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방송) 제6강 암흑의 땅 조선의 빗장을 연 복음 (알기쉬운 한국근현대사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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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 11.
우리은행 1005 204 476779 (예금주 : 인도태평양전략연구원) /''이승만과 자유민주주의의 시작'(역사전쟁)에 후원하실 분은 후원해 주세요. 다음 프로그램은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기원" 입니다. 많은 후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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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은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기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많은 후원 부탁드립니다.
여러분께서 내어주신 후원금으로 제작한 '이승만과 자유민주주의의 시작'은 7월 3일(월)부터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 저녁 8시에 방송 합니다.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서 제작을 하다보니 제작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1주일에 한 편씩만 내보내고 있습니다.
대한역사문화원, 인도태평양전략연구원, 글로벌디펜스뉴스 홈페이지에서 지난 방송을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hiskeepers.or.kr/news/section.html?sec_no=100 [대한역사문화원] 이승만과 자유민주주의 시작 과거영상 보러가기
http://www.k-cia.kr/news/section_list_all.html?sec_no=109 [인도태평양전략연구원] 이승만과 자유민주주의 시작 과거영상 보러가기
대한민국 근연 대사를 성경적
세계관으로 알리고 전하는 대한역사
문화원의 한국 근현대사 바로알기
특강입니다
대한민국은 국민 주권과 법치를 통해
개인의 자유와 평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자유민주 공화국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주권을 행사하고
개인의 자유와 평등한 기회를
보장받으며 그 권리를 법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은 자유시장
경제를 채택하여 선진 한국을 이루었고
국민들은 그 번영에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과 여년전 조선
백성들은 자신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종애 멍에를 짊어진 채로 자유의
개념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가 종애 멍에에 매어
자유의 개념조차 없던 조선이 하루
아침에 우연히 어쩌다 보니 번영과
발전을 누리며 전 세계에 열풍을
일으키는 선진 한국이
되었을까요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오늘의 번에는 시작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시작점을 놓은
사람들은 누구
일까요 바로 기독교 선교사입니다
1832년 7월 25일 귀치 라프
선교사를 시작으로
1945년 해방 전까지 159명의
선교사가이 땅에 달려와 그 위대한
역사의 문을
열었습니다 선교사들은 조선을 자유케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아무계
땅 조선의 굳게 다침 문의 빗장을
열고 조선으로
들어왔습니다 드디어 어둠 속에서
고통받는 조선 백성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한 놀라운 여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름하여 조선 탈출 프로젝트입니다
1884년이 거의 다 저물어 갈쯤
조선은 한바탕 큰 혼란을 겪었습니다
바로 갑신 정면입니다
갑신정변은 청나라에 빼앗긴 주권을
되찾고 민시 세력을 척결하여 개혁을
꿈꾸었던 개화파에 의해 일어난
난이 결과는 3일 만에 청나라 군대에
의해 진압되면서
끝나버렸고 조선에 찾아온 개혁의
기회를 또 한번 잃게
되었죠 조선은 이제 더 빠른 속도로
망국의 길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혼란 가운데 조선은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1885년 4월 5일 새벽 인천 재물
포항에 두 명의 선교사가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였습니다 이들은 조선에 온 첫
번째 정착
선교사였다 오랜 시간 그곳에 머물며
사역을 지속하는 이들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조선에 을 묻을 각오를 하고
온
사람들이죠 그날 젤로 선교사는 배에서
내리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부활절 아침에
이곳에 왔습니다 그날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께서이 백성을 얼거 결박을
으사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유와 빛을
주시옵소서 선교사들이이 땅을은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자유입니다 조선 백성을 단단히 묻고
있는 결박을 끊고 자유를 얻게 하는
것 그래서 그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낯설고 불편하고 심지어 죽음까지
각오해야 하는 조선으로 온
것입니다 선교사들이 전하는 복음의
핵심은 바로
자유입니다 자유는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구원이라고 말할 수 있
구원이란 어떤 위험한 상황에서
구출되고 속박에서 해방된다는
뜻이죠 선교사들은 조선 백성에게
어두움에서 벗어날 방법 그 놀라운
방법을 전해주러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를 선포한
것일까요 먼저는 조선 백성의 영적
자유를 위해 죄에서 자유를 얻는
유일한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조선 백성을 묻고
있는 각종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선포했습니다 놀랍게도 선교사들이
전해준 영적 자유는 조선 백성을 묻고
있던 여러 억압의 사세를 끝는 시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이 시간에는 기독교 선교사들의
가장 중요한 사역 교회를 통해 조선에
선포된 자유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교회 이야기를 하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내가 왜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조선 백성에게
천지 개벽을 일으킬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부터 선교사들이 전한
복음이 조선 백성의 삶에 얼마나
놀라운 변화를 주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한국 교회의
시작이 언제였는지 그것은 알고
가야겠죠 조선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는
현재 서울 광화문에 있는 세문
sudah
교회입니다 세문 sudah 교회는
조선 최초의 교회이자 조선 최초의
장로
교회입니다
1887년 9월 27일 미국
북장로교회 소속 선교사인 언더우드
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교회가 바로
새문안 교회죠 그리고 며칠 후인
1887년 10월 9일 조선 최초의
감리교회 정동 교회가 미 감리교회
소속 앤젤로 선교사에 의해 세워지면서
조선 교회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후로 선교사들은
조선의 남과 부 동과 서로 흩어져
조선에 드리워진 어두움의 자유의 빛을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조선은 철저한
신분
사회였습니다 그중 조선 인구의 40%
되는 천민은 사람으로 존중받는 대상이
아닌 물건 취급을 받거나 짐승 취급을
받았습니다 조선의 그 누구도 천민을
이렇게 대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천 을
사람으로 대한 이들이
나타났습니다네 바로
선교사들이 왜 그들은 조선의 정서에
반하여 천민들을 귀하게
대했을까요 바로 성경의 가르침
때문입니다 로마서 10장 11절에서
13절에 그 답이
있는데요 13절을 한번 보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누구나 차별 없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죠 예수님을
믿기만
한다면요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은 구원에는 인종 신분 빈부의 차
남녀의 구별 그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선교사들은 는 천민의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조선을
지배하는 세계관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된
것입니다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 로에는
연동 교회가 있습니다이 교회의
공식적인 시작은 일대 단임 목사인
제임스게일 선교사가 목회를 시작한
19년입시
그러나 연동교회 시작은 엄밀히 말해
1894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이 지도는 개일 선교사의 책
한양에 수록된 한양 사대 문한
지도인데요 지도에 표시된 흰동그라미
부분이 연동교회의 첫 예배 처소였다
연못골 있니다 연못골 지금의 종로구
연지동이라고 하죠
이곳은 천민 중 가파치 그이 모여사는
곳이었습니다 연동교회는 다섯 명의
선교사 이에 시작되었는데요 그 다섯
명의 전도자는 사무엘 무어 밀러 그레
아니 기포드 빈튼
선교사였습니다 1894년부터
1900년 게일 선교사가 연동 교회를
담임하게 전까지이 다섯 명의 선교사는
날마다 연목 골를 오가며 도 복음의를
뿌렸고 그 그 열매가 풍성이 맺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에서
자유롭게 되고 나니 천민과 양반이
함께 예배드리는 당대 가장큰 교회로
성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1905년
연동교회는 첫 장로를 선출하게 됩니다
장란
목회자를도 성도들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지 점검하고 격려하는
직분을 말합니다 그런데 연동교회의 첫
장로 투표에서 놀랍게도 가파치 출신의
고찬익 장로로
선출되었습니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었죠 양반이 천민의 지도를 받게
된 상황이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한 때
일부 양반들이 교회를 떠나기도 했지만
다시 교회가 안정되어 1907년에는
천명이 넘는 성도가 예배드리는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반상의 구분이 철저하
조선에서 복음은 신분의 벽을 허물고
신분 제라는 멍에를 끊는 놀라운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1893년 6월 새문안
교회에 이어 두 번째 장로 교회가
시작되었는데요 이름하여 곤당골
교회입니다 현재 서울종 관철에 위치해
있던이 교회는
1892년 46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조선에 온 사무엘 무어
선교사가 매일 수십명의 사람을 만나
복음을 전하며 개척한
교회였습니다 무어 선교사가 조선에 올
무렵 서울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들은
정동에 있던 미국 공사관을 중심으로
모여 살았는데요 안전상의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어 선교사는 조선 백성 속에
깊이 들어가 선교하다 ja 조선 사람
특히 천민들이 거주하던 지역에 어울려
살며 조선말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무어 선교사는 원고 없이
우리말로 설교하는 선교사로
유명해졌죠 이듬해인
1894년 관철동 살던 백정 박가가
장티푸스에 걸려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때 사무엘 모어 선교사의
주선으로 백정 바는 고종의 주치의였던
에비슨 선교사에게 치료를 받고
살아나게 됩니다 임금을 고쳐주는 저
귀한 사람이 나를 고쳐 주다니 자신을
사람으로 그것도 사랑을 듬뿍담아
대하는 선교사와 그들이 전한 복음에
감동한
정는 예수님을 을 구주로 영접하고
곤당골 교회의 성도가 되었습니다 이제
백정 박가은 더 이상 이름 없는 백정
하나가 아닌 박성춘이라는 이름을 얻고
백정들은 전도하기
시작했죠 놀랍게도 박성춘 전도로
곤당골 교회에 백정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로 인해 문제가
생겼습니다 일반 교인들이 백정과
도저히 예배를 함께 드릴 수 없다며
백정을 쫓아내라고 항의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무어
선교사님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찌
정이라고
대하려는라고 일반 성도들을 꾸짖었고
합니다 그러자 그렇다면 정들을 예배
뒷자리로 앉혀 구별해 준다면 우리도
계속해서이 교회를 출석하라고 하며
끝까지 순종하지 않자 무어 선교사는
그들의 말을 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그들은 교회를 떠나 홍문
사골 교회를 세우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는데요
1898년 홍문사 교회의 큰 불이나
교회가 다 타버리는 일이 일어나면서
곤당골 교회를 떠났던 성도들은
회개하고 곤당골 교회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현재 을지로 입구인
구리로 교회를 이사하게 되는 요 당시
교인들이 10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중 백정 출신 교인은
30명이었다
하죠 그래서이 교회는 백정 교회로
불리웠습니다 1905년 곤당골 교회는
현재 교회가 있는 인사동으로
이사하면서 이름을 승동 교회로 바꾸게
됩니다 그리고 백정이었던 박성춘
승동교회 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천민을 천민으로 대하지 않고
친구로 대한 교회가 바로 승동
교회였습니다 복음은 백정 바카게
드리워진 신분의 멍에를 끊어 주었고
박성춘이라는 자유로운 삶을
선물했습니다 자유인 박성춘 평민과
양반들 앞에서 당당하게 연설하는
만민공동회의 연사가 되었습니다 백정이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하는 바를 연설한다 것은 당시
조선의 상황으로는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가 외치는 복음의
핵심
자유입니다 전북 김제 금산면에 위치한
금산 교회는 1905년 미국
남장로교회 파송을 받아 조선 호남
지역에 사역을 한 테이트 선교사가
개척한
교회입니다이 교회는 기억자 교회로
유명한
교회인데요 조선 선교 초기 교회들은
금산 교회와 같은 기억자 모양이
많았습니다 그 이유는 남녀가 유별하다
조선의 세계관을 배려하여 탄생한 건축
구조 때문입니다 목사님이 기억자
부분의 모퉁이에 서고 남녀 성도를
분리하여 한쪽은 남자 성도 한쪽은
여자 성도들이 앉아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한
것이죠
금산교회는 아주 특별한 두 사람이
있었는데요이자 익과
조덕삼이었습니다 조덕삼은 김제에서
이름 있는 부자였고 이자익은 그 집의
마부이자 머슴이 있습니다 이들은
테이트 선교사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함께 믿게 되었고 1905년 10월
11일에 세례도 함께 받고 집사도
영수도 같은 날 함께 되었다고 합니다
그후 교회는 장로를 세우게 되는데
놀랍게도 김제 지방의 유지이 금산교회
재정을 모두 감당하고 있던 주인
조덕삼 제치고 그 집 머음 이자익이
장로로 선출된
것입니다 교인들은 몹이 난감했지만
조덕삼은 교회 결정을 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교인들 앞에 나아가서 나는
하나님의 뜻을 히 받아들여 이자익
장로를 잘 받들고 교회를 더욱 잘
섬기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고 합니다
후에 조덕삼 금산교회 2대 장로가
되었고 자신의 집 마부 이자익을
평양에 있는 장로의 신학교에 보내
공부를 하게 했습니다 물론 장까지
주면서 말이죠 더구나이 이 신학을
마치고 목사가 된 후 금산 교회에
담임목회자로 청빙하여 함께 교회를
섬겼다고
합니다 교회가 세워지는 곳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교회가
기독교인들끼리 침목 단체가 아니라
자유를 선포하는 곳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복음을 통해 자유가
선포된 곳곳에서 조선 백성들의 어깨를
짓누르던 종의 멍들이 하나둘씩
벗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를 믿게 된 양반들은
노비들이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들을 속하고 나아가 자녀로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 신문이라고
하는이 신문에 보면 순에 살고 있는
박인 시라는 사람은 그 종을 속하고
딸로 삼았다고 말하고 있죠 또한
평양에 살고 있는
이씨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큰 돈을
주고 샀던 종을 속량하여 주었다는
이야기 또한이 신문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두 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이후에 일어난 놀라운
변화들이 그리스도 신문의 기사 하나를
더 보겠습니다 임신근이라는 사람에게
아들과 딸이 있는데요 지금이 두
부분은 아들과 딸의 결혼문제 하 있는
중입니다 그러던 중 부인이 먼저
예수님을 믿게 되고 남편도 예수님을
믿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나죠 두
부부가 주의 주의를 지키고 나서
그들이 나는 대화의 내용이이 신문에
기록되 있는
것입니다 조혼 매매혼 보이 당연하여
성들의가 없던 조선에 복음이
해자 며느리는 짐승이 아니요 사고파는
물건도 아니라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
[박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이름도 없던
여인들은 이름을 가지게 되고 복음은
그녀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선물해
주었는데요 세지는 부인도 바로 그중에
하나였습니다 오랫동안 이름이 없이
살다가를 받고 나서 그녀에게 이름이
생겼고 그래서 그녀의 고백은 조선
여자의 해방은 우리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김세지
부인은 조선의 가혹한 결혼제도의
피해자 중
하나였는데요 그녀는 어린 나이에
자신보다 나이 어린 남편과 결혼하는
조언의
희생자였다 그 어린 남편이 일찍 죽고
그녀는 보쌈의 피해자가 되었
그리고 그 둘째 남편과 드디어
헤어지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과
결혼했지만 그 역시도 조선의 여느
남자들처럼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그녀가 듣게 된
복음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만일 예수를 믿으면
집안이 평안해질 것이고 남자도 주색
잡기를 버리고 살림에 하여 내외간
화하게
되리이다라는이 말을 듣게 된 거죠이
말은 그녀를 교회로 향하게 했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했습니다 그 남편도
예수님을 영접하여 정말 가정의 평화를
선물로 받게 된
것이었죠 그런 그녀의 고백이 바로
조선 여자의 해방은 기독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여성을 대하던 조선 선의
가한 여인들을 해방한 것이 바로
복음이었다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황해도 평산 간바 이골
교인들이 복음을 듣고 나서 결정한
내용은 정말로
재미있습니다 지금은 성경의 뜻을 안즉
이렇게 하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동네
외인들이
흉지라서가
먹을 때 부인들도 방에 들어와 남편과
같이 편안히 앉아서 먹기로 정하자
한즉 일심이 되어 그대로
하자 정말로 재미있는
기사죠 복음은 남녀가 서로를 존중하게
만들었습니다 한 밥상에서 밥 먹는
일이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조선은 그렇지 않았죠 그런 조선에
복음이 전해지면서 남녀가 한상에서 는
화를 만든것이 기독교 복음입니다
천민과 여성의 인권이 존재하지 않던
조선에 조선을 자유케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찾아온 선교사들 그들은
흑암의 땅 조선에 굳게 다친 장을
복음으로 열고 조선의 자유를
선물했습니다 그 선물은 지금
우리에게까지
이어가 자유를 의식하지도 못한 채
누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음악]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