용해서
만드는 이제 건축물들 그리고 그 안에
에서 찾아지는 천원 지방의 사상이라는
아니면 돌
관련한 기로서 a 발전 방향 이런
것들은 현재까지도 우리나라 그
유물로서 유물 유적으로서 많이 남겨져
있습니다 뭐 대표적으로 강화도 그렇고
이거는 아까 말씀드리는 그 요양의
연주성 있니다 사실은요 강화도의
참성단 하고 요양 연주성 굉장히
흡사한 구조를 또 가지고 있습니다 뭐
아무리 인정 안 한다고 해도 기록에
보면 삼성을 이때 쌓았다 그 이전에
왜 쌓았나 당군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쌓았다는 얘기가 있고 요양
연주성 같은 경우도 뭐냐하면 이게
우리나라에서는 백암성 비정하는 분들이
많지만 사실 요길 보면 백암성 기록과
맞지 않는 전혀 맞지 않는 그 형태와
위치를 보이고
있습니다이 주변으로는 다 평하기
때문에요 바깥에서 도요 내부 성 안이
다 보여서 이게 전략적인 거점으로서의
성 역할은 하지 못하고 오히려이 성요
재단을 둘러싸고 있는 이제요 원형
재단 터를 보면 이것이 오히려 제사를
지내기 위한 천재를 지내기 위한
그니까 수도 인근의 그 재단 터를
만들어서 그니까 특정한 뭐 행사를
했다거나 하는 거에 더욱 부합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고 겉으로 보이는 형태도이 두 개는
상당히 유 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 요것도 역시 제 그 요양 연주성
모습 그리고 어 하나 더 붙이자면 그
우리나라는 천문대가 아직까지도 고대의
천문대가 아직도 명확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박석장
박사님께서 되게 이제 많이 말씀하시는
천문 관측의 전형이 렇게 남아 있는
우리에게 아직까지도 고스라니이 모든
형태들이 다 비슷하다라는 거죠 그
의미도 같고 거기에 시작점도 같고
그리고 뭘 하는 목적성도 같고 그래서
이것이 후대에 어떻게 발전이 됐냐
하면 사실은 어이 시기에도 최근
연구에는 하가점 하층 시기에 문자가
발견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이전에는
부호로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글자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그렇지만
이제 하나 둘씩 이제 고고학 발견
자료가 더 늘어나다 보면 아마 이제
그 데이터가 또 쌓이게 될 거고
그러면 그 우리의 기록에 있는 대로
그 이전에 훈민정음 이정의 뭐 가림토
가림다 글자 이런 거에 본을 따서
왔다라고 하듯이 분명히 이제 문자
책에도 연구가 될 수 있을 텐데
고대에서부터 천원 지방 혹은 하늘에
관련된 제사 뭐 이런 것들의 가장 어
후대에 있어서 함축적인 부분이
뭐냐하면 어 저는 사실 훈민정음
해례를든 들고 있습니다 그 해래 같은
경우는 여기에 민정을 왜 만들었는지
창제 원리가 분명하게 여기
천지지도 이게
우리는 글자를 만들었는데 그 이유를
왜 만들었느냐 거기에 만든
이유에서부터 천지 지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냥 고스라니 예전부터
예전부터 하늘의 제사를 지내던
민족이었어 사상을 발전시키고 그게
민정은 이제 왜 만든 이후에고 담겨
있고 그리고 또 하나 대표적인 걸
들자면 우리의 사상적인 측면 혹
우리의 문화적인 측면이 사실은 이러한
대에서부터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저 앞에 있는 거는 이제 그 9천년
전에 문화에서부터
사람 모양을 한 돌을 세워 놨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인물상들이 이제 쭉
나오는데 이제 가장 유한 우하량이나
뭐 초모 흥구 인물상 뭐 이런 것들이
이제 계속 나오는데 항상 유적 에
인물상들이 생각보다 많이 나온다는
겁니다 물론 이제 관련된 연구들을
계속 이제 해봐야이 인물상을 과연 왜
세웠을까라는 것도 이제 데이터화가
되겠지만 많은 유적지에서 어 인물상
사람을 표방한 인물상 등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이렇게 언뜻 보기에도 뭔가를
하고 있는듯한 인물상 아지 출토가
되는 거죠 이거는 아주 현대에 이제
조금 미술 작품이나 아니면 이제
희화화한 그런 석장승이 현재도
우리나라는 어 얼마 한 100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 입구에 장승이
이제서 있었고 지금 제주도에 가면
똑같이 하루방이서 있고 그런 식으로
이제 인물상과 비견될 만한 것들이
아직까지도 많이 이제 분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이 문화대 홍산
문화에서부터 비롯해서 그 이후 문화대
아지 인물 상항에 대해서 왜 그렇게
중요시 했고 특히나 이제이 시기에
이런 인물 상항을 세웠던 이유를
우리는 해석할 수 있다라고 저는
봅니다 중국에선 이런 해석을 사실은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이 인물상에
관해서 어 많은 이제 해석이 있었지만
그니까 도인이다 뭐 수련하는
도인이다까지 얘기를 했는데 사실
우리는 삼국 유사라는 원형의 그런
이제 자료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도
보면 환웅이 목표가 뭐였냐면 홍익
인간을 실천하기 위해서 뭐 이런 모든
일을 주관을 하였다 그래서 어떤 인간
뭐 홍익 인간을 위해서 근데 뭐 어떤
인간이냐 홍익 인간이다 혹은 뭐
인간이 세상에 널리 이롭게 하든
그것은 어쨌든 관심이 뭐였냐면 주요
관심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
대상에 인간이라는 것이 있었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결론을 짓자면 우리가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가 저 홍사
문화에 대해서 왜 자꾸 이야기를
하는가에 대해서 저는 이제 여러 가지
면에서이 부분에 있어서는 너무도 지금
현재까지 연관성이 있고 그리고 그
계통성 찾을 수 있고 하는 겁니다
지역적으로 볼 때도 여기요 지역 근데
최근에 홍산문화 연구를 보면 북경을
넘어선다고 얘기를 하고 있 있습니다
사실 근데 이제요 고조선의 영역이라는
부분은 아직까지도 뭐 천년 전에도
그랬지만 100년 전에도 그랬고
50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모든 학계에 이제 일관된
영토로 쓰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제
요쪽 부분이 우리 그 정치 체제가
우리와 사실은 굉장히 그 하나로
묶기는 고조선의
영역이다라고 얘기를 를 할 수 있고음
당시에이 당시에 이렇게 문화들을 구분
했습니다 근데 이거는 물론 이제 중국
쪽의 문화 부분인데 여기 보면
우리나라는 사실 중국에 비해서 이런
고고학이나 이런 역사
문화에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 그런
자료들이 많지 않다라는 걸 좀 보여
드리고 싶어서요 마지막 자료를 언급을
했습니다 그래서이 문화들이 사실은 어
어 하가점 하층 문화도 그렇고 이쪽에
고태산 문화도 그렇고이 인근의 쌍타
문화도 그렇고 당시에 상당히 활발한
교류 관계를 보일 수 있습니다
당시에도 몇 천 년 전에도 얘네들이
이제 교류가 있던 흔적들이 있는데
지금은 더 더더욱 이렇게 세계의
나라를 쪼개져서이 연구를 함께
융합해서 하지 않으면 결국엔 그냥
개별 연구로 다 끝나는 그런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서이 문화와 과연 우리 문화가 정말
그냥 딱 하나만 꼽아서 뭐가 과연
우리 문화였다 그리고 홍산문화를
우리가 왜 연구를 해야 되느냐 그
이후에 하가점 하층 문화를 우리가 왜
연구해야
되느냐라는 가장 큰 목적과 이유는
저는 사실 이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우리 역사 바로알기 그 사단 법인이
처음에 시작했을
때음 그때 했던 중에 그런게 있습니다
아 외국에서도 우리라는 얘기는 안
쓴다 우리라는 얘기를 하면이 그런
차이점을 강의를 많이 했습니다 근데
지금 한 20년 30년 지난 지금은
오히려 우리라는 말이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고 있습니다 물론 일부
이제 뭐 스포츠 스타가 그랬던 것도
있지만 점차이 우리가 표방했던이
역사와 문화와 사상이 사실은 이제
보편적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먹히는
거라는 거죠 그래서 홍산 문화에서부터
시작된 그 이전 문화에서부터 시작된
그 울타리의 개념에서부터 시작된
우리라는 개념은 어 굉장히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거고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가 더욱 발전시키고
우리의 정체성을 바로하기 위해서이
부분에 있어서 관련 해당 문화 자체의
고고학 자료나 이제 역사 자료도
연구를 해야 되고 그 이후에 이제한
반도 내에 있는 어 뭐 고성의 문합이
유적 같은 거 거기에 나온 옥
귀걸이나 면상도 상당히 유사한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좀 통합적으로
여러 여러 많은 학자들이 같이 함께
연구를 할 때이 문화에 대해서 조금
더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앞으로이
문화를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고 어
과연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좀 도움이 될
거라고 이제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긴 시간이지만
과연이 문화가 표방하고자 하는 건
무엇이었느냐
그리고 굳이 왜 단군이 홍익
인간이라는 거를 이념 삼아서
나타냈는지 고고학 자료를 보다 보면
어 이거이이 그런 이유들 때문에 홍익
인간을 그 국가 이념으로
삼아서 나라를 세웠 그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여기까지입니다
[음악]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