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식 강사의 미술로 보는 동양사 강좌 7강 | 서왕모도를 통해본 고대의 여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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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당내력이라는 귀한 자료가 있어요.
이 자료는 서울대 도서관의 중요 도서로 있어서
열람도 사실은 쉽지가 않습니다.
다행히 이 책을 서울대에서 영인을 했어요.
그래서 제가 이 영인본을 예전에 아주 소중한 마음으로 구입을 했는데
책도 좀 큽니다. 판형이 커요.
이 자료의 특징은 원색 자료를 그대로 다 영인을 했다는 거예요.
칼라판으로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 책자가 어떤 의미를 주냐면
우리의 무속의 문화적인 특징을 별로 군더더기 없이
쉽게 판단할 수 있게 안내를 해주고 있다는 거예요.
여기 보면 분명히 이렇게 쓰여 있죠.
만신말명, 한자로 무녀지연원이다 이렇게 쓰여 있어요.
이게 무슨 뜻이냐면 무녀, 무당의 연원
아주 해수로 오래된 근원을 말할 뿐이다.
이라는 것은 한자 문법상의 끝에 머무할 뿐이에요.
이런 뜻이거든요. 머무할 뿐입니다.
이 그림은 무당의 연원을 나타내주는 것일 뿐입니다.
이런 뜻이거든요.
그런데 왜 이 그림이 소중하냐면
좀 전에 네몽골 지역에 마치 날개가 흩날리는 듯이
신나게 춤추는 여성으로 추측되는 인물처럼
최초의 무당의 어깨축지에는 깃털이 있었다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는 알 수는 없어요.
그러나 일본의 호카이도에 있는 후고페 동굴벽화의 어깨축지에
날개 달린 사람들을 제가 소개를 했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이 어깨축지에 깃털 모양을 분명히 그린 것을 통해서
천사시대부터 우리 한국의 선대 조상님들은
소위 혀모니즘 행사를 치를 때에
뭔가 깃털이라든지 새와 연관된 어떤 형상을 하고 있었을 개연성이 있다.
이런 것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어깨에 마치 이렇게 날개 깃털 같은 문양을 근거로 해서
본래 무녀는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했던 것일까?
이런 생각을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죠. 누구나.
모든 학문은 상식에서 출발하는 거거든요.
비상식에서 출발하는 학문이 아니죠.
그래서 하늘을 오르내리는 새처럼 지상과 천상을 이어주는 메신저.
매개자 역할을 한 거겠죠.
그래서 한국 혀모니즘의 역사에 있어서 여성의 존재는
천상과 지상을 이어주는 무속적 사제.
이런 어떤 고요한 권능을 일찌감치 역할로서 받아들인 게 아닌가.
이런 생각입니다.
물론 남자도 무당이 있긴 해요.
그걸 특히 박수라고 하는데 박수보다는 일반 무녀가 더 많죠.
이것도 일전에 소개를 해드렸지만
천전히 암각하에 있는 이 다른 인물도상에 비해서
큰 비례로 그려져 있는 인물상.
이 인물상 윗부분에 보면 이렇게 동글동글한 게 보여요.
도대체 이게 뭐냐.
이거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자들의 합의된 보편 논리는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것이 꽃꼴.
꽃 모습을 띈 머리 씌우개.
이걸 화관이라고 저는 표현하고 싶지 않아요.
화관이라는 것은 중세 이후에
국가적인 관청 행사에 동원된 여성 무용가들이
머리에 쓴 걸 화관이라고 하지
선산시대에 머리에 쓴 걸 화관이라고 하기에는
저는 맞지 않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 여성의 옆에 거듭된 마른목걸이 있는데
이것은 무슨 뜻이냐.
꿈틀대는 생명의 약동성과
연속적인 지속성을 지향한 내면 세계의 반영일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여기 또 동심원이 있어요.
이 동심원은 물의 파동을 뜻할 수도 있고
근원인 생물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의 연원인 여성성 그 자체를
표현한 것일 수가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천전 위에 이 부분에 이 도상이 갖는 의미는
꽃을 머리에 장식한 이 여성은
꽃 자체가 모든 식물을 보면
꽃 아래에서 열매가 크지 않습니까?
제가 예전에 꽤 오래됐죠.
저희 아이들이 어린이 당시에
거의 한 20년, 20년 더 되네요.
그때의 시청에서 특별히 불화를 받아서
조그마한 텃밭 농사를 경험해본 적이 있어요.
제가 수박을 키워본 적이 있는데
처음 하는 입장에서 그래도 욕심이 있어서
수박 나중에 크면 맛있겠지 하는 생각에 수박을 키워봤는데
제가 수박꽃이라는 걸 처음 봤어요.
이 수박꽃이 나왔는데
제가 수박꽃을 처음 보기도 했지만
수박꽃 아래에 수박알이 생긴다는 걸
제가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제 스스로를 많이 반성한 적이 있어요.
제가 인문학을 한다고 하지만
자연 질서에 대해서 이렇게 내가 무지하구나
열매가 맺히는 것이 꽃 아래에서부터 생긴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그래서 제가 너무 놀라서
그때 기록을 하면서
이 우주의 경이로움을 느꼈어요.
그 꽃 아래에 콩알만한 열매가
점점 커지더니 수박이 되는 거예요, 세상에.
그래서 모든 식물의 꽃 아래에서 열매가 맺히는구나
이런 경이로움을 느꼈어요.
그렇다면 이 여성의
머리에 씌어져 있는 이 꽃 모양은
어떤 열매를 맺기 위한 일종의 처음 모습이죠.
그런 것처럼 연속된 마르무꽃은
이런 생명이 아기가 태어나고
첫째가 태어나고 둘째가 태어나고 하듯이
연속된 생명체의 태동을 암시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동심원도 그런 의미로서 이해할 수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역사적으로 여성들의 삶이
그렇게 행복한 시절이 얼마였고
어느 시기에 특히 행복했을까
이것을 따져보면 재미난 연구과제가 될 듯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야기할 정도로
어떤 여성들이 행복했던 시절이
뚜렷하게 찾아지지가 않아요.
다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중국의 어떤 유적지에서
끔찍하게 살해된 젊은 여성 두개골들이
때로 발견된다든지 이런 걸 보면
여성이 행복하기보다는
굉장히 고단하고
참혹한 어떤 상황이 더 많았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의 고고학 유적 중에서
인천 송산 유적이 있어요.
아마 이 송산 유적은 지금
제가 볼 때는 별로 보존이 안 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개발이 됐을 거예요.
좀 안타까운데
제가 이 송산 유적에 관한 논문을 좀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인천 송산 유적을 보면요
아주 좀 특징적인 게 뭐냐면
화살이 발견된 화살촉이
이 화살촉이 1g 정도로 너무나 가벼워요.
너무나 작고 너무 가벼워요.
그래서 이렇게 가벼운 화살촉을
화살대에 장착을 해서
쏠 수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히 작습니다.
그리고 이런 토끼가 발견이 됐고요.
그리고 이런 주판할 형태의 방추차가 발견됐어요.
가락바퀴라고 하죠. 가락바퀴
실을 생산하는 수동 도구를 말하죠.
그런데 이 주판할 형태의 가락바퀴는
특징이 뭐냐면
우리나라의 동북 지역인 두만강 지역
그리고 그 위에 있는 지금의 러시아 지역
이쪽하고 연관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면 이게 악의가 잘 맞지 않는 게
어떻게 두만강하고 그쪽 이북의 러시아 지방에서 쓰던
주판할 모양의 방추차가
우리나라 동해가 아닌 인천의 송산 유적에서 나왔냐
이런 걸 경험할 때 연구자들은 상당히 당혹해하는데
그런데 가장 합리적인 판단은
순리대로 해석하는 겁니다.
뭐냐면 두만강하고 그 이북 지역에서 주로 썼다고 하는
주판할 모양의 방추차 가락바퀴가
서해안에서 발견됐다는 건
본래 동북 지역 사람들이
뻔한 먼 길을 다리 품을 팔아서
몹시 다리가 아플 지경으로 걸어서
걷던지 배를 탈 수는 없죠.
중간에 내리고 계시니까
송산 유적으로 이주해왔다는 거죠.
그러지 않고서는 이게 이해가 안 되는 거죠.
원래 서해안 지역의 방추차는 평판형이에요.
원판형으로 되어 있다고요.
우리가 모든 박물관이나 이런 데 보면
우리나라의 가락바퀴가 다 평판, 원판형으로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송산 유적은 동북 지역 형태인
주판할 모양이라 이런 겁니다.
그리고 갈돌과 갈럴, 갈팡이라고도 하는데
쉽게 말해서 음식 식재료를 놓고서
으깨는 그런 도구죠.
그런 것이 너무나 많이 발견이 된 거예요.
그러면 다시 정리를 해보자면
1g 정도밖에 안 되는 가벼운 화살촉이 많이 나왔고
토기 그리고 동북 지역에서 쓰던
그런 스타일의 방추차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숫자가 많은
갈돌과 갈럴.
이게 무슨 뜻이냐.
자, 이것은 송산 유적에 정착했던 사람들은
여성 중심 사회라는 겁니다.
여성 중심 사회에요.
가장 단적인 증거는 이 화살촉이 있어요.
1g도 안 되는 그렇게 가벼운 화살촉을
도대체 어디다 쓰려고 만들었는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가벼워요.
제가 실물을 여러 번 봤어요.
이게 지금 현재 이 유적을 발견한 기관이
서울시립대 발굴팀이거든요.
서울시립대에 이 유물이 거의 있는데
제가 여러 번 이 유물을 가지고
손을 장갑을 끼고 만지면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해봤어요.
이렇게 가벼운 화살이
이거 동물을 죽일 수 있을까? 이거 쏴서
이렇게 가벼운데 어떻게 죽이지?
이런 생각을 할 정도.
그러면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가벼운 화살촉은 아마 모의 훈련용이 아닐까
그럼 누가?
어린 소녀들.
소녀들에게 이 가벼운 화살촉을 가지고
모의 활쏘기를 시켰다고?
왜?
그건 저도 모릅니다.
그건 저도 모르는데
아마 이 송산 유적에 있는 할머니와 중년 여성들은
송산지대 때의 할머니와 중년 여성들은
어린 소녀들에게 활을 만들어주고
활쏘기 연습을 시켰을 가능성이 있어요.
왜냐하면 남성이 적은 사회에서
우리 여성들도 사냥을 해서 먹고 살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어렸을 때부터 연습을 해라.
무거운 거 가지고는 힘드니까 이걸 해.
해가지고 이 가벼운 화살촉을 가지고 연습한 게 아닌가.
그리고 갈돌과 갈럴이 그렇게 많다는 건
여성들이 많다는 거죠.
여성들이 주로 하는 것이
갈돌과 갈럴로 음식을 으깨는 건데
남성이 거의 없었다는 거죠. 이 사회에서.
그런 것처럼 아마존이라고 하는 여성 공간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 것처럼 우리의 인천 송산 유적도
여성 중심 사회의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
그런 시공간이 있었다는 거죠.
이것은 앞으로 더 연구 과제이지만
그럼 왜 여성 중심으로 이루어졌을까.
많은 생각을 하지만 첫째는
남성이 어떤 재난이나
전쟁과 같은 집단적인 다툼의 와중에서
많이 죽어갔을 계연성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문화 인류학자들이 말한 것처럼
남성 재력과 일정의 라이벌 내지
대결 관계에 있었던 여성들이
남성들이 싫어서 여성들만 따로 살았을 계연성이 있는 거예요.
근데 우리 역사에 있어서 현재까지 축적된 연구 자료를 보고인데
남성 재력과 일정하게 그 어떤
흔히 말해서 척을 줘서
대결 관계에 있었던 세력이 있었던가에 대한
논문이 현재 하나도 없어요. 제가 알기로는
그렇기 때문에 그 부분은 굉장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어쨌든 간에 인천 송산 유적이라고 하는 사회는
여성 중심 사회였다.
근데 여성 중심 사회가 설화적으로는 존재합니다.
그게 대표적인 게 서황모 집단이에요.
서황모라고 하는 여성은
굉장히 신비로운 어떤 일종의 신녀와 같은 여성이었는데
자기가 이끌고 있는 여성들을
마치 집단화된 어떤 세력으로 움직였고
자기가 거쳐왔던 곳을
궁궐처럼 축조해서 살았다고
중국의 여러 설화에 한자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근데 재미난 것은
서황모가 나중에 남자들과 척을 쥔 것이 아니라
동황공이라고 하는 또 특별한 남자 세력과
같이 우호관계를 맺습니다.
그래서 서황모가 삼천년에 한 번씩 복숭아가 열리고
삼천년에 한 번씩 열리는 복숭아를 먹으면
장수한다라고 하는 반도라고 하는 복숭아를 따서
동황공이라고 하는 남성 세력을 초대해서 식사 대접을 하거든요.
그게 바로 요지연도라고 하는 유명한 작품이죠.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궁중에서 쓰던 요지연도 같은 경우는
가로가 한 10m가 넘습니다.
엄청 크죠.
높이도 보통 2m 이상이죠.
이렇게 엄청난 그림이 있어요.
그래서 인천 송산 유적이 고과학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여성 중심 사회라고 할 수 있다면
문원설화적으로는 서황모설화 같은 걸 통해서
이미 동방에 상고사에서 성적인 구분을 통해서
분리된 주거사회가 주거공간이 있었을 계열성이 있다는 걸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또 재미난 게 있어요.
이거는 일본의 축파신사 목판 조감도인데요.
여기가 이게 얼마나 재미냐면
이 산에 여기에 한자로 써 있어요.
남체산이라고 써 있어요. 남체산.
이 체자가 몸체자입니다. 몸체자.
남성 몸을 형상한 산이라는 거예요.
오른쪽에는 또 여체산이라고 써 있어요.
안 보이지만 조그맣게 한자로 써 있어요.
이걸 제가 어떻게 하냐면
제가 이것을 제가 직접 구매했습니다.
연구하려고.
정말 넘지 않을 선을 넘었는데
너무 비쌌지만 어쨌든 연구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제가 눈물을 먹고 샀는데
여기에 여체산이라고 써 있어요.
그리고 이게 또 얼마나 재미냐면
이렇게 오다 보면
여기 개천이 있는데
개천도 이게 남성 여성의 성별 구분이 있고
우리가 도리라고 하는 거 있지 않습니까?
일본의 신성공간 앞에 세우는 문을 도리라고 하는데
이 도리도 한쪽은 여자도리
한쪽은 남자도리라고 써 있어요.
그러면 이게 의미하는 게 뭘까?
제가 인천 송산유적이 여성 중심 사회였을 거라고 추론했다고 말씀드렸는데
문헌적으로 보면 중국의 서황모설화를 통해서
성별 분리 주거 형태가 추론이 된다고 말씀드렸고요.
그리고 또 미술 작품으로서는
이 축파신사 목판 조감도가
일본에 있어서도 역시 남성 영역과 여성 영역이라고 하는
성별 구분에 의한 분리주거 영역이 존재했다라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한국, 중국, 일본, 동아시아 3국이 공행히
성별에 따른 분리주거가 있었을 기원성이
거의 부정할 수 없게 되는 거죠.
그러면 왜 분리했을까?
왜 따로 살았을까? 그건 알 수가 없습니다.
연구자는 항상 원칙이 있어요.
모르는 건 무조건 모른다고 해야 됩니다.
모르는 걸 아는 척하는 건 죄악이라고 봐요.
그건 앞으로 따져야 될 문제지만
어쨌든 이러한 성적인 분리주거 영역이 있었다라는 거죠.
아마 이런 시공간 속에서
여성 중심 사회와 남성 중심 사회를 일정하게 움직이는
어떤 룰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질서가 따로 있었을 기원성이 느껴집니다.
좀 전에 말한 거예요.
여기 조거가 일본말로 도리라고 발음하지 않습니까?
어떤 신성 공간을 출입하기 위해서 통과하는 문인데
여기 쓰여 있지 않습니까? 남체조거
이 체짜가 몸체짜를 일본인들이 이렇게 썼어요.
이 체짜거든요.
체육할 때 몸체짜를 일본인들은 이렇게도 씁니다.
남성 몸의 도리라는 거죠.
여기 보면 여체화표
저는 이 미술자리가 왜 소중하냐면
중국의 정영위라고 하는
선사시대 때의 신선이 소개되는데
그 정영위라고 하는 신선이 살았던 곳이 요동이라고 합니다.
근데 그 요동은 선사시대 때는 소위 말하는 고조선이에요.
정확하게 얘기하면 그냥 조선이 맞는데
이련 스님에 의해서 고조선이라고 불리운 거죠.
그래서 상고조선이라고 하는데
상고조선의 신선이 정영인데
정영위가 요동의 신선이었고
그 정영위가 다시 화신한
새로 화신을 했는데 몸을 바꿨는데
그 새로 모양을 바꾼 정영위 신선이
항상 어디에 올라가 있었냐면
화표 위에 올라가 있었다라고 분명히 중국 문원에 써 있습니다.
제가 그래서 이 화표가 도대체 뭐냐
이걸 생각했는데 일본의 축파신사 조감도에
도리이가 화표라고 써 있는 거예요.
이게 무슨 뜻이냐
우리가 알고 있는 도리이라고 하는 형태의 구조물이
일본말의 구조물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상고조선 사회에도 저런 구조물이 있었고
그 구조물 위에 사람 몸이 아닌 새 형상으로 화신한
요동 신선인 정영위가 거기 올라가가지고
앉아 있었다 이거죠.
근데 일본 사람들은 남성문은 도리라고 하고 조거라고 하고
여성문은 화표라고 했어요.
똑같이 도리랑 똑같이 생겼지만 화표라고 썼다 이거예요.
그러면 요동 신선인 정영위는 왜
남성이 아니라 여성을 상징하는
그 구조물에 올라가 있었을까요?
그것도 모르겠어요.
그건 모르겠지만 정영위가 남자라면
여성인, 여성 구조물에 올라감으로써
음향 맞작을 이루는 음향 조화를 이룬다는 차원에서
거기에 올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중국 한문 자료에 의하면
화표 위에 정영위가 올라가 있다고 써 있습니다.
어쨌든 이 축파신사도는 이렇게 흥미진진합니다.
남체산, 여체산 이렇게 화표가 따로 있고
그 안에 가운데 신사가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