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방송) 제3강 조선을 묶고 있던 종의 멍에(왕정제도 2nd) (알기쉬운 한국근현대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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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 6.
우리은행 1005 204 476779 (예금주 : 인도태평양전략연구원) /''이승만과 자유민주주의의 시작'(역사전쟁)에 후원하실 분은 후원해 주세요. 다음 프로그램은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기원" 입니다. 많은 후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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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은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기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많은 후원 부탁드립니다.
여러분께서 내어주신 후원금으로 제작한 '이승만과 자유민주주의의 시작'은 7월 3일(월)부터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 저녁 8시에 방송 합니다.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서 제작을 하다보니 제작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1주일에 한 편씩만 내보내고 있습니다.
대한역사문화원, 인도태평양전략연구원, 글로벌디펜스뉴스 홈페이지에서 지난 방송을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hiskeepers.or.kr/news/section.html?sec_no=100 [대한역사문화원] 이승만과 자유민주주의 시작 과거영상 보러가기
http://www.k-cia.kr/news/section_list_all.html?sec_no=109 [인도태평양전략연구원] 이승만과 자유민주주의 시작 과거영상 보러가기
[음악]
대한민국의 근연 대사를 성경적
세계관으로 알리고 전하는 대한역사
문화원의 한국 근현대사 바로알기
특강입니다
청해 전쟁이 승리로 끝나게
되죠 그러면서 아주 놀라운 사건이
하나 일어나게 되는데요 청나라의
속국이 당시에 영웅문이라는 것이
있었는데요이 영웅문은 중국 사신이
들어오면
세자나 어떤 때는 왕이 나아가서 어
청나라의 사신을 맞이했던
문이었고 사대주의의 그런 정수를
보여주는 그런 문이 바로 영웅문
이었죠 그러나이 청해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난 뒤에 어이 영웅문은
허물어지고 그 뒤에 바로 독립문이
세워지게 된 거예요 지금 서울
서대문에 있는이 독립문은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축하하기 위해서 만든 문이
아니라 청나라로부터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워진 문이었다 걸 저희가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당시 세계 정세는
점점점점이 조선이라는 나라의 영향을
주게 흘러가고 있었어요 그 당시에
러시아와 영국은 서로 세력 다툼을
하는 어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는데요 약 100여년 동안 이런
세력 다툼과 전 전쟁들이 러시아와
영국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죠 많은 대륙을 차지하고 또 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던 영국은
러시아의 나마 어떻게서든 막아야
됐었기 때문에 여러 나라와 동맹을
맺으면서 러시아가 해양으로 내려오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고 있었어요이 과정
중에서이 두 나라가 대체하면서
일어났던 그런 상황들을 우리는
그레이트 게임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데요이 그레이트 게임 영국과
러시아의이 그레이트 게임이 사실이
아시아까지 영향을 미치게 됐다는 걸
우리가 잘 기억을 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에서 러시아의 남아를 막기
위해서 영국은 일본과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어요 조선도 그런
세계 정세를 잘 눈치채고 있었다면
러시아하키 영국과 손을 잡는 그런
제스처를 취했으면 너무나도 좋았겠지만
그러나 여전히 고종과 민비는 친적
성향을 엄청나게 많이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 배경으로 일어난 안타까운
사건이 바로 을미
사변이 조선의 왕비가 일본에 의해서
시해되는 사건이었죠 물론이 사건은
일본의 만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이 사건을 자초한 것은 고종과
민비 있다는 것도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겠죠 조금만 생각이 있고
조금만 더 앞을 내다보는
사람들이었다면 누구와 손을 잡아야
될지를 제대로 알게 됐을 거기 때문에
그런
거죠 어이 사건 이후에 보정은 아관
파천을 하게 됩니다 아감 파천이 건
말 그대로 러시아로 도망을 친다는
거죠 그까 러시아 땅으로 직접 도망을
가는 것은 아니라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제 피신을 하는 것 그래서
아관파천이 이제 이름이 붙여져
는데요이 그림을 보면 고정은 러시아
공사관 안에 숨어 있고 많은 조종
신료들과 또 백성들은 왕이 빨리
황공하고 간절히 바랬었어 약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 틀어박혀서 그 안에서
잔치판을 벌리면서 지냈다고 해요
사실이 고종의 도피 행각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아주 여러 번에 걸쳐서이
도피 행각들 이루어졌는데요 성공을 한
것은 어 1896년 2월에 했던이
아감 파천 뿐이었고 나머지는 시행을
못 하거나 아니면 그 공사원 거부를
당하거나 실패하거나 이제 그랬던
상황이었어요 우리가 이것만 보더라도
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끝까지 그
자리를 지켜야 될 왕인 고정은 날마다
자기의 일를 위해서 도망갈 국민만을
하고 있었던게 보이었다 것 을 우리가
알게 되는 거죠 그러니 그 밑에
백성으로 사는 사람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우리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고종은 이제 나라의 이름을 바꿉니다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대한제국이라는 새
이름을 가지게 됐어요 근데 중요한
것은 이름만 바꾼다고 그 사람의
생각과 정신이 다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대한 제국도
마찬가지였어요 이름은 그럴싸하게
제국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이름을
바꾸었죠 어 모토가 뭐였냐면 근대
제도와 상공업 지능 정책으로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 보자 였어요 아 이것은
정말 훌륭한 생각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러나 이것들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는 못했죠 문제는 바로
이거였습니다 왕실과 국가의 권위를
바로 세우고 자주적인 나라를
이룩한다 왕실의 권위가 먼저였던
거예요
물론 나라도 중요하지만 내가
다스리는이 왕권이 정말로 중요해 그이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대한제국이라는 나라가 온전히 발전을
하지 못하고 몇 년 이어지지도 못해서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게 되는 치욕을
맞이하게 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우리는 이름이 바뀌었지만 세계
정세를 바라보는 눈은 조선 시대와
아무런 변화가 없었어요 그 가정
가운데에서 일어난 전쟁이 바로 러일
전쟁이었죠 러시아와 일본이 조선을
사이에 두고 팽팽한 기싸움을 하다가
일어난 전쟁 그 전쟁에 피해 있는
고스란이 조선 백성들의 몫이였다 걸
우린
알아야겠죠 러일 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은 어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 준다는 이유로 지켜준다는
이유로 어 궁궐 한복판에 일본의
군사기지를 내어 달라고 요청을 하게
되죠 그래서 결국 우리나라 궁궐 한
켠에 일본의 군사 훈련 장소가 생기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8월이 되었을 때
한일 제 1차 한일 협약이라는게
맺어지게 돼요이 협약을 통해서 어떤
일이 벌어지나 대한제국 정부의 재정
돈 문제 또 외교 문제에 대해서 일본
사람이 와서 고문 역할을 해 준다는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지금
이 상황 가운데에서 벌어지고 있죠
그런데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이것들이 어쩔 수 없는 강압에 의해서
이렇게
됐다라고 드라마들은 이야기해 주고
있는데요 실제는 달랐어요 한일의정서
체결 전에 194년 2월 17일
창덕궁 후원에 일본군 사단에게 왕이
직접이 창덕궁 후원을 내주게 됐거든요
근데 그 배경을 이렇게 알아보니까
어떤 배경이 있었나
나중에 이제 알게 된 거예요 한일
의정서 체결로 3월 20일에 일본
특사 이도 히로부미가 고종을 만났는데
왜 만났는지 이제 그 이야기가 영국
외무성 문속 보존소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와 고정이
현하는 장소에서는 어떤 특정한 문서는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그러나 그 장소에
참여했던 민영환이 하는 한 대신이 그
모든 진상을 영국 공사에게 설명하고
그 내용을 전달해 주었기 때문에 그
영국 공사관에서이 내용들을 잘
기록해서 문서 보관소에 여태까지도
보관을 하고 있다는
거죠이 문서에 따르면 이토 후작은
메이지 천왕 국서를 조선 외부에
사본을 남기지 않고 직접 황대
전달했다 그래서 내용은 알 수 없다
그런데 민영환이 그날 면담 내용을
이렇게 전했다라고 하면서 그날 의
내용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거예요
이토 대사는 황제에게 천왕의
선물이라며 30만 엔을 줬다 그리고
경부선 철도에 고종이 가진 지분을
보장하고 향후 경의선 지분 또한
보장한다고 확약했다 이또 후작은 같은
방식으로 50만 엔을 궁중 참석자에게
나눠주고 이번 방문 관계자들에게도
귀중품을 선물했다고 말하고
있어요 자 여기서 말하는 30만엔
이것은 지금으로 말하면 약 400억의
가치가 있는 돈이죠 이미 을사 약
전부터 고종은 돈을 받고 나라를
팔아먹은 자였다는 걸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되는 거죠 그리고 러의 전쟁이
끝나고 나서 드디어 을사 약이
체결되기
되는데요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외교권을 빼앗아 가게 되는 아주
우리로서는 정말 수치스러운 조약이
이제 맺어지게 된 거죠 그런데 문제는
뭐였냐이 을사 약에는 고종이 돈을
받아챙긴 정황이 있다는 거예요 고정이
2만 원의 나라를 팔아넘겼다는 걸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되는 거죠
우리는 이완용이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생각을 하잖아요 근데 그렇지 않았다는
거죠 을사조약 6일 전에 일본으로부터
돈을 받은 고종 황제라고 여기에
기록이 되어 있 죠 주한일본 공사였던
하야시 곤스케 을사 조약 전에
대한제국 황제와 대신들에게 지급한
비밀 기록이 일본 공사관 기록에 남아
있는 거예요 어떻게 되어 있냐 지난달
4일자 김일제 119로 보호권 확립에
관한 어 조약 체결을 위하여 무엇인가
비용을 필요로 하 하겠기에 기밀비
10만 원을 송부하여 위의 목적에
지출하는 훈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이
을사 등약 전에 뭔가 돈을 좀 써
가지고이 조약이 매끄럽게 되기 위해서
일본에서는 돈을 써서 이렇게 하라고
했다는 그 지시가 내려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했냐
신협약 체결 전에 있어서는 당장 이토
대사 내안의 지음에 궁중 내탕금이
궁핍한 상태라는 것을
탐지했다 대사 접대용 비용에 충당하는
명이 아래 2만 원을 상훈을 거쳐
황제 수중에 납입 시키고 되어 있어요
이미 을사조약 6일 전에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는 거 보종이 2만 원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여기 나오는 거죠
그 2만 원과 지금의 2만 원은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신하들에게 왕을 보좌했던 신하들에게
돈을 주었다 여기에 보면 이완용
이름도 나오죠 그니까 그런 사람에게도
다 돈을 나누어 주었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결국고 은 자기가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나라를 팔아먹은
거예요 이완용에 의해서 나라가 팔린게
아니라 고종의 지시가 없이는 절대로
나라가 팔릴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거죠 어 이날에 이런
상황들을 영국 부영사 있던 윌라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어요 새벽 2시에
잔디밭에서 중면 정 쪽을 바라보니
건물 주변뿐만 아니라 그 베란다까지
일본 사람들이 가득했다 프랑스 공사
간 통로까지 사람들이 많았다 어
여차하면 고종황제가 도망갈까 해서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라고 말하면서
그런데 이제 고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죠 이곳 상황은 참 놀랍다 왕관을
쓴 자들 가운데 최악으로 비겁하고
최악급이 황제는 궁존 속에 움추리고
자기가 저지른 잘못으로 타인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황제는 외부
대신에게 조야에 서명하라고 지시하고는
자기가 지시하지 않았다고 말하라고 또
지시했다 그러니까 이완용 테 너 가서
서명하고 와라고 말을 한 거예요
그러면서 뭐라고 하냐면 내가 하라고
했다고 절대로 말하지 마 너 혼자 한
거야라고 말하고 했다는 거예요 아
정말 대단한 존재죠 어 한규설이라는
대신은 회담장에서 쫓겨나는 일도
있었어요 왜냐면 고정한 달려가서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에요 제발
왕이시여 대신들 하여금 나라를
배신하지 말게 하옵소서
라고 말한 거예요 이렇게 하고 나서
3년형을 언도 받았다고 하죠
윌라드는 정말 마무리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해요 제일 얼토당토 아는
일은 저들은 무슨 일이 닥칠지 벌써
경고가 돼 있었고 그래서 느기 전에이
사태가 오지 않도록 충고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많은 외국의 사신들이 와서 아 이러면
안 된다 지금은 세계 정세상 이렇게
해야 된다라는 걸 끊임없이 말해
주었지만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타조처럼
모래 머리를 쳐봤고 그 사태를 똑바로
보려고 하지 않았다는 거죠 고정에
대한 증언들은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고종의 의전을 담당했던 엠마
크레베이스 전국은 엄청나게 지금 혼란
속에 쌓여가고 있는데이 사실을 눈치
태지 못한 단 한 사람이 바로 고종
황제였다 말하고 있었죠 그리고
청나라의
대신이었을텐데
귀국은 메가 매직을 30년이나 해도
옥자가 언제하 운수가 왕성하고 풍석이
아름답지 못하면 어찌 그리들 수
있겠는가 이것은 누가 들어도 지금
비아냥거리고 비꼬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고종이 뭐라고 했냐면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부끄러워할 줄 몰랐다고 아
그렇지 뭐 우리나라가 원래 좀 그래
그렇게 표현을 한 거 같아요 그랬더니
서수봉이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에게
아이 조선의 백성들 너무너무 슬픈
민족이다 저런 왕을 왕으로 섬기고
있으니 정말 불쌍하다고 표현을 할만큼
보정은 정말 급이 다른 인간이었어이
나라의 이러한 한탄스러울 정도의
상황은 무엇보다도 비양심적이고 부패한
관료 계층에게 그 원인이 있다라고
이제 말하고 있죠 그러면서이
나라에서는 거의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을 것이며 민중은 계속해서
비참한 상태에서 헤어나오지 못할거다
왕만 썩은게 아니라 아 관료들 역시도
다 같이 지금 정신 나가 있다 이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알렌
선교사의 그 이야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황제는이 나라에서
끔찍한 해충이 저주다 표현을 할만큼
로마의 내로 황제랑 비교해도 절대로
뒤지지 않는 그런 아주 악한 자라고
표현을 하고 있고 시간을 축낸 자라고
이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민들이 너무나도 불쌍하다고 이제
말하고 있는
거죠 결국
대한제국은 어 한일합방으로 인해서 그
역사에서 막을 내리게 되는 거죠
그리고 일제식민지 36년의 시간이이
조선의 백성들에게 지워졌던 거예요
그러나 고종과 조선 왕실은 일본의
속해서 왕족과 공의 지위를 노리면서
일본으로부터 연봉을 따박따박 받으면서
호의호식하면서 잘 먹고 잘살다
죽었어요 사실이 한일합방이 일어났을
때 많은 백성들이 그렇게 크게
한탄하지 않았다고 해요 왜냐하면
보정보다 더 악한 상황이 있을까라고
사람들이 생각을 했던 거죠 이만큼 왕
하나가 잘못 세워짐으로 말미암아서
조선의 백성들에게 드리워진이 종의
멍에는 너무나도 무겁고 그 백성들
스스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의
멍에 있다는 걸 우리가 기억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고종은 나라의 아이보다
자신의 아이만을 생각한 왕이었고
백성들의 고통은 철저하게 외면한
왕이었습니다 자신의 욕심만 채우는 왕
세계 정세를 파악하지 못하고 나라를
망하게 한 정말 대한제국 멸망의
원흉이었던게 바로 고정이어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에게는 왕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없었다는 거죠
이게 조선의 백성들이 에게 드리워졌던
종의 멍에 있다는 것을 어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공부한
내용을 한번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른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 그것은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우린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또한 역사를 통해
과거의 잘못을 되돌아보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또
그럼으로 말미암아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대한민국 근연 대사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조선 백성들에게
쓰여졌던 종애 멍에 여러 가지 멍에가
있었죠 그중에서 오늘 우리가 공부한
것은 왕정
도였어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
리고 있는 특권은 무엇일까요 바로
국민 주권이라는 것이죠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없던이 놀라운 국민
주권이 오늘 우리에게 선물로 다가온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자유민주
공화국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우리가 그것에
감사하면서 조선과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비교해 가면서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의 소중한 가치에 대해서
감사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의
공부는 여기서
[음악]
마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