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의 영토권” 저자 신용우의 문화영토론 강좌 4강 | 문화와 역사왜곡은 영토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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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예 지난번에 그
영토 문화론 아지 얘기했어요 그렇죠
이제 일정한 영토의 그 보편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문화를 그 영토 문화라
그러는데 그 문화의 그 영토 문화의
실체를 밝혀서 문화 주권자를
규명하는게 바로 영토
문화론이다 예를 들자면 어떤 그 영토
분쟁이 일어난 영토의 경우 그 영토에
수한 문화가 있을 거잖아요 그렇죠
근데 그 숱한 문화를 갖고 문화
주권자를 규명할 수는 없으니까 그
영토에 뿌리박혀 있는 영토 문화 그
영토에 살던 민족이 고대부터 누려온
문화 그 문화가 누구의 문화를 가리기
위해서는 일단 그 문화를 분석하고
그리고 주변에 비슷한 문화을 누리는
나라들을 또는 비슷한 문화를 누리는
민족들의 문화를 분석해서 일치하는
비슷하다고 되는게 아니에요 이거는
일치해야 되는 거예요 그 일치하는
문화 주권자를 가려내는게 바로 영터
문화의 활용법이다 그 활용 대상을
예를 들자면 중국이 지금 동북 공정을
하면서 만주가 지의 땅이라 그래요
그래 그럼 만주에서 나오는 문화랑
우리 문화랑 비교를 해 봐 우리
한민족의 문화랑 그리고 러시아의 문화
중국의 문화 일본의 문화까지 주변에
비슷 비슷하니까요 문화들이 아이고
이거는 중국하고 엄청난 차이가 나죠
그럼 중국은 만주의 문화 주권자가
아니죠 그니까 권자가 아니에요 물론
그거를 치고 넘어가기 해서 중국이
뭐라 그랬어요 우리는 지금 제가 전에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한족과 55개의
소수민족이 사는이 중국 안에 일어난
지금의 영토 안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는 중국 역사다 그니까 우리
거다라고 우기는 거예요 그니까 그거는
우기는 거지 그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밝혀낼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공정이나 이런 거에 대한 어떤 그
대항할 수 있는 대항 말로도 쓸 수
있는 거고 또
일본 그 사이비 고고학자 사이비
고고학 진짜 후지무라 신지가 일본의
구석기
무리를 어서 구해다가 늦다 뺐다 늦다
뺐다 하면서 자 우리 일본에도 구석
시대가 있었다 이게 1970년 6년
2000년까지 뭐 몇 차례 이렇게
했어요 그래서 아주 뭐 일본에서 떠
받들었 고고학자로 그런 데 아 이게
뭐가 이상한 거야 그래서 그 추적한
결과이 사람이 유물을 묻고 캐내는
과정을 전부 촬영해서 신문에 실는
바람에이 사람이 들통이 났죠 그래서
일본은 구속 기대 유물이 없는 걸로
결론 일 났죠 이렇게 영토 문화는 그
영토를 송두리째 없애기 전에는 유
왜곡할 수가 없는 거예요 자 여기
지금 중국은 요즘이 영토 문화론
왜곡하게 해서 어떻게 해요 대진국
발의 유물이 나와
또는 고고 물이 나와 그러면 그거를
바로 공개를 절대 안 합니다 거기에
진짜 철해 장막을 치고 주개 장이죠
주개 장막 장막을 치고 그 안에서
우물주물 우물주물 해서 뭐 몇년 뭐
6년 3년 리 지난 뒤에나 공개를
해요 뭐예요 결국 조작한 거죠
조작도 조작하고 그거에 따라서 역사도
조작하고 그러고 영토도 조작해서
만주가 우리 땅이다 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영토 문화의 실체만 파악할
수 있다면 중국이 버리는 영토 공정에
주가되는 공정은 그냥
일거에 처벌할 수 있는
거예요 이거를 잘못 아면 영토 문화는
없이 아 문화가 영토 그 문화 영토로
내해 우리 땅이다 그런데 중국이
그렇게 왜곡해 놓고 이런 문화랑
맞닥뜨렸을 때는 어떻게 할
거예요 그래서 영문화 실체가 없이
문화를 동반하지 않은 것은 문화
토론을 잘못 이해한 것이고 그렇게
강의해서 안 된다는 거 말씀까지
드렸습니다 자 그럼 문화를 한번
분리해 봐요 문화를 분리하면
일반적으로 유형문화 무역 문화
분리하아요 유형 문화는 뭐 쉽죠 눈에
보이는 거 그 유적 고분 뭐 이런 거
그죠 그다음에 이제 무역 문화는
비가시적인 문화 눈에 보이지 않는 거
집단이 공통적으로 이해하고 참여하는
풍습이나 종교 또는 뭐 음악 음악
같은 경우는 그 음악을 아 뒤에
나와요 일단 그렇게 분류할 수 있는
거죠 그다음에 문화 인류학적 분류로는
용기 문화 용기 문화는 이제 의식주
이렇게 이제 용 그 물건 근데 이게
문화와 문화 사이의 전수가 매우
빠르죠 그다음에 기본 문화는 용기
문화보다는 한 단계 위라 그러는데 뭐
이게 차원이 높아서 한 단계 높은
차원이라는게 아니고 규범에 의해서
이렇게 그냥 단순히 쓰는게 아니라
조금 규범에 의해서 제도나 관습 법률
이런 거예요 상당히 이제 어느 정도
시간이지나 되면 서로 동화돼 왜 어
그 무슨 어디나라 법이 좋더라 그러면
그 법 우리도 도입했어요 그러니까
이런 건 다 도입이 돼요 그근데 관전
문화는 이제 정말 이거는 힘든 서로
동화되기 힘든 문화죠 왜 언어 종교
사상 신앙 이런
거거든요 그래서 사실 어떻게 보면
이거는 민족 그 민족과 명 공동체라고
봐도
돼요 특히 언어 이거는 그래도 좀
변해요 왜 어떤 지배자가 쓰면 뭐
아프리카 이런 데서 불어나 이런 거
많이 쓰잖아요
그런데이 사상은 지금
힘들어요 사상은 부자
직관도 갈라지게 만드는 거고 형제
직관도 갈라지게 만들잖아요 그 사상에
따른 종교 신앙 뭐 종교나 뭐 같은
의미겠죠 같은 묶음으로 봐야겠죠
이거는 진짜 힘들죠 그까 머릿속에서
생각으로 할 수 있는 거는 진짜 바꿔
놓기 힘든 거예요 그 그런 것들이
바로 문화라는 거예요 예를
들면 여러분 혹시 그 기억나실지
모르지만 그대 극강을 건너지
마시려라는 그 단편 영화가 있었어요
근데 그 단편 영화가 엄청나게 그
많은 반응을 일으켰어요 그 단편영화가
결국 어디서 민트를 얻은
거예요 공무도 화가 고조선 시대에
있었던 공무도 화가예요
고조선 시대 백수 광부가 머리가 하얀
광부가 수레 취해서 막 가서 강을
건너라 그러니까 부인이 여인가 그럴
거예 이름이 부인이 아 여보 건너지
마요 건너다 죽어요 그러니까 아 여기
부인 이름이 여기하나 그
공무도 노래한 사람이 그러니까이
부인이 그랬는데도
불구하고 백수 광부가 물에 빠져
죽습니다 그 건는다 우기다가 그까
부인도 당신없는 세상 내가 살 보면
뭐해 그러고 빠져 죽어요 그걸 보고
그 여옥이라는 여인이 집에 와서
국물을 치면서 국물을
트면서 걷는 그 강을 걷는 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노래하는 거예요 그래서
공무 도와
가요 그런데 그게 고려 시대로 딱
오면서 어떻게 됐어요 가실이 가실이
있고 바리고 가실이 있고 날라는 어떻
살려고 바리고 가실이 있고 가시 난다
도셔셔서 그러니까 가시는 님한테 아
가시면 어떡해요 가시지 마세요 가시지
마세요 근데 가시는 나는 어떻게
살아요 근데 가도 좋으니까 가다가
말고 가드시 돌아오세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근데 그게 김서울 시대에 와서
어떻게 됐어요 나보기가 역겨 가실
때는 말없이 고의 보내드리려고 다
가시는 거 도인 뿐이지나
영변약산 친대 것 아름따다 가시는
길에 뿌리 오리니 분이 지료 할고
가시
없었어요 가는 거 그냥 응 자가 막
박수치는게 아니라 안타깝지만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그걸 그냥은 못
보내 드리고 진달래 꽃을 뿌려서 그
진달래 꽃을 바고 가십시오라고 애뜻한
정을 노래한
거예요 그게 민족 정서라는
거예요 그게 민족 정고 그게 민족의
어떤 하안 내진 민족 정소 그 우리
민족의 정소는 가시는 님을 그
못내시는 거예요 그 사이에 하나 더
끼는게 있죠 공무도 도아 가서 고려
시대에 가시리 사이에 껴야 될 거
바로
아리랑이에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알라리 나를 두고 가시는 냐면
심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너 가다가
발병 죽어라고
아니에요 당신 가다가 나 버리고 가면
대병 나니까 가지
마세요예요 그 아리랑은 그
알랑고 그 몽골의 시조 모라 그래요
알랑고아 그
알랑고아 고주몽 왕이 고주몽 왕의
딸이라 그래요 전설에 하면 추모의
딸이라 그래 우리가 추모의 아들 유리
뭐 온조 비류 이러 듯이 거기는 그
추모의 딸이 알랑고아 그런데 그
알랑고아 고주몽이 오빠들이 남쪽으로
가는 거를
안타까워하면서 불는 노래라
그래요 그게 그래서 아리랑 랑을
갖다이 모음을 참가해서 아리랑 아리랑
이렇게 됐다 그게 제가 이제 주장하는
소리예요 그게 그래서 그 몽고
시점으로는 알랑고 와라 그래고 고주몽
딸이라 그러니까 그러니까 고주몽이 그
몽 몽골에서 나아온 거 맞잖아요
남쪽으로 남한 건 만주에서 그러니까
그거를 그래서 그 안타까워서 그런거다
라고 제가 그
거예요 그런데 그 저는 그래서
아리랑은 작자미상 연도 이상이 아니라
고구려 시대에 만들어낸 우리의
민자라서 저는 그래요 그 민족 정사가
이어지거든요 그러면 바로 그런게 이제
관념 문화라는 거예요 그럼 그 관념
문화가 이렇게 돼서 영토 문화로 오면
어떻게 되느냐 영토 문화는 내장
문화가 장례 문화라고 하는게 어쩌
말일지도
몰라요 장례를 지내는 거니까 그런데
우리 이제 동부가 그러니까 중국 우리
일본은 매장이기 때문에 매장문화 근데
매장
문화는에 그 유물이나 이런 걸 보면
유형 문화이자 용기 문화죠 그런데
매장하는 방법이나 또는 그 장례를
지내는 풍습을 보면 그거는 관념
문화이자 무형
문화예요 그리고 땅 이름을 말하는
지명 문화는 무역 문화이자 규본
문화죠 왜 우리 이렇게 하기로
하자라고 약속을 했으니까 무역
문화아지트 이 지적 문화는 그 유형
문화이자 기본 문화에요 역시 왜
지적이라는 건 땅의 호적이 그든
그러니까 딱 근거가 있단 말이에요
그니까 유용 문화죠 근데 우리 이렇게
하자하는 약속에 생 기본 문화 지도도
역시 기본 문화지만 유형의 유형
문화죠 딱 지도라는 그림이 있으니까
민속 문화는 뭐 유형 문화의 용기
문화에 일 수도 있고 왜 예를 들어서
검은고 그 아기잖아 근데 이거는 유형
문화의 용기 문화죠 그러니까 근데
거문고가 연주하는 음악 이거는 무역
문화의 기본
문화죠 그리고 그 음악에 궁상각치우
이렇게 음계가 있잖아요 그거는 어떻게
보면 우리의 관념문화 아아 이게 바로
민성 문화라는 거예요 그에 뭐
잔존하는 문화로는 성취 생화 방식
여러 가지가 있어요 그런데 그게 이게
누차 말씀드리지만 어느 한 사람 또는
일부 그랬다 그러면 그거는 그 민족의
영토 문화로 볼 수 없는 거예요 왜
돌출된
행동이고 몇몇 치만 했던 거니까
보편적이라는 원칙을 어기는 거잖아요
그다음에 어느 한 시대에만 잠깐
이루어졌었다 그러면 그
역시 상속이 된다는 걸 어기는
거거든요 그런데 대마도에 가면 아비루
씨가 대마도에 50% 전멸하고 있어요
50% 이상이라 그래요 사실은
그러면이 아비르 씨는 비류의 후선으로
추정을
해요 그리고 비류는 이제 고주모 둘
자들이 아아 그리고 백제에서 온
[음악]
이주민이라는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보면 성시
문화라는 영토 문화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이 50% 넘는 아비르 씨가 비류의
후손이라는 거는 저 혼자만의 주장은
아니에요 어쨌든간에 이렇게 문화를
나눔으로써 우리는 영토
문화론 완성할 수 있는 거예요 자
그렇다면 문화형 토론 영토 문화론
근거로 해서 문화형 토론을 했든
어쨌든간에 문화 토론과 영토 문화에
의한 한민족 토론은 도대체 어디까지냐
제가 처 처에 말씀드린 대로 그게
바로 만주에서 대마도까지라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그게 왜 만주에서
대마도까지 우리의 영토 문화 영토에
한 영토인지 영토 문화을 근거로 한
문화영 토론에 의한 영토인지 지금부터
밝혀 보겠습니다 아 제가 처음에도
그런 말씀을 드렸는데 문화의 왜곡은
영토를 왜곡하다 그랬어요 그리고 문화
왜곡은 또 역사의 외곡 하고 영토
곡은 문화를 왜곡하고 영토 왜곡은
역사를 왜곡한다
그랬어요 그러니까이 세 개는 문화
역사 영토는
서로
상관관계를 가져서 이게 하나가
왜곡되면 그것만 왜곡해 갖고는 나머지
두 개가 뽀롱 내 쉽게 말하면 들통을
내요
그러니까 하나만 왜곡해서 안 되는
거야 하려면 같이 왜곡을 해야 돼
그래서 이제 우리가 흔히 승자의
역사라 그래 갖고
그런데이이긴 사람들이 또는 지배한
사람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문화랑
영토를 왜곡하는 거예요
이제 그중에 이제 대표적인게 고려
시대에 신라 육두 품에 의해서 북방
역사를
축소했고 우리 역사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려면 그렇게 되면
어떻게 돼요 결국 영토 왜곡으로
이어지는 거예요
특히 삼국사기에 이제 그 뒤에 자세한
설명이 나오겠지만 삼국사기 같은 것을
기록하면서 좀 그런 현상이 두드러져요
그런가 하면 조선 시대에는 그 사대
사상에 의해서 역사를
왜곡해 그러다 보니까 역사를 왜곡하다
보니까 또 우리 영토가 축소돼
고려시대 주어들서 또 축소가 돼 그
이제 뭐이 두 개도 자간 문제지만
진짜 문제는 실제
병기에 일본 애들이 무차별하게 왜곡을
하는 거죠 그래서 고조선 역사부터
고구려 뭐고 다 한반 도안으로
끌어들이는 거예요 그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은 지금의
평양이다 한사군은 그 한사군이
들어와서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한사군을
지금의 평양 근처에다
세워놨다 당군은 한
사람이다 그런데 한 사람인 당군이
어떻게
2333년이라는
2333년에 나라를 세워서 10년까지
무려 20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21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다스릴 수
있겠냐 그러니까 당군은 실하다 설하다
왜 이렇게 만들어내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 역사는
줄어들고 우리 영토도 줄어들고 그래서
일제 시대 때
사실은 역사를 한반도 안으로 많이
끌어들였습니다
그러면 자 역사 외국이 문화 역사
문화 외국은 영토 외국이라 그래서
승자 역사라 그랬는데 고려 시대에는
대표적인게 뭐냐 일단 고려 시대는
신라 육두 분들이 고려를 사실은
고려를 꽉 잡잖아요 그래서 최승로가
신라 출신 세승 그가 그 고려 성종
때 유학을 받아들이면서 고려 로드맵을
그립니다 고려의 정치 지도를 그려요
고려가 앞으로 나갈 지도를 그려요
물론 고려 태조는
그 북방 저기 북진정책을 주장하시면
서경에 뭐 임금이 가서 한 달씩 뭐
묵어야 되고 뭐 쩌 이런 여러 가지를
많이 세우셨지만 그런 원칙을
말씀하셨지만 태조왕 거는 그랬지만
자우지 어쨌든간에 신라 품들이 그
정권을
잡으면서 북방 출신인 고구려 즉
대진국 출신들을 발해 출신들을
배척하기 시작하죠 그러면서 개경을
중심으로 한 신라 중심의 신라
우선주의 역사를 편합니다 그래서
신라를 기원전 57년 고료는 기원전
37년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건국한 거로 만들어 놔요
그러다 보니까 고구려 건국 연도가
왜곡됐고 건국 연도가 왜곡되게 이거는
웬떡이냐 그러면 고구려가 이랬으니까
고조선이 망하면서 한사군이 이렇게
평양까지 들어올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한민족
영토가 추소
수밖에요 거기다가 서경 천도를
주장했던 묘청의을 식이 평
정해요 그러면 지금 서경이 지금의
평양이라고 그고 우리는 다 알게
만들어 놔요 그거는 후대 사람들이 많
김부식이 그런게 아니고 왜 김부시 뭐
그런게 아니고
한사군의 그 건공 연도를 뒤로
미루니까 후대 사람들이 특히
일본이 물론 신학자들이 그런 것도 좀
있어요 솔직히 한 사원을 평양으로
보내지 않나 뭐 이런 못된 짓들을
하는 거예요 서경이 지금의 평양에
머무는 거예요 과연 서경이 지금
평일까지 밝혀 가면 되죠 그죠
그렇더니 조선 시대에는 이제 아까
말씀드린대 사상에에서 왜곡을 하는
거예요 고려사에 여러분 당 저기
왕건이 누구 후손으로 돼 있어요
숙종의 서자로 나옵니다 서손 서자는
서자는 아들이니까
서손 호경이 강을 낳고 강이 보육을
낳고 보육이 진이 라는 딸을 낳는데
당숙종이 지기전에 산천을 유라
마시다가 딱 진희를 보고 반에서
보유의 딸 진희와 동침에 나은게 왕건
할아버지인 작제건이다 그래서 작제건이
아버지 찾으러 가다가 용왕 딸을
데리고 와서 그 용왕
딸하고 나은게 용이고 그 융이 왕건을
낳았다 엄청 곡이죠 사실 그런가 하면
조선왕조실록 세조 3년 5월 2일
무자년 조 세 번째 기사에 보면 8조
관찰사 명해서 고조선비사 대변 조대기
주나일 사기 피온 삼성 밀기 안남동
원동중 삼성기 이런 고조선과 관계된
옛날 책은 싸그리 걷어 드리게요
그리고 다른 책으로 나눠주라 그래요
왜 그럼 사대 사상에 처서 야 이거
이렇게 우리가
명나라 안 되잖아요
명나라 이런게 바로 우리 역사를
축소하고 우리 영토를 축소시켰다 그런
것들 중에
하나입니다 고려사에 나오는 작제건
이야기 또 왕건 이야기는 조금 더 할
필요가 있어서 오늘은 이만하고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음악]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