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미래를 예언한 사명대사 | 사명대사 예언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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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 #예언 #불가사
사명대사(1544~1610)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모집하여 나라를 구한 승려이다. 또한 일본에 포로로 끌려간 백성 수천을 조선으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이에 사명대사는 임진왜란의 공신으로 이순신, 권율과 함께 구국의 화신으로 칭해지는데... 이 때문에 사명대사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도술을 부렸다는 이야기가 유별나게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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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위기마다 땀 흘리는 비석 사명대사 표충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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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ic/Song Title: Ambient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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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모집하여 나라를
구한 승려이다 또한 일본의 포로로
끌려간 백성수천을 조선으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이에 사명대사는
임진왜란의 공신으로 이순신 권율과
함께
구국의 화신으로 친해지는데이 때문에
사명대사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도수를 부렸다는 이야기가 유별나게
많은데 사명대사는
경상남도 밀양에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15살 때 어머니를
잃고 이듬해 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직지사로 들어가 승려가 된다 그 후
18살의 나이에 승과에 합격하였고
특히 시문의 능에
당시 유학자들과도 교류했다고 한다
32세에는 선종의 본거지인
봉은사 주지로 천거되는데이는 승려로서
최고의 자리였다 하지만
사명대사는이를 사양하고
요양산에 있는
서산대사를 찾아가 제 되었다 그 후
여러 산을 돌아다니며 수행의
정치나였다 그리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는데 그의 나이
49세였다
승병이 되어 나라를 지키자는
서산대사의 부름에 사명대사는 의승병을
모으기 시작했고
여러 스님들에게 지금 이처럼 어렵고
위태로울 때를 만나 어찌 가만히
있겠느냐라고 설득하며
승경을 모았다고 한다 그리고
1593년 1월
의승도 대장이 되어
승병 2000명을 이끌고 조명 연합군
의병과 함께
평양성 전투에 참가하게 된다
평양성 전투는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
아주 중요한 전투였는데
승병들은
평양성 탈환을 선도하는 역할을 담당해
평양성을 되찾으며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여기서 사명대사가 이끄는
의승군은 한 사람의 희생도 없이
젖병 2000여명을 죽였다고 한다
이런
꽤 신비한 능력에 대해 일본인들이
기록한 있다 사명대사가 이끄는
의승군은
단 한 사람도 죽지 않고 우리의 수천
군사를 배웠으므로이는 마치 우리의
총탄이 의승군을 피해
달아나는 것 같았다 나라의 녹을 먹던
조선의 장병들은 우리를 두려워하며
모두 도망쳤지만이 비범한 신승이
이끄는
의성군들은
기이한 기운으로 우리의 공격을
무력화시켰다이
신승이 이끄는 자들은 마치 부처의
군대와 같다 그 후에도
산속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며 외군들의 보급 노를
끊었고
승병 7명이 외군
278명을 죽였다는 기록이 있을만큼
사명대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그런데 사명대사의 활약은 이뿐만이
아니었는데 그의 또 다른 공적은
적진에 뛰어들어
외장하고
담판을 지은 것이다 전쟁이 소강상태에
빠진 1594년
외군은
서생포와 거제도 웅천 사이 여러 곳에
물성을 쌓고
지구전에 대비했는데 그때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서는
강화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었다
강화 협상은 조선을 배제하고
명나라 사신 심유경과 외장
고니시 유키나가 사이에서 진행됐는데
원래
도요시의 강화 조건은 이랬다 하지만
고니시는 공적을 쌓기에 급급해
여러 조항을 뗀 채로 명랑하와
협상하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조선의
발도 중 사계도를 일본에 넘기라는
조항도 있었다 그리고 그 무렵
사명대사는
홀로 서생포외성에 들어가
갓토기요 마사와의 회담에 참석한다이는
적의 진영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는데
하지만 뜻밖에도 사명대사는
조선조정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던
명과 일본의 교섭 사실을 알아냈고
가토와 고니시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리고 다토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고니시가 협상
조건을 왜곡시켰다고
폭로하게 만들었고 결국
명나라와 일본의 협상은
결렬되었다 사명대사가 아니었다면
400년 전에 조선이 반으로 쪼개질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사생보회담에서 사명대사의
기계를 엿볼 수 있는 아주 유명한
일화가 있다 가토 기요마사가
사명대사에게 물었다 조선의 보배가
무엇이요
그러자 사명대사가 대답했다 조선의
법에는 조선 것이 아니라 일본 것이요
타투가 외하게 여겨 그 보배가
무엇인지 묻자 사명대사는 이렇게
답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당신의 머리를 보배로 생각하오
그러니 보배는 일본에 있는 것이
아니요이 말을들은 가토기요마사는
사명대사의
언변과 대범함을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7년 동안 계속된
임진왜란은 도요토미 이데요시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끝이 난다 그리고 이때 사명대사는
뽀 외교적인 수완 발휘하는데
사명대사는 1604년 일본이 재치말
것인지 알아보라는 선조의 특명을 받고
일본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그는
국서도 없는 비공식 사절단이었는데
명나라를 배제하고 일본과 협상하는
경우 외교 문제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명대사가 일본에 도착하자
일본인들은 그를 살보아상이라고 부르며
환영하고 존경했다고 한다
설부화상이란 보배를 말한 스님이라는
뜻으로 사명대사가 가토기요마사에게
너의 머리가
후배라고 말한 것이 전해진 것이다
일본인들은 보배를 그렇게
멋지게 설명한 스님이 어디 있냐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결국 사명대사는
당신의 몸으로
도쿠가와 예스를 만나 전쟁의 책임이
일본에 있음을 인정하게 했고
화친을 맺었다 또 일본의 포로로
잡혀갔던
삼촌여명의 조선 사람들까지
데리고 돌아오는 공적을 세웠다 하지만
사명대사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회담에 관해서는 아무런 기록을 찾을
수 없는데이는 회담이 일본에 불리하게
돌아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사명대사가
협상을 위해 일본에 머물렀을 때 썼던
신비한 도술에 관해서는 전에 내려오는
전설이 많은데 그 이야기를 살펴보면
이렇다 사명대사가 일본의 사절단으로
입국할 때의 일이다 일본에서 지위가
높은 누군가가 사명대사가 영험하다는
것을 알고
시험해 보기로 했는데
항구에서
궁궐로 오는 길에 마녀자가 넘는
글씨가 빼곡히 쓰인 병풍을 쭉 세워
놓은 것이다 그리고 사명대사를 가마에
태운 다음 그 병풍 옆을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사명대사가
궁궐에 당도하자 그는
이름 높은 스님께서 오셨구려
어디 오시는 길에
병풍이 있던데 보았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사명대사는
병풍속 글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좌절 읊었을뿐 아니라 오자가 하나 난
것까지
완벽히 짚어내었다 하지만
딱 한 봉만 말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를 묻자 사명대사는 보지
못하였다고 답했다이를 이상하게 여겨
나중에 확인해보니 그 한복이 바람
때문에 접혀서 가려져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일본군에게
치명상을 안겨준 사명대사의 명성을
시기한 일본인들은 사명대사 과목을
방바닥 믿다 철판을 깔고
밤새도록 물을 뗐다고 한다 사명대사는
일본인들의 흉계를 알고
서리상과 눈설자를 내 벽에 써 붙인
다음 정신을 통일하고 비밀 진원을
외며 안 짰는데 한참 후 사명대사가
있는 방에 얼음과 눈이 가득 찼다
이튿날 아침 일본인들이 문을 열어보니
대사의 긴 수염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고 대사는
일본인을 보자 큰소리로 호령하였다
일본이 조선보다 따뜻하다고 들었는데
밤밤에 어찌 그리도 추우냐
외국의 사신에 대한 대접이 너무나도
소홀하다
학자들은 사명대사의 공적이 상상을
초월하기에 도수를 부리는
신기한 인물로 유사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역사상 확인되는 실존
인물로서 전설이든 아니든 사명대사만큼
초능력을 발휘하였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49세의 전장에 나간 사명대사는
64세가 되던 해에 다시 산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후
승병으로 지내온 시간들을 회고하며
지장 기도와 참회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3년 후 67세의 나이로
가부좌를 튼 채 이적하였는데 저
안에는
기이한 향기로 가득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사명대사가 이적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그에 대한 전설은
끊이지 않았는데
경상남도 밀양시에는 사명대사를 기리는
비서 표충비가 있다 하지만 이기석은
땀 흘리는 비석으로 더 유명한데
사명대사의 무국 중정이 지금까지도
ed에 남아 있어 국가의 큰 어려움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라의 큰일이 있을 때인
1894년
농악농민운동 1919년 3일 운동
1945년
광복 1950년
6.25 전쟁 등의 사건에서 남을
흘렸다고 한다
표충비가 가장 많은 땀을 흘린 것은
1919년 3일 운동 때인데 이때
흘린 땀이 100m가 넘었다고 한다
또한 표충비에서
8km 정도 떨어진 영취산 대법사에는
사명대사가
50세에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땅에
꽂아 놓은 것이 자라나 잎을 피웠다는
아름드리 오과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높이가 2.2m
굵기는 3.2m로 나무 밑동은 어른
두 사람이 양파를 벌려야 마주 잡을
정도로 우람하다 해발 600m 고지에
좁은 터에 자리잡고 있는 절은 법당이
아주 협소했는데 모과나무가 없다 앞을
가로막고 있어
법당은 넓히려면 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1990년대 초
[음악]
법당을 확장하기 위해 나무를 옮겨
심기로 한다
그런데
인부들이 오기로 한 전날 밤
지예스님은
기이한 경험을 한다
요사체에서
잠을 자던 지혜 스님은 갑자기
산천이 울리는듯한 소리에
눈을 떴다
적막하기만 한 산 중에
웬 비행기가 추락했나 싶을 정도로
요란해 밖에 나가 보았으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 방에
들어와
잠을 청하려는데 이번에는 호랑이가
보여하는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400년을 기르며 지켜온 나무를 왜
해치려 하느냐 나는
절대로 가지 않는다
gs님은
등골이 싸늘해졌다
목소리가 모과나무 쪽에서 들려왔던
것이다
후다닥 밖으로 나가보니
8월 한여름철인데 모과나무에서 아주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고 한다
다음날 gs님은 나무 옮기는 일을
취소하였다 사명대사의 영험에 대해서는
다른 예도 있다 1905년 일본
관계로 물사누계약이 맺어지자
조선팔도에는 오경 후에 홍제존자가
통곡을 한다 나는 소문이 불처럼
번져나갔다 그리고 이혜원은 그대로
들어맞았는데 일제의 강제병탄이 있었던
1910년
경술년 국치를 앞두고 해인사 안에
있는 사명대사비가
밤새워 울었던 것이다
멀리서 곡소리가 나서 가까이 가보면
들리지 않다가
멀어지면
목소리가 다시 났다는데 사명대사가
입적한 애가 1910년 병술국치의
300년 전 1610년
경술년이었다
그러니까
경술년이 다섯 번 지난 오경술 후에
비석에 울음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그리고 사명대사비의 울음소리가 한 번
더 들리는 해가 있었는데 바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폐쇄기 짙어져가던
1943년이었다 그 통곡의 소문은
삽시간에 발도로 번져나가 일본이 곧
퇴망하고 조국이 반복된다는 희망을
사람들에게 반겨주었다
그러자 이에 당황한 합천 경찰서가
사명대사비를 내 토막으로 부숴버렸는데
소문에 의하면
당시 비석을 깨뜨린 일본인들은
사명대사의 벌을 받아 모두
사망했다고나
확인할 길은 없다 이런 엄청난 업적과
전설이 전해오는 사명대사가 남긴
예언이 있다 바로 임진왜란 당시
시동에게 남겼다고 하는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한 예언이다 우리 조선이
지금 만국의 기운이 다하고 또한
앞으로 많은 첩경과 어려움이 따르나
모든 것은 하늘의 뜻인 즉 앞으로
우리 조선은 크기운이 온 천하에 떨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이 조선이 만국의 위기를
두 번 더 넘긴 후 또한 나라의
기운을 다한 후 만국이 되고 또한
나라를 두 번 빼앗기고 또한 우리
동족끼리 싸운 후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이 땅의 주인 될 만한 자들이
나타나고 그들은이 나라를 지배할
것인즉 우리 민족과 나라의 운은
400년 지금부터 퇴일 것이나
이상하거나 그 이유가 보이지 않으니
하늘의 기운이란 알 수가 없구나 이에
나 사명대사는 나를 따르는
시동 하나를 시켜서 수호가문을 만드니
암흑 속에서 대대로
참부경을 지키고이 나라에 있을 그
주인 될 자들을 보호하고
따르게 하니 이제 나는
죽어도 요한이 없어라 사명대사는
앞으로 우리나라가 그 기운을 온천하에
걸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그것은 만국의 위기를 두 번
넘기고 만국이 되어서 나라를 두 번
빼앗기고
동족끼리 싸운 후라고 말했는데이는
신기하게도 우리나라의 역사와 들어맞는
부분이 있다 만국의 위기를 두 번
넘긴다는 것은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을 의미한다 또한
그 후 만국이 되는 것은 조선이
망하는 것을 뜻하고 나라를 두 번
빼앗긴다는 것은 일본의 식민지배와
미국 소련의 신탁통치를 받게 되는
것으로 의미한다 그리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농족끼리 싸운다는 것은
6.25 전쟁을 예언한 것이다 그리고
사명대사는
400년 뒤부터 나라의 운이 트인다고
예언했는데
뒤에 어느 했던 때가 언제인지
정확하지 않으나
임진왜란 당시에 남긴 예언이니
그로부터
400년 후면 1992년에서
1998년이
된다 그리고 실제로
1997년 우리나라는
imf를 겪지만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며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경제성장과
국가 발전을 이뤄냈다 여기까지는
사명대사의 예언이 신기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역사의 딱 들어맞는다
하지만
무슨 뜻인지 모를 예언이 한 가지
남아 있는데 우리나라의 운은
400년 뒤에 트이지만 그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사람들은
많은 추측을 하고 나섰다
어떤 사람들은
단순히 너무 먼 미래라서 보이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해석했다 또한 희망적인
해석으로는 그 이후의 미래는 정해지지
않았으며 사람 그림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가늠할 수 없다고 해석했다
반대로 절망적인 해석으로는 우리나라의
큰 위기가 닥쳐오거나 지구 종말 급에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그리고
현실적인 지금의 상황으로 유추해 보면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를 예언했다는
주장도 있다
급격한 출산 저하로 조선 민족이
멸종하는 가까운 미래를 봤다는 것이다
겨우 2000년대 들어서
국위가 세계에 떨치자마자 한세대
겨우지나
출산율이 영의 수렴해버리니 사명대사의
눈에는
국가가 융성하자마자
동시에 사라져서 안 보이는 앞뒤 안
맞는 모습으로 비친 것이다 사명대사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 불길한 예언의
염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수호가문을 만들어 나라의 주인이 될
사람들을 보호하고
따르게 했다고 하는데 사명대사는
그제야 안심한 듯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예언을
마무리했다
하지만이 소버문에 대해서는 아무 모두
알려진 바가 없는데 그가 만든
수호가문은
도대체 무엇일까
국난의 시기에 많은 공적을 세우고
우리나라의 미래까지 걱정했던 사명대사
사명대사가 보았던 보이지 않는 미래는
종말을 뜻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이후의 세계는 사람의 힘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