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강) 자유를 위해 부름 받은 사람 이승만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다(이승만과 자유민주주의의 시작), #이승만과자유민주주의의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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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수용 올림 -
[음악]
[음악]
자유를 위해 부름 받은 사람
첫 번째
이야기
드디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이승만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지난 시간까지
종의 멍에를 짊어진 채
고통당하던 조선에 조선을 자유케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조선에
온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살펴봤습니다
오늘부터는
선교사들로부터 자유의 불씨를 선물
받은 조선이 어떻게 그 불씨를 큰
불로 만들어가는지 그 위대한 여정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대한민국
탄생의 위대한 여정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잠깐
성경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출애굽기 3장 7절에서 10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들의
고통을 보았으며 그들이 감독관들
때문에
울부짖는 소리도 들었다 나는 그들의
고통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내려온 것이다 내가 그들을 이집트
사람들의 손에서 구해내고 그 땅에서
그들을 이끌어내어 아름답고 넓은 땅
적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인도할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내게 들렸고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을 억압한 것을 내가 보았다
그러니 이제 너는 가거라 내가 너를
바로에게로 보내 너로 하여금 내
백성이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게
할 것이다 지금 읽은 출애굽기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모세라는
이름은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것
같네요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로부터 이끌어내어
홍해를 건너 광야를지나
약속의 땅 가나안이 보이는 모아
평지까지 인도했습니다 그 여정은
약 40년이나 걸렸죠
40년 동안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의 무사히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한 최고의 인도자였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모세와 꼭 닮은 사람이
있다는 걸 아시나요 우리
민족을 조선이라는 아무개 땅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 그
인도자이 사진 오른쪽에서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 사람은 세종대왕의 형
양녕대군의 16대손입니다
1875년 3월 26일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났고
신동
천재였습니다
6살의 천자문을 다 외우고
13살부터
과거의 응시했다고
합니다이 사람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아주 많이 따라다닙니다
최초의 왕족 출신 기독교인 우리나라
최초의 일간지
매일신문 창간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
박사학위 소지자
한국인 최초 미국 내 베스트셀러 작가
우리나라 최초의
신체시 작가 우리나라 최초의 대통령
이쯤 되면이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겠죠네 바로 대한민국의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입니다
이제부터 우리 민족의 자유를 위해
부름받은 사람 이승만 그리고 이승만을
사용하셔서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건국하신 하나님의 웅장한
섭리의 역사를 소개합니다 이승만
박사는 우리나라 건국 대통령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대한민국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오히려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남북
분단의 원흉 부정부패자
독재자
친일파 미국의
앞잡이
6.25 전쟁이 일어나자 국민을
버리고 도망친 사람
학살자
부정선거로 대통령이 된 사람 등
너무나 황당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 오해대로라면 이승만은
지독한 악당입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이런
황당한 말들은
결코 사실이 아닙니다
치밀하게 계획된
역사 왜곡으로 만들어낸 가짜 뉴스일
뿐이죠
왜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이승만 대통령을
악인으로 만든 걸까요 그 이유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허물고 공산주의
나라를 세우려는 것이죠 그래서
공산주의 나라를 꿈꾸던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면서 공을 들였고 그
결과 지금에 대한민국은 그들의 뜻대로
흘러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당연히 알아야 할 건국 대통령을
모릅니다 또 건국 대통령을 오해하고
비난만 합니다 더구나 건국대통령이
공들여 이룩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오해 때문에
이승만 대통령이
눈물로 이루어낸 모든 것을 부정하는
지경까지 이른 것이죠
이제라도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의
흔적을 따라가면서 그가
무엇을 어떻게 왜
그렇게 했는지
진실과 대면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너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먼저 대한민국 건국의 지도자 이승만
박사의 성장 배경과 배재학당을
통해
자유민주주의라는
혁명적 사상을 깨닫고 조선을
구해야겠다는
강한 열정이 불타오르던
청년 이승만을 만나보겠습니다 이승만은
양녕대군의 16대손인 왕족입니다
양녕대군이 세종대왕의 큰 형님인 건
알고 계시죠
1875년 3월 26일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났습니다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왕족이기는 하지만 아무 힘도 없는
집안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단서입니다 그 당시 조선 서북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양반이라 해도 권력이 없고
삶의 형편도 좋지 않았습니다
다른 지역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는
신세였죠 한마디로
인싸가 아니라 아싸였습니다
이승만은 조선의 사대부들이 다 그렇듯
철저한 유교사상을 교육받고
자랐습니다뿐만 아니라 불교를 통해
만사형통을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즉 이승만은 유교와 불교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사람이었다는 것이죠
그는 13살부터 나이를 속여
과거의 응 할만큼 명석했고
뛰어난 인재였습니다 그런 그의 꿈이
무엇이었을까요
장차
과거의 급제에서
왕을 위해 목숨도 기꺼이 바치는
충신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육신
성삼문 같은 충신이 되는 것이
이승만의 꿈이었죠
충신이 되려면
출사를 해야 하고
출사를 하려면 반드시 과거에
합격해야 합니다
워낙 뛰어난 사람이었으니
장원 급제는 당연했죠
그러나
19살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과거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를 맛보아야 했습니다
이유는 이미 합격자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죠
당시 조선조정은
썩을 대로 썩어 있어서
돈으로 당나귀 결정되었죠
그리고 이런 일을 주도한 사람이 다름
아닌 조선의 왕
고종과 왕비 민비였다고 합니다
사치로 바닥 낸네 탕고를 채우기 위해
고종은 아주 열심히 관직을 팔고
과거 합격증을 판 것입니다 그 여파로
이승만은
번번이 낙방이라는 쓴잔을 마셔야 했던
것이죠
설상가상으로 이승만에게 더 불행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바로
과거 제도 폐지
이승만이 19이 되던 1894년
갑오개혁이 시행되었고
과거제도가 완전히 폐지되면서 이승만의
꿈도
산산조각 나버렸죠
과거제도 폐지는 사실 이승만을 위한
하나님의
서프라이즈 선물이었다는 걸 그땐
몰랐죠
미래가 어두워진 이승만에게
친형제처럼 지내던
신흥우
신금우 형제가 배재학당
입학을 제안합니다
신금호의 손에 이끌려 배재학당의 발을
들인 그날 이승만은 배재학당 입학을
결심하게 됩니다 배재학당의
신문물은 이승만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고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죠
그날의 그 결정이 이승만 자신과
민족의 미래를 바꾸어 놓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걸 이승만은 알았을까요
[음악]
1895년 4월 2일 이승만은 그의
나이 20살에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배재학당의
입학했습니다 그 목적은 영어를 배워
새로운 삶의 길을 찾는 것 그리고
신기한
서양 학문 탐구였습니다
그는 배재학당에서 아펜젤러 선교사의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유교적 세계관에서 자란 이승만에게
아펜젤러 선교사의 설교는
괴상망측하게 들렸습니다 설교의
핵심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것이었죠
놀라운 일들을 한다는 사람들이 왜
저렇게 바보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지
어떻게 이런 터무니없는 교리를
믿는다는 말인가
위대한 부처님을 알고 공자의 지혜를
아는 유식한 학자는 저런 교리를 믿을
수 없다
유교를 신봉하는 자신이
현명하고
똑똑하다는
확신의 차 있었습니다
아들이 배재학당에서 공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승만의 어머니는
서양귀신 믿는 그런 학당에 들어가면
어떻게 하냐며 이승만을
걱정했다고 합니다
그때도 이승만은 자신만만하게 저는
그들이 하는 말을 믿기에는 너무
총명해요라고
답하며
절대 예수를 믿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어머니를 안심시켰습니다
그러나 이승만은
결국 그 이상하다던 예수님만이 자신과
나라를 구원할 유일한 분임을 고백하게
되죠
이승만은 아펜젤러 선교사의 설교를 잘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설교를 듣는 이유는 선교사의 말
실수를 잡아내거나
헛점을 찾아내서 공격할 목적이었죠
물론 나는 주의 깊게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지만들은게 있다면 비판하기
위해서거나 반박하기 위해서였다라고
자신의 비망록에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승만은 배재학당에서
무엇을 배웠을까요
그는 영어를 배울 목적으로 배재학당의
입학했다고 했었죠
이승만의 영어 습득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습니다 영어의
기초를 배우고 난 후
파이팅 선교사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그의 영어 실력이 더 급속히 성장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얼마나 영어 실력이 급속히
향상되었던지 배재학당의
입학하고
6개월 만에 배재학당 신입생들의
영어교사가 되었다고 하니
정말 놀라운 실력이죠 그리고
졸업할 때는
졸업생 대표로 유창한 영어 연설을
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그의
탁월한 언어 실력은
후일 한성 감옥에서 영어 원서를
읽으며 세계 정세를 파악하고
통찰력을 키워가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죠
이승만은 배재학당에서 영어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자유와
평등 그리고
민주주의입니다 그는
민주주의가 조선을 살릴 가치라고
확신하게 되었죠
선교사들은 모두 미국
선교사들이었습니다
이승만은 그 중
벙커 올린 거
헐버트 선교사 등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선교사들이 들려주는 미국의 민주주의는
이승만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특히
종이의 기표하여 나라의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는 이승만의 마음에
큰 충격과 함께 조선을 바꾸고 싶다는
꿈을 꾸게 했죠
이승만은 선교사들과
깊이 교제하면 할수록 조선의 모든
사람은
평등한 기회와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신념이 더욱더 분명해졌습니다
이승만이 배재학당의 입학했던 그 해
갑신정변으로 인해 미국으로 떠났던
서재필 선생이 배재학당의 교사로
합류했습니다
이승만은
서재필과 교제하면서 조선을 살릴
유일한 방법이 자유와 평등을 기초로
한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을 더욱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승만은 내가 배재학당에 가기로 한
것은 영어를 배우려는
큰 야심 때문이었고 그래서 나는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나는 영어보다 더 귀중한 것을
배웠는데 그것은 정치적 자유이다라고
고백했죠
이승만은이 중요한 가치를 마음에 품은
그날부터 조선의 민주주의가 실현되기를
기대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내가이 나라를 위해
무엇이든 해봐야겠다 이승만의
마음에는 자신이 조선을 구해야겠다는
강한 열정이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이승만은
신문을 통해 조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 했습니다
협성 회보의 주필로 활동하면서
조선조정을
신랄하게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 비난은 진실이었고 이승만의 글은
날카로웠습니다
따라서
고종과 조선 조정의 심리를 아주
불편하게 만들었죠
선교사는 이승만을 보호하기 위해
협성 회보의 글을 싣기 전 자신에게
검열을 받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아펜젤러 선교사의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이승만은
스스로 신문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는
매일 신문을 창간합니다
매일신문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으로 우리나라 신문 역사에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 제국신문과 독립신문에서 주필로
활동하며 무능한 조정을 비판하고 조선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만민 공동회라는
대중 집회를 열어 사람들 앞에서 직접
연설하면서 지금 조선의 현실과이
혼란한 상황을 극복할 방법은 오직
민주주의라는
새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 뿐이라며
조선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위기 가운데 있습니다
여러 강대국이 조선을 둘러싸고
서로 조선을 집어삼키려 하는데 우리가
힘을 내서
외국의 힘을 물리치고 우리 스스로
조선을 다스릴 힘을 기릅시다라고
말이죠
1898년 3월 11일 열린 만민
공동회에서는
러시아 저령도조차 반대 연설을 통해
세계 열강이 우리를 집어삼키려는 것을
보고만 잊지 말고
힘을 모으라고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이승만은
신문과 만민 공동회를 통해 조선을
빼앗으려는 일본
러시아 영국으로부터 우리나라 주권을
지키고 독립을 보존하자는 주권 수호
운동과 무능한 조정 대신들 나와라
군주제를 개혁하자라고 외치며
입헌군주제 개혁을 주장했습니다
다른 나라의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 주권을 행사하는 나라가 되자는
주권 수호 운동 그리고
왕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정치는
정치가들에게 맡기자는
입헌군주제
이승만의 이러한 강력한 주장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갑신정변과 텐진조약 그 결과물인
청일전쟁 그리고
을미사변과 아관파천 등의
굴욕적 역사 속에서
고종과 조정 대신들은 반성 없이
점점 더 나라를 망쳐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이
러시아와 일본은 조선을 빼앗으려
으르렁거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종에게는
입헌군주제 개혁이 마치 역모처럼
느껴졌고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서
눈치만 보던 조정은 주권 회복엔
관심이 없었습니다
결국
고종은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탄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반발과
계속되는 항의에
견디다 못한
고종은
1898년 11월 29일
독립협회와 만민공동의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허니 6조 실시를
약속했습니다
허니 육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외국인에게 의지하지 말고
관민이 한마음으로 힘을 아파요
전재환권을 견고하게 할 것 2
외국가의 이권에 관한 계약과 조약은
각 대신과 중추원 의장이
합동 날이나요 시행할 것 3
국가재정은
탁지부에서 전관하고 예산과
결산을
국민에게 공표할 것
4 중대 범죄를 공판하되
피고의 인권을 존중할 것
5
책임관을 임명할 때에는 정부의 그
뜻을 물어서 중위의 따를 것
6 정해진 규정을 실천할 것
그리고 이승만 남궁옥 등
50여명을
종 부품 중추원 의관으로 임명했지만
결국
고종은 허니 육조의 약속도 지키지
않았고 12월 23일 만민 공동회를
해체하라 명령했고 이승만과 그의
동지들을 체포하라는
명령까지 내렸죠
이승만이 체포된 배경에는 조정 대신들
특히 친노파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고
고종의 마음도 동일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이 이와 관련된 기록이
있습니다
1899년 1월 2일자 상소의
내용입니다
우남을 역적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결국 이승만은
1899년 1월 9일 24시 되던
해에 한성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이승만의 죄목은
고종 페이 모의와 공화제 실시 음모
가담이었습니다
오늘 내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유교와 불교 세계관에서 자란 이승만
조정의 출사하여
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충신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그는
배재학당에서 자유와 평등
자유민주주의를 알게 되었고
자유민주주의가 조선에서 실현되기를
꿈꾸었습니다 그는
신문과 만민 공동회를 통해 조선
백성을 깨워 조선을 개혁하려 했지만
한성
감옥에
투옥되며이 일이 자신의 신념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