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의 지배권은 누가 가져갔을까? 명나라 vs 여진족 누르하치의 하이라이트, 조선군도 투입 되었던 사르후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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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역사 돋보기입니다 중국
전쟁사 대표적인 전투를 소개해드리는
중국 전쟁사 시리즈 11부 있니다
이번 영상에서 다룰 전투는 많이
알려진 전투조 중국의 명나라가
여진족에게 만주에 대한 지배권을
완전히 빼앗겼던 그 전투 우리
조선군도 함께 투입되었던 전투 바로
사르후 전투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16세기에서 17세기
부족 단위로 분열되어 있던 여진족을
통합한 사람은 누라 치였습니다 만주의
여진족은 크게 건주여진 해서여진 야인
여진 세 가지로 분류되어 있었고
누르하치는 건주여진 출신이었습니다
본니 여진족의 주력은 건주 여진이
있으나 조선초 세종대왕과 세조 때의
여진 정벌로 건주 여진이 크게
쇠퇴하였다 이에 해서 여진이 지나치게
성장하여 명나라가 해서 여진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죠 명나라는 만주에 대한
지배권을 여진족에게 빼앗기지 않고
우의를 유지하기 위해 여진족 각
부족들 그리 싸움을 붙이는 식으로
이간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명나라는
해서 여진을 견제하기 위해 건주
여진의 누루 아치를 압도적으로
밀어주며 명나라의 도움을 토대로 누루
아치는 자신의 건주 여진을 통합하고
야인 여진지역아동센터
병을 조선으로 파견하기로 합니다
1593년 조선으로 들어온 명나라
사람과는 요동 총병 이여송 요동
부총병 조승훈 요동 경력 송응창 즉
요동의 병력이었다 병력은 여진족을
상대하며 만주 지역을 관리하는게 주된
업무였습니다 이런 요동 병력이
조선으로 들어오니 만주에 대한
명나라의 지배력에 빈틈이 생긴
겁니다이 틈을 타 누르하치가 구화산
전투를 통해 해사 여진을 박살내고
해서 여진지역아동센터
아니라 해소 여진과 건주여진 사이
힘의 균형이 있습니다 그런데 명나라가
임진란 때문에 만주의 신경을 못 쓴
사이 힘의 균형이 깨져 버렸고 누루
아치가 명실상부 만주의 최고 패권자
거듭나 버리면서 만주의 질서가 완전히
재편된 겁니다 1616년 여진족의
모든 부족들을 통합한 누 아치는 아예
국가를 선포하고 황제를 칭합니다
나라이름은 과거 여진족의 국가
금나라를 그대로 따왔으며 이전에
금나라와 구분하기 위해 누루하치
금나라를 후금이 구분하기 명나라는
이제 누루 아치를 경계하기 시작했고
누루 아치는 7대 한이라고 알려진
명나라를 공격해야 하는 이유 일곱
가지를 발표합니다 명나라와의 전쟁을
선포한 거죠 1618년 지금의 중국
요양성 무순을 손바닥 뒤집듯 손쉽게
점령합니다 이제 명나라도자기 수
없었습니다 명나라의 요동 병력은 해서
여진의 잔당 세력과 연합에 대규모
군대를 꾸리고 누루 아치를 완전하게
토벌하기 위해 대전쟁을 벌이기로
합니다 명나라 측 총사령관은 임진란
당시 명나라 원군을 이끌었던 요동
경약
양호했습니다 본격적인 전쟁에 앞서
명나라는 조선의 원군을 파병해 달라
요청합니다 이때 조선의 왕은 15대
광해군이 있는데 광해군이 멘붕이
빠집니다 광해군은 언제고 여진족과
싸울 수 있겠 거니 감안은 하고
있었습니다 단 그것이 여진족이
쳐들어오면 조선이 막는 것을
계획했을뿐 조선이 공격하러 갈
것이라고는 광해군의 시나리오에 없었죠
조선은 임진 해란이 끝난지 얼마 안
된 시점 싸 서 이길 수 있다고
장담을 하지 못하고 명나라와 같이
싸운다고 해도 누가 봐도 명나라가
이길 것 같지가 않죠 최선은 병력을
안 보내주고 중립을 지키는 건데 그럴
수도 없는 상황 광해군은 시간을
끌면서 모르는 척하려고 했지만 조선의
조정 신하들은 임진하한테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에게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또 명나라 사람과 양호의
지속적인 압박에 별수없이 광해군은
1619년 지원병을 보내기로 합니다
강홍립 장군을 도원수로 김경서 장군을
부원수를 삼고 1 3,000명이 암록
건넙니다
양호는 명나라의 병력이 47만이나
된다고 떠 벌렸지만 실제로 10만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강홍립의
조선군이 명나라군 합류했고 강홍립이
가서 보니깐 명나라군 진영이 아주
개판인 겁니다 병사들 군기도 빠져
있고 무기 상태도 엉망이고 양호는
병력을네 개로 나누는데 조선군이
편제된 부대는 동로구 유정 장군이
지휘하는 부대였습니다 동로구 병력이
얼마 안 되자 중국어를 엄청 잘했다고
하는 강홍립이 유정에게 증 증원
요청을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유정은
총사령관인 양호와 사이가 안 좋다며
증원 요청해 봤자 안 보내 준다고
요청도 안 합니다 명나라의 네개
분에는 말림이 이끄는
북로군정서군 이어백 이끄는 남루
그리고 조선군이 포함된 유정이 이끄는
동로구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북로그
개원해 서로는 심양에서 남로 그는
요양에 동로구 단동에서 출발해 네개의
부대가 각자의 진군 루트에서 여진족을
토벌하다 사르 후라는 강에서 다 같이
만나 누루 아지의 본진인 허투 알라로
들이닥 치기로 하였습니다 허투 알라는
오느 날 라오닝 성의 푸순 실합니다
시작부터 불안했던 것이 내부다
지휘관들 마림 두송 이어백 유정네
사람끼리도 그리고 총사령관인 양호와
모두가 사이가 좋지 못하고 서로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있었죠 동선
남복 사로고 부대간 긴밀한 연락과
협력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명나라의 로고는 각각
사로를 향해 출발을 하긴 하는데 본진
허투알라 있던 누루 아치라고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누르하치는 기병대를
이끌고 지형과 길에 대한 탁월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매복과 기습으로
명나라의 호군의 차례차례 격파했습니다
명나라군이 대군이라 해도 라오닝 상의
지형의 숲이 우거지기 때문에 부대가
분산되어 있었고 후금의 누루하치
입장에선 상대보다 적은 병력이
기병대로 기습해서 공격하기 딱 좋았죠
그리고 누루 아치는 명나라군이
집결했던 때부터 지속적으로 척후
병들을 파견해 명나라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고 명나라의
진군 시작과 진군 루트를 누루 아치는
이미 다 파악 을 하고 있었습니다
누루 아치가 처음 맞닥뜨린 명나라
부대는 두성의
서로군정서 희망에서 떠나 집결지인
사르 후로 매우 빠른 속도로
돌진했다이나 로군 출발지인 심향이라는
로군 부대에 미해 두성의 서로 군이
지나치게 빨리 도착한 겁니다
누르하치의 군대가 명나라 4로 군을
한꺼번에 상대할 수는 없어도 부대
하나 정도는 상대할 수 있었기에
누르하치의 아들 홍타이지가 사루 후에
너무 일찍 도착한 두성의 서로 군을
으로 전멸시켰습니다 두송 또한 화살에
맞아 전사 있죠 두 송의 서로 군이
전멸하고 얼마 안 있어서 마름의
북로군정서의 북로 군이 오고 있을 때
서로 군이 공격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두 손과 말림이 사이가 좋지
못해 마리민 굳이 진군 속도를 빨리
해서 도우러 가지 않고 그냥 원래
페이스대로 진군했다 합니다 그래도
서로 군 전멸 소식을 들었기에 말림에
북부군은 대기병 목책을 강화하고
화기들을 배치하여 견고한 방어 기지를
구 게 두고 있었습니다 또 혹시나
후금의 부대가 고지대인 봉우리들을
차지하여 기습해 올까 봐 주변에
고지대라 고지대는 전부 명나라 군을
배치해 두었죠 마림 북로그 누르하치가
직접 나섰습니다 누르하치는 마림
예상대로 고지대를 장악한 후
내려오면서 공격할 계획이었으나
고지대의 전부 명나라군이 있던 겁니다
누르하치가 고민하고 있자 누르하치의
아들 다이샤이 공격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며 철기 병을 이끌고 냅다
돌격했다 엄청 낮습니다 하지만
소수라도 명나라 군의 대기병 목적들을
돌파하고 명나라군 진영으로 들어오자
명나라 군은 화포를 적절히 사용할
수가 없었고 그 사이 누루 아치는
다른 팔기군 기병대를 지속적으로 초입
다이시을 지원해 주었습니다 결국 냅다
돌격 전술이 먹혔고 북로그 전열이
흐트러졌던 이탈하는 병사들도 많아지고
몇 시간이 지나니
[음악]
북로군정서군 북로군정서의 사로 후에
거의 도착하던 동로구 유정은 진군을
중지한 채철 철수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누르하치의 두 아들 다이시 홍타이지가
이끄는 기병대가이 철수하는 동로구
추격합니다 보병 위주의 명 나라였고
기병 위주의 후금
군이었다 hal 수가 있었습니다
동로구 차 프차라오 점멸됩니다 동로구
유정은 화약으로 자폭해 버리죠 그나마
조선군이 대포로 항전하는 가장 잘
싸운 부대였습니다 강홍립은 살아남은
조선 병력을 이끌고 산자락이 진을치고
끝까지 싸우지만 결국 대세를 거슬리지
못하고
투항했다 는 사히 남루 그는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죠이 전투가 그
유명하디 유명한 사르후 전투입니다
사르후 전투는 누르하치의 후금이
명나라를 무너뜨린 전투는 아니었습니다
끝끝내 누르하치와 누르하치의 뒤를
잃은 홍타이지는 만리장성을 넘지는
못했거든요 그러나 사로우 전투의
대승으로 요동에 대한 지배권은 완전히
누루 아츠의 후금에게 넘어옵니다 마치
중국 전쟁사 고부에서 다룬 요나라와
여진 족과의 전투 출하점 전투와
비슷한 양상인 거죠 사루 전투에서
누루하치 후금의 승리 요인은 지형에
대한 탁월한 이해도 굉장히 중요했지만
사루 전투는 정보전의 승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누르하치는 척후병을
통한 정보 취득에 엄청난 신경을
쏟아붓고 있었고 명나라의 진군 속도
방향 모든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장소에서 상대방을 각게
격파할 수 있었던 거죠 그리고 명나라
입장에서이 패전의 요인이야 여러
가지지만 역시 조직적이지 못하고 상호
협력이 안 되는 팀은 개같이 멸망할
수밖에 없다로 이번 영상 끝내겠습니다
그럼 역 돋보였습니다 저희 역사
돋보기가 멤버십 가입을 시작했습니다
멤버십 가입을 해 주신 분들 덕분에
영상 제작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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