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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요즘 중국의 패권주의적 행보가
심해짐에 따라 세계 특히 중국
주변국들의 반중 감정은 매우 강화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그러한 행동의 결과
2023년 한국인이 제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나라는 중국이 되었을
정도이죠 그런데 한국 만만 창계
중국을 싫어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의 주인공 베트남이 베트남의 반중
감정도 매우 높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좀 내려가긴 했지만 불과 얼마 전인
2017년 반중 감정이 최고조일 때
베트남인이 중국을 부정적으로 인식한
비율은 무려 88% 있습니다 또한
베트남 응답자의 92% 중국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위협이라고 답했죠
그런데 신기한 것은 중국과 베트남은
같은 공산 국가라는 것입니다 또한
베트남 전쟁 때는 중국이 미국에
맞서는 베트남에게 엄청난 원조를 해
줬고 그러면 둘은 당연히 사이가 좋을
것 같은데 베트남인의 반중 감정은
높습니다 최근까지도 심심찮게 대규모
반중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고요 아니
왜 베트남은 중국을 그토록 싫어하는
걸까요 지금부터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굳이 현대까지 안
가도 역사적으로 베트남은 중국을 좋게
생각할 여지가 적었습니다 베트남의
역사는 중국과의 끝없는 투쟁으로
요약됩니다 그 시작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베트남은 기원전
207년 찌에우다 왕이 남비엣 세워
최초의 고대국가가 탄생했습니다
하지만이 나라는 100년도 못 가고
96년 만에 순 식간에 멸망했고 다름
아닌 중국 때문입니다 당시 중국의
황제는 한 무제 그는 고조선을
리타이어 시킨데 모자라 기원전
111년 남비엣 그지 침공해
멸망시켰다 역사의 첫 불신은 중국에
의해 꺼졌고 그런데 이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나라는 고조선이
멸망하고 한사군이 설치되었어요
고구려가이를 몰아냈지만 베트남은 그와
달리 독립에 실패하고 이후 무려
1천년 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게 된
것입니다이 기간은 베트남의 의
지옥이었습니다 중국은 같은 민족도
아닌 베트남인을 굳이 대접을 잘해 줄
이유가 없었죠 따라서 베트남에
대해서는 적당히 돈만 뜯어내면 된다고
여기며 지속적으로 착취를 가였습니다
한 예로 중국 관료들은 베트남 관리
직책에 서로 임명 되려고 뇌물까지
바쳤습니다 그렇게 자리 하나 따서
베트남인을 쥐어 짜내면 돈을 쓸어
담을 수 있으니까 그 결과 베트남인
아사자가 속출했으며 특히 당나라
때에는 베트남 농민들은 심심찮게
노비로 팔려 나가 또한 중국은 중국
질서 이식을 위해 베트남 전통문화도
철저히 파괴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착취
탄압 구조가 무려 천년이 지속됩니다
물론 중간중간 베트남은 저항 혹은
잠깐 독립도 했지만 중국이 모조리
진압했고 그런데 아이런 이하에도이
착취는 베트남인이 천년간 똘똘 뭉쳐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듭니다
중국에 대한 반발심으로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게 된 것이죠 그렇게
베트남인들은 천년간 쉬지 않고 반란을
일으켰고 마침내 기회가 옵니다 서기
939년 중국의 5대 10이라는
분열기가 찾아오자 베트남은 발빠르게
움직여 마침내 독립한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이도 베트남은 중국의 굴레에서 그
이후에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합니다
중국의 분열기는 금방 끝났고 또다시
통일 왕조인 송나라가 들어섰기
때문이죠 그리고 송나라는 베트남에
또다시 눈독을 들였습니다 그날
베트남은 깨달았죠 어차피 중국에는
끊임없이 통일 왕조가 세워져 베트남을
침공하려는 것을 여기 대항에 다간
베트남 국영만 소모되고 여차하면 또
지배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결국
베트남은 어려운 결정을 내립니다
침공을 피하기 위해 중국에게 조공하고
조공 책봉 질서에 편입되기를 한
것이죠 그렇게 하면 조금이나마 관계가
유해지 결국 베트남은 10세기 중국
송나라 때부터 19세기 청나라 말까지
상당 기간 동안 중국의 조공국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베트남의 기대와는
달리 그럼에도 중국은 쿨타임이 차면
베트남의 첫 들어갔죠 아니 조공도
받는데 왜 였을까요 여기에는 양국간
지리적인 근본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실
중국 입장에서는 베트남이 아무리
조공을 바친다 해도 경계의
대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베트남이 가진
힘 때문이었죠 베트남은 인도차이나
반도에 위치해 있는데 인도 차이나는
꽤나 넓고 다른 나라들도 많이
위치합니다 그런데 베트남은이
인도차이나 동부 안에서만큼은 가장
강력한 그야말로 여포 있습니다 그래서
그 힘으로 주변국인 캄보디아 라오스
참파 등을 툭하면 침공했고 그들에게
조공을 받으며 오히려 자신이
남방에서는 중국 역할을
자처했습니다이를 베트남인들은 중화
질서처럼 대남 제국 질서라고 칭했고
참고로 베트남 옆에 캄보디아는 원래는
영토가 꽤됐지만 베트남이 역사적으로
땅을 죄다 뜯어가서 현재의 영토로
축소되었습니다 그래서 캄보디아에는
현재도 베트남을 안 좋아하죠 결국
이렇게 베트남은 인도차이나 반도
안에서 주변국으로 영향권을 확대해 그
패권을 장악할 수 있는 나라였던 건데
중국은이를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베트남이 일정 수준 이상 성장해
버리면 중국에게 골칫거리였다 이었죠
애초에 중국은 자기가 제일 땅덩이가
크면서도 주변국이 커지는 건 노이로제
급으로 경계합니다 그래서 수 당나라
때 만주에서 고구려가 커지니 국력을
쏟아부어 쳐들어 갔던 것이고요 따라서
베트남한자 생각으로 주기적으로 침공해
지여 밟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중국의 침공을 받은 베트남은
중국에 대해 큰 반발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그럼에도 베트남은
조공을 바쳤습니다 그마저도 안 하면
더더욱 침공 당하니까 결국이 기이한
질서는 1800년대 말까지 지속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양측 관계는
근현대에 들어오며 바뀌게 되는데
베트남은 청나라 말린 19세기까지만
해도 청나라의 조공국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가 어떤 때입니까 서구
열강이 아시아의 눈독을 들리고 그
손을 뻗치고 있었습니다 편전 전쟁도
이때 일어났고 말이죠 바로이시기
프랑스가 베트남을 눈독 뜨리게 되고
1858년 베트남을 무력 침공했고
그렇게 1885년에 베트남은
프랑스에게 먹혀 식민지가 되었고
베트남의 종주국이 있던 청나라 역시
1912년 신의 혁명으로 무너졌습니다
따라서 양국간의 전근대적인 조공 책
봉질 3은 사라지게 되었죠 그 이후
양국의 관계는 재편이 됩니다 격동의
시대를 거친 뒤 1950년대가 되면
중국 베트 남 두 나라의 공통적으로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섰던 것입니다
베트남에서는 프랑스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베트남 공산당이 세력을 꽉
잡았고 중국에는 중국 공산당의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섰습니다 관계가
그리 좋지 않았던 두 나라는 현대에
들어서자 공산당 집권이 하나의 공통
분모가 생긴 것인데 그래서 양측은
신기하게도 잠깐 친해지게 됩니다
베트남 공산당은 1950년대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전쟁을
버렸는데 데 이때 중국은 베트남
공산당을 지원해 주었죠 베트남을
도움으로써 동아시아 공산 국가의
큰형님 입지를 다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진심이 던 중국은
1950년부터 80년까지 베트남에
무려 200억 달러가 넘는 원조를
제공했죠 이태 한정 베트남 공산당에게
중국은 따거 있고 결국 베트남
공산당은 프랑스를 격퇴하고 독립하는데
성공합니다 이렇게 국익에 따라 서로
사이가 좋아진 중국 베트남이 있죠
참고로 이때 베트남은 남북으로 분단돼
있었는데 북부 베트남에 베트남 공산
정부가 들어서 있었고 남부 베트남에는
자본주의인 남베트남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그뒤 베트남 공산당은
1964년부터 또 다른 서방 국가
미국과 전쟁을 벌리게 됩니다 이것이
베트남 전쟁인데 중국은 또 베트남
공산당에게 32만 명의 지원병을
파견하고 막대한 경제 원조도 해
주었죠 그리고 베트남 전쟁 역시
베트남 공산당의 승리로 끝났고 베트남
공산당은
1975년에는 남북을 통일 이듬에
통일된 베트남 공산주의 정부를
세우는데 성공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베트남이 중국을 싫어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수십년간 지원을 받았으니
당연히 관계가 좋을 것 같으니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이 베트남 전쟁
때부터 양측 관계는 균열이 가게 되니
1964년부터 75년까지 이어진
베트남 전쟁 당시 중국도 베트남을
도와줬지만 당연하게도 공산기 큰
형님인 소련 역시 베트남 아우를
도왔습니다 그렇게 베트남을 중국과
소련이 동시에 지원하는 상태였는데
문제가 생깁니다 그 둘이 베트남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60년대
후반부터 사이가 갑자기 안 좋아졌다는
것입니다 노선 차이로 삐걱거리던
중국과 소련은 국경 문제로 시비가
붙어서 국경에서 전투가 일어나고
나중에는 핵 사용까지 시사하는 등
막장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때문에
후달렸던 중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오히려 소련 의 적 미국과 손을 잡게
되고
1972년에는 미국 닉슨 대통령이
중국에 방문하기까지 했는데 이것이
베트남에게 엄청난 배신감으로
다가옵니다 베트남은 미국과 전쟁
중이니 미국을 당연히 증오했고 그런데
믿었던 형님 중국이 갑자기 미국과
친해졌던 것입니다 게다가 중국은
이때부터 베트남에게 불쾌한 요구를
시작합니다 이제 중국의 주적은 미국이
아니라 소련으로 변했죠 즉 미국하고
잘 지내서 소련을 견제하는 노선으로
갈아탔습니다 따라서 중국의 태도가
바뀌니 원래 중국은 베트남에게 어이
베트남 우리가 물심 양면으로
지원할테니까 미제 놈들을 동남아에서
완전히 몰아내이 태도였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미국과 친해지자 태도를
180도 바꿔서 어이 베트남 우린
미국하고 관계 개선 중이니까 적당히만
싸우고 그냥 평화조약 맺어 전쟁 빨리
끝내야 할 거 아야 당연히 베트남은
엄청난 허탈감 분노를 경험했고 중국은
진정으로 베트남을 위하지 않는
나라라는 인식이 퍼 죠 그러던 한편
베트남 전쟁이 마무리되고 베트남은
남북이 통일되게 미국은 떠났지만
베트남 입장에서는 불안했습니다 이제는
미국과 사이가 좋아져 믿을 수가 없게
된 중국이 바로 위에 있었으니까 또한
아무리 중국 베트남 둘 다 공산
동지라고 하지만 역사적으로 베트남이
커지면 중국이 어떻게 했습니까 침공을
하든지 외교로 찍어 누르든 해 베트남
세력을 쪼개고 해왔습니다 그리고 사실
중국도 베트남 전쟁 당시에도 베트남이
분당 국가로 쪼개지 약간 유도하는
느낌이기도 했죠 한 예로 미국이
1973년 베트남과 평화조약을 맺고
전선에서 이탈하자 중국은 어이 베트남
공산당 너네 미국 이탈했다고 뭐 통일
뭐 이런 딴 생각하지 마 현재 남북
분단 상태를 괜히 어그러 뜨리지 말고
남 베트남한국 사용하는 건 좀
자제하라고 거의 이런 뉘앙스로 권고한
적도 있었고 애초에 베트남이 분단된
계기가 되었던 1954년 제네바 회담
데도 중국은 베트남이 남북 분단이
되는 것에 적극 동의 했었습니다
그리고 베트남이 통일되다 실제로
중국은 슬슬 견제 작업에 시동을
겁니다 통일된 직후부터 베트남에 대한
원조를 대폭 삭감한 것이죠 따라서
베트남의 주 고민거리는 이제
중국이었다 men 베트남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바로 적어도 자기를
지켜줄 뒷배 하나를 간절히 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베트남이 기된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소련이 당시
중국의 적은 소련이었지만 소련과 더
밀착하며 친해진 것입니다 소련도이를
환영했고 물론이를 두고 베트남
입장에서는 어쨌든 중국하고 막 단절한
건 아니었고 그저 위험 요소를 줄이기
위해 소련과 친해진 거니까 나름 중국
소련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이게 못
마땅했습니다 중국은 자신이 막대한
원조를 베트남에게 해줬으니 베트남에
대해 자신만 주도권을 갖기 원했습니다
그런데 베트남이 균형 외교라고 주장하
하며 소련을 끌어들이니 심기가 매우
불편해졌고 결국 중국의 원조는 더더욱
뜨든 미지근해 있고 돈이 없던
베트남은 돈 많이 주는 소련 편으로
더더욱 기울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77년이다 men 균형추가
기울어서 베트남은 이제는 소련군이
베트남 해군 기지에 아지 접근할 수
있게 허용해 주었고 이듬에 소련 주도
경제기구 코메콘 아지 가입하게 됩니다
이쯤 되자 중국은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이제 바로 밑에 있는 베트남이 완전히
소련 편이 되어 습니다 순식간에
중국은 남북으로 소련 세력에게 포위된
형국이 된 것이죠 이에 중국은에 저
괘씸한 베트남 것들 야 베트남 원조
다 중단해 그리고 경제 제재를 가라
하고 본격적으로 제재를 시작합니다
여기서부터 갈등은 격화되다 베트남은
이젠 중국 눈치 볼 것이 없었죠
그래서 중국의 영향력을 베트남에서
쓸어내기 위해 무려 67만 명의
달하는 베트남 내 화교를 직간접적으로
쫓아내 버렸고 게다가 베트남은 이제
예전처럼 인도차이나 반도 내에서
또다시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예전 라오스 캄보디아를 뚜까패는
추억이 있던 베트남은 똑같이 그들을
세력권으로 포섭하려 했고 라오스를
포섭한데 이어 베트남은 캄보디아까지
삼켜 소비에트 연방 같이 인도차이나
공산 연방을 만드려 했죠 하지만
캄보디아는 결사 반대했습니다
베트남에게 땅을 뜯긴 역사가 있는
그들로서는 당연했죠 그래서 캄보디아는
오히려 중국의 보호를 요청했고 이에
중국은 커지는 베트남 을 견제하기
위해 냉큼 캄보디아와 동맹을 맺었는데
그러자 이번엔 베트남이 폭발했습니다
베트남이 보기의 중국 이것들은
베트남이 커질라 치니까 또 들어와서
훼방을 놓고 있었습니다 지난 천년간
그랬던 것처럼 따라서 베트남은 이제는
당할 수 없다 하고 극약 처방을
선택합니다 바로 1978년 12월
25일 캄보디아를 무력으로 침공해
버린 것이죠 그렇게 2주도 안 되어
캄보디아 수도가 함락되고 캄보디아에는
베트남군이 주둔하게 되어 습니다
마침내 베트남의 인도차이나 공산
연방이 표면적으로는 완성되었는데 중국
입장에서이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중국은
베트남을 가만 놔두니까 분수를 모르고
날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중국도
이번에는 특단의 조치를 취합니다
마침내 무력을 동원해서 베트남을
침공하기로 결의한 것이죠 그렇게
발생한 것이 1979년 벌어진 중월
전쟁입니다 이걸 보면 참 예전이나
지금이나 베트남은 커지려고 중국은 발
려하는 역학 관계가 무한루프 럼 돌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물론 중국은
베트남의 뒤를 봐주는 소련이 두려워서
후딱 베트남을 침공해 중요한 도시만
점령하여 중국의 힘만 보여주고 재빨리
철수하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그럼
소련도 개입 타이밍이 없으니까 그렇게
중국은 1979년 2월 17일
베트남을 침공하는데 이때 중국은
전쟁에 무려 39만 대병력을 투입했고
베트남 병력은 10에서 20만
내외였고 전쟁은 4주간 치열하게
전개되었는데 과연 그 끝은 어떻게
났을까요 명확한 승자는 없이 양측 다
막대한 피해만 내고 종결됐습니다
중국은 26,000 베트남은 3만에
달하는 사망자가 났죠 하지만 체면을
구인 건
중국이었다 침공했는데 반도 안 되는
베트남 군에게 매우 고전한 것이었죠
중국은 당시 문화대혁명 한지 얼마 안
되던 때라 돈도 없고 군사 개혁도 안
돼 군 수준이 형편 없었습니다
병사들도 불 과 2에서 6개월 밖에
훈련을 못 받았고 장비가 열악해
수류탄을 까서 던져도 불발탄이
많았으며 통신 장비는 먹통이라
병사들과 소통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트남은 캄보디아에 정해 병이
묶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2성급
병력만으로 중국을 꽤나 잘 막아낼 수
있었죠 하지만 베트남도 중국의 침공을
예측 못하는 바람에 많은 사상자가
났고 중국이 베트남의 중요 요충지
랑선 점령하는 것을 허용했고 하지만
중국도 문화대혁명으로 나라가 마이 간
상태라 전쟁을 더 지속하면 파산이
있고 따라서 중국은 1979년 3월
16일 언제든지 자신이 베트남
요충지를 점령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주고 철근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실 충돌은 끝나지 않았죠
중국군 본대는 철수했지만 양측은 육상
국경지대에서 계속해서 국지전을 버렸던
것입니다 둘은 격동의 역사 흐름
속에서 국경선 제대로 확정이 안 난
상태였는데 사이도 좋았겠다 그걸로
치고 받은 것입니다 국경 충돌은
1990년대 초반까지 계속되었는데
한해에 수백명 사상자가 난 적도 있을
정도로 양국 관계는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죠 그런데 갈등이 지속될수록
피해보는 족은 사실 베트남이 있습니다
중국과 충돌하는 동안 베트남 경제는
실시간으로 폭망하고 있었으니 일단
베트남은 수십년간 전쟁한 나라입니다
중월 전쟁 때도 중국이 베트남 국토를
엄청나게 파괴했고 따라서 제던 미가
된 국토를 재건할 돈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원조는 끊겼죠 이제
믿을 건 소련이었지만
1985년이었다
온건파인 고르바초프가 취임하여 중국과
관계가 개선되었습니다 그렇게 갑자기
분위기 탈냉전이라는 베트남 원조가
대폭 삭감되어 버리죠 때문에 베트남은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렸고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은 중국의 재침략
대비를 위해 징병령 발동하고 군사를
늘려야 했습니다 캄보디아의 도 군대를
둬야 했고요 그 결과 42만 대병력을
상시 운용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
군사비 지출이 폭등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은 욕심을 못 버리고 계속
병력을 운용하는 선택을 했는데 그
결과는 파멸적이었습니다 국제 사회에서
아지 베트남에 대해 베트남 저것들
이웃나라는 침공에서 못살게구는 막장
국가를 단죄하다 하고 낙인 찍어 경제
제재를 가했고 결국 베트남 경제는
실시간으로 폭망
1986년에는 베트남 베남 1인당
GDP 같은 해 북한의 10분의
수준까지 추락해 버리죠 이대로면
베트남 공산당 지배 체제가 뿌리째
뽑힐 위기였습니다 그래서 198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베트남은 결국 마음을
바꿉니다 이제는 이러다 나라 망한다는
생각으로 자존심 욕심 다 버리고
팽창과 갈등을 그만둬서 주변국들과
친하게 지내기로 한 것이죠 또한 개혁
개방해서 시장 경제와 자유주의 무역
체제도 받아들이고 이것이 베트남의
개혁 정책 도이머이 정책입니다 그래서
1989년 10년 만에 베트남 군은
캄보디아에서 전면 철수했습니다 그래서
베트남은 그나마 주변국의 신뢰를 얻기
시작했죠 이제 더 좋아지려면 중국과의
관계도 개선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자존심 다 버리고 중국의
억지미소 지으며 관계 개선을 시도한
베트남이 있죠 자 과연 중국은이
괘씸한 베트남을 받아들였을까 의외로
중국은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베트남이
캄보디아에서 수 했으니 중국
입장에서는 한 실음 덜기도 했고 사실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도 같은 공산
국가끼리 대립해서 좋을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럴수록 공산 체제의
권위가 손상되고 중국 국민들이 체제의
의구심을 가지니까 따라서 중국도
베트남의 손을 맞잡았습니다 베트남과
중국은 1991년 국교가 정상화됩니다
국경 문제도 1999년 국경 조약이
맺어져 일단을 하게 되었고요 이렇게
철저히 이해관계에 따라 다시 관계가
개선된 양국이 있습니다 이후에는 서로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며 협력 관계가
되었죠 1992년 12월에는 중국
리펑 총리가 베트남을 방문해 경제
협력을 약속하기도 했고요 아니 그런데
분명 영상 제목은 베트남이 중국을
싫어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흐름을 보면 어 이러면 관계가 좋은
것 아닌가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과 중국은 관계 개선 이후
또다시 갈등의 소용돌이로 빠져듭니다
이번에는 두 나라간 해상 경계 문제가
촉발한 것이죠 양국은 육지 국경은
잠잠해졌지만 이제는 해양 국경을 두고
충돌했습니다 바로 구단선 문제이죠
2023년 영화 바비가 유행했을 때
영화 내에 중국 단선이 표기된 지도가
삽입된 걸 이유로 베트남이 바비영화
상형 금지를 때린 바 있습니다 그럼이
단선이 뭐냐 남중 국회에서 중국이
주장하는 자신의 해역이 남중국해는
중국 남쪽에이 바다를 지칭하는데
중국은이 이렇게 아홉 개의 선으로
남중국 해상에 자신의 권역을 표시해
영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은
이에 극구 반대하며 중국 주장 범위가
아닌이 범위까지 자신의 해역이
주장하고 있습니다이 분쟁 해역을
자세히 설명하자면 여러 섬과 초가
뒤얽혀 있어서 복잡한데 간단히 말하면
이곳 파라셀 군도 그리고 스프레트
군도를 중심으로이 섬들이 자기 권역이
주장하고 들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영예가 넓어지니까 물론 이외에 다
다른 국가들도 각자 주장하는 권역이
있는데이 영상에서는 중국 베트남
중심으로만 살펴보겠습니다이 해역
분쟁의 양국은 사화를 걸고
달려들었습니다 왜냐이 남중 국회는
동북아시아 국가가 수입하는 원유의
70% 이상이 싫어 날라주고 세계
해상 수송에 25% 통고하는 데다
엄청난 원유 천연 자원이 묻혀 있는
노다지 때문이죠 특히 중국은 엄청나게
강력하게 이곳이 자기 영예라
주장했습니다 남중국해 를 틀어 쥐어야
만 라이벌인 미국을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실제로
남중국해에서 중국은 여러 차례
베트남의 해역을 침범해 자기 영역으로
구치를 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2007년 중국은 선을 넘게 되죠
베트남이 주권을 주장하는 남중국 해
내의 파라셀 군도 스프레트 군도에
중국이 아예 하이난섬 사나의 싼
사시라는 행정 구역을 떡하니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베트남 영양권장량 아이
자신의 행정 관할로 못 박은 것이죠
게다가 비슷한시기 남중 국회에서
활동하던 베트남 석유 탐사선의
케이블을 막 잘라버리고 중국 해군이
베트남 어선 테 사격하고 침몰까지
시키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것에
베트남인은 전국민이 분노할 수밖에
없었고 2000년대 들어 반중시위가
베트남에서 대대적으로 터져 나오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죠 그러나이
중국은 2013년 시진핑 집권 이후
더더욱 공격적으로 영유권을 주장했고
이런 1년의 사태때 때문에 베트남인의
반중 감정은 최악으로 치달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중국에 대한 베트남의
국민적 정서은 매우 좋지 않은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린 또 하나
살펴봐야 할 측면이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베트남 사람은 중국을 싫어할지
언정 베트남 경제는 중국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단 베트남이 물건을 제일 많이
수입해 오는 나라가 중국입니다
2023년 기준 베트남에서 물건을
수입하는 나라 순위 2위가 한국 인데
중국은 1위로 무려 베트남의 수입품
중
33.9% 중국산입니다 수로는 1년에
150조원 어치에 달하죠 때문에
우리나라가 저번에 중국발 요소수
대란이 일어났 듯 베트남도 중국
때문에 모모 대란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베트남이 물건을 수출하는 국가 비중
2위가 중국입니다 1위는 미국이고
그럼에도 베트남이 중국에서 수입하는
양이 압도적이라 베트남은 대중국
자가 나왔죠 하지만 그럼에도 베트남은
세계의 공장인 중국과 교역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기가 안 하면
다른 동남아 경쟁국이 교역 다
뺏어가서 이득을 볼테니까 이렇다 보니
베트남 정부는 사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과의 협력에
적극적이었습니다 중국과 국경지대에서
무역하기 위해 중국 베트남 경제권을
하나로 연결하는 철도 사업까지 아예
진행을 했고 여기 중국 기업이 막대한
투자를 했죠 또한 베트남으로 오는
관광객들은 30% 가 중국인입니다
베트남 경제는 중국과 떼놓고 생각하기
쉽지가 않죠 중국이 주변국들에게
고압적인 이유 중 하나가 이것입니다
중국은 워낙 알토란 큰 땅을 독차지해
체급과 인구로 밀어붙일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어떻게 보면 예전에는 중국이
군사력이 채찍과 조공 책 봉질라는
당근을 통해 주변국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현재는 거대한 시장을 통해
그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베트남도 당연 이
손 놓고 있을 순 없었습니다 중국이
어느 날 규모를 믿고 베트남에 뭔
짓을 할지 모르니까요 그래서 베트남은
또다시 자신과 협력할 파트너를 찾게
되는데 예전에는 소련과 손을 잡았다면
이제는 충격적이게도 미국과 손을
잡았습니다 베트남 전쟁을 했던 그
미국과 말이죠 물론 베트남도 자존심은
상했 있지만 손잡지 않으면 자국이
위험에 놓입니다 그래서 미국이 계속
거절했음에도 베트남은 자존심 다버리고
양보하며 끈질기게 구해 했고 결국
1995년 미국과 베트남은 수교하기
됩니다이 결정은 베트남에게 꽤나
긍정적이었습니다 현재까지도 베트남의
최대 수출국은 미국입니다 자국
수출품의
27.4% 미국에게 팔아치우고 있죠
따라서 대중국 무역에서 적자가 나도
그걸 대미 무역으로 메꿀 수 있습니다
당연히 중국 입장에서는 베트남이
미국과 친한 것도 예전의 소련이 겹쳐
보여서 리 좋아하지는 않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베트남도 줄타기를 잘해 하는
상황이고 이런 측면만 보면 우리나라의
상황과도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죠 자
지금까지 베트남 중국 그 참
기이하고도 복잡한 관계를
살펴보았습니다 중국 베트남에 끝없이
변화해 온 관계의 역사 그리고 현재
왜 베트남에서 반중 감정이 높아졌는지
알 수 있었는데 사실 영상 제목은
베트남이 중국을 싫어하는 이유지만
살펴봤듯 영원히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일은 없습니다 다 이해관계나
국제적 분위기에 따라 변동할 수 있는
것이니까 베트남 국민 사이에서 반중
감정이 높아졌지만 그럼에도 양국은
경제적으로는 긴밀이 협력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큰 틀만
놓고 보았을 때는 중국과 베트남은
제대로 된 앙숙이 되기 쉬운 구조인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지리적으로 봤을
때 워낙 양국이 복잡하게 얽힐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역사적 한중 관계와도 꽤나 닮은
측면이 있습니다 현대에는 한국이나
베트남이나 미국 중국간 줄타기 외교를
잘해야 하는 것도 비슷하고요 그래서
베트남과 중국의 관계는 한국과 중국의
관계에도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베트남의 사례를
검토해 보며 교훈을 얻고 국익에 맞게
국제적으로 사고하며 현명하게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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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마세요 이상으로 영상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