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식 강사의 미술로 보는 동양사 강좌 9강 | 미술사로 본 여성이 쓴 꽃 꾸밈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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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대전에서 발견된 청동기에서도 여실하게 증명이 되는데
지붕 모양의 청동기가 앞에도 이러한 수직 구조물이 있고 뒤에도 똑같이 있어요.
도대체 이게 뭐냐 이거죠.
앞서 말씀드렸지만 절대적으로 존경을 할 그분에게 이해를 갖추기 위해서
이것을 여기다 올려놓지 않았을까. 일종의 봉원대라고 저는 봅니다.
여기서의 여성과 남성은 하나가 돼서 우주의 주제자에게 예를 갖추는 그런 입장이 되는 거죠.
이 여성이 온화하고 조용한 성격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아까 말한 것처럼 육아적인 관점에서 매운 가시, 매운 여성으로서의 연료적인 특징을 갖는데
이런 것이 우리의 민족적인 진여, 진여관념, 웅녀와 같은 성격의 여성성과 결합이 돼서
무장형 여성성을 출현하는 바탕이 됐다고 저는 생각이 됩니다.
이 무장형 여성형이 고고학적으로 어떻게 증명할 수 있냐면
길림지역의 한 신석기 무덤 속에서 화살촉이 발견된 무덤이 있는데
이 해당 인골이 여성으로 밝혀졌어요.
여성의 무덤에 화살촉이 분명히 있었다는 것은 화살촉을 활용한 측면이 추론이 되는 것이겠죠.
결국은 여성이 무장을 했다는 것이 이미 선사시대부터 가능한 견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장형 여성의 한국적인 증거를 고민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고구려의 요동성에 당나라 대군이 침입했을 때
거기에 주몽사라는 사당이 있었고요.
주몽사라는 사당에 날카로운 창과 사슬갑옷이 모여 있고
그리고 그 창과 갑옷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라고 전해졌고요.
그리고 당나라의 군사들이 쳐들어왔을 때 주몽사라고 하는 사당 안에서
미녀로서 여성신인 부신을 꾸미고
별도로 또 무당이 고구려 민중들에게 수호신이 있으니
우리 고구려가 당나라한테 멸망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내용이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고구려의 주몽사라고 하는 기록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이미 하늘에서 내려온 날카로운 창과 사슬갑옷이 있었다라고 하는 믿음이 있었다는 거죠.
우리 고구려인들에게 그러한 아주 독특한 믿음이 있었다는 거예요.
아까 12대 영자 문화의 꽃이인 남산근 유적에서
남성과 여성이 칼자루에 서로 앞뒤로 조각이 된 칼의 이미지처럼
고구려의 주몽사에는 날카로운 창과 갑옷이 신성물로서 보존이 되어 있었고
당나라 군이 쳐들어오자 미녀로서 부신을 꾸몄다라는 거죠.
아마 이 부신은 많은 부속행사에서 보는 것처럼
참지창을 들고 군복인 쾌자, 쾌자를 걸친 아니면 갑옷을 걸친 무당들이 많죠.
아마 그러한 형상이었을 거예요.
그런 기록은 없지만 미녀로서 꾸며진 부신은 아마 그런 외형이었을 거다.
왜냐하면 적군인 당나라 군이 쳐들어오는데 부신을 그냥 아름답게만 꾸몄을 것 같지는 않아요.
그래서 이 주몽사 사례를 통해서 좀 전에 설명한 대로 매운 가시, 소위 유가적 입장에서의 연료상,
연료라고 하는 이미지와 전통적으로 땅의 어떤 세계를 대표하는 땅과 같은 가시,
즉 웅녀와 같은 어떤 이미지가 결합이 돼서 무상형 여성성이 등장하는데
한 사례로 저는 가능하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실질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에 보면 무장을 갖추고 활동하는 여성들이 의외로 많아요.
예를 들면 여기 소개하는 것처럼 오동진 장군의 마카 참모였던 이관리라고 하는
아주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여성투사가 있었는데
이것을 제가 논문에서 밝혔는데 그래도 아직은 잘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이관인에 관한 기록이 이렇게 분명히 있어요.
굉장히 간단한 몸에 권총을 두 개씩이나 둘러차고 적군과 혈투를 벌였다는 기록이 있어요.
그래서 상당히 무장을 갖춘 어떤 여성성의 어떤 사례는 많이 발견되는데
또 하나는 동학혁명 때의 항일 여성투사였던 이소사라고 하는 여성투사도 잘 알려져 있는 여성투사입니다.
이 여성투사의 특징은 미모가 너무 출중해서 근처에 있는 많은 남자들이 추군대였다고 해야 되나?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여성은 그걸 단호히 거절하면서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는데
어찌 나 같은 일개 여성에게 눈을 팔려서 할 일을 다 못하느냐.
조선 남성들아 나한테 이런 시간에 외군과 싸워라.
오히려 이렇게 남성들을 가르쳤어요.
그래서 칼을 들고 말을 타고 다니면서 일본과 싸웠는데
그런데 마지막이 애처롭죠.
잔드 드 아르크.
우리가 보통 영어로 표현할 때는 잔드 아르크로 알려진 이 프랑스의 여성이 어떻게 죽어가냐면
영국군과 부하내동한 프랑스의 같은 동고에 배반으로 체포가 되지 않습니까?
이소사라고 하는 여성 장군이 어떻게 일본군에 끌려가냐면
이 미모에 반한 일부 남성들이 계속 추군되면서 찝적되는데 이소사가 그걸 받아주지 않으니까
이 못난 조선 남성 몇 사람이 이소사를 일본에 붙잡아서 갖다 바쳤어요.
이게 있을 수나 있는 얘기입니까?
아니 여자의 몸으로 외군과 일본군과 싸우는 입장을 생각하면 답답하기 그지없죠.
결국 이소사는 어떻게 죽냐면 일본군에 끌려간데도 일본군의 농간과 장난질에 의해서 죽어갑니다.
손톱을 하나씩 뽑으면서 농담을 하면서 그래도 전향을 하지 않겠느냐.
이소사는 손톱이 다 뽑히면서도 전향하지 않고 결국 죽어갔어요.
우리가 프랑스의 잔르드 아르크가 남긴 비참함이 원하면 프랑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땅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을 할 필요가 있어요.
여성성의 무장화가 이루어지는 사례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공동의 현상입니다.
한 예가 죽생도 천녀상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죽생도 천녀를 보면 우리의 천전이 인물의 머리에 꽃다발 형태가 있었던 것처럼 분명히 뚜렷한 꽃 모양이 있고요.
이 여성은 활, 창 온갖 무기를 다 들고 있어요.
그러니까 전통적인 연료의 이미지와 지상의 본화한 여성 이런 것이 융합이 된 형태인 거죠.
이런 무장형 여성성은 이런 변제천녀 그림에서도 더 발전합니다.
아까는 검은 묵선으로만 처리됐지만 채색화로써 강력한 전투력을 갖춘 여성형으로 미술적인 표현이 점점 세련되고 심화됩니다.
이 그림 같은 경우는 굉장히 신비한 느낌이 드는데 이 여성이 있는 곳이 굴에 있어요.
굴 하면 아까 일웅일호에서 말씀드렸지만 환웅이 요구하는 일정 수준의 감내 과정을 통과하던 공간이 바로 굴이지 않습니까.
무장형 여성성이 일본에서는 굴에 있는 여자로 표현된다 이거죠.
이것은 우리 웅료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앞으로 연구할 과제가 되겠지만 물론 단정할 수는 없어요.
일본에서의 무장형 여성이 우리의 웅료설화를 어느 정도 수용한 결과로 그려져 있는지는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절대 장담할 수는 없는데 좀 더 고민을 해볼 필요는 있다는 거죠.
무장형 여성성의 미술적 표현이 갖는 의미는 왜 무장을 갖추었는가인데 무장을 갖췄다는 건 누군가를 진멸시키기 위해서 갖췄다는 거죠.
처 물리치기 위해서 무장을 갖추는 거지 내가 멋있게 하기 위해서 무거운 창 활 온갖 무기를 다 감당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갖추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누군가 타격할 대상이 있기 때문에 갖춘다는 거죠.
무장형 여성성의 인물들이 왜 꽃과 또 연관되는가.
이것은 천전히 암각화해서 말씀을 드린 것처럼 수박이 생기기 전에 수박꽃이 있고 수박꽃 아래 조그마한 콩알만한 열매가 점점 커서 수박 덩어리가 되는 것처럼
무장형 여성성을 갖춘 인물들이 일부의 꽃 문양을 갖춘다는 건 생명태동을 나는 중시합니다.
그러나 이 소중한 생명을 위협하고 짓밟는 세력에 대해서는 내가 활로 쏘고 창으로 무찌르고 칼로 밸 것입니다.
라는 그런 이중적 함의가 있는 것이 아니냐.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래서 전투무장은 행복을 위협하는 그 어떤 대상과 대합하겠다는 견해난 의지를 반영한 것이고
이 꽃은 가정과 사회의 새로운 희망을 산생시키는 의미를 나는 여전히 지키려고 합니다.
새로운 신생아를 연관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겠죠.
그래서 이 월북한 천재 무용가라고 하는 최승희 선생이 자신의 예술혼을 담아서 남긴 이 사진을 보면요.
제가 이전까지 설명한 것을 듣지 않은 상태에서 딱 보면
전설적인 무용가라면서 머리에는 꽃 모양으로 유치하게 달고 있고 왜 저럴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문화사적으로 꽃이 의미하는 것이 생명태동의 상징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천재 무용가인 최승희 선생이 이렇게 엄청난 꽃 모양의 장식 모자를 쓴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거예요.
물론 최승희 선생은 자신이 만들어서 직접 창작해서 쓴 이 모양이 이 꽃 머릿속에 어떤 의미를 지냈는지 문언적으로 남기지는 않았어요.
그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물론 있었지만 그것이 어떻게 망실됐을 수가 있겠죠.
지금으로서는 이 꽃 모양을 갖춘 이 거대한 모자가 하는 의미를 알 수는 없지만 제가 볼 때는 상당히 어떤 생명태동을 상징하는
그 태동을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그런 정서와 기원, 바램이 이렇게 반영이 된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여기서 충북 옥천의 안터선돌에 있는 이 둥근 선각이 가는 의미도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적지 않은 연구자들이 이 둥근 알이 얼핏 봐서는 태양을 상징한다고 착각하기 쉬우나
이거는 악의를 뜻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 악의를 뜻하는 이유는 뭐냐면 이 선돌이 이렇게 배가 불러있어요.
배가 불러있기 때문에 그 악의를 가진 임산부의 모습일 거라는 거죠.
그래서 여기서 이 원형 선각을 통해서 새로운 희망인 그 악의의 소중함을 반영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점점 인구가 감소하는 오늘날 현실을 생각할 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그런 고고학적인 유물입니다.
그럼 인류사에 있어서 이 꽃과 연관된 미술 표현 행위가 어떻게 전개됐는가. 이것도 하나의 과제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인류의 1만 년 정도의 역사를 모두 간추려서 정리하기는 쉽지 않았고요.
제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일란표를 한번 만들어봤어요.
서기전 300에서 400년경에 도자기꽃 왕관과 함께 묻힌 소녀가 파트라스 박물관에 현재 보관되어 있는데
이 소녀의 다른 몸체에 해당되는 인골은 보이지 않고요. 두개골골만 있는데 두개골 머리에 분명히 이렇게 도자기로 만든 꽃 모양 왕관이 있다 이겁니다.
이것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동아시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류 문화에 있어서 꽃이 갖는 생명태동의 상징성을 이미 이렇게 예술 작품으로 미술 작품으로 형상화하려고 했던 노력이 지역을 막론하고 이뤄졌다.
이것은 자크루이 다비드라고 하는 유명한 신고전주의 화가가 남긴 꽃으로 왕관을 쓴 소녀인데 좀 전에 이야기한 도자기꽃 왕관을 쓴 소녀 못지않게 머리에 주렁주렁 꽃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인류의 원시적인 행복이 무엇인가 이런 것을 생각하게 한 그림인 것 같아요.
중국의 도낭지역에 엄청나게 많은 석굴사원이 있는데 그 석굴사원 중에 제322굴에 주실해보면 이렇게 머리에 역시 꽃 모양으로 장식한 이런 불보살들이 주실 벽면에 그려져 있어요.
불교의 상징인물인데 꽃을 중요시한다는 것은 물론 불교의 논리 중에 산화공덕이라는 말이 있어요.
산화공덕은 지상의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꽃 뿌림, 꽃 세례를 선물로 함으로써 꽃이 주는 향긋한 단내, 달짝지근한 향기에 취해서 모든 사람들이 착한 마음을, 착한 보리심을 되찾게 한다는 그런 내용인데
그런 산화공덕과 같은 그런 개념을 생각해본다면 불교 벽화에서 꽃 장식은 특별한 건 아닐 거라고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