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길 시간여행 - 김태순 해설사

우리역사바로알기
147 팔로워
본 강의의 내용은 (사)우리역사바로알기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본 동영상은 국민들의 소중한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후원계좌 : KB국민 361-01-0024-405 (사)우리역사바로알기
#덕수궁 #우리역사바로알기 #시청광장 #돌담길 #서울시립미술관 #아관파천 #러시아공사관 #카이로스 #기회의 신 #대한제국 #보빙사 #김수근 #촛불시위 #근현대사 #키치문화
[음악]
예 제목은 정동에서 만나는 카이로스요
이게 시간 여행이에요 우리가 근거를
해설 하거나 혹은 어디에 가서 무엇을
보든 가장 중요한 건 저는 그
시대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시간
여행을 정했고요 카이로스에 대한
설명은 다음 화면에서 하겠습니다
정동은 이렇게 다섯 코스로 나누어서
보통 굉장히 길기 때문에 하루에 할
수도 없고 하루에 해 알아들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곳이 정동이
그래서 우리는 오늘 아마 모르긴해도
외교 타운 타운 정도 돌아갈 겁니다
그리고 이제 카이로스에 대한 설명을
왜 얘가 카이로스가 설명을 하면 얘는
어 그리스 로마 신하이 하면 기회의
신이에요 앞에는 머리카락이 있고 뒤는
대머리에요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앞에서 머리를 잡아야 되지 아니면
놓치면대 머리기 때문에 다시는 기회를
잡을 수 없다고 말하는 기회의 신인데
그거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우리나라
말로 하면 시간은 시간 하나밖에
없는데이 그리스로마 그러니까 그쪽에서
사용하는 언어로는 시간은 두 개예요
하나는 카이로스의 시간이 있고 하나는
연대기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이에요
그러니까 그 연대기적으로 흘러가는
시간 어 그 시간에서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스무살에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틀리니까요 그래서 흘러가는
시간이고이 카이로스의 시간은 바 바로
그 시각 바로 바로 그 시각이이
시각에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게
맞아요 어 단편적으로 예를 들자면
그런 거예요 내가 첫 사랑을 만나서
첫 키스를 했었던 시각 그 시각은
영원히 그 시각이 내가 나이를 많을
먹든 시운을 먹든 예선을 먹든 바로
그 시각이 돌이킬 수 없는 뭐 우리는
여자들이 여자들이라면 첫아이를 낳았던
기억 바로 그 시각을 카이로스 해요
그래서 이건 기회의 신보다는 우리는
예 시간의 흔적으로 바라보는 거죠
그래서 그 카이로스의 시간을 우리가
정동해 보는 거예요 연대기적으로
흘러가기 한 140년이 흘러갔지만
카이로스의 시간 그들 그러니까 그들도
연대기적으로 그냥 살았겠죠 밥을 먹고
사랑하고 일상을 살았겠죠 그런데
그들도 어느 시간 바로 그 시각에
만들어 놓은 물건들이 바로 정독에
남아 있고요 오늘 우리가 살아가면서
바로 그 시간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 먹고 일상 생활을 했던
시간이 아닌 바로 그 시각 그 두
개의 시각이 만나는 지점을 원했기
때문에 그래서 그들이 140년 전에
살았던 카이로스의 시간과 오늘 내가
그들이 살았던 시간 안에서 만나는
카이로스를 만나는 그 시간 때문에
제가 카이로스 아고 이름을 명명했고
오늘은 바로 그렇게 시간과 시각과
시대를 보는 그런 시간입니다 여기는
서울 광장입니다 어 정동을 하면서
서울 광장을 갑자기 늘어났는데요이
서울 광장은 6 70년대를 살았
사람들은 여기가 차가 많이 다니고
복잡했어요 우리한테 이렇게 돌아와
있지 않은
광장이었다이 광장이 처음 이제 우리
소위 시민들에게 돌아온 거는
2002년 월드컵 때 기억하시죠
그래서이 광장이 언제 만들어졌냐
여쭤보면 대부분 2002년 광 예
월드컵 때 만들어졌다고 기억을 해요
근데 원래 고정 황제가 만든 거예요
고종황제가이 광장을 만들었을
때에는어요 앞에가 바로 덕수 죠
정동의 중심은
덕수궁입장료
소공로 을지로 또 정동으로 들어가는
길 이렇게 여러의 길이 있으면서
방사형으로 뚫려 있어요 우리가 흔히
무심히 봐서 그렇지 이게 방사형
도로의
중심이에요이 고종황제가이 광장
만들었던 이유는이 안에서 표 미니를
표출하라 만든 거예요 억울한 일 있고
왜냐면 황제가 이미 덕수궁에 와
계시기 때문에 억울한 일이 있고 슬픈
일이 있고 내가 꼭 말해야 될 일이
있으면 여기 와서 말하라고 만든
광장이이 광장은 어디를 보고 만든
광장이면 워싱턴 DC 그때 보빙사의
갔었죠 보빙사의 가서 보고 워싱턴
디시를 봤어요 그러니까 거기가 방사형
도로로 뚫려 있거든요 근데 그럼 그
워싱턴 디시는 어디를 벤치마킹 한
거냐 하면
프랑스에도 강장이에요 예 전체
방사형으로 뚫려 있죠 모양은 같지만
철학적 사유가 처음부터 틀렸던
공간이에요 그 에두 강장은 나폴레옹
삼세가 우리가 흔히 잘 아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일어났을 때
그다음에 2월 혁명이 일어났고요이
대모를 진압하기 굉장히 어려웠어요
왜냐하면 어 그 미로처럼 되어
있거든요 애 장이 그래서 지금 그렇게
고풍 찬양해 보이는 파리는 프 나플
이후의 건물이에요 그래서 그 재
모델를 잡기 위해서 그 건물을 다
헐고 방사형으로 도로를 뚫으면서 그
건물을 지었어요 왜 방사형으로 도로를
뚫었냐고 기병대가 달려가서 데모대를
잡기 편하게 그러면 데모를 하다가 그
도로 골목으로 들어가면 숨어요
사람들이 그 골목 안으로 어느 집인
가로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한게 위에서 내려다 보면 그 방사형
도로의 건물들이 굉장히 특이해요 검
땅이 세모 모양인데도 집이 있고 땅이
동굴에 집이 있고 땅이 마름 모래도
집이 있어요 왜 다 집을 지어서 골목
아에 숨거나 민가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게
에뚜알 강장이에요 나중에 언젠가 뭐
빠리에 가서 보시면 내려다 보시면
그걸 아실 수 있어요 그 그런 반면에
그렇게 만들어진 반면에 우리 서울
광장은 그렇지 않아요 이게 미니를
표출하고 언제든지 억울한 신민이 와서
말하도록 그래서 실은 많은 사람들이
덕수궁의 정문이 나문이었는데 문이죠
동문으로 뚫린 이유 중에 하나도
그거예요 신민들이 와서 억울한 일을
사정하고 신민들이 나를 만나러 놓는
광장을 만든 연우 광장은 사실 서양
거죠 우리게 아닌데 그렇게 벤치마킹
했는데 내가 돌아 앉을 수 없다 물론
태평가 뚫리면서 했던 물리적인 부분도
있지만 내가 돌아 앉을 수 없다 해서
동문인 대한문을 만들었다고 일견 그런
얘기들도 있어요 근데이 광장이 이제
고정 황제가 만들었으니까 근현대사를
한눈에 관통 하고 볼 수 있는 광상이
흔히 할 수 있는 만민공동회 아든
60만 세 사건이라든지 삼일 운동이라
그가 기타 등등 그 일제 강정기 모든
사건이 여기서부터 시작했고 그것이
넘쳐나면 종로통 나가게 되고 이렇게
나갔던 그런 현장입니다 현장이고
현대에 들어오면 우리가 6월 민주
항쟁도 여기에 있었고요 6월
민주항쟁이 있었을 때 그여 그 후에
이제 2년 월드컵을 했죠 그러니까
정치적인 의미의 광장이 문화 의미의
강장으로 변화한 거예요 문화적 의미의
강장으로 변화하면서 그 월드컵을 할
때 있었던 사건이 미선이 효순이
사건이 있었어요 예 미선이 효순이
사건이 있으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낮에는 월드컵을 응원했지만
밤이 되니까 그 이걸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생각해서 밤에 떠들면 안
되잖아요 주변 상가의 민폐고 이러니까
촛불을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촛불
시위의 표시예요 여기가 어 여기까지
하면 되게 지루하고 재미 없어지죠
재미 일이 있어요 어
박정희 대통령이 군사 구태를 성공해서
들어왔을 때 첫 번째로 찍었던 사진이
청와대가 아니고 여기예요이 광장에
왜이 광장에서 찍었냐면 지금도 구글에
다녀요 이게 차지철이 아든 그런
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어요
있는데 그들이 여기에 이렇게 사진을
찍었던 이유는 뭐냐하면 우리이 광장에
설 수 있어 미니를 표출하고 미니를
대변하는이 광장에 우리 있어 그러니까
우리 구테타 아니야 우리 혁명이야라는
모습을 한 눈에 보여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프로파간 다죠 그걸 딱 했던
장소입니다 그랬던 장소가 지금은
시민에게 돌아와서 이렇게 남아 있어요
그래서이 광장이 그냥 지나가면 굉장히
겨울에는 스케이트 하고 요거는 아마
어 계절이 지나가는 대라 아직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데 여름에는
잔디도 하고 굉장히 많은 행사를
하는데이 광장이 주는 의미가 있어요
어떤 광장이 어떤 장소도 하나 한번
명명이 되거나 지목이 되면 변하지 잘
변하지 않잖아요 청와대가 옛날에 뭐
경무 되었다가 변화하듯이 변화하지
않는데 그래서이 광장을 미래 유산에
등재했다 우리는 어 궁궐이라는 도사이
아든 이런 것만 문화유산이 되는지
아는데 어 장소가 문화유산에 등재가
되는 그런 장소입니다 그래서이 장소를
빼고는 정동을 이해하기 어렵고 또
고정 황제가 만들고자 했던 그니까
고정 황제가 그럼 왜 외국을 흉내내
가지고 이런 광장을 만들었을까 생각해
보면 고종이 살았던 세대는 어 우리가
생각할 때는 어 그랬어 이렇게 생각하
그 시대가 그랬을 것 같지만 이런
유모가 있더라고요 어 조선시대 사람이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까지
오면이 살아
간대요 적응해서 살아가는데 스마트폰이
나온 이후에 오면 못 살아 간대요
워낙에 획기적인 정말 너무나 변역이
심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처럼 고정
황제도 국가에서 살다가 갑자기 전
세계적으로 산업 혁명에 대해
자본주의가 흘러들어와 그레이트 게임이
시작되는 너무나 엄혹한 시절에
살았잖아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굉장한 충격파를 받았는데 그래도
그분이 바랬던 건
공부해서음 뭘 바르냐 하면은 서구화를
통해서 근대 국가를 만들고 근대
국가를 만들어서 부국강병을 원했던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서구화를 마
그래서 덕수궁 안에 건물도 시대에
따라서
동쪽에는 전통 건물을 서쪽에는 서양
건물을 지었던 그 모습이 있는 거예요
시대에
따라서음 그리고 이제 여기는 제 서울
광장을 지나서 바로 나오면 덕수궁
돌담길이 덕수궁 돌담길 있데 우리나라
돌담은 저렇게 쌌습니다 네모
반듯반듯하게 어 마른 먹골로 되어
있는 건 일본 식이에요 견치석이라
그래 가지고 그래서 우리나라 전통의
담장 앞에 보면 한 4년 전에 요렇게
되어 있었어요 근데 지금은 여기가
어떻게 돼 있냐면 도로가 되어 있어요
이 도로를 여기를 왜 만들었느냐
하면은 어 도시가 발전하고 사람이
발전할수록 자꾸 차가 막히는 거예요
차가 막히니까 이제 도시국 이라든지
서울 시라지 얘기를 해 본 거죠 우리
맨날 맨날 아무리 도로를 넓혀도
아무리 도로를 넓혀도 늘 막히니까
반대로 한번
가보자 좀 천천히 가는 곳을 만들어
보자 그럼 어디 가서 테스트를 해
보겠어요 그래서 여기서 테스트를 해
보는 거예요 이렇게 페이브먼트
만들어서 차가 천천히 갈 수 있도록
지나는 갈 수 있지만 진입 통로를
힘들게 만든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길을 만들어 본 거예요
물론 어디에 허락을 받으면 되냐면요
입구의 사람들한테만 허락을 받으면
돼요 그래서 그 사람들은 허락했는데
저 안에 상가가 난리났죠 왜 뭐
때문에 이걸 길을 막느냐 우리 장사
못 하게 그런데 걷는 길을 만들고
유모차가 다니기 시작하니까 장사가 저
안에가 잘되는 거예요 그래서 느리게
가는 도로를 만들어온 시예요 그니까
동이라는 데가 이제 우리가 공부해
가면서 알겠지만
현대를 우리의 현대의 삶을 규정하는
시작점이 많아요 교육이라는 의료 문화
뭐 기타 등등 많은데 현대에서도
도로의 시작을 한번 만들어 본 거예요
요런 도로를 어디서 또 만드냐 신천로
만들어요 신천로 워낙에 이제
비싸지니까 비싸 어디로 그게 옮겨
가냐면 홍대앞으로 옮겨가는 거예요
홍대앞으로 옮겨가서 지금 홍대앞은
너무나 임요가 비싸 가지고 프랜차이즈
선밖에 없어 없어요 그래서 신천로
그래는 관이 아니고 미이 아 우리도
차한 다니는 길을 좀 한번 만들어
보지 이래서 관가 어울려서 차가 안
다니는 길을 만들자 그 거리가
살아났다고 해요 그래서 거기서
장사하기가 좀 쉬워졌다 그 후에
코로나가 왔기 때문에 어쩔 순 없는데
그럼 지금은 왜이 돌을 다 걷어내고
페이빙 스톤이다 페이빙 스톤을 다
걷어내고 왜 도로를 깔았나 하면
요코가 하도 많이 오는 바람에 그들을
실어나르기 불편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도로로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게
페이빙스톤 때도 봤고 지금도 보고
있습니다 근데 지금 뭐 코로나도 왔고
중국까지 사이가 안 좋아 가지고요
커들이 오진 않지만 현재는 어쨌든네
도로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보 한 가지 어 정동이 중국가
서울시가 절대 포기하지 않은게 있어요
이걸 도로로 만들어서 어 요코를 실어
나르게 만들었지만 가장 쉬운 방법은
저 나무 다
잘라내고 인더 조금 만들고 4차선이
2차선 도로로 수도 있어요 근데 안
했어요 안 하고 그 가운데만 만들어
놨어요 곡선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그래서 어는 났으나 완전히 열지 않은
그래서 정도은가 보면 곡선의 도로가
굉장히 많아요 그걸 포기하지 않는
그런 대목입니다 요게 역사와 시대에
따라서 렇게 곡선이 곡선으로 들어나지
이거 그리고 넓혀 놓지 않았잖아요 혀
놓지 않았던 예 고심이 있는
도로입니다 여기는 이제 덕승 관련이
있는 덕수의 공역은 지금보다 세배는
넓었어요 어디까지냐 하면 저
동화면세점 앞에부터 시작해서 그
뒤에서 저기 돈의문 앞까지 그니까
옛날 도이은 그 도로까지 시작해서 예
지금 미술관 있는데까지 다 덕수의
영역이었는데 어 거기 덕수의 영역을
넓혀 갈 때 근처에 뭐가 있었냐면 예
공사관이 많았는데 다른 공사관은 안
배 주겠다고 해서 대표적인 게 영국과
미국입니다 근데 비어 주겠다고 한
공사관이 있었죠 독일 공사관이 지금의
시린 미술관 자리에 있는 그래서이
담을 헐고 공역을 넓히면 됐는데 그
안에 어 이름 있는 공사관이 많죠
힘센 공사관이 많죠 그들이 지나가는
길을 마련해 달라고 했기 때문에 길을
막을 수가 없어서 그냥 여기다 운교로
났어요 독일 공사관 아지 그니까 지금
시리 미술관까지 운교로 났어요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한 번쯤 교를 어 지금
제가 말머리에 말하기를 힘 있는
공사관이 많았다고 얘긴데 그런 것들을
다 지우고 현대 우리를 생각해 보면
굉장히 중요한 땅값이 얼만데요 저걸
과연 사람들을 위해서 은교를 만들었을
건가 한번쯤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어요 140년 전에 그랬지만 지금
우리는 과연 운교로 만들 것인가 아닐
거요 아마 밀어내고 어 도시가 어떻게
흘러가든 상관없이 그냥 밀어냈던
거예요 그런데 걸어갈 수 있는 도로를
만들고 운결 만들었다는 건 뭐 시대적
상황이기도 하지만 한 번쯤 우리가
도시를 재생할 때라던가 도시가 어떻게
꾸며져야 할 건가 생각해 볼 때
생각해 볼 그런 지점이어서요 담을
넣었습니다 예 요렇게 결을 만들었다는
거예요
덕수궁에서 지금 그 시리 미술관
자리까지 독일 공사관 그래서 거기에
지금으로 말하면 기재부를 둔
거예요 예 그다음에 이제 정동사거리
목판에 가면이 꽃이 보여요 얘는
장미빛 인생이에요 최정아 시
작품이고요 최정아시는 남자 설치 미술
갑입니다 어 제가 정동 사거리에서이
장미꽃을 왜 보느냐 하면 예 키치
문화예요 어 정동이 아는 데가
140년이 묵은 오랜 동네 아아 오랜
동네임에도
불구하고이 문화를 갖다 놓은 거죠
물론 최정아 씨는 어 우리나라의 현대
미술을 말하면서 분을 뺄 수는 없어요
뺄 수도 없고 이분은 뭐 리운 미술
간에도
국립 현대 미술관에도 있고 뉴욕
미술관 앞에도 이분은 그림이 설치
미술들의 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걸
소위 말해서 이제 키치 문화 다시
말해서 이그
문화예요요 뒤에 있는 뭐가 있냐면
시린 미술관이 있어요 굉장히 중요한
그니까 우리나라의 고급 문화라고 소이
고급 문화라고 말하는 그런 문화가
있는데
있죠데이 키치문화이 문화는 자본주의를
빼고 설명할 수가 없어요 자본주의가
들어오기 때문에 키치 문화가 하는
거예요 그 대표적으로 현대로 말하자면
싸이 예 그게 기치 문화죠 그 이익금
문화가 가지고
있는 그 아름다움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싫어하는 분들은 굉장히
싫어하지만 어 저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기치 문화가 있어야 된다는
누구나 고급 문화 누구나 예 크래식
문화에 접할 순 없잖아요 그래서음
저는이 명 정동사거리 안에이 장미빛
인생을 보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판결도 쉽게 접하게 됩니다
예를 쉽게 들자면 이건예요 그냥 제가
코로나가 심했을 때 생전 보지도 않던
미스터 트로이는 그걸 봤었어요 그걸
보면서 거기서 그 김호중이 가수가
있더라고요 그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데
저의 아들을 붙들고 그랬어요 만약에
나 같은 엄마가 있어서 난 저거
죽어도 안 시킨다 어 봉황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오동나무 오동나무 가지가
아니면 안 앉고 뭐 이런 의미가
있는데 네가 왜 대중 가요를 하느냐
난 죽어도 안 시켰을 텐데지가 하고
싶은 걸 하는구나 어 쟤는
자유롭겠지만 웃고 나가는데 그
뒷모습을 보면서 내가 알았어요 아
내가 대단히 문화적으로 편견이 있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우리가 존재가
얼마나 가벼워요
정말이 장미빛 인생 앞에가 서면 제가
존재 깃털 같은 존재의 가벼움을
느껴요 그래서 우리가 모두가 다음
오리지널로만 살 순 없는 거예요 어
저는 이제 좀 나이도 먹었고 제가
이제 다른 사람의 눈을 현혹하고
싶으면 다이아몬드를 주렁주렁 주렁
달고 이렇게 탁 나가면 사람들은 뭐만
보냐 다이아몬드만 봐요 어 부자가 봐
막 모피코트를 이렇게 나가면 어
부자가 봐 근데 어떻게 내 인생이
다이아몬드 피로만 이루어질 순
없잖아요 그런 것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저는이 키치 문화가
가지고 있는 유형성과 함께 어
아름다움 그리고 키치 문화를 우리가
어떻게 수용해야 되는가를 정 거에서
한번쯤 공부해 봅니다 예 이게 이제
최정아 씨의 숲이라는 작품이에요 예
이분이 주로 하는 건 플라스틱
바구니를 이렇게 쌓아
올려요 이게 어디에
있었냐면 성복동에 전시되어 있었어요
당연히 없어졌겠죠 지금은 이번의
작품은 오래 가지 않아요 지금 장미빛
인생도 거 막 지금 현재는 막 7
7이 벗겨졌어요 언젠간 수 그니까
없앨 것 같습니다음 요게 우리 저
미술관에 있는 거예요 예 저기
요그르트 병이고 다 그런
거예요 요건 리은 미술관에 있어요 예
제가 리움 미술관에 갔을 때 이걸
보고 아 여기 있구나 하고 발견했어요
예 그다음에 이제 여기는 그 장미빛
인생 뒤로 올라가면 시리 미술관이
있는데 거기에 터가 요렇게 움직였다는
거예요 유경 공원 터는
어 1886년에 원어민 교수 즉
우리가 잘하는 헐버트든지 이런 분들
모셔와서 고정 이 지금 돈으로
개인에게 150만 원씩 용돈을
줘가면서 가르쳤어요 원어민 교육을
가르쳤어요 나중에 자금이라는 이런 것
때문에 못했지만 여기 일래
졸업생이 이완
영이에게 잘했기 때문에 미국으로
유학도 갔고요 유학 갔다 와서 첫
번째는 맡은게 교육부 장관이었고 어
그래 보면 우리가 과연 요즘 아이들을
교육시킬 때 공부 잘해 잘해 하고
시키는게 옳은 건지에 대해서 한번쯤
되돌아보는 지금 시대와 비교했을 때
그리고 독일 영사관 터가 있었고요
독립 신문사가 있었던 곳입니다 그리고
이제 지나서 여기 시인 미술관 아까
말했던 독일 영사관이 있었던 곳이죠
어 여기도 설명을 하자면 조금
긴데요 건물은 뭐이 앞면과 뒷면을
연결한 그래서 과거의 모습 앞에는
그대로 두고
뒤에는음 그냥 새 건물하고 연결한
그런 건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
답사와 관광의 차이점 관광은 옛날에
과거 시험 보로 가는 걸 관광이 라
그랬어요 그건 뭐냐면 광영 된 걸
본다는 거죠 어 영광스러운 임금님의
얼굴을 보러 가는게 관광이 그러다가
그게 이제 변화해서 놀러 가는 걸
관광이라고 하죠 그래서 우리는 관광
가면 번쩍이는 거 보러 가는 거예요
근데 답사는 아니에요 답사는 이면을
보러 가고 깊이를 보러 가는 거죠
그래서 위를 보는게 아니라 아래를
보고 깊이를 보는게 바로 관광이
그래서 이것이 남아 있게 된 거는
1995년 김영산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어 그때 갔어요 그때 서초 으로
대법원이 옮겨가고 여기에 있어요
여기에여이 시리미 수간에 와서 이게
옛날에 대법원 자리예요라고 얘기하면
아무도 어 그래요 대법원 자리였어요
그래서 그 전에는 경성 법원 자리예요
그러면 아 그랬어요 아무런 비분
관계를 하는 분이 없는데 서대문
형무소 가면 흥분하지 우리 모두 다
속상해하고 여기서 언더에서 보내지
않으면 서대문 형무소는 안 갑니다
그래서 이게 굉장히 가슴 아픈
건물이죠 생각해 보면 예 그 전에
물론 뭐 독일 공사관 이런 것도
있었지만 우리가 기억하기로 경성
재판소 대법원 자리가 있던 자리고
여기저 뭐 가정 법원도 있었고 그랬던
자리인데 그렇게 비분 관계 할 수
있는 그런 대목이에요 여기 오면은
그런데 그때 1995년에 김영선
대통령이 들어오면서 제일 먼저 한게
하나 뭐 제일 그분도 망설였다가
했겠지만 하나에 착하고 그다음에 금융
실명제 하고 그다음에 이제 문화 우리
민족문화 바로 세우기 하면서 이것도
헐어 버리려고 했었어요 그랬다가 아
그러는 건 아니다 어 보고 배우고
경험하는게 중요하다 그래서 네거티브
헤리티지 남겨 두는 것이 맞다라고
생각해서 이제 국민 문게 민도가 좀
성숙한 거죠 그래서 이게 남겨둔
거예요 근데 남겨두면서 그냥 남겨둘
수가 없었기 때문에 앞면 파사드는
살려두고
뒤하체이에요 즉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일상을 쭉 살아가잖아요 익숙한 걸
익숙한 것으로 보면 답사가 아니죠
익숙한 걸 익숙하게 보지 않는게 사예
어 예를 들자면 근대가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물으면
어 우리가 흔히 말하기를 대원군이
집권했을 때 아니면 운요 사건으로
인해서 일본이 하고 강화도 조약을
맺었을 때 이런 것들이 물리적인
거라면 다른 걸로는 선비들이 해국
도지를 읽었을 때가 근대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계세요 해국 도지는
바다의 그림이 있고 다른 나라를 볼
수 있는 그러면 그들이 어딜 여행 간
것도 아니고 일상을 살다가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게 보기 시작하면서
근데가 시작된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도 일상을 살아가면서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게 보는 것 그게
우리 공부의 시작이며 우리 시대를
새롭게 열어가는 시대 정신을 바라보는
시작점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술
간에서 미술만 보지 마시고 시대도
한번 읽어 봐 주시면 고마울 거
같아요
어 예 여기는 배제학당
있니다음 배재학당은 뭐 특별히
우리 신문화의 시작이죠 신문화의
시작이고 근데 이걸 저희는 왜 여기다
넣었냐면이 학교가 지금은 어디로가
있냐하면 고덕동에가 있어요 그래서
사대문 안에 있는 학교들이 전부
어디로 갔냐면 강남으로 갔어요
강남으로 가면서 그 위상들은 지키고
있어요 누구든지 지금도 경기고등학교
가고 싶어 하고요 희은 고등학교
들어가고 싶어 하고요 예 다 들어
강남에 있는 학교들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데이 학교는 아니에요 왜 여기도
좌석 데 예 좀 옮겨 갔어 지금은
자살 고지만 여기는 그렇게 중요하게
안 쳐지는 거예요 이게 도시가 갖는
문제예요 그래서
이제 이걸 넣었던 건데 도시가 갖는
문제예요 우리가 어디로 옮겨가면서
어떻게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이게 이제
마지막에 김수근 씨의 그 건물과 함께
이걸 받아 볼 수 있는 건데 뭐 배제
학당은 워낙 유명한 학교고 여기에서
우리나라에 국전이 시작되었고 어 뭐
여러 가지 교육이 있지만 일반적인
그런 것보다는이 학교가 고덕동으로
옮겨가면서 우리가 도시가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나중에 이제 강남으로
다 옮겨간 연후에 나중에 목동을 지을
때 이것을 벤츠 마킹 마킹한 그
당시에
대통령이 두 개의 학교를 목동에
넣었죠네 학 진명
여고라죠 양정고등학교
통령이 노태우
있습니다 그렇게 도시가 발전해 가는
모습도 우리가 한번 보는 그래서 늘
보는 정동이 아닌 정동 안에서 우리가
시대를 본다고 했잖아요이 시대에
따라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어떻게
움직여 가는지 또 우리가 어떻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 가야 할 것이고 우리
교육이 어 어느 방향을 향해서
나아가야 되는지를 한번쯤 바라보는
의미로 배지 학당을 넣었습니다이 학교
출신들 중에선 대통령도 있고요 김서울
있어요 예 그래서 제가 잘하는 농담
중에 하나가 김서은 여기 다녔죠 예
한수는 이화여고 다녔어요 나이는
동갑이에요 예 둘 다 정동제일 교회에
다녔어요 두 사람은 만났을까요 안
만났을까요 안 만났습니다 왜냐면 입학
연도가 틀려요 예 김서이 훨씬 나중에
입학했어요 예 그다음에 여기는 JP
모건 있니다 정동에서 뺄 수 없는게
JP 모이죠
아시죠 어정동 JP 왜 들어 있어
이런 얘기를 하는데이 JP 모건이
들어와 있는 이유는 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을 때 에디슨
전기 회사가 들어왔을 때 같이
들어왔어요 왜 에디슨은 에디슨 전기
회사란 이름이 있었지만 에디슨은 JP
모건의 직원이라고 보시면 돼요 그자
예 에디슨은 직류를 발견했고 테슬라는
교류를 발견했어요 그랬는데 교류가
훨씬 좋죠 지금 보면 근데 교류가
훨씬 좋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당시에는
그때 당시에는 JP 모건이 누구의
손을 들었냐 하면 에디슨의 손을
들었어요 그래서 테슬라는 쓸쓸히
죽었고 호텔에서 죽었고요 에디슨은
살아남아서 발명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어요 그래서이 JP 모건이 들어와
있는데이 JP 모어는 어 미국의 금융
왕입니다 어 미국의 왕이 많죠 석유
왕도 있고 자동차 왕도 있고 예 여러
가지 있는데 이분은 금융왕 있니다 그
시절에 이게 골드러시가 가 일어났을
무렵에 금융왕 있데 이분이 제일
잘했던 건 m& 그래요 예 그때
이분이 m& 할 무렵에는 금산이
분리되지 않았어요 금융과 산업이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쯤이라고
&가 가능했던 거죠 그래서 굉장히
많이 했어요 해서 이분은 회사가
점점점 커지고 나중에는 US 스틸도
갖게 되고 아무튼 뭐 금융 왕이니까
갖게 되었을 때 미국이 뭘 하냐면
금산 분리를 시작해요 금산 분리를
시작하고 이렇게 한 사람이 적대자
&를 많이 하고 이런 것에 대해서
되게 많이 테크를 걸어요 테크를
걸었는데 2분을 빼고는 우리나라
전세계 경제학도의 경제학과 책이 쓸
수가 없어요 이분이 했던 여러 가지
그 금융 금융에 대한 거 이분
아버지도 금융가 있었는데 어쨌든
그래서 이분이 어떻게 해서 돈을
벌었냐 men 금융 가였다 있었지만
그렇게 뭐 누가 딜을 대줄 정도의 그
금 수전은 아니었는데 어쨌든 돈을 좀
많이 벌었어요 그 금융을 해 가지고
m& 하고 돈 빌려주고 돈 받고 뭐
그쪽으로는 귀제 있으니까 돈을 많이
벌고 이분이 정말로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부자가 됐던 이유는 보
보불 전쟁이에요 프랑스 이제 유럽을
여행했고 돈을 어느만큼 번
연후에는 대륙 횡당 기차에 참
참석하고 뭐 이래 가지고 돈을 많이
번 후에는 이분이 이제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여행을 시작했어요 그래서
여행을 시작했는데 보불 전쟁이 났는데
이상하게
러시아는 프랑스 지금의 독일보다도
훨씬 작은 나라에 도시 국가의
하나잖아요 그 나라하고 프랑스가
붙었는데 프러시아 이겼어요 이상한
일이죠 그래서 베르사이 궁에서 그 황
독일 황제의 대관식 하고요 별거 다
했어요 다 하고 굉장히 많은 지금도
요구했고 그러니까 전쟁 그 배상금도
요구했고 그러고 나서는 이제 분지를
치기 시작하러 들어왔죠 그래서이 돈을
어떻게 갚을까 나폴 가 되게 고민하고
있을 때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다 그러 어디에 겠어요 채권을
어디 걸 샀겠죠 프로시아 걸 샀겠죠
다 그 뒤에 서는데 오직 한 사람이
사람만 프러시아 뒤에 섰어요 왜
나중에 그니까 막이 사람이 지니고
있는 회사도 반대로 있겠죠 왜 프랑스
편을 드느냐 난리가 났죠 난리가
났는데 이분이 하는 말이 그거예요
자기가 유럽에 전체 다면서 음식을
먹어 봤는데 일정 수준 이상의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었을 때이 원재료가
어디냐고 부르면 반드시 프랑스였다
얘기했다는 거예
뭐 지금처럼 이렇지 않았으니까
그래서이 많은 농산물 프랑스가 아니면
농산물을 못 대할 정도로 많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미래를 본 거죠 미래를
보고 그 나폴리언 3세 뒤에 서서
그들의 채권도 다 사주고 뭐 섰다는
얘기는 나 당신 편의가 아니죠 도와
줬겠죠 도와주고 전쟁 그러면서 이제이
돈을 어떻게 갚고 얘기하니까이 사람이
얘기했다 그러더라고 식민지가 그렇게
많은데 왜 돈을 끌어다 못 갚느라고
상상회로 1년 안에 돈을 다 갚았다고
해요 프랑스가 프러시아 러시아는 한
5년 이상 막 뽑아먹을 생각을
했었는데 그렇게 못하고 물러난 거죠
물러나고 나서 이제 나폴레 3세가
이분 얘기했어요 내가 너한테 뭐 좀
해주면 좋을까 이렇게 물었어요
그랬더니 이분이 하는
말이 어
폐하 내가 원하는 걸 폐하는 지금 해
줄 수가 없어요
예 10년 뒤에 만납시다 10년 뒤에
제가 당신에게 요구하겠습니다 하고 간
거예요 어 는 절대이 말을 하면 안
되지만이 일본어가이 말이 이게
간지나죠 예 근데 그 말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뭐냐면 정확하게 파악한 거예요 그
당시에 경제 사정이라는 이런 거를
정말 정확하게 파악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들의 청년들도 그렇고 우리는 이제
뭐 안 그렇겠지만 청년들이 여기 와서
봐야 될 건 뭐냐 하면 그 말을 할
수 있을만큼 세계 경제에 대해서
확실히 알고 있어야 되 는 거예요
어설프게 알아서이 말을 못하는
거잖아요 정말 내가 어느 한 나라의
왕을 상대로 당신이 지금 내게 해 줄
수 없지만 나는 10년 뒤에 내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겠다고 말할 수
있으면 말을 할 수 있을만큼 공부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우리가 지금 신자유주의 경제에
끌려나와 있잖아요 머리를 잡혀서
신자유주의 경제는 뭐냐면 1등부터
꼴등까지 쭉 줄 세우겠다는 얘기
경제적으로 그러면이 신자유주의 경제
하에서 우리 로컬 경제는 어디쯤 서
있는가가 파악돼야 되는 거예요 그냥
지금 당장 취직하는데 골몰하고 지금
당장 주식 오르는데 골몰하는게 아니라
청춘이라면 청춘이라면이 기가 막힌
신자유주의
경제의이 바탕 안에서 우리 로컬
경제는 몇 등이고이 우리 로컬 경제가
어떻게 신자유주의 경제 하에이 글로벌
경제에 대항할 수 있는지 이겨낼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예요 청춘이 아니라 말하기가
좀
[웃음]
예 그리고 여기는 러시아 공상
아이에요데 이걸 제가 왜이 사진을 제
제가 왜 두 개를 대별해 냈냐 하면
우리가 시대를 보자는 거예요 저기는
러시아 공사관 아이고요 여긴 JP
모건이 JP 모건은 뭐 거칠게
얘기하자면 자본주의의 총하중 저쪽은
사회주의의 청하예 거칠게 말하면
30년 전엔이 두 개가 절대 나란이
있을 수 없어요 지금 나란이 있어요
이게 시대라는 거죠 예 140년 전에
시대 정신이 어땠는지 읽어내야 한다면
우리는 2024년에 시대 정신을
읽어내야 하는 거예요 이것
보고 이제는 저 사람들 보고
빨갱이라고 나가라고 하지 않아요
우리들끼리 좌파를
찾지 예이 두 개가 정동 한복 정동
거리 안에 나란히 있어요 지금 딱요요
자세로 있어요 그래서 시대를 읽어내야
되고 시대 정신을 읽어내야 될 필요가
있어 있어요 우리가 일제 강정기
거치면 사람들은 그 시대는 딱 두
가지인 줄 알아요 독립 운동을 하거나
그냥 살거나 아니에요 그때도 수많은
삶의 선택지가 있었던 것처럼 현대는
더하죠 그럼 우리는 2024년에 시대
정신을 어떤 건지 읽어내야 되고
각자의 그 시대 정신은 언제 나타나냐
하면 4월 10일 날 총선에서 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이제 여기는 뭐
넘어가고요 여기는
예 이문세 광 연가에 나오는 예 언덕
및 조그마 교회당 있데 사실 조그마
하지도 않고 가장 크고 넓어요 그래서
여기는 그냥
어 만 보고 지나가 있어 요거는
광화문 영가를 쓰셨던 이영은
씨고 마이크 있는 거예 그래서 정동
사거리라고 지나가고 어정 는 보구
여관 터가 오기 전에 제가 안 했는데
아이고
예 여기 여기가 있는 데가 정동 사
거리예요 정동 사거리에서 도이은 쪽을
바라보면서
오른쪽은 장로교회 걸리고요 왼쪽은
감리교회 거리예요 그래서이 감리교회
거리는 남아 있어요 배화 이화여고
배제학당 정동제일교회 다 이게 감미
거리 감미 있거든요 오른쪽에
있는 그 장교 거리는 왜 없어졌냐
덕수궁 공역을 넓히면서 다 비워줘야
했던 거예요 그래서 지금 세무나
교회가 새로한 문안에가 있기 때문에
세무나 교회예요 그게 감리교회
저 장로 교회였는데 그리고 거기 있던
경신학교 아니면 정동여 학교들이 다
옮겨가고 대학도 옮겨간 거예요 아
그래서 절로 간 거야 정신학교 예 다
다 옮겨간 거 저기 정신 용어도
옮겨가고 다 옮겨 갔어요 그래서
그렇게 보시면 되고요 정동
사거리입니다요 보구 여관은 정동
사거리에 이화여고 담벼락 밑에
있습니다이 보구 여가는 뭐 예 예
보구 모텔이 아니고요 모텔보다 작은
보구 여관이 아니고 여성을 구하는
관청이 거죠 병원이에요 어의 병원이면
의과 대학이었다 최초의 여성 의과
대학이고 병원이에요 어 병원인데
여기서 이제 우리 우리나라에서 봤을
때는 여자들을 치료할 방도가 없었던
거예요 제가 이건 뭐 제 얘기지만
tmi 이제만 제가 어 2주 3주
전에 정밀 검사를 했어요 제 작년이
아팠기 때문에 정밀 검사를
하고 3주 후에 갔어요 이제 며칠
전에 갔는데 의사가 아 하나도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막혔는데 하나도
변화가 없다 그러니까 많이 불편하냐
불편하다 나는 장애 등급을 해 줬으면
좋겠다 그랬더니 그건 안 된대요 근데
그 분이 그러면서 어 그냥 살 만하죠
그래서 그냥 그냥 지낼 수는 있어요
그랬더니 그럼 그냥 사세요 이렇게
얘기하는데 그 모습이 뭐였냐면 그
나이에 그냥 살지 느낌이 그랬어
그분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냥
사세요 이렇게 하는 폼이 딱 그
느낌이었어요데 현대도 나이 먹은
사람한테 이렇게 대접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저때는 여자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래서 치료를 안 했었는데 그걸 봤던
선교사들 중에 한 분이 아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 생각해서 여성 병원을
만든 거죠 여성 병원을 만들면서
가르쳤어요 가르쳤는데 가르쳤던 다
자리입니다 근데이 자리가 어디로 옮겨
갔었냐면 동대문 지금 동대문 교회
바로 옆에 그리로 그니까이 한양도성
옆에 있었어요 그게 저 박물관 자리
이대 병원이에요 예 이대 병원 옆에
보고 여관 터가 옮겨 갔어요 그런데
아 우리나라가 그 문화유산을 등지고
싶었던 거예요 유네스코에 등지고 싶을
때 얘네들은 다 눈에 가셨던 거예요
그래서 다 쳐내고 이제 지금 거기
이제 그러든 문화유산에 등재도 안
됐잖아요 이거 여기에서 우리가 뭘
보느냐는 시대가 변하면서 문화
포퓰리즘에 이게 그냥 어디에 등록을
해야 되겠다 그러면 그냥 미친듯이 다
거기에 매달리는 거예요 얘가 가지고
있는 역사성이라고 얘가 가지고 있는
중요도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버려지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 거예요 그래서 정동에
오면 정동 거리에서 아름답고 예쁜
거만 볼게 아니라 어떻게 우리 문화가
소비되고 어떻게 우리 문화가 없어져
버리는 건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것을
지켜야 하는지를 한번 쯤 생각해 보는
거리예요 이게 뭐 최초의 여성 병원
다라는게 중요 그 굉장히 그 시대에서
중요했지만 현재 우리가 이런 것들을
어떻게 취급하는가 결국은 목동으로
따라갔다가 지금 마곡이가 어딘가에
새로 만든대요 이제는 많이 여유가
생겼잖아요 우리가 예 마곡으로
옮겨가서이 보구 여관의 어떤 박물관을
만든다는 기사를 본 적은 있어요 현재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어요 여기가 이제 옛날 그 이와
요고 자리요 요렇게 했던 거죠 요렇게
아까 그 보구 여관 터에서 여성들이
이렇게 했다는 거고요 여기는 이제
중명전이에요 덕수궁 뒤에 정동에
있어요 여기 수호천 이었어요 수권은
도서관이었다 거거든요
1904년에 덕수궁이 불이 나니까
고성 황자가 경복궁으로 옮겨 가길
바랐지만 옮겨가지 않고 여기 와서
정치를 하셨어요 여기 와서 정치를
하면서 여기서 을사 약이 일어나죠
이제 을사 우리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고정 황제가 그 어묵한 시절을 살았
살았잖아요 우리는 그냥 어 외교권을
뺏겼 봐 을산 의약에서 외교권을 뺏겼
봐 그래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건
아을 신스가 을사년 그럽 해서
나왔다면서 너무 쓸쓸하고 힘들 때는
아 인장 오늘 날씨는 을사년 럽네다
그게 을시년 그럽로 변했다 이런
감정적인 부분만 알고 있지만 한번쯤
여기서 생각해 봐야 될 거는 을사
의약이 왜 일어났냐 거예요 을사 능이
왜 일어났는가 미국은 카스라 테프트
조약을 맺었어요 그래서 정 가 이미
결정됐고 필리핀은 미국이
조선은 일본이 그런가 하면 또 영국은
영일 동맹을 맺었어요 그리고
우리한테는 아무 관심도 없어요 관심도
없는데 우린 그걸 모르고 고정 황제는
자꾸 미국이 좀 돌봐 주기를 원했고
어 좀 힘이 돼 주기를 원했지만 이미
세계 이렇게 조직 그니까 바둑판
자듯이 다 짜여서 강화도 저 이후로
우리가 수많은 잘못된 결정을함으로써
우리는 그냥 나라 를
뺏겼지만 잘못된 결정을 할 하는 것들
중에 하나가이 세계적인 그레이트
게임을 몰랐던 거죠 그래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외교권을 빼앗겼고
외교권을 빼앗겼다는 얘기는 지도에서
우리나라가 사라졌단 얘기예요 지금도
있어요 안도라라베야
없어요 그렇게 사라진 현장입니다
여기가 현장이었고 고정 황제는 여기에
계시다가 말 년에만 덕수궁에 잠깐
들어왔어요 요 그 후에는 이제 여기
이방자 여사에게 주었다가 나중에는 뭐
경성구락부 이런 걸로 사용이 되었는데
결국 우리는 문화재가 어떻게 흘러가게
되냐 하면 이게 결국 어떤 건설
회사에 팔렸다가 나중에 노태오
대통령도 수요 가지고 있다가 팔았어요
근데 그분도 몰랐겠죠 여기가 뭐
그렇게 문화재인 줄을 그래서 결국
나중에 문화재에 찾아서 현재는 해설을
하고 지금은 국민 신탁에서 관리를
해요 문화재청에서 국민 신탁에 위탁을
준 거죠 그래서 관리를 하고 있고
옛날보다는 많이 변화했어요요 옆이
미국 공사
관자거상이 그 미국 공사 관절로
넘어갔다 그러잖아요 그요 뒤에서 타고
넘어갔어요 지금은 거기 막 높이 올려
갖고 철조망을 만들어 놨어요 그
정동에서 한 번쯤 대학생들이 왜 미국
관절을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예 여기는 손탁 호텔 터입니다 예
손탁은 풀네임 아시죠 마이 앙뜨
마네트 손입니다 예 이분은 어 러시아
공사의 처형이 있는데 어 러시아 피는
없었고요 프랑스 하고 뭐 독일의 피가
섞여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는 뭐
리비에라 해 해변에서 돌아가신 분인데
이분이 우리나라에 끼친 영향은 어
석조전의가 보시면 알지만 석조전의
만찬을 베풀었다고 하는데 그게 전부
서양식 만찬이 거기에 숙수 일하셨다고
해요 그리고 물론 이제 원양어선을
탔던 사람들 중에서 그중에서 이제 뭐
외국 요리를 잘하는 분들이 오셔서도
하지만 이분도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손탁 호텔 터는 워낙에 이제 그
우리나라가
러시아로 러시아하키 싶었던 거죠
친밀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분게 많은
혜택을 준 거예요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은 아니고요 최초의 호텔은 인천에
있는 대불 호텔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최초로 무슨 커피를 팔았던 것도
아니고요 단지 우리가 외국인에게
친하고 싶어서 러시아에게 어떤
것을내어 주었는가 하는 것 쯤 보시면
좋을 거 같아요
예 여기가 이제 러시아 공사관
아입니다
이렇게 여기 유아 여고고 여기가
러시아 공사 간터 러시아 공사 한터는
자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을
가겠다고 얘기했을 때 과연 러시아
공사 대사한테는 너네한테 갈게
이렇게는 안 해요 이미 우리 고정
고정하고 니콜라 이세가 타결을 봤죠
나 왜냐면 미국 한테로 가겠다고
했어요 처음에는 미국으로 옮겨 가겠다
그랬는데 미국이 아무런 대답을 안
해요 어 친구를 만났을 때 우리가
예 어 너무 반갑다 얘 우리 언제
만날래 이러면 응 한번 보자 이러면
안 보자는 얘기예요 그죠 언제 만날래
할 때는 몇달 며칠 몇시에 만나자
해야 그 만나는 것처럼 미국도 가자고
하니까 외교 문제가 있으니까 숨도
안쉬고 가만히 있었던 거예요 그
그러니까 고정 황제는 답답하니까
러시아하키 가셨어요 그러면 1위로
피신을 가셨을 때 뭐 주피 이어를
했던 아간 파천을 갔든 망명을 갔
어떤 다른 나라로 옮겨갔을 때 공짜가
어 있어요 세상에 공짜가 없기 때문에
많은 걸 내줘요 금강 채굴권 이라든가
뭐 살림 채불 권이라 굉장히 많은 걸
내주고 저기 들어간 거예요 들어갔다
1년이 있으면서 거기서 그래도 제국을
형성하고 온 거죠 근데 지금 보면
러시아는 우리나라에 오래 있으려고 마
먹었어요 높은 데다 지었고 크게
지었고 넓게 지었고 그랬어요 그래
갖고 어 러일 전쟁에서지면서 일제
강정기 시작 시작되면서 나갔다가 언제
들어오냐면 2008년 노태우 대통령이
예 그때
러일러 한러 수교할 때 들어와서 아까
보셨던 JP 모건 옆에이 자리를
달라고 하는데 안 내 준 거죠 지금
복원 중입니다 여기는 그래서 우리가
힘이 없을 때 나라를 빼앗겼을 때
어떤 모습이 되는가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갔는가 우리는 쌈박질을 나라를
잃은 나라가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광복이 왔을 때에도 어 너네 짬짬이
짬짬이 하면 너네 옆구리 꾹꾹 찔러서
같이 한 나라가 됐잖아 이렇게 말할
수 있었어요 근데 그것을 거부할 수
그렇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게
삼일 만세 운동이라 든가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에
어 얘네들 짬짬이 해서 같은 나라가
된게 아니야라고 하는 증명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요 러시아 공사관 앞에서
한 번쯤은 우리가 나라를 지키는
모습이라든지이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 가야 되는지 정동에서
바라봐야 되는 그런 모습입니다 이게
러시아 공사가 아니에요 이렇게 크게
진 거죠
그래서 지금 그 앞에 그 내려오는
길목 올라 예원학교 옆으로 올라가는
그 길목 거기 앞에가 정문이었던 해요
캐나다 공사가 옆에 거기가
정문이었던 하니까요 밑에요 방 쯤에
있었을 거라고 추정을 해요 추정을 할
뿐이지 뭐 1년
계셨으니까요 이제 끝에 제일 끝에
가면 경향신문이 있어요이 이 경양
신문은 어 누가 진 거냐면
김수군이라는 예 건축가가 진 거예요
우리가 이수근은 코메디언이 그요
박수근은 화가고 김수근은 건축합니다이
건물을 얘기하려 그 김수군 씨를
얘기하게 되는데요 김수근 씨는 어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이 1세대
건축가인 이분은 김정필 씨한테 발탁이
돼 가지고 그 전에 물론 어 우리나라
국회의사당을 짓겠다고 남산에 지금 그
그많은 분들의 형 그 부통령 있는 그
그
타에가 그걸 공모를 해서 1등을 해서
붙어서 거기 질판위
있는데 살구가 나면서 그게 무산
됐어요 그리고 51 6이 나서 김정필
씨가 들어오면서 아이 사람 괜찮은 거
같아 뭐 우리 그때 뭐 건축가가 많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부탁한게 워커
일이에요 그래서 워커 일을 그 사람이
설계했어요 워커 일을 왜 졌는지는
아시죠 예 미군 위 위안소가 필요했던
거죠 말하자면 그니까 휴양지가
필요했어요 그때 미군들은 다 휴가가
되면 다 어디로 갔냐 면은 일본으로
갔어요 그래서 외화를 잡아야 됐기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은
거기다가지면 좋겠다 근데 우리는
하천에 대한 개념이 어떠냐면 우리나라
사람들 하천은 그냥 쓰레기 갖다
버리는데요 예 그럼 1년에 한번 그냥
홍수가 쓸어 내려가서 깨끗하게 하는
덴데 아니면 강변에 정자 정도 짓는게
전부였어요 그런데
드디어이 풍치
직으로 이걸 활용해야 됐다고 생각했던
최초의 것이 바로 워커힐이에요
워커힐을 짓고 그다음에 워커힐은
지금은 뭐 여러 군데 SK 테
넘어갔다가 뭐 여러 군데 넘어갔지만
원래는 어 저기 럼 지었어요 길상사
요사체 럼 그래서 그 더글라스
홀이라는 데는 앞에 이제 그 대원
거물 말고 더글라스 홀은 드문드문
떨어져서 딱딱 이렇게 있어요 뭐 뭐
했겠어요 풋사랑을 위해서 필요했던
장소 돈을 벌었어 되는 거예요음 근데
이제 그 위에 넘어갔고 지금은 필요가
없어졌지만
네 어쨌든 그리고 이제 이분은 굉장히
감각 공사를 많이 했어요 많이 해서
어 어떤 건물도 지었냐 터치이슈 그고
죽었다고 하는 남영동 대공 분실도
이분이 했어요 이분이 수많은 관급
공사를 하다가 사람은 다 공과가 있죠
근데 이제 이분은 아마 성찰하는
분이셨던 봐요 그래서 하다가 내가
이렇게 계속 광급 공사하고 돈만 벌면
안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신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그랬대 이분이 별명이
뭐였냐면 건축계에 풍흥 하였어요
처음에는 근데 이억 풍운 하였는데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해서 이분이 생각해 낸게 뭐냐면
자기가 짓는 건물의 1층은 반드시
비워요 이렇게 건물을 짓는다는 거
고층 건물이 올라간다는 걸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지만요 그게
공간과 공간을
갈라요 굉장히 불편한 거예요 공간과
공간을 가르면 마음과 마음도 갈라지고
풍토도 달라지고요 행동 방경도
달라지는게 건물이에요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그리고 대단히 불편해요 그래서
저분은 1층에 1층을 비워요
통 어 화장실도 마음대로 가게 하고요
경비 눈치 안 보고 화장실도 다닐 수
있게 해주고 비어 놔요 비가 오면
그을 수도 있고요 눈이 와도 잠깐
피할 수도 있도록 만들어요 그리고 또
한게 뭐냐면 1층과 2층 그 자기
건물의 아래층을 비어서
이름없는 예술가들을
키워냈고 그래서 거기서 큰 사람
중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사물 노회 김덕수 씨 공옥진
여사 이런 분들이 그분의 건물 밑에서
하신 분이에요 그래서 어 그렇기도
하고 또 그렇게 하다 보니까 일정한
사람에게만 혜택을 주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하지 말아야 되겠다 싶어서
잡지를 하나 만들어요 스페이스라는
공간이라는 잡지를 만드는데 그게
50년이 넘었기 때문에 등록문화재가
가능한
거예요이 분이에요 예 그래서 이제는
이분이 별명이 바뀌었어요 건축의
로렌츠데 메디치를 바뀌었어요 아시죠
로렌츠 데메 치가 누군지 예
는 사람 예 공간이에요 여기는
공간이고 굉장히 많은 건물을 지었죠
반성을 많이 했어요 제가 이걸 본
거는 뭐냐면이
건물은 요즘 애들은 몰라요 여기가
옛날에 문화방송
자이거나 브라운관 모양이에요
예 그래서 제가 요거 클로우즈 한
거예요 옛날 브라운관 모양이에요
그래서 그런데이 건물의 주인은 누구냐
하면
정수장학회에 여기 들어와 있는 건 경
신문과 대한 노총 이런 것들이 들어와
있어 그러니까 보수와
진보가 공전하고 있는 거 이게 바로
정동에 문화방송이 있던 사례인데
문화방송은 지금 같죠 그리고
경향신문이 남아 있어요
그래서 진보와 보수가 절대 싸우지
않고 한 자리에 있는 주인은 정수
상하이요 예 한 자리에 있는 이게
정동에 140년 전에 그 기가 막힌
그레이트 게임을 하던 외국인이 몰려
들어왔던 그 거리에 용광로처럼
움직였다가 결국은 140년이
흘러오면서 지금까지도 우리가 흔히
너는 복골이야 너는 좌빨이 하고
미워하지 않고 한 자리에 이렇게 있는
곳 그걸 녹여내는게 바로 정동이
그래서 정동에 서시면 시대 시대마다
읽어가고 그 시대 시대 마다의 정신이
있고 그 시대 시대에서 어떻게 우리가
하나가 되는가를 느껴 보는 그런
장소가 바로 정동 있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아름다운 장소지만 내부를
들어가 보면 너무나 역사서 깊이가
깊어서 손대 볼 수도 없는 그런 것이
바로 정입니다
그것이 어우러져 있죠 싸우지 않잖아요
정수장학회에 경양 시문이 돈 내고
있어요 아 예 그러니까 이게 싸우지
않는다는 거예요 공존한다는 거죠 이게
정동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고 정동의
깊이에 그래서 정동이 가을날 단풍님
예쁘고 음악 흐르는 거리가 아니라
140년의 역사의 용광로가 그냥 흘러
넘치는
[음악]
곳이에요
[음악]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